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에 램프의 요정 중고서점에 책을 한 권 사러 갔었다.


니콜라스 터프스트라라는 작가가 쓴 <르네상스 뒷골목을 가다>라고 글항아리에서 나온 책이었다. 아무래도 근처 램프의 요정에 라이벌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찜해둔 책을 독서취향이 비슷한 양반이 와서 싹쓸이 해간다. 아마 그 라이벌에게는 나라는 존재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르네상스>를 사러 갔다가 켄 브루언의 <밤의 파수꾼>이 눈에 띄이길래 그 책도 한 권 사려고 집어 들었다. 예전부터 눈독을 들이고 있던 책이어서 책 컨디션을 훑고 나서 바로 집어 들었다.

사단은 그 무렵에 일어났던 것 같다.


어떤 중년 아주머니가 램프의 요정 직원들에게 큰소리를 치고 계셨다. 알고 보니 책을 왕창 팔러 오신 것 같은데 상당한 분량의 책이 매입불가 판정을 받은 것 같다. 당신 말로는 인터넷으로 다 검색을 하고 왔는데 이게 뭐냐고 역정을 내셨다. 내 단골 램프의 요정은 차 가지고 오기가 쉽지가 않아서 보통 팔 책들을 몇 권씩 가져다 파는 경우가 많다. 나도 물론 “뻰찌”를 먹은 적이 많다. 최근에도 내가 보기에는 최상 품질인데, 판정하는 스탭 분이 상등급을 매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등급이 차이가 나고, 가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팔지 않으면 된다.


인터넷 검색에서는 오케이 싸인이 떨어져도 막상 현장에서 거부당하는 수도 있다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지 않은가. 그 외에도 책파는 고객에게는 소홀하면서, 구입하는 고객들에게는 너무 친절하다면서 불평이 끊이지 않는다. 당연하지 않은가? 어떤 경우에도 매입자가 갑 아니었던가. 물론 세상사가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나도 매입판정을 받기 위해서 기다리다가 보면, 책 사려는 고객에게 먼저 응대하는 경우를 체험하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일들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졌다.


젊은 스탭분들에게 소리치는 모양을 보면서, 한 마디 해주고 싶었다. 그럼 팔지 않으시면 된다고. 램프의 요정이 무조건 책을 매입해야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당신 책장에 있던 책들이 어떤 컨디션인지 내가 보지는 못했지만 소장할 의도가 아니라 팔려고 했다면 내게는 소용이 없는 책이 아니란 말이지 않은가. 그런 책들을 얼마나 신경을 써서 관리를 했을까 싶더라. 매입불가판정이나 등급 판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감안을 하셨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더 억울하셨을까. 인터넷을 아예 믿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많은데, 인터넷 매입가 예비검색을 맹신하신 게 문제가 아닐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러지 말라고 하셨는데, 어련히 알아서 감안하고 있으니 그런 걱정은 안하셔도 될 것 같다. Don't worry then not to be unhappy, though.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cyrus 2017-06-07 18: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을 파는 데 매입가 금액이 적거나, 매입 불가 판정을 받아서 불만을 표출하는 사람들은 책을 ‘돈’으로 봅니다. 책을 팔아야 돈이 생기잖아요. 특별한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책을 파는 일이 있어요. 그렇지만 돈이 적게 나왔다고 해서 투덜거리는 모습은 보기 안 좋아요.

레삭매냐 2017-06-07 22:15   좋아요 0 | URL
그래봐야 몇 백원 차이인데,
그렇게 역정을 내실 일인가 싶더군요.

응대하시는 스탭 분들이 정말 안쓰러
웠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딸들
이고 아들들일 텐데 말이죠.

문화인 운운할 적에는 정말 빵 터질
뻔 했답니다.

AgalmA 2017-06-07 19: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 온라인 중고샵도 경쟁 치열해서 눈 깜짝할 사이 사라지죠ㅎㅎ;
처음에 멋모르고 책 들고 갔다가 2000년 이전 책 안 받는다고 뺀찌 먹고 무거운 거 도로 들고 온 기억 때문에 오프라인으로는 잘 안 가게 됐어요ㅎ;

레삭매냐 2017-06-07 22:16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2000년 전에 나온 책들의
지질 상태나 기타 요소들의 감점
요소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뻰지 당하신 분의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그렇게 격렬하게 항의하시
는 분은 또 처음 봤네요.
 

 

1988년에 <오월>이라는 출판사에서 나온 리우스(에두아르도 델리오)라는 예명의 멕시코 출신 카투니스트가 그리고 쓴 <체 게바라>를 읽었다. 그동안 체 게바라의 일기를 비롯해서 다양한 종류의 저작을 읽었는데, 그림과 사진, 도판 그리고 지도로 구성된 리우스의 <체 게바라>는 100쪽 남짓한 팜플렛 사이즈의 만화지만 내용 면에서는 다른 저작에 비해 뛰어난 컨텐츠를 자랑하고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20세기 최고의 혁명가 중의 하나이자 “완전한 인간”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자신에게 엄격했던 꼬만단떼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출신의 게릴라 전사였다. 원래 이름은 에르네스토 게바라 데 라 세르나. 아르헨티나 부르주아 가정에서 출생해서, 아르헨티나에서 의사가 되었지만 젊은 시절 모터사이클을 타고 라틴 아메리카 전역을 누비면서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 형성된 구조적 불평등과 억압 그리고 착취의 사슬을 끊기 위해 성공과 안락이 보장된 평안한 길 대신, 언제 죽을 지 모르는 게릴라로서의 삶을 선택했다.

