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도도 - 사라져간 동물들의 슬픈 그림 동화 23
선푸위 지음, 허유영 옮김, 환경운동연합 감수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마음이 너무 급해서 책이 도착하기 전, 온라인 서점의 미리 보기 서비스를 이용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두 꼭지를 읽고 나서, 어제 책이 도착한 다음에는 두말할 것 없이 단박에 책을 다 읽었다. 적어도 <내 이름은 도도>에 몰입해 있던 그 순간만큼은 춘수 씨의 <기사단장>도 배겨날 재간이 없었다는 말이다.

 

우리 지구별에 사는 모든 동식물의 유기적 연관성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거라고 믿는다 나는. 그런데 하루에도 몇 종씩 멸종해 가는 동물들의 삶을 위협하는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의 탐욕 때문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지각하고 있는가. 오로지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오늘도 우리는 동물들의 삶의 거처가 되는 숲을 파괴하고 콘크리트 정글로 대체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이렇게 종의 다양성을 파괴해 나가다 보면 백여년 전에 인류보다 더 많은 개체수를 자랑하던 여행비둘기 꼴이 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지 않은가 말이다.

 

자, 그렇게 현실을 자각했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지구별 보존과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 보호를 위해 실천에 나서야할까. 지구별 온난화에 주범인 탄소를 왕창왕창 만들어내는 화석연료를 때서 만든 전기 에너지로 시원한 에어컨을 틀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내 한 몸 시원하면 그만이란 말인가. 그런 에어컨 사용도 좀 자제하고, 푸른 바다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과 바닷새들에게 치명적이라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재활용에도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중국 칼럼니스트 출신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의 딱한 사정을 딸에게 들려주기 위해 선푸위 작가는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전설이 되어 버린 모리셔스 섬에 살던 날지 못하는 새 도도의 멸종이 어떻게 카바리아 나무의 섭생과 관련되어 있는지 유기적 관계에도 작가는 세심한 눈길을 보낸다. 한 세기 전만 하더라도, 북미 대륙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개체수가 인류의 수를 능가하던(50억 마리) 여행비둘기가 인간의 창조적인 사냥방식으로 전멸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비극을 있는 그대로 기술한다. 소위 ‘후림비둘기’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사악한 방법을 동원해서 그 흔하던 종을 멸종시켰다는 게 아닌가.

 

1906년에 멸종된 것으로 추정되던 과달루페 카라카라 독수리가 신대륙에서 살아 남은 방식은 서글프기 짝이 없는 스토리였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그야말로 천혜의 요새 같은 곳으로 피신한 카라카라들은 자신의 몸을 극한의 환경에 적응시키는 방식으로 생존에 성공했다. 저자는 그런 카라카라 독수리의 모습을 컬럼버스의 신대륙 상륙 이래 아메리카 인디오들이 생존한 방식에 비유하고 있다. 비극은 그렇게 변형과 변주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 오늘을 만들어낸 것이다.

 

지금은 지구별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된 멸종된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동안, 작가가 군데군데 삽입한 중국애호랑나비, 말, 야성을 상실하고 자신이 낳은 아기 코끼리를 밟아 죽인 어미 코끼리 루마이, 동물원에 갇혀 살다가 야성을 회복하고 조련사를 공격한 호랑이 쥐쥐 그리고 중국 전설에도 등장하는 사불상이 가까스로 멸종의 위기에서 벗어나게 된 이야기에 이르는 다양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슬프기 그지없는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중국 쯔진산에 산다는 중국애호랑나비의 기구한 삶에 대한 상세한 고찰은 또 어떤가. 나비가 되기 위해, 네 번에 걸친 변태를 거쳐야 하고 애벌레 시절 살아 남기 위해 세신이라고도 불리는 족도리풀이 꼭 필요하다고 했던가. 인간의 난개발로 숲이 마구잡이로 파헤쳐 지면서 중국애호랑나비들의 서식처가 하루가 갈수록 줄어드는 것도 큰 문제지만, 그들의 열악한 생존환경도 만만치 않다. 꿀을 구하기 위해서는 오전에 강렬한 햇볕으로 날개도 말려야 하고, 갖은 고난 끝에 막 나비가 되려는 순간 인간들이 포충망으로 이 멋진 창조물을 생포하기 위해 곳곳에서 포진해 있다. 그들에게 빛나는 시간은 잠시 뿐이고, 먹잇감을 찾는 무서운 천적 새들의 공격을 피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모습에 대한 스케치는 마치 한 편의 동화 같은, 또 한편으로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했다. 자신의 임무를 마치고 스러지는 중국애호랑나비의 모습이 자못 숭고해 보이기까지 했다.

