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온천
요시다 슈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7년 4월
평점 :
절판


 


월급날이었는데 어제 나에게 작은 선물을 하나 해줬다.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서 줌파 라히리의 소설집 하나와 요시다 슈이치의 <첫사랑 온천>을 샀다. 여기저거시 많이 들어봤지만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은 처음으로 읽었다. 원래는 <일요일들>을 사러 갔었는데, 새로 나온 개정판 표지가 없어서 사지 않고 대신 절판된 <첫사랑 온천>을 샀다. 단돈 3,300원 그것도 15% 할인 받아서 2,800원에 데려왔다. 제법 괜춘한 책이 커피 한잔 값도 되지 않는다니. 물론 책의 가치를 단순하게 돈으로 매길 순 없겠지만 말이다.

 

퇴근 무렵부터 읽기 시작해서 자정을 조금 지나서 다 읽을 수가 있었다. 모두 다섯 개의 단편으로 구성된 소설집인데 배경은 모두 온셴(온천)이다. 엉뚱하지만 온천을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읽다 보니 나도 일본 온셴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온천은 겨울 노천탕이 제 맛이 아닐까. 바깥에서는 흰눈이 펑펑 내리고 계곡 아래 자리 잡은 노천탕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쐬며 ‘코히 비루’를 한 잔 마시면 세상사 다 잊을 수 있을 것 같지? 천만 요시다 슈이치는 세상사가 그렇게 만만치 않다고 소설에서 피력한다.

 

고등학교 시절 첫사랑을 잊지 못해 사력을 다해 성공의 정점에 섰다고 생각하는 순간, 시게타의 아내 아야코는 둘이 찾은 온천에서 이혼을 요구한다. 어쩌면 시게타의 모든 노력은 바로 아내의 이혼 요구를 듣기 전까지의 성취를 위한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리라. 아내는 왜 나한테 이혼을 요구하는 거지? 물론 도쿄 명문대를 나온 아내가 자신에게 과분한 여자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시게타는 다른 사람들보다 갑절을 노력으로 분위기 괜찮은 서민주점을 연달아 내며 성공가도를 달려오지 않았던가. 하지만 아내의 이혼 요구로 시게타의 모든 노력은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왜 이혼하고 싶은지에 대한설명은 여백으로 남긴다. 그래 인생은 그런 거지.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서 그에 대한 명백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건 아니니까. 시게타의 스토리가 안타깝긴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했다.

 

다음에 이어지는 수다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쓰지노와 와카나의 <흰 눈 온천> 스토리야말로 한겨울 온천 여행의 백미를 그대로 잡아준 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분위기 띄우는 거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두 사람이 만났으니 그 다음에 전개될 이야기는 명약관화하다. 쓰지노가 한 마디하면, 와카나도 열 마디로 대꾸하는 방식으로 둘의 만남은 그야말로 찰떡궁합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그런 어색한 분위기가 싫어서 의도적으로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적극적이었다는 고백이 이어진다. 그리고 타인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그랬더고 했던가. 그렇지 침묵보다는 그런 게 차라리 낫지 않으려나. 한 겨울의 온천 별채에서 낯선 커플과 장지문 하나 사이로 묵게 된 쓰지노는 한밤 중에 찾은 온천탕에서 옆방 남자와 마주하게 되고 무언가 대화를 시작하려는 자신의 의도가 옆방 남자의 묵언 때문에 침묵에 빠지게 되며 소설은 끝을 맺는다.

 

동창 가즈미와 교토로 불륜 여행을 떠난 남자 유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망설임의 온천>도 흥미롭다. 아내에게는 업무 차 출장 때문에 교토에 간다고 하고서는 최근에 만난 가즈미와 밀월여행에 나서는 남자. 무엇 하나 스스로 해내지 못하고 미루던 남자가 어떻게 불륜이라는 일탈을 과감하게 시도했는지 궁금하다. 가즈미와 택시 안에서 교토 여행을 기획하면서 내내 택시 기사 아저씨의 눈치를 보는 장면이 주는 스릴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어찌어찌해서 결국 교토에 도착하고 때마침 걸려온 아내의 전화 대화에 담겨 있던 ‘도쿄, 기록적인 폭염 40도’라는 단어가 자신보다 먼저 도착한 가즈미의 메모에 있는 것을 본 유지의 감정은 소용돌이치기 시작한다. 자신이 감행한 화려한 일탈이 어쩌면 아내와 가즈미가 친 덫이었을까.

