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녀 이야기 (특별판, 양장)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요즘 드라마 시장에서 마가렛 애트우드 여사의 작품들이 강력한 소구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번에는 <시녀 이야기>로 대히트를 치더니, 이번에는 <그레이스>를 만들었다고 한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서, 원작소설이 궁금해서 알라딘 한정판으로 나온 <시녀 이야기>를 구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드라마의 강력한 영향 덕분인지 한 백쪽 남짓 읽다가 접었다. 그리고 이달 들어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이게 한 번 본궤도에 오르니 멈출 수가 없더라. 새벽까지 달려서 다 읽었다.

 

원작소설을 보면서 드라마가 상당히 원작에 충실했구나 싶었다. 미래의 어느 시점, 미국 땅에 들어선 신정국가 길리아드에 사는 시녀 오프레드가 소설의 주인공이다. 대재앙(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이후, 현직 대통령을 총으로 쏘아 죽이고 정권을 잡은 사령관 일당들은 여성들의 권리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눈’과 수호자 그리고 천사들이 중심이 된 신정국가 건설에 매진한다. 그들이 말하는 기존의 성적 타락과 방탕을 일소하겠다는 신념에 젖어 시민들의 삶을 극도로 억압하고 제한한다. 말로만 신정국가지 사실은 시민들의 모든 것을 감시하는 경찰국가 길리아드에서 정말 악질적인 것은 여성들을 사물로 취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재앙은 길리아드에게도 큰 재앙을 안겨 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국가를 존속시키는데 절실하게 필요한 미래 세대를 생산해낼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출산율의 급격한 저하로 국가유지를 위한 아이들이 필요해지자, 아이를 생산해낼 수 있는 가임기의 여성들을 시녀라는 명칭으로 불임가정에 배당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의 주인공 오프레드도 사령관 프레드의 집에 배치되어 아이 생산을 맡게 된다. 의례라는 터무니없는 형식으로 오로지 아이를 생산하기 위해 본처 세레나 조이가 지켜보는 동안 사령관과 오프레드는 재생산에 들어간다.

 

디스토피아적 상상이 실제로 벌어질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현재 미국 최고위직에서 터무니 없는 작태를 보이고 있는 권력자의 모습과 기묘하게 겹쳐졌다. 정말 무서웠던 것은 자유와 민주주주의 본고장이라는 나라가 순식간에 일단의 광신자들이 지배하는 경찰 신정국가로 돌변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왜 시민들은 길리아드의 그런 반동적인 움직임에 저항할 수 없었을까? 오프레드는 사랑하는 남편 루크와 딸을 빼앗기고 리디아 아주머니들의 철저한 재교육 과정을 통해 시녀로 거듭나게 된다. 그녀들의 존재는 게이샤나 매춘부들의 그것과도 현저하게 다르다. 소설에서 나오듯이 두 발 달리 자궁으로 오로지 재생산에 필요한 것 뿐이다. 그것을 거부한다면 열악한 환경의 콜로니에 배치되거나 비여성으로 분류되어 비참한 삶을 마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시녀 활동 중에 세 번 실패하게 되도 마찬가지 운명이다.

 

넷플릭스 드라마에서는 좀 더 극적인 장면들에 치중했다면, 소설은 자유로웠던 시절을 기억하는 영혼에서 비참한 처지의 시녀로 전락한 오프레드의 내적 갈등에 좀 더 치중한다. 언제나 수동적인 삶을 살았던 오프레드에 비해 그녀의 친구 모이라는 보다 적극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재교육 센터에서 탈출을 시도했다가 잡혀서 엄청난 구타를 당하기도 하지만, 이성보다 동성에 더 끌리는 모이라는 마침내 엘리자베스 아주머니를 인질로 삼아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그 후, 프레드 사령관을 따라 나섰던 일종의 일탈이었던 이세벨 하우스에서 그녀를 다시 만나는 장면도 드라마와 궤적을 같이 한다. 다만, 각고의 노력 끝에 모이라가 마침내 캐나다로 탈출하는데 성공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소설과는 다른 부분이다. 루크 역시 캐나다로 탈출하는 과정에서 죽은 것으로 소설에 나오지만 드라마에서는 탈출에 성공해서 모이라와 재회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소설은 오프레드가 사령관의 집에서 어디론가 끌려 가는 장면으로 끝나는 반면, 드라마에서는 시즌 1을 같은 장면으로 끝내면서 새로운 시즌 2를 예고했다. 어떤 식의 서술이 등장할 지 <시녀 이야기> 두 번째 시즌이 기대된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오프레드는 모두 수동적인 여인을 대표하는 모습으로 출발한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길리아드에서 자신이 체험한 모든 것으로 후대에 기록으로 남기는 그리고 드라마에서는 조금씩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스템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그런 점에서는 드라마에 좀 더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아이를 위험에 빠뜨린 오브워렌 그러니까 재닌을 처벌하라는 리디아 아주머니의 요구를 정면으로 거부한 드라마 에피소드 마지막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주로 홀로 있는 밤에 과거를 회상하며, 복기하는 식의 서술 전개 방식도 탁월했다. 아무도 믿을 수 없고, 모든 것이 감시되는 엄혹한 시절에 대한 서사는 묘한 기시감을 전달해 주기도 했다.