 

평범한 의학도였던 그가 마르크스레닌주의에 경도된 게릴라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1954년 합법적으로 선출된 과테말라의 하코보 아르벤스 대통령의 개혁 시도를 미국 CIA 주도 아래 폭격까지 동원한 폭력적 방법으로 무산시키는 과정을 보고 의식의 일대전환을 이루게 된다. 아르헨티나 대사관을 거쳐 멕시코로 도주한 체 게바라는 그곳에서 마르크스주의 혁명이론을 본격적으로 접하면서 본격적인 혁명전사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물론 이듬해 이루어진 쿠바 출신 망명객 피델 카스트로와의 만남은 추후에 라틴아메리카 혁명에 도화선이 될 예정이었다.

 

미국의 지원 아래 바티스타 독재정권 아래 신음하던 쿠바 민중을 해방시키겠다는 피델 카스트로를 비롯한 일단의 쿠바 망명객들과 멕시코의 모처에서 철저하게 게릴라 훈련을 받은 카스트로와 게바라의 게릴라 부대는 그란마호라는 이름의 고물배에 실려 쿠바혁명의 첫 걸음을 내딛는다. 1956년 12월 2일 천신만고 끝에 쿠바 동부해안에 상륙한 카스트로 부대는 사전에 그들의 상륙계획을 알고 있던 정부군의 공격을 받아 대부분의 게릴라 대원들이 전사하고 체포되는 최대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15명의 게릴라 대원들은 험준한 시에라마에스트라 산맥을 배경으로 게릴라 작전을 시작하면서 쿠바혁명의 전설을 쓰게 된다.

 

25개월 동안의 고난에 찬 투쟁 끝에 결국 카스트로 부대는 더 버틸 수 없게 된 독재자 바티스타를 몰아내고 1959년 1월 1일 마침내 쿠바혁명을 성공시킨다. 하지만 외부인 체 게바라에게 진짜 혁명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그동안 미국의 지원을 받아 국가경제를 꾸려오오던 쿠바인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상상이상으로 어려운 난제들의 연속이었다. 케네디 정부는 카스트로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피그스만 침공이라는 무력침공까지 마다하지 않았으며, 미국의 재정지원이 끊기고 쿠바 미사일 위기로 금수조치가 계속되면서 쿠바 경제는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제 아무리 체 게바라가 중앙은행 총재로서, 공업부 장관으로서 자발적인 노동을 강조하면서 솔선수범한다고 해서 산적한 문제들이 저절로 해결될 리는 없었다. 게다가 초짜 비경제전문가가 주도하는 경제개혁은 수시로 마찰음을 낼 수 밖에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쿠바인이 아닌 외국인 출신 게릴라 전사의 활약을 시기하는 세력도 없지 않았을 것이다.

 

결국 쿠바의 모든 공직에서 물러난 체 게바라는 다시 혁명전선에 나서게 된다. 타고난 게릴라 전사답게 전세계의 억압받는 모든 민중을 해방시키겠다는 생각에서 촘베의 용병들과 전투 중이었던 콩고를 필두로 해서(콩고에서의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위대한 게릴라 전사가 최후를 맞이한 볼리비아로 무대는 이동한다. 그의 트레이드마크 같았던 수염까지 깎고 우루과이 출신 사업가로 변신해서 볼리비아에 잠입한 체 게바라는 라틴아메리카 5개국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볼리비아야말로 라틴아메리카 혁명의 전초지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게바라의 볼리비아에서의 게릴라 활동은 참담한 실패였다. 쿠바에서의 전설적인 게릴라 활동의 성공이 역설적으로 볼리비아에서의 실패를 초래했다고 해야 할까. 우선 볼리비아에서는 바티스타 같은 절대악으로 규정할 만한 독재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볼리비아 공산당과의 협조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계혁명주의자였던 게바라를 볼리비아에서는 단순하게 잘난 아르헨티나 출신 게릴라 전사 정도로 판단했던 게 아닐까. 쿠바에서와는 달랐던 볼리비아 농민들의 비협조 혹은 밀고로 게바라가 계획했던 게릴라 활동은 극도로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국제적인 체 게바라의 명성을 확인한 미국 CIA가 파견한 미군 군사고문단과 그린베레의 활약은 지난 세기 최후의 완전한 인간의 체포와 처형으로 귀결됐다.

리우스 작가는 이 책에서 간결하면서도 핵심적인 체 게바라의 삶을 다룬다. 아르헨티나 출신 청년이 어떻게 해서 혁명대의에 불타는 최고의 게릴라 전사로 거듭나게 되는지, 쿠바에서 혁명을 성공시킨 뒤에는 어떤 외압에도 시달리지 않는 탄탄한 국가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기존의 실패를 전범으로 삼아 개혁가로 활약하는 모습도 볼 수가 있었다. 이상주의자 피델과 체에게 국가개조는 무력혁명 이상으로 어려운 과제였다는 사실도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과의 오랜 불화 끝에 결국 화해에 나선 오늘날의 쿠바의 현실을 혁명가가 본다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cyrus 2017-06-07 16: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두아르도 델리오. 이름이 흔하게 느껴져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알라딘에 검색해봤어요. 레삭매냐님이 읽은 책이 알라딘에 나오지 않는군요. ‘라우스의 현대사상학교’ 나머지 시리즈가 어떤 책인지 궁금합니다.