 

보통 커플이 찾는 온천에 아내 마치코 없이 교스케는 보험회사의 일급 세일즈맨이다. 나같은 사람이 보면 정말 민폐 친구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캐릭터지만, 각자도생의 정글 같은 시절에 이보다 더 적합한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저돌적인 세일즈를 감행하는 사나이다. 교스케는 아내 마치코에게 좋은 집과 멋진 옷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사주기 위해 마시고 싶지도 않은 술을 마시고, 고객들과 스키 여행을 갔다가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며 자신의 ‘노오력’을 적극적으로 어필해 보지만, 아내 마치코는 그가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순간 교스케의 아내 마치코는 정말 현인 같아 보인다. 보험 가입에 성공하면 그동안 공들인 교스케는 월급명세서에 찍힌 성취감을 누릴 지도 모르겠지만, 이후의 인간관계는 파탄의 수순을 걷게 된다. 처제의 신랑감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오로지 보험을 판매할 생각만 하는 남자의 삶에 저절로 혀를 차게 된다. 나홀로 나선 온천 여행에서 만난 화장품 회사 사장 가오리를 설득시켜 보험판매에 거의 성공한 교스케가 들려주는 비밀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마지막 고등학생 겐지와 마키 커플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거의 발칙하기까지 하다. 알바를 뛰어서 번 돈 3만엔으로 겁도 없이 온천 여행을 기획하는 겐지 군. 자신의 방에서 마키와 관계를 하다가 아버지에게 발각이 되는 장면 그리고 평생 마키 만을 사랑하겠다는 결심을 환상적인 섹스를 기대하며 찾은 온천에서 하게 되는 겐지의 천진난만한 생각에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린 친구,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니라네. 어쩌면 이야기는 소설의 첫머리에 등장한 첫사랑에 성공했지만, 이별하게 되는 시게타 아야코 커플로 순환하게 된다.

 

200쪽 남짓한 <첫사랑 온천>으로 요시다 슈이치를 읽기 시작했다. 분량도 적당하고 온천을 공간적 배경으로 했다는 점에서 무리 없는 독서였다고 생각한다. 복잡한 책 읽기에 독서 슬럼프에 빠졋다면 슬럼프 탈출하는데 안성맞춤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시다 슈이치의 책들은 그렇게 아껴 두었다가 책읽기가 지겨워졌을 때, 공명이 준 비단주머니처럼 하나씩 꺼내서 읽어야 하나 하는 즐거운 상상에 빠져본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7-26 1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8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의 남극 탐험기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마 요즘 모바일 세대는 20년 전, 최대 유행이었던 피씨통신의 하이텔이니 나우누리니 하는 말들이 낯설지도 모르겠다. 하긴 그 시절에 태어나지도 않았으니 알 수가 없겠지. 그 시절에 장르소설을 쓰던 이가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제 등단 소설가로 우리 곁에 다시 찾아왔다. 어쩌면 김근우 작가의 귀환은 소설 <우리의 남극 탐험기>에 주인공 ‘나’와 묘하게 등치되는 장면들로 시각화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

 

대중소설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순수문학이고 싶은 ‘경계문학’의 작가라는 타이틀을 달아 드려야 하나. 동시에 아무도 찾지 않는 잊혀진 작가가 되는 두려움을 ‘나무야 미안해’라는 자학적 풍자와 해학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우면서 애잔하게 다가온다. 독자는 도대체 남극 탐험 이야기는 언제나 등장하는 거야 하면서 소설의 절반을 흥미진진하게 소화한다.

