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 리커버 버전이 베스트셀러가 됐다고 해서 관심을 가졌다. 다른 책도 읽어야 하고, 정신없이 바쁜 가운데 HULU라는 채널에서(월트디즈니, 21세기 폭스, 컴캐스트 그리고 타임워너 그룹이 출자한 VOD 합자회사) <시녀 이야기>의 드라마 버전을 만들었다고 해서 구해서 보기 시작했는데 이 드라마 정말 재밌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는 이미 그전에도 한 번 페어 더너웨이가 등장하는 영화 버전으로도 나왔었는데, 영화를 다 보지 않아서 정확하게 판단하기는 쉽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드라마는 더 재밌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는 메인 주에서 국경을 넘어 캐나다로 도망치려는 루크와 주인공 준(오프레드, 엘리자베스 모스 분) 그리고 그들의 딸 한나가 등장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준과 한나에게 먼저 도망가라는 루크, 뒤이어진 총성. 한나와 준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들에게 잡히고 준은 의식은 잃는다. 장면은 변환돼서 하녀 복장으로 커맨더 프레드 워퍼포드 집에 살고 있는 오프레드로 변신한 준이 등장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미국이지만(드라마의 촬영은 캐나다에서 이루어졌다고 한다), 길리아드(성경상에서는 길르앗)라는 이름의 가상국가다. 여성들의 권리는 박탈되고, 철저하게 계서제 중심의 가부장적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신정통치 시스템이 작동하는 전체주의 국가의 전형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환경오염과 바이러스의 창궐로 불임이 만연해 있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도저히 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다음 세대를 만들기 위한 재생산이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그래서 길리아드의 지도자들은 가임기의 여성들을 강제적으로 차출해서 지도자들의 집에 우선적으로 배치해서 재생산을 돕게 만든다. 그런데 그 방법이 매우 기묘하면서도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분명 성경에서 유래된 구절들을 읊조리는 것 같은데, 방법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 이미 중세에도 그랬던 것처럼 신정정치(theocracy) 시스템이 얼마나 현실을 왜곡시킬 수 있는지 절실하게 보여준다.