 

다시 소설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물리적 힘으로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길리아드의 본질은 폭력이다. 그들은 폭력으로 헌정질서를 전복시키고, 자신들이 믿는 신념대로 국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시민들이 치러야 하는 부당한 대우를 그들은 부차적 피해(collateral damage)라고 미화한다. 누구 좋으라고 이 짓거리를 하느냐며 빈정대는 오프레드의 항의에 대꾸하는 프레드 사령관의 논리는 빈약해 보인다. 그렇다면 시녀들이 좋아서 혹은 국가에 대한 애국심 때문에 자청해서 시녀가 되었단 말인가. 여성들은 오로지 미래 세대 생산을 위한 도구로 생각하는 야만적인 시각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장면에 소름이 돋았다. 하긴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어느 나라에서는 국가 기관이 예산을 들여 터무니없는 ‘출산지도’를 만들기도 하지 않았던가. 이런 시각이야말로 길리아드를 지배하는 사령관들의 시각과 다를 게 무엇이란 말인가. 또, 일반 시민들에게는 종교적이고 엄숙한 삶을 강요하면서 정작 자신들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이세벨 하우스에서 쾌락을 만끽하지 않았던가. 마가렛 애트우드는 이런 방식으로 어느 시대에나 등장하는 지배권력의 위선적인 면모를 보기 좋게 저격한다.

 

소설 <시녀 이야기>의 마지막은 오랜 시간이 흘러 길리아드 시대가 끝난 뒤, 연구자들이 오프레드가 남긴 기록을 가지고 논쟁하는 장면이다. 나는 여기에서 다시 한 번 기록이 얼마나 중요한 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길리아드의 역사를 논의하는 학회에서 연구자들은 오프레드가 남긴 기록에 대한 신빙성에 대해 제기한다. 자랑할 만하지 못한 일들에 대해 공식적인 기록이 남아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일본도 정신대에 대해 공식적인 기록이 없으니 존재하지 않았다는 식의 말도 되지 않는 논리로 억지를 부리고 있지 않은가. 주제와 상관이 없겠지만 어제 본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등장한 미국사람 타일러 라쉬가 설파한 강대국의 논리인 국가는 일체의 감정이 배제되어야 한다는 방식의 그럴듯한 논리가 불쑥 떠올랐다.

 

처음으로 읽은 마가렛 애트우드 여사의 책이었는데, 지난 초여름에 본 드라마 <시녀 이야기>와 비교하면서 읽는 재미가 대단했다. 드라마는 드라마 대로, 그리고 소설은 소설 대로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이제 <그레이스> 차례다. 이번에는 아무래도 소설부터 먼저 읽고 나서 드라마를 시작해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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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7-11-06 14: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드라마 보고 싶네요.
IP TV에서 하려나요?

책은 왠지 지루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어느 지점에 꽂혀 내달리게 만드는 소설이 또
기가막히죠.^^

레삭매냐 2017-11-07 11:41   좋아요 0 | URL
아마 곧 풀리지 않을까 싶네요 :>

전 드라마를 먼저 보고 나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느꼈다고나 할까요.

원작소설의 탄탄한 구성과 서사구조
에 다시 한 번 감탄했습니다.

독서괭 2017-11-07 03: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출산지도 사건이 떠올라 오싹했습니다...