 

그렇다. 소설에는 언제나 운명적 만남이 있기 마련이다. 야구 선수를 꿈꾸는 소년이 7:0 콜드게임으로 질 운명의 게임에서 어떤 계시를 받아 미래가 촉망받는 선동현이라는 유망주 투수의 공을 담장으로 넘긴다고 하더라도 숙명은 바뀌지 않는다는 거. 그리고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 도전해야 한다는 언어유희의 소용돌이 속으로 작가는 독자를 쉴새 없이 재촉한다. 그런 작가의 ‘드라이브’가 솔직히 마음에 들었다. 공무원 아버지를 둔 흙수저 아들은 결국 느즈막히 공부를 시작해서 수포 영포 국포 등등을 거치면서 삼류 무광대학 경제학과에 진학한다. 그곳에서 A폭격기라는 별명으로 명명된 국문과 강지진 교수의 스포츠 용병이 되어 맹활약을 벌이기도 한다. 뭐 그 정도는 애교겠지. 그리고 운명의 사랑 강혜진을 만나 반년 가량 뜨거운 사랑 끝에 금수저 애인을 걷어차 버리는 기백을 보여 주기도 한다.

 

어찌어찌해서 소설가가 된 나의 이야기가 소설의 반쪽이라면, 다른 반쪽은 나의 남극 탐험을 가능하게 줄 광야의 초인, 아니 영국의 초인 어니 헨리 섀클턴 교수가 등장할 차례다. 모두 다 아는 인듀어런스 호의 기적을 만들어낸 바로 그 섀클턴 경 말이다. 이름도 똑같다. 그러니 백여년 전 결국 남극점을 밟는데 실패하고 채 오십이 되지 못한 채, 남극 부근의 사우스 조지아 섬에서 지구별을 떠난 섀클턴 경의 분신이 어느 순간 등장하리라는 건 명약관화한 사실일 수밖에 없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영국의 귀족집안에서 출생한 교수가 23세에 옥스퍼드 대학 박사 학위를 가지고, 케인즈주의 좌파연구의 한 획을 긋게 되는 것 또한 흥미로운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어린 시절의 학대와 차별 따위는 문제도 아니다. 김근우 작가는 섀클턴 교수의 신자유주의가 언젠가는 붕괴할 것이라는 계시와 헬조선의 밑바닥을 차근차근 긁고 있는 한때 경제학 전공자 ‘나’의 상황을 묘하게 연결시킨다. 만나야 할 사람들은 만날 수밖에 없다는 소설적 공식을 충실하게 따르면서.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리라는 일명 시카고 학파 신자유주의 전도사들과 대처리즘의 기수 마거릿 대처 수상에 대한 신랄한 섀클턴 교수의 비판은 영국병을 치유한 것으로 오도된 대처리즘이 기승을 부리던 시절에는 목소리를 들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1997년 동아시아를 비롯해 우리나라를 강타한 IMF 위기와 월스트리트의 금융전문가들이 설계한 금융 파생상품에서 비롯된 2008년 외환위기는 섀클턴 교수를 21세기 경제 노스트라다무스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다시 어찌어찌해서 한국에 초빙된 교수는 찜질방과 식혜 그리고 화투에 매료되어 한국에 정착하게 되었고 운명적으로 출발은 장대하였으나, 슬슬 경계문학이라는 이도 저도 않은 글을 매일같이 생산해 내며 잊혀져 가고 있던 작가 나와 조우하게 되었다. 그래 그렇게 가는 거지.

 

작가가 구사하는 상당히 날카로운 현실비판에 이 놀라운 전개는 또 뭐지 하며 이 작가가 과연 그전에 고양이 잡아먹은 오리 타령하던 이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 헛소리의 대가를 자처하는 그답게 독자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을 나는 굳게 믿었고, 그것은 현실화되었다. 한국에서 섀클턴 박사와 나는 치열한 승부근성과 판돈이 난무하는 고도리 게임으로 일치단결해서 남극행에 나서게 된다. 일전에 읽은 마리아 셈플의 <어디 갔어, 버나뎃>에 등장하는 버나뎃처럼 진짜 남극 탐험에 나서게 됐다. 후유, 소설의 절반도 지나서 비로소 본 궤도에 접어든 기분이라고나 할까.

