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 1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푸른숲 / 201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위화 작가가 출연해서 대담을 나눈 방송을 들었다. 한국 독자들에게 자신의 작품 중에서 하나 추천한다면 어떤 작품을 추천하겠냐는 공장장의 말에 위화 작가는 바로 <형제>를 추천했다. 우리에게는 <허삼관 매혈기>나 <인생> 등의 작품으로 알려졌지만, 장장 50만자에 달하는 <형제>에 대해서는 또 금시초문이었다. 역시나 독서의 세계는 방대해서 일엽편주 배를 타고 독서의 바다를 항해하는 일개 독서인에게 읽을 책을 또 한 권 주시는구나 하는 심정이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1권과 2권 합해서 장장 900쪽에 육박하는 송강과 이광두 형제의 대서사에 과감하게 도전했다.


책을 읽으면서 왜 위화 작가가 이 책을 한국 독자들에게 추천했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문화대혁명이라는 희대의 촌극을 연출한 마오 주석 시대를 시간적 배경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발칙한 꼬마 이광두가 화장실에서 뭍 여성들의 엉덩이를 훔쳐본다. 더 웃긴 설정은 이광두의 아버지 역시 여자 화장실을 훔쳐보다가 그만 변사(똥바다에 빠져 죽었다)했다는 것이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는 소리는 이광두의 어머니 이란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안겨 주었던가. 걸상에 대고 성욕을 느낀다면 발칙한 짓거리를 마다하지 않는 이광두의 모습에 류진의 어른들은 혀를 찬다. 어쨌든 우직한 송강의 아버지 송범평은 그의 시신을 수습해서 씻기고 장례까지 치러주지 않았던가. 그렇게 연을 맺게 된 송범평과 이란의 결합으로 이광두와 수호전에 등장하는 급시우 송강의 이름과 같은 송강이 형제가 되었다.


형제의 가난하지만 행복했던 시절은 짧았고, 문화대혁명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시절에 송범평은 지주 유산자계급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이란 역시 그의 뒤를 이어 죽고, 고아가 된 두 소년들은 서로 의지해 가며 성인이 된다. 고향 류진 현에서 내로라하는 건달이라는 악명을 떨치게 된 이광두는 특유의 뻔뻔함으로 무장하고, 복지공장의 공장장으로 셀프 취임해서 훗날 명성을 떨치게 될 사업가로서의 수완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한편, 이광두는 어릴 적에 엉덩이를 훔쳐 본 류진 최고의 미녀 임홍의 사랑을 얻기 위해 송강을 참모 삼아 14명의 복지공장 구애부대를 조직해서 줄기차게 미인에게 들이대지만, 임홍은 엉뚱하게도 송강을 사랑하게 된다. 세상에 둘도 없는 형제 이광두가 사랑의 라이벌이 된 송강은 고뇌 끝에 새끼줄을 구해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지만, 이광두가 나타나서 구해주기도 한다. 삼장법사와 저팔계 커플이 벌이는 부단한 사건 사고들이 줄을 잇는다.


오락가락하던 사랑의 실랑이 끝에 임홍과 송강은 부부의 연을 맺고 유일한 사랑을 잃게 된 이광두는 그날로 가서 정관수술을 받는다. 자진 거세라고 류진 사람들의 조롱을 받기도 했지만 훗날 이 사건이 자신을 염문에서 구해줄 신의 한수였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몰랐을 것이다. 좌충우돌하는 이광두는 세상이 계속해서 그를 배신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우직하게 들이댔다. 지긋지긋했던 문화대혁명과 마오 주석의 시대가 끝나고, 개혁개방의 시대를 맞아 드디어 이광두에게도 볕이 들기 시작한다. 현청 앞에서 시위하던 중에 우연히 얻어 걸린 고물장사와 일본에서 수입한 중고양복 사업으로 대박이 난 이광두는 자신의 지인들에게 빌린 창업자금을 모두 청산하고 일대 도약의 전기를 마련한다. 이 때 그에게 반신반의하며 밑지는 셈 치고 투자한 여 뽑치와 왕 케키는 어마어마한 수익을 해마다 받게 되지만, 그의 과거 전력 때문에 투자하지 않은 나머지 동 철장, 아들 관 가새 등은 땅을 치고 통곡하게 된다. 인간사 새옹지마라는 고사가 다시 떠올랐다.


위화 작가는 이광두라는 요란한 캐릭터에 세태에 편승할 줄 아는 기회주의적 자본가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그렇게 양심 따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는 식으로 행동하며, 성공을 향해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개혁개방의 기수야말로 현대 중국이 요구하는 인재상이었다는 등식이다. 공산주의 시스템에서 말도 안되는 사유재산제를 바탕으로, 마오 주석의 계급투쟁 운운하지만 실제로는 현실세계에서의 성공 여부로 모든 것이 판가름이 나는 염량세태에 대한 신랄한 풍자에 다름이 아니다. 연이은 사업 성공으로 류진 현에서 거물이 된 이광두를 대하는 현장 도청을 비롯한 당 간부들의 모습을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공산당들이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이데올로기조차 금전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중국에서 판치는 국가자본주의라는 해괴한 양태에 대한 작가의 매서운 비판이다.