레삭매냐 2017-11-07 09:31   좋아요 0 | URL
자그마치 21세기에도 이런 발상을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더 놀랐지
뭡니까 그래...
 
Still Boy - of the still boy, by the still boy, for the still boy
SE OK 지음 / MY(흐름출판)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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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블랙 호크 다운을 보고 나서 원작 논픽션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검색해 봤다. 그런데 이미 절판된 지 오래되었더군. 그래서 이번엔 도서관을 이용해 보자는 생각해 보니, 관내 도서관에 한 권 있다고 한다. 바로 달려 가서 빌려 왔다. 그리고 빌려오는 길에 재밌어 보이는 남정네, 자칭 프로육아러라고 하는 세옥 씨의 <스틸 보이>와 최민석 작가라고 생각하고 빌린 백민석 작가의 <쿠바여행기>를 빌려 왔다.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

 

그리고 오후 낮잠 모드에 들어가기 전에 세옥 씨의 <스틸 보이>를 모조리 읽었다. 230쪽 남짓한 책이었는데, 한 편에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그린 단상과 그림 그리고 해시태그가 담겨 있었다. 뭐 나도 비슷한 여정을 경험하고 있어서 그런지 어찌나 그렇게 공감이 가는지 몰랐다. 사는 게 다 그런 거지.

 

다들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는 뱃속에 있는 것이 천국이라고 했는데, 그땐 미처 몰랐네. 그리고 등짝에 마치 닿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센서가 달려 있는지 도통 누워서 자려고 하지 않았으며, 유모차에서 자는 꼴을 거의 보지 못했다. 비슷하게 치러지는 매 순간마다 격렬하게 공감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렇지. 그리고 아주 아가야 시절에 외출하려고 하면 왜 그렇게 필요한 것들이 많은지. 바바리맨을 연상시키는 옷자락에 매달린 수많은 육아 장비들(!!!)을 보면서 그야말로 빵!!! 터졌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하고 가도 항상 빠지는 것들이 수두룩 했으며 그 없는 준비물로 난감했던 적이 어디 한 두 번이었던가.

 


백일의 기적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어느 정도 커서 말귀를 알아 듣게 된 지금은 시어를 입에 달고 사는 꼬맹이를 보면서 울컥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무언가 스스로 하겠다고 나서서 물이며 음료수를 엎지른 적이 어디 한 두 번이던가. 그나마 집에서는 으이구 하면서 치러내지만, 외식해 보겠다고 외출해서 음식점에서 밥알을 날리거나 음식물을 뒤집어 업을 적엔 정말 답없다. 등짝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혹시나 파충이소리 들을라 열심히 물휴지며 걸레를 동원해서 흔적을 치우고자 노시초사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오늘도 한 건 하셔서 환타를 들고 뛰다가 보기 좋게 엎어 버렸다. 뒤처리하느라 등골이 살짝 휘는 그런 느낌.

 

그럼에도 꼬맹이와 같이 보내는 시절이 마냥 싫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응가를 치우면서 방독면 쓴 세옥 씨의 모습은 왜 그리도 공감이 가는지. 응가를 치우면서 이것도 내 새끼니까라는 생각이 공감 백만번이올시다. 입에서 쉬야~’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들쳐 메고 화장실 찾아 삼만리하는 장면도 어찌나 그렇게 빼박이던지. 다들 그렇게 사는구나 싶은 마음에 절로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현재 육아에 전념 중인 육아러들 그리고 조만간 혹은 가차운 미래에 육아러 등록을 하신 분들은 꼭 한 번 읽어봄직한 그런 육아 그림일기가 아닐 수 없다.


[뱀다리] 어제 급하게 리뷰 쓰느라 빼먹었는데, 프로육아러의 부녀회장 3연임은 대박 쇼킹했다. 문제는 전세 만기로 곧 이사가야 한다는 건 안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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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해야겠다. 그렇게 싫어하는 조중동 중의 하나인 신문을 통해 나는 앨런 홀링허스트를 알게 되었노라고. 2004년 <아름다움의 선>으로 맨부커상을 받은 작가지만, 국내에 출간된 그의 책은 하나도 없다. 이럴 수가. 하루에 500자 정도 쓴다고 하는 올해 우리 나이로 65세 드신 홀링허스트 씨가 6번째 장편 <스파숄트 어페어>라는 장편을 발표했다는 뉴스가 눈길을 사로 잡느다. 미국 작가 조지 손더스의 <바르도의 링컨>보다도 이 책이 더 인기라고 하던가. 기사를 참조해 보시라.