 

아직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지 못했지만 영화관람을 유도하는 현란한 소개와 더불어 나와 섀클턴 경의 무모한 남극 탐험 도전은 계속된다. 그리고 소설은 드디어 SF 계열로 점프를 시도한다. 말하는 북극곰 치피가 등장해서 탐험대의 일원이 되어, 썰매를 끌기도 하고 나와 박사를 업어 나르기도 한다. 북극에 살다 지구 반대편까지 찾아온 치피가 없었다면, 스노모빌이며 식량마저 바닥이 나 절망적인 순간에 하늘을 나는 펭귄들이 등장해서 펭귄 밀크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그들의 무도한 도전은 그야말로 시작도 하기 전에 끝이 났을 지도 모르겠다. 남극신과 오래 전에 작고한 섀클턴 경이 보우하사, 나는 무사히 남극 탐험을 마치게 됐다. 동상으로 손가락 두 개 정도 잃은 건 아무 것도 아니라며 자신을 위로하면서 말이다.

 

그럴 가능성이 거의 제로지만, 과연 <우리의 남극 탐험기>가 영화화된다면 재밌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상상을 해봤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장르에 편입시켜야 할까? SF 공상과학? 탐험물? 좌충우돌 횡설수설 성장영화? 그 모든 카테고리에 다 들어갈 수 있다는 게 장점이면서 동시에 영화화에 장애물이 될 수 있겠지 싶다. 문학적 가치 따위일랑은 말 좋아하는 평론가 양반들에게 넘기고, 주말 동안 너무 재밌게 읽은 것만으로도 대만족이다. 왜 책 표지에 설산 위에서 춤추는 북금곰과 손잡은 펭귄이 있을까 싶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바로 이해가 됐다. 김근우 작가가 앞으로 만들어낼 새롭고 멋진 횡설수설 퍼레이드를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2 - 빼앗긴 세계문화유산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2
김경임 지음 / 홍익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약탈 문화재로 돌아본 세계사 시리즈의 두 번째 권은 <빼앗긴 세계 문화유산>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문화유산은 단순히 문화재로서의 가치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물론 사회의 모든 것들이 금전적 가치로 환산되는 자본주의 시대에 이상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두 번째 권에서 가장 관심을 가지고 읽은 파르테논 마블이나 우리나라의 <몽유도원도>의 경우라면 또 어떨까.

 

세상에 너무 잘 알려진, 파르테논 마블은 한 때 엘긴 마블이라고도 불렸다. 하지만, 그리스 파르테논 신전에서 멀쩡한 부조들을 대영박물관으로 불법 반출한 인물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부르는 대신, 파르테논 마블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오스만 투르크가 그리스를 지배하던 시절, 터키 대사로 임명된 영국의 토마스 브루스 엘긴 백작은 터키 정부의 파르테논 마블 반출 허가장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신전이 건립된 기원전 5세기 이래 가장 양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던 부조와 조각품들을 뜯어서 영국으로 실어갔다. 파산 위기에 몰린 엘긴 백작은 영국 정부에게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파르테논 마블을 일괄 판매했고, 고대 그리스의 소중한 유물들은 그후 정부가 관리하는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었다.

 

훗날 오스만 투르크로부터 서방의 지원을 받아 독립을 쟁취한 그리스는 자기 민족의 핵심문화 유산인 파르테논 마블의 반환을 줄기차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파르테논 마블의 반환 이슈는 단순한 문화재의 반환에 그칠 문제가 아니었다. 원래 문화유적은 원적지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비등하는 여론과 대의명분에 힘입어 그 어느 때보다 힘을 얻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마블을 소장하고 있는 영국 측은 마블이 그리스 민족의 문화 유산이라기 보다 세계유산이라는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하면서, 소장과 관리에 있어 자신들이 훨씬 유능하다는 궁색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배우 조지 클루니의 배우자이자 국제법 변호사로도 저명한 아말 알라무딘 클루니는 외교적 방법으로는 도저히 파르테논 마블의 반환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국제법에 호소하는 방식을 제안했지만 그리스 정부는 종래의 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중이다. 만약 파르테논 마블이 그리스의 주장 대로 모국으로 반환되게 된다면, 국제 약탈 문화재 반환역사의 한 축을 기록할 만한 일이 될 것이다.

