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린의 전쟁 같은 휴가
벤 파운틴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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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풋볼을 관심을 갖고 본 것이 2002년 한겨울이었다. 당시 풋볼 규칙도 하나 모르면서 내가 응원하던 팀은 뉴잉글랜드 페이트리어츠였다. 주전 쿼터백이 부상으로 시즌 아웃되고, 백업 쿼터백이었던 탐 브래디의 맹활약에 힘입어 디비전 시리즈에서 만난 오클랜드 레이더스에게 경기 종료 30초인가를 남겨 두고 마지막 킥이 성공하면서 챔피언십을 거쳐 결승전에 진출했다. 비록 언더독이긴 했지만 당시 최강이었던 세인트루이스 램스를 꺾고 첫 번째 슈퍼볼 우승컵을 들어 올릴 수가 있었다. 특히 오클랜드와의 경기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전형적인 뉴잉글랜드 겨울 날씨 가운데 진행이 되었는데, 그 엄동설한에도 흥분해서 웃통을 벗고 경기 내내 괴성을 지르며 펄펄 날뛰던 팬들이 기억에 남는다. 그 정도로 풋볼, 미식축구는 미국 문화를 대변한다는 방증이 아닐까. 장강 이남의 귤이 회하를 건너 탱자가 되듯이, 영국에서 시발된 축구가 대서양을 건너가 아메리카에서는 색다른 방식의 진화를 거쳐 풋볼이 되었다. 그렇게 복잡한 규칙으로 ‘조직화’된 구기 풋볼은 미국 남자 청소년들에게 길들여진 폭력성과 오락거리가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 풋볼이 주는 환상에서 깨어난 빌리 린 같은 친구도 있지만, 엄청난 수의 성인들이 오늘도 오락으로 혹은 도박으로 풋볼을 즐기고 있다. 벤 파운틴은 자신의 첫 장편소설 <빌리 린의 전쟁 같은 휴가>로 그런 풋볼과 아이래크(이라크) 전쟁, 엔터테인먼트 산업 그리고 치어리더들과의 드라이섹스로 점철된 미국 문화를 정조준한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2004년 추수감사절 즈음이다. 이라크에 파병된 브라보 분대의 19세 소년병 빌리 빈은 격전지 알안사카르 운하 전투에서 동료 브림 하사를 구하는 장면이 방송 취재기자의 카메라에 잡히면서 일약 국민적 영웅이 되어 버렸다. 비록 빌 리가 목숨을 던져 가며 구하려 했던 슈룸은 전사했지만, 브라보 대원들은 부시행정부가 기획한 승전여행(Victory Tour)을 하기 위해 조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문제는 이 기획 자체가 전형적인 정치적 선전, 한마디로 말해 프로파간다였다는 점이다. 조지 부지 2세, 딕 체니 그리고 칼 로브 등 아이래크 전쟁기획자들은 하나 같이 40년 전 베트남 전쟁 기피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이 기획한 아무런 명분도 없는 테러와의 전쟁에 내몰린 미국의 청년들이 테러의 위협에 시달리는 조국을 구한다는 타이틀을 가지고 생과 사가 냉혹하게 갈리는 전쟁터에 투입되었다.

 

열사의 땅 아이래크와 모든 것이 풍족해 보이는 미국은 너무 달랐다. 젊은 미군 병사들이 남의 나라 땅에서 전쟁을 벌이는 동안, 부유한 미국의 부자들은 댈러스 스타디움에 마련된 초호화 컨트리클럽에서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뷔페 음식을 즐기고 잭콕을 신나게 마시고 있었다. 게다가 조금 있으면 당대 최고의 인기그룹 데스티니스 차일드의 슈퍼스타 비욘세와도 만날 수 있다고 하지 않은가. 할리우드 최고의 영화제작자 앨버트는 그들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전쟁영화를 만들겠다는 달콤한 제안을 해온다. 아미 소말리아에서의 처절한 패배로 <블랙 호크 다운>으로 만들어지는 판에 아이래크가 안될 이유가 없지. 브라보 대원들의 사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것 같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지켜보는 빌리의 감정은 복잡하기만 하다. 자신이 입대하게 된 경위부터 그렇지 않은가. 사랑하는 둘째 누나 캐스린이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당하면서, 약혼자로부터 파혼을 당하자 전형적인 힐빌리 답게 복수전에 나섰다가 중범죄 혐의로 기소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군입대를 조건으로 감형 받고 전장으로 떠나게 된다. 전쟁영웅으로 금의환향한 집에서 가족들을 빌리를 열렬하게 환영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 2박 3일 뿐이다. 게다가 엄청난 의료비 때문에(아마도 아버지의 뇌졸중과 누나 캐스린의 치료비) 40만 달러나 되는 빚을 졌다는 말에 빌리는 숨이 턱턱 막힌다. 무사히 아이래크에서 돌아와도 전망이 없어 보이는 텍사스의 고향 스토벌에서 그의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전쟁영웅이 되어 전국 투어를 하면서 알게 된 상상을 초월하는 부의 세계의 단맛을 보게 된 빌리에게 지역 유지의 일자리 제의 따위는 가당치도 않다. 물론 빌리가 원하는 신세계로 나가기 위해서는 전쟁영웅이라는 타이틀 말고도 대학 교육이 필수라는 걸 잘 알지만, 십대 소년병으로서는 당장 무작위성이 난무하는 적대적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것이 최우선 임무다. 한밤 중에 소변을 보러 나갔다가 음속을 돌파해서 날아오는 반군의 총탄에 죽을 수도 있지 않은가. 조국을 위한 전쟁이라는 선전은 하나같이 개소리일 따름이다.

