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시간 - 인생을 생각하는 시간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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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점심을 먹고 나서는 습관적으로 커피를 마시게 됐다. 오늘 점심에는 판모밀을 먹겠다고 가게를 찾아 나서 봤지만, 의외로 판모밀을 파는 가게가 없었다. 대충 냉모밀로 끼니를 때우고 카페를 찾았다. 날이 더워서 그런지 시원한 카페가 절실했다. 평소 즐겨 마시는 아이스 카페라떼는 주문했는데, 돈을 조금만 더 내면 디저트를 준다고 해서 바로 주문했다. 우리만의 즐거운 “차의 시간”을 가졌다 오늘도.


중년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 마스다 미리 작가의 나이를 검색해 봤다. 우리 나이로 49세, 그러니까 이제 1년만 더 있으면 반백년을 돌파하게 되는 나이다. 솔직담백한 매력적인 이야기를 구사하는 마스다 미리 작가의 그림에는 소녀 감성이 물씬 풍겨난다. 국경을 넘어 디저트로 대동단결하는 여성 동지들의 단합이 바다 건너 우리나라에서까지 일어났다는 사실도 빠지지 않고 그려준다. 딸기 케이크 뷔페라니, 생각만 해도 즐겁지 아니한다. 그럼 뷔페에 가서 케이크로 배를 채운다는 말인가. 문득 예전에 옆지기와 함께 용인 죽전에 즐비한 애프터눈 티 카페에 들러 실컷 디저트를 즐긴 기억이 났다.


중년 여성이 느끼는 소녀 감성 중에는 25세 여성의 대화를 엿듣는 에피소드도 있다. 30세가 되면 세상이 끝날 것처럼 말하는 자신만만한 시절이 모두에게 있었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 당시에는 상상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어느새 그 시절이 되고 그 이상의 시절도 맞이하게 되어 있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지 않은가. 스타벅스 카페에서 30세가 되면 세상 끝장이라고 말하던 이들이 과연 30세가 되었을 때, 그리고 40세가 되었을 때 뭐라고 말할 지 궁금해졌다.


도쿄 시부야의 잘 나가는 카페에 갔더니 젊은 점원이 자신들에게는 상대적으로 후진 자리를 준 기억을 기억하는 마스다 미리 작가. 다른 곳에도 자리가 많은데 굳이 자신이 앉은 자리를 탐내는 시선이 느껴지면 심술을 부리고 싶은 그런 마음도 여과 없이 솔직 담백하게 그려내는 용기가 은근 부럽기도 하다. 배가 부른 데도 굳이 먹지 않아도 되는 슈크림을 주문했다고 고백하는 장면도 귀엽다. 그것은 마치 남자들이 라면 국물을 들이키는 것하고 뭐가 다르냐며 되묻는 장면에서는 슬쩍 미소가 떠오르기도 했다.


예전에 한동안 밥배와 디저트배는 다르다며 즐겨 찾는 디저트 카페에 우르르 몰려가 나폴레옹 페이스트리를 실컷 먹으면서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들을 보낸 기억이 난다. 우리 수다에 특정한 목적이 있었던가? 그저 그전날 본 드라마에 대해 논하고, 최근에 본 영화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며 시간을 보내던 시절의 추억이 마스다 미리 작가의 그림과 묘하게 중첩됐다. 작가가 경험한 또다른 스타벅스 스토리에서는 여성 트리오가 등장해서 의미 없는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이 모두 듣게 하면서, 진짜 하고 싶은 말들은 속닥속닥 다른 이들이 알아 듣지 못하게 그렇게 소곤댔다고 했던가. 수다의 진수가 아닐 수 없다.



고급 호텔에서 우리 돈으로 3만원 짜리 슈퍼 엑스트라 쇼트케이크를 그리고 신칸센에서 파르페를 즐기는 주인공의 그림을 흐뭇하게 바라본다. 그 정도 투자해서 행복할 수 있다면 작은 일탈은 허용되지 않을까. 문득 오늘 저녁 나도 맛있는 디저트가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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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6-24 12: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드신 거에요, 디저트^ㅁ^)? 남 뭐 먹었나 물어보는 거 참 없어보이지만 궁금한 게 먼저!

레삭매냐 2017-06-24 23:08   좋아요 1 | URL
저녁 때는 못 먹고,
어제 낮에 먹은 것으로 해야할 것
같습니다.