 

조선 최고 명군 세종의 아들로 자신 역시 문인이자 예술가였던 안평대군의 꿈을 안견이 그린 <몽유도원도>는 우리나라에 없다. 우리 회화 역사상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지만, 수양대군이 일으킨 쿠데타로 역적으로 몰린 안평대군이 죽으면서 <몽유도원도> 역시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러다 1929년 세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나게 되었는데, 이미 일본 정부는 해당 걸작에 대한 존재를 알고 있었으며 가고시마 사쓰마 번 시마즈 가문에 비장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1893년 일본 정부가 발행한 감사증으로 미루어 볼 때, <몽유도원도>는 일제강점기가 아니라 그 전에 일본으로 유입된 것으로 추정할 수가 있다. 그보다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출병했던 시마즈 가문의 내력을 살펴 볼 때, 전시 약탈했을 가능성이 더 커보인다. 물론 이에 대한 어떤 기록도 없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유입이 되었을 가능성도 부인할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몽유도원도>의 소재가 알려진 뒤인 20년 뒤, 한국전쟁에 즈음해서 우리나라는 다시 한 번 국보급의 문화재를 회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소유자가 어마어마한 거금을 불러 매입에 실패했다는 설이 있었다. 1950년 일본에서 새로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국보에 해당하는 중요문화재로 지정된 상황과 현재 시가 10억 달러를 상회하는 가격 때문에라도 <몽유도원도>의 환수는 어려워 보인다. <몽유도원도>를 근거 없이 약탈 문화재로 간주하고, 반환 운동을 벌이는 방법은 역효과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저자는 냉정하게 지적한다. 일본에 강탈당한 문화재가 자그마치 7만 여점에 육박하는 상황에서, 적극적인 반환 운동만으로 복잡하게 꼬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프랑스 파리와 로마에 있는 이집트에서 약탈해온 오벨리스크의 경우는 또 어떤가. 본국에서 신성시되던 기념물이었지만 동시에 피정복국가 로마에게는 정복을 상징하는 기념물로서 그만한 전리품도 없었을 것이다. 자그마치 2,000년 전에 약탈한 문화재를 본국으로 돌려주어야 하는 걸까? 이천년이라는 시간은 고향을 떠난 오벨리스크가 새로운 곳의 문화재가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 아니었을까라는 복잡한 질문이 떠오른다. 파시스트 무솔리니가 지난 세기에 에티오피아를 무력으로 정복하고 새로 들여온 악숨의 오벨리스크는 또다른 문제였던 모양이다. 에티오피아 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오벨리스크의 반환을 위해 에피오피아 국민들은 일치단결해서 자그마치 반세기에 가까운 투쟁을 벌였고, 마침내 에피오피아에서 약탈되었던 오벨리스크는 이탈리아가 지불한 770만 달러의 비용으로 원적지 악숨에 안치되었다. 시간이나 비용 모두 이 정도면 역대급이 아닐까.

 

고대 유대인이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했던 모세의 십계명이 담긴 언약궤 혹은 메노라(촛대) 역시 이슈 거리가 아닐 수 없다. 수차례 건축과 재건 그리고 파괴를 거치는 와중에 유실된 것으로 추정되는 언약궤의 향방은 영화 <레이더스>에서 해리슨 포드가 열연했던 인디애너 존스 박사의 활약으로 이미 확인한 바가 있지 않은가. 언약궤가 일본에까지 흘러 들어갔다는 낭설은 도저히 믿을 수 없지만 그 정도로 파괴력이 강한 유물이라는 방증이 아닐까. 지금이라도 유대인들의 신성한 유물이 발견되게 된다면 그 귀속여부가 어떻게 진행될지 너무나 궁금하다.