 

한때는 석유산업으로 번영하는 도시였던 촌마을 출신 청년을 주눅 들게 하는 스포츠 산업계의 발할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어쩌면 아메리카 사람들에게 실시간으로 전쟁을 중계해 주는 CNN에 등장하는 전쟁이나 ESPN 채널로 전국에 중계되는 풋볼이나 매한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위험과는 전혀 상관없는 오락거리에 열광하는 대중들, 빌리 같은 미군 전쟁기계들이 무엇 때문에 아이래크에 가서 목숨을 걸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결정적으로 브라보 대원들은 전역한 것이 아니다. 모두를 열광시키는 풋볼 게임이 끝나면 오늘 22시 소집되어 다시 전장으로 향해야 한다. 그래서 누나 캐스린은 빌리에게 복귀하지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 보자고 제안하지 않았던가.

 

특이하게도 나는 이번에 영화와 소설을 같이 보고 읽고 있는데, 소설의 상당한 부분이 영화에서는 꼴랑 30분 만에 다루어질 수 있다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락커룸에서 풋볼선수들과 진짜 전쟁에서 사용하는 무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에서는 진짜 텍사스 스타일이로군. 그리고 소설에서는 잘 몰랐던 진수성찬이 차려진 컨트리클럽의 추수감사절 뷔페의 호화찬란함은 영화가 훨씬 더 잡아냈다는 느낌이다. 아이래크에서 브림 하사와 빌리가 나누는 대화는 인도의 전사 그리고 비슈누 신에 대한 동양적인 신비로움이랄까 그런 점들이 그리고 윤회에 대한 생각들이 얼핏 지나쳐 갔다. 바로 이런 게 영화의 힘이로군.

 

벤 파운틴은 현재 텍사스 댈러스 카우보이스 스타디움에서 벌어지는 현재를 배경으로, 험비를 타고 기지를 나설 때마다 공격을 받던 아이래크 시절과 좀 더 가까운 과거인 승전여행으로 귀향해서 고향 스토벌에서 가족들과 보내던 시간들을 정밀하게 교차하면서 어떻게 보아도 정의가 없었던 아이래크 전쟁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이어간다. 부시 정부가 어떤 식으로 선전을 하더라도 9-11 테러의 배후로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지목하고 시작한 아이래크 전쟁은 명분이 없었다. 시들어 가는 미국의 힘을 세계에 과시하겠다고 시작한 명분 없는 전쟁은 미국을 정치 경제적 수렁에 빠트려 버렸다. 정치적 선전물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부시 행정부에게 브라보 분대야말로 아메리카의 위대한 신이 내려준 선물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풋볼 스타디움에서 선량한 미국 시민들이 브라보 대원들을 격려하는 부분을 읽을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해져 왔다. 그들은 과연 전쟁의 실상을 알고 있을 걸까? 소가 끄는 달구지가 시가를 어슬렁거리는 시가에서 적대적인 아이래크 사람들에게 언제 공격을 받을지 모르는 무작위성이 판치는 곳에 떨어진 해병 대원들의 불안과 긴장을. 부시 행정부가 전쟁을 시작한 핵심 이유 중의 하나였던 WMD(대량 살상 무기)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들은 알고 있었을까.

 

댈러스 카우보이스의 노먼 오글스비는 그들을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면서도 그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하기는 거부한다. 영화제작자 앨버트가 브라보 대원들이 아이래크로 다시 돌아가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영화 계약을 하고 싶어한다는 약점을 알아낸 ‘놈’은 제작비를 줄이겠다는 욕심에 입으로는 그들의 영웅적인 행동을 치하하면서 한편으로는 계약 단가를 후려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 아닌가? 미국식 자본주의의 추악한 단면을 저자는 냉정하게 저격한다.