레삭매냐 2017-06-07 16:51   좋아요 0 | URL
리우스라고 제가 좋아하는 멕시코 만화가
인데 원체 출간된 지가 오래 돼서 알라딘
에서 취급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무려 1988년에 나온 책이네요.
저도 아벨서점인가에서 2천원에 오래 전에
구입한 책인 것 같습니다.

오월 출판사에서 나온 현대사상학교 시리즈
읽을 만합니다. 다만 구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죠.

제 블록을 뒤져 보니 무려 2008년에 산 책
이었네요.
 
카이사르 1 - 5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5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시 콜린 매컬로가 돌아왔다. 지난 3년간 교유서가에서 꾸준하게 소개해온 매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가 드디어 대망의 완간을 앞두게 되었다. 올해 안으로 완간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마리우스와 술라 같은 공화정 로마의 한 시기를 장식했던 인물들이 명멸해 왔고, 정복 보다 더 치열했던 내전을 거쳐 제정으로 가는 길목에 등장했던 위대한 장군이자 사랑꾼, 정치인 그리고 역사가였던 줄리어스 카이사르의 시대가 마침내 도래했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와 장사꾼 크라수스와 더불어 루카 컨퍼런스로 삼두정치 시스템으로 미래의 제국을 삼분했던 카이사르는 자신이 맡은 갈리아 정복에 전념하는 중이었다. 갈리아 정복의 완성을 2년 앞둔 기원전 54년 두 번째 브리타니아 원정으로 위대한 팩션은 시작한다.

 

기존의 시리즈에서 원사료 부족 때문에 고생했다면 최소한 카이사르의 갈리아 정복 과정에서만큼은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카이사르가 직접 저술한 <갈리아 원정기>가 남아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훌륭한 원사료에 후대의 2차 사료들까지 차고 넘치는 무슨 걱정이 필요할까. 아니다, 어쩌면 사료의 적음보다 많음이 더 문제가 아닐까. 부족한 부분은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으로 창조된 부분으로 채워 넣으면 되지만, 방대한 사료의 바다에서 취사선택이야말로 더 어려운 문제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인생의 역작인 <마스터스 오브 로마>의 저술을 위해 얼마나 자료들을 접했으면 저술을 마치고 시력을 잃게 되었을까.

 


카이사르는 뼛속까지 정치인이자 군인이었던 모양이다. 본국 이탈리아에서 멀리 떨어진 오늘의 영국인 브리타니아와 프랑스 벨기에를 아우르는 갈리아에서 있으면서도 본국에서 들려오는 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폼페이우스나 크라수스 같은 다른 유력자들보다 유독 자신에게 더 적대적인 키케로와 카토 같은 골수 공화주의자들의 동태 파악에 관한 정보도 빼놓지 않았다. 어쩌면 그들은 다른 삼두들보다 카이사르가 가진 야심이야말로 공화정 로마에 대한 최대 위협이라고 판단했던게 아닐까. 팩션에 나오는 “자신이 로마다”라는 표현보다 그가 앞으로 벌일 사업을 규정짓는 더 적합한 표현이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그를 추종하는 로마 군단의 병사들도 카이사르를 하나의 상징으로 인식하고 사령관과 함께라면 활활 타오르는 지옥불에라도 뛰어들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가.

 

한편, 카이사르는 천재적 군사전략가답게 효율적인 군대 운영을 위해서라도 정보는 필수적 요소라는 사실을 파악하고, 정보 수집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게다가 군대 운용에 있어 절대적인 병참은 물론이고, 온통 적대적인 압도적 다수의 야만족에 포위될 것에 대비한 농성전에 필수적인 담수 확보와 부대의 위생 문제에도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무엇보다 자신이 개인위생과 청결에 전력했다고 저자는 멋지게 그리고 있다. 물론 소설적 상상에 입각해서 서술했겠지만.

 

공화정 로마를 지탱해온 시스템의 유효성이 다 했다고 판단한 카이사르는 일인자(독재자일 수도 있다)가 지배하는 새로운 제국 스타일의 통치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었을까. 아마 그러기 위해서는 마리우스와 술라 시대에 이은 또 다른 내전이 필수적이라는 사실도 자각하고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황금에 눈이 먼 크라수스는 차치하고서라도 피케눔 출신의 자타가 공인하는 로마 일인자이자 자신의 사위였던 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와의 대결은 필연일 수밖에 없었다. 자신과 폼페이우스를 혈연관계로 맺어주던 유일한 혈육 율리아가 출산 중에 사망하고, 자신의 정신적 지주였던 어머니 아우렐리아를 연달아 잃으면서 미래의 종신독재관은 깊은 내상을 깊은 것 같다. 하지만, 우리네 같은 범인(凡人)과 달리 카이사르는 짧은 애도기간을 마치고, 바로 본격적인 갈리아 원정에 나서게 된다.

 


첫 번째 도전자는 벨가이 에부로네스족 암비오릭스였다. 자신의 영토 내에 있던 아투아투카 요새에서 주둔 중인 사비누스와 코타의 13군단이 유력한 상대였다. 갈리아 전역이 봉기해서 그들 요새 역시 위협에 빠질 수 있다는 거짓 정보로 로마 군단을 유인해낸 암비오릭스는 수적 우세로 로마 군단을 전멸시켰다. 카이사르의 명령대로, 요새에서 월동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던 코타와 백인대장 고르곤의 어이없는 죽음 앞에 급보를 받고 달려온 사령관 카이사르는 한줄기 눈물을 흘린다. 기세가 오른 암비오릭스는 퀸투스 키케로가 이끄는 9군단을 불시에 습격해서 사비누스 군단을 전멸시킨 이간책을 다시 시도해 보지만, 키케로가 준비한 치밀한 농성전으로 구원군이 도착하면서 마침내 포위가 풀린다. 야만인에 가까운 부사령관 라비에누스는 신속하게 갈리아 반란군을 진압한다.

