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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 개정판
김훈 지음, 문봉선 그림 / 학고재 / 2017년 7월
평점 :
정말 오래 전에 친하게 지내던 동네서점을 운영하던 주인장 형님의 추천으로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을 지인에게 선물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정작 나는 <남한산성>을 읽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한명기 교수의 역사평설 <병자호란>을 읽었다. 그리고 오래 전 <남한산성>에 대한 추억이 떠올랐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의 독서 방향계는 그렇게 <남한산성>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서 읽어 보라고.
기대했던 대로 김훈 선생의 글은 간단하면서도 명료했고,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했다. 조선 시대 최고의 비극이라고 말할 수 있는(임진왜란 때도 조선의 국왕이 왜적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다) 병자호란을 맞아 남한산성에서 기약 없는 농성전을 벌이던 이야기를 김훈 작가는 명징하게 다뤘다.
어떻게 해서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역사평설 <병자호란>을 통해 알게 되었기에, 본질에 더 다가간 느낌을 받았다. 요순의 마음을 가졌지만, 실천력이 없었던 숙부의 자리를 찬탈하고 보위에 오른 임금 인조는 다가오는 전쟁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저 당장 닥친 화만 피하면 된다는 식의 임기응변에 따라 종래의 전략대로 남한산성으로 파천한다. 나머지 조정의 신료와 강빈 그리고 대군들을 강화도로 보내 권토중래를 노렸지만, 이 회피전략은 이미 청의 대칸 홍타이지에게 노출되었고 금성탕지라고 생각했던 강화도마저 함락되면서 홀로 남은 산성에서 인조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야말로 국가와 조정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도 주화파와의 척화파의 말[言]전쟁은 끊이지 않는다. 인조를 모시는 중신 중에서 그나마 예조판서 김상헌과 남한산성의 수비를 맡은 수어사 이시백 정도가 백성들의 고초를 초무하고자 할 뿐, 총사령관이라고 할 수 있는 최고실력자 영의정 김류는 인조를 정점으로 하는 기득권층의 정권보위에만 신경 쓸 따름이다. 이런 상황에서 군령이 제대로 먹힐 리가 없으며, 이백년 종사 운운하며 어찌 명나라에 대한 재조지은을 저버리고 오랑캐에게 항복할 수 있냐고 외치던 양반 사대부들 역시 살기 위해 청나라 병사들에게 투항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토록 강력하게 척화를 주장하던 당하관들의 야음을 틈탄 남한산성 탈출사건은 집권층의 위악을 그대로 드러내는 실례였다. 역사는 희비극으로 반복된다고 했던가, 우리 현대사에서도 낯설지 않은 장면이었다.
오히려 수어사 이시백의 명에 따라 눈비에 젖어가며 성첩을 지키는 향병과 병졸들 그리고 김훈 작가가 창조해낸 대장장이 서날쇠의 활약이 숭명배청 사상으로 똘똘 뭉쳐 번국이 멸망의 위기에 빠졌음에도 속수무책인 명나라에 대한 의리만이 살 길이라고 외쳐대는 조선 지식인들의 왜곡된 인식과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다. 대표적인 척화론자 김상헌은 소설 <남한산성>의 한 주역으로 등장하는데, 초반에 송파 나루를 건너면서 청병의 추격을 두려워하면서 자신을 도강시켜준 늙은 사공에게 비정한 칼질을 마다하지 않는다. 국가의 근본이 백성이라고 하면서, 눈앞에 닥친 위험 때문에 근본을 잃는 장면이야말로 희대의 국난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로 다가온다. 뒤이어 등장시킨 사공의 딸 나루의 존재는 끝없이 김상헌의 양심을 자극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어쩌면 절대군주 시대, 관료의 한계라고 해야 할까.
