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떨어진 폴 2 - 인간계 생활 매뉴얼
남지은 지음, 김인호 그림 / 홍익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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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2권이다. 두 번째 “인간계 생활 매뉴얼”에서는 옥황상제에게 대들었다가 화과산 아래 수백년 동안 깔려 지내야 했던 손오공처럼 그분에게 반항했다가 인간계로 추락한 넵퍼 폴이 그분과 대면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분명 그분은 폴의 아버지일 텐데, 그런 암시가 조금도 주어지지 않아 궁금증이 폭증했다. 그분은 묘하게 폴을 설득해서 말 잘듣는 착한 학생으로 만들어서 본래 임무에 충실하게 만들었다. 천사도 아닌 넵퍼 쯤이야 그분께서 어련히 다루어 주실까 싶었다. 아, 지금까지 폴은 Paul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제목을 유심히 보니 Paul이 아니라 Fall이었다. 이런 심오한 뜻이 숨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인간도 천사도 아닌 믹스종 넵퍼 폴은 태생에서부터 숨은 기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계로 추락한 넵퍼.


천사들의 지상 아지트이자 알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알은 자신의 카페에 등장해서 꼬장을 부리던 연극배우 시내에게 조금씩 끌려 들어간다. 천사도 인간과 사랑을 할 수 있단 말이지. 하긴 폴의 존재가 인간과 천사의 만남이 아니었던가. 그렇게 작가들은 만화의 곳곳에 그런 신화적 기호들을 잘 배열해 두고 있었다. 좌절하려는 시내에게 알은 더할 나위 없는 그런 위로를 안겨 준다. 어쩌면 거친 현실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우리 외로운 인간들에게 진짜로 필요한 것은 알이 선사해주는 그런 진정성이 담긴 위로가 아닐까 싶다. 꿈을 포기하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물론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말이다.


한편, 어디선가 숨어서 호시탐탐 넵퍼 폴에게 복수할 기회를 노리던 우리의 궁 아저씨는 비밀무기를 만들어서 세상의 악을 부스트업하는 비밀병기를 만들어내는데 마침내 성공한다. 그리고 폴을 꼬드겨서 그를 소멸시키는데 성공하려는 순간, 여주 공서희 양이 짜잔~하고 나타나서 폴을 구해낸다. 서로 은혜를 입고 갚고 하면서 사랑을 맹글어 가려는 클리셰이의 전개가 흐뭇해지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자자 그렇다고 그렇게 마냥 이야기가 공서희 양과 훈남 폴의 연애로 이어지면 곤란하니 이쯤에서 걸출한 라이벌을 한 명 등장시킬 순서다. 그것은 바로 공서희 양이 딱 하루 동아리 활동을 하던 번역동아리 출신의 또다른 훈남 윤희산 군. 누구 못지 않게 달달하고 화끈한 연애를 꿈꾸던 공서희 양에게 윤희산의 등장은 그야말로 금상첨화가 아니던가. 자신도 모르게 자기 운명의 파트너라는 생각이 자꾸만 드는 폴의 심장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물론 마냥 스토리가 달달로맨스로 흘러 가면 곤란하니, 이쯤에서 공서희 양과 폴의 관계를 눈치챈 궁 아저씨의 훼방작전이 무르익을 전망이다. 자, 이제 이어질 3권을 기대하시라.


다음 스토리가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웹툰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는 네이버가 운영하는 코미코란 사이트에서 현재 연재 중이다. 이제 무료 콘텐츠의 시대를 갔는지, 연재 만화를 보려면 돈을 내야 한단다. 내가 돈을 내고 온라인 연재 웹툰을 본 적이 있던가. 이렇게 책으로 만나게 된다면 또 몰라도 온라인 연재를 돈내고 보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디지털의 아날로그화에는 대찬성이고 기꺼이 돈을 지불할 용의가 있지만, 여전히 구시대 사람인지라 디지털 미디엄에 대해 페이는 좀 꺼려지는 게 사실이다. 뭐 또 시간이 지나고 아날로그를 디지털이 완벽하게 대신하게 된다면 또 생각이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잠시나마 넵퍼 폴과 고시낭인 공서희 양과 함께 하는 시간들은 즐겁고 유쾌했다.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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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이언 매큐언 작가의 <넛셸>이 출간될 거라는 소식을 들었다. 1년 전엔가 어떤 출판사 이벤트로 이언 매큐언 작가의 책 <이노센트>를 받았다. 물론 당장 읽지 않았다. 아마 위화 작가의 책에 나오는 그의 글 때문이었나. 비교적 신간에 해당하는 <칠드런 액트>의 출간 소식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아, 그리고 보니 오래 전에 그의 부커상 수상작 <암스테르담>을 아마 읽었던 것 같다. 역시나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시절은 리뷰도 쓰지 않던 시절이라 막연하게 읽었다는 기억 하나 뿐이었다. 그리고 그의 절판된 책 <시멘트 가든>도 일단 구해 놓았다. 사서 조금 읽다가 접어 두었다.

