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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리스 (반양장) ㅣ 렘 걸작선 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김상훈 옮김, 이부록 그림 / 오멜라스(웅진)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순전히 절판본에 대한 호기심으로 읽기 시작한 오멜라스 그 세 번째 작품이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작품으로는 두 번째이고. 정말 <사이버리아드>와는 그 결을 달리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자가 패러디와 블랙유머로 점철된 사이버펑크 시대 유머의 절정이라고 한다면, 후자는 진중하면서 묵직한 울림이 있는 주제들이 전진 배치되어 있다고나 할까.
인간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굳게 닫힌 문 뒤에 존재하는 어두운 미로와 비밀스런 장소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다른 세계와 다른 문명을 이해하려고 우주로 진출했다. (222쪽)
이야기의 얼개는 비교적 간단하다. 거대한 원형질로 구성된 “생각의 바다”가 있는 솔라리스 행성 스테이션에 외계심리학자 주인공 크리스 켈빈이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인류는 분명히 외계 어딘가에 인류와 같은 지성을 가진 생명체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우주탐사에 나섰다. 하지만 소설의 후반부에서 지적하는 대로, 우리의 내부조차도 모르는 인류가 어떻게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과 소통하는 법을 가진 미지의 외계생명체와 조우하겠다는 건지 그 방법론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게 없다. 아마도 우리 인류는 우리가 가진 방식대로 그들과 소통하려고 들지 않을까. 그것은 마치 19세기 제국주의가 전 세계를 지배하던 시절, 유럽 식민주의자들이 아프리카나 남미 혹은 동양에 진출하면서 자신들의 질서를 강요하던 것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어쩌면 인류의 우주탐험은 시작에서부터 일방적 소통 혹은 상대가 원하는 않는 방식으로의 소통이라는 난제에 봉착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솔라리스>를 읽으면서 느낀 점 하나가 이런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다른 하나는 크리스 켈빈이 솔라리스 행성 스테이션에서 경험하게 되는 기이한 접촉이 다른 하나의 축을 차지한다. 소위 그에게 ‘방문자’가 도착한 것이다. 문제는 바로 그 방문자의 정체다. 우주탐사의 모든 출발점은 지구다. 지구에서 출발한 인류가 우주비행을 거쳐 모선 프로메테우스에서 솔라리스 스테이션으로 이동하게 되는 과정인데, 켈빈이 스테이션에서 만나게 된 인물은 도저히 그곳에 있을 수 있는 존재로 바로 십 수 년 전에 죽은 자신의 사랑하는 아내 레야였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그것은 바로 거대한 원형질의 바다가 스테이션의 과학자들이 X-선으로 생각하는 바다를 자극하면서 발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솔라리스의 바다가 바로 크리스 켈빈과 스노우 그리고 사토리우스들의 기억을 참조해서 ‘방문자’들을 창조해낸 것이다. 기억에 근거한 재창조(re-creation)도 놀랍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만들어진 진짜를 대신하는 복제된 방문자들이 스테이션의 어느 곳이라도 침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레야를 처음 만난 켈빈은 그녀를 우주선에 가두어 쏘아 올리지 않는가. 하지만 잠에서 일어나 보니 다시 자신의 곁에 와 있는 레야, 뭐 이 정도면 충분히 호러급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복제인간의 창조라는 점에서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 떠오르기도 했다.
외부와의 교신도 없는 가운데 오로지 스노우와 사토리우스 그리고 죽은 기바리안이 남긴 자료들을 바탕으로 해서 크리스 켈빈은 130년 남짓된 솔라리스학에 대한 자료들을 정리하고 읽어나가기 시작한다. 그렇다고 해서 잔존한 자료들이 그를 혼돈에서 해방시켜 주지 않는 것은 불문가지일 것이다. 사실 그 부분에서는 조금 흥미가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2002년 스티븐 소더버그가 연출은 맡은 영화에서는 <솔라리스>가 스페이스 로맨스로 부활했다고 하는데, 원작자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그런 영화가 되어 버렸다는 전언이다.
인간이란 그 누구도 절대로 실현될 가능성이 없는 일 내지 상황을 적든 많든 마음속에서 그리고 있는 거야. 그 생각이 순간적인 착란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광기의 산물인지는 문제가 되지 않아. 머릿속에만 있던 그것이 어느 순간 피와 살이 되어 현실로 나타나지. 문제는 그게 전부야. (104쪽)
한 집단으로서의 과학자들이 공통의 목적을 위해 몇 세대에 걸쳐 헌신적으로 일해온 사실. 지적 생물과의 접촉에 대한 우리의 노력과 희망. 인류의 긴 역사와 그것이 계속될 것이라는 우리의 확신. 그리고 인류의 사명을 위해 어떠한 개인적 희생과 고난도 감수하겠다는 우리의 결의...... 당신이 의식해야 할 사항은 이런 것들이오. (227쪽)
켈빈은 레야가 자신이 알고 있던 과거 기억 속의 레야가 아니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현실을 부정하게 된다. 어쩌면 할리우드 리메이크 영화 <솔라리스>는 바로 이 점에 방점을 찍었던 게 아닐까. 저자는 자신이 알 수 없는 것과 조우하게 되었을 때,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것들을 그대로 소설화시킨다. 충격, 현실부정 그리고 마지막 단계에서의 수용. 레야 역시 자신이 켈빈이 사랑했던 레야가 아니라는 점을 알고, 지구에서와 같은 선택을 하려고 하지만 그것도 가능하지 않다. 액체 산소를 들입다 마시지만 그녀는 죽지 않는다. 이러저러한 과정 속에서, 켈빈은 레야에 대한 새로운 감정을 생성하기에 이른다. 받아 들일 수 없다는 감정 대신, 그 사실을 수용하게 되자 켈빈은 자신이 만들어낸 감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던 걸까. 스타니스와프 렘은 정말 개인의 사적 감정으로부터 시작해서 과학자들의 윤리문제 그리고 인류의 거시적이고 근원적 질문에 이르는 방대한 컨텐츠들을 소설 <솔라리스>에서 선보이고 있다.
스타니스와프 렘은 외계에서 미지와의 조우한 인간이 느끼는 혼란한 감정의 바탕 위에 인류가 가진 본질적인 질문들을 수놓고 있다. 도대체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어떻게 보면 결말에 등장한 스노우와 켈빈이 토론하는 불완전한 신에 대한 형이상학이야말로 <솔라리스>의 백미가 아닐까 싶다. 그 위에 결국 인간은 유한한 필멸의 존재라는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까지 얹는다면 화룡점정일 것이다.
내가 만난 스타니스와프 렘의 소설 <솔라리스>는 정말 아름답고 사유의 깊이를 더해 주는 그런 책이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