 


벨가이와 갈리아 전역에서 벌어진 전쟁은 본질은 라인강 너머 숲속에 사는 진짜 야만인 게르만족의 위협으로부터 갈리아 사람들을 지켜 주겠다는 로마인들과 협력하느냐 마냐의 문제였다. 카이사르가 이끄는 로마 군대의 강력한 전투력과 우수함에 수긍한 많은 갈리아인들이 팍스 로마나에 편입되었지만, 또 상대적으로 게르만족이나 로마나 다를 게 없다는 주장을 펴며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를 옹호하며 자유를 외치는 세력들도 상당수였다. 가중되는 게르만족의 위협으로부터 이탈리아 본토를 지키기 위해 완충지대 갈리아의 로마화야말로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던 카이사르에게 갈리아 정복은 필수불가결한 지상과제였다. 그는 분열하고 반목 중인 많은 갈리아 부족들을 각개격파하는 방식으로 유력한 부족들을 차례로 복속시켜 나가면서 우직하게 고모부 마리우스 이래 추진되어온 갈리아의 팍스 로마나를 밀어 붙였다. 갈리아에도 그런 카이사르의 의중을 꿰뚫어 본 지도자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바로 아르베르니족 출신의 베르킹게토릭스였다.

 


아무래도 콜린 매컬로 작가의 소설적 창작으로 보이는 갈리아 공주 출신이라는 리안논의 사촌으로 소개된 베르킹게토릭스가 범갈리아 회의가 끝난 뒤, 카이사르의 사저에서 갈리아 사령관과 대면하는 장면은 <카이사르>에서 최고의 한 장면이다. 갈리아 부족 고유의 문화를 유지하겠다며 왕정이야말로 반드시 필요하다는 젊은 지도자 베르킹게토릭스와 실제로는 왕에 가까운 독재자의 지위를 원하면서도 로마 공화정 시스템이야말로 최고라고 주장하는 카이사르의 논쟁은 그야말로 당대 시대정신을 규정하는 거대 담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격적인 무력 충돌을 앞둔 갈리아와 로마의 긴장이 최고조로 달하는 장면으로 일단 마무리하고, 다시 로마로 매컬로 작가는 무대를 옮긴다.

 

나이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는 젊은 날의 기상을 잃은 대신, 노회한 정객으로 당시 로마 사회에 만연한 폭력적인 분위기를 일소할 독재관의 자리를 원한다. 하지만 원로원 내 보니파의 핵심인사들인 카토, 비불루스 그리고 아헤노바르부스 등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자리를 폼페이우스에게 내줄 생각이 전혀 없다. 한편 카이사르는 갈리아 정복의 마지막 단계를 위해 자신의 임페리움을 유지하면서, 부재 중 집정관 선출을 위한 공작을 개시한다. 보니 파들은 허영과 오만으로 가득한 폼페이우스보다 카이사르가 공화정 로마에 더 위협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고, 양자 간의 공수동맹을 와해시켜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대결을 위한 준비를 착착 진행시킨다.

 

다시 한 번 2천년 전, 갈리아의 완전한 로마화라는 웅대한 꿈을 가지고 갈리아 정복에 나선 시대의 지도자 카이사르를 완벽하게 고증해낸 콜린 매컬로 작가의 역량에 감탄했다. 일개 야만족 수장인 암비오릭스가 전투에 나서기에 앞서 일체의 장신구를 갖춘 모습에 대해서도 고증을 소홀히 하지 않고 투철한 사명감으로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상세한 묘사를 하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로마와 이탈리아 전역이 운명공동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깨닫고, 시민권의 확대와 지중해를 석권한 거대한 제국으로 확장해 가는 과정에 태생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원로원 의원들을 설득해서 새로운 국가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카이사르의 모습에서 시대를 초월한 국가지도자의 품격을 엿볼 수가 있었다. 이제 막 출범한 새로운 정부를 카이사르가 구상한 새로운 국가상에 견주어 보는 것이 과연 무리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약 고전의 반열에 오른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을 우리에게 던져주는 이유가 바로 그 점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비록 제국의 건설은 카이사르가 시작했지만, 완성은 양자 옥타비아누스가 하게 되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영락제 - 화이질서의 완성 아이필드 히스토리 History
단죠 히로시 지음, 한종수 옮김 / 아이필드 / 2017년 1월
평점 :
절판



1. 오래 전 읽었던 김용의 <의천도룡기>의 시대적 배경은 13세기 원명 교체기다. 몽골족 천하였던 원나라 조정에 분연히 맞선 홍건적의 무리들 중에 실제 인물이었던 상우춘, 서달 그리고 훗날 홍무제가 되는 농민 출신의 주삼(맞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이라는 이름의 주원장이 차례로 등장한다. 소설에 따르면 구양신공을 익힌 절세무공의 소유자이자 명교 교주 장무기는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는 그런 능력의 소유자였다.