반면, 가난하지만 양심적인 송강의 모습을 살펴보자. 아내의 등쌀에 못 이겨 친형제 이상의 우정을 나눈 이광두와 타의에 의해 결별한 송강의 삶은 바닥이 어딘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추락의 연속이다. 미인 아내 임홍을 얻은 것 이외에 금속공장 노동자로 살아온 성실한 사나이에게 눈이 다 휘둥그레질 정도로 모든 것이 변하는 개혁개방 시대의 적응은 쉽지 않은 과제였다. 금속공장 노동자로서 철밥통이 부서지자, 날품팔이 노동자로 그리고 백옥란 같은 꽃파는 아저씨로 변신하기도 하지만 뼛속까지 철저하게 자본주의자로 변신한 이광두와 벌어진 간극을 좁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광두와 송강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현재의 중국과 과거의 중국을 대변하는 두 선수의 만남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다면 임홍이라는 존재는 어디에 등치를 시켜야 할까? 중국과 교역을 하고 싶어하는 서방세계 정도라고나 할까. 물질주의 천국 중국의 현실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비현실적 이상주의가 지배했던 과거 중국을 동경하는 서방 세계의 지식인들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너무 과도한 해석이려나. 책을 읽는 도중, 문득문득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류진의 수석대리로 연명하던 송강은 돈을 벌어 아내 임홍을 호강시켜 주겠다는 신념으로 강호의 사기꾼 주유(삼국지에 등장했던 주유와 이름이 같다)를 따라 나섰다가 가슴확대 수술을 받고 여성들을 상대로 쭉빵 크림 판매에 나서지만 고지식한 위인이 사기에 걸맞지 않다는 사실은 명약관화했다. 그동안 고향 류진에서는 이광두와 임홍의 그야말로 해괴망측한 관계가 이어지고 멀리 해남도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송강은 이 모든 사실을 알고 오래전 실패한 자살을 감행한다. 가혹했던 어린 시절을 송강과 함께 헤쳐나온 이광두는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며 형제 송강에게 걸맞는 마지막을 장식해주기 위해 우주로 나갈 결심을 한다.




우리도 1970년대 압축고도성장기를 거치면서 수많은 사회문제들이 양산되었다. 기존의 규범과 가치들은 금전만능주의 앞에 맥을 추지 못했으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하는 것만이 이 사회를 사는 모든 이들의 유일한 목적처럼 인식되어 왔다. 지난 40년간 이웃 중국의 압축성장은 우리의 것을 가뿐하게 초월한다. 저자가 후기에서 쓴 것처럼 유럽에서 400년이라는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것들이 중국에서는 그 1/10에 해당하는 초단기에 진행되었다. 그러니 그에 따른 부작용들이 오죽할까. 이광두가 고향 류진에서 처녀미인대회라는 해괴한 명칭의 시대를 거스르는 미인선발대회를 개최한 것도 어쩌면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는 이야기다. 마오 주석의 독재시절이라면 상상도 못했을 그런 일들이 개혁개방 시대에는 인민들의 욕망을 채워 주겠다는 국가자본주의자들의 담합과 결탁으로 일사천리로 이루어지지 않는가 말이다. 자본가 이광두에게 충성을 맹세한 류 작가의 놀라운 변신도 눈여겨 볼만하다. 돈의 위력 앞에 문인의 자존심 따위는 설 자리가 없다. 스스로 뼈다귀를 자처하며, 이광두가 매스미디어가 선호할 만한 가십성 먹잇감을 던져주고 금권으로 그들을 후원하고 조종하는 장면은 또 어떤가. 천하의 사기꾼 주유가 한국 드라마에 빠져 소매와 만두 장사도 제쳐두고 드라마 시청에 몰입하는 장면도 신선했다. 우리 드라마가 유력한 작가의 소설에 등장할 정도로 그렇게 대륙에서 인기였던가 싶다.


위화 작가가 구사하는 풍자와 해학은 연초에 열심히 읽었던 류전윈이나 옌롄커의 그것과는 결을 달리한다. 좀 더 인민적이라고나 할까. 유식한 지식인 계급의 고담준론보다 고작 인구 3만 정도의 류진 마을 인민들 사이에서 나눠지는 통속적 대화를 통해 재구성된다. 그래서 더 친근하게 느껴졌는 지도 모르겠다. 위화 작가가 구사하는 송강과 이광두 형제의 장장 20년에 걸친 우정과 갈등 그리고 결핍, 도무지 채워질 수 없는 간극에 대한 서사를 웃고 감동하고 슬퍼하며 읽다보니 50만자 소설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 버렸다. 이번 기회에 집에 수집해 두기만 하고 읽지 않은 위화 작가의 <인생>과 <가랑비 속의 외침>도 읽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넛셸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간 <넛셸>을 읽기 위해 그동안 모아 두기만 하고 읽지 않고 있던 이언 매큐언 작가의 소설을 네 권이나 읽었다. 그리고 <이런 사랑>도 읽기 시작했지만, 아직 완독에 이르진 못했다. <칠드런 액트>, <이노센트>, <체실 비치에서> 그리고 <암스테르담>을 읽으면서 그의 팬이 되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게 되었다. 이 모든 건, 바로 이 책 <넛셸>을 읽기 위한 몸풀기 운동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지난주에 신간 <넛셸>이 수중에 들어왔고, 다른 독서를 멀리하고 바로 이 책부터 읽기 시작했다. 이번달 독서모임 선정작이 <넛셸>이라는 건 비밀이 아니다. 대부분의 이언 매큐언의 소설의 주인공은 남성인데, 이번 작에서는 그런 일종의 편견을 부수었다. 소설을 이끌어 가는 주인공은 바로 모든 것을 청력(hearing)으로 판단하는 태아다. 아, 그리고 이 소설에서 빠뜨릴 수 없는 전범은 바로 <햄릿>이다. 위대한 고전 중의 고전이라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대한 오마주라고나 할까.