간만에 정말 맛있는 디저트 먹고
싶네요.

cyrus 2017-06-24 1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만 봐도 행복하게 살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

레삭매냐 2017-06-24 23:09   좋아요 0 | URL
ㅎㅎ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그 유명한 톨스토이의 문구를
이용해야 하나요?

해라 2017-06-30 10: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역시 레삭매냐 님 :)
못 뵌지 백만년이지만 글로만 만나도 이렇게 반갑고 좋은.

레삭매냐 2017-06-30 10:25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입니다 :>

오래전 문동 파뤼가 아마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시절이 그립네요 참말로.
 
인생
위화 지음, 백원담 옮김 / 푸른숲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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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위화 작가의 <형제>를 읽고 나서 문득 서가게 꽂혀 있던 <인생>에 눈길이 갔다. 내가 이 책을 읽었던가? 에라 모르겠다.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읽다 보니 소설의 주인공 푸구이의 인생유전이 어째 새롭지가 않다. 좀 더 읽어볼까? 아하 예전에 읽은 책이로구나. 그런데 읽고 나서 리뷰를 쓰지 않았구나. <허삼관 매혈기>처럼 말이다. 순식간에 절반을 읽었다.

 

100묘 정도의 자산가 쉬씨 집안 푸구이는 도박으로 그 많던 재산을 모두 날려 먹었다. 그의 아버지도 당대에 원래 가진 재산의 절반 정도를 해먹었다고 하는데, 그 아들 녀석도 청출어람 청어람인 모양이다, 물론 부정적인 방향으로. 기세 좋던 집안이 몰락하는 건 순식간이구나. 그나마 집안이 몰락하기 전 잘 나가는 미곡상 천씨 집안 출신 자전을 아내로 받아들여 결혼해서 사랑스러운 딸 펑샤도 출산한다. 아들 유칭을 가진 상황에서 도박 빚으로 지주 계급에서 일순간에 도박사 룽얼의 소작농이 된 푸구이는 평생 하지 않던 밭일을 하느라 손발이 쉴 틈이 없다. 그 와중에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병으로 쓰러져 성중으로 의원을 모시러 가던 중에 국민당군에 징집되어 공산군과 국공내전에 휘말리게 된다. 소설 속 주인공 푸구이가 역사의 순간에 투입되는 순간이다.

 

무작위로 사정도 안 봐주고 사람들을 강제로 징집해서 내전에 나선 장제스의 부패한 국민당군이 전쟁에 승리할 리가 없지 않은가. 해방군에게 포위되어 공중지원 만으로 연명해 가던 오합지졸 국민당군 병사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생쌀과 다빙을 만나처럼 여긴다. 결국 공산군의 맹렬한 공격 앞에 포로가 된 푸구이는 만터우와 귀향에 필요한 노잣돈까지 받아 자전과 식구들이 기다리는 고향에 돌아온다. 푸구이가 징집되어 전장을 떠도는 사이에 노모는 돌아가셨고, 몰락한 가세는 도무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가난의 질곡 속에 푸구이 가정은 고된 하루를 보내게 된다. 인간가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푸구이의 땅과 집을 빼앗아 떵떵거리던 도박사 룽얼은 공산당이 실시한 토지개혁의 열풍 속에 악질지주로 분류되어 총살되기에 이른다. 어쩌면 푸구이가 계속해서 지주로 살았더라면 룽얼의 꼴이 나지 않았을까.


 

하지만 푸구이 가정의 비극은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이미 딸 펑샤는 열병을 앓아 벙어리가 되었고, 아들 유칭의 교육을 위해 13살 먹은 펑샤를 다른 집에 보내 더부살이를 시키기도 했다. 대약진운동 시절을 맞아 집집마다 솥단지를 부수고, 인민공사에서 노동하고 먹는 집단체제가 도입됐다. 원시적인 토법고로로 강철생산을 독려하는 우스운 장면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수백 년에 걸쳐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이룩된 서방 선진세계를 단기간에 따라 잡겠다는 독재자의 무리한 발상은 처절한 실패로 귀결되고, 대규모 기근까지 발생하면서 역대급 기아가 뒤따른다. 어머니 자전은 영양부족으로 구루병에 걸린다.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라는 시대의 비극을 거치는 동안 푸구이 가정은 그야말로 풍비박산이 난다.