 

중국 이룽후에 살던 이룽잉어가 인간들의 식량생산을 위해 호숫물을 빼내기 시작하면서 기록적인 가뭄으로 호수가 말라 모든 이룽잉어가 몰살당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인재라는 표현이 부족하지 않을 듯 싶다. 미국에서도 1973년 리틀테네시 강의 텔리코댐 건설로 멸종위기에 몰렸던 달팽이시어가 악명 높은 대통령 닉슨이 멸종위기종 보호법에 서명하면서 간신히 멸종을 피할 수가 있었다고 한다. 또 한 가지 같은 해 닉슨의 주목할 만한 결정은 베트남 철군이었는데, 그것은 출구전략(Exit Strategy)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었던가.

 

저자는 지구별의 모든 생명들은 나름의 가치와 존재 의의를 갖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강조한다. 인류의 영속을 위해서도, 종 다양성의 보존을 위해 필요이상의 난개발과 무분별한 남획 그리고 탐욕적인 컬렉션을 단호하게 배척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물원의 존재 의미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개인적으로 꼬맹이 때문에 자주 동물원을 찾으면서도, 또 마음 한 편으로는 원래 고향에서 강제적으로 이주하게 된 물설고 낯선 환경에 노출된 동물들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제국주의 시대의 산물인 동물원을 없애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인간 편의적인 동물원의 사육 방식 대신 최대한 동물들의 편의를 위한 친동물적, 친자연주의적 동물원으로 거듭났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7-21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1 1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21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본의 동물원에 번식에 실패하는 동물들이 늘어나고, 외국에 서식하는 동물을 살 수 있는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 이러한 추세라면 동물원이 텅 빈다고 하더군요.

레삭매냐 2017-07-21 18:02   좋아요 0 | URL
어떤 이들은 동물원이 동물들을 보호하는 역할
을 한다는 주장도 하지만, 재생산-번식 차원에
서는 거의 역할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서울동물원에 갔었는데 20년 만에
아기 낙타가 태어났다고 엄청 광고를 하더군요.
참 씁쓸했습니다. 자연상태라면 지극히 자연
스러운 일일 텐데 말이죠.

책에서 보니 어떤 동물들은 자연 상태가 아닌
인공적 환경에서는 인위적으로 번식을 포기한
다고 하는군요. 역시 자연의 섭리는 놀라운
것 같습니다.

 
책이 입은 옷
줌파 라히리 지음, 이승수 옮김 / 마음산책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난달인 6월 30일날 도서관에 들렀다가 우연히 줌파 라히리의 책 <책이 입은 옷>을 빌렸다. 그리고 3주 동안 읽지 않고 있다가 오늘 새벽 12시까 땡!~하고서야 비로서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왜냐고? 오늘까지 도서관에 책을 반납해서. 그리고 보니 빌려서도 조금 읽었던 것 같다. 완독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심심한 마음에. 그리고 분량도 아주 적어 보여서. 그런데 다른 책에 정신이 팔려 있다가 오늘 반납하기 전에 부랴부랴 읽었다. 어젯밤은 이번 여름 들어서 가장 더워서 잠 드는데 고생했다.

 

퓰리처상에 빛나는 작가 줌파 라히리의 삶은 영원한 이방인이라고 해도 무방할 듯 싶다. 영국 런던의 벵골인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가서 그곳에서 영미권 작가로 성장하고 성공한 그녀는 지금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어로 글쓰기에 도전하고 있다. 이 책은 이탈리아 말로 나온 두 번째 책이라고 한다. 속으로 그냥 잘하는 영어 글쓰기에 매진할 것이지 하는 시기심 어린 생각도 잠시 들었다. 그렇게 한가하게 이탈리아에서 지내면서 글쓰기를 할 수 있는 것도, 미국에서 작가로 성공해서 충분한 인세 수입 덕분이 아닐까 하는 지극히 현실적 생각도 잠깐 해봤다.