 

마지막으로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딴 손기정 선수가 50년만에 어렵게 되찾아온 그리스 고대청동투구가 서구 유물로는 유일하게 우리나라의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들었는데, 그리스가 투구의 반환을 요구한다면 우리나라는 그리스의 반환 요구를 과연 흔쾌히 들어줄 수 있을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07-23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글의 마지막 문장은 ‘손기정 투구 딜레마‘네요. 저는 그동안 외국에 나간 국내 문화재 반환만 생각하고 있었지 국내에 있는 외국 문화재가 반환 대상이 될 거라 생각하지 못했어요.

레삭매냐 2017-07-24 00:06   좋아요 0 | URL
우리 문화재의 반환 요구에 앞서 우리가
가진 타국의 문화재 부터 반환하는 것이
가진 상징성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 있다면 신의 한수가 아닐까요.
 
토니 스피어스의 천하무적 우주선 토니 스피어스 시리즈 1
닐 레이튼 지음, 남길영 옮김 / 와이즈만BOOKs(와이즈만북스)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그림이 있는 동화를 좋아한다. 그리고 보니 최근에 읽은 <내 이름은 도도>도 광의의 차원에서 동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선푸위 작가가 딸을 위해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고 싶어서 쓴 책이라고 하니 말이다. 또 이야기가 옆길로 샜다. 닐 레이튼 작가의 그 유명한 <토니 스피어스> 시리즈에 대한 이야기를 제대로 한 번 해보자.

 

영국 출신의 동화 작가인 닐 레이튼에 대해 위키피디아와 그의 홈페이지를 직접 방문해서 어떤 삶을 살아 왔는지 그리고 토니 스피어스 시리즈 외에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조사해 봤다. 영국 치세스터 출신의 작가는 뉴캐슬, 브라이튼, 런던, 글래스고에 살았고 지금은 가족들과 함께 포츠머스 근처의 바닷가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흙놀이를 즐겼고, 대학에 가서는 과학을 공부했지만 아트 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는 이색 경력을 가진 작가다. 집에 있는 스튜디오는 엉망진창이라고 하는데, 스튜디어 벽에는 그림, 드로링, 사진을 비롯한 오만가지 잡동사니로 장식되어 있다고 한다. 일러스트레이션 전문가로 활동 중에 있다. 뭐 이 정도로 작가에 대한 소개는 끝.

 

그림 동화의 주인공 토니 스피어스는 엄마가 더 좋은 월급을 준다고 해서 이번에 이사를 하게 되었다. 동화에 아버지가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싱글맘으로 보인다. 전학온 새로운 학교인 세인트 존스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고 또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어야 하는 스트레스가 눈에 선하다. 게다가 올해 최고의 학생 시상식이라니! 토니는 뉴비(newbie)라 누적 점수가 빵점이란다. 집에서는 어디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몰라 고생하고, 고난의 연속이 이어지는 가운데 부엌 싱크대 밑에서 특급 우주선 천하무적호를 발견한다. 부엌에서 은하계 어디라도 갈 수 있는 특급 우주선으로 이어지는 상상력이란 정말.

 

인빈서블(천하무적)호를 호령하게 된 토니는 우주여행의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달나라 여행부터 하고 싶지만, 우선 달에는 공기가 없고 극강의 온도차 때문에 지구별과 비슷한 환경의 행성인 Xo49p 별로 향하게 된다. 물론 그 와중에 자동 항법 조종 장치를 권하는 인공지능 천하무적 호의 권유 대신 우주선 조종을 갤럭시 오락 게임 생각로 했다가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항상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그런 것이다. 그래 그렇게 가는 거지.

 

Xo49p 행성에 무사히 도착한 토니는 지구별의 토깽이들과 비슷한 모양새의 스쿠어글 그 중에서 플럼피란 녀석과 친구를 먹게 된다. 이렇게 우주여행을 신나고 즐겁게 진행되면 좋으련만 그럴 리가 있나. 가토릴라라는 난폭한 악어와 힘센 고릴라를 합쳐 놓은 듯한 스쿠어글 들의 천적이 등장해서 토니와 플럼피들의 교류를 방해한다. 녀석은 마치 SF영화 에일리언에 나오는 우주괴물처럼 토니의 우주선에 몰래 숨어들어 지구별로 향한다. , 우리의 멋쟁이 주인공 토니와 스쿠어글 플럼피 그리고 가토릴라는 어떤 결말을 맺게 될 것인가.