 

이 책을 처음 읽고 나서 왜 리뷰를 쓰지 못했는지 두 번째 읽은 후에야 알게 됐다. 푸구이이라는 개인이 짊어진 비극적 삶의 무게가 오롯하게 감정적으로 전달되어 글로 체화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 혁명으로 모든 계급이 타파되고, 공평한 사회가 되었지만 중국 인민들의 삶은 이전과 달라진 게 없었다. 오히려 경험이 일천한 공산당 지도자들이 벌인 계획경제의 폭주로 대규모 기아자가 발생했고, 지주들이 사라진 자리는 당간부들이 차지했다. 그 와중에 푸구이 같은 라오바이싱들은 속절없이 죽어 나갔다. 어린 아들 쉬유칭은 현장 아내에게 수혈하다가 심장이 멎었다. 역설적이게도 유칭의 피를 수혈받은 현장의 아내는 바로 해방전쟁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춘성이었다. 다른 작품 <허삼관 매혈기>에서도 주인공 허삼관은 매혈로 삶의 고달픈 순간들을 돌파하는 장면을 볼 수 있는데, 생명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피[血]에 대한 위화 작가의 집념이라고나 할까. 한편, 춘성 역시 문화대혁명 기간에 홍위병들의 지독한 폭력에 시달리다가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펑샤는 쿠건을 낳다가 죽었으며, 사위 완얼시 역시 사고로 죽었다. 마지막 남은 쿠건 역시 푸구이가 삶아 준 콩을 먹다가 어이 없이 죽고 말았다.

 

무수히 이어지는 죽음의 연대기를 목격한, 홀로 남은 푸구이에게 삶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푸구이가 사랑하는 아내 자전은 죽으면서 푸구이가 자신을 묻어 줄 거라며 행복한 미소를 짓지 않았던가. 쉬씨 집안사람들이 느끼는 짧은 행복에 비해 숙명적 죽음으로 빚어진 고통은 영속적이다. 떠난 이는 말이 없지만, 산 자는 삶의 고통을 지고 나가야 하는 운명인 것이다. 위화 작가는 돌아온 탕아 푸구이라는 캐릭터를 통해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중국 인민들의 삶을 소설로 포착해냈다. <인생>에서는 아직 개혁개방의 시대가 도래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계속될, 현대 중국의 부조리한 면모를 그 누구보다 잘 잡아낸 위화 작가의 문학적 항해를 열렬하게 응원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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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HULU에서 인기리에 방영되던 마거릿 애트우드 여사의 원작 <시녀 이야기>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미드 시즌 1이 끝났다. 시원섭섭하다고 해야 할까. 이제부터 원작소설의 이야기들은 끝이 나고, 앞으로 시즌 2에서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이어질 전망이다. 시즌2는 언제 당장 방영이 되는지 궁금하다. 버라이어티 온라인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HULU의 어떤 시리즈보다도 많은 최다 시청을 기록했다고 하는데 시즌 2는 2018년에 방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좀 더 제작을 앞당겨서 빨리 방송해 주시길 바랄 뿐.

 

 

열 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역시 마지막 편이라 그런지 긴장감이 거의 최고조에 달했다는 점을 느낄 수가 있었다. 세레나 조이(소설에서 묘사된 것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이지적이며 젊고 악독하게 그려진다)는 남편 커맨더 프레드가 오프레드를 데리고 밤나들이를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의 의상에 오프레드의 메이크업이 묻어 있었다는 것이다. 우선 오프레드를 찾아가 이마가 찢어져 피를 흘릴 정도로 강력한 싸다구를 날린다. 그리고 암시장에서 구한 임신 테스터 기로 오프레드의 임신여부를 확인하는 세레나 조이. 기적이 일어났도다. 거의 동시에 커맨더 프레드를 찾아가 밤나들이에 대한 추궁을 하고, 오프레드가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린다. 새로운 생명이야말로 기적이라며 기뻐하는 커맨더 프레드에게 그녀는 잔인하게도 남편의 아이가 아니라고 선언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편, 지저벨을 탈출한 모이라는 천신만고 끝에 미국 캐나다 국경을 넘어 온타리오에 도착한다. 난민캠프에 도착한 그녀는 비로소 재생산을 위한 “국가적 자원”이 아니라 인간적인 배우를 받게 된다. 어느 친절한 난민 센터 직원의 도움으로 재활을 위한 기초 자금과 셀룰라폰, 옷가지 일체 그리고 간단한 생활방식 등을 소개 받는다. 신정국가 길리어드에 적응해야만 했던 자유주의자 모이라에게 캐나다는 신세계였다. 어쩌면 이런 설정은 트럼프가 통치하는 미국 우선주의에 대한 진보적 방송의 냉소적 비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레나 조이의 다음 스텝은 무엇일까? 닉과 그녀의 관계를 눈치챈 듯 다른 차량으로 오프레드를 어딘가로 데려간다. 그곳은 바로 오프레드를 그녀가 그렇게 애타게 찾던 딸 해나가는 사는 곳이었다. 오프레드를 차에 가두고, 해나의 모습을 보여준 세레나 조이는 자신의 아이가 안전하면 해나도 그럴 것이라고 말한다. 오프레드의 아이가 자신이나 커맨더 프레드의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그녀의 위선적인 태도에 정말 기가 질릴 지경이었다. 격분한 오프레드는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가지고 있는 세레나 조이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욕들로 대응하고 저주한다. 이어지는 커맨더 퍼트냄에 대한 재판에서 커맨더 프레드는 용서해주자는 소수의견을 제시하지만, 퍼트냄의 아내는 남편에게 최고형을 가해 달라는 청원을 했다는 소식에 커맨더 프레드는 경악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왼손 손목 절단형은 정말 디테일했다. 물론 끔찍하기도 했고.