2. 일본 역사가 <영락제>에 등장하는 주인공 연왕 주체, 훗날 명나라의 세 번째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성조 영락제가 조카 건문제를 상대로 일으킨 반란은 정난의 변[靖難之變]이란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다. 조선시대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는데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의 자리를 찬탈하기 위해 일으킨 쿠데타 후에 역모를 도모한 이들에게 정난공신이라는 칭호를 수여했다. 당시에는 역도들에겐 영광이었겠지만, 훗날 치욕적인 칭호로 바뀌게 될 줄은 그 땐 아마 몰랐겠지. 참고로 3등 정난공신에 성삼문이 들어 있어 놀랐는데, 쿠데타세력이 억지로 부여한 것이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은 중국사에 등장하는 여러 군주 중에 역시 조카의 자리를 무력으로 찬탈하고 제위에 오른 문제적 인물 연왕 주체/영락제를 일본인 역사가의 시선을 통해 읽게 됐다. 단죠 히로시 교수는 단순하게 영락제에 대한 평전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부제가 말해 주듯이 그를 통해 중국식 화이질서가 완성되었다는 점을 이 저술에서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원래부터 다민족국가일 수밖에 없는 숙명이었다. 중원을 중심으로 한 중화제국과 변방의 북적, 서융, 동이 그리고 남만이라고 불리는 이적들의 연합체가 바로 현재까지도 여전히 유효한 화이질서의 핵심이다. 전통적 화이사상은 중화가 중심이라는 세계관이면서 동시에 이적의 존재를 필요로 했다. 그리고 전통 유가사상에서는 차별과 포섭이라는 방식을 통해 화이사상의 질서를 도모했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중국의 역사는 중화와 이적의 중원쟁탈전이었다. 당대 이래 유지되던 중화질서는 몽골의 제국 원나라가 중원의 지배자가 되면서 일대 충격을 불러왔다. 변방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온 이민족이 중원의 지배자가 된 것이다. 이어진 원명교체기의 격변을 기존에는 민족투쟁이라는 차원에서 다루었지만, 점차 학계에서는 민족투쟁 대신 농민과 지주 혹은 관료계급 간의 계급투쟁이라는 측면에서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는 점을 저자는 지적한다. 중화세계에 한족(漢族)으로만 구성된 국가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오랑캐를 내쫓자는 ‘구축호로’나 ‘회복중화’ 같은 구호들은 정치적 선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명교체가 민족혁명이라는 주장은 무의미하고, 오히려 원명시기에 역사적 일관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주창하고 있다.


원나라 말기, 홍건적 세력으로 천하쟁패에 나섰던 세 명의 군웅들은 다음과 같다. 강서의 진우량, 소주의 장사성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경의 주원장이다. 그 중에서 진우량이 주원장과의 대결에서 처음으로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고, 장사성마저 패퇴시키는 토너먼트에서 승리한 주원장은 대도(지금의 베이징)에 자리 잡은 원나라를 정벌한 한족 대표선수가 되었다. 서달과 상우춘으로 구성된 북벌군은 의외로 손쉽게 몽골정부를 패퇴시키고, 마침내 중원을 통일하는데 성공한다. 그리고 황제의 자리에 오른 홍무제 주원장은 가혹한 형벌제도와 특임부대를 가동한 공포정치 그리고 십만 명에 달하는 인원들에 대한 숙청과 옥사를 통해 전제통치의 기반을 마련했다. 한편, 국가는 ‘유덕군민’(有德君民)이라는 왕조 교체의 정당성을 위한 천명사상을 강조했다. 독재군주였던 황제는 기본적으로 유교의 덕에 의한 덕치국가를 표방하면서, 역설적으로 이제 막 탄생한 거대한 제국의 정권강화를 위해 무자비한 율(律)에 의한 형벌 사용을 마다하지 않았다. 레이 황 교수도 자신의 저서 <만력 15년>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명나라에도 법률이 있었지만 실제 제국통치의 실제는 바로 유가사상의 윤리, 도덕이었다고 언급했다. 홍무제가 실시했던 군주독재의 강화는 시대적 요구였으며, 왕조말의 혼란을 바로 잡기 위한 질서확립에 따른 전제의 정도 강화는 필연적이었다는 사실에 저자는 주목한다.


한편, 태조 홍무제의 건국 초기 최우선 과제는 북방으로 물러간 몽골족의 북원에 대한 대비와 남쪽 해안에 출몰하는 왜구와 해적으로부터 국가와 백성을 방비하는 일이었다. 세계제국이었던 원나라 시절에는 무역을 권장하는 풍조가 있었지만, 태생적으로 보수정권일 수밖에 없었던 명나라는 대외무역을 국가가 관장하는 조공무역으로 제한하고 해금, 다시 말해 쇄국정책을 실시했다. 남해안에 대한 전수방위 전략이 어느 정도 성과를 발휘하자 이번에는 북쪽 국경으로 눈을 돌렸다. 제국은 강력한 중앙집권 정책을 시행하면서도 동시에 북방수비를 위해 9명의 황자들을 분봉하는 봉건시스템을 가동했다. 문제는 중앙집권제와 분봉제의 이해가 서로 상충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설상가상으로 변방에 파견된 유능한 군왕들이 병권을 쥐게 된다면 중앙에 반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점을 홍무제는 몰랐을까? 홍무제 당대에는 컨트롤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후대에는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우려는 2대 건문정권에서 실제로 발생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건문제와 훗날 영락제가 되는 연왕 주체가 4년간 내전을 벌인 정난의 변이다.