비극 <햄릿>에서 덴마크의 왕자 햄릿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숙부와 어머니에 대한 애증의 관계에서 결국 비극으로 끝난 스토리텔링의 주인공이었다. 그리고 누가 봐도 명백한 <햄릿>의 오마주 <넛셸>의 주인공 태아는 만삭의 어머니 트루디와 그녀의 애인이자 삼촌인 클로드의 아버지 존 케언크로스에 대한 살인모의를 엿듣는다. 곧 탄생을 앞둔 주인공 태아는 아무 것도 볼 수가 없다. 태아가 세상을 배우는 방법은 어머니 트루디가 즐겨 듣는 라디오드라마와 팟캐스트 방송이다. 지난달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이달의 토론책으로 정하자고 의견을 개진하면서, 내용을 설명하니 우리 독서 멤버는 바로 낙태반대에 대한 주장이냐고 강력하게 항의하셨는데 충분히 이해가 가는 지점이었다. 낙태 시점에 있어서 태아가 인간이냐 아니냐에 대한 논란이 매번 생겼었는데, 아무리 문학적 상상력의 발로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자유롭게 생각할 정도라면 당연히 인간으로 간주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주장을 듣고 나니 단순하게 소설의 서사에만 집중할 수가 없다.


어쨌든 태아가 가진 실존의 문제는 다음과 같다. 태아는 시인이자 출판업자인 아버지 존을 죽이는 시도를 가진 어머니와 삼촌을 증오한다. 하지만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가진 그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이다. <햄릿>에서 주인공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고민했다면, 역시 1989년 발표되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마이키 이야기>에서 어른 뺨치는 대사로 관객들을 놀라게 만들었던 예의 태아처럼 이언 매큐언의 태아도 유사한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애증관계로 대변되는, 무엇 하나 복잡하지 않은 게 없는 인간사에 대한 고통과 번민이야말로 <넛셸>에서 작가가 진짜 하고 싶었던 주제가 아닐까.


노련한 작가 이언 매큐언은 다양한 장치로 서사의 전개와 반전을 마련했다. 우선 올빼미 시인 같이 주류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다시 말해서 팔리지 않는 시인을 육성하고 후원하는 무능력한 남편으로 아버지 존을 매도해서, 자신들의 살인모의를 정당화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촌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다는 팩트를 동원해서. 과연 그게 그들의 살인을 정당화시킬 수 있을 진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 방법으로는 부동액을 이용한 독살을 계획한다. 자신의 부정한 어머니를 ‘작은 생쥐’라 부르는 클로드는 트루디와 함께 임신 중임에도 불구하고, 음주와 쾌락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출생에 대비해서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는 어머니에 대해 공포감을 느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세상에 내던져진 자신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체념적으로 받아들인다. 아버지를 죽음으로부터 구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함을 탓하면서도 동시에 음모의 가담자라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고 해야 할까. 한편, 태아의 복잡한 심정을 지나치게 집중적으로 다루면서 이언 매큐언이 그동안 다른 작품에서 보여준 탁월한 매력들이 실종된 느낌을 받았다. 2~3일이면 다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판단은 틀렸다. 다 읽는데 일주일이나 걸렸으니 말이다.


작가가 준비한 트루디와 클로드 악당 2인조에 대한 불의의 일격은 존이 갑자기 대동하고 나타난 올빼미 시인 엘로디라는 여성이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트루디를 여전히 사랑하는 존이 그녀의 마음을 돌려 보려고 준비한 회심의 일격이었지만 역설적으로 악당들의 살인 속도를 가속화시킬 뿐이었다. 존은 사랑에 빠져 9년 전에 찾았던 두브로브니크 시절까지 회상씬으로 돌려보지만, 욕정(lust)과 금전의 유혹에 빠진 트루디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는 제스처였을 뿐이다. 아, 악당들의 표적은 역시나 존의 막대한 부동산이었다. 결국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최종적 가치는 돈이었다만 말인가. 가치의 권위적 분배라는 정치적 함의가 실종된 시대에 금전이야말로 인간에게 허용된 유일한 욕망의 귀결이라는 사실에 다시 한 번 입맛이 씁쓸해졌다. 그 외에도 간간히 이언 매큐언은 난민들이 지중해에서 수천 명씩 빠져 죽는 시사적인 사건에 대해서도, 서구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IS 집단에 대한 이야기들도 시의 적절하게 다루고 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점들은 다음과 같다. 태아가 트루디를 통해 대신 섭취한 와인에 대한 해박한 지식, 성인들도 전문적인 취향과 지식이 없다면 불가능할 생산지까지 파악하는 놀라운 능력 말이다. 아버지 존을 살해하고 경찰 조사에 대비해서 트루디와 클로드가 알리바이를 맞추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다. 욕정으로 얽힌 관계는 상호불신으로 이어지고, 클로드의 배신을 예상한 트루디가 마련한 장치가 보여주는 기발한 발상. 뭐 그렇게 가는 거지.


문득 태아가 엄마 트루디의 뱃속에서 그런 놀라운 사유에 이르게 된 과정이 궁금했다. 우리 인간은 태어나고 자라면서 긴 시간을 거쳐 다양한 종류의 교육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 사회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었던가. 아이를 기르다 보니 꼬맹이가 쉴 새 없이 궁금한 것들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듣는 중이다. 질문과 응답이라는 상호작용을 통해 무언가를 배우는 게 기본이 아닌가? 소설의 주인공 태아는 그런 일체의 과정 대신 라디오드라마와 팟캐스트만으로 특정한 지식(특히 시각적 정보)도 없이 삶을 이해하기 위한 그렇게 복잡한 개념들을 어떻게 배웠단 말인가. 아기들은 선천적으로 그렇게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단 말인가. 청각이라는 기능을 이용해서? 이언 매큐언 작가의 기발한 상상은 어쩌면 처음부터 이런 한계를 품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 그렇다면 과연 악당들의 음모는 과연 성공할 것인가? 중반의 다소 지루한 전개에 비해 후반에 작가가 야심차게 준비한 설정(무려 태아의 복수!!!)은 이 대가의 실력이 역시 죽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준다. 역설적이지만 출생을 앞둔 태아의 복수는 필멸이라는 숙명을 진 인간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들어준다. 부지불식간에 우리 의식 속에 자리한 선악의 구분에 대해서도. 아무래도 난 다시 한 번 <햄릿>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17-06-13 1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넛셸>을 읽기 위한 몸풀기로 <칠드런 액트>, <이노센트>, <체실 비치에서> 그리고 <암스테르담>을 읽으셨다니, 일어나 박수를 치고 싶은 심정입니다.^^

