영원한 전쟁 환상문학전집 37
조 홀드먼 지음, 김상훈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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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SF소설 읽기에 흠뻑 빠져 있다. 사실 그동안 책을 읽으면서도 SF소설은 의식적으로 멀리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러나 <노변의 피크닉>으로 시작된 나의 SF여정은 지금은 절판되어 간간히 구할 수 있는 오멜라스 시리즈에 이어 황금가지에서 출간되고 있는 환상문학전집에까지 도달했다. 조 홀드먼이 1974년에 발표한 <영원한 전쟁>은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스타십 트루퍼스>(현재 읽고 있는 중이다)와 더불어 밀리터리SF의 양대산맥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마 존 스칼지의 <노인의 전쟁>도 다음달 정도에 도전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밀리터리SF 삼부작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황금가지 환상문학전집은 <영원한 전쟁>을 마지막으로 현재 후속작들이 나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소설의 내용은 비교적 간략하다. 주인공 윌리엄 만델라가 지독한 신병 훈련을 거쳐(훈련 중에 실제 사상자가 발생한다) 토오란이라고 불리는 외계생명체와의 전쟁에 투입되어 끝없는 전쟁을 치르는 내용이다. 제목에서도 위대한 반전소설이라고 언급했듯이, 대학에서 물리학과 천문학을 전공한 저자는 베트남전에 참가한 베테랑이다. 그 어떤 명분도 없이 프랑스에서 해방된 주권국가 베트남에 파병되어 민족해방을 부르짖는 베트남 인민과 해방전쟁을 치른 조 홀드먼의 경우는 그대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토오란과의 끝없는 전쟁으로 대치된다.

 

전쟁국가 미국은 독립전쟁으로 국가의 시초를 닦았다. 훗날 전세계를 제패하게 될 미국식 자본주의는 끝없는 전쟁을 원했고, 국가는 미국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독점 자본가들의 요구에 충실히 응했다. 국가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젊은이들을 세계정복 전쟁에 몰아 넣었고 국가의 물자와 인력을 총동원해서 끝없는 전쟁을 치러왔고, 지금도 현재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현재진행 중이다. 그런데 소설 속의 지구인들처럼 그들은 왜 토오란들과 전쟁을 하는지 알고 있었던가?

 

만델라가 처음 투입된 알레프 작전에서 그들은 토오란들의 대공전에 피해를 입기는 했지만, 거의 무방비 상태의 토오란들을 문자 그대로 학살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런 환난에서 가까스로 탈출하는데 성공한 토오란은 그들의 일족에게 그 사실을 알리게 되고 끝없는 전쟁이 시작된다. 그전에 우주 식민지 개척을 위한 이주민들의 비행선을 토오란이 공격했다는 이유로 개전의 이유가 제시되는데 그 또한 정확한 사실이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미국이 베트남전에 개입한 이유로 삼은 통킹만 사건(훗날 조작된 것으로 판명됐다)과 매우 유사하다.

 

콜랩서 점프라는 방식과 스타게이트를 통해 엄청난 거리를 쉽게 이동할 수 있게 되면서 광대한 우주는 지구인들의 개척의 대상이 된다. 그것 또한 피아를 구분하는 미국식 이분법의 발로라고나 할까. 내가 아닌 타자를 식민 혹은 지배의 대상으로 삼는. 현재 미국 대통령이 구하사는 미치광이 전략 그리고 아메리카 퍼스트라는 공허한 구호들이 난무하는 혼돈의 시절을 마치 소설은 예언이라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콜랩서 점프를 통해 주인공 윌리엄 만델라는 사병에서 출발해서 부사관을 거쳐 결국 기동타격부대를 지휘하는 소령에까지 도달한다. 의무복무 기간을 마치고 복귀한 미래의 지구는 더 이상 그전과 같은 공간이 아니었다. 신병 시절부터 같이 온갖 위기를 같이 경험하고 섹스 파트너로서도 더할 나위없었던 메리게이 포터의 부모들이 코뮌을 침략한 폭력배들에게 살해당하고 어머니가 사회에서 더 이상 필요 없어진 인력으로 구분되어 돌아가시는 장면을 보고, 윌리엄과 메리게이는 재입대를 결심한다. 그 과정은 마치 베트남전에서 사회에서 복귀한 람보가 도저히 사회에 적응할 수 없어 일탈하는 그것과 매우 유사하게 다가왔다. 모든 사회가 전쟁을 위한 국가로 변해 버린 현실도 한몫하지 않았을까. 이럴 바에야 차라리 다시 전선에 복귀하자는 그런 결심 말이다.