 

어쨌든 신간 출간 소식을 듣고 중고서점에 달려가 <칠드런 액트>를 사서 읽기 시작했다. 첫 선택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초로의 판사와 수혈 받지 않으면 당장 죽을 지도 모르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소년과의 대화가 인상적인 수작이었다. 사람들이 이래서 이언 매큐언, 이언 매큐언 하는가 싶었다. 올해 BBC 필름 영화로 발표될 전망이라고 하는데, 어떤 식으로 영화화될는지 기대가 된다. 주인공 피오나 메이 판사 역은 노련한 배우 엠마 톰슨이 맡았다. 소설에서 이언 매큐언은 오랜 결혼생활의 종지부를 찍을 지도 모르는 가정의 위기에 봉착한 유능한 판사의 개인적 고민과 한 생명을 살려야 하는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번뇌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다. 과연 타인의 삶에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영향력 등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수작이었다.

 

지난 달 중순부터 시작된 나의 이언 매큐언 읽기의 두 번째 작품은 <이노센트>였다. 이미 가지고 있던 책이었기 때문에 선택이 수월할 수밖에 없었다. 참혹한 2차세계대전이 끝난 냉전 시대 동서방의 첩보전의 격전지였던 베를린에서 벌어진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어서 그런지 더 실감나는 이야기들이 인상적이었다. 이 작품 역시 1993년에 영화화된 바 있다. 앤소니 홉킨스 주연이라고 하는데 오래 전 영화라 구하기가 쉽지 않다. 이언 매큐언 작가는 또다른 작품 <스윗 투스>에서 비슷한 변주를 시도한 것 같은데 아쉽게도 국내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책이다. 원서로라도 구해서 읽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역시나 첩보원이 등장하고, 냉전 시절 문학가들에 얽힌 플롯이 아주 매력적인 느낌이다. 위키피디아에서 살짝 내용을 살펴보았는데 마구 읽어 보고 싶어졌다.

 

 

나의 세 번째 이언 매큐언 도전작은 <체실 비치에서>. 도버 해협에 위치한 체실 비치로 신혼여행을 떠난 서로 다른 두 계급 남녀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첫날밤이 너무나 두려운 신부, 욕망에 불타는 하류 계급 출신 풋내기 신랑의 감정이 뒤섞인 끝에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 설정에 그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댔다. 게다가 분량도 부담이 없어서 그랬는진 몰라도 이틀 만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다. 항상 엉뚱한 상상에 체실 비치를 구글맵으로 검색해 읽어 보기도 했다. 당장 가볼 수 있다면, 달려가 봤을 텐데 하는 또다른 공상에 빠져 보기도 했다. 이 작품 역시 BBC 필름에서 영화로 제작해서 내년 1월 경에 공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영국 출신 극장 연출가 도미닉 쿡의 영화 연출 데뷔작이다. 작가의 필력도 대단하지만, 이언 매큐언 선생은 영화복도 타고난 모양이다. 2007년 부커상 후보에 올랐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돌고 돌아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왔다. 이 책 역시 미디어 2.0에서 나온 책으로 절판된지 오래됐다. 중고서점에서 구해다 읽기 시작했는데 그전에 읽었던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다. 이렇게 새로울 수가 있나 그래. 내용은 흥미로웠다. 지난 주말 독서모임 동료분이 말해준 대로, 이언 매큐언은 결정적인 사건으로 소설을 시작해서 그에 얽힌 인간사를 고민과 번뇌를 풀어간다는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난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잘난 출판업자 부인 몰리 레인의 때이른 죽음, 각기 다른 순간에 고인의 연인이었던 이들의 부침을 그린 스토리로 1998년 부커상을 받았다.

 

그리고 대망의 신작 <넛셸>을 읽었다. 지난달 독서모임에서 아직 출간되지도 않은 이 책을 그렇게 추천했건만, 이언 매큐언의 다른 책들에 비해 내공이 떨어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영원한 문제작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햄릿>의 변주 그리고 영화 <마이키 이야기>의 오마쥬까지는 좋았는데 주변에 하도 엽기적인 사건사고들이 넘쳐 나다 보니, 엄마 트루디의 뱃속에 있는 태아가 아버지를 죽이려는 음모를 꾸미는 엄마와 숙부의 계획에 경악하면서도 속수무책인 상황에 대한 묘사가 흥미로웠다. 다만 시각적 정보도 없이 오로지 청각적 정보에만 의존해서 그리고 엄마가 즐겨듣는 팟캐스트와 라디오드라마로만 세상을 배우고 판단하는 것이 부족할 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어른도 쉽지 않은 와인 테이스트로 산지까지 알아내는 장면에서는 정말 작가의 분신인 듯한 태아의 모습에 무릎을 꿇을까도 싶었다. 너무 멀리 나가셨소이다 이언 매큐언 선생.

 

 

어쨌거나 다시 수집해둔 이언 매큐언의 다른 작품 읽기에 나섰다. <토요일>. 표지갈이를 하고 새롭게 출간됐지만 내 수중에 있던 책은 구간 <토요일>이었다. 아, 왜 국내에 출간된 이언 매큐언의 모든 책들은 번역자들이 다 다른 건지 그것도 궁금하다. 예전에 헤르타 뮐러의 책을 읽으면서 역자들이 모두 달라 하나의 작가가 아니라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는 게 아닌가 싶었던 경험에 아무래도 가능하면 동일한 번역자가 같은 작가의 작품 번역을 해주는 게 어떨까 싶다는 의견도 독서모임에서 피력했었다.

