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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1 - 돌아온 세계문화유산 ㅣ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1
김경임 지음 / 홍익 / 2017년 6월
평점 :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에 맞춰 문정왕후 및 현종어보 문화재를 반환받는데 성공했다는 안민석 의원의 자랑질을 애청하는 뉴스공장을 통해 들을 수가 있었다. 천조국의 비위를 건드리기 싫었던 외교부가 인수를 막았다는 안 의원의 주장에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놈의 정부기관은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를 위해 일하고 있는 건가 하고 말이다. 지난 세기가 제국주의 열강의 문화재 약탈의 역사였다면, 이번 세기는 그렇게 약탈당한 각국의 문화재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시대라고 해야 할까. 문제는 세계 각국에서 약탈하거나 혹은 불법적인 방법으로 취득한 문화재들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 유수의 박물관들이 반환에 소극적이거나 혹은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대영박물관에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루브르만 하더라도, 그렇게 불법적으로 취득한 혹은 유래를 알 수 없는 문화재들을 모두 반환하게 된다면 속빈 강정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편에서 가장 먼저 읽은 꼭지는 터키의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MET)을 상대로 한 고대 우사크 유적 반환 소송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세계 최강국으로 거듭난 미국에 다수의 문화재들이 몰려든 것은 꼭 국력이나 경제력 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팍스 아메리카나 시절에 맞게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일까. 갖은 방법과 꼼수를 동원해서 우사크 문화재의 반환을 거부하던 MET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미국 법원은 터키 문화재의 반환을 명령하기에 이른다. 대륙법과 한 번 장물은 영원한 장물이다라는 영미법 체계의 차이점도 지난해 보이는 그리고 막대한 소송비용이 든 재판의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저자의 탁월한 분석이 돋보였다. 하지만 균형감을 잃지 않은 저자는 과연 터키가 피해자일까라는 약점을 지적한다.
더 나아가 고대 우사크 유적이 지금 터키 민족이 국가를 이룬 터키 공화국의 문화재라는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고대 우사크 유적은 11세기경 발흥한 셀주크 투르크 계의 후손인 투르크족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유적이 아니었던가. 그 영토에 있는 것만으로 그 나라의 문화재가 맞느냐는 의제는 또다른 논쟁을 불러올 만하다. 게다가 터키는 그리스 점령 시절, 파르테논 마블의 불법적인 반출을 묵인하거나 방조한 미필적 고의도 있지 않은가. 게다가 반환받은 우사크 문화재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도둑 맞는 일도 발생하면서 역시 서구사화의 체계적인 관리시스템이 우월하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 주기도 했다는 점에서 문화재 반환투쟁에 옥의 티였다. 한편, 독일을 상대로 터키 정부가 벌이고 있는 페르가몬 제우스 신전 반환에서도 어쩌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몰랐던 문화재를 비록 본국은 아니지만 멀리 독일에서 더 효과적으로 보존하고 있다는 점도 문화재 반환 이슈의 또다른 쟁점 사항이라고 저자는 냉정하게 말한다.
저자는 단순한 문화재 반환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만 저술하고 있는 게 아니다. 요즘도 많은 책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빈 출신 천재화가 에곤 실레의 걸작 <발리의 초상> 같은 경우는 또 어떤가. 중세를 거쳐 마지막 숨을 쉬고 있던 제국의 수도 빈에서 거장 클림트와 교류하며 아르누보 화풍으로 출발해서 독자적 화풍을 제시했던 청년 화가의 삶을 조명하면서, 그의 뮤즈로 활약하다가 젊은 나이에 전장에서 성홍열로 사망한 모델이자 애인 발리를 그린 초상의 기구한 유전을 추적하기도 한다. 전쟁 통에 나치 당원에게 소유권을 빼앗긴 원 소유자 유대인 레아 본디에게 <발리의 초상>이 인도되지 않고 미군당국은 오스트리아 정부에게 소유권을 넘겼다가 진가를 파악한 레오폴드라는 인물이 도중에 끼어들어 소유원을 얻었던가. 예의 작품이 미국 전시길에 나섰다가 첨예한 법정투쟁을 벌이게 되는 과정은 너무 복잡해서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다. 어쨌든 나치약탈품은 원소유자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역사적 정당성에 의거해서, 레아 본디의 미국 상속권자들은 소송 끝에 막대한 금전적 보상을 얻게 됐다. 저자는 굳이 금전적 보상 뿐만 아니라, 홀로코스트에서 희생당한 이들에 대한 정의 바로 세우기 과정으로 보는 정당할 것이라는 지적도 빼놓지 않는다.
우리의 문화재로 고려말 왜구의 약탈로 대마도로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서산 부석사 관음불상의 경우는 또 어떤가. 사실 역사를 전공했다고 하면서도, 우리나라에서 최근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두지 못했다는 점이 부끄럽다. 대마도 간논지에 안치되어 있던 고려 불상을 도굴꾼들이 절도해서 국내로 반입해서 밀매하려다 경찰에게 적발되어 압수된 과정까지는 비교적 순탄했다. 문제는 장물이기 때문에 원 소유자에게 돌려 주라는 재판부의 결정으로 불상 2점 중 하나는 일본 대사관을 통해 반환되었다.
하지만 서산 부석가 관음불상의 경우에는 복장 기록을 통해 고려말 서주(지금의 서산)에서 다수의 사람들의 시주로 제작되었다는 명문이 발견되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약탈 문화재로 부석사로 귀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면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비록 수백 년 전에 벌어진 사건이긴 하지만 불법적으로 약탈된 문화재이기 때문에 재판 결과가 확정되기 전까지 일본 간논지 측에 되돌려 줄 수 없다는 우리의 입장이고, 일본에서는 전후과정을 일체 무시하고 일단 절도된 장물이기 때문에 무조건 자기들에게 반환하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는 실정이다. 부석사 관음불상의 복장 기록을 연구한 일본 학자도 약탈품일 것이라는 주장을 했지만, 또 한편에서는 해당 불상이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대마도에 안착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기록으로 약탈인지 아니면 기증이나 정상적 구매냐를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 맹점이다. 2편에서도 나올 예정이지만 이럴 경우, 그렇다면 로마 시대에 이집트에서 약탈한 오벨리스크도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성립이 될 것이다. 근 이천년 가까이 동안 원래 제작된 고향을 떠나, 이향에서 뿌리를 내린 문화재도 반환의 범주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은 문화재 반환에 얽힌 문제들을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개인적으로 모든 약탈된 문화재들은 원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서구 유수의 박물관들이 자신들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 반환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해서, 수장 문제를 거론하며 모든 인류의 문화재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체계적이고 우수한 기술로 수장과 전시를 앞으로 맡겠다는 주장은 모두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원래 고향으로 돌아가 비바람, 그리고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시간이라는 풍화에 삭을 지라도 그 곳에 살던 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진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