 

미래사회의 하이테크 발전과 그에 따른 사회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시공을 초월하는 콜랩서 점프라는 개념도 생소했지만, 전쟁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부상으로 팔다리를 잃어도 곧바로 재생해낼 수 있는 기술의 발전이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인구폭발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방법으로 동성애가 일반적으로 인식되는 점은 또 어떤가. 윌리엄 만델라가 신병이었던 시절과 엄청나게 다른 인식의 전환이 아니었을까. 하긴 고대 그리스 테베에서는 군대의 단합과 효율성을 위해 동성애자 부대를 구성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어쩌면 조 홀드먼은 그런 역사의 반복을 자신의 소설을 통해 그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자원과 물자의 부족으로 화폐 대신 칼로리라는 가상화폐 개념이 등장하는 장면도 재밌었다. 그렇지 않아도 현재 가상화폐 이슈로 한동안 떠들썩하지 않았던가.

 

전장에서 당한 심각한 부상에서 회복한 윌리엄과 메리게이는 본인들과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다른 부대 소속으로 재배치되게 되면서 영원한 이별을 맞게 된다. 이제 마지막 임무에 배치된 윌리엄 만델라 소령은 정말 자신이 살던 20세기와 전혀 다른 이질적 사회의 군대 지도자가 되어 토오란과의 일전에 나서게 된다. 그것은 마치 조 홀드먼이 직접 체험한 베트남전에서 군부 지도자들은 새로운 시대의 개념을 가진 신세대 사병들을 생과 사가 갈리는 혹독한 전선에서 지휘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싶다. 빛나는 승리의 기억을 가진 2차세계대전 용사들이 전혀 새로운 전장에서 수세기에 걸친 외세로부터 민족을 해방시키겠다는 불굴의 의지에 불타는 베트남 민중을 상대로 한 이길 수 없는 전쟁을 과연 그들이 원하는 완벽한 승리로 이끌 수 있었을까.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토오란과의 마지막 전투 끝에 귀환했을 때, 윌리엄 만델라는 2백년도 전에 토오란과의 전쟁이 끝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만델라 일행은 우주에서 실종된 마지막 귀환병 그룹이었다. 어이없는 이유로 전쟁이 시작된 것처럼, 수백년을 끈 토오란과의 전쟁도 마침내 그들과 소통이 가능한 세대의 등장으로 끝나게 되었다는 말은 허무의 정점을 찍는다. 그렇지, 전쟁은 그런 거다. 정전 상태과 핵무기의 위협을 안고 사는 우리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그리고 무엇을 위한 전쟁이란 말인가. 조 홀드먼이 이렇게 멋들어진 스페이스 오페라를 통해 전달하고 싶어한 반전 메시지를 나는 정확하게 짚어낸 것 같이 뿌듯한 독서였다. 그가 예언했고, 현재 도착한 미래에 대한 평가는 25년 뒤에 발표한 이 소설 <영원한 전쟁>의 후속편을 보고 평가해 보자. <Forever Free>가 과연 국내에 출간될 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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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구멍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44
켄 폴릿 지음, 김이선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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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래 전에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읽은 축약본의 원전인가요? 놀랍네요. 저자가 켄 폴릿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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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8-02-23 14: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더 이상 읽을 켄폴릿이 없다고 아쉬워하던 차였습니다~^^

레삭매냐 2018-02-25 20:23   좋아요 1 | URL
원작 <바늘구멍>은 1978년 작품이고,
우리나라에는 리더스 다이제스트 베스트셀러 1집
으로 1984년에 나왔었네요.

그전에 읽고 참 기발하다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비슷한 이야기가 있더군요.

텔리비전 드라마인가 영화였던 것 같은데, 배경이
롬멜의 카이로 침공 작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Falstaff 2018-03-06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 전, 당연히 지금의 아내는 아니고, 예쁜 아가씨와 데이트 겸해서 본 영화의 원작이네요.
영화는 참 재미있었습니다. 마치 <채털리 부인의 연인>인데 그 연인이 스파이인 것처럼요. ^^
책도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
 
뉴로맨서 환상문학전집 21
윌리엄 깁슨 지음, 김창규 옮김 / 황금가지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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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SF소설에 재미가 든 모양이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사냥을 갔다가 예전부터 눈여겨 두고 있던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를 읽기 시작했다. 사이버스페이스에서 활동하는 콘솔 전문가(해커) 헨리 도셋 케이스가 등장하는 저자의 1984년 작품으로 한다하는 싸이파이 소설상을 모두 휩쓸었다고 한다.