 

<토요일>은 2003년 두 번째 이라크전쟁을 앞둔 2월 13일 토요일 하루를 그린 작품으로 주인공 헨리 퍼론의 고달픈 하루에 방점을 찍는다. 신경외과 전문의를 주인공으로 삼은 작가는 자그마치 2년 동안이나 뇌수술 하는 장면을 직접 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면서 실제 수술 장면을 마치 해부하듯 고스란히 소설에 옮겨 담았다. 개인의 평온한 일상이 언제라도 예상하지 못한 폭력에 의해 부서질 수 있다는 설정이 정말 공포스러웠다. 우리 사회는 아니지만, 이라크전쟁으로 촉발된 기존 중동질서에 혼란이 IS 극단적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의 발호를 부추겨 오늘날 서방세계의 안전을 위협하는 하나의 원인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어쩌면 이언 매큐언의 예언이 담긴 묵시록으로 읽을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한달여에 걸쳐 모두 6권의 이언 매큐언 책들을 섭렵했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은 역시 영화로도 만들어진 <이런 사랑>이다. 과학 저술가로 활동 중인 47세 중년 남자 조 로즈가 애인 클라리사와 피크닉을 즐기던 화창한 날에 벌어진 풍선 사건에 개입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소설인데 초반은 좀 지루했지만, 드 클레랑보 신드롬이라는 어려운 이름으로 알려진 도끼병 환자 제드 패리가 등장하면서 소설이 재밌어지기 시작했다. 이래서 소설은 결정적 순간이 있다는 것일까. 초반엔 충격적이었지만 그냥 그렇게 전개되던 소설이 단박에 흥미진진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영화도 구해놨는데, <사랑을 견뎌내기>라는 소설과는 좀 다른 제목이라 흥미로웠다. 36살의 대니얼 크레익이 원작 소설의 주인공보다 열 살이나 어린 역할을 멋지게 해낸 듯 싶어 기대가 된다. 아무리 봐도 미친 사랑에 빠진 제드 패리 역의 리스 이판도. 소설을 다 보고 나서 영화도 봐야지.

 

이언 매큐언과의 나의 마지막 여정은 <시멘트 가든>을 거쳐 <속죄>로 마무리될 전망이다.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솔라>와 <스윗 투스>의 출간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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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29 19:0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전작 읽기의 모범을 보여주시는 레삭매냐님. 정말 존경합니다. 저는 전작 읽기를 시도하다가 포기해서 엎어진 일이 많아서 전작 읽기를 결산하는 글을 써본 적이 없습니다. ^^;;

레삭매냐 2017-06-29 23:03   좋아요 2 | URL
아직 전작을 완성한 게 아니라 중간점검
수준인데, 과찬이십니다 :>

세 권 플러스 소설집도 하나 있었네요.
일단 구해야겠네요.

진짜는 로베르토 볼라뇨인데 큰산이네요.

AgalmA 2017-06-29 21: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전작 읽기는 ˝이언 매큐언은 결정적인 사건으로 소설을 시작해서 그에 얽힌 인간사를 고민과 번뇌를 풀어간다는 스타일˝... 이런 걸 발견하게 되어 좋은 거 같아요^^
도선생 책 열심히 읽어가며 저도 제 나름의 종합을 하게 되는 게 좋더라고요^^
레삭매냐님의 이언 매큐언 도전 바라만 봐도 흐뭇하네요^--^ 끝이 얼마 안 남았군요. 짝짝짝~

레삭매냐 2017-06-29 23:06   좋아요 2 | URL
지금까지 잘 달려 왔는데 남은 걸
잘 마무리해야지 싶습니다.

최고작이라는 <속죄>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도끼 선생의 책도 도전해 보고 싶은데
원체 대작들인지라 ㅎㄷㄷ 하더라구요.

목나무 2017-06-30 09: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진짜 대단하시네요. 한 달 새에 이리 많은 작품들을....^^
영화도 챙겨보시기까지...저는 <속죄>를 영화로 만든 <어톤먼트>만 봤네요.
<첫사랑, 마지막 의식>은 이미 읽으신 건가요? 언급이 없는 듯하여...
저는 이 단편집도 무척 좋았거든요.
전작 끝까지 하시기를 응원합니다. ^^ ㅎㅎ

레삭매냐 2017-06-30 09:54   좋아요 2 | URL
지금 <이런 사랑> 읽고 있는데
예전처럼 진도가 쫙쫙 나가지 않네요.
일반적 독서 슬럼프가 아닌가 싶습니다...

말씀하신 소설집은 구할 수가 없어서요 :>
개인이 파는 중고책은 배송료가 비싸서
고민 중이네요. 일단 질를까요?

<첫사랑>까지 더하면 네 권 더 읽어야겠네요.

목나무 2017-06-30 09:58   좋아요 2 | URL
<첫사랑, 마지막 의식>은 단편집이긴 한데... 저는 그 단편들이 조금 충격적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내용들이....... 그래서 제가 매큐언이란 작가를 제대로 인지하고 또 좋아하게 되었다는...ㅎㅎㅎ
레삭매냐님의 취향이 어떤지 몰라서 반드시 구입하라고는 말씀 못드리겠는데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읽어보셔도 좋을 듯해요. 장편과는 또다른 매력이 확실히 있어요. ^^

레삭매냐 2017-06-30 10:22   좋아요 2 | URL
뭐 이왕에 시작한 컬렉션이니 언제고
수중에 넣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6년 전부터 번역 중이라는 <솔라>는
과연 언제 나오는 걸까요.

<Sweet Tooth>가 아주 궁금한데 원서
로라도 살까 고민 중입니다.

