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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달콤한 고통 ㅣ 버티고 시리즈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오픈하우스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탐 리플리 후에 데이비드 켈시가 있었다. 우리에게는 리플리 시리즈로 유명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이토록 달콤한 고통>을 읽었다. 아마 하이스미스는 리플리가 가진 두 개의 자아, 진짜 나와 내가 되고 싶어하는 자아라는 익명성을 가진 나에 대한 문학적 탐구를 이 작품 <이토록 달콤한 고통>에서 변주 반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초반에는 몰입이 좀 쉽지 않았지만, 주인공 데이비드 켈시의 악마성이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중후반으로 갈수록 소설의 속도감은 더해져 갔다. 말미에서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었다.
소설의 시공간적 배경은 1950년대 후반, 미국 뉴욕 주의 가상의 공간 프로스버그다. 능력있고 호감 가는 우리의 주인공 데이비드 켈시 씨는 체스윅 섬유공장의 화학 관련 학위를 세 개나 가진 수석 엔지니어다. 하숙집에 살면서 주말마다 차를 몰고는 어머니가 계신 요양원을 찾는 아주 바람직한 청년이다. 서부 캘리포니아 라호이아 출신의 켈시 씨는 또래의 청년들처럼 술을 퍼마시고, 여자들과 어울려 허랑방탕한 삶을 보내는 대신 여가 시간에는 책을 즐겨 읽는다. 자, 여기서 독자는 작가가 야심차게 준비한 반전과 조우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데이비드의 어머니가 14년 전에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아니 그렇다면 데이비드는 주말마다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한단 말인가.
그걸 알려면 데이비드의 연애사를 독자는 파악해야 한다. 그는 2년 전에 만난 애나벨을 사랑한 나머지, 발라드라는 곳에 아무도 몰래 윌리엄 뉴마이스터라는 가명으로 모기지로 집을 샀다. 정성을 들여 애나벨과의 공간을 준비한 것이다. 자, 이제 두 번째 반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시라. 그 애나벨은 다른 남자 하트퍼드에 사는 제럴드 딜러니와 결혼했다. 소설의 제목에서 가르키는 달콤한 고통은 바로 데이비드의 애나벨에 대한 열렬한 짝사랑의 고통이다. 이 지점에서 데이비드가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았다면 좋으련만 그는 애나벨에게 수시로 편지를 하고, 전화를 해서 현재의 고통스러운 결혼생활을 끝내고 자신과 새출발하자고 이루어질 수 없는 제안을 한다.
문제는 애나벨은 데이비드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러니 두 남녀의 접점은 이루어질 수 없다. 게다가 데이비드 주변에는 그를 열렬하게 사랑해 마지않는 에피 브레넌이라는 젊은 아가씨가 있다. 데이비드를 사모한 나머지 그의 초상화까지 그리는 에피, 알다시피 이 초상화가 나중에 한 몫 단단히 할 것이다. 위성처럼 자신의 주변을 빙빙 돌며 자존심을 무릅쓰고 구애하지만, 애나벨과의 상상의 사랑에 빠진 데이비드에게 그녀의 존재는 그저 유령일 따름이다.
짝사랑 정도라면 누구에게 해가 될까 싶었지만, 상대방에 대한 편집증적 사랑과 망상은 결국 파국을 잉태한다. 에피에게 물어 데이비드 켈시, 아니 윌리엄 뉴마이스터의 거처를 알아낸 애나벨의 무능력한 남편 제럴드 딜러니는 총을 들고 자기 아내 주변에서 얼쩡거리지 말라는 경고를 하기 위해 데이비드를 찾아나선다. 데이비드와 제럴드는 옥신각신하던 와중에 불의의 사고로 그만 제럴드가 죽고 만다. 자신의 진짜 이름 대신 윌리엄 뉴마이스터라는 가명으로 경찰에 출두한 데이비드는 자신을 감추고, 뉴마이스터의 정당방위였다고 경찰에게 진술한다. 그렇게 한 번 어긋나기 시작한 자아의 이중성은 이어질 더 큰 비극의 전주곡이다.
책을 읽는 동안, 데이비드 켈시의 심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켈시의 애나벨에 대한 감정은 지극히 일방적이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실 데이비드 켈시는 애나벨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다. 그녀가 무슨 색깔을 좋아하는지, 무슨 음식을 좋아하는지. 그저 그녀를 사랑하는 자신의 감정을 극대화시키고 자신의 사랑을 애나벨에게 강요할 따름이다. 그러니 남편을 잃은 애나벨이 데이비드에게 갈 리가 없지 않은가. 자신은 장애물이 사라졌으니 애나벨과 결혼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하지만 결정적 오산이었다.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했던가. 애나벨과 결혼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데이비드 켈시는 애나벨의 주변에서 그녀를 마크하기 보다 돈을 벌기 위해 동부에 위치한 체스윅 섬유공장을 선택했다. 사실 그전에 그녀에게 사랑한다는 고백도 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애나벨은 다른 남자와 만나 신속하게 결혼했다. 잘못된 결정이 만들어낸 후과를 뒤집기에 데이비드는 너무나 부족한 남자였다. 시간에 쫓기는 내린 결정들은 모두 잘못된 것이었고, 에피 브레넌이나 자신의 작은 아버지의 충고는 전혀 듣지 않았다. 이미 이성적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한 남자의 연이은 악수(惡手)에 한숨만 나왔다.
거짓말로 주변의 호감을 산 데이비드 켈시 씨의 위선이 밝혀지자, 호의적 감정들은 바로 인출된다. 그나마 에피 브레넌만이 그의 편을 들지만, 그녀 역시 비극적 희생양이 되고 만다. 어떻게 보면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데이비드에게 매달리는 에피 브레넌이나 애나벨 넌 꼭 나랑 결혼해야 돼라고 주장하는 데이비드 켈시 씨가 보여주는 일방적 감정의 표출은 동일했다.
1950년대라는 점을 고려한다고 하더라도, 데이비드 켈시와 윌리엄 뉴마이스터가 동일한 인물이라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허둥대는 경찰 대처에 대한 묘사는 좀 아쉬웠다. 가공의 인물을 내세워 대출을 받고 집을 사는 게 그 정도로 쉽단 말인가. 아마 지금 같으면 어림도 없겠지만, 반세기도 전의 일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애나벨이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데이비드의 감정을 거절했더라면 파국적 결말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어차피 그래봐야 소설에 대한 내용이겠지만 말이다. 이런 일이 현실에서 발생한다면 아마 대응하기가 쉽지 않겠지. 재밌게 읽었고, 그것으로 만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