 

일단 소설의 시작은 일본의 지바 시다. 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전 세계를 정복할 것이라는 전망이 넘쳐흐르던 시절의 분위기가 물씬 풍겨난다. 주인공 콘솔 카우보이 케이스(24세)는 2년 전만 하더라도 잘나가던 업계의 전문가였지만, 고용인의 돈을 훔쳤다가 그에 대한 처벌로 모든 신경계가 파괴되고, 그의 밥줄인 글로벌 컴퓨터 네트워크이자 가상현실 데이터베이스 “메이트릭스”에 접속할 수 없게 된다. 남은 돈을 탈탈 털어 당시 신경외과 기술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일본으로 건너가 손상된 신경을 회복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웠지만, 돈만 날리고 거리의 싸구려 청부업자가 되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중이다.

 

물론 작가는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는 주인공에게 기회를 한 번 준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소설작법의 순서일 것이다. 아미티지와 프리랜서 사무라이 몰리는 그의 신경계를 회복시켜 주는 대가로 모종의 미션을 수행할 것을 종용한다. 물론 이 시점에서 그 임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줄 필요가 없다, 역시 충실하게 공식을 따른다. 어쨌거나 나락으로 떨어진 사이버스페이스 카우보이가 자신을 완벽하게 고쳐 준다는 현재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제안을 마다할 리가 있나. 첫 번째 꼭지에서는 그런 배경설명과 상황 설정을 뒤로 하고, 신경외과 수술을 마친 케이스가 부활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속도감 있게 진행된다.

 

윌리엄 깁슨은 케이스에 이어 그를 조종하는 또다른 문제적 인간 아미티지/윌리스 코르토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묘사한다. 전직 군사요원인 아미티지는 “스크리밍 피스트” 작전에 참가해서 소련의 컴퓨터 시스템을 분쇄하는 임무에 투입되지만, 사전에 발각되어 그를 제외한 전원이 전사하는 비극을 겪는다. 자신도 실명하고 심각한 부상을 당했지만 정부 요원에 의해 치료 받은 뒤 암흑세계로 잠적하게 되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인간에 의해 창조되었지만, 인간을 조종하게 된 쌍둥이 인공지능(AI) 윈터뮤트와 뉴로맨서의 사주를 받아 케이스의 사부라고 할 수 있는 맥코이 폴리의 ROM을 탈취하면서 엄청난 인명피래를 가져온 사건을 벌이게 된다.

 

사실 SF소설 <뉴로맨서>는 저자 윌리엄 깁슨이 창조해낸 수많은 이야기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 있어서 내러티브를 따라가는 게 쉽지 않다. 나도 읽으면서 내가 과연 제대로 읽고 있기는 한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부끄럽지만 위키피디아 영문 <뉴로맨서> 부분의 플롯을 참조하면서 팔로우업한 것도 사실이다. 소설의 디테일에 집중하다 보니 소설의 전체적 전개를 놓치기도 했다. 현실에서도 마찬가지지만, 국가권력기관인 정부보다도 더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기업(테시어 애시풀)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지능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는 점에서 <뉴로맨서>는 보다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미래관을 보여준다. 많은 SF소설이 그리고 있듯, 과연 미래의 하이테크의 발전이 인류에게 풍요와 행복을 가져다 줄지에 대해 반복해서 묻게 된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인공지능이 언젠가 인류를 능가하게 되는 시절이 온다면 과연 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 시절에도 과연 인류는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는 있는 걸까.

 

다시 소설로 돌아가 싸이버펑크 걸작물답게 불멸을 꿈꾸는 이들에 의해 설립된 테시어 애시풀의 슈퍼 인공지능 윈터뮤트가 바로 아미티지의 뒤에서 케이스 일행을 조종한 배후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인공지능을 규제하는 장애물들을 없애고, 쌍둥이 인공지능 뉴로맨서와 결합하기 위해 인간의 피조물인 윈터뮤트가 역설적으로 인간을 조종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케이스 일행은 이스탄불에 들러 도둑이자 홀로그래픽 아티스트이기도 한 피터 리비에라를 영입하고, 테시어 애시풀의 본거지라고 할 수 있는 스트레이라이트 빌라에 침투해서 불가능해 보이는 마지막 미션에 도전한다.

