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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라스 캐슬
저넷 월스 지음, 최세희 옮김 / 북하우스 / 2017년 8월
평점 :
미국 출신 저널리스트 저넷 월스의 <더 글라스 캐슬>을 읽었다. 예전에 한 번 <유리 성>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었다고 한다. 왜 다시 이 책이 출간되었나 싶어서 위키피디아의 도움을 받아 검색해 봤더니 올해 여름 저넷 월스의 이 특별한 원작을 바탕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개봉됐기 때문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리 라슨, 네이오미 와츠 그리고 우디 해럴슨이 열연한 영화의 트레일러를 보니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책을 읽다 보니 프로스펙터라는 장비로 금을 찾겠다는 허황된 꿈을 좇는 캐릭터로 렉스 월스 역에 우디 해럴슨만한 배우가 없겠구나 싶었다. 적어도 캐스팅은 완벽했다.
성공한 저널리스트로 뉴욕에 거주하는 화자는 이스트빌리지에서 쓰레기통을 뒤지는 어머니 로즈메리를 보고 외면한다. 왜 성공한 딸은 노숙생활을 하는 어머니를 외면하는 걸까? 저자는 모든 것이 시작된 사막에서의 유년 시절로 독자를 인도한다. 세상에 두려울 게 하나 없는 저넷의 아버지 렉스 월스는 와이프 로즈메리와 운명적 만남 끝에 결혼한다. 월스 가족에게 방랑은 천명 같은 것이었을까. 애리조나 피닉스를 필두로 해서, 캘리포니아의 숱한 탄광들, 배틀마운틴(네바다) 그리고 마침내 웨스트버지니아 웰치에까지 이르는 여정이 월스 가족을 기다리고 있다.
저넷의 부모는 로리와 저넷, 브라이언 그리고 모린까지 네 명이나 되는 자식들에게 안정된 가정을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러기에 렉스와 로즈메리에게 세상은 너무 넓고 할 일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모양이다.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유한 로즈메리의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겠지만, 자존감 하나로 세상과 맞짱 뜨는 아버지 렉스(라틴어로 왕을 뜻한다)는 신명 나는 욕설 배틀을 장모님에게 선사한다. 물론 간단치 않은 성격의 장모님도 불같은 성격으로 배틀에 나선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무려 네 명의 아이를 거느린 가장으로 렉스는 정말 무능했다. 아니 천성적으로 타고난 방랑벽 때문일까? 한 직장에 오래 버틸 수가 없는 숙명을 타고난 모양이다. 집에서 자신이 벌어올 일용할 양식을 기다리는 가족들을 위해서라도 성질을 죽이고, 다달이 월급을 집에 가져다 바치는 일 따위는 관심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 덕분에 로리와 저넷, 브라이언과 갓난 모린은 숱한 날들을 굶주림으로 보내야만 했다. 삶이 모험이고, 자연과 더불어 사는 친환경적인 삶에 대한 적확한 삶의 방식을 아이들에게 가르친 점은 부모로서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아이들이 추위에 떨고, 굶주림에 시달리게는 하지 말아야 하지 않았을까. 렉스가 어디서 가져온 마가린을 그대로 먹는 로리와 저넷의 모습에서, 그리고 이웃집에 먹을 걸 도둑질하러 들어갔다가 1갤런에 해당하는 피클을 강제로 먹고 토하는 브라이언의 모습은 참담하게 다가왔다.