 

 

오프레드는 디 아이(The Eye)인 것으로 추정되는 닉을 찾아가지만 그는 부재 중이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커맨더 프레드에게 자신이 임신한 아이가 그의 아이라고 거짓말한다. 오프레드가 몰래 건네받은 패키지는 자신의 경우처럼 강제로 사랑하는 이들과 헤어지고 폭행당하고 짐승 같은 취급을 받은 동료 시녀들의 이야기가 담긴 편지묶음이었다. 그것들을 밤새도록 읽으면서 오프레드는 일종의 위안감을 느낀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길리어드에서 가장 끔찍한 범죄인 아이들을 해치는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를 처벌하는 석살형(stoning)이 벌어지는 장면이다. 세상에 구약의 율법에나 등장하는 처벌을 시녀들에게 시행하라니 놀랍기 짝이 없다. 세 명의 수호자들이 나타나서 돌을 실은 카트를 부린다. 그녀들에게 묵직한 돌을 하나씩 들라고 명령한 리디아 아주머니는 오늘의 형벌을 받을 사람을 끌어 오라고 명령한다. 주인공은 바로 오프다니엘, 아니 전편에서 자신의 딸(샬럿)을 데리고 다리 위에 올라가 인질극을 벌였던 재닌이었다. 거의 정신줄을 놓고 횡설수설하는 재닌을 둘러싼 시녀들에게 리디아 아주머니는 처형을 명령한다. 처음으로 명령을 거부한 시녀는 수호자에게 가격당해 피를 뿌리며 땅바닥에 넘어진다. 하지만 오프레드를 필두로 다른 모든 시녀들은 재닌의 처형을 거부한다. 길리어드에서 명령에 대한 거부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면서도 그녀들은 인간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해산명령을 받고 무리를 지어 보무도 당당하게 자신들의 집으로 귀가한다.

 

 

장면은 다시 전환되어 캐나다의 안전한 난민캠프에 수용된 모이라가 오프레드의 남편 루크를 만나게 된다. 자신의 리스트에 기입해 두었던 모이라의 탈출 소식을 알게 된 루크가 한달음에 그녀를 찾아온 것이다. 의지할 데 없는 모이라는 자신을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는 루크의 말에 뜨거운 포옹으로 대답한다.

 

물론 이런 시녀들의 집단 불복종에 길리어드가 그냥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 검은밴이 오프레드를 잡아가기 위해 출동하고, 소리 없이 등장한 닉은 오프레드에게 자신을 믿고 그냥 그녀를 잡으러 온 수호자들을 따라가라고 말한다. 오프레드는 엄동설한에 제대로 된 복장도 갖추지 못한 채, 두 명의 수호자들을 따라 자신의 운명에 어떤 일이 닥칠 지도 모른 채 검은색 밴에 올라탄다. 그것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었다.

 

드라마를 보고 나서, 인터넷에 떠도는 <시녀 이야기> 시즌 2에 대한 잡다한 정보들을 끌어 모으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오프레드는 여전히 시즌 2에서도 자신의 빛나는 역할을 이어 나갈 것이다. 모이라 역시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예정이라고 한다. 무엇보다도 놀라운 건, 원작자 마거릿 애트우드가 속편을 쓰게 될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아직 소설을 다 읽은 게 아니어서 과연 맨 마지막 부분에 정상화된 길리어드에서 과거를 연구하던 이들이 던진 10가지 질문인가(아직 못 읽어봐서 확실하진 않다) 대해서 어떤 식의 대답이 나올진 모르겠지만 얼마나 흥미로울 지 모르겠다.