 

소설을 다 읽고 난 뒤에 느낌은 엄청나게 혼란스러운 메이트릭스에 갇혀 버린 느낌이 들었다. 캐릭터들의 현란한 무용담과 스타일에 빠져 들다 보면, 내러티브가 실종되고 반대로 내러티브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사이엔가 길을 잃어버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지금으로부터 자그마치 34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라고 하기엔 정말 세련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발표할 당시에는 지금처럼 사이버스페이스의 개념조차 잡히지 않았던 시절이 아니던가. 윌리엄 깁슨의 원작은 영화 <코드명 J>를 비롯해서 수많은 영화에 영향을 준 바 있다. 프리랜서 사무라이 몰리는 <공각기동대>의 그 유명한 쿠사나기 모토코 소령의 원형이 분명해 보이고, 키애누 리브스 주연의 <메이트릭스>도 대놓고 깁슨의 아이디어를 사용하지 않았던가. 최근에 드디어 <뉴로맨서>의 영화화가 발표되었는데 과연 21세기 사이버 주술사의 혼돈에 가득찬 이야기가 영화화될지 자못 궁금하다.

 

인터넷으로 소설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다 보니 인도의 어떤 이는 이 소설의 각 장을 세밀하게 분석해서 박사 논문을 다 썼을 정도였다. 저자는 이 소설을 쓸 당시 컴맹이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사이버스페이스 개념과 메이트릭스를 이용해서 현란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거의 사이보그 혹은 안드로이드에 가까운 복제인간 그리고 인체공학 기술을 접목시킨 신인류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도 주목할 만하다. 신경계가 파괴된 주인공 케이스를 부활시킨 하이테크 기술과 프리랜서 사무라이 몰리의 경우를 보자. 전자가 필멸의 존재인 인간을 불멸의 단계로까지 격상시킨 바이오테크의 개가라고 한다면, 후자는 불멸의 중간단계라고나 할까. 냉동인간, 클론, 대기업 네트워크 해킹 당시에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오늘날에는 하나둘씩 현실화되어 가는 과정에 있는 이야기들이 주르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윌리엄 깁슨이야말로 시대를 앞서간 예언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수년 전에는 지금은 한물간 모 정치인이 대선 출사표를 던지면서 깁스의 문구를 인용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저 책읽기에 급급해서 과연 내가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를 과연 제대로 읽었는지에 대해서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나중에 영화가 나오면 영화를 보고 나서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는 원작에 나오는 스타일에만 집중하더라도 대성공을 거두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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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8-02-22 1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 초반부 읽다가 너무 이해하기 어려워서 포기하고 내내 눈에 띄는게 왠지 그래서 알라딘 중고로 넘겼던 기억이 나네요. 읽으셨군요 대단하세요.
쓰잘데없는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어봅니다^^

레삭매냐 2018-02-22 18:01   좋아요 1 | URL
그러셨군요...

저는 나름 초반에는 재밌게 읽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길을 잃게 되더라구요.

다 읽고 나니 그래도 뿌듯했습니다.
 
천년만년 살 것 같지? - 멸종위기 동식물이 당신에게 터놓는 속마음 만화에세이
녹색연합 지음, 박문영 만화 / 홍익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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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집 근처에 맹꽁이들의 서식처가 있다. 녀석들은 주로 밤에 활동하는지 선선한 여름밤 녀석들이 군거하는 곳을 거닐다 보면 맹꽁이들이 즐겁게 우는 소리가 아주 상쾌하게 들린다. 이번에 읽은 녹색연합에서 펴낸 <천년만년 살 것 같지?>에 바로 그 맹꽁이가 우리의 환경오염 정도를 알려주는 환경지표종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그래도 우리 동에는 그나마 살만한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물에 관심이 많은 꼬맹이를 키우다 보니 아무래도 덩달아 주변 동물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보니 나도 어렸을 적에는 그렇게 동물들을 좋아했었다. 지금처럼 다양한 방법, 아마 녹색연합 분들이 보면 기겁을 하시겠지만,으로 그들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꼬맹이 덕분에 과천에 있는 서울대공원에도 자주 갔었는데 갈 때마다 남방돌고래들의 수중공연을 보러 가곤 했었다. 남방돌고래들의 현란한 공연을 보면서도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저렇게 갇혀 있는 것보다 자연에서 뛰노는게 훨씬 좋을 텐데 하고 말이다. 하긴 그런 생각이 어디 그들에게만 해당하는 걸까? 동물원에 갇혀 있는 사는 처지의 수많은 동물들도 마찬가지겠지. 인류가 개발해낸 발명품 중에 동물원 만큼 인류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도 드물지 않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천년만년 살 것 같지?>에 실린 다양한 에세이들을 보면서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지만, 육식을 줄이기 캠페인 같은 부분은 좀 불편했다. 채식주의자들의 생각에는 공감하는 바도 있지만, 자신들의 생각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건 좀 아니지 싶다. 사실 문제가 되는 건 현대에 개발된 공장식 축산이 문제지, 육식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 방식으로 축산이 이루어지고, 좁은 케이지에 갇혀 살을 찌우고 비참하게 도살되는 방식을 문제 삼는 게 옳은 게 아닐까? 하긴 푸른 초장에서 뛰어 놀던 녀석들을 사려면 배나 비싼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게 더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육식을 거부하고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그 생각에 반대한다. 물론 그렇게 매일 같이 고기를 사 먹을 돈도 없긴 하지만.