 

고장난 우주선 천하무적 호를 고치기 위해 여러 가지 재료가 필요한데 그 중에서 가장 취득이 곤란한 건 은(silver)이다. 최고의 학생상 트로피가 은으로 제작된 사실을 알게 된 토니는 트로피 수상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만 어제 전학온 친구가 최고의 학생상을 받는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은가. 슈퍼히어로 피터 파크라면 몰라도 말이다. 닐 레이튼 작가가 공상과학 SF동화를 그리면서도 그런 현실감을 놓치지 않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무리를 해서 초보 영웅으로 만드는 대신, 자신이 가진 한도 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는데 이만한 이야깃거리가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가토릴라와의 한판 대결도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타협과 대체재의 제공이라는 멋진 방식으로 풀어낸 점도 높게 평가하고 싶다. 막무가내로 보이는 교조주의 집단과 시소게임을 벌이고 있는 우리네 현실에도 적응가능한 이야기가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상상에까지 도달하기도 했다. 천하무적 토니 스피어스 시리즈의 첫 번째 이야기라고 하는데 앞으로 이어진 토니의 신나는 모험을 적극 응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이름은 도도 - 사라져간 동물들의 슬픈 그림 동화 23
선푸위 지음, 허유영 옮김, 환경운동연합 감수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음이 너무 급해서 책이 도착하기 전, 온라인 서점의 미리 보기 서비스를 이용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두 꼭지를 읽고 나서, 어제 책이 도착한 다음에는 두말할 것 없이 단박에 책을 다 읽었다. 적어도 <내 이름은 도도>에 몰입해 있던 그 순간만큼은 춘수 씨의 <기사단장>도 배겨날 재간이 없었다는 말이다.

 

우리 지구별에 사는 모든 동식물의 유기적 연관성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거라고 믿는다 나는. 그런데 하루에도 몇 종씩 멸종해 가는 동물들의 삶을 위협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탐욕 때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지각하고 있는가. 오로지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오늘도 우리는 동물들의 삶의 거처가 되는 숲을 파괴하고 콘크리트 정글로 대체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이렇게 종의 다양성을 파괴해 나가다 보면 백여년 전에 인류보다 더 많은 개체수를 자랑하던 여행비둘기 꼴이 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자, 그렇게 현실을 자각했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지구별 보존과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 보호를 위해 실천에 나서야할까. 지구별 온난화에 주범인 탄소를 왕창왕창 만들어내는 화석연료를 때서 만든 전기 에너지로 시원한 에어컨을 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내 한 몸 시원하면 그만이란 말인가. 그런 에어컨 사용도 좀 자제하고, 푸른 바다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과 바닷새들에게 치명적이라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재활용에도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중국 칼럼니스트 출신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의 딱한 사정을 딸에게 들려주기 위해 선푸위 작가는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전설이 되어 버린 모리셔스 섬에 살던 날지 못하는 새 도도의 멸종이 어떻게 카바리아 나무의 섭생과 관련되어 있는지 유기적 관계에도 작가는 세심한 눈길을 보낸다. 한 세기 전만 하더라도, 북미 대륙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개체수가 인류의 수를 능가하던(50억 마리) 여행비둘기가 인간의 창조적인 사냥방식으로 전멸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비극을 있는 그대로 기술한다. 소위 ‘후림비둘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사악한 방법을 동원해서 그 흔하던 종을 멸종시켰다는 게 아닌가.

 

1906년에 멸종된 것으로 추정되던 과달루페 카라카라 독수리가 신대륙에서 살아 남은 방식은 서글프기 짝이 없는 스토리였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 같은 곳으로 피신한 카라카라들은 자신의 몸을 극한의 환경에 적응시키는 방식으로 생존에 성공했다. 저자는 그런 카라카라 독수리의 모습을 컬럼버스의 신대륙 상륙 이래 아메리카 인디오들이 생존한 방식에 비유하고 있다. 비극은 그렇게 변형과 변주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 오늘을 만들어낸 것이다.

