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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루냐 찬가 ㅣ 비꽃 세계 고전문학 10
조지 오웰 지음, 김옥수 옮김 / 비꽃 / 2017년 3월
평점 :

전직 대통령을 실명 칼럼으로 비판한 삼성출신 언론장학생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긴 했어도 경향신문을 펼치니, 글쓰기에 대한 어느 칼럼니스트의 글이 눈에 들어왔다. 글쓰기로 타인의 생각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는 매력적 유혹, 그리고 보니 어쩌면 글쓰기 자체가 혁명일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나도 이렇게 책 읽고 열심히 리뷰를 쓰는게 아닐까. 그런 점에서 꽤 오래 전에 혁명가로 직접 전쟁터에 나서서 실천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보여준 대선배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조지 오웰. 세계 3대 르포문학으로 꼽히는 <카탈루냐 찬가>를 드디어 읽게 됐다.
대공황 이래 전 세계적 현상이었던 파시즘의 확산을 막고, 한 명의 파시스트라고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본명 에릭 아서 블레어)은 스페인 내전에 민병대원으로 참전했다. 스페인 내전은 파시즘에 반대하는 세력의 최전선이었다. 그동안 피상적으로만 봐오던 스페인 내전에 대해 현장에서 직접 기술한 글을 바탕으로 재구성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전선에 투입된 무정부주의 성향의 통일노동자당(P.O.U.M.;Partido Obrero de Unificación Marxista, Workers' Party of Marxist Unification 번역하면서 막시스트라는 표현을 빼서 그렇지 실제적으로 공산당 분파가 아닐까 추정된다) 소속 조지 오웰이 포함된 부대의 무서운 적은 전선에서 대치한 프랑코 파시스트 부대가 아니었다. 보다 무시무시한 적은 추위와 굶주림이었다.
저자가 들려주는 우에스카를 중심으로 한 아라곤 전선의 현황은 참담했다. 파시스트 우방 독일과 이탈리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프랑코 군대에 비해 스페인 인민전선을 지탱하는 민병대원들의 무장은 형편없었다. 소총은 물론이고 기관총이나 야포 같은 중화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장비는 물론이고 훈련도 제대로 되지 않은 민병대원들이 자신들의 자랑스러운 스페인 공화국을 파시스트로부터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비록 오합지졸 부대였지만 전선에 투입된 것이다.
한편, 발렌시아 정부를 사실상 장악한 공산당은 내전 초기의 혁명적 상황이 지속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고 조지 오웰은 쓰고 있다. 가장 혁명적이어야 할 공산당이 특히 가장 혁명적이고 내전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던 무정부주의자들을 트로츠키주의자로 파시스트라는 억울한 누명을 씌워 탄압하지 않았던가. 그 바탕에는 러시아 스탈린의 군사원조가 있었다. 영국이나 프랑스 역시 스페인 공화국을 지키기 위해 일어선 무정부주의자들의 움직임에 동조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발렌시아 정부가 내전에서 이기기 위한 정부차원의 군사원조를 할 리가 없었다. 오로지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만이 스페인을 원조했고, 그 원조의 후광을 업은 공산당이 실제적인 스페인 공화국의 지배자로 나서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역설적이게도 공화파는 점점 더 혁명적 성격을 상실하고, 그저그전 부르주아지 국가로,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대변하는 인민군이 되어 버렸노라고 증언한다.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는 크게 세 장으로 분류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조지 오웰이 직접 115일 동안 아라곤 전선에서 싸운 이야기, 두 번째는 바르셀로나 시가전에 대한 육성증언 그리고 마지막은 다시 투입된 전선에서 목에 관통상을 입고 후송되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는 과정으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자고로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듯이, 스페인 내전 당시에도 같은 좌익이지만 무정부주의자 그룹과 사회주의자 계열의 공산당은 적군보다 서로에게 총질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에 앞서, 조지 오웰은 스페인의 특성상 프랑코 군대와의 내전에서 승리하더라도 필연적으로 파시즘 성격을 지닌 독재 정치가 만연할 것이라는 예언을 하지 않았던가. 결과는 프랑코 군대의 승리로 역사를 수십 년 뒤로 퇴행시키는 결과를 가져 오긴 했지만 말이다. 한 때 전세계를 호령하던 스페인 제국이 지금도 유럽의 주변부 신세로 전락한 건 어쩌면 스페인 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게 아닐까 싶다.