또 한편으로 가장 사랑하는 딸 저넷에게 “금성”을 선물해 주고,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알려 준다며 총쏘기를 가르쳐 주는 아버지 렉스. 자신의 자식들에게 손끝 하나 대면 용서하지 않을 거라던 아버지는 사랑한다고 말하던 딸 저넷을 이용해서, 술집에 가서 내기당구로 돈을 벌기도 한다. 그러다가 큰일이 날 뻔도 하지만, 저넷에게 수영을 가르쳐 줄 때처럼 스스로 환난을 벗어나올 줄 알았다고 했던가. 도대체 오락가락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종잡을 수가 없다. 빌리 딜에게 진짜 총을 쏴서 다시 야반도주에 나서게 되는 월스 가족들. 그나마 안식처로 보이던 애리조나 피닉스를 떠나 안착한 렉스의 부모님이 사는 동네 웨스트버지니아의 웰치에서도 그들의 생활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안정을 찾나 싶었던 웰치에서 저넷을 비롯한 아이들은 굶기를 그야말로 밥먹듯 하고, 쓰레기통을 뒤져 일용할 양식을 구한다. 미국이 베트남전과 워터게이트의 악몽에서 벗어나 한창 신자유주의에 세례를 받고 있던 시기에도 월스 가족은 이런 극심한 차원의 가난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천장에서는 비가 줄줄 새고, 혹독한 겨울에는 난방을 위해 석탄을 살 돈이 없어서 그대로 추위에 노출되고, 중고할인점에서 산 싸구려 옷들을 입고 지내면서도 주눅 들지 않고 성공을 구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결국 저넷은 언니 로리와 결탁해서 가난으로 점철된 지긋지긋한 웰치를 떠나 뉴욕으로 갈 계획을 세우기 시작한다. 그들이 돈을 모으는 저금통에 ‘오즈’라는 이름을 붙인 사실이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브라이언까지 합세한 돈모으기 운동은 아버지 렉스의 약탈로 종언을 맺는다. 생전 아버지에게 화를 내지 않던 로리 언니조차 분노에 휩싸여 아버지에게 막말을 내뱉지 않았던가. 아버지 렉스와 웰치에서 사는 동안 더 이상의 비전이 없다는 사실을 마침내 깨달은 저넷은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뉴욕으로 가서 새출발을 결심한다. 렉스가 꿈꾸던 유리성 역시 말 그대로 ‘글라스 캐슬’처럼 산산조각이 나버린 것이다.
로리와 저넷, 브라이언 그리고 모린이 순서대로 뉴욕에 둥지를 틀고, 저넷은 버나드 대학에 진학해서 고등학교 시절부터 꿈꾸어 오던 저널리스트의 꿈을 이어간다. 월스 가족에게 뉴욕은 그야말로 아메리칸 드림이 시작되는 그런 장소였던 모양이다. 물론 모린이 엄마 로즈메리를 칼로 찌르는 그야말로 막장 드라마 같은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지만, 월스가의 아이들은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어엿하게 성공을 거둔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귄 잘 나가는 중소기업가 에릭 골드버그와 결혼한 저넷은 엄마와 아빠는 뉴욕에서 노숙자 생활을 하는데 자신만 호화호식하면서 사는 게 아닌지 양심을 가책을 느끼기도 한다. 동시에 엄마가 외할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텍사스에 100만 달러에 달하는 땅이 있다는 사실에 좌절하기도 한다. 조상으로부터 상속받은 그만한 재산이 있었다면 그동안에 자기 형제들이 가난으로 고통받은 건 다 무엇이었던가. 개인적으로 저넷 월스가 아버지 렉스와 엄마 로즈메리와 의절하지 않고 끝까지 잘 지낸 점이 그저 놀라웠다. 내가 그녀였다면...
에릭과의 8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낸 저넷은 자신을 알아주는 소설가 존 테일러와 새출발에 나선다. <폴링>이라는 자신의 첫 번째 결혼생활에 대한 글을 쓴 존 테일러는 미국 문단에서 그렇게 유명한 작가가 아닌 모양이다. 댓글을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넷 월스의 <더 글라스 캐슬>을 읽고 나서 호기심에 그의 책을 찾아 읽은 모양이다. 그리고 대개가 부정적인 리뷰였다.
개인적으로 무책임했던 아버지 렉스보다, 화가이고자 했던 자유인 로즈메리에게 연민이 갔다. 자신의 인생을 추구하고자 했지만, 네 명이나 되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은 그녀로 하여금 화가의 꿈을 쫓는 대신 어머니의 유산으로 취득한 교사자격증을 가지고 렉스를 대신해서 가장이 되어 교사가 되어 돈벌이에 나서야했다. 가톨릭 교도로 뚜렷한 주관과 신념을 가지고 있던 로즈메리는 자식들에게 자신이 추구하는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자 노력했다. 물론 그녀와 남편 렉스가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자식들을 돌보았다면 좋았으련만 그들은 균형을 몰랐던 것 같다. “인생은 비극과 코미디로 점철된 드라마”라는 멋진 말도 그녀가 하지 않았던가.
저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칼럼니스트로 성공한 저넷 월스의 솔직담백한 회고록에 대중은 엄청난 반응을 보였다. 그녀의 회고록 <더 글라스 캐슬>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자그마치 260만부나 되는 책이 팔리고, 이어 영화화까지 되었다. 어쩌면 숨기고 싶은 지난날의 과거사를 당당하게 드러내고, 책으로 만들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높이 평가해야할 것 같다. 자기 내면의 고통들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