단발머리 2017-06-30 12: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정말 멋지십니다.
저는 딱 두 권 읽었는데, 레삭매냐님 페이퍼 읽으면서 어, 어, 어... 이것도, 이것도, 이것도 읽어야겠다, 하고 있습니다.
사실 도서관에서 대출해서 저희집까지 왔다가 다시 돌아간 책들도 여럿 있습니다. ㅠㅠ
이렇게 한 작가의 책을 주욱 이어서 읽는게 참 좋은데,
전 그게 잘 안 되더라구요. 레삭매냐님 보고 도전받네요.
아하.... 이렇게 하는거구나~~ 하면서요^^
속죄,편 기다립니다.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레삭매냐 2017-06-30 14:12   좋아요 1 | URL
나름 슬럼프여서 완독에 성공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남은 책들 모두 읽는
쾌거를...

저도 도서관에서 빌리기만 하고 반납하기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이언 매큐언 선생의
<넛셸> 읽고서 햄릿 빌렸다가 펴 보지도 못
하고 반납했네요.
 
한평생
로베르트 제탈러 지음, 오공훈 옮김 / 그러나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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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에 앞서 소설 <한평생>은 구원과 고독 그리고 존엄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에게는 처음으로 번역되어 소개되는 오스트리아 출신 배우이자 시나리오 작가 그리고 소설가인 로베르트 제탈러의 <한평생>은 지난 봄 한강의 <채식주의자>와 함께 맨부커 인터내셔널 최종심에 오른 수작이라는 점만으로도 충분히 일독할 가치가 있는 책이다. 새로운 작가를 만난다는 즐거움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도전에 인색한 편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읽을 수가 있었다. 2015년에 <스토너>의 존 윌리엄스를 만난 해로 기억될 수 있다면, 2016년은 로베르트 제탈러를 발굴해낸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소설 <한평생>은 산사나이 안드레아스 에거의 평범한 일생에 관한 소설이다. 그런 점에서도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를 떠올리게 한다. 에거는 고아 출신으로 오스트리아 티롤 지방의 농부 크란츠슈토커의 포스터 차일드(foster child)로 입양되어 어린 시절부터 매질과 학대에 익숙한 삶을 살게 된다. 어느 날 양부의 심한 매질로 오른쪽 다리가 부러지고 접골사의 처방으로 낫긴 했지만 한쪽 다리를 절게 되었다. 소설의 초반부터 내러티브는 어린 소년 에거가 앞으로 얼마나 험난한 삶을 살게 될지 그 징후를 보여준다. 소년을 세상에서 유일하게 따뜻하게 대해주던 크란츠슈토커의 장모 디아늘이 죽었을 때, 그늘진 장소에 숨어 흐느끼는 장면에서 소년의 고독을 읽을 수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소설의 시작은 에거가 염소지기를 오두막에서 구하는 장면으로 시작되었던가. 말없이 구원에 나선 에거의 노력은 폭설을 헤치고 마을로 향하던 와중에 눈발 속으로 “뿔 달린 하네스”가 도망치면서 수포가 되고 눈 속에서 고생하느라 지친 마음을 ‘황금 영양’ 여관에서 튀긴 도넛과 수제 크라우터러 소주로 달래는 가운데 젊은 여성을 만났고 그 순간을 에거는 평생 돌이켜 회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는 장면은 그렇지 않던가. 그렇게 인간의 구원 그리고 사랑은 일맥상통하게 된다는 점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걸까.

 

학교에서 다니면서 간신히 글을 깨우친 에거는 장성해서 크란츠슈토커의 매질에서 벗어나 비로소 독립된 삶을 꾸려 나가기 시작한다. 해준 건 없고 부려 먹기만 한 양부의 매질에 대한 거부는 한 인간이 지켜야 하는 존엄성에 대한 장엄한 선언이었다. 그리고 ‘비터만 운트 죄네’ 회사가 산중에 케이블카 설치를 시작한 것은 에거에게 하나의 기회였다. 산으로 상징되는 자연을 사랑했던 그에게 말없이 묵묵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야말로 금상첨화였다. 세계가 자본주의로 시대로 진입하게 되면서, 오락과 휴식을 즐길 여가시간과 소득이 늘어난 대중에게 힘들이지 않고 산을 오를 수 있게 만들어주는 케이블카 사업이야말로 황금알을 낳은 거위였던 모양이다. 그 당시만 해도 지금과 같은 개발에 따른 필연적인 환경파괴 이슈는 없었던 모양이다.

 

 

특별한 기술도 없고, 다리까지 저는 에거의 고용을 총지배인은 꺼리지만 막일꾼 에거의 가능성을 알아본 그는 즉석에서 고용을 결정한다. 그리고 벌목작업과 쇠기둥을 세우는 일이 투입된 에거는 산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는 자신의 능력을 십분 발휘해서 현장에서 뛰어난 성과를 거둔다. 동시에 황금 영양의 종업원 마리와의 사랑도 무르익어 간다. 직장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두둑한 보수와 크라우터러 소주로 매수했다) 산에 불로 만든 기발한 프로포즈를 동원해서 마침내 마리와 결혼에 성공한다. 하지만 에거의 행복은 오래 가지 않고, 어느 날 신혼부부의 오두막을 덮친 산사태로 아내 마리를 잃는다.