레삭매냐님의 이언매큐언 리뷰가 올라올 때마다 너무나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저는 <속죄>랑 <칠드런 액트>만 읽었고 다른 책들은 일단 대기중인데, 다른 책들보다 이 책 <넛셸>을 먼저 읽어봐야겠다, 생각이 드네요. 태아의 목소리라니 기대되고, 다시 <햄릿>을 부르는 작품이라니... 기대만발입니다. ㅎㅎㅎ

레삭매냐 2017-06-13 11:46   좋아요 0 | URL
이번달 저희 독서모임 책으로 제가 추천해서
더 열심으로 읽었던 것 같습니다.

저희 멤버 중의 한 분은 <이런 사랑>이 최고
라고 하셔서 그 책도 어렵사리 구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위화 작가의 <형제>와 요즘 드라마
로 핫한 <시녀 이야기>에 밀려 버렸네요.

다음 주말이 모임인데 그 전에 <이런 사랑>과
<토요일> 그리고 <시멘트 가든>까지 읽을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아, 이언 매큐언의 최고작이라고 하는 <속죄>
는 맨 끝에 읽어 보려구요. 최고라고 하니까요.

단발머리 2017-06-13 11:51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님 독서모임 활동 열심히 하시나봐요. 저는 아이들이랑 아이들 엄마들이랑 6년째 독서모임 하고 있는데, 이제는 애들이 많이 커서 독서목록은 근사한데... 아이들이 열의가 별로 없습니다. 엄마들은 뜨거운데 ... ㅎㅎㅎㅎㅎㅎㅎ

다 읽으시려면 엄청 열씸히 달리셔야 될듯요. 그런데도 부럽습니다.
저는 레삭매냐님 페이퍼 보고 <시녀이야기> 특별판에 대한 갈증이....
좀 무섭기도 한데, 읽고 싶기도 하고 ㅠㅠ

<속죄>는 이렇게 부른다죠. 이언 매큐언 최고작 <속죄>

레삭매냐 2017-06-13 13:50   좋아요 0 | URL
6년이나 되셨군요~
저희도 7년 되었네요. 그동안 우여곡절
이 많았지만 어찌어찌해서 지금까지
왔습니다.

시간의 더께가 쌓이니 편안하고 좋더라구요.
꾸준하게 같이 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시녀 이야기> 무지 재밌습니다. 어젯밤에도
잡으니까 한 100쪽 정도 진도가 나가더라구요.

강추합니다. 최고작 속죄도 읽어야겠네요...
 

 

반세기도 넘게 불화하던 미국과 쿠바가 국교정상화에 합의한 게 벌써 3년 전이었던가. 1959년 1월 1일, 훌헨시오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피델 카스트로는 인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스스로 새로운 독재자가 되어 지상낙원을 건설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대중에게 설파했지만, 이웃 미국의 강력한 경제제재 조치로 카스트로와 그의 혁명 동지들의 꿈은 한낱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크리스토퍼 컬럼버스가 쿠바 섬에 상륙한 이래, 식민지배의 사슬은 끊어 버렸을 진 몰라도 지상낙원 건설이라는 꿈은 여전히 요원하기만 하다. 오바마 대통령의 노력으로 미국과 국교정상화가 되었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은 트럼프는 국교정상화 이전 상태로 모든 것을 되돌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다시 한 번 카리브해에 어떤 종류의 허리케인이 불지 모르는 그런 상황이다.

 

쿠바의 전략적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라지 않을 것 같다. 남북 라틴아메리카를 교차하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한 때 소련이 미사일을 배치해서 미국의 목을 겨누지 않았던가.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의 하나였던 토머스 제퍼슨은 일찍이 쿠바를 미합중국의 일부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제퍼슨 뿐만 아니라 존 퀸시 애덤스와 뷰캐넌, 먼로를 비롯한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쿠바를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져 주기를 고대해 마지 않았다. 쿠바섬에 평화롭게 살던 인디오 원주민들을 몰살시키고 식민화한 스페인 제국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미국은 짭짤한 수익을 냈다. 필리핀 제도와 괌 그리고 쿠바를 얻어낸 것이다. 그리고 플래트 수정안이라는 해괴한 법안으로 지금도 말썽이 되고 있는 관타나모 기지를 비롯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쿠바 내정에 개입할 수 있는 합법적 장치들을 만들어냈다.

 

미국은 자신들의 도움이 없어도 아무런 문제없이 잘 살 수 있었던 쿠바에 개입해서, 대의민주주의를 이식한다는 명분 아래 부정부패를 일삼는 독재정권을 지원하고, 매판자본전략을 활용해서 쿠바의 모든 것이 미국의 원조가 없으면 돌아가지 않게끔 그렇게 만들어 버렸다. 40년 뒤에 살바도르 아옌데가 이끄는 사회주의 칠레의 구리 가격을 가지고 장난질을 쳤던 것처럼, 쿠바의 유일한 생산품인 사탕수수 재배를 통해 만든 설탕산업을 비롯한 쿠바의 모든 산업을 미국 자본에 종속시켜 버렸다. 다시 말해 기존의 지배자가 가톨릭 십자가를 앞세운 제국주의 스페인이었다면, 이번에는 자본주의 미국이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새로운 지배자는 군바리이자 깡패두목에 가까운 바티스타를 대리인으로 삼아 기존의 불평등한 플래트 수정안을 폐기하고, 외국의 이익을 통제하며, 교육 제도 등을 개혁하려고 했던 안토니오 기테라스의 기도를 무산시키고, 민중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를 암살시키는 방식으로 자국의 쿠바에서의 우월한 기득권 유지에 최선을 다했다.