 

http://news.donga.com/3/all/20171030/87013244/1

 

어쨌든 홀링허스트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까 해서 그의 발자취를 찾아 보았다. 그랬더니 아주 희미하나마 그의 발자취를 찾을 수가 있었다. 하나는 아직 입수하지 못한, <끌리는 박물관>에 실린 그의 글 한 편(오후에 도서관에 가서 빌릴 예정이다) 그리고 두 번째 로는 바로 입수할 수 있었던 <존 프리먼의 소설가를 읽는 방법>라는 작가와의 인터뷰를 그린 책에 실린 홀링허스트 인터뷰였다. 2004년 12월에 실시된 인터뷰로 주로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라인 오브 뷰티>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어떻게 알라딘 중고라도 이용해서 원서를 입수해야 하나. 다만 500쪽을 넘기는 분량 덕분에 선뜻 원서 도전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게이 작가라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밝힌 홀링허스트는 1954년 5월 26일, 영국 글라우스터셔의 스트라우드에서 은행가 아버지 제임스 홀링허스트의 독자로 태어났다. 옥스퍼드 모들린 칼리지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홀링허스트는 1975년 학사 학위를 그리고 1979년에는 일반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논문 주제는 로널드 퍼뱅크, E.M. 포스터 그리고 L.P. 하틀리 세 명의 게이 작가들의 작품에 관한 것이었다.

 


존 프리먼의 인터뷰에는 동성결혼이라고 하면 질색하는 미국 유권자들에 대한 성향으로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섹스 장면이 등장하는 대표작 <라인 오브 뷰티>에 관한 대담이 실려 있다. 이것만으로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니 말이 필요 없다. 홀링허스트의 판권을 가지고 있는 출판사는 속이 그의 책들을 출간하라, 출간하라.

 

1. 수영장 도서관 (1988)

2. 접힌 별 (1994)

3. 스펠 (1998)

4. 아름다움의 선 (2004) - 맨부커상 수상작

5. 이방인의 아이 (2011)

6. 스파숄트 어페어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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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1-03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영장 도서관》, 《아름다움의 선》이 피터 박스홀의 《죽기 전 책 1001권》에 포함되어 있어요. 이 정도로 봐선 홀링허스트는 세계가 주목해야 할 작가인 것은 분명해요. ^^

레삭매냐 2017-11-03 22:56   좋아요 0 | URL
아마 게이 작가라 국내 출간이 어려울 지도
모르겠습니다.
크리스 아이셔우드의 경우를 봐도 그렇구요.

cyrus 2017-11-03 21: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방금 생각났는데, 우리나라에 L.P. 하틀리의 작품이 제대로 번역되어 나온 적이 없어요. 하틀리의 단편소설이 수록된 앤솔러지를 가지고 있어요.

레삭매냐 2017-11-03 22:57   좋아요 0 | URL
처음 들어보는 작가라 위키피디아에서
찾아 봤네요.
국내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작가인
모양입니다.
 
남한산성 - 개정판
김훈 지음, 문봉선 그림 / 학고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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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래 전에 친하게 지내던 동네서점을 운영하던 주인장 형님의 추천으로 김훈 작가의 <남한산성>을 지인에게 선물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정작 나는 <남한산성>을 읽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한명기 교수의 역사평설 <병자호란>을 읽었다. 그리고 오래 전 <남한산성>에 대한 추억이 떠올랐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나의 독서 방향계는 그렇게 <남한산성>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서 읽어 보라고.

 

기대했던 대로 김훈 선생의 글은 간단하면서도 명료했고, 군더더기가 없이 깔끔했다. 조선 시대 최고의 비극이라고 말할 수 있는(임진왜란 때도 조선의 국왕이 왜적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다) 병자호란을 맞아 남한산성에서 기약 없는 농성전을 벌이던 이야기를 김훈 작가는 명징하게 다뤘다.