 

그리고 누구나 다 알다시피 오스트리아 출신 상병 아돌프 히틀러가 기획한 게르만 민족의 레벤스라움을 위한 정복전쟁이 시작되고, 에거 역시 전시 복무에 지원하기 위해 징병검사위원회에 지원하지만 나이가 많고 다리를 전다는 이유로 깨끗하게 거절당한다. 하지만 승승장구하던 독일이 스탈린그라드 전선에서 코너에 몰리게 되자 4년이 지나지 않은 1942년 11월 에거는 징집 명령을 받고 러시아 코카서스 전선에 투입되어 후방의 보급도 받지 못한 채 산속에 머무르다가 러시아군의 포로가 되고 만다. 혹독한 러시아 포로수용소 시절을 보내고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그에게 달라진 상황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에거의 앞날이 막막하기만 했던 것도 아니었다. 전쟁이 끝나고, 전쟁의 상흔으로부터 회복되면서 대중들이 다시 레저의 시간을 즐기게 되자, 산사나이 에거는 아름다운 티롤 지방의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가이드가 되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시작한다. 산에서 길을 잃은 노부부를 도왔던 일에 착안해서 에거는 새로운 사업에 나선다. 학교 교사였던 안나 홀러와의 짧은 로맨스도 등장하지만, 산 사람의 사랑이 죽은 사람의 깊은 사랑을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만 깨달은 채 조용한 이별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고독했던 어린 시절, 아내를 잃은 슬픔 그리고 전쟁포로가 되어 숱한 사람들이 죽어가는 암혹한 시절을 견뎌낸 에거를 산은 묵묵하게 안아 주었다. 마을이 휴양지로 변신하기 시작하고, 가이드 생활에 염증이 난 에거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은둔생활에 들어간다. 산에서 나고 자란 남자에게 산이야말로 결국 돌아갈 곳이라는 암시였을까. 에거의 삶이 막바지로 치닫는 가운데, 소설 처음에 등장했던 사라졌던 ‘뿔 달린 하네스’의 시신이 발견된다. 삶의 온갖 간난신고를 겪어낸 에거는 그리고 천수를 누리고 생을 조용하게 마감한다.

 

로베르트 제탈러는 마치 솜씨 좋은 피아노 조율사처럼 그렇게 산사나이 안드레아스 에거의 삶을 그림 같이 아름다운 티롤 지방의 자연 속에 형상화시킨다. 고아로써 느낀 외로움, 개발과 전쟁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의 과정 가운데 에거는 성장하고, 사랑하고 그리고 마침내 죽음을 맞이한다. 에거의 삶에 어느 순간 착근한 죽음은 더 이상 어색하지 않은 삶의 동반자 같은 존재였다고 해야 할까. 에거가 참여한 노동에 대한 질적 변신도 눈여겨 볼만 하다. 생의 시작은 농장에서 막일을 도맡아 하는 무보수 농부였다. 그 다음에는 케이블카 회사에 고용된 직원으로 산정상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추가 노동을 원했고, 그 다음에는 군인으로 대소전쟁에 참여해서 바위를 폭약으로 뚫고 진지를 사수하는 일에 투입됐다. 마지막으로 고향에 돌아와서는 산악 가이드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에거는 모든 인간처럼 다양한 노동 방식을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보인다.

 

 

제탈러의 첫 만남은 기대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아직 출간되지 않은 그의 전작 <담배 가게 소년>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됐다. 영어책으로는 나온 모양이던데, 애용하는 북디파지토리를 통해 주문할까 하고 고민 중이다. 독일어를 읽을 수 없으니 영어책을 읽어야겠지 아마도. 최근 제바스티안 하프너의 <어느 독일인 이야기>도 열심히 읽고 있는데, 비슷한 시대의 이야기라 그런지 다양한 부분에서 공명하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2016년 최고의 발견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제현에게 강력하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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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29 13: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끔 권위 있는 문학상 수상 작가보다 최종심사에 오른 후보작을 쓴 작가가 더 크게 알려지는 경우가 있어요. 아폴리네르가 공쿠르상 최종 후보에 오른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다른 작가가 상을 받았습니다. 상을 받은 작가는 지금도 프랑스 내에 인지도가 있지만, 아폴리네르의 명성에 비하면 부족해요.

레삭매냐 2017-06-29 23:01   좋아요 0 | URL
동감하는 바입니다.
수상작보다도 어쩔 땐 경쟁작이 우수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죠.

이창래 선생의 <생존자>도 그런 경우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가즈오 이시구로의 원작이 읽고 싶었으나, 대다수 현대일들처럼 내게는 얌전하게 앉아 책을 읽을 시간이 턱없이, 진심으로 부족했다. 그렇기 때문에 차선으로 영화를 선택해서 보게 됐다. 물론 책도 구해서 나의 책상 위에 잘 모셔 놓았다. 400쪽 가까운 책은 언제 읽으려나.




영화를 보는 내내 어쩔 수 없이 이완 맥그리거와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아일랜드>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다만 영화 <아일랜드>가 미래의 세계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면, 소설/영화 <네버 렛 미 고>는 현재 시점으로 전개된다는 차이점 정도. 그리고 <아일랜드>의 주인공들은 철저하게 복제된 클론으로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진행될 것이라는 모르고 있다면, 가즈오 이시구로의 <네버 렛 미 고>에서는 그들, 기증자들이 순순히 체념하고 자신의 운명에 따른다는 점 정도. 사실 <아일랜드>처럼 자유의지를 가진 클론들의 반란을 예상했다면 그것은 온전하게 관객의 오류다.