 

미국의 여느 청소년처럼 자라고 싶었던 작가가 지녔던 꿈의 바리케이드는 작가의 어머니였다. 미국에서도 그리고 어머니의 고향 콜카타에서도 줌파 라히리는 이방인이었다고 고백한다. 자신만의 고융한 정체성을 가지고 싶어하면서도 또 안락한 주류사회에 편입되고 싶어하는 청소년 시절에 대한 향수는 차라리 콜카타에서처럼 교복을 입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에까지 도달한다. 그리고 작가가 되어 책을 부지런히 내고 있는 지금 시점의 책의 표지 이야기라는 현실을 소환한다.

 

작가가 생산해낸 텍스트는 비로소 표지가 덧씌워져야 시장에 나와 고객을 맞이하게 된다. 작가는 책의 표지가 아닌 텍스트로 승부를 하기 마련이다. 문제는 표지 선택의 권한이 어느 정도 레벨의 작가가 아닌 이상 출판사에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전문가들의 추천을 마다할 순 없겠지 아마. 그런데 과연 그렇게 만들어진 표지는 작가가 구상한 텍스트의 본질을 충실하게 구현하는 걸까? 줌파 라히리는 그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피력한다. 과연 책의 표지를 맡은 그래픽 디자이너는 과연 텍스트를 읽어 보기는 했을까? 그리고 번역되서 세계 각국에서 나오는 표지의 경우는 또 다르다. 자신의 벵골 출신(?) 작가라는 점에서 인도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코끼리 혹은 헤나 문신 같은 진부한 이미지도 싫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 국기로 대변되는 미국 작가라는 설정 또한 매한가지가 아니던가.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책이 하나의 상품이기 때문에 독자들의 선택, 다시 말해 팔리기 위해 출판사는 다양한 방식의 마케팅 전략을 책에 투영하는데 전력을 다한다. 작가의 몇 번째 책이라던가, 퓰리처상 수상에 빛나는이라는 멋진 수식어 혹은 미디어 서평 등등을 동원해서 책이 잘 팔리게 하기 위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작가는 과연 그런 것들이 텍스트의 본질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라는 점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오래전 자신이 발가벗겨진 상태의 책을 만났던 도서관 책들을 읽던 시절을 그리워한다. 그 시절 도서관 책에는 아무런 정보도 없기 때문에 무조건 책을 읽어야만 그 책이 지닌 텍스트의 가치에 도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백번 옳은 말씀이다. 나의 경우를 보더라도, 표지가 책 구매에 어떤 영향을 미치던가? 나는 단언코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고르는 책들은 작가, 그 작가가 생산한 텍스트의 본질을 가르키고 있다. 뭐 그래도 표지 때문에 책을 산다는 이들의 심정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의 표지에 대해 이런 고민을 하는 줄 미처 몰랐다. 그리고 이런 소재를 가지고 글을 쓸 수도 있구나. 어쩌면 진지한 소설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제 막 익힌 이탈리아어로 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작가가 텍스트 생산이라는 자신의 고유 임무에 충실한다면, 독자 역시 그 작가가 생산한 텍스트의 소비 다시 말해 읽고 사유하기라는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면 그만이 아닐까. 뭐 그렇게 읽고 나서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삶에 적용시킬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줌파 라히리의 글을 읽으면서 되돌아 보니, 그녀의 책들은 몇 권 갖고 있지만 정작 열심히 읽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퓰리처상 수상작인 소설집 <축복받은 집>이 유일하구나. 이제 슬슬 집에 쟁여둔 줌파 라히리의 책을 좀 읽어 볼까나.

 

[뱀다리] 시각적 메아리 - eco ottica - 표현이 아주 멋지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책한엄마 2017-07-21 1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꽤 의미심장한 책이네요.
책 내용과 점수 차이는 무엇에서 생기는지 궁금해요.
줌파 라히리는 저랑 생각 결이 비슷해 항상 놀라워요.

레삭매냐 2017-07-21 13:43   좋아요 1 | URL
- 포인트 1. 왜 굳이 영어로도 충분히 좋은
글을 쓸 수 있는데 이탈리아 말로 글을 쓰
겠다고 하는 걸까.