적통 출신 황태손으로 주원장 사후 제위에 오른 건문제는 고명대신 황자징과 제태 그리고 방효유의 조언을 받아 삭번과 관제개혁을 시도한다. 건문제의 삼촌뻘로 새왕이라 불린 9명의 유력한 제왕들이 차례로 영지와 제왕의 신분을 빼앗기자 가장 강력한 세력을 형성했던 북평(현재의 베이징)의 연왕부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황제의 칼끝이 노리는 최종목표는 자신이라는 걸 잘 알고 있던 연왕은 수세에 몰리기 전, 거병에 나선다. 어린 황제를 주변에서 농락하는 간신 황자징과 제태를 제거라는 대의를 내세웠지만, 처음부터 연왕의 목적은 조카의 제위찬탈이었다. 장장 4년간에 걸친 내전을 통해 연왕 주체는 환관과 다수 관료들의 내응으로 수도 금릉을 함락시키는데 성공한다. 그 와중에 건문제의 시신을 발견되지 않았는데, 그런 이유로 분사했다는 주장과 도망해서 은신해 살았다는 설이 난무했다고 전한다.


무력을 통해 정권탈취에 성공한 연왕은 태종(훗날 성조로 개칭) 영락제로 그토록 염원하던 제위에 오른다. 태조 홍무제의 바람과는 달리 4년간의 내전으로 천하는 다시 혼란스러워졌고, 부도덕한 방법으로 제위에 올라 정통성 논쟁의 중심이 된 영락제는 부황이 세우고자 했던 질서의 재확립에 매진하게 된다. 자신에게 절대 굴복하지 않았던 절동학파의 거두 방효유 일족과 강성 반대파를 무자비하게 숙청한 영락제는 건문정권의 관료들에게 아량을 베풀어 자신에게 충성하면 그전의 일에 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통 큰 결정을 내린다. 그리고 선비와 유학자들을 대거 동원해서 당대 최대 유서인 <영락대전> 편찬에 나선다. 학자들의 불만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며, 명조의 근간인 문치주의 지배확립을 위해 철저하게 준비된 포석이었다. 아울러 자신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역사에 대한 윤색과 날조도 마다하지 않았다. 영락제 시절에 저술된 태조실록은 자그마치 세 번이나 개수작업을 하게 되는데, 자신이 태조의 정비였던 마황후의 소생이었다는 역사적으로 상충되는 사실에도 손을 댔다. 자신의 조카였던 건문제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유약하고 무능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단죠 히로시 교수는 명대에 저술된 관찬 자료에 대해 취사선택해서 보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언제나 그렇듯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지 않은가.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어떤 점에서 보면, 진실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승자가 원하는 “가공된” 기록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명실상부한 천자의 자리에 오른 영락제의 정치적 모델은 세계제국의 제왕이었던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였다. 수성의 군주답지 않게 영락제는 집권 초기부터 공격적인 모습으로 나갔다. “사이 조공”이라는 방식으로 중화를 중심으로 한 질서를 강조하면서, 주변의 번국들에 조공을 강요했다. 사실 조공제도는 중화제국에게 경제적인 면에서 마이너스였지만, 영락제는 그런 점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만큼 명나라의 정치력과 경제력이 조공무역의 마이너스를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실리보다는 명분을 중시하는 영락제의 스타일 때문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경제중심지 남경(금릉)에서 출발한 명나라 정권은 태생적으로 북방수비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20년간 북평에서 제왕생활을 한 연왕/영락제는 원나라 시절부터 정치의 중심이자 국제도시였던 북경을 미래의 수도로 삼기로 마음먹고, 천도를 위한 장기 플랜을 가동시켰다. 수많은 남인 출신 관료들의 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제위 19년 만에 자신의 계획을 관철시키는 데 성공한다.


보수주의자였던 아버지 홍무제와 달리 대외원정에도 영락제는 적극적이었다. 우선 즉위 초기 신료들의 반대를 제압하고 안남원정을 시도해서 400년 동안 독립을 유지해온 안남을 내지화했다. 환관 정화를 기용해서 수차례에 걸친 남해원정에 나서기도 했다. 대항해시대 유럽 국가들처럼 무역항로를 개발하기 위한 경제적 목적으로 시작한 원정이 아니었기 때문에, 실리는 없었지만 사이 조공이라는 영락제의 원대한 목표를 위해 조공국을 늘리는데 일조한 것은 틀림없다. 마지막으로 숙원사업이었던 다섯 차례에 걸친 북방정벌을 영락성세의 한 가지 특징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전까지 중화제국의 천자가 직접 북벌에 나서 막북을 넘은 적이 없었다. 이 원정 역시 비용만 많이 들어가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 사업이었지만 사이질서의 확립이라는 원대한 계획안에서 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영락제는 마지막 원정에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단죠 히로시 교수는 내정면에서 영락제가 어떤 성취를 이루었는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빈약하게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모름지기 정관의치에 비교할 정도의 영락성세라고 한다면 백성들이 그 이전에 비해 얼마나 잘 살게 되었는지 사회경제적 측면의 연구도 필요할 텐데 지나치게 정치사적 차원에서 영락연간을 다룬 게 아닐까 싶다. 태조 홍무제의 후계를 자처한 것에서 보듯이 황제권강화를 위해 기존의 금의위와 환관이 중심이 된 특무기관 동창을 이용한 스파이 정치라는 폐단을 남기기도 했다고 한다. 재상제를 폐지한 홍무제의 결정은 황제권강화에는 용이했을지는 몰라도, 모든 결정이 황제에게 집중되는 현상을 빚기도 했다. 아무리 천하를 다스리는 일이 황제의 직무라고 할지라도 그 많은 업무들이 황제에게 집중되는 현상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락제는 환관들을 중용해서 비서관으로 삼고, 내각대학사라는 이름의 실질적인 재상역할을 맡은 관료를 중심으로 한 내각을 처음으로 운용했다. 만력 연간의 이름난 수보대학사 장거정의 이름을 보니 지난달에 읽은 레이 황 교수의 <만력 15년>이 생각나 반가웠다.