마크 로마넥의 <네버 렛 미 고>에서는 소설에서처럼 간병사 캐시 H(캐리 멀리건 분)의 입장에서 관조적 시선으로 영화가 진행된다. 세 번째 기증에 나선 오랜 시절부터 친구이자 연인인 토미 D의 마지막 기증을 지켜보며 영화는 곧바로 플래시백으로 접어든다. 소설과는 다른 각색자가 각본을 맡은 만큼, 이 정도의 각색은 봐줄만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시작된 11살난 캐시와 토미(앤드루 가필드 분) 그리고 루스(키이라 나이틀리 분)가 유년시절을 보낸 1978년의 헤일셤으로 돌아간다.


이 어린아이들이 장래의 기증을 위해 키워지는 장면은 비극이다. 적당한 운동과 균형 잡힌 식사 그리고 갖가지 교육과 예술활동, 그들의 삶에 관련된 모든 것들이 미래의 단 한 가지 목표를 가리키고 있다. 1952년에 시작된 획기적인 발명으로 인류의 수명이 100살까지 늘어났다는 전제 아래 진행되는 국가기증프로그램(National Donor Program:NDP)의 실체가 바로 이 헤일셤에서 소리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정작 영화에서 다루는 무서운 진실은 모두가 NDP에 동의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에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가 완벽하게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고, 카메라는 관객을 1985년의 코티지로 데려간다. 캐시와 토미 그리고 루스는 묘한 삼각관계를 이루며 서로 간에 긴장이 고조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 역시 기증자로서의 운명을 피할 수는 없다. 다만, 사랑에 빠진 헤일셤 출신의 남녀들에게는 기증 유예가 주어진다는 루머가 떠돌고 있다. 자신의 목숨을 건 굉장히 절박한 이슈임에도 영화에서는 그렇게 묘사가 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증자의 운명이 어떻게 진행된다는 것은 캐시가 본격적인 기증자들의 간병사로서 활동하기 시작하는 1994년에서 비로소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한다. 아무리 영화라고는 하지만, 기증자들이 아무런 반항을 하지 않고 숙명을 그대로 받아 들이는 장면을 그대로 받아 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수년 간의 간병사 생활 끝에 캐시는 어린 시절의 친구 루스와 만나게 된다. 루스는 이미 두 번의 기증을 마치고, 가까스로 연명을 하고 있다. 오래 전에 토미와 헤어진 루스는 캐시에게 토미를 만나러 가자는 제안을 한다. 사실 그들의 애증의 관계를 뒤로 한 극적인 해후는 여전히 관객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다. 그들의 최종운명이 어떻게 될 지에 초점에 맞추어져 있을 뿐이다.


갤러리를 운영하는 마담이 그들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라고 믿는 토미는 캐시에게 자신이 수년간 작업한 그림을 보여주고, 캐시와의 진정한 사랑을 입증한다면 기증 유예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리고 헤일셤에서의 예술활동은 그들의 영혼을 들여다보기 위한 프로그램 입안자들의 계획이라고 토미는 철썩 같이 믿는다. 과연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사실 상상했던 비극적인 장면은 루스의 마지막 기증 장면 외에는 거의 없지만, <네버 렛 미 고>는 최근에 본 가장 슬픈 영화다. 아무리 클론이라고 하지만, 인간의 존재론적이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해주었다. 영화에서는(혹시 소설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다) 어떻게 해서 헤일셤의 아이들이 선정되었는지, 그리고 기증의 구체적인 수혜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다. 나중에 캐시의 독백처럼 기증받는 이들의 삶이 어떤 의미에서 기증자들의 삶보다 낫다고 말할 수 있는지 전적으로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유년 시절부터 철저한 감시와 통제 아래 자란 캐시와 토미 그리고 루스가 처음 세상에 나가 다이너에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음식을 주문하는 것을 보고 씁쓸한 웃음이 났다. 그 순간 왜 그들의 운명에 대해 알려준 루시 선생님의 상황극이 바로 연상됐다. 어쩌면 그들의 비극적인 운명에 대한 전조는 비오는 날 루시 선생님이 들려준 기증자들의 암울한 미래에 대한 사실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그것보다 더 무서운 사실은 내게 주어진 삶을 조금 더 연장시켜 보겠다고 타인(클론)을 태연하게 희생시키는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었을까. 이런 근본적인 문제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보지 못한 개인의 단상일지도 모르겠다. 과연 나에게 그런 똑같은 상황이 닥쳤을 때, 그들과 다르게 도덕률을 우선할 거라고 단언할 수 있는가.


최근 <위대한 개츠비>에서 멋진 연기를 보여 주었던 영국 출신 배우 캐리 멀리건이 맡은 캐시 H 역에 호감이 갔다. 말로 이래서 좋다라고 꼭 집어서 표현하긴 어렵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녀의 연기에 몰입되어 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오히려 그녀보다 더 뛰어난 스타성을 자랑하는 키이라 나이틀리의 루스보다 낫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새로운 스파이더맨으로 자리 잡은 앤드루 가필드의 토미 D 역할도 나쁘지 않았다. 이렇게 주연을 맡은 세 명의 배우들은 서로 간에 펼쳐지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갈등이 어우러진 미묘한 드라마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냈다.




그렇게 슬픈 영화를 보고 나서 허겁지겁 가즈오 이시구로의 원작을 펴들었다. 그리고 단숨에 60여쪽을 읽어내려갔다. 물론 원작소설과 영화는 달랐지만, 같은 뿌리를 가진 ‘클론’답게 공명하는 부분이 많았다. 영화가 감성적이라고 한다면, 소설은 디테일에서 도저히 영화가 추종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했다. 어서 빨리 원작소설 <나를 보내지 마>를 읽어야겠다.