- 포인트 2. 표지과 텍스트에 관한 에세이로
과연 책 한 권의 값을 하는가에 대한 저의
주관적인 평가입니다.

- 포인트3. 글에서 자신은 텍스트로 승부를
걸고 싶다며 발가 벗은 책을 옹호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퓰리처 수상작가라는 타이틀
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점 정도.

책한엄마 2017-07-21 13:50   좋아요 0 | URL
오!!@.@b
진짜 그렇네요.

2017-07-21 17: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1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도저히 서점에 가서 한 장이라도 들춰 보지 않고서는 배길 재간이 없었다.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 소설집 이야기다. 특히나 우리 Cyrus님이 언급한 <노찬성과 에반>은 말이다. 바깥은 정말 숨이 턱턱 막히는데 우리 동네에 새로 생긴 대형서점은 별천지였다. 그래 그렇게 가는 거지.

 

일단 서가에서 책을 집어다 읽기 시작했다. 모두 7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소설집이다. 아직까지 난 김애란 작가의 글은 읽어본 적이 없다.

 


노찬성, 올해 나이 열 살 먹은 소년이다. 2년 전, 아버지는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지금은 죽어야 이생의 고통이 끝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지내는 할머니와 같이 살고 있다. 이 단편에서 내가 주목한 키워드는 소외다. 가난에서 비롯된 소외 중에 하나는 찬성이가 또래 아이들처럼 스마트폰을 가지지 못한 사실을 겨냥한다. 어머니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소년 찬성은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지만, 보험금 소송조차 기각이 된 상태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아버지가 당시 골육종을 앓고 계셔서였다고 했던가. 같은 증세로 병역면제된 사실 때문에 한동안 실검 수위를 장식했던 배우 생각이 났다. 솔직히 말해서 골육종이라는 낯선 단어로는 그 병이 얼마나 심각한 병인지 알 도리가 없다. 알고 싶지도 않고. 그만큼 내가 게으르다는 방증이겠지.

 

같이 놀 친구조차 없는 소년에게 어느날 친구가 하나 생긴다. 할머니가 일하시는 휴게소에 버려진 개, 소년들이 열광하는 터닝메커드에 등장하는 캐릭 이름을 따서 에반이라고 찬성이는 노견을 명명한다. 경제적 궁핍에 쪼달리는 할머니는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살림에 개를 집에 들일 여유가 없다면서 찬성이를 구박한다. 그래 그렇게 가는 거지. 어디에서고 해피엔딩을 찾을 수 없는 시대에 소년은 덜컥 자신이 에반을 책임지겠다는 선언을 던진다. 소년은 누군가를 책임진다는 말의 무게를 과연 알고서 자신있게 내던졌을까? 아마도 그러지 않았으리라. 이미 소년은 돈을 벌기 위해서는 무한한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거리에서 커피를 파시던 할머니를 통해 깨닫지 않았던가.

 

다음 수순은 소년이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다. 찬성이와 에반은 참으로 좋은 시간을 보냈다. 문제는 그 시간이 너무 짧았다는 점이다. 에반이 어느날부터인가 시름시름 앓기 시작하자, 꼬불쳐 두었던 돈을 가지고 동물병원을 찾고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수의사로부터 전해 듣게 된다. 우리 에반이 암에 걸렸다고. 아버지랑 비슷한 상황으로 전개가 되는가. 수술을 받는 것도, 안 받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말이 자꾸만 귓가를 맴돈다. 죽음이 코 앞에 닥친 것을 알면서도,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게 인간의 숙명이었던가. 바로 이 지점에서 찬성이의 선택은 안락사다. 그런데 죽음에도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찬성이는 바로 깨닫게 된다. 안락사 비용 10만원을 벌기 위해 찬성이는 수천장의 전단지 알바에 나선다. 열 살 짜리 꼬마의 어깨에 드리워진 죽음이라는 그림자의 무게가 어찌나 그렇게 무거워 보이는지 모른다.