숨 가쁘게 영락제를 다룬 평전을 읽고 리뷰까지 마쳤다. 대중역사서라고 보기에는 저자가 강조하는 화이질서에 대한 내용이 자못 심오하다는 생각이다. 초반의 지루함을 이겨내면 비로소 삼촌과 조카가 천하를 두고 다툰 내용이 나오고, 연왕이 제위에 올라 영락성세를 이룬 과정이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영락제>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레이 황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형제간의 골육상쟁을 치르고 황제가 된 당태종 이세민에게 세간의 도덕률을 적용해서는 안된다고 했던가. 내가 역사를 전문으로 연구하는 학자도 아니고, 일개 독서인으로 볼 때 건문제의 충신으로 남은 방효유가 썼다는 연적찬위라는 네글자가 보여주는 절개와 윤리는 영락제의 불의한 찬탈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 부도덕한 찬탈자가 이룬 성세라는 신화를 우리의 근대 산업화 과정 어딘가에서 본 듯한 기시감에 역사는 꾸준하게 반복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unsun09 2017-06-02 13: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만 읽어도 이 역사서가 얼마나 방대한지 느껴지네요.
얄팍한 제 역사지식이 무색해지는 순간,
항상 이 정도의 리뷰를 쓰시는 분은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한수 배웁니다.^^

레삭매냐 2017-06-02 13:58   좋아요 1 | URL
과찬이십니다.

앞으로도 더욱 분발하라는 뜻으로
알고 열심히 읽고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도마뱀이 숨 쉬는 방
탁명주 지음 / 강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세 권 책의 존재를 알게 되고 지난 주부터 읽고 있다. 두 권은 샀고, 다른 한 권은 샀는데 산 책이 바로 탁명주 작가의 <도마뱀이 숨 쉬는 방>으로 강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다. 김소진 작가에 대한 추억으로 주저 없이 강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골랐다. 책을 다 읽은 작은 소회는 기대 이상이었다. 작년과 올해 읽은 한국소설 중에 가히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별 열 개를 주어도 전혀 아쉽지 않을 정도로 아우라를 <도마뱀>은 품고 있었다.


처음 등장하는 <컨테이너>의 결말은 참으로 슬프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인생들이 그래도 살아 보고자, 강둑 매립지 부근에 버려진 컨테이너를 거처로 삼아 새출발을 시도해 보지만 그들에겐 세컨드 챈스(second chance)는 주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탁명주 작가는 사회에서 도태된 이들에게 패자부활이 주어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냉정한 면을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요즘에도 밀린 집세 때문에 야반도주를 한다는 상황에 이물감이 스물스물 피어오른다. 하긴 수도 서울의 복판에서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는 사람도 나오는 마당에. 무언가 씹고 싶어하는 큰딸을 위해 산후조리를 못해 허리가 아픈 아내를 대신해서 달달한 고기볶음을 하는 아빠의 모습에 눈에 땀이 차오른다. 자신은 공복을 달래기 위해 수돗물을 삼키면서도 자식들을 위해서는 그렇게 헌신적이었던 가장의 최후는 그래서 더더욱 비장미를 자아낸다. 아, 답답한 현실을 어쩌란 말이냐.


잘 나가던 강남 사모님이었지만 남편의 판단착오로 아파트를 날리고 변두리로 주저 앉았지만 시장에서 장보고 낑낑 대며 물건을 사나르는 건 죽어도 못하겠다는 일말의 자존심을 내세우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부업>. 어쩌면 주인공 역시 인지부조화 상태에 빠진 것일 지도 모르겠다. 이웃한 개아짐이 개가 좋아서 수많은 개들을 거느리고 있는 게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개를 길러 판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리고 통장에 생활비가 꽂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마침내 그녀는 자신이 하찮게 생각하던 부업 여성들처럼 자신도 부업 전선에 나설 결심을 한다.


<부업>은 비슷한 처지에 내몰린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독>과도 일맥상통한다. 비정규직이 정규직 직원들에게 차별당하는 현실이 리얼하게 그려진 학교 급식소가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다. 생리 때문에 몸이 아프고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처럼 취업전선에 내몰려야 하는 이들에 대한 이야기는 소설이 아니라 르포르타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정규직 직원들은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힘든 일들을 모두 하루살이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비정규직 직원들에게 미룬다. 그들을 관리감독하는 일이야말로 정규직인 자신들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네 삶 속 곳곳에 그렇게 일상화된 차별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양심이 씀벅거린다. 바버리 사모님이 한 때 자신을 모욕한 인물이라는 사실에 화자는 놀라면서도, 소심한 복수를 통해 상처 받은 상처를 표백 소독하고,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하수구로 흘려보낸다. 이런 카타르시스라도 없다면 어떻게 세상을 살 수 있을까. 잘나가던 이들도 언제라도 인생역전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은 보너스다.