 

우리가 아는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 이전에 걸출한 혁명가 호세 마르티가 있었다는 점도 잊어선 안될 것이다. 어제 읽은 <체 게바라>의 상당 부분도 쿠바혁명에 할애되었었는데, <쿠바혁명과 카스트로>에서는 대놓고 쿠바 혁명의 연원과 그 주역이라고 할 수 있는 피델 카스트로를 주연으로 삼아 리우스 작가는 이야기를 전개해 간다. 1953년 몬카다 병영 습격사건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카스트로는 망명지 멕시코에서 운명의 동지 체 게바라를 만나 참단한 실패를 경험삼아 새로운 조직과 혁명 대의 그리고 치열한 군사훈련을 통해 쿠바에 상륙해서 역사에 기록된 게릴라 전투의 신화를 창조해 내기에 이른다. 어쩌면 쿠바야말로 무장투쟁을 통한 혁명의 기운이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그런 상황이 아니었을까.

 

독재자 바티스타를 몰아내고 혁명에 성공한 카스트로 그룹은 우선적으로 토지개혁으로부터 대중의 지지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물론 전문적인 경제관료나 국가운영을 해본 적이 없는 아마추어 게릴라 전사들은 상당한 시행착오도 경험했다고 한다. 수만 명을 희생시킨 독재정권에 기생했던 부역자 청산도 쉽지 않은 과제였다. 독재자와 혁명가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가톨릭교회도 비판의 대상이었다. 마르크스는 좋지만, 공산주의는 싫다는 대중의 반응도 주목할 만하다. 사실 혁명 초기까지만 하더라도, 카스트로는 공산주의에 경도되어 있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CIA의 사주를 받는 반혁명그룹의 지속적인 공격과 부유층 부르주아 계급 사보타주로 쿠바는 어쩔 수 없이 점점 더 소련이나 중국 그리고 폴란드 같은 사회주의 진영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미국은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무력사용도 마다하지 않았고, 케네디 행정부 시절 처참한 실패로 끝난 피그스만 침공을 기도하기도 했다. 그 때 포로로 잡힌 용병들 몸값으로 한 명당 한 대의 트럭을 요청해서 관철시켰다고 했던가. 용병 쿠바인들이 쿠바 경제발전에 유일하게 공헌한 일이었다고, 리우스는 그리고 있다.

 

점점 쿠바가 사회주의 진영으로 경도되는 움직임을 미국은 쿠바산 설탕의 수입을 중지하고, 자신의 동맹국들에게도 쿠바의 설탕을 구입하지 말 것으로 요청했다. 미국은 1970년대 아옌뎨의 칠레산 구리 판매처를 없애 버리기에 앞서, 카스트로의 쿠바산 설탕에 대한 경제적 제재라는 방식을 동원했던 것이다. 한편 1963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카스트로 정권은 사회 다방면에 걸쳐 본격적인 개혁에 나섰다. 혁명 영웅 체 게바라를 공업부장관에 임명해서 경제 재건과 국가 기간산업의 국유화에 나섰지만, 모든 것을 미국에 의존해 왔던 상황에서 설비투자를 위한 자본도, 공장 운영을 위한 기술력도 없던 상황에서 혼란을 가중시켰고, 시련의 시기였다고 리우스는 적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자연 재해에, 미국의 침공에 대비한 전쟁물자 비축도 허약한 쿠바 경제에 짐이 되었을 것이다. 다수의 미국 경제전문가들이 쿠바 경제의 몰락을 예언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쿠바는 1969년까지 농지개혁을 필두로 해서 도시개혁, 교육제도와 의료제도의 개혁 등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고 저자는 기록한다. 무엇보다 높은 문맹율을 헌신적인 교사들의 노력으로 라틴아메리카 최저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수많은 부르주아 의사들이 미국으로 탈출하면서 절대 의료전문가가 부족한 가운데서도 훗날 베네수엘라를 비롯해서 라틴아메리카 각지로 의료진을 수출할 정도로 뛰어난 의료인들을 양성하는 기초를 세웠다.

 

물론 리우스 작가가 쿠바혁명에 상당히 호의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일종의 선전선동도 포함되어 있는 게 아닐까. 미국으로 망명한 쿠바인들의 말을 모두 믿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리우스 작가는 바티스타 정권에 부역한 반대파들이 신변의 위협을 느끼고, 자신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미국으로 망명함으로써 오히려 쿠바가 내정개혁을 하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식의 전개하는데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너무 좋게만 해석한 게 아닌가 하고 말이다. 어쨌든 미국의 계속되는 경제봉쇄로 쿠바 경제가 입은 타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세계 최강의 수퍼맨 미국을 상대로 반세기가 넘게 혁명정신을 고수해 왔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카스트로 독재에 대한 평가도 객관적으로 다루었다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yrus 2017-06-09 11: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자주 찾는 헌책방에 라이트 C. 밀즈의 《양코배기야, 들어봐라!》라는 책이 있어요. 밀즈는 이 책에서 쿠바 혁명을 지지합니다. 레샥매냐님의 글을 읽으니까 밀즈의 책을 사서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사실 몇 개월 전부터 이 책을 눈여겨보고 있었거든요. 책의 주제가 유행이 지난 거라서 그런지 이 책을 고르는 사람이 없어요.

레삭매냐 2017-06-09 11:51   좋아요 0 | URL
모름지기 한 가지 사건에는 균형 잡힌
시선이 필요한데, 그런 균형이 아쉽습니다.