 

페어 더너웨이가 세레나 조이(배역으로는 적당하다는 느낌이다)로 나오는 영화를 아직 보지 못해서 어떨진 모르겠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으로 볼 때, 아마 영화 버전보다 이번 드라마가 완성도나 스토리 전개의 짜임새에 있어서 훨씬 더 감각적이고 재밌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원작에서 다루는 페미니즘 혹은 젠더 이슈를 비롯해서, 전세계적으로 진행 중인 정치에 대한 무관심과 소수의 포퓰리즘이 정치를 지배하게 되는 디스토피아적 발상 등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시녀 이야기>가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메시지의 진폭은 상상 이상이다. 가임기의 여성들을 치욕적인 재교육 과정을 거쳐 인간이 아닌 “국가적 자원”으로 간주하는 신정국가 길리어드 전체주의의 실체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채 10년이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그렇게 완벽하게 국가를 바꿀 수가 있을까.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1930년대 합법적인 방식으로 국가권력을 획득한 독일의 국가사회주의자들이 어떤 국가를 만들어냈는지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집단지도체제로 길리어드를 지배하는 10명의 커맨더들 역시 일체의 자유주의를 배격하고, 신의 뜻(정말 자의적인 표현이 아닐 수 없다)이라는 미명 아래, 여성이라는 특정한 계급이 사회적 존재로서 누릴 수 있는 일체의 자유와 재산을 배제시키고 “국가적 자원”이라는 미명 아래 미래세대의 재생산에 투입시키지 않았던가. 그들은 타인에게는 엄격한 종교적 규칙들을 강요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지저벨이라는 환락의 공간을 만들어 억눌린 욕망을 해소했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리바이어던들의 모습에 대한 비판이야말로 소설에서 마거릿 애트우드 여사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주인공 오프레드 역을 맡은 엘리자베스 모스는 이번 칸느 영화제에서 스웨덴 영화 <스퀘어>에도 출연했다고 하는데, 사실 잘 모르는 배우였는데 이번 기회에 인생작을 만났다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길리어드에서 살아남기 위해 순종적으로 보이지만, 자신의 사랑하는 딸 해나를 봤을 때 그 절규하는 장면는 정말 최고였다. 커맨더 프레드를 기만하기 위해 그의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거짓말하는 장면은 또 어떤가. 최소한 자신이 임신한 동안만은 세레나 조이가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없을 거라는 것을 아는 영민함으로 신에게 워터포드 가정에 아이를 내려 달라고 기도했겠느냐고 세레나 조이에게 되묻는 장면은 또 어떤가. 그 외에도 커맨더 프레드 역의 조셉 파인즈(셰익스피어 전문배우라고 했던가), 우아하면서도 냉혹한 이미지의 딱 어울리는 세레나 조이 역의 이본느 스트라호브스키 등의 열연은 어쩔 수 없이 다음 시즌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리고 역시나 우울하고 잿빛 이미지의 길리어드에서의 삶을 정확하게 타격하고 있는 배경음악도 칭찬하고 싶다.

 

올해 지금까지 만난 최고의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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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7-06-16 1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0@기대해봐야겠어요.
빨리 책을 펴야하는데-

레삭매냐 2017-06-16 13:30   좋아요 1 | URL
책이랑 같이 병행해서 드라마도 보고
책도 읽고 그러니까 더 재밌는 것 같습니다.

전 한 1/4 가량 읽었는데 분발해야겠네요.

2017-07-04 08: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04 1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싱글맨
톰 포드 감독, 줄리안 무어 외 출연 / 미디어포유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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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크리스 아이셔우드의 책을 잡고 살았다. <베를린이여 안녕>으로 시작해서 <노리스 씨 기차를 갈아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싱글맨>에 이르기까지 국내에 출간된 크리스 아이셔우드의 책은 모두 다 읽었다. 그래봐야 꼴랑 세 권 밖에 안되지만. <싱글맨>은 원서까지 구해서 번역판과 비교해 가며 읽기도 했다. 번역판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오역과 의역이 심해서 아쉬웠지만 원작가가 하고 싶었던 고갱이는 알아 들었으니 그 정도면 됐다 싶다. 나중에 시간이 되면 원서에 한 번 도전해 봐야겠다. 그리고 나서 자연스레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최근 들어 거의 영화를 본 적이 없었는데 이 영화는 아주 많이 끌렸다. 탑게이 패션 디자이너로 죽어가던 구찌를 회생시킨 톰 포드가 연출을 맡은 작품이다. 그의 감독 데뷔작이기도 하다. 다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첫 번째 연출작으로 최고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원작자도 그렇고 감독 자신도 성적소주자이니 이 얼마나 훌륭한 조합인가 말이다.