 

소설은 후반으로 갈수록 뒷심이 떨어진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빌리에게 게임을 역전시킬 만한 패가 주어지지 않아서였을까. 사실 가진 것이라고는 달랑 몸뚱이 하나 밖에 없는 브라보 대원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아이래크행 하나 뿐이지 않은가. 빌리의 누나 캐스린은 반복해서 다른 선택을 하라고 문자를 날리지만, 해병 대원 빌 리가 전우들을 배신하고 그런 행동을 할 리가 없다. 아니 이미 사회구조적으로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게 아닐까. 잃을 게 많아서 그만큼 걱정거리가 많다는 부자들의 고민을 최소한 빌리를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까.

 

자 이제 소설을 다 읽었으니 절반 정도 남은 영화를 마저 봐야겠다. 이안 감독이 연출을 맡은 영화도 나쁘지 않은 편인데 흥행에는 참패를 한 모양이다. 사실 이 소설도 영화 덕분에 알게 돼서 읽게 됐다. 저자의 전작 소설집 <체 게바라와의 짧은 조우>도 출간됐으면 좋겠다. 10년 만에 소설을 발표하다니, 과작하는 작가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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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드디어 알렉산더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를 입수했다. 알라딘에서 책 좀 읽는다 하는 선수들이라면 아마 안사고 못 배길 것 같은 그런 예감이 들었다. 게다가 1,500부 한정판이라고 하니 이번에 사지 않는다면 또 수십년을 기다려야 하지 않을까 라는 조바심이 무수한 고민 끝에 구매 클릭질을 하게 만들었다.

 

 

우선 넉넉하게 쌓인 적립금에 지난달엔가 전화설문으로 받은 갤럽에서 준 모바일문화상품권 그리고 네이버페이를 이용해서 내 돈을 하나도 쓰지 않고 마련했다는 데 큰 의의를 두고 싶다. 예전에 볼라뇨의 <2666> 때도 그랬지만, 따끈따끈할 때 사자고 해서 사들였지만 메타픽션 <2666>은 여전히 완독하지 못하고 있다. 두 번째 권을 끝내고 세 권까지 들어갔지만 아직도 먼 볼라뇨. 게다가 그 때도 그랬지만 박스 세트 포장을 왜 이렇게 빡빡하게 하셨는지 무턱대고 꺼내고 그러다간 상할까봐 얼매나 조심했는지 모르겠다.

 

 

위키피디아에서 솔제니친의 걸작 <수용소군도>를 검색해 보니, 수용소군도라는 제목은 구소련 특히 스탈린이 러시아 인민들을 통치하던 자신에게 반대하는 인민들을 강압적으로 수용하기 위해 소련 곳곳에 만든 수용소들이 군도처럼 퍼져 있는 상황을 지칭한다고 한다. 예전 홀로코스트를 기록한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처럼 솔제니친도 수용소군도의 실제 수용자로서 소련 수용소의 실상, 유래와 연원을 육성으로 기록했다. 물론 공산당 독재시절에는 엄격하게 금서로 지목되어 소련 내에서 출간이 불가능했지만 소련방이 무너지고 난 뒤에는 러시아 고등학교에서 반드시 읽어야 하는 필독서가 되었다고 한다. 시절이 바뀌면, 문학에 대한 평가도 바뀌게 되는 모양이다.

 

 

사실 내가 이 세트를 사기 전에 망설인 것은 과연 내가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을 것인가. 또 사두기만 하고 장식용으로 전락하는 건 아닌가에 대한 고민이 문제였다. 작심하고 읽지 않는다면 자그마치 2,700여쪽에 달하는 기록문학을 다 읽을 수 있을까. 혹시라도 무모한 도전에 나섰다가 심각한 독서 슬럼프에 빠지기라도 한다면 하는 걱정과 우려가 그야말로 폭풍처럼 밀려들었다. 하지만 알라딘 이웃분들의 구매후기가 속속 올라 오면서 이러다가 품절이라도 되면, 살 기회조차 없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마음에 속이 닿기 시작했다. 이 속물 같은 인간아.

