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부터 혁명을 읽고 있다. 아주 오래 전, 정말 오래 전에 읽다가 아마 완독하지 못했던 에드가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을 지난 일요일 헌책방에 달려가서 사왔다. 제법 분량이 있는 책이었는데(정말 두툼했다) 아무래도 예전에 읽었던 기억이 있는지 술술 잘 읽혔다. 다만, 다른 책들이 속속 등장해서 일단 잠시 읽기를 멈추고 있는 상황이다.
1936년 장제스의 백군, 다시 말해 국민당군의 추적을 피해 대장정 끝에 산시성의 바오안에 자리잡은 홍군 사령부를 미국 캔자스 출신의 젊은 저널리스트 에드가 스노는 쑨원의 부인 쑹칭링의 소개장 하나만 달랑 들고 찾아 들었다. 당시 서북 지역의 중화 소비에트 담당은 만주 군벌 출신의 청년 원수 장쉐량이었는데 이미 중국을 침략 중이던 외세 일본에 대항하기 위한 두 번째 국공합작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몇 달 뒤 시안사건으로 구체화 되기에 이른다.
첫 번째 국공합작은 장제시의 친위쿠데타로 비극으로 끝났고, 장제스가 통치하는 중국에서 공산당은 외세에 앞서 박멸해야 하는 척결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층 엘리트 계급의 견해였고, 인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 계급에서는 마오 쩌둥이 이끄는 홍군이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었다. 훗날 그 사람들은 자기 계급의 이익을 대변할 거라고 생각했던 독재자가 자신들을 절대적 빈곤과 기근의 수렁에 빠트릴 줄 예상이나 했을까.
어쨌든 외국인 저널리스트로서는 백군의 봉쇄선을 뚫고 적도 바오안에 도착해서 저우언라이와 마오 쩌둥 등 장제스 군대가 어마어마한 현상금을 내건 이른바 공산 비적 수괴들과 다수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꿈꾸는 공화세계, 민족해방 그리고 동아시아 질서의 개편 등 같은 당시 그들에게는 그야말로 꿈만 같았던 이야기들을 글로 옮겼다. 이 정도까지가 다시 읽기 시작한 <중국의 붉은 별>에 대한 맛보기다.
다음 차례는 조선공산당에 대한 이야기다. 어제 도서관에 책을 반납하러 갔다가 우연히 훑어본 신간 코너에서 최백순 씨가 지은 <조선공산당 평전>을 냉큼 빌려왔다. 그렇지 않아도 궁금하던 차에 이게 왠 떡이란 말인가. 아니 그런데 보통 평전이라는 한 개인에 대한 전기물이 아니었던가. 공산당집단에 대한 평전이라니. 해방된 남한과 북한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한 일제시절 실질적인 독립운동을 담당했던 조선공산당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평전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아직 처음에 등장하는 관련단체와 인물들 편만 읽어 봐서 사실 그다지 할 말이 많은 건 아니다. 한 때, 역사를 전공했던 일개 독자가 그나마 조금이라도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최근 영화를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된 약산 김원봉 선생, 심산 김창숙 선생 정도. 그리고 나중에 남부군으로 알려진 경성콤 그룹의 이현상을 비롯한 이관술, 김삼룡이 있다.
어제인가 어느 신문에서 브루스 커밍스가 저술한 <한국 전쟁의 기원>에 대한 글을 보면서 일제가 1931년 만주를 침략하면서 세운 만주국이야말로 한국 전쟁의 시발점이었는 평가를 읽었다. 일제 하에서 최고 엘리트였던 군인으로 만주에서 활동하던 친일부역자들과 그들을 상대로 독립운동을 전개하던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자 출신 독립운동가들은 그야말로 같은 하늘을 지고 살 수 없는 천하의 원수들이었다는 것이다. 해방 공간 남한에서 주도권을 잡은 그런 친일파들을 독립운동가들은 어떤 시선을 보았을까. 한국의 근대화를 주도한 어느 독재자에 대해 공은 공대로, 그리고 과는 과대로 평가하자고 하는데, 그들의 주장대로 하자면 일제시대 무장독립투쟁을 주도했던 독립운동가들에게도 같은 잣대를 견주어야 하지 않을까.

자, 혁명을 읽는 시간의 마지막은 최근 방중 중에 충칭 임시정부 청사를 최초로 방문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기록된 문재인 대통령이 베이징대 강연에서 언급한 김산의 일대기를 다룬 님 웨일즈의 <아리랑>이다. 사실 이 책도 예전에 대학 시절 선배에게 선물을 받았나 어쩌나 하는 경로를 통해 알게 되었다. 아마 인천집 옥상 어딘가에 이 책을 읽을 것이다. 나의 <녹슬은 해방구>와 함께. 그렇지 않아도 이 책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던 차에 어제 들른 헌책방에 오늘 들어온 책 카트에 이 책이 실려 있는 게 아닌가. 게다가 작년에 나온 책이라 컨디션도 아주 좋았다. 원래 사려고 마음먹었던 책을 살포시 내려놓고 대신 이 책을 집어 들었다.
에드가 스노의 전처로 알려진 님 웨일즈가 1937년 옌안에서 만난 조선대표 김산의 본명은 장지락으로, 평북 용천 출신으로 그야말로 불꽃같은 삶을 살 간 혁명가로 나는 기억하고 있다. 500쪽 남짓한 책인데, 단박에 100쪽을 읽어 버렸다. 구한말 태어나 서러운 식민지 백성으로 자라난 혁명가 장지락은 그 시절 대부분의 혁명가들처럼 3∙1운동을 계기로 제국주의 지배에 시달리는 조국의 현실을 깨닫고 혁명의 길에 나서게 된다. 원래 크리스천이었던 장지락은 평화적 운동으로는 일제의 무자비한 통치를 끝낼 수 없다는 각성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세계열강 그 중에서도 미국의 윌슨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에 입각한 호혜적 선의를 기대했지만, 다 부질 없는 짓이었다는 것이 곧 밝혀지지 않았던가.
나머지 부분은 아직 못 했지만, 일본 유학을 거쳐 중국에 귀화해서 중국공산당원 자격으로 광둥코뮌과 중국 최초의 소비에트였던 하이루펑 소비에트에서 살아남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서론 부분에서 조선과 중국 그리고 일본의 인민들이 대오각성하게 될 날을 기대한다고 구술하였는데, 전형적인 코민테른에 입각한 이상주의적 발언이 아니었나 싶다. 이미 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과 프랑스의 사회주의자들이 보여준 대로, 계급의 이익보다 우선 민족주의 전쟁의 실체를 보지 않았던가. 물론 당대의 한계일 수도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이상적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풍운아 장지락은 33세의 젊은 나이에 님 웨일즈과 인터뷰한 다음 해인 1938년 공산당 보안책임자였던 캉성에 의해 트로츠키파 스파이로 몰려 억울하게 처형을 당했다. 중국공산당에서 훗날 복권되었고, 우리나라에서도 2005년 건국훈장이 추서되었다.
이제 대한민국 건국 100년이 480일 남았다. 부족한 글로나마 자랑스러운 조국의 별이 된 이들을 추모해 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