 

지난 세기의 뛰어난 아인슈타인이 지적했듯이, 꿀벌이 멸종한다면 우리 인류도 4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예언이 왜 이렇게 나는 불안하게 느껴지는 걸까. 1년 전에 읽은 마야 룬데의 <벌들의 역사>는 지구별에 벌이나 나비가 멸종되면, 그들이 하던 수정이라는 중요한 작업을 인류가 직접 해야 한다는 비극을 그린 소설이었다.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일이지만,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먹는 과일이나 모든 종류의 채소 그리고 곡식도 그들의 노고가 없다면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니란 것이다. 소설에서 사람들이 인공 수정을 위해 과실수에 매달려 붓으로 직접 수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상상만 해도 대단한 노동이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이나가키 에미코 씨의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를 읽어서 그런지 아무 생각 없이 일상에서 소비하는 전기나 잘 썩지도 않는 플라스틱 용기들에 대한 사용을 자제하고, 좀 더 재활용에 신경을 쓰자는 주장에는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이다. 좀 더 귀찮더라도 일회용 종이컵 대신 텀블러를, 비닐 봉지 대신 에코백을 사용하고, 나무젓가락 보다는 쇠젓가락을 사용해야 하자는데 누가 반대를 하겠는가. 문제는 이상과 실천 사이의 괴리다. 다른 사람의 뭘 그렇게 까다롭게 사느냐는 핀잔보다 귀차니즘이 더 문제가 아닐까. 아울러 나 하나 아끼고 줄인다고 해서 대세에 무슨 영향이냐고 묻는다면? 아니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것이 핵심이다. 나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줄여 나간다면 우리의 후손들에게 물려줄 미래의 자연이 좀 더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나의 생명이 소중하다면, 같은 지구에 사는 모든 생명들도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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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리스 (반양장) 렘 걸작선 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김상훈 옮김, 이부록 그림 / 오멜라스(웅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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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전히 절판본에 대한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한 오멜라스 그 세 번째 작품이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작품으로는 두 번째이고. 정말 <사이버리아드>와는 그 결을 달리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가 패러디와 블랙유머로 점철된 사이버펑크 시대 유머의 절정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진중하면서 묵직한 울림이 있는 주제들이 전진 배치되어 있다고나 할까.

 

인간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굳게 닫힌 문 뒤에 존재하는 어두운 미로와 비밀스런 장소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세계와 다른 문명을 이해하려고 우주로 진출했다. (222쪽)

 