 


아니 그런데 많은 분들이 지적해 주신 대로 양장본이 아니지. 원래 열린책들은 양장본으로 유명한 회사가 아니었던가. 그 점이 좀 아쉽다. 그러니까 정가 기준으로 보면, 권당 만원꼴인 셈이다. 아마 6만원이 넘어가게 되면 사람들의 심리적 저항감이 불길처럼 솟아오를 것이라고 생각하고 권당 만원 정도면 적당할 거라고 생각했던게 아닐까. 어쨌거나 원래 모양대로 출간이 돼서 반갑긴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박스는 읽다가 바로 책을 집어넣어 두지 않으면 바로 쭈그러 들거나 그러는 게 아닌가 걱정이다. 볼라뇨의 <2666>은 나중에 한참 책을 빼두었다가 박스에 넣으려니 들어가지 않아서 거의 터지기 일보 직전이다. 좀 걱정이다.

 

 

어쨌든 1권을 박스에서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솔제니친의 서문과 수용소 군도로 가게 되는 첫 단계인 체포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를 끌었다. 올해 읽은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에서 소련의 위대한 붉은 베토벤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도 그런 불시의 체포에 대해 항상 불안해 하지 않았던가. 언제나 우리에게 던져지는 공포가 그렇듯, 인간 영혼을 잠식하는 상시된 불안이 음습하게 그림자를 드러낸다. 나치 시절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이 무력하게 친위대원들에게 끌려갔던 것처럼 대다수의 수용소 희생자들은 특별한 반항 없이 기관에게 체포되어 사회에서 격리되어졌다. 체포에 대한 과학적 연구까지 시도된 것으로 보아 스탈린 시절 어마무시한 공포통치가 이루어졌는지 잠시나마 추체험할 수가 있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는데, 일단 시작은 했지만 과연 완독하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 지는 모르겠다. 다른 책들은 아예 읽지 않고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에 매달리는 게 최고의 선택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봤다. 차라리 조금씩이라도 꾸준하게 매일 읽는 게 질리지 않고 완독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읽기 시작했으면서도 여전히 완독에 실패할 거라는 불안감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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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2-14 1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매를 축하합니다.
저도 적립금이 두둑했더라면 질렀을 겁니다.
그런데 적립금이 없다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습니다.
기념비적인 기록문학이란 점에서 갖고 싶긴한데
저도 같은 이유에서 망설여지기도 하네요.
잔인한 거 보면 우울해져서 읽다 중단할지도 모르고.
인연이 되면 읽게 되겠죠.

낱권으로 팔거나 다른 서점도 팔면 좋을 텐데...ㅠ

레삭매냐 2017-12-14 20:19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두둑한 적립금이 지름신을 유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온전하게 돈을 들여서 사라 그랬다면 고민
이 더 깊어지지 않았을까요...

그나저나 많은 분들이 지적해 주신 대로
박스와 양장이 좀 아쉽네요. 박스는 책을
우겨 넣다시피 해야 하거든요.

겨울은 나고 읽어야 하지 않을까요?
좀 재밌는 책이 읽고 싶은데 이렇게 추운
한겨울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 그런 느낌.

cyrus 2017-12-15 2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양장본이 아니라서 아쉽군요. 이러면 도서관 소장용으로는 빵점이에요. 저 책들, 몇 개월 지나면 표지가 구겨지고 찢어져 있을 거예요. 도서관 이용자들이 《수용소 군도》를 얼마나 읽을지 예상하기 어렵지만, 어차피 도서관 책은 더려워지게 되어 있어요.. ^^;;

레삭매냐 2017-12-15 23:13   좋아요 0 | URL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도 내책처럼 깨끗
하게 봤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봐서 닳는 건 어쩔 수
없지만 낙서 등등 너무 하는 것 같더라
구요.

양장본이 아니더라도 도서관에서 도서
용 테이핑을 해서 보존에 신경을 쓰긴
하더군요.

2017-12-16 0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6 1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이기호 지음 / 마음산책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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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이다. 곳곳에서 올해의 책 소개가 이어지고 있다. 아마 이기호 작가의 책도 그런 곳에서 본 게 아닌가 싶다. 그렇게 알게 된 책 중의 하나가 조지프 히스의 <계몽주의 2.0>인데 조만간 그 책도 한 번 사서 읽어야지 싶다. 그나저나 마침 인근 도서관에 이기호 작가의 책이 있다고 해서 냉큼 빌려다 읽기 시작했다. 감기에 걸려서 고생하고 있는데 병원에 가는 길에 읽기 시작했는데 진료 대기하고 약 받는 동안에 50쪽이나 읽어 버렸다. 어, 이 책 재밌는데.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단박에 다 읽어 버렸다. 좀 쉽지 않은 책들을 소화하느라 소화불량의 느낌이 오던 차에 청량음료 같은 책을 만나 즐겁게 읽을 수가 있었다. 이렇게 재밌는 책 읽는 맛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래.

