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남 오빠에게 (어나더커버 특별판)
조남주 외 지음 / 다산책방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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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전에 도서관에 다른 책을 빌리러 들렀다가 신간 코너에서 이 책을 보고 바로 빌렸다. 그 때 앤디 위어의 <아르테미스>도 빌렸는데 두 책 모두 재밌어서 만족했다. 흠, 잘 선택했군. 아 그리고 <현남 오빠에게>의 마지막 주자의 글도 화성 이주를 주제로 다룬 게 아니었던가. 어떤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군.

 

페미니즘 소설을 표방하는 7인의 작가들이 쓴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는 처음 세 편의 소설은 흥미로웠지만, 나머지 작가들의 소설들은 그닥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소설과 관계가 있나 싶었다. 손보미 작가의 <이방인>은 작가 특유의 스타일과 개성을 갖추긴 했지만, 전통적 서사에서는 좀 멀리 나가지 않았나 싶다. 솔직히 그냥 그랬다. 무언가 아싸라한 그런 결말을 기대했지만, 파트너의 희생으로 다시 경위로 복귀한다는 내용 정도 밖에는 잡아내지 못한 나의 무력함을 탓해야겠지.

 

구병모 작가의 히파티아의 끔찍한 최후를 결말에 도치한 <하르피아이와 축제의 밤>에서는 작가의 전작 <빨간구두당>의 반복 변주가 아닌가 싶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일년에 하루 공식적인 폭력행사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겠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의 영화 <퍼지>가 연상되기도 했다. 원래 서양에서 유래한 카니발의 사회적 기능이 그런 게 아니었던가. 인간의 잠재되어 있는 폭력성을 긍정적 방향으로 유도하겠다는. 우리 사회에서도 할로윈 같이 상업적으로 순화된 이벤트를 따라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일부에 국한된 일이라 나의 관심 밖이다. 고립된 섬에 오천만원이라는 상금을 받기 위해 여장 남자 코스프레를 하고 참가했다가 인간사냥을 당한다는 끔찍한 악몽으로 끝나는 이야기에서는 딱 꼬집어서 뭐라할 수 없는 그런 기시감이 들었다.

 

막판에 ‘너랑 결혼하기 싫다고 이 강현남 이 개자식아’라는 선언으로 끝나는 표제작에 대해서는 읽는 동안 대충 어떤 식으로 결말이 나게 될지 빤한 느낌이 들었다. 아마도 나는 텔레비전에서 이미 충분히 막장드마라의 얼개와 전개양식을 충분히 습득했고,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사건사고가 연달아 벌어지는 드마라공화국에서 다년 동안 산 경험의 산물인 모양이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화자는 왜 십년 동안 그 지긋지긋한 현남오빠에게 매달려 살았을까. 자신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청춘을 그지 같은 개자식에게 투자했는지 이성으로서는 도저히 알 도리가 없다. 그것에 사랑이라는 레테르를 붙여야 하나 싶다. 그랬다면 그 개자식은 너무 뻔뻔하고 양심도 없는 놈이라고 매도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세상에 어째 그런 일이! 이야기에서 가장 놀란 지점은 바로 화자가 개자식의 감시에서 탈출해서 감행한 일탈이 고작 영화관 침투였는데, 얼마 뒤 그 개자식이 바로 자기 옆에 가만 앉더라는 진술이었다. 나라면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그런 개자식과 결별했을 텐데. 도대체 그 누가 타인의 삶을 구속하고 결정할 권리가 그 개자식에게 주었단 말인가! 생각할수록 열불이 나네 이거. 늦게라도 개자식으로부터 탈출해서 자신의 살게 된 이에게 박수를. 그나저나 제목을 왜 <노모어 굿바이 개자식아>라고 하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표제작의 제목으로는 너무 쎄서 그랬을까.

 

<쇼코의 미소>라는 단편집으로 기대를 모은 최은영 작가의 <당신의 평화>도 재밌게 읽었다. 남편과 결혼한 게 아니라 남편과 부부생활을 하는 시어머니의 몸종으로 들어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화자 유진의 어머니 정순. 이제 아들 준호의 며느리를 보게 된 정순은 고깝던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해마다 외식하던 남편 생일날 굳이 자신이 직접 상을 차리겠다고 하면서 사단이 벌어진다. 아 왜 난 이렇게 갈등이 폭발하는 순간들이 그렇게 반가운지 모르겠다. 하긴 모든 것이 준비된 마당에 아무 일도 없이 그냥 넘어가면 섭섭하겠지 안그래? 이렇게 겉으로는 보기 좋은 날, 누군가 나서서 밥상 정도는 가볍게 뒤집어엎어 주어야 썰이 풀릴 테니까. 우리 선수끼리 왜 그래.

