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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하늘의 전사들 - 제2차 세계대전 독일 공수부대 팔쉬름얘거의 신화 ㅣ KODEF 안보총서 4
크리스토퍼 아일스비 지음, 이동훈 옮김 / 플래닛미디어 / 2017년 7월
평점 :
미국의 유명한 HBO 전쟁드라마 <밴드 오브 브라더스>에서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전, 101공수사단의 가너리아는 자신의 형이 이탈리아 몬테카지노 전선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분기탱천해서 프랑스 주둔 독일군을 마치 자기 형의 원수처럼 대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전에 컬렉션에 나섰던 한국일보사에서 나온 <WWII>의 이탈리아 전선 편에서도 몬테카지노 전투는 2차세계대전 사상 격전 중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방어를 맡은 독일군 주력부대가 바로 크리스토퍼 아일스비가 기록한 <히틀러의 하늘의 전사들>의 주인공 독일공수부대, 팔쉬름예거다.
20세기 초, 잠수함과 동력 항공기의 등장은 전쟁의 모습을 바꿀 정도의 충격을 유럽에 전해줬다. 구식 전쟁만 경험해 왔던 구세대 장성들에게 전선을 돌파하는 전차를 필두로 한 기갑부대의 진용도 수용할 수가 없었겠지만, 공간에 수직이라는 개념을 추가한 항공전 그리고 항공기에 병사들을 탑승시켜서 전쟁에 사용한다는 방식은 아예 듣도 보도 못한 그런 새로운 형태의 전술이 아니었을까.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이탈리아와 붉은 군대가 가장 능동적으로 공수부대의 효용성을 깨닫고 도입하기 시작했지만, 정작 실전에 배치하고 놀라운 전과를 거두게 된 주체는 후발주자였던 독일이었다.
베르사유 조약으로 엄격하게 재무장에 금지된 독일이었지만 루프트한자라는 민간항공사에 조종사를 배치하는 방식으로 훗날 전선에서 활약할 항공기 조종사들을 양산하는데 전력했다. 물론 제3제국의 2인자인 공군원수 헤르만 괴링의 전폭적인 지원도 독일 공군 양성에 한몫했던 사실이다. 처음에는 육군에서 공수부대의 중요성을 깨닫고 공수대대 편제를 시도했지만, 괴링의 개입으로 육군 소속으로 맹훈련을 받아 오던 독일공수대대는 공군에 통합되어 편입되기에 이른다. 폴란드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완편 사단은 없었지만, 전쟁이 진행되면서 지원병으로 구성된 공수사단이 확장되기에 이르렀다. 지상에서 4주, 공수훈련으로 4주 합해서 모두 8주간의 훈련과정을 거쳐 6번의 낙하훈련을 완수하면 공수휘장이 지급되었다.
독일 공수부대 팔쉬름예거는 처음부터 전술적으로 두 가지 임무를 축으로 삼았다. 첫째, 소수정예 낙하산부대로 적진 후방에 깊숙이 침투해서 통신선을 교란하고, 다리 같은 중요한 거점을 점령하고 보급을 저지하는 임무다. 문제는 기습적으로 이루어지는 군사행동이기 때문에 대포나 전차 같은 중화기를 보유할 수 없다는 맹점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경무장한 채 아군의 주력 부대가 정해진 기간 내에 작전을 완수할 때까지 적진에서 거점을 사수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여차하면 적의 대규모 부대에 포위되어 전멸할 수도 있다는 문제점이 지적되었다. 철저한 작전의 보안 유지와 신속한 후속부대의 진출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전쟁 중에는 주로 7공수사단이 이런 임무를 맡았다.
두 번째로는 강습병으로 구성된 완편 보병사단을 글라이더를 이용한 대규모 전개를 하는 작전이다. 22사단이 주축이 되어 비행장에 착륙해서 신속하게 화포와 같은 중화기를 산개시키는 훈련을 반복 숙달했다고 한다. 낙하산부대에 비해 기습능력은 떨어지지만, 적의 후방에서 대등한 화력으로 싸울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었다. 전자에 공군이 매료되었다는 후자는 육군이 선호하는 작전이었다. 그리고 정예 팔쉬름예거는 두 가지 모두 가능하다는 점을 실전에서 증명해 보였다.
육군 기갑부대 중심의 폴란드 전격전(블리츠크리크)에서는 공수부대의 활약이 거의 필요 없을 정도로 쾌속의 진격으로 폴란드 전역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다음해 덴마크와 노르웨이 전역에서 비로소 공수사단의 활약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으며, 서부전역을 전세를 판가름한 1940년 5월 10일 시작된 프랑스 전투에서 발터 코흐 대위가 소속된 공수부대가 벨기에 에벵 에마엘 요새를 순식간에 장악하면서 연합군 기동부대의 시선을 벨기에쪽으로 돌리는데 성공하면서 독일군의 주공인 아르덴 공세를 성공하게 만드는데 혁혁한 공훈을 세웠다. 지난 주에 개봉해서 한창 인기몰이 중인 <덩케르크> 바로 전의 역사를 팔쉬름예거가 만들어낸 것이다.