 

원래 월간지에 30년을 보고 연재를 시작했다고 하는 이기호 작가의 가족 에세이는 세월호 사건으로 아쉽게도 3년 만에 막을 내리고 말았다고 한다. 자식을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라도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지난 3년 동안 공감능력을 상실한 정부 밑에서 살다 보니. 비정상이 정상이 되어 버리는 통에 종종 멘탈이 붕괴되는 일들을 수도 없이 겪지 않았던가. 뒤늦게나마 모든 것이 자리를 잡아 가는 것 같아 다행이다.

 

이기호 작가는 전업작가가 아닌지 직장 때문에 광주로 가서 살게 되었다고 한다. 아내의 친정은 경기도 부천,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는 강원도 원주에 사신다고 한다. 듣기만 해도 명절시즌이 되면 수백킬로미터 삼각꼭지점을 찍는 아버지 그리고 아들의 절절한 심정이 바로 내리 꽂혔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작가 삶의 결정타는 8살 연하의 아내가 천둥벌거숭이 같은 아들 형제에 막내 딸아이를 가지게 되면서 전투육아 모드로 돌입하게 된다. 부인님이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말에 어찌나 그렇게 공감이 가던지, 네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마 지금 아이를 키우는 중이라면 이기호 작가의 가족 에세이에 나처럼 격렬하게 호응할 것이다. 일단 심리적 마지노선이라고 하던 신생아 40만명 시대가 붕괴된 2017년 당당하게 아이 셋을 거느린 아버지 이기호 작가야말로 진정한 애국자라고 생각한다. 작가처럼 소신을 가지고 아이들을 낳고 길르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선택을 한 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내가 아는 형도 늦장가를 가서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지금 인구를 유지하려면 최소한 한 가정당 2명은 낳아야 하는데, 1명 혹은 아예 아이를 가지지 않는 가정이 늘어난다고 하니 걱정은 걱정이다. 얼마 전, 유치원 추첨행사에 갔었는데 작년보다 지원한 아이들의 수가 절반이나 줄었다고 한다. 그렇게 인구 감소는 바로 현장에서 절실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지난 십년 동안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었다고 하는데 출산율을 하루가 다르게 줄어가고 있으니 더 문제다. 모름지기 아이를 기를 수 있는 좋은 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하는데, 쥐꼬리 만한 월급인상으로는 도저히 치솟는 전세값조차 감당할 수가 없으니 어찌 아이 키우는데 드는 비용을 감당할 수 있으랴. 절로 한숨이 나오는구나. 게다가 민폐라며 아이들의 입장을 막는 노키즈존이 늘어나는 시절을 보고 있으려니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면서도,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 사설이 길었다. 이기호 작가의 가족 에세이로 돌아가 보자. 우선 작가와 부인의 아이들 키우는 방식에 깊이 공감할 수가 있었다. 겨울이 되니 꼬맹이를 데리고 더 갈 곳이 없어졌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근처 마트를 순회하던 시절이 났다. 그러다 보니 불필요한 지출이 너무 많아졌다. 꼬맹이는 마트의 장난감 코너를 귀신 같이 알아내서 구경만 한다며 가서는 결국 무언가 손에 쥐지 않고는 절대 떠나지 않는 그런 신공을 선보이지 않았던가. 그래서 아마 작가의 부인님은 마트가 아예 없는 조금은 살기에 불편한 곳으로 아예 보금자리를 옮기는 결정을 내렸던 게 아닐까.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마땅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작가 역시 마트 출입을 하다가 바닷가재 세일 줄에 무의식적으로 서기도 했다고 하지 않은가. 우리 꼬맹이가 이마트에서 선전하는 연두해요~ 연두해요~를 따라 부르는 장면도 작가가 에세이집에 쓴 내용과 다르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육아 선배 이기호 작가에게 배울 게 많구나 싶었다. 기존의 편견에 사로잡힌 나 같은 부모는 아이의 시선보다 어른의 시선으로 아이에게 가장 좋다고 생각되는 걸 해주고 싶어한다. 마음에 드는 짝꿍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생일파티를 뷔페에서 하겠다고 하는 큰아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아빠. 하지만 아들이 사모하는 짝꿍은 그 허다한 맛난 음식을 놔두고 우동만 들입다 먹어댄다. 가성비가 꽝이었던 투자였다. 아무래도 그 짝꿍이 자기 아들보다 우동을 더 좋아하는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고 내년에는 우동집에서 생파를 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을 읽으면서 어찌나 웃기던지. 볼리비아 염소떼가 무시로 출몰하는 어금니 치료 사건도 아주 웃겼고, 얼결에 뱉은 말에 첼로를 덜컥 사온 아내의 호기도 멋졌다. 나도 기타가 배우고 싶은데. 내 생에 더 이상의 배움은 없다고 선언한 게 얼마 전이었더라.