척화파의 거두가 김상헌이었다면, 그 대척점에서는 반정공신이자 주화파의 거두 이조판서 최명길이 있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니, 차라리 명나라에 대한 대의를 지키자는 젊은 당하관들의 거듭된 비난과 나라 팔아먹은 만세의 역적이라는 오명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왕실과 종사를 지킬 궁리에 염두가 없는 최명길 역시 김상헌 못지않은 애국자가 아니었을까. 그의 말대로 죽음이 오히려 쉽고, 견딜 수 없는 치욕을 견디는 것이 더 어려운 선택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는 담담하게 홍타이지에게 보내는 국서를 직접 작성한다. 그와 함께 선발된 다른 벼슬아치들이 갖가지 핑계를 대며 후대에 오명으로 남을 항서 작성을 요리조리 피하는 장면에서는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 역시 화친에 극렬하게 반대한 척화파 대신들을 체포해서 삼전도로 압송하라는 홍타이지의 명령에 죽음을 무릅쓰고, 스스로 나선 윤집과 오달제 같은 삼학사의 충절과 의기를 상대적으로 돋보이게 하려고 작가가 야심차게 계획한 하나의 문학적 장치는 아니었을까.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위치에 있던 영상 김류는 인조의 정치적 동지이자, 당대 최고의 실권자로 병자호란 발발에 엄중한 책임을 피할 수가 없는 지도자였다. 자신은 수어사 이시백의 실수에 대해 추상같은 책임을 물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통치하되 어떤 정치적 책임도지지 않는다는 위정자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훗날 강화도 방어에 실패한 자신의 아들 김경징이 대간의 탄핵을 받아 사사될 때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지 궁금해진다. 철저한 기득권 옹호론자였던 그는 군졸들에게 지급된 가마니를 풀어, 쓰지도 못하는 군마에게 먹일 말죽을 만드는 기행을 일삼는다. 척화와 주화 사이의 끊임없는 신경전이 벌어질 때도, 냉정한 중재자로서의 모습 대신 그저 사태를 모면하려는 발언만 생산해내는 무능력한 지도자의 전형이었다. 이런 이들이 국사를 맡았으니 국가가 망국의 위기에 빠지지 않는 게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다.
김훈 작가는 자신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문장으로 농성에서 출성에 얽힌 복잡다단한 감정의 군상을 절묘하게 그려냈다. 청병에게 물샐 틈 하나 없이 포위된 상황에서도,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농사짓는 고민을 하는 시골의 촌로들에 대한 묘사, 비축한 군량미가 떨어져 가자 임금에게 소소한 사항까지 보고(밴댕이를 반으로 가를까요)하면서 주상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관량사의 보고, 수라상궁이 모든 물자가 부족한 가운데 주상과 세자를 위해 밥을 짓고 찬을 마련하는 장면에 대한 기술 등은 병자호란이라는 국난에 마주하고도 먹고사는 문제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보통 백성들의 고민(민생고)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소설의 곳곳에서 보이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다양한 관찰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묘사 역시 일품이다. 남한산성 곳곳에 대한 고증을 통한 정밀하면서도, 전체를 조망하면서 쓴 듯한 기술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불쑥 승지에게 송파강이 녹았느냐고 묻는 인조의 선문답 같은 질문을 통해, 억조창생을 위해 그렇게 오랑캐라고 무시하던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에게 치욕적인 항복의 예를 올려야 하는 인조의 고뇌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성의 함락을 코앞에 둔 정축년 원단에 여전히 상국으로 모시는 명나라 황제를 위한 망월례 가운데 인조가 무도(舞蹈)를 행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희비극에 가까웠다. 오랑캐의 침략으로 국가 존망의 위기를 마주하고도 부질없는 대의명분에 사로잡힌 자존감 강한 사대부들의 절망의 노래처럼 들릴 뿐이다. 작가는 치욕과 자존이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데, 나같은 오활한 백성들은 이런 옛 일들을 되돌아보며 오늘의 경세가들이 지향하고 받들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