 

시대가 바뀌면 사람도 바뀌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사람의 전형을 유진의 엄마 정순은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러니 절로 한숨이 날 수밖에. 세태에 빠른 준호는 이미 미래의 잘난 와이프 유학생 출신 박사님 선영에게 투항했고, 대세는 이미 끝났는데 홀로 격투장에서 부엌칼과 도마로 무장한 정순만이 외롭게 저항을 계속하고 있는 그런 형세였으니, 그런 엄마의 곁을 떠나 행복한 미래를 꾸릴 유진에게 다시 한 번 박수를.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고 충격적으로 만난 작품은 바로 김이설 작가의 <경년>이었다. 모범생 아들 세훈과 아이돌에 빠진 딸 세은을 둔 중년 부인이 주인공이다. 문제는 모범생 세훈이 사랑도 없이 또래 아이들과 섹스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사실이다. 아니 겨우 중학교 2학년 짜리가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학업이 주는 스트레스 해소로 섹스를 한다니! 그야말로 놀랄 노자가 아닐 수 없었다. 요즘 세태가 그런가?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더욱 놀라운 건 그나마 양심이 남아 있던 엄마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을 두둔하면서 상대 여자들을 비난하는 아빠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딸에게 적용시켜 보라는 말에는 끔찍하다며 일갈하는 모습은 이중성 그 자체였다. 아들은 괜찮고, 자신의 귀한 딸은 안된다라는 그야말로 희극을 보는 듯한 가부장제에 몰입된 그의 모습이 성공신화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전사 부모들의 모습에 연상됐다. 세훈 엄마는 그나마 자신의 아들이 미래에 내달릴 성공가도에서 이런 스캔들이 빚어낼 비극의 전주곡을 예감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페미니즘 소설집을 표방하는 <현남 오빠에게>를 읽으면서 왜 이렇게 자꾸만 다른 영화들이 무시로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어떤 장면에서는 <블레이드 러너>의 고독한 레플리컨트 사냥꾼 데커드가 떠오르기도 했고, 화성에 가서 삼시세끼를 마련하는 맷 데이먼이 연상되기도 했다. 첫 세 작품에서는 늘상 우리 소위 막장드라마 혹은 예능을 가장한 리얼리티 쑈가 떠올랐다. 결론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고나 할까. 서사보다 스타일에 집착하는 모호한 소설에서는 길을 잃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내로라하는 작가들을 앞세운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하니 무언가 공통적인 게 있지 않을까 하고 억지로 이음새를 맞춰 보려고 해도 별무소용이더라. 그냥 각각의 이야기들을 즐기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까. 그래서 더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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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급행열차
제임스 설터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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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설터의 팬이다. 그가 평범한 삶에서 잡아내는 미세한 균열에 대한 포착이 담긴 서술을 너무나 좋아한다. 그의 책은 소설집 <어젯밤>으로 처음 만났다. 정말 몇 번을 읽어도 새로 읽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작가 중의 작가라는 별명이 그냥 붙여진 게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가벼운 나날들>, <올 댓 이즈>, <사냥꾼들>을 비롯한 그의 전작 읽기를 올해 목표 중의 하나로 삼았는데 우선 두 번이나 도전했다가 <스포츠와 여가>부터 다시 읽어야지 싶다. 읽다마 만 곳부터 읽어야할지 아니면 다시 처음부터 읽어야할지 조금 고민 중이다.

 

지금으로부터 딱 30년 전에 나온 제임스 설터의 <아메리칸 급행열차>에는 모두 11개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아마 우둔한 독자의 엉터리 독서 덕분인진 모르겠지만, 삶의 균열을 포착하는 대가이자 실패한 시나리오 작가의 내러티브는 정말 모호했다. 풋내기 변호사들로 자신들이 맡은 사건을 정말 그 누구보다 열심히 연구하지만, 의뢰인을 위해 법정에서 싸운 게 아니라 자신들의 물질적 성공을 위해 사건을 들고 독립하겠다는 선언에 주인공의 아버지는 기겁한다. 성실과 신의를 어기고서 변호사 업계에서 어떻게 업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사소한 문제 따위는 나몰라라고 하고 유럽으로 건너가 중년의 일탈을 즐기는 친구들, 그들의 자신감에서 권력의 최정상에까지 올라갔다가 한없는 나락으로 추락한 어느 정치인과 그의 지기 생각이 났다. 물론 설터 답게 고리타분한 설교 따위는 늘어 놓지 않아서 마음에 들긴 했지만.