 

가족 사진을 찍으러 가서 영정 사진을 마련하겠다고 말하시는 작가 아버님의 에피소드도 짠했다. 그리고 보니 나도 어려서 한창 사진 찍기에 심취했을 때, 할아버지 할머니 사진을 찍어 드리니 영정사진으로 쓰면 되겠구나 하시던 기억이 났다. 내 나이 먹는 것만 생각했지 부모님들 역시 나이 드시는 걸 잊고 살았구나 싶기도 하다. 아들네 들르셨다가 돌아가시는 길에 지인들에게 영광 굴비를 사다 후하게 인심 쓰고 싶으셔서 슈퍼 한다는 말로 굴비를 사시는 어머님의 모습도 그렇고. 아이 참, 이 양반 정말 글로 사람을 희롱하는데 선수구만 그래.

 

2017년 마지막 달에 아주 맴이 훈훈해지는 그러면서도 재밌는 글을 읽어서 마음이 참 좋다. 별 다섯 개가 전혀 아깝지 않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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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집사의 일상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42
무라카미 리코 지음, 기미정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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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가즈오 이시구로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남아 있는 나날>을 본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은 피상적인 개념들을 영화에 등장하는 탁월한 집사 스티븐스 역을 맡은 앤소니 홉킨스가 보여주었으니 말이다. 아마 구시대 집사(butler)들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일본 출신 무라카미 리코라는 양반은 왜 영국 집사의 일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걸까? 그리고 보니 전작은 영국 메이드에 관한 책이었지. 메이드에 관한 책은 아직 만나 보지 못해 잘 모르겠지만, 외국인이 집사 그 중에서도 여왕을 정점으로 하는 계급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영국 집사들의 기원과 활약상을 탁월하게 기록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하고 싶다.

 


귀족들을 시중하는 집사 업무의 기원은 중세 시대 와인이나 맥주를 취급하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 간다고 한다. 산업혁명 시대로 접어들면서 자본축적을 하고, 토지대여로 막대한 불로소득이라고 할 수 있는 임대 수입을 올리는 귀족들을 시중하는 사용인들이 다수 발생하게 되었다. 집사하면 보통의 경우 고용인들을 시중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좀 더 전문적인 가사관리인들의 경우에는 가사관리는 기본이고 장원을 운영하는 회계까지도 책임졌다고 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그런 복잡다단한 이야기들보다는 아무래도 집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해프닝이나 에피소드에 더 눈길이 갔다.

 


집사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는 뻑뻑하다는 느낌을 다수의 수록된 주로 <펀치>라는 잡지에서 인용한 일러스트들이 부드럽게 만들어 주고 있다. 가사의 총책임을 맡는 집사로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풋맨, 홀 보이와 요리사 그리고 여자 메이드들까지 지휘해서 가사를 꾸려 가는 집사들의 임무는 어떻게 보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의 그것에 견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용인들은 늘씬하고 잘생긴 집사를 선호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자기 가문의 문장이 들어간 제복을 입혀, 세련된 풍모로 대저택에서 매일 같이 열리는 파티에 초대한 손님들을 응대했다.

 

집사들을 식구처럼 대한 깨인 귀족들도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은 고용인과 사용인의 입장이 아니었던가.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연결하는 핵심은 자본주의 시대의 총아인 보수였다. 놀라운 건, 가사의 총책임을 맡은 집사보다 보통 요리사의 보수가 더 많았다는 점이다. 하긴 프랑스 요리나 러시아 요리 같이 파티 손님들을 대접할 수 있는 특별한 기술을 가진 요리사들이 드물었을 테니 당연했던 게 아닐까. 19세기 힘든 노동을 하던 타 직종의 노동자들보다 집사들은 상대적으로 덜 피로한 직장이 아니었을까. 기본적으로 숙식이 제공되었고, 화려한 파티에 초대된 부유계층들은 그들에게 후한 팁을 주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저명한 집사들은 자신의 연봉에 9배나 되는 900파운드에 가까운 돈을 벌기도 했다고 하니 말이다.

 


하지만 집사의 임무는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수많은 부하들에게 규율을 지킬 것을 요구해야 했고, 아무래도 상부에서 지휘를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알코올을 대할 경우가 많았으며 그 결과 알코올 중도에 빠지는 집사도 상당수가 있었다고 한다. 도박 문제 때문에 빚을 지거나 주인집의 귀중품을 슬쩍 하는 경우도 빈번했다고 한다. 젊은 멋쟁이 풋맨들과 메이드 간의 염문도 집사가 엄중하게 다스려야 하는 중요한 임무 중의 하나였다. 독신 집사가 대개 환영받았는데, 아무래도 처자식이 달리다 보면 주인이 요구하는 서비스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편견 때문이었다나. 뭐 충분히 이해가 가는 장면이었다.