동창 수화의 남편인 형기 씨와 동업자이자 불륜 관계에 있는 이유빈 씨가 등장하는 <전염>도 삶의 아이러니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그런 작품이다. 단편 소설들을 읽다 보니 삶이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는 가운데 드러내는 부작용이나 파편들을 잡아내는 데 탁명주 작가는 정말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물에 대한 세심한 관찰과 인과관계에 대한 추적의 하모니라고나 할까. 다시 <전염>으로 돌아가, 불륜남이 던진 남모를 메시지를 음미하면서, 거의 사기에 가까운 말에 속아 넘어간 다단계 판매 ‘라인’을 운영하며 동창회에서 새로운 라인을 구축하려던 이유빈 씨는 결국 모든 것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다른 동창의 전언을 통해 전해 듣게 된다. 더 놀라운 것은 자신이 수화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수화가 이유빈 씨를 가지고 놀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래 전에 돌아가신 부모님의 뒤를 따를 결심으로 시속 180km로 달려가다가 어머니가 남긴 머플러 생각에 자신이 정상궤도를 이탈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런 배신의 코드는 표제작인 <도마뱀이 숨 쉬는 방>에서 다시 반복 변주된다. 악착 같이 번 돈으로 필리핀에서 외동딸을 유학보내고 뒷바라지하러 나선 화자는 굳게 믿었던 최사장에게 사기를 당하고 만다. 해외 한인 사회에서 벌어지는 요지경 같은 일상, 가사를 위해 고용한 현지인들에 대한 편견 등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들을 작가는 능수능란한 솜씨로 직조해낸다. 동생이 필리핀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마치 현지 리포트처럼 들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생생했다. 놀랍군 놀라워. 엔딩에서 자신 뿐만 아니라 공장을 경영하던 남편도 최사장에게 골프장 회원권 사기를 당했다는 말에 화자는 할 말을 잃는다. 도대체 이 세상에는 믿을 놈 하나 없다는 말의 반증이려나. 화자는 파리나 모기 같은 날벌레들을 잡아먹는 도마뱀을 포식자로 등장시키고 있는데, 현실계에 반영해 본다면 자신과 남편은 날벌레 그리고 자신들에게 사기를 친 최사장이 상위 포식자인 도마뱀으로 치환시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이라는 미로에 갇힌 고단한 삶의 진실을 날것 그대로 노출시킨다.


<공생>에서는 이주민노동자에 대한 노골적인 편견과 차별을 등장시킨다. 작가가 소설 속에 등장시키는 주제들이 하나 같이 민감하면서도 모두가 알고 있기에 부정할 수 없는 현실 같은 이야기들이 아니던가. 존 버저 작가도 자신의 저서 <제 7의 인간>에서 언급했듯이, 이주민노동자의 존재는 고용주와 피고용주 모두에게 윈윈관계가 아니다. 전적으로 고용주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형성된 관계다. 제3세계에서 그러니까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에서 차출된 외국인 산업전사들은 헬조선 사람들이 기피하는 그런 제조업 작업장에 투입된다. 물건이 없어져도, 도둑이 들거나 불편한 사건이 벌어져도 모두 그들의 책임으로 간주되는 현실을 작가는 소설에서 정확하게 지적한다. 도대체 어쩌란 말이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라기 보다, 잠정적 범죄자라는 의식부터 바꿔야 하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나와 다름이 무조건 나쁘다는 편견부터 교정해야겠지만 말이다.


다른 이야기들이 우리 사회 전반을 아우르는 민감한 이슈들을 한 개씩 품고 있다면 후반의 <닻>과 <택배>는 지극히 사적인 감정을 타겟으로 한다. 디자이너 출신 엄마의 인형처럼 살아온 주인공이 체험한 성형의 역사는 솔직히 남자로서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냥 생긴 대로 살면 안되나 하는 생각에서부터, 주체적 사고 없이 부모가 조종하는 대로 살아온 인생에 대한 후회 그리고 복원수술까지 결심한 주인공의 감정에 ‘닻’을 내리기가 사실 쉽지 않은 미션이었다. 마지막 이야기인 <택배>는 쫌 신파조이긴 했지만, 가슴 훈훈한 결말로 이 멋진 소설집의 대미를 장식한다. 그리고 마지막 소설인 <택배>에서도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편리라는 이름으로 받는 택배에 택배노동자 아저씨들의 눈물이 배어 있을 거라고는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점을 반성해야겠다. 최소한 내가 그분들에게 갑질하는 진상고객은 아니라는 점에 위로를 받아야 하나. 오늘도 알라딘에 주문한 존 버저 작가의 신간을 택배로 받았는데 잘 배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새벽에 이 책을 다 읽고 나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느라 쉬 잠이 오지 않았다. 예전에 교회에서 만난 한국말은 거의 못하던 스리랑카 청년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들부터 시작해서, 필리핀에 사는 동생이 경험한 가사도우미들과의 일화들이 그야말로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또 한편으로 편견과 차별은 내가 아닌 타인의 삶에 대한 이해부족이 원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까지 도달했다. 상대방이 처한 상황에 대해 보다 잘 안다면 적어도 인간이라면 그럴 수 없을 텐데 하는 생각 말이다. 소설 <도마뱀이 숨 쉬는 방>을 읽으면서, 나와 다른 이들이 가진 삶의 주파수, 생각 혹은 사유에 동조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라도 이 책은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unsun09 2017-06-02 13: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를 읽어보니 꼭 읽어봐야겠네요.^^

레삭매냐 2017-06-02 13:55   좋아요 1 | URL
후회하시지 않으실 겁니다.

개인적으로 최근에 읽은 소설집 중에
최고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