이야기의 얼개는 비교적 간단하다. 거대한 원형질로 구성된 “생각의 바다”가 있는 솔라리스 행성 스테이션에 외계심리학자 주인공 크리스 켈빈이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인류는 분명히 외계 어딘가에 인류와 같은 지성을 가진 생명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우주탐사에 나섰다. 하지만 소설의 후반부에서 지적하는 대로, 우리의 내부조차도 모르는 인류가 어떻게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과 소통하는 법을 가진 미지의 외계생명체와 조우하겠다는 건지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게 없다. 아마도 우리 인류는 우리가 가진 방식대로 그들과 소통하려고 들지 않을까. 그것은 마치 19세기 제국주의가 전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 유럽 식민주의자들이 아프리카나 남미 혹은 동양에 진출하면서 자신들의 질서를 강요하던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어쩌면 인류의 우주탐험은 시작에서부터 일방적 소통 혹은 상대가 원하는 않는 방식으로의 소통이라는 난제에 봉착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솔라리스>를 읽으면서 느낀 점 하나가 이런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다른 하나는 크리스 켈빈이 솔라리스 행성 스테이션에서 경험하게 되는 기이한 접촉이 다른 하나의 축을 차지한다. 소위 그에게 ‘방문자’가 도착한 것이다. 문제는 바로 그 방문자의 정체다. 우주탐사의 모든 출발점은 지구다. 지구에서 출발한 인류가 우주비행을 거쳐 모선 프로메테우스에서 솔라리스 스테이션으로 이동하게 되는 과정인데, 켈빈이 스테이션에서 만나게 된 인물은 도저히 그곳에 있을 수 있는 존재로 바로 십 수 년 전에 죽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레야였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것은 바로 거대한 원형질의 바다가 스테이션의 과학자들이 X-선으로 생각하는 바다를 자극하면서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솔라리스의 바다가 바로 크리스 켈빈과 스노우 그리고 사토리우스들의 기억을 참조해서 ‘방문자’들을 창조해낸 것이다. 기억에 근거한 재창조(re-creation)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만들어진 진짜를 대신하는 복제된 방문자들이 스테이션의 어느 곳이라도 침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레야를 처음 만난 켈빈은 그녀를 우주선에 가두어 쏘아 올리지 않는가. 하지만 잠에서 일어나 보니 다시 자신의 곁에 와 있는 레야, 뭐 이 정도면 충분히 호러급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복제인간의 창조라는 점에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 떠오르기도 했다.

 

외부와의 교신도 없는 가운데 오로지 스노우와 사토리우스 그리고 죽은 기바리안이 남긴 자료들을 바탕으로 해서 크리스 켈빈은 130년 남짓된 솔라리스학에 대한 자료들을 정리하고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해서 잔존한 자료들이 그를 혼돈에서 해방시켜 주지 않는 것은 불문가지일 것이다. 사실 그 부분에서는 조금 흥미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2002년 스티븐 소더버그가 연출은 맡은 영화에서는 <솔라리스>가 스페이스 로맨스로 부활했다고 하는데, 원작자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런 영화가 되어 버렸다는 전언이다.

 

인간이란 그 누구도 절대로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일 내지 상황을 적든 많든 마음속에서 그리고 있는 거야. 그 생각이 순간적인 착란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광기의 산물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아. 머릿속에만 있던 그것이 어느 순간 피와 살이 되어 현실로 나타나지. 문제는 그게 전부야. (104쪽)

 

한 집단으로서의 과학자들이 공통의 목적을 위해 몇 세대에 걸쳐 헌신적으로 일해온 사실. 지적 생물과의 접촉에 대한 우리의 노력과 희망. 인류의 긴 역사와 그것이 계속될 것이라는 우리의 확신. 그리고 인류의 사명을 위해 어떠한 개인적 희생과 고난도 감수하겠다는 우리의 결의...... 당신이 의식해야 할 사항은 이런 것들이오. (227쪽)

 

켈빈은 레야가 자신이 알고 있던 과거 기억 속의 레야가 아니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현실을 부정하게 된다. 어쩌면 할리우드 리메이크 영화 <솔라리스>는 바로 이 점에 방점을 찍었던 게 아닐까. 저자는 자신이 알 수 없는 것과 조우하게 되었을 때,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그대로 소설화시킨다. 충격, 현실부정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의 수용. 레야 역시 자신이 켈빈이 사랑했던 레야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지구에서와 같은 선택을 하려고 하지만 그것도 가능하지 않다. 액체 산소를 들입다 마시지만 그녀는 죽지 않는다. 이러저러한 과정 속에서, 켈빈은 레야에 대한 새로운 감정을 생성하기에 이른다. 받아 들일 수 없다는 감정 대신, 그 사실을 수용하게 되자 켈빈은 자신이 만들어낸 감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던 걸까. 스타니스와프 렘은 정말 개인의 사적 감정으로부터 시작해서 과학자들의 윤리문제 그리고 인류의 거시적이고 근원적 질문에 이르는 방대한 컨텐츠들을 소설 <솔라리스>에서 선보이고 있다.

 

스타니스와프 렘은 외계에서 미지와의 조우한 인간이 느끼는 혼란한 감정의 바탕 위에 인류가 가진 본질적인 질문들을 수놓고 있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떻게 보면 결말에 등장한 스노우와 켈빈이 토론하는 불완전한 신에 대한 형이상학이야말로 <솔라리스>의 백미가 아닐까 싶다. 그 위에 결국 인간은 유한한 필멸의 존재라는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까지 얹는다면 화룡점정일 것이다.

 

내가 만난 스타니스와프 렘의 소설 <솔라리스>는 정말 아름답고 사유의 깊이를 더해 주는 그런 책이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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