다시 1937년 5월의 바르셀로나 시가전 당시로 돌아가 보자. 애초부터 무정부주의자 그룹과 공산당의 극한 대립으로 머지않아 무슨 일이 벌어질 거라는 것을 모두가 예측하고 있던 상황이었다. 발렌시아 정부의 본격적인 탄압이 시작되진 않았지만, 무장 치안대가 무정부주의자들의 관할권 아래 있던 전화 교환국 건물을 공격하면서 시작된 시가전은 결국 대규모 유혈사태를 불러왔다. 전선에서 멀어질수록 서로 화해할 수 없는 두 그룹 간의 갈등은 커졌다고 조지 오웰은 증언한다. 아니 공동의 적인 프랑코 군대를 앞두고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이유로 단합해서 투쟁에 나서도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불구대천의 원수마냥 후방에서 서로에게 총격을 가하는 장면을 읽다 보니 정말 어이가 없었다. 한 때 혁명그룹이 우세를 보이지만, 모든 면에서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공산당이 반격에 나서면서 혁명세력은 처절한 패배를 경험하게 된다.
짧은 휴가를 마치고 전선으로 복귀한 조지 오웰은 또 한 번 달라진 부대의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빈민과 노동자를 위한 부대였던 민병대에 29사단이라는 인민군 편제가 따라붙고, 일반병사와 장교들 사이에도 계급의식이 도입되는 등 일반 부르주아지 군대와 다를 게 없더라는 것이었다. 어쩌면 혁명기 스페인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 아니었을까. 그러다 결국 목에 관통상을 입고 후방으로 후송되어 제대하기에 이른다. 우여곡절 끝에 제대증을 받고 돌아온 바르셀로나에서는 정부에 의해 불법집단으로 규정된 통일노동자당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과 체포, 약식처형이 자행되고 있다는 비극적 현실을 접하게 된다. 아마 당시 이런 현실을 바탕으로 공산주의에 대한 환멸을 느끼게 된 조지 오웰이 훗날 <동물 농장>을 쓰게 된 배경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조지 오웰과 아내 아일린은 극적으로 공산당이 대대적인 혁명세력 검거에 나서기 전에 아슬아슬하게 바르셀로나를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벨기에 출신 군 지휘관이었던 게오르게스 콥의 구명활동에 나서지만, 감옥에서 비밀리에 처형된 다수의 인사들처럼 그에 대한 소식 역시 역사 속으로 흩어져 버렸다. 통일노동자당의 당수인 안드레스 닌도 재판도 없이 즉결 처형당하는 판에 일개 지휘관의 안위를 걱정할 겨를이 있었을까. 그 와중에서도 자신에게 따뜻한 온정을 보여 주었던 인민군 장교에 대한 스케치도 있는다.
저널리스트 조지 오웰이 내내 경계하듯이, 자신이 속해 있는 통일노동자당에 대한 당파성 때문에 자신의 기록이 완전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하지만, 현장에서 수천 킬로 미터 떨어진 안전한 후방에서 전선에 대한 글을 다룬 다수의 저널리스트들과 달리 전쟁터에서 전사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굴의 정신으로 아라곤 전선에서 강력한 파시스트와 대결했던 지식인의 모습에 이 자리를 빌어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자신이 믿는 신념에 따라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전선에서 전투도 마다하지 않은 용감한 지식인이 모습에서 편안한 데스크에 앉아 팩트 체크조차 하지 않고 너무 쉽게 기사를 쓰고 있는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언론인들의 그것과 대조적으로 다가왔다.
Viva la Revolucion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