이미 기존의 책 리뷰에서 <싱글맨>의 스토리를 다루었으니 아무래도 영화 리뷰는 원작과 영화의 비교가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운명이다. 우선 영화는 원작에 상당히 충실한 편이다. 하지만 원작을 그대로 영화화할 수는 없었겠지. 영화는 또다른 창작의 세계 아닌가. 감독이 원작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들은 과감하게 들어내고, 또 자신의 생각이 담긴 부분들을 담아내기 마련이다. 섬세한 감성을 가진 성적소수자답게 톰 포드는 슬로우모션 컷으로 주인공 조지 팔코너(콜린 퍼스 분)이 애인 짐(매튜 구드)이 죽고 난 뒤에 상실감을 멋지게 영상화하는데 성공했다. 원작에서처럼 영화에서도 조지의 파란만장한 하루를 그린다. 시대적 배경은 크리스마스를 한달 남짓 앞둔 1962년 11월 30일 금요일(정확하게 맞아 떨어진다). 덴버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짐의 죽음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아마 소설에서는 짐이 오하이오에서 죽은 것으로 되어 있었지.




자그마치 16년이라는 시간을 함께 한 파트너 짐의 죽음 앞에 (영화 속에서) 조지는 모종의 결심을 한다. 사실 이 부분이 소설과 영화의 결정적인 차이점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조지는 주변을 정리하고 자살을 결심한다. 소설에서는 아무리 찾아봐도 자살을 의미하는 권총에 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캘리포니아의 주립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는 조지는 메르세데스를 몰고, 바닷가에 자리 잡은 멋진 별장 같은 집을 가지고 있다. 기상하고 나서 일상의 조지로 돌아가는 과정은 소설의 흐름을 그대로 따른다. 잠깐 엿볼 수 있는 평범한 이웃의 일상을 일별하며 차를 운전해서 자신의 일터로 향하는 조지. 바로 이 장면에서 톰 포드는 슬로우컷으로 성적소수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거리가 얼마나 멀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관객에게 제시한다. 개인적으로 이 장면과 조지가 퇴근 후에 샬럿(줄리엄 무어 분)에게 사다 줄 술을 사러 가는 길에 만난 카를로스와의 담배피는 시퀀스가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톰 포드가 아니라면 도저히 잡아낼 수 없었던 그런 매혹적인 최고의 장면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아 하나 더 추가하자면, 자신의 일터인 대학에 도착해서 동료 교수와 이야기하는 동안 테니스를 치던 젊은 육체를 훑던 조지의 일별, 그건 어쩌면 주인공의 눈길이 아니라 카메라 연출을 지시하던 감독의 욕망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쉴새없이 떠들어 대며 쿠바의 미사일 위기를 말하는 동료 교수가 식구들과 함께 방공호에 지내는 모습을 상상하는 장면에서 감독의 유머감각을 얼핏 보기도 했다.




현재진행형으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 톰 포드는 조지와 짐이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짐이 교통사고로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조지가 거의 정신이 나가 폭우 속에 샬럿을 찾아가는 장면 등의 플래시백으로 처리하는 컷은 일품이었다. 소설에서 크리스 아이셔우드가 공을 들여 조지의 상실감에 대한 심리묘사에 치중했다면, 톰 포드는 컷 단위로 이루어진 일련의 시퀀스를 통해 군더더기 없는 주인공의 심리를 간결하게 재현해낸다. 그게 바로 영화와 소설의 결정적 차이였을까. 굉장히 마음에 드는 신예 감독의 연출력이 아닐 수 없다.