<양코배기야, 들어봐라>도 재밌는 책 같아
보이네요. 저도 바로 램프의 요정 헌책방
에 있나 검색해 봤네요.

말씀 대로 유행타는 주제가 아니라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은 듯 하네요 :>
 

 

요즘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 리커버 버전이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해서 관심을 가졌다. 다른 책도 읽어야 하고, 정신없이 바쁜 가운데 HULU라는 채널에서(월트디즈니, 21세기 폭스, 컴캐스트 그리고 타임워너 그룹이 출자한 VOD 합자회사) <시녀 이야기>의 드라마 버전을 만들었다고 해서 구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이 드라마 정말 재밌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는 이미 그전에도 한 번 페어 더너웨이가 등장하는 영화 버전으로도 나왔었는데, 영화를 다 보지 않아서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쉽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드라마는 더 재밌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는 메인 주에서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도망치려는 루크와 주인공 준(오프레드, 엘리자베스 모스 분) 그리고 그들의 딸 한나가 등장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준과 한나에게 먼저 도망가라는 루크, 뒤이어진 총성. 한나와 준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들에게 잡히고 준은 의식은 잃는다. 장면은 변환돼서 하녀 복장으로 커맨더 프레드 워퍼포드 집에 살고 있는 오프레드로 변신한 준이 등장한다.

 

 

으로 보기에는 미국이지만(드라마의 촬영은 캐나다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길리아드(성경상에서는 길르앗)라는 이름의 가상국가다. 여성들의 권리는 박탈되고, 철저하게 계서제 중심의 가부장적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신정통치 시스템이 작동하는 전체주의 국가의 전형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환경오염과 바이러스의 창궐로 불임이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다음 세대를 만들기 위한 재생산이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그래서 길리아드의 지도자들은 가임기의 여성들을 강제적으로 차출해서 지도자들의 집에 우선적으로 배치해서 재생산을 돕게 만든다. 그런데 그 방법이 매우 기묘하면서도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분명 성경에서 유래된 구절들을 읊조리는 것 같은데, 방법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이미 중세에도 그랬던 것처럼 신정정치(theocracy) 시스템이 얼마나 현실을 왜곡시킬 수 있는지 절실하게 보여준다.

 

 

트(aunt) 리디아는 하녀 트레이닝 센터에서 붙잡혀온 여자들을 상대로 복종과 그들이 앞으로 해야할 일들을 훈육한다. 역시 폭력적인 방식으로. 길리아드에 사는 여자들에게 일체의 재산 소유는 허용되어 있지 않다. 책을 읽는 것도 금지다. 책을 읽다가 걸리면 처음에는 손가락을 그리고 두 번째는 손목을 자르는 형벌을 받는다. 훈육 중에 반항적인 태도를 보인 재닌(오프워렌)은 오른쪽 눈을 훼손당했다. 그렇게 배치된 하녀들은 커맨더의 아이를 갖기 위해 커맨더의 와이프가 동석한 가운데 한 달에 임신 가능한 가장 유력한 시기에 반강제적으로 섹스를 한다. 그들은 그것을 고상한 표현으로 “세레모니”라고 부르지만 성폭행에 다름 아니다.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오로지 재생산(reproduction)만을 위한 섹스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주인공 오프레드는 이 모든 사태가 벌어지기 8년 전,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았지만 결국 하녀 신세로 전락해서 감금된 상태에서 아이를 낳기 위한 그릇으로 사용되어질 따름이다. 정말 끔찍한 미래의 디스포피아가 아닐 수 없다. 하녀들은 혼자서 외출할 수도 없으며 항상 파트너를 정해서 장도 보고, 간단한 외출을 할 수가 있다. 게다가 “디 아이”(the Eye)라는 조식이 상호 불신을 자극하면서 주류 사회에서 어긋난 행동을 하는 이들을 검은색 밴을 동원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간다. 빅 브라더가 통제하는 사회 이상의 끔찍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오프레드의 동료는 오프레드에게도 디 아이가 붙어 있다고 주지시켜 주는데, 그는 바로 커맨더 워터포드의 운전기사 닉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닉은 오프레드를 지켜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미 9개의 에피소드들을 감상해서 줄거리가 좀 뒤죽박죽이지만, 오프레드의 절친 모이라와 공모해서 탈출을 시도하지만 오프레드는 다시 잡혀서 트레이닝 센터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그녀 역시 길리아드보다 자유로운 캐나다로 도주하는데 실패해서, 칼러니(식민지)행 대신 지저벨이라는 남성들을 위한 비밀장소에서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나중에 커맨더 프레드(조셉 파인즈 분)는 오프레드를 데리고 지저벨을 방문하는데, 그 장소야말로 신정국가 길리아드에 절대 어울리지 않는 그런 장소였다. 어쩌면 신정국가의 위선적인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공간적 장치였을 지도 모르겠다.


 

생산인구 감소는 길리아드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웃 멕시코와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커맨더 프레드는 사력을 다한다. 멕시코 대사는 오프레드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는데, 그녀의 주인들은 트레이드 성사를 위해 오프레드에게 주의를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이 거래를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동료 시녀에게 오프레드는 바로 자신들이 그 “상품”이라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인격이 배제된 상품으로 “red tags"라는 이름으로(그들이 입는 옷 색깔이 붉은 색이라는 점을 떠올려 보라) 멕시코에 수출될 거란다. 결국 오프레드는 자신에게 멕시코산 초콜릿 선물을 주는 멕시코 대사에게 그들이 원해서 시녀가 되고 대리모가 되는 희생을 마다한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알려 주지만, 멕시코 대사 역시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멕시코가 죽어가는 나라라면, 그녀의 조국 길리아드은 이미 죽은 나라라고 말이다.