 

어떻게 해서 병자호란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역사평설 <병자호란>을 통해 알게 되었기에, 본질에 더 다가간 느낌을 받았다. 요순의 마음을 가졌지만, 실천력이 없었던 숙부의 자리를 찬탈하고 보위에 오른 임금 인조는 다가오는 전쟁에 대한 아무런 준비도 없이 그저 당장 닥친 화만 피하면 된다는 식의 임기응변에 따라 종래의 전략대로 남한산성으로 파천한다. 나머지 조정의 신료와 강빈 그리고 대군들을 강화도로 보내 권토중래를 노렸지만, 이 회피전략은 이미 청의 대칸 홍타이지에게 노출되었고 금성탕지라고 생각했던 강화도마저 함락되면서 홀로 남은 산성에서 인조는 버틸 재간이 없었다.

 

그야말로 국가와 조정의 운명이 풍전등화 같은 상황에서도 주화파와의 척화파의 말[]전쟁은 끊이지 않는다. 인조를 모시는 중신 중에서 그나마 예조판서 김상헌과 남한산성의 수비를 맡은 수어사 이시백 정도가 백성들의 고초를 초무하고자 할 뿐, 총사령관이라고 할 수 있는 최고실력자 영의정 김류는 인조를 정점으로 하는 기득권층의 정권보위에만 신경 쓸 따름이다. 이런 상황에서 군령이 제대로 먹힐 리가 없으며, 이백년 종사 운운하며 어찌 명나라에 대한 재조지은을 저버리고 오랑캐에게 항복할 수 있냐고 외치던 양반 사대부들 역시 살기 위해 청나라 병사들에게 투항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토록 강력하게 척화를 주장하던 당하관들의 야음을 틈탄 남한산성 탈출사건은 집권층의 위악을 그대로 드러내는 실례였다. 역사는 희비극으로 반복된다고 했던가, 우리 현대사에서도 낯설지 않은 장면이었다.

 

오히려 수어사 이시백의 명에 따라 눈비에 젖어가며 성첩을 지키는 향병과 병졸들 그리고 김훈 작가가 창조해낸 대장장이 서날쇠의 활약이 숭명배청 사상으로 똘똘 뭉쳐 번국이 멸망의 위기에 빠졌음에도 속수무책인 명나라에 대한 의리만이 살 길이라고 외쳐대는 조선 지식인들의 왜곡된 인식과 극명하게 대비되고 있다. 대표적인 척화론자 김상헌은 소설 <남한산성>의 한 주역으로 등장하는데, 초반에 송파 나루를 건너면서 청병의 추격을 두려워하면서 자신을 도강시켜준 늙은 사공에게 비정한 칼질을 마다하지 않는다. 국가의 근본이 백성이라고 하면서, 눈앞에 닥친 위험 때문에 근본을 잃는 장면이야말로 희대의 국난이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로 다가온다. 뒤이어 등장시킨 사공의 딸 나루의 존재는 끝없이 김상헌의 양심을 자극하는 매개체로 작용한다. 어쩌면 절대군주 시대, 관료의 한계라고 해야 할까.

 

척화파의 거두가 김상헌이었다면, 그 대척점에서는 반정공신이자 주화파의 거두 이조판서 최명길이 있다. 모든 것이 절망적이니, 차라리 명나라에 대한 대의를 지키자는 젊은 당하관들의 거듭된 비난과 나라 팔아먹은 만세의 역적이라는 오명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왕실과 종사를 지킬 궁리에 염두가 없는 최명길 역시 김상헌 못지않은 애국자가 아니었을까. 그의 말대로 죽음이 오히려 쉽고, 견딜 수 없는 치욕을 견디는 것이 더 어려운 선택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그는 담담하게 홍타이지에게 보내는 국서를 직접 작성한다. 그와 함께 선발된 다른 벼슬아치들이 갖가지 핑계를 대며 후대에 오명으로 남을 항서 작성을 요리조리 피하는 장면에서는 헛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 역시 화친에 극렬하게 반대한 척화파 대신들을 체포해서 삼전도로 압송하라는 홍타이지의 명령에 죽음을 무릅쓰고, 스스로 나선 윤집과 오달제 같은 삼학사의 충절과 의기를 상대적으로 돋보이게 하려고 작가가 야심차게 계획한 하나의 문학적 장치는 아니었을까.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위치에 있던 영상 김류는 인조의 정치적 동지이자, 당대 최고의 실권자로 병자호란 발발에 엄중한 책임을 피할 수가 없는 지도자였다. 자신은 수어사 이시백의 실수에 대해 추상같은 책임을 물으면서도, 정작 자신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통치하되 어떤 정치적 책임도지지 않는다는 위정자의 모습이 어른거린다. 훗날 강화도 방어에 실패한 자신의 아들 김경징이 대간의 탄핵을 받아 사사될 때 과연 어떤 심정이었을지 궁금해진다. 철저한 기득권 옹호론자였던 그는 군졸들에게 지급된 가마니를 풀어, 쓰지도 못하는 군마에게 먹일 말죽을 만드는 기행을 일삼는다. 척화와 주화 사이의 끊임없는 신경전이 벌어질 때도, 냉정한 중재자로서의 모습 대신 그저 사태를 모면하려는 발언만 생산해내는 무능력한 지도자의 전형이었다. 이런 이들이 국사를 맡았으니 국가가 망국의 위기에 빠지지 않는 게 오히려 신기할 따름이다.