 

사용인에게 후한 대접을 해주는 고용인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었다. 심지어 학대와 모욕을 견디지 못한 사용인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격분한 사용인이 주인을 살해하고 결국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지기도 했다고 한다. 가짜 집사로 살인 행각을 벌인 싸이코패스가 등장하기도 했다. 견물생심이라는 말처럼, 아무래도 귀족이나 부유층의 호화행각을 늘 곁에서 지켜보니 어쩔 수 없이 사용인이라는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그들처럼 행동하는 경우도 있지 않았을까. 영화 <남아 있는 나날>에서도 주인의 고급차를 타고 여행하느 스티븐스를 시골 사람들은 신사라고 생각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물론 눈밝은 어느 의사는 단박에 그가 사용인, 집사라는 사실을 짚어냈지만.

 

그리고 무엇보다 영국 집사들의 이야기를 풍부하게 해주는 건 바로 어니스트 킹, 조지 워싱턴, 에릭 혼, 피터 휘틀리 같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명한 집사들이 남긴 회고록 혹은 기록이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이런 기록들의 중요성에 대해 깨닫게 된다. 아무래도 자신의 회고에 의한 기록이다 보니 객관성이 떨어지는 것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당시의 시대상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사료라는 생각이 든다. 그걸 바탕으로 해서 자국의 역사도 아닌 타국의 시대상을 읽기 위해 엄청난 자료를 뒤져서 이런 멋진 이야기를 창조해낸 일본 출신 자유기고가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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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내린 곰
아르토 파실린나 지음, 김인순 옮김 / 솔출판사 / 2009년 12월
평점 :
절판


 


내가 어떻게 해서 이 책의 존재를 알게 됐고,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더라. 분명 어떤 미디어를 통해서였을텐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읽기 시작해서 재밌다고 생각하고 단박에 읽었다면 그 기억의 흔적이 남아 있을 텐데, 널뛰기 독서를 하다 보니 읽게 된 동기조차 잊어 버렸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그래도 다 읽었고 만족스러웠다면 그것으로 된 게 아닌가.

 

아르토 파실린나는 핀란드에서 꽤 유명한 작가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생소한 작가다. 나도 집에 누군가 선물해준 <기발한 자살여행>이라는 책이 하나 있는 것 같은데(사실 확실하지 않다) 읽진 않았다. 그러다가 제목도 기발한 <하늘이 내린 곰>이라는 책이 있다는 사실과 절판돼서 쉽게 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역시나 절판본 컬렉터의 본성이 발동되어 멀리 예스24 중고서점에 달려가 이 책을 구해서 읽기 시작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우시마주의 눔멘패를 찾아 보려고 구글맵의 도움을 받았지만 인근의 삼마티까지는 찾았지만 눔멘패는 찾지 못했다. 그래도 가위로 유명한 피스카스가 도시라는 사실 하나는 알았으니 일종의 소득이라고나 할까. 나중에 등장하게 되는 오울루도 찾았다. 또 서설이 길었다. 소설의 사람 주인공은 눔멘패 교구의 신의 존재를 불신하게 된 신학박사이자 루터교 목사 오스카리 후스코넨 그리고 ‘하늘이 내린 곰’은 불의의 사고로 어미 불곰을 잃게 된 수곰 제기랄/바알세불이다.

 

먹을 것을 찾아 사람이 사는 마을에 내려 왔다가 양조장을 습격해서 거나하게 취한 엄마 곰 일행은 내친 김에 결혼피로연 준비 중인 요리사의 식품 창고를 털어 횡재하기에 이른다. 그렇게 끝났으면 좋으련만 요리사 아스트리드와 마주쳐서 대결을 벌이던 도주하는 중에 고압 전선에 감전돼서 요리사와 엄마 곰은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두 마리 테디들은 고아가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신앙심을 잃은 후스코넨 목사에게 수곰 제기랄을 선물하면서 이 둘의 기상천외한 여정이 시작된다.