앤트(aunt) 리디아는 하녀 트레이닝 센터에서 붙잡혀온 여자들을 상대로 복종과 그들이 앞으로 해야할 일들을 훈육한다. 역시 폭력적인 방식으로. 길리아드에 사는 여자들에게 일체의 재산 소유는 허용되어 있지 않다. 책을 읽는 것도 금지다. 책을 읽다가 걸리면 처음에는 손가락을 그리고 두 번째는 손목을 자르는 형벌을 받는다. 훈육 중에 반항적인 태도를 보인 재닌(오프워렌)은 오른쪽 눈을 훼손당했다. 그렇게 배치된 하녀들은 커맨더의 아이를 갖기 위해 커맨더의 와이프가 동석한 가운데 한 달에 임신 가능한 가장 유력한 시기에 반강제적으로 섹스를 한다. 그들은 그것을 고상한 표현으로 “세레모니”라고 부르지만 성폭행에 다름 아니다. 아무런 감정이 실리지 않은 오로지 재생산(reproduction)만을 위한 섹스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주인공 오프레드는 이 모든 사태가 벌어지기 8년 전,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았지만 결국 하녀 신세로 전락해서 감금된 상태에서 아이를 낳기 위한 그릇으로 사용되어질 따름이다. 정말 끔찍한 미래의 디스포피아가 아닐 수 없다. 하녀들은 혼자서 외출할 수도 없으며 항상 파트너를 정해서 장도 보고, 간단한 외출을 할 수가 있다. 게다가 “디 아이”(the Eye)라는 조식이 상호 불신을 자극하면서 주류 사회에서 어긋난 행동을 하는 이들을 검은색 밴을 동원해서 쥐도 새도 모르게 잡아간다. 빅 브라더가 통제하는 사회 이상의 끔찍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오프레드의 동료는 오프레드에게도 디 아이가 붙어 있다고 주지시켜 주는데, 그는 바로 커맨더 워터포드의 운전기사 닉이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지만, 닉은 오프레드를 지켜 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미 9개의 에피소드들을 감상해서 줄거리가 좀 뒤죽박죽이지만, 오프레드의 절친 모이라와 공모해서 탈출을 시도하지만 오프레드는 다시 잡혀서 트레이닝 센터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하지만 그녀 역시 길리아드보다 자유로운 캐나다로 도주하는데 실패해서, 칼러니(식민지)행 대신 지저벨이라는 남성들을 위한 비밀장소에서 성적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나중에 커맨더 프레드(조셉 파인즈 분)는 오프레드를 데리고 지저벨을 방문하는데, 그 장소야말로 신정국가 길리아드에 절대 어울리지 않는 그런 장소였다. 어쩌면 신정국가의 위선적인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공간적 장치였을 지도 모르겠다.
생산인구 감소는 길리아드만의 문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웃 멕시코와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커맨더 프레드는 사력을 다한다. 멕시코 대사는 오프레드에게 많은 관심을 보이는데, 그녀의 주인들은 트레이드 성사를 위해 오프레드에게 주의를 주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런데 그들이 거래를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동료 시녀에게 오프레드는 바로 자신들이 그 “상품”이라는 사실을 전해 듣는다. 인격이 배제된 상품으로 “red tags"라는 이름으로(그들이 입는 옷 색깔이 붉은 색이라는 점을 떠올려 보라) 멕시코에 수출될 거란다. 결국 오프레드는 자신에게 멕시코산 초콜릿 선물을 주는 멕시코 대사에게 그들이 원해서 시녀가 되고 대리모가 되는 희생을 마다한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알려 주지만, 멕시코 대사 역시 어쩔 수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멕시코가 죽어가는 나라라면, 그녀의 조국 길리아드은 이미 죽은 나라라고 말이다.
오프레드가 또 하나 알게 된 사실은 길리아드에 대항하는 “메이데이”라는 저항단체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도주하다가 죽은 것으로 알고 있던 남편 루크가 살아 있다는 점이다. 드라마에서는 플래시백으로 과거에 대한 오프레드의 회상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무엇이든 자유로웠던 과거와 모든 것이 억압된 현실의 대조야말로 텔레비전 화면으로 벌어지는 비극을 한층 더 강조하는데 탁월한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유부남이었던 루크와 만나게 된 에피소드를 필두로 해서, 그들이 사랑에 빠지게 된 장면, 사랑하는 딸 한나를 낳은 병원에서 벌어진 인질극 등 다양한 이야기의 얼개들이 두서없이 등장한다. 여성들에 대한 노골적인 차별이 시작된 시기에 여성들의 은행계좌가 아무런 고지 없이 동결되고, 일자리에서 추방되는 장면들은 놀라웠다.

그것보다 더 놀라웠던 점은 불과 8년 만에 모든 사회가 길리아드의 지도자들이 인도하는 대로 별 반항 없이 길들여졌다는 점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무지막지한 폭력적 방식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아무리 인간이 적응하는 존재라고는 하지만, 단기간에 그런 게 가능하다는 점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한편, 커맨더 워렌의 아이를 갖게된 재닌이 출산하는 장면도 놀라웠다. 임신하지도 않은 워렌의 와이프가 심호흡을 하면서 출산하는 과정을 재현하는 장면이란 정말. 그렇게 반항적이었던 오프워렌이 아이를 낳고, 워렌과 자신의 딸 샬롯에게 집착한 나머지 새로 배치된 집에서 뛰쳐 나와 다리에서 아이를 안고 투신하려는 장면은 정말 애처로웠다. 현장에 투입된 오프레드의 설득에도 재닌은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만다.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오프레드는 자신의 딸 한나와 다시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버티고 있는 중이다. 지저벨의 모이라는 자신의 고객을 숨겨둔 둔 흉기로 처리하고 도주하는 장면으로 마지막 에피소드는 끝이 난다.

지금까지는 일단 10편의 에피소드가 방영될 예정인데, 앞으로 어떻게 될 지 궁금하다. 원작소설에서는 열린 결말로 끝이 난다고 하는데 이제 하나 남은 에피소드로 끝을 맺기엔 아직 할 이야기가 너무 많은 게 아닐까. 드라마를 본격적으로 보기 전에 원작소설을 좀 읽어 보려고 했는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마지막 에피소드를 기대해 본다.
* 뱀다리 :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시즌 2가 편성될 예정이라고 한다. 아마 시즌 1에서만 원작소설에 해당하는 부분을 그리고 시즌 2에서부터는 원작소설을 넘어선 길리아드 공화국에 대한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촬영에서는 디지털 방식의 촬영 대신 약간 어두운 톤의 테크니칼라 비전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오프레드의 우울한 삶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아주 유효한 방식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