정말 슬픈 영화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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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7-06-26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정말 좋아요!!! 꼭 읽으세요!

레삭매냐 2017-06-26 11:02   좋아요 1 | URL
소설도 책 읽고 나서 바로 읽었더라구요 :>
리뷰는 예전에 쓴 거 울궈먹기였습니다.

가즈오 이시구로 책 중에서(제가 지금까지 읽은)
가장 마음에 드는 책이더군요. 슬프고 비극적인.

유부만두 2017-06-26 11: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쵸! 아름다운 비극! 영어문장이 꽤 아름다워요....

잠자냥 2017-07-20 1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보통 소설을 영화화하면 원작보다 못한 경우가 다반사인데, 이 작품은 소설은 소설대로 영화는 영화대로 다 좋았어요. 캐리 멀리건과 키이라 나이틀리의 조합, 그리고 그 영화의 황량한 분위기 등등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더군요.

레삭매냐 2017-07-20 10:58   좋아요 1 | URL
격하게 공감하는 바입니다.

캐리 멀리건이 덩그러니 남아 거리를 쳐다 보던
마지막 장면이던가요 정말 아름답고 슬펐던 것
같습니다.

말씀 하신 대로, 대부분 소설의 영화화가 기대
만 못한데, 영화는 영화대로 소설은 소설대로
멋진 작품이었습니다.

너무 슬픈 영화였어요.
 
토요일
이언 매큐언 지음, 이민아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뒤죽박죽 이언 매큐언 읽기는 계속된다. 일전에 시작한 <이런 사랑>도 미처 다 읽지 못했는데 <토요일>을 집어 들었다. 뭐 다른 책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주말 독서모임 때문에 마음에 다급해지지 않았나 싶다. 이언 매큐언 최고의 작품이라는 <속죄>는 국내에 나온 그의 모든 작품을 다 읽고 나서, 맨 끝에 읽을 계획이다.

 

소설 <토요일>의 주인공 헨리 퍼론은 올해 48세의 신경외과 전문의다. 2003215일 토요일 새벽, 사랑하는 아내 로설린드를 곁에 두고 잠에서 깬 헨리는 상념에 빠진다. 이언 매큐언은 그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 유능한 외과의의 지나간 훌륭한 삶을 반추한다. 20대 중반에 가정을 꾸리고 지금은 파리에서 살며 시인을 데뷔를 눈앞에 둔 영민한 딸 데이지와 문학 토론을 즐기는 신세대 아빠. 6개월 만에 집에 도착할 딸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다윈의 자서전을 읽는 아버지의 모습에 코끝이 다 찡해질 정도다. 다른 중년 남자들은 자신의 딸아이 또래의 애인을 둔 일탈에 젖어 있지만, 청교도적 생활에 집착하는 헨리에겐 언감생심이다. 건강유지를 위해 하프마라톤과 동료들과 스쿼시로 체력단련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역시 자신의 분야에서 유능한 변호사로 활동 중인 매력적인 아내 로설린드에 대해서는 부언할 게 없을 것 같다. 새벽 하늘을 바라보던 헨리의 시야에 불붙은 비행기가 들어온다. 안온한 일상에 무언가 파장이 다가온다는 전조였을까. 어쨌거나 블루스 뮤지션으로 촉망 받는 아들 테오 정도가 청정지역처럼 보이는 퍼론 가정의 이단아라고나 할까. 정규 교육을 거부한 아들의 음악세계를 이해할 정도로 개방적인 헨리의 정신세계를 작가는 세심하고 정밀하게 묘사한다.

 

아내 로설린드와 사랑에 빠지게 된 계기도 역시 병원에서였다. 19세 법대생이었던 로설린드는 갑작스런 시력기능 상실로 병원에 찾는다. 뇌에 종양이 있다는 선고를 받은 로설린드는 신참내기 수련의 시절 헨리의 마음을 온통 뒤흔들어 놓는다. 의사가 가진 권한으로 그녀의 개인정보에 접근한 헨리는 로설린드와 웨일리 선생이 집도한 로설린드의 수술을 보면서 평생의 사랑을 찾게 된다. 하나는 진짜 사랑을 그리고 다른 하나는 평생의 직업에 대한 사랑을 말이다. 자신의 직업에 충실하고, 7시간씩 사람을 생명을 살리는 수술을 집도할 수 있는 능력자이자 워커홀릭 헨리에 대한 서술은 마치 스포츠 현장중계를 보는 것처럼 정밀하고 생생하다.

 