 

오프레드가 또 하나 알게 된 사실은 길리아드에 대항하는 “메이데이”라는 저항단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도주하다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던 남편 루크가 살아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에서는 플래시백으로 과거에 대한 오프레드의 회상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무엇이든 자유로웠던 과거와 모든 것이 억압된 현실의 대조야말로 텔레비전 화면으로 벌어지는 비극을 한층 더 강조하는데 탁월한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유부남이었던 루크와 만나게 된 에피소드를 필두로 해서, 그들이 사랑에 빠지게 된 장면, 사랑하는 딸 한나를 낳은 병원에서 벌어진 인질극 등 다양한 이야기의 얼개들이 두서없이 등장한다. 여성들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이 시작된 시기에 여성들의 은행계좌가 아무런 고지 없이 동결되고, 일자리에서 추방되는 장면들은 놀라웠다.

 

 

그것보다 더 놀라웠던 점은 불과 8년 만에 모든 사회가 길리아드의 지도자들이 인도하는 대로 별 반항 없이 길들여졌다는 점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무지막지한 폭력적 방식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무리 인간이 적응하는 존재라고는 하지만, 단기간에 그런 게 가능하다는 점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한편, 커맨더 워렌의 아이를 갖게된 재닌이 출산하는 장면도 놀라웠다. 임신하지도 않은 워렌의 와이프가 심호흡을 하면서 출산하는 과정을 재현하는 장면이란 정말. 그렇게 반항적이었던 오프워렌이 아이를 낳고, 워렌과 자신의 딸 샬롯에게 집착한 나머지 새로 배치된 집에서 뛰쳐 나와 다리에서 아이를 안고 투신하려는 장면은 정말 애처로웠다. 현장에 투입된 오프레드의 설득에도 재닌은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오프레드는 자신의 딸 한나와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지저벨의 모이라는 자신의 고객을 숨겨둔 둔 흉기로 처리하고 도주하는 장면으로 마지막 에피소드는 끝이 난다.


 

 

지금까지는 일단 10편의 에피소드가 방영될 예정인데, 앞으로 어떻게 될 지 궁금하다. 원작소설에서는 열린 결말로 끝이 난다고 하는데 이제 하나 남은 에피소드로 끝을 맺기엔 아직 할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게 아닐까. 드라마를 본격적으로 보기 전에 원작소설을 좀 읽어 보려고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기대해 본다.

 

* 뱀다리 :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시즌 2가 편성될 예정이라고 한다. 아마 시즌 1에서만 원작소설에 해당하는 부분을 그리고 시즌 2에서부터는 원작소설을 넘어선 길리아드 공화국에 대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촬영에서는 디지털 방식의 촬영 대신 약간 어두운 톤의 테크니칼라 비전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오프레드의 우울한 삶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아주 유효한 방식이었다고 한다.

 

 


댓글(24)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유부만두 2017-06-09 11: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얼마전 읽기시작했는데 너무 어둡고 힘들어요 ...

레삭매냐 2017-06-09 11:08   좋아요 1 | URL
드라마에서도 장난 아닙니다.
우울 플러스 암울한 음악이 깔리면
또 무슨 일이 생기려나 싶어지거든요.

원작소설도 그렇군요 !!!

다락방 2017-06-09 1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원작소설을 읽어보고 싶네요. ‘아 정말 힘들겠다‘ 생각하면서 왜 굳이 읽어보려고 하는걸까요 .. ㅠㅠ

레삭매냐 2017-06-09 11:21   좋아요 0 | URL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쉽지 않은 도전일 거라는 걸 빤히
알면서도, 짚을 지고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 같은 심정이라고나
할까요.

드라마는 정말 최고입니다.

kegg0909 2017-06-09 11: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문하고 책 기다리는 중인데 힘든 소설이군요.

레삭매냐 2017-06-09 11:37   좋아요 0 | URL
저도 곧 주문장 날리려고 하는데
많은 분들이 어렵다고 하시네요.

완독이 가능할지 모르겠네요 ㅠ

cyrus 2017-06-09 11: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구판 도서를 가지고 있는데, 드디어 읽어야 할 타이밍이 찾아온 거 같아요. ^^

레삭매냐 2017-06-09 11:52   좋아요 0 | URL
누구 말대로 책은 사서 읽는 게
아니라 찾아서 본다고 하더니만
싸이러스님의 경우에 딱 들어 맞는
것 같습니다.

전 없으니 리커버 버전으로 사려구요.
요즘 잘 팔리나 봅니다.
램프의 요정에서만 파나봐요.

포스트잇 2017-06-09 1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트우드 소설 [눈 먼 암살자]를 재밌게 봐서 [그레이스] 보려다 담(..)왔던 경험이 있어서 [시녀이야기]도 패스했더랬는데 이번 특별판 구입했네요. 읽기만 하면 되는데...
그보다는 에코백이 탐나서...;;;;;

레삭매냐 2017-06-09 15:15   좋아요 0 | URL
마거릿 애트우드 여사의 책은
<눈먼 암살자>, <그레이스> 그리고
<시녀 이야기> 아마 이렇게 삼부작
이 메인인가 봅니다 ~

저도 오늘에서야 <시녀 이야기> 사
야지 싶네요.
저도 담이 오면 어쩌죠? :(

책한엄마 2017-06-09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 책 샀어요!!그런데 드라마는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저작권을 낼 수 있는 유료라면 더욱 좋습니다.^^

레삭매냐 2017-06-09 16:00   좋아요 0 | URL
책도 미리보기로 해서 조금 읽었는데
오리지널 드라마 보다 서술이 훨씬 더
풍부하고 재밌는 것 같습니다.