 

김훈 작가는 자신 특유의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문장으로 농성에서 출성에 얽힌 복잡다단한 감정의 군상을 절묘하게 그려냈다. 청병에게 물샐 틈 하나 없이 포위된 상황에서도, 겨울이 가고 봄이 오면 농사짓는 고민을 하는 시골의 촌로들에 대한 묘사, 비축한 군량미가 떨어져 가자 임금에게 소소한 사항까지 보고(밴댕이를 반으로 가를까요)하면서 주상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관량사의 보고, 수라상궁이 모든 물자가 부족한 가운데 주상과 세자를 위해 밥을 짓고 찬을 마련하는 장면에 대한 기술 등은 병자호란이라는 국난에 마주하고도 먹고사는 문제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는 보통 백성들의 고민(민생고)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소설의 곳곳에서 보이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다양한 관찰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묘사 역시 일품이다. 남한산성 곳곳에 대한 고증을 통한 정밀하면서도, 전체를 조망하면서 쓴 듯한 기술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 불쑥 승지에게 송파강이 녹았느냐고 묻는 인조의 선문답 같은 질문을 통해, 억조창생을 위해 그렇게 오랑캐라고 무시하던 청나라 황제 홍타이지에게 치욕적인 항복의 예를 올려야 하는 인조의 고뇌를 간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성의 함락을 코앞에 둔 정축년 원단에 여전히 상국으로 모시는 명나라 황제를 위한 망월례 가운데 인조가 무도(舞蹈)를 행하는 장면은 그야말로 희비극에 가까웠다. 오랑캐의 침략으로 국가 존망의 위기를 마주하고도 부질없는 대의명분에 사로잡힌 자존감 강한 사대부들의 절망의 노래처럼 들릴 뿐이다. 작가는 치욕과 자존이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데, 나같은 오활한 백성들은 이런 옛 일들을 되돌아보며 오늘의 경세가들이 지향하고 받들어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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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1-03 0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잘읽었습니다. 나중에 무능하고 비정한 인조는 볼모로 끌려갔다 돌아온 소현세자를 독살합니다.물론 실록에는 학질에 의한 사망으로 기록되지만,.소현세자의 죽음은 가장 안타까운 사건이죠.그가 왕이됐다면...역사에는 가정이 없죠. 착한 백성들만 불쌍한 거예요.

레삭매냐 2017-11-03 09:11   좋아요 1 | URL
조선 시대 역대급 모지리 군주는 선조와
그의 손자인 인조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에 걸친 전란으로 국토가 황폐화되고
수많은 백성들이 죽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모습을 후대의 못난 위정자들이 보고
배운 게 아닌가 싶습니다.

단발머리 2017-11-03 1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한산성> 예전에 읽어서, ‘읽었다‘는 사실만 기억하고 있는데, 레삭매냐님 글 읽고나니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김상헌의 충정도 나라를 위한 것이었지만, 결국 나라와 백성을 위한 길은 최명길의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두 의견 다 똑같이 애국애의 발로였다, 라는 해석에 대해 전 동의하지 않습니다.
물론 더 나쁜 김류류도 있지만요.
잘 읽고 배우고 갑니다.^^
오늘의 단어 : 금성탕지 = 철옹성

레삭매냐 2017-11-03 10:58   좋아요 0 | URL
숭명배청을 모토로 삼은 사대주의자 김상헌
에게 당시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던
중원의 왕조교체라는 세계사적 흐름을 판단
할 수 있는 능력이 부재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망해가는 명나라 대신 실리외교를 펼쳤어야
했는데 광해군 정권을 무너뜨린 서인집단이
전 정권의 이단적 외교정책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없었다는 맹점도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대부-기득권층은 항상 말로는 백성을 위한
다고 하지만 실상 역사에서 그랬던 적이 있
었나요.
 