 

마침내 목표액 10만원 모으기에 성공한 찬성은 잠시 동안 성취감에 달뜬다. 그런 성취감을 야금야금 갉아 먹는 건, 할머니가 얻어다 주신 중고 스마트폰이라는 첨단기기다. 자본주의라는 멋진 이름으로 포장된 현대판 물신주의는 이렇게 순수한 소년의 영혼을 잠식한다. 그동안 또래 커뮤니티에서 소외되었던 소년은 마침내 그네들의 리그에 입성하기 위한 장비를 갖추게 된 것이다. 그의 곁에서 에반이 죽어가는 동안, 소년은 자기 나름의 비상을 준비한다. 휴대전화 사용을 위한 제등록비, 액정을 보호하기 위한 필름 그리고 멋진 케이스를 차례로 소비하면서 에반의 죽음을 위해 애써 마련한 둑을 허물어 낸 것이다. 이 짧은 단편소설에서 죽음에 대한 동경, 물신주의가 만연한 소비천국 같이 다양한 주제들이 변주와 반복을 거치며 독자의 마음을 휘젓는 동안, 에반은 스스로 죽음에 뛰어든다. 마치 찬성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소설 속 사건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은 건조하면서 냉정하다. 세상사가 어떻게 진행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는다. 개개인의 삶이 가진 다양한 방식의 나열만으로도 우리의 감정을 온통 뒤흔들기에 충분하다. 이미 우리에게 계몽은 지난 9년 동안의 엉터리 시절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았던가.

 

결국 책은 사지 않았다. 앞으로 매일 같이 서점에 가서 한 편씩 읽을 계획이다.

독서에서 소비란 사는 게 아니라 읽는 게 아닐까. 보통 책을 사서 읽는 걸 더 선호하지만 이번에는 순수하게 소비하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시간이 좀 더 걸리더라도 이 방식으로 한 번 가보련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7-20 18: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0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7-20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딩 때 집에 반려견과 함께 살았어요. 그때 스마트폰이 나오지 않았던 시절이었어요. 지나간 시간을 되돌아보면 반려견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남아 있지 않은 게 아쉽습니다.

레삭매냐 2017-07-20 18:28   좋아요 0 | URL
Cyrus 님 덕분에 좋은 글 읽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날로그 사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디지털 사진을
인화해서 사진첩에 담아야 하는 걸까요 과연.
근데 너무 귀찮아요. 예전 같은 애정이 안생
기더라는.

김애란 작가 글이 좋긴 좋군요.
버뜨, 구매는 좀 더 생각해 봐야지 싶습니다.

내가 이 책을 다시 읽게 될까라면...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1 - 돌아온 세계문화유산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1
김경임 지음 / 홍익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에 맞춰 문정왕후 및 현종어보 문화재를 반환받는데 성공했다는 안민석 의원의 자랑질을 애청하는 뉴스공장을 통해 들을 수가 있었다. 천조국의 비위를 건드리기 싫었던 외교부가 인수를 막았다는 안 의원의 주장에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이놈의 정부기관은 도대체 어느 나라 정부를 위해 일하고 있는 건가 하고 말이다. 지난 세기가 제국주의 열강의 문화재 약탈의 역사였다면, 이번 세기는 그렇게 약탈당한 각국의 문화재들이 제 자리를 찾아가는 시대라고 해야 할까. 문제는 세계 각국에서 약탈하거나 혹은 불법적인 방법으로 취득한 문화재들을 다수 소장하고 있는 유수의 박물관들이 반환에 소극적이거나 혹은 방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직 대영박물관에 가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루브르만 하더라도, 그렇게 불법적으로 취득한 혹은 유래를 알 수 없는 문화재들을 모두 반환하게 된다면 속빈 강정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1편에서 가장 먼저 읽은 꼭지는 터키의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MET)을 상대로 한 고대 우사크 유적 반환 소송이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세계 최강국으로 거듭난 미국에 다수의 문화재들이 몰려든 것은 꼭 국력이나 경제력 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팍스 아메리카나 시절에 맞게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던 것일까. 갖은 방법과 꼼수를 동원해서 우사크 문화재의 반환을 거부하던 MET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국 미국 법원은 터키 문화재의 반환을 명령하기에 이른다. 대륙법과 한 번 장물은 영원한 장물이다라는 영미법 체계의 차이점도 지난해 보이는 그리고 막대한 소송비용이 든 재판의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저자의 탁월한 분석이 돋보였다. 하지만 균형감을 잃지 않은 저자는 과연 터키가 피해자일까라는 약점을 지적한다.