소설에서는 정말 인상 깊었던 강의 장면은 영화에서는 상대적으로 아쉬웠다. 올더그 헉슬리의 소설 <After Many a Summer>에 관한 이야기는 그렇다 치더라도 소수그룹에 대한 강의 내용으로 압축하고 건너뛰는 시퀀스는 소설의 참맛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대학 강의 시퀀스에서 충격적인 장면 하나는 교수님 바로 앞에서 대놓고, 그것도 강의 도중에 줄담배를 피워대는 로이스의 모습이었다. 아무리 대학 분위기가 자유롭다지만 아마 1960년대에는 그랬던 모양이지. 믿을 수가 없는 장면이었다. 한때 연적이었던 병실에서 죽어가는 도리스를 방문하는 대신 톰 포드는 리쿼 스토어에서 카를로스와의 만나 그리고 은행 방문으로 새로운 재창조했는데 나름 수긍이 가는 모디피케이션이 아니었나 싶다. 짐과 바위산 위에서 나누는 플래시백으로 처리된 대화도 마음에 들었다. 조지가 권총 자살을 연습하는 장면도 소설에는 전혀 나오지 않는 부분인데, 침대 위에 침낭을 깔고 이런 저런 자세를 시도해 보는 장면이 웃프게 그려진다.


이즘에서 주인공들의 연기에 대해 품평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최근 우리에게는 <킹스맨>의 비밀 에이전트로 비로소 널리 알려졌지만, 6년 전에 만들어진 <싱글맨>에서 그는 자신의 필생의 역작에 가까운 그런 연기를 보여주었다는 느낌이다. 짐의 부고를 들었을 때, 보여준 그의 눈물 연기 그리고 폭우를 뚫고 샬럿을 집-내 예상대로 샬럿의 집에 대한 톰 포드의 공간설정은 정말 탁월했다-에 찾아가 오열하는 장면에 대해서 어떤 부연설명도 필요 없는 그런 절정의 연기를 보여 주지 않았던가. 샬럿의 집에 가서 춤추는 장면은 또 어떤가. 그동안 줄리언 무어가 연기를 그렇게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싱글맨>을 통해 그녀의 연기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짧은 분량에 등장하지만 강력한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시니컬하면서도 세상 희로애락을 한줄기 담배연기에 말아 허공으로 날려 보내는 연출이 인상적이었다. 조지의 제자 케니 포터 역을 맡은 니콜라스 홀트의 연기도 눈여겨 볼만하다. 전쟁이 끝난 1946년 조지가 짐을 처음 만난 스타보드 사이드 바로 술을 찾아간 조지는 케니를 만나게 되고 밤수영에 도전했다가 낭패를 당한다. 소설에 나오지 않지만 톰 포드는 이마에 난 상처를 케니가 치료해 주고자 밴드를 찾다가 짐의 누드 사진을 보고 중년교수의 비밀을 알게 되는 케니의 심리묘사를 예리하게 짚어낸다.




요즘 하도 영화를 보지 않아서 그런진 몰라도 영화 <싱글맨>은 기대이상이었다. 바로 직전에 원작 소설을 읽었기 때문에 비교하며 보는 재미도 쏠쏠했고. 영화를 보면서 크리스 아이셔우드의 다른 작품들도 빠른 시일 내에 번역돼서 만나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원한 바람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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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06-21 00: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에서의 콜린 퍼스는 <이터널 선샤인>에서의 짐 캐리를 보는 것 같았달까요. 내가 알던 그 배우가 아니잖아! <이터널 선샤인>에서의 짐 캐리 오열씬도 인상적이죠. 톰 포드처럼 미셸 공드리도 배우를 잘 살려 영화 참 멋지게 찍었죠.

레삭매냐 2017-06-21 09:12   좋아요 1 | URL
전 아직 <이터널 선샤인>을 보지 못해서요 :>
다만 <트루만쇼>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것
같아요. 아니 이 짐 캐리가 내가 그전에 에이스
벤츄라에서 본 그 짐 캐리가 맞나 싶더라구요.

영화 <싱글맨>의 영상은 정말 탁월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트란 안 훙의 <그린 파파야 향기>
에 버금갈 만한 탐미적인 영상이 독보적이었습니다.
 