배반
폴 비티 지음, 이나경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지난 달 가즈오 이시구로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소장하고 있는 그의 책들을 모두 읽었다. 없는 책들은 도서관에 가서 빌려다 읽었다. 이시구로 선생의 모든 책들이 기존에 국내에 출간되어 있는 덕분에 놀라울 정도의 매출신장에 출판사는 기쁨에 찬 비명을 질렀을리라. 그리고 얼마 뒤, 맨부커상이 발표되었는데 우리에게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그리고 많은 책들이 발표되지 않은 작가들의 작가 조지 손더스가 수상했다. 게다가 그 수상작은 아직 번역 중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반응이 시큰둥할 수밖에. 아마 그리고 <바르도의 링컨>은 진입장벽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작년 맨부커 수상작인 폴 비티의 <배반> 역시 마찬가지다. 다 읽는데 한 보름 정도가 걸린 것 같다. 물론 그 동안 다른 책들에 외도를 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역사를 관통하면서 남부 캘리포니아의 정서를 한가득 담은 니거 위스퍼러(흑인을 잘 다루는 조련사) 미(Mee)의 인종차별에 대한 역발상으로 범죄의 온상인 자신의 고향 디킨스 시를 구하겠다는 신념에 대한 이야기는 낯설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 읽고 나니 성취감 하나는 끝내준다. 아, 나도 드디어 맨부커상 수상작을 읽었어라는. 그동안 수많은 맨부커 수상작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경험을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까. 다음으로 이언 매큐언의 <속죄>을 마저 읽으려고 가방에 넣어 두었다.

 

소설 <배반>은 주인공 미가 도널드 트럼프의 위대한 나라 미국 대법원에서 철폐된 노예 소유와 연방범죄에 해당하는 인종차별로 수정헌법 몇 개 조항(아무래도 우리나라도 아닌 미국법이다 보니 못 외우겠다)을 위반한 혐의로 항소심에 처해졌다. 형사범죄에 있어 능수능란한 변호사 햄프턴 피스크를 기용해서 자신의 변호에 나섰지만 미의 운명은 그야말로 바람 앞의 촛불(candle in the wind by Elton John) 같은 신세다. 그런데 디킨스 출신 농부 니거라고 자처하는 미는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추상 같은 대법원 판사들 앞에 서게 된 것일까.

 