도이치 팔쉬름예거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쿠르트 슈투덴트 장군은 여세를 몰아 대소전쟁에 앞서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 침공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다음, 영국 해군의 준동을 막고 루마니아 플로이예슈티 유전을 연합군 폭격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팔쉬름예거에 의한 크레타 침공, 메르쿠르 작전을 시도한다. 작전은 결과적으로 성공하긴 했지만, 방어군의 격렬한 저항과 작전상의 여러 가지 오류 때문에 막대한 인원 피해가 발생하면서 제국총통 히틀러는 향후 다시는 이런 대규모 공수부대 작전을 기피하게 된다.
크레타 작전 이후 공수부대는 러시아전선과 북아프리카 전선에 투입되어 맹위를 떨치기는 했지만, 본연의 임무인 낙하산부대원으로서의 임무보다 정예 소방수이자 방어임무를 수행하기에 이르렀다. 북아프리카 전역의 튀니스 전투에서 람케 여단은 거의 전원이 생포되기도 했다. 영국이 주축이 된 연합군은 북아프리카 승전의 여세를 몰아 시실리에 상륙하면서 추축국의 일원인 이탈리아 침공에 나선다. 이탈리아 전선을 책임진 알베르트 케셀링 원수는 공간을 내주고 시간을 버는 방식으로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그리고 로마를 향해 북쪽으로 진격하는 연합군을 가로 막는 도상에 바로 몬테카지노가 있었다.
결국 연합군의 막대한 물량공세와 노르망디에서 시작된 제2전선으로 이탈리아 전선이 교착상태에 빠지게 되긴 했지만, 유럽의 ‘부드러운 아랫배’를 막아내는데 몬테카지노 전선에 투입된 도이치 팔쉬름예거 부대의 활약은 눈부셨다. 막강한 공중지원을 받는 영국군, 뉴질랜드, 인도군, 폴란드군과 미군으로 구성된 엄청난 부대를 상대로 몬테카지노의 폐허 속에서 팔쉬름예거 정예사단들은 그동안 실전과 훈련을 통해 단련된 초급장교들의 창의적인 작전으로 효율적으로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시간을 번 케셀링 원수는 후방에 좀 더 강력한 방어진지를 구축할 수가 있었다. 팔쉬름예거 부대는 크레타에서 벌어진 실수를 바탕으로 실전에서 보다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배양한 셈이다.
전역을 이동해서 노르망디 상륙 이래 북프랑스 특유의 산울타리 빌라 보카쥬 지형에서도 팔쉬름예거 부대원들은 탁월한 전투 능력을 보여 주었다. 도처에 산개한 독일군 부대들이 쏘아대는 총탄에 연합군의 전진 속도는 지지부진했다. 성공적인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유럽에서의 전쟁이 곧 끝나리라는 전망은 엄청난 상륙작전 뒤에 카랑탱과 캉에서 독일군의 강력한 반격이 시작되면서 무산되었다. 연합군 역시 전쟁을 이른 시기에 끝내기 위해 네덜란드를 해방시키고 독일 본토로 진입하겠다는 영국 몽고메리 원수의 원안을 바탕으로 한 마켓가든 작전을 시행하지만, 아른헴 인근에서 재편 중이던 독일 기갑부대의 활약으로 처참한 실패를 맛보게 된다. 1944년말 전개된 벌지 전투에서 최후의 공수작전을 시도해 보지만, 이미 전쟁의 귀추가 결정된 마당에 의미없는 작전이었다고 저자는 기술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팔쉬름예거가 투입된 가장 성공한 특수 작전의 하나는 무장친위대(Waffen SS) 소속 오토 스코르체니가 지휘한 그란삿소에 유폐된 무솔리니 구출작전이었다. 추축 동맹국인 이탈리아의 이탈을 막기 위해 총통은 정예 특공대를 투입해서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작전을 성공시켰다. 한 때 ‘유럽에서 가장 위험한 사나이’라는 별명으로 불린 스코르체니를 전설로 만든 구출작전이었다. 유고슬라비아의 요시프 티토 원수를 체포 혹은 사살하기 위한 제500친위공수대대의 <나이트 무브>는 거의 무모해 보이는 그런 작전이었다. 600명 남짓한 공수부대원들이 1만 2,000명 이상의 빨치산 부대가 집결한 드르바르 소읍을 공략한다는 거의 자살공격에 가까운 작전으로 공수부대의 손실은 막심했고, 고작 건진 거라고 티토의 원수 정복이 전부가 아니었던가.
독일군 전문가 크리스토퍼 아일스비 작가는 도이치 팔쉬름예거의 유래와 발전 그리고 종결에 이르는 전 과정을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공수부대원들의 활약상을 담은 사진부터 시작해서, 팔쉬름예거의 명암을 그리는데 조금도 인색하지 않다. 있는 그대로의 역사 저술 그리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는 저널리즘의 원칙에 충실한 저작이라는 느낌이다. 오랜만에 다시 만난 팔쉬름예거 신화는 또 새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