 

더 나아가 고대 우사크 유적이 지금 터키 민족이 국가를 이룬 터키 공화국의 문화재라는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고대 우사크 유적은 11세기경 발흥한 셀주크 투르크 계의 후손인 투르크족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유적이 아니었던가. 그 영토에 있는 것만으로 그 나라의 문화재가 맞느냐는 의제는 또다른 논쟁을 불러올 만하다. 게다가 터키는 그리스 점령 시절, 파르테논 마블의 불법적인 반출을 묵인하거나 방조한 미필적 고의도 있지 않은가. 게다가 반환받은 우사크 문화재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도둑 맞는 일도 발생하면서 역시 서구사화의 체계적인 관리시스템이 우월하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 주기도 했다는 점에서 문화재 반환투쟁에 옥의 티였다. 한편, 독일을 상대로 터키 정부가 벌이고 있는 페르가몬 제우스 신전 반환에서도 어쩌면 역사 속으로 사라질지도 몰랐던 문화재를 비록 본국은 아니지만 멀리 독일에서 더 효과적으로 보존하고 있다는 점도 문화재 반환 이슈의 또다른 쟁점 사항이라고 저자는 냉정하게 말한다.

 

저자는 단순한 문화재 반환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만 저술하고 있는 게 아니다. 요즘도 많은 책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빈 출신 천재화가 에곤 실레의 걸작 <발리의 초상> 같은 경우는 또 어떤가. 중세를 거쳐 마지막 숨을 쉬고 있던 제국의 수도 빈에서 거장 클림트와 교류하며 아르누보 화풍으로 출발해서 독자적 화풍을 제시했던 청년 화가의 삶을 조명하면서, 그의 뮤즈로 활약하다가 젊은 나이에 전장에서 성홍열로 사망한 모델이자 애인 발리를 그린 초상의 기구한 유전을 추적하기도 한다. 전쟁 통에 나치 당원에게 소유권을 빼앗긴 원 소유자 유대인 레아 본디에게 <발리의 초상>이 인도되지 않고 미군당국은 오스트리아 정부에게 소유권을 넘겼다가 진가를 파악한 레오폴드라는 인물이 도중에 끼어들어 소유원을 얻었던가. 예의 작품이 미국 전시길에 나섰다가 첨예한 법정투쟁을 벌이게 되는 과정은 너무 복잡해서 열거할 수가 없을 정도다. 어쨌든 나치약탈품은 원소유자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역사적 정당성에 의거해서, 레아 본디의 미국 상속권자들은 소송 끝에 막대한 금전적 보상을 얻게 됐다. 저자는 굳이 금전적 보상 뿐만 아니라, 홀로코스트에서 희생당한 이들에 대한 정의 바로 세우기 과정으로 보는 정당할 것이라는 지적도 빼놓지 않는다.

 

우리의 문화재로 고려말 왜구의 약탈로 대마도로 유입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서산 부석사 관음불상의 경우는 또 어떤가. 사실 역사를 전공했다고 하면서도, 우리나라에서 최근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두지 못했다는 점이 부끄럽다. 대마도 간논지에 안치되어 있던 고려 불상을 도굴꾼들이 절도해서 국내로 반입해서 밀매하려다 경찰에게 적발되어 압수된 과정까지는 비교적 순탄했다. 문제는 장물이기 때문에 원 소유자에게 돌려 주라는 재판부의 결정으로 불상 2점 중 하나는 일본 대사관을 통해 반환되었다.