하품 (특별판) 작가정신 소설향 11
정영문 지음 / 작가정신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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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익숙해져서 “그래, 그렇게 가는 거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세상사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막 읽은 정영문 작가의 소설 <하품>에 대한 이야기다. 그전에 이미 <목신의 어떤 오후> 그리고 <어떤 작위의 세계>에서 충분히 체험하지 않았던가. 정영문 작가에게는 어떠한 특별한 서사를 기대해서는 안된다고. 그리고 애석(?)하게도 두 작품 모두 완독하지 못했다. 특히 <어떤 작위의 세계>는 4년 전에 멀리 타이와 캄보디아 휴가여행에까지 데려갔으나 읽다 말았고 아직까지도 다시 펴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장편(掌篇)소설 분량의 <하품>은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은 동물원에서 만난 두 남자의 대화로 시작한다. 어떻게 보면 짧은 단편영화를 한 편 본 느낌이라고나 할까. 상대방이 오리궁둥이라고 지칭하는 남자가 화자다. 어떻게 보면 둘은 오래 전부터 안 사이인 것 같으면서도 또 그만큼의 간격을 지닌 사이다. 속으로만 생각할 법한 이야기들을 스스럼없이 전개하는 것으로 볼 때, 그만큼 각별한 사이인 것 같다가도 모욕적인 언사도 마구 던지는 걸 보면 또 그런 것 같지도 않다. 여전히 전통 서사구조에 얽매인 독자는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거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 건 아닌지하는 그런 노파심이 스물스물 일어난다.

 

정말 뜬금없는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 같으면서도 더할 나위 없이 시니컬한 대화에 그만 넋이 나갈 정도다. 그래도 묘한 매력이 있다. 낙타와 타조의 타자가 같이 쓰인다는 그자의 말에 나는 네이버 한자사전을 검색한다. 팩트체크, 맞았다 낙타(駱駝)의 타(駝)자와 타조의 타(駝)자는 같은 글자다. 그런데 타조 타(鴕)자는 또 왜 존재하는 거지? 헷갈릴 수 밖에 없다. 엉뚱하게도 얼마 전 찾은 동물원에서 새끼 낙타가 정말 오랜만에 태어났다는 뉴스가 생각났다. 그 날은 시간이 없어서 아기 낙타를 못봤다. 썩은 사과를 깎아서 나눠 먹고, 그자가 코끼리를 주려고 준비한 튀긴 강냉이를 못마땅해 하면서도 낼름낼름 받아 먹는 오리궁둥이 화자의 묘한 심리를 어떻게 받아 들여야할지 모르겠다. 그래, 그렇게 가는 거겠지.

 

타인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코털을 뽑아대는 그자의 모습을 보면서 혐오감을 느끼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도 그러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당최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들의 행진이 이어진다. 나도 코털을 정리하고 싶어졌다 순간.

 


그래 이렇게 비루한 이야기들의 종점은 과연 어디일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그자의 곁을 지금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어하면서도 그러지 못하는 심리를 작가는 예리하게 꼭꼭 짚어낸다. 무언가 재밌고 보람 있는 일을 하고 싶어하지만, 그들에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주어진 시간은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무언의 무위를 부추긴다. 오래 전에 같이 누군가를 해쳤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이 둘은 전직 킬러였단 말인가. 오가는 말로 견주어 봤을 때,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는다. 도대체 둘의 관계는 무슨 관계란 말인가. 마치 선문답이 오가고 둘은 다음을 기약하며 여름날의 풍경을 마무리한다.

 

소설을 읽는 동안 결국 나는 참지 못하고 코털을 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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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6-14 17: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하드캐리한 작품이군요. 한 달 전 오랜만에 국내 작가의 소설을 읽었어요. 이 책이 김솔의 <망상, 어>였어요. 그 소설의 독특한 발상을 확인하고 싶어서 읽어봤는데, 생각보다 재미없었습니다.

레삭매냐 2017-06-14 17:41   좋아요 0 | URL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이 책도
재미는 없습니다.

그래도 두 번이나 읽다가 실패해서
익숙해지니 작가의 스타일에 대한
감이 잡히더군요.

재밌는 소설은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 그리고
손보미 작가의 <디어 랄프 로렌>이
읽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AgalmA 2017-06-21 00: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하, 그렇다니까요. 정영문 작가 책을 읽다보면 이상하게 동화되는 게 있어요ㅎ 일전에 <오리무중에 이르다>에서 주인공이 향 피우는 거에 저는 강하게 끌려 급인터넷 주문해서 향을 피웠다는 거 아닙니까ㅎㅎ;
끈을 주머니에 넣고 호수로 찾아가는 거까지 따라할까봐 겁날 지경ㅎ

레삭매냐 2017-06-21 09:14   좋아요 1 | URL
정영문 작가 글은 정말 적응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기존의 서사 시스템을 파괴한
다고나 할까요.

<어떤 작위의 세계>에서도 옛 애인을 찾아가
지금의 남친과 함께 총 쏘는 장면이 그렇게
떠오르네요. 가물가물해서 정확한 지도 모르
겠지만요.

<오리무중에 이르다>는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어 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