 

그리고 다음은 표지. 국내에 출간된 모든 제임스 설터 작가의 책을 한 작가가 그린 표지 그림으로 통일하는 뚝심을 보여주는 출판사의 기개를 높이 사서 별점 하나를 차감했다. 작가가 소설에서 흐르는 시간의 차감하는 뛰어난 기법을 보여 준다면, 이름도 모르는 화가의 표지를 고집하니 별을 하나 떼지 않을 수 없구만. 사실 <사냥꾼들>에서 드디어 다른 작가의 표지를 기대했지만 그조차도 의뢰를 했는지 어쨌는지 전투기 그림도 있어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작가는 픽션을 구성하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자신이 체험한 이야기들을 소설로 만들어내는 것도 기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군인의 길 대신 화가의 길을 걷게 된 군인동료 사관 생도들에게 왕따를 당하는 이야기를 그린 <잃어버린 아들들>을 보자. 우리의 육사도 그렇지만 미국 엘리트 군인을 상징하는 웨스트포인트의 이야기도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하긴 누구는 전투기 조종을 하다가 소설가가 된 양반도 있었지. 왠지 전장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게 된 병사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는 나의 예상과는 달랐다.

 

실패한 영화 시나리오 작가가 쓴 단편 소설 <영화>는 어떤가. 연기 실력이 전혀 갖춰지지 않은 인기 남자배우를 기용해서 달달한 러브 스토리를 만들려는 구상은 시대가 지나도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누구나 안토니오니나 펠리니 같은 거장과 함께 영화사에 길이 남을 그런 영화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영화인들의 꿈이 아닐까. 이미 이순을 넘긴 나이에 설터 작가는 어쩌면 그땐 그랬지 하는 심정으로 엎어진 영화 제작의 이야기를 소설화했던 게 아닐까.

 

<20분>은 낙마해서 임종을 앞둔 어느 여성의 이야기다. 극도로 리얼리즘을 만나는 장면들, 난 작년에 읽은 애니 프루의 단편집 <브로크백 마운틴>이 바로 연상됐다. 아마 그 책에 실린 소설에서도 말에서 죽어가는 이야기가 나오지 싶었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말에서 떨어진 다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시간이 고작 20분이라는 것이다. 그 짧은 시간 동안에 생과 사, 세상 모든 인간이 가는 길이 뒤바뀔 수 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소설의 주인공을 구한 이들이 멀리 떨어진 병원이 아니라 인근에서 동물이고 사람을 제일 잘 돌보는 수의사에게 데려갔다고 해서 인생이 바뀌었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시 한 번 대가의 작품에도 편차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 실례를 설터의 <아메리칸 급행열차>를 통해 만날 수가 있었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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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페퍼 - 아내의 시간을 걷는 남자
패드라 패트릭 지음, 이진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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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요크 지방의 손애플이라는 자그마한 마을에 아서 페퍼라는 은퇴한 열쇠 수리공이 살았다. 50년도 넘게 열쇠 수리공으로 일한 아서는 1년 전에 자그마치 40년 동안 결혼생활을 함께 한 아내를 잃고 실의에 빠져 있다. 그러던 아서가 어느날, 앞으로 나가기 위해 아내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에 여덟 가지 요색영롱한 참(charm) 팔찌를 부츠 속에서 발견하면서 진정한 자아 찾기에 나서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된다.

 

소설은 물론 재미었다. 평생 빠듯한 가계를 운영하기 위해 돈만 버느라 자녀들인 댄과 루시의 양육은 모두 아내 미리엄이 책임졌었다. 그러니 부모와 자식 간의 사이가 좋을 리가 있나 그래. 심지어 댄과 루시는 미리엄의 장례식에 참가하지도 않았다. 이런 상황이니 외부와 고립된 삶을 지속하던 아서 할아버지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듯 싶다.