 

하지만 서산 부석가 관음불상의 경우에는 복장 기록을 통해 고려말 서주(지금의 서산)에서 다수의 사람들의 시주로 제작되었다는 명문이 발견되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약탈 문화재로 부석사로 귀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면서 문제가 꼬이기 시작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비록 수백 년 전에 벌어진 사건이긴 하지만 불법적으로 약탈된 문화재이기 때문에 재판 결과가 확정되기 전까지 일본 간논지 측에 되돌려 줄 수 없다는 우리의 입장이고, 일본에서는 전후과정을 일체 무시하고 일단 절도된 장물이기 때문에 무조건 자기들에게 반환하라는 주장이 첨예하게 부딪히고 있는 실정이다. 부석사 관음불상의 복장 기록을 연구한 일본 학자도 약탈품일 것이라는 주장을 했지만, 또 한편에서는 해당 불상이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대마도에 안착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기록으로 약탈인지 아니면 기증이나 정상적 구매냐를 입증할 수 없다는 것이 맹점이다. 2편에서도 나올 예정이지만 이럴 경우, 그렇다면 로마 시대에 이집트에서 약탈한 오벨리스크도 반환해야 한다는 주장도 성립이 될 것이다. 근 이천년 가까이 동안 원래 제작된 고향을 떠나, 이향에서 뿌리를 내린 문화재도 반환의 범주에 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은 문화재 반환에 얽힌 문제들을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개인적으로 모든 약탈된 문화재들은 원래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서구 유수의 박물관들이 자신들이 소장하고 있는 문화재 반환이라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해서, 수장 문제를 거론하며 모든 인류의 문화재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체계적이고 우수한 기술로 수장과 전시를 앞으로 맡겠다는 주장은 모두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비록 원래 고향으로 돌아가 비바람, 그리고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시간이라는 풍화에 삭을 지라도 그 곳에 살던 이들과 함께 해야 한다는 진리를 거스를 수는 없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7-20 1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0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 그랜드 펜윅 시리즈 1
레너드 위벌리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5년 6월
평점 :
절판


 

레너드 위벌리라는 아일랜드 출신 미국 작가의 책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라는 기발한 책을 읽게 됐다. 이웃 어느 알라디너가 쓴 리뷰를 보고서 나도 이 책을 구해서 읽게 됐다. 책만사(책을 만드는 사람들) 선정 2005년 올해의 책이라는 광고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다시 작가 이야기로 돌아가 농학자 출신 아버지 슬하에서 자란 레너드 위벌리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신문사에서 카피 보이로 출발해서 기자가 되었다. 영국, 트리니다드 등지에서 기자 생활을 한 위벌리(1915년생)는 1943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전쟁 중에 AP 런던 특파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이 37세에 처음으로 소설을 발표한다.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는 냉전이 한창이던 1955년에 발표된 풍자 우화소설이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 되는 그랜드 펜윅 공국은 프랑스 알프스 부근의 소위 “미식축구 경기장”만한 사이즈의 아주 작은 나라다.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벌어졌던 백년전쟁 당시 로저 펜윅이 세운 가상의 공국은 품질 좋은 와인 생산으로 그동안 잘먹고 잘 살아왔다. 하지만 인구 증가와 세계 와인 시장의 치열한 경쟁으로 경제 위기에 처하게 된다. 그렇지 문제는 경제였다. 시민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 언제나 문제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랜드펜윅 공국의 대공녀 글로리아나와 와인 희석당 그리고 반희석당의 당수들이 모여 내린 결정은 당대 최강국 미국을 침공하자는 미증유의 계획이었다. 아니 고작 14세기 장궁과 철퇴로 무장한 총인구라고 해봐야 6,000명 남짓한 소국이 2차세계대전 이후 핵폭탄까지 가진 미국과 전쟁을 하겠다고! 그야말로 SF 판타지 영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가 아닌가. 그런데 그들의 회의 내용을 살펴보면 아주 허황된 계획은 아니었다. 미국은 전쟁에서 진 나라들의 경제부흥을 위해 막대한 비용을 쓰지 않았는가. 전후 유럽에서는 마셜 플랜을 가동해서 서방으로 옥죄어 오는 공산주의 소련에 대항해서 패전국 독일 부흥에 박차를 가했다. 동북 아시아에서도 마찬가지로 소련의 남진을 막기 위해 패전국 일본의 경제부흥에 최대한의 원조를 하지 않았던가. 그랜드 펜윅 지도부는 바로 그런 점을 파악하고, 미국과 전쟁을 치러 패전하고 두둑한 돈보따리를 껴안을 궁리에 도달한 것이다. 세계대전 이후, 패전국에서 벌어진 경제부흥에 대한 저널리스트 출신 저자의 고단수 풍자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이유 없이 막무가내로 전쟁을 선포할 수는 없지 않은가. 돌아이 부대로 보이는 그랜드 펜윅의 전쟁지도부들은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던 모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산라파엘에 위치한 와이너리에서 생산 중인 자신들의 와인을 패러디한 그랜드 엔윅 와인이 자국의 이익에 심대한 지장을 초래한다는 비교적 합리적인 원인을 들어 세계 초강대국에 대한 선전포고를 감행한다.