 

지금은 지구별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된 멸종된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작가가 군데군데 삽입한 중국애호랑나비, 말, 야성을 상실하고 자신이 낳은 아기 코끼리를 밟아 죽인 어미 코끼리 루마이, 동물원에 갇혀 살다가 야성을 회복하고 조련사를 공격한 호랑이 쥐쥐 그리고 중국 전설에도 등장하는 사불상이 가까스로 멸종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 이야기에 이르는 다양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슬프기 그지없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중국 쯔진산에 산다는 중국애호랑나비의 기구한 삶에 대한 상세한 고찰은 또 어떤가. 나비가 되기 위해, 네 번에 걸친 변태를 거쳐야 하고 애벌레 시절 살아 남기 위해 세신이라고도 불리는 족도리풀이 꼭 필요하다고 했던가. 인간의 난개발로 숲이 마구잡이로 파헤쳐 지면서 중국애호랑나비들의 서식처가 하루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도 큰 문제지만, 그들의 열악한 생존환경도 만만치 않다. 꿀을 구하기 위해서는 오전에 강렬한 햇볕으로 날개도 말려야 하고, 갖은 고난 끝에 막 나비가 되려는 순간 인간들이 포충망으로 이 멋진 창조물을 생포하기 위해 곳곳에서 포진해 있다. 그들에게 빛나는 시간은 잠시 뿐이고, 먹잇감을 찾는 무서운 천적 새들의 공격을 피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모습에 대한 스케치는 마치 한 편의 동화 같은, 또 한편으로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했다.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스러지는 중국애호랑나비의 모습이 자못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중국 이룽후에 살던 이룽잉어가 인간들의 식량생산을 위해 호숫물을 빼내기 시작하면서 기록적인 가뭄으로 호수가 말라 모든 이룽잉어가 몰살당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인재라는 표현이 부족하지 않을 듯 싶다. 미국에서도 1973년 리틀테네시 강의 텔리코댐 건설로 멸종위기에 몰렸던 달팽이시어가 악명 높은 대통령 닉슨이 멸종위기종 보호법에 서명하면서 간신히 멸종을 피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또 한 가지 같은 해 닉슨의 주목할 만한 결정은 베트남 철군이었는데, 그것은 출구전략(Exit Strategy)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던가.

 

저자는 지구별의 모든 생명들은 나름의 가치와 존재 의의를 갖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강조한다. 인류의 영속을 위해서도, 종 다양성의 보존을 위해 필요이상의 난개발과 무분별한 남획 그리고 탐욕적인 컬렉션을 단호하게 배척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물원의 존재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개인적으로 꼬맹이 때문에 자주 동물원을 찾으면서도, 또 마음 한 편으로는 원래 고향에서 강제적으로 이주하게 된 물설고 낯선 환경에 노출된 동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인 동물원을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인간 편의적인 동물원의 사육 방식 대신 최대한 동물들의 편의를 위한 친동물적, 친자연주의적 동물원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7-21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1 1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21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동물원에 번식에 실패하는 동물들이 늘어나고, 외국에 서식하는 동물을 살 수 있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이러한 추세라면 동물원이 텅 빈다고 하더군요.

레삭매냐 2017-07-21 18:02   좋아요 0 | URL
어떤 이들은 동물원이 동물들을 보호하는 역할
을 한다는 주장도 하지만, 재생산-번식 차원에
서는 거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서울동물원에 갔었는데 20년 만에
아기 낙타가 태어났다고 엄청 광고를 하더군요.
참 씁쓸했습니다. 자연상태라면 지극히 자연
스러운 일일 텐데 말이죠.

책에서 보니 어떤 동물들은 자연 상태가 아닌
인공적 환경에서는 인위적으로 번식을 포기한
다고 하는군요. 역시 자연의 섭리는 놀라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