 

그러나 세상은 그를 가만 놔두지 않았다. 특히 이웃의 버나뎃은 각종 빵과 케익을 구워 줄기차게 아서와 같은 실패자들을 찾는다. 매사가 귀찮았던 아서는 처음에는 매몰차게 버나뎃의 성의를 거절하지만 외아들 네이단과 대학 진학을 위한 스쿨 투어를 하면서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다. 거의 평생을 규칙적으로 살아온 아서에게 그가 참 팔찌와 여행하면서 만나게 되는 상황들은 하나 같이 이해불가다. 그러니 나중에 그나다 자신을 잘 이해해 주던 루시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을 때, 사랑하는 딸조차 아빠가 맛이 갔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

 

어쨌든 아서가 미리엄의 참 팔찌를 들고 추적에 나선 미스터리물은 흥미진진할 수밖에 없다. 어느 순간, 같은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대히트를 기록했던 <오베>가 생각나기도 했다. 빡빡한 세상에 자기계발서도 더 이상 독자들에게 먹히지 않는 마당에 독자들의 심금과 돈주머리를 열 수 있는 비결을 발견이라도 한 걸까. <오베>도 그랬지만, 비교적 빤한 스토리가 진행된다는 건 잘 알면서도 책장은 수월하게 쉭쉭 넘어간다.

 

물론 팔찌 추적의 실마리들이 군데군데 끊겨 보일 때도 있었지만, 작가가 잘 개입해서 부드럽게 연결해준다. 그게 바로 작가의 실력 아니겠는가. 그리고 바로 영화판권(당연한 수순이려나)도 팔려서 영화로도 만들어진 전망이라고 한다. 요런 슈가 크림을 담뿍 바른 소설이 영화가 되지 않는다면 좋은 시나리오에 눈이 먼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정망 장님일런지도.

 

어쨌든 아서 페퍼 씨의 팔찌 추적은 저 멀리 인도 고아에서 한 때 아야(유모)로 활동했던 미리엄의 과거로부터 시작해서, 저명한 휴양지 배스에서 암호랑이들을 키우는 몰락한 그레이스톡 경(아서는 이 에피소드로 퉁명한 청년 네이단에게 호랑이 아저씨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의 하렘에서 미리엄이 몸담은 적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고, 한 때 잘 나가던 저자 드 쇼펑의 뮤즈였다는 비밀까지도 알게 된다. 가장 재밌는 사연 중의 하나는 바로 미리엄이 친구였지만 비극적 사연을 알고 있던 소니 야들리 씨를 찾아 갔다가 회화과 대학생들의 누드 모델이 된다는 설정이었다. 이 장면에서는 문득 엉뚱하게도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떠오르르기도 했다.

 

복잡한 런던 지하철을 타기 위해 친절해 보이는 청년에게 말을 걸었다가 순식간에 소매치기를 당하기도 한다. 물론 한때 마약 중독자였지만 갱생해서 거리의 플루티스트로 활동하는 마이크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말해서, 참 팔찌의 비밀이 풀리는 순간까지 우리의 소영웅 아서 페퍼 씨는 추리와 추적을 그만 두지 않을 기세다. 그 뒤에 기다리는 비밀이 아무리 자신이 받아 들일 수 없는 그런 가혹한 것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결말은 역시 책의 표지에 잘 나와 있다. 영국 런던을 상징하는 빅벤과 파리의 상징물 에펠탑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도의 타지마할이 등장하지 않는가. 단 한 장의 이미지만으로도 소설이 지향하는 바를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는 점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리고 결국 모든 것을 감싸 주는 것은 바로 가족일 수밖에 없더라는 간단한 삶의 진실에 도달하게 된다.

 

수많은 클리셰이들이 넘실대는 아서 페퍼 씨의 모험이었지만 정말 재밌었다. 패드라 패트릭 작가가 다음에는 또 어떤 이야기로 독자들을 찾아오게 될지 자못 궁금할 수밖에 없다. 반복 혹은 정체 아니면 기대 이상의 진격일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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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급행열차
제임스 설터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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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라고 해서 모든 작품이 좋을 수 없다는 걸
<아메리칸 급행열차>가 입증해 주었다.
설터의 팬으로 그의 작품을 꾸준하게 읽었다는 것으로 만족하련다.
표지 뚝심에 박수를 보낸다, 짝짝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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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1-20 21: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에 별점 두 개를 준 레샥매냐님의 리뷰를 처음 봅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레샥매냐님 리뷰 중에서 제일 낮은 별점이 세 개였어요. ^^