 

한편 미국 뉴욕의 컬럼비아 대학에서는 원자폭탄을 능가하는 그야말로 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쿼디움을 이용한 중수소 폭탄, 일면 Q폭탄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경쟁자 소련보다 앞서서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힌 인물은 바로 핵물리학자 코킨츠 박사다. 미국 동부 해안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쿼디움 폭탄이 마침내 만들어지고, 이에 맞춰 미국에서는 적의 원폭공격에 대비한 훈련에 돌입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저자는 평화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적의 공격에 대비한 가공할 만한 무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역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마다하지 않는다. 우리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ICBM 미사일 때문에 안보가 위협에 시달리고 있지 않은가. 결론적으로 총사령관 털리 배스컴의 지휘 아래 14세기 장궁과 철퇴로 무장한 일단의 그랜드 펜윅 특공대는 범선을 타고 뉴욕에 상륙해서 코킨츠 박사의 쿼디움 폭탄을 탈취하고 이 기묘한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데 성공한다. 스무명 남짓한 병사들로 세계 초강대국 미국의 무릎을 꿇게 만드는데 성공한 것이다.

 

레너드 위벌리는 화성인이 지구를 침공했다는 뉴스에 버금갈 만한 스토리로 강력한 반전 및 반핵 메시지를 독자에게 선사한다. 사람들은 전근대적 무기를 들고 미국 침공에 나선 그랜드 펜윅의 전사들을 비웃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상대방보다 더 강력한 무기가 있어야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으로 천문학적 비용을 무기개발에 사용하고 있는 군산복합체의 지도자들이야말로 정말 무식한 게 아닐까. 대화와 협상으로 얼마든지 최소한의 비용으로 군축을 이끌어 낼 수 있음에도, 다른 요소들을 모두 무시하고 오로지 강대강으로 적을 제압하는 것만이 최고라는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진짜 문제인 것이다.

 

저널리스트 출신 레너드 위벌리 작가는 정말 모두를 파멸로 몰아넣을 지도 모르는 핵전쟁에 대한 우화를 <약소국 그랜드 펜윅의 뉴욕 침공기>를 통해 능청스럽게 그려냈다. 원제는 <The Mouse that Roared>라고 우리말로 직역하자면 <으르렁거리는 생쥐> 정도로 할까.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진짜 말하고 싶었던 부분은 그랜드 펜윅 공국에 전쟁포로로 잡혀온 코킨츠 박사와 공국의 유일한 지식인 피어스 배스컴과의 대화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도 (미국 출신 핵물리학자에게) 지구별을 파탄시킬 수 있는 폭탄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주지 않았다고 말이다. 여전히 핵무기를 가진 이들을 겁박하기 위해선 더 강한 무기로 압박해야 한다는 냉전시대 부산물적인 사고를 가지고 전쟁타령을 하는 이들이 꼭 한 번 읽어봐야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200일 동안 100권의 책을 읽었다. 그동안 수고했다. 분발하자. 이상.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galmA 2017-07-19 1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분량 적은 책도 별로 없이 리뷰도 꼼꼼히 챙겨 쓰셨잖아요. 값진 100권 돌파 축하요/

레삭매냐 2017-07-19 17:2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공교롭게도 오늘이 올해 200일째라고 하네요.
아니 201일인가. 암튼...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꾸역꾸역 읽고 있습니다.

cyrus 2017-07-19 20: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의 독서 행보를 봐서는 올해에 책 200권 읽을 것 같습니다. ^^

레삭매냐 2017-07-20 10:19   좋아요 0 | URL
예전에 한창 읽을 적에도 300권 가까이도 읽었지만
이제 노쇠한지라 그 정도 기력은 안되네요.

작년에도 200권 언저리 비슷하게 도달했지만 무리
하지 않았어요. 올해도 그냥 읽게 되는 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