미국 흑인 민권운동의 역사를 꿰뚫고 있는 폴 비티는 어떤 방식으로도 해결될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인종차별과 흑백통합이라는 미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해묵은 주제에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역발상으로 도전장을 날린다. 아무리 흑인 대통령이 출현했지만, 그것은 그 때 뿐이라는 것이다. 다음 주자가 반동적 트럼프라는 점이 시사하는 바는 익히 우리가 알고 있지 않은가. 이럴 바에야 차라리 적극적인 인종분리가 답이 아닐까라고 생각한 니거 위스퍼러 미는 인근 학교에서 실시한 진로의 날 행사를 통해 깨닫게 된다. 그러니까 거의 인구의 전부를 차지하는 지금은 지도상에서 사라져 버린 디킨스 시에서 백인들과의 일상을 배제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버스에서도, 그리고 학교에서도. 인종문제가 그 어느 문제보다 민감한 현안이 된 미국 사회에서 과연 이런 시도가 가능할까. 그래서일진 모르겠지만, 대머리 니거 위스퍼러 부근에 있는 이들은 그를 가차없이 셀아웃(sellout, 배신자)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발칙한 니거 미의 존재만으로도 소설은 버거워 해야 마땅할 텐데, 특이한 캐릭터 두 명을 더 추가한다. 예전에 한자락하던 <꼬마 악당들>에 출연하던 호미니 젠킨스라는 늙은 흑인이 자살하려던 장면을 목격한 미는 그를 죽음에서 구해낸다. 그랬더니만 이 노인네 흑인이 대뜸 미의 노예가 되겠다고 자청하지 않는가. 그가 기소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다. 수박과 닭튀김을 즐기는 흑인들에게 홈스쿨링 출신의 미는 또 하나의 쾌락을 선사하는데 그것은 바로 마리화나다. 직접 수경재배한 마리화나를 거룩한 대법원 법정에서 마구 피워대는 장면에서는 정말 할 말을 잃어 버렸다. 잠시 이야기가 세어 버렸는데, 다음 주자는 포이 체셔다. 이 파렴치한 남자는 미의 아버지 F.K. 미의 아이디어를 도용하고, 기존 명작들을 자신만의 패러디 기법으로 창작해서 거액을 벌어들이는 부자가 되었다. 그것도 잠시 뿐이었지만, 그는 주인공 미에게 총쏘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소설 <배반>은 그야말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무공 같은 탄력을 자랑한다. 아무래도 미국 흑인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보니, 소설의 컨텐츠는 무지한 독자에게 부유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십대 릭 루빈이 런디엠씨와 비스티 보이즈로 대표되는 랩 장르를 메이저 씬에 등극시켰다는 유용한 정보는 반가웠다. 폴 비티는 그리고 교육이야말로 인종 간의 장벽을 허물고, 계급 이슈를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응, 누가 그걸 모르냐고?)이라고 주구장창 썰을 풀어대고 있다. 어쨌든 내가 소설 <배반>을 읽으면서 결정적으로 느낀 핵심 주제는 미국 사회에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인종통합은 흑인들의 잿빛 피부를 탈색시켜서 흰색으로 만들지 않는 이제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이었다. 안되는 것을 억지로 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인종 어젠더를 다시 만들어야 할 것이다. 문제는 지금 그 시대가 트럼프가 통치하는 시대라는 점이겠지만.

 

폴 비티가 구사하는 언어 유희와 현실과 가상의 교차된 직조 방식이 개인적으로 좀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말 그대로 작가는 ‘블랙 유머’의 원조처럼 보인다. 어찌나 그렇게 냉소적이던지. 곳곳에서 빵빵 터지는 빛나는 유머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작년에 사둔 원서를 대조해 보고 싶은 유혹을 강렬하게 느꼈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책들 때문에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소설에서 가장 재밌었던 부분은 인근 채프 중학교에서 치른 진로의 날 행사에서 실라 클라크와 더불어 치른 송아지 거세 장면이었다.

 

지난 1996년부터 소설을 발표해온 폴 비티는 20년 동안 네 편의 장편소설을 썼다. 그 중에 맨 끝에 있는 <배반>이 맨부커상의 위업을 바탕으로 이번에 출간된 것이다. 그런데 진입장벽이 생각보다 높았다. 미국 사회에 노골적이고 만연한 인종차별을 직접 체험하지 못해본 독자의 피상적 인식, 남부 캘리포니아 흑인 서브컬처에 대한 낯설음(수많은 지명이 주는 내면의 디테일을 알 도리가 없다) 그리고 복잡하기 짝이 없는 미국 사법제도에 대한 이해부족을 그 이유로 꼽고 싶다. 다른 책들은 또 어떨까? 개인적으로 데뷔작인 <화이트 보이 셔플>에 관심이 간다. 악전고투 끝에 다 읽고 나니, 성취감에 그저 황홀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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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 2017-11-02 1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직 읽지 않은 책이지만 일고 싶은 충동을 자극한다

레삭매냐 2017-11-02 13:43   좋아요 0 | URL
극단적 냉소주의라는 양념이 아주 일품이랍니다.
읽어볼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sprenown 2017-11-02 13: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언제 악전고투 끝에 다 읽고, 성취감에 황홀할 지경에 이를수 있을려나?^^

레삭매냐 2017-11-02 13:44   좋아요 0 | URL
한동안 맨부커상 수상작에 도전해 보겠다고
컬렉션과 독서를 병행했었는데 저랑 잘 맞지
않는 것 같더라구요.

그런데 이번 책은 나름 재밌게 읽어서 다시
한 번 도전의지를 불태워 보려구요 :>

얄라알라 2017-12-18 23: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이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레삭매냐 2017-12-19 09:0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부족한 글인데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