레삭매냐 2018-01-20 21:34   좋아요 0 | URL
다른 작품에 비해 수준 이하여서 원래 별 세 개였고, 책의 내용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화가의 표지 뚝심을 높이 사서 하나 더 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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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테미스
앤디 위어 지음, 남명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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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비트코인 붐이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는 중이다. 88세대를 넘어 78세대 그리고 실업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심각하다는 뉴스에 너도나도 그리고 20-30대 젊은이들조차 가상화폐 투기장에 뛰어 들고 있다는 소식이 우울하기만 하다. 결국 냉혈한 자본주의 시스템은 신분제 사회로 고착되고 마는 걸까하는 상상이 끔찍하기만 하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신분상승을 이룰 수 없는 사회에 대한 초상이라고 해야 할까. 앤디 위어의 달나라 이야기 <아르테미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26세 처녀 재즈 바샤라는 용접공의 딸로 달나라 도시 아르테미스에 거주 중이다. 지구별도 마찬가지겠지만, 달나라 역시 그녀의 표현에 의하면 부자놈들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본으로 온갖 향락을 누리지만, 가난뱅이 노동자들은 관처럼 생긴 숙소에 살면서 겅크라는 형편없는 음식으로 끼니를 때우는 게 고작이다. 소설에서는 재즈가 수학 천재라고 하는데, 과학에 전혀 지식도 없고 관심도 없는 문학 소비자로서는 알 바 아닌 듯 싶어서 건성으로 건너 뛰면서 읽었다. 그리고 보니 앤디 위어의 전작 <마션> 영화에 등장한 비과학적인 기술을 지적한 이들도 있었지 아마. 존경하는 바이다. 아, <마션>에 대한 한 줄 평으로 <화성판 삼시세끼>를 명명한 이에게도 이 자리를 빌어 한조각의 존경심을 격하게 날린다.

 

한 2,000명 정도의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달나라 도시 아르테미스에서는 사람들이 기즈모라는 장비를 가지고 다니며 슬러그라는 가상화폐를 사용한다고 한다. 어디나 그렇듯 사람사는 곳에서라면 상품과 용역의 교환을 위한 화폐가 필요하기 마련이다. 아니 그런데 아르테미스에서는 그런 화폐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공기다. 진공 상태의 달나라에서 인간이 생존하려면 공기가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닌가. 그런데 이 공기는 산체스 알루미늄에서 수확기로 채굴한 달나라 광석을 알루미늄으로 만드는 과정에서 거의 무한정으로 산출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대가로 산체스 알루미늄은 달나라 도시를 운영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의 80%를 거의 무상으로 사용하다시피 한단다. 이거 정말 수지 맞는 사업이 아닌가.

 

특히나 자본주의 사회의 특징인 독점 사업인 마당에야. 노르웨이 출신 갑부 사업가 트론 란비크라는 작자가 아르테미스의 밑바닥 업종인 짐꾼이자 밀수꾼 재즈를 고용해서, 산체스 알루미늄의 수확기 네 대를 뽀사 버리고 그동안 잉여로 쟁여둔 산소를 가지고 사업을 독점하려는 기획에 나서면서 문제가 생긴다. 다시 말해 기똥찬 범죄 프로젝트가 아닌가. 특히 416,922 슬러그가 반드시 필요한 재즈에게 강렬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까 재즈는 자신이 목표하는 슬러그를 벌기 위해 달나라 도시 아르테미스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을 그런 가공할만한 범죄에 뛰어든 것이다.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조금 빤하다. 원대한 범죄를 기획한 사업가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에게 살해당하고, 재즈 역시 범인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단순하게 브라질 범죄집단이 가세한 산체스 알루미늄의 사업을 방해했다는 이유 말고도, 달나라에서만 만들 수 있는 정보 통신업계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광섬유 케이블 ZAPO까지 얽힌 그런 방대한 스케일의 이야기가 가속을 붙인다. 게다가 무중력 상태의 달나라에서 벌어지는 액션 활극을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전작 <마션>의 대성공으로 아마 분명 <아르테미스>도 곧 영화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번에 아랍계 매력적인 여주인공으로는 누가 캐스팅이 될 지 궁금하다. 반항적이면서도 수학 천재라는 뚜렷한 개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냉소적인 유머 감각도 탁월해야 한다는 조건이 수반된다. <마션>에서는 맷 데이먼이 모든 걸 다 해냈다면, 이번에는 재즈 바샤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니 과연 스페이스 오딧세이에 버금갈 만한 그런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지구별에서 이식된 재산 정도에 따른 계급 사회가 범우주적으로 확산된다는 점도 딱히 마음에 드는 상황은 아니다. 산소와 중력이 없는 달나라에 세금과 경찰력과 같은 국가적 통제가 없는 무정부적인 상태로 출발했다는 설정은 좋았지만, 도시가 성장하고 도시 사람들의 복지를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각종 규제와 세금이 필요하다는 역설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행정 규제 같은 행위들은 없을지 몰라도, 우주를 관통해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부의 축적을 위한 인간의 욕망의 신기루를 본 것 같은 기시감에 씁쓸해졌다.

 

어쨌든 소설은 재밌었다. 영화는 언제 나오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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