2017-06-09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책한엄마 2017-06-09 16:2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네이버 이웃도 반갑습니다.헤헤-
언젠가 스트리밍 서비스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목나무 2017-06-09 1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녀이야기>는 양장본으로 된 것을 아주 예전에 읽었던 기억이.. 지금 DB를 보니 그 책은 아예 알라딘 DB에도 안잡히는 것 같네요. 이 책이 좋아서 작가의 <인간 종말 리포트>도 읽었었는데.. 그 책 역시 몹시 어두운 디스토피아를 그리고 있었던 걸로.....
이 책은 표지 이뻐서 다시 구매하고 싶어요. ^^;; 글구 드라마 완전 기대됩니다.

레삭매냐 2017-06-09 17:27   좋아요 0 | URL
저도 오늘 <시녀 이야기> 질렀습니다.
미리보기를 잠깐 읽어 봤더니만 너무
재밌더라구요.

이참에 마거릿 애트우드 여사의 구간
들이 새로운 틀을 쓰고 재출간되었으
면 하는 그럼 바람이 들었습니다.

<그레이스>도 읽어 보고 싶네요.

데이지 2017-06-09 21: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드 매니아인 제가 모르는 미드가 있었다니! 사진 보니깐 제가 좋아하는 배우 나오네요 범상치 않은 스토리인 것 같은데 낼 당장 찾아봐야겠어요 일단 드라마 먼저 ㅋㅋ

레삭매냐 2017-06-09 22:55   좋아요 0 | URL
현재 절찬리에 방영 중인 미드랍니다.

다음 주에 시즌 1이 종영된다고 하네요.
미드를 이렇게 바로바로 찾아서 보는
건 또 처음이네요.

책도 주문했습니다. 드라마 이상으로
책도 재밌더라구요.

2017-06-10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0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1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1 22: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1 22: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3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 오후에 램프의 요정 중고서점에 책을 한 권 사러 갔었다.


니콜라스 터프스트라라는 작가가 쓴 <르네상스 뒷골목을 가다>라고 글항아리에서 나온 책이었다. 아무래도 근처 램프의 요정에 라이벌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찜해둔 책을 독서취향이 비슷한 양반이 와서 싹쓸이 해간다. 아마 그 라이벌에게는 나라는 존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르네상스>를 사러 갔다가 켄 브루언의 <밤의 파수꾼>이 눈에 띄이길래 그 책도 한 권 사려고 집어 들었다. 예전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던 책이어서 책 컨디션을 훑고 나서 바로 집어 들었다.

사단은 그 무렵에 일어났던 것 같다.


어떤 중년 아주머니가 램프의 요정 직원들에게 큰소리를 치고 계셨다. 알고 보니 책을 왕창 팔러 오신 것 같은데 상당한 분량의 책이 매입불가 판정을 받은 것 같다. 당신 말로는 인터넷으로 다 검색을 하고 왔는데 이게 뭐냐고 역정을 내셨다. 내 단골 램프의 요정은 차 가지고 오기가 쉽지가 않아서 보통 팔 책들을 몇 권씩 가져다 파는 경우가 많다. 나도 물론 “뻰찌”를 먹은 적이 많다. 최근에도 내가 보기에는 최상 품질인데, 판정하는 스탭 분이 상등급을 매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등급이 차이가 나고,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팔지 않으면 된다.


인터넷 검색에서는 오케이 싸인이 떨어져도 막상 현장에서 거부당하는 수도 있다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지 않은가. 그 외에도 책파는 고객에게는 소홀하면서, 구입하는 고객들에게는 너무 친절하다면서 불평이 끊이지 않는다. 당연하지 않은가? 어떤 경우에도 매입자가 갑 아니었던가. 물론 세상사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나도 매입판정을 받기 위해서 기다리다가 보면, 책 사려는 고객에게 먼저 응대하는 경우를 체험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졌다.


젊은 스탭분들에게 소리치는 모양을 보면서, 한 마디 해주고 싶었다. 그럼 팔지 않으시면 된다고. 램프의 요정이 무조건 책을 매입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당신 책장에 있던 책들이 어떤 컨디션인지 내가 보지는 못했지만 소장할 의도가 아니라 팔려고 했다면 내게는 소용이 없는 책이 아니란 말이지 않은가. 그런 책들을 얼마나 신경을 써서 관리를 했을까 싶더라. 매입불가판정이나 등급 판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감안을 하셨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더 억울하셨을까. 인터넷을 아예 믿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많은데, 인터넷 매입가 예비검색을 맹신하신 게 문제가 아닐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러지 말라고 하셨는데, 어련히 알아서 감안하고 있으니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될 것 같다. Don't worry then not to be unhappy, though.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cyrus 2017-06-07 18: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을 파는 데 매입가 금액이 적거나, 매입 불가 판정을 받아서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들은 책을 ‘돈’으로 봅니다. 책을 팔아야 돈이 생기잖아요. 특별한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책을 파는 일이 있어요. 그렇지만 돈이 적게 나왔다고 해서 투덜거리는 모습은 보기 안 좋아요.

레삭매냐 2017-06-07 22:15   좋아요 0 | URL
그래봐야 몇 백원 차이인데,
그렇게 역정을 내실 일인가 싶더군요.

응대하시는 스탭 분들이 정말 안쓰러
웠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딸들
이고 아들들일 텐데 말이죠.

문화인 운운할 적에는 정말 빵 터질
뻔 했답니다.

AgalmA 2017-06-07 19: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 온라인 중고샵도 경쟁 치열해서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지죠ㅎㅎ;
처음에 멋모르고 책 들고 갔다가 2000년 이전 책 안 받는다고 뺀찌 먹고 무거운 거 도로 들고 온 기억 때문에 오프라인으로는 잘 안 가게 됐어요ㅎ;

레삭매냐 2017-06-07 22:16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2000년 전에 나온 책들의
지질 상태나 기타 요소들의 감점
요소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뻰지 당하신 분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그렇게 격렬하게 항의하시
는 분은 또 처음 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