 

루터교 목사인 후스코넨은 길 잃은 사람 어린 양들을 돌보는 것에는 관심이 없고, 고아가 된 수곰 제기랄을 돌보고 수직 창던지기 같은 기괴한 취미를 갖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곰을 동면 들이면서 알게 된 오울루 출신의 동물학자 소냐 삼말리스토와 추문이 일면서 더 이상 눔멘패 교구에서 목사직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아내 사라도 이혼해서 곁을 떠나고, 나이 50세에 자신의 곁에 남은 것은 이제 한 살 먹은 곰돌이라는 사실에 후스코넨 목사는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기독교시민대학과 선원 자격으로 러시아로 향하는 유람선에 오른 후스코넨과 수곰 제기랄의 모험담이 발랄하게 이어진다. 목사는 제기랄에게 댄스와 성호 긋는 법 등 세계 종교의 다양한 제의를 가르친다. 이 녀석이 배움에 소질이 있는지 여행길에 꼭 필요한 가방 챙기는 기술과 심지어 다리미질을 즐기는 경지에 도달하기도 했다. 곰이 어찌 이런 다양한 기술을 배울 수 있냐는 질문은 서커스에게 일하시는 조련사 분에게 문의해 보시면 될 것 같다.

 

후스코넨 목사는 한편으로는 엄청나게 먹어대는 곰돌이 제기랄을 떼어 놓고 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기도 한 애증의 관계 속에서 혼란스러워 한다. 마치 우리네 삶이 그렇듯이 말이다. 러시아 아르한겔스크의 솔로베츠키예에서 무선기사 러시아 여성 타냐 미하일로브나와 합세해서 위기를 모면하기도 하면서 후스코넨과 제기랄은 기묘한 여정을 계속 이어간다. 1941년 애국전쟁 당시 소로카 점령 계획이 취소되면서 연합군과 추축군 팔백만명(약간은 뻥튀기가 아닐까)의 목숨을 구한 핀란드의 만네르하임의 결정에 대한 대화가 등장하기도 한다. 역사에서 가정법이란 참 무의미해 보이긴 하지만.

 

북국에서 시작된 그들의 여정은 흑해의 진주 오데사를 거쳐 다다넬즈 해협을 지나 에게 해로 진입해서 몰타 섬까지 다다랐다. 아 그전에 신앙심을 잃은 목사가 외계의 생명체와 교신하겠다는 세렌디프 프로젝트에 타냐에 말해주는 장면이 있지 않았던가. 자신이 아는 신 외의 다른 신을 찾고자 하는 목사는 불굴의 의지를 가지고 외계와의 교신을 끊임없이 시도한다. 몰타 종교회의에서 대소동을 뒤로 하고 핀란드로 돌아온 후스코넨 목사는 소냐와 다시 재회하고, 외계에서 수신한 내용을 그녀가 알려 주면서 결말에 도달한다.

 

문득 저자가 쓴 이 모든 소동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역설적이게도 신앙을 잃고 방황하던 후스코넨 목사는 수곰 제기랄과 고향에 돌아와 자신이 애타게 찾던 외계로부터 온 메시지가 다름 아닌 기독교의 기본적 진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 않던가. 과학적 사고가 지배하는 서구 사회 내면에 깔린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본질적으로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신에게 귀의할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하고 싶었던 걸까.

 

아르토 파실린나 작가의 책은 <하늘이 내린 곰>을 유일하게 읽어본 터라 그의 작품 스타일이 전반적으로 어떤지 판단하기엔 쉽지 않지만, 작품 소개를 대충 훑어 보니 다른 작품들에서도 비슷한 포맷이 유지하는 것 같았다. 일단 집에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책도 읽어 보고, 저자의 다른 책들도 하나씩 읽어 보고 싶다. 모든 것은 일단 내년으로 미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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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nsun09 2017-12-11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작가 작품들은 거의 이런 분위기인데
핀란드 사회 문제점을 잘 풍자해서 표현하고 있다네요. 전 그런것보다 다소
엉뚱한 소재로 흘러가는 게 좋아서 좋아하는데‘ 기발한 자살여행‘을 읽으시면 또다른 느낌을 가지실지도...
모르겠어요.^^

레삭매냐 2017-12-11 13:38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 처음 읽은 작가의 책이라
적응하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엉뚱한 전개는 저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종횡무진 유럽대륙을 누비는 이야기가 매력적
이었습니다.

말씀해 주신 <기발한 자살여행>도 궁금해지네요.

sprenown 2017-12-11 14: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기발한 자살여행‘ 한권 읽어봤는데 위의 내용과 비슷하더군요. 자살하기 위해 유럽곳곳 여행하는것..우울증 환자가 많은 핀란드..역설적으로 현재의 삶에 충실하고 여기서
행복을 느끼자는 얘기지요.^^.

레삭매냐 2017-12-11 18:01   좋아요 1 | URL
흥미를 돋우네요...
아무래도 올해에는 좀 무리일 듯 싶고
내년에 기회가 되는 대로 차례로 읽어
볼까 합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