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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리커버 특별판, 양장) ㅣ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컬렉션
하인리히 뵐 지음, 김연수 옮김 / 민음사 / 2017년 9월
평점 :
품절
책을 통해 책을 읽게 된다. 유시민 선생의 <청춘의 독서>에서 독일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를 알게 됐고, 연쇄사슬처럼 또 그렇게 책을 사들였다. 아, 책을 보기 전에 1975년에 역시 독일 출신의 영화감독 폴커 슐렌도르프가 원작을 각색해서 만든 동명의 영화를 먼저 봤다. 그래서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원작 읽기는 마치 바둑의 복기를 연상시킨다.
하인리히 뵐은 전후 독일 문학계를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명으로 실제 지식인의 삶이 어떡해야 된다는 전범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1917년생으로, 2차 세계대전을 병사의 신분에서 몸소 체험한 뵐은, 일련의 작품들을 통해 전후 독일의 모습과 세계를 놀라게 한 경제성장에 따른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자신의 펜 끝에 담아냈다. 특히 1974년에 출간된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1968년을 기점으로써 서구사회에 충격을 주었던 학생운동과 1970년대 독일의 고도 경제성장의 그늘에서 계급적 갈등이 첨예하게 충돌하면서 파생된 바더마인호프 그룹(RAF 일명 적군파)의 활동을 그 사실적 기반으로 삼고 있다.
책의 제목에서도 보여 주다시피, 주인공은 27살 난 카타리나 블룸이라는 미모의 가정관리사다. 일단의 사건을 통해 그녀가 검찰과 경찰로 대표되는 권력과 황색 언론의 선정주의적 보도 행태로 말미암아 개인의 사적 생활이 침해되고, 개인의 명예가 훼손되는 비극적 사건을 보고서라는 형식으로 철저하게 객관적 견지에서 작가는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요소로 부제로 따라붙은 <혹은 폭력은 어떻게 발생하고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가>를 간과할 수가 있는데, 이 부제 역시 제목만큼이나 중요하게 작동을 하니 책을 읽으면서 꼭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라인 지방의 여성 카니발이 벌어지던 2월의 어느 날, 주인공 카타리나 블룸은 자신의 대모 볼터스하임 여사 집에서 벌어진 댄스파티에서 루트비히 괴텐이라는 남성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서로 운명적인 이끌림을 느끼고, 카타리나의 집에 가서 하룻밤을 보낸다. 다음날, 무장경찰들이 카타리나의 안온한 일상 속으로 뛰어든다. 괴텐은 은행강도로 아주 흉악한 현상수배범이며, 그를 숨겨준 혐의로 카타리나를 경찰서로 연행한다.
사건 발생에서부터 경찰은 그녀가 무슨 혐의로 체포되었는지 그 이유도 알려 주지 않으면서 최초의 인권 유린을 시작한다. 경찰은 그녀에게 수색영장 같은 공식문서도 제시하지 않은 채, 수배 중인 범인의 도주를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피의 사실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동조자로 몰고 간다. 게다가 그 시점에서 선정적 보도 형태로 유명한 <차이퉁>지에서는 은행강도의 정부(情婦)가 체포됐다는 기사에 카타리아를 실명으로 보도하면서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을 무시한 채, 비윤리적인 황색 보도의 열풍을 당긴다.
이미 카타리나의 체포 과정에서 그녀의 인격과 사생활을 모욕하는 발언을 했던 사건 담당 바이츠메네 수사과장은 물론이고, 사건을 맡은 하흐 검사 역시 그녀에게 적대적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진술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들은 어김없이, <차이퉁>지의 퇴트게스 기자에 의해 윤색과 재가공의 과정을 거쳐 자극적으로 공개된다. 이 과정에서, 과연 어느 특정 계급과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언론이 다루는 사실이 과연 진실일까 하는 의문에 사로잡히게 된다.
<차이퉁>과 퇴트게스는 카타리나와 관련된 이들이라면 전 남편은 물론이고, 암 수술을 받고 회복하고 있는 중인 카타리나의 어머니 마리아에까지 찾아가 자신들이 필요한 정보를 캐낸다. 절대 면회가 금지되어 있는 환자의 병세 따위는 퇴트게스에게 중요하지 않다. 국민의 알 권리라는 허울 좋은 핑계로, 초법적 언론의 비윤리적 행태는 그 위악을 발휘한다. 개인의 사적 범위에 들어가는 이성관계는 물론이고, 도로주행 거리와 재정 상태는 물론이고, 그녀를 가정관리사로 채용한 현 고용주 블로르나 변호사와 그 가족은 물론이고 전 고용주들까지 모두 경찰의 수사 선상에 오르게 된다.
검경과 언론의 이런 마녀사냥은 오래전 우리가 목격했던 전직 대통령에 대한 이들의 공조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가 있었다. 국민이 정작 알고 싶어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눈을 감던 이들이, 마치 하이에나처럼 은퇴한 전직 대통령에게 달려들어 물어뜯고, 생채기를 내는 모습에서 사회적 공기(公器)로서의 제 본분을 망각한 족벌언론의 모습은 영화와 책을 통해 만난 <차이퉁>의 재현에 다름이 아니었다.
사실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바더 마인호프 그룹의 테러 용의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자신의 사회적 명예의 추락을 경험했던 페터 브뤼크너 교수의 실화를 소설로 재구성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언론재벌 악셀 슈프링거 그룹의 일간지 <빌트>가 바로 <차이퉁>의 롤 모델이라고 한다. 책의 서두에서 뵐이 밝히듯이, 실제의 <빌트>와 유사성은 ‘불가피’하다는 선언을 한다. 올해 개봉된 울리 에델 감독의 영화 <바더 마인호프>에서 청년들이 습격해서 불태우는 언론사가 바로 예의 <빌트>지였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뵐이 왜 카타리나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았는지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됐다. 여성에 대한 일반적 동정심과 사회적 약자를 소설의 전면에 내세운 작가의 결정에 저절로 수긍이 갔다. 가정관리인으로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던 이혼여성이 어느 날 자신에게 닥친 이 불행한 사태 가운데서, 검경으로 대변되는 권력의 무자비한 사생활 침해와 보이지 않는 언론의 폭력에 사실 효과적으로 대항할 방법은 전혀 없다. 더 무서운 것은 그녀가 살던 아파트 주민들과 익명의 전화 편지 등으로 대변되는 사회적 폭력이었다. 감수성이 예민하고, 조용한 성격의 카타리나는 이 시련을 통해, 국가가 자신을 전혀 보호해줄 의지도 그리고 그런 노력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스스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게 된다. 이야기는 다시 처음에 잠깐 언급했던 폭력의 발생과 결과로 돌아간다.
사실 다른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들의 글을 읽어 보았는데, 너무나 자의적인 그들만의 문학세계가 선뜻 마음속으로 파고들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다분히 현실참여적인 문제작들을 펴낸 것으로 유명한 하인리히 뵐의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는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달하고 있다. 새로운 천 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개인의 자유와 명예에 대한 이야기와 현실에서 마주하게 되는 저널리즘의 윤리와 방향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여준 수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