14년 전에는 중요한 인물이었던 한스 블릭스의 이름이 소설 속에 자주 등장한다. 검색해 보니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으로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 사찰에 나섰던 인물이라고 한다. 소설의 시간적 배경보다 하루 전인 214일 한스 블릭스는 이라크 무기 사찰 후, 대량살상무기가 존재한다는 증거를 찾지 못했다는 공식 보고를 했지만 미국 부시 행정부는 막무가내로 이라크 전쟁을 예고했다. 다음 날인, 2003215, 전세계적으로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대대적인 반전시위가 벌어진다. 기네스북에 인류 역사상 최대 시위로 기록된 반전시위였다. 런던에서만 50만 명 정도의 시위대가 전쟁반대를 외쳤지만, 한달 남짓 뒤 미국 주도의 이라크 전쟁이 발발했고, 그 후유증은 아직까지도 서방세계의 안온한 일상을 위협하고 있는 중이다. 문득 어떤 점에서 이언 매큐언의 <토요일>은 현대판 묵시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헨리 퍼론의 평범한 일상이 언제라도 테러세력의 공격에 의해 무너질 수 있다는 그런 상상 말이다. 그리고 테러세력이 의도하는 사람들은 분노의 왕국으로 가는 길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조작된 거짓 정보를 바탕으로 시작된 이라크 전쟁이 지금까지도 세계를 위협하는 테러리즘의 발호를 가져오게 될 줄 이때만 해도 누가 알았겠는가. 이것은 2006년 뉴욕타임즈에 의해 폭로된 미국 국가정보평가(NIE) 보고서에서도 인정한 부분이다. 이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한겨레 정의길 기자가 쓴 글들을 섭렵하기도 했다. <이슬람 전사의 탄생>이라는 책으로 출간됐는데 해당 부분만 발췌해서 읽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도전해 보고 싶은 책이다.

 

이라크 반전시위가 지구별을 휩쓰는 동안 헨리 퍼론은 자신의 미국인 동료, 마취의 제이 스트라우스와 스쿼시 게임을 하고자 길을 나섰다가 결정적 사건에 처하게 된다. 경찰의 묵인 하에 봉쇄된 유니버시티 스트리트를 가다가 아주 우연한 접촉사고를 당한다. 이십대 중반의 건달패 박스터 일당과 시비가 붙고, 가슴에 찰과상을 입을 정도였는데 헌팅턴병 혹은 무도병으로 알려진 심각한 수준의 뇌질환을 겪고 있는 박스터의 약점을 공격해서 위기탈출에 성공하는 헨리 퍼론. 그는 일정을 취소하지 않고 제이 스트라우스와 세기의 스쿼시 대결을 벌인다. 그 후에는 모든 가족이 모이는 저녁 식사를 위해 생선 스튜를 만들 준비를 하고, 아들 테오의 블루스 연주도 들으러 가고 치매를 앓으며 세상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어머니 릴리 퍼론 여사를 방문하기도 한다. 박스터의 공격적 방문을 받기 전까지 헨리 퍼론의 일상은 평온 그 자체였다. 곧 뜻하지 않은 불청객의 방문으로 모든 것이 바뀌게 되지만 말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돌팔이 두뇌접골사로 보이는 헨리 퍼론을 주인공 삼아 이언 매큐언은 누구라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현실을 독자에게 직시할 것을 요구한다. 소설에서 잘난 딸 데이지에게 꼰대로 매도당하는 유물론자이자 유능한 실리주의자 신경외과 전문의 헨리 퍼론은 사담 후세인의 강제축출이 서방세계에 도움이 될 거라는 주장을 피력하지만, ! 14년이 지난 지금 그의 주장은 완전히 틀린 것으로 드러났다. 오히려 사담 후세인 이후 진공 상태의 이라크와 시리아 내전을 통해 발흥한 이슬람 원리주의 테러리스트들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게 서방세계를 공격하고 있는 중이다. 소설 <토요일>에서처럼 우리의 평온한 일상은 이제 그 어느 누구도 담보할 수 없게 됐다.

 

이언 매큐언의 다른 작품들처럼 100페이지 정도 드러냈으면 좀 더 컴팩트한 스타일의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24시간이라는 제한된 시간 동안, 이렇게 많은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작가의 일급 추리소설에 버금갈 만한 긴장감 조성도 역시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세계의 정교한 뇌수술 과정을 그리기 위해 자그마치 2년 동안 직접 뇌수술 현장에 참석했고, 전문가의 조언도 아낌 없이 받아 들였다고 한다. 그래서 소설에 등장하는 뇌수술 장면들이 그렇게 리얼했었나. 구글 지도로 찾아보니 헨리 퍼론과 박스터 일당이 붙은 유니버시티 스트리트 부근의 제레미 벤담 선술집도 진짜로 있었다. 그리고 사람을 죽이는 일이 아니라 살리는 일을 맡은 전문의답게, 저급한 수준의 복수 대신 활인(活人)에 방점을 찍은 결말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이언 매큐언은 서구세계에 점증하는 테러의 위협에 자신이 생각하는 관용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 그렇게 가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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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7-06-24 0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끝까지 조마조마 했어요....
구글 지도로 팩트체크고 하셨군요! 소설 속 세계가 더 생생해지네요. ...지지배뱃

레삭매냐 2017-06-24 23:07   좋아요 0 | URL
후반부로 갈수록 밀도가 높아지면서
긴장감이 촉발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요.
기대한 것 이상으로 재밌어서 역시나
이언 매큐언이나 싶었습니다.

제레미 벤담이라는 선술집이 실존하는
장소라 더더욱 놀랐네요.

독서괭 2017-06-28 1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매큐언은 아직 한 권도 읽어보지 못했어요. 속죄까지 다 읽고 나시면 입문으로 어떤 작품이 좋을지 추천해 주시면 좋겠네요^^

레삭매냐 2017-06-28 16:49   좋아요 1 | URL
일단 지금 읽고 있는 <이런 사랑> 그리고
<시멘트 가든>, <속죄> 이렇게 남았네요.

절판된 소설집은 구할 수가 없으니 일단
유보해 두고요.

지금까지 읽은 기준으로 보면 <칠드런 액트>
로 시작해 보시는 게 어떨까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