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선거날이다. 그런데 비가 온다. 날씨 때문에 투표율이 떨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늘의 주제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야만적인 탐정들>이다. 개인적으로 볼라뇨의 열혈팬으로 그의 전작을 읽고 있다. 다만 책들은 나오는 대로 족족 사들였지만 독서는 못했다. 메타픽션 <2666>은 그래도 2권은 읽었지만 나머지 3권은 못 읽었다. <2666>만큼은 아니지만 못지 않은 <야만적인 탐정들>도 결국 읽기 시작은 했지만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가끔 중고서점에 갈 때마다 보고서는 소장하고 있지만 다시 사면 읽게 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이미 산 책입니다라는 스탭 분의 말이 두려워 미처 사지 못했다. 하고 보니 다 구구절절한 변명이다. 예전에 마술사들이 등장하는 <나우 유 씨 미>에서 우디 해럴슨이 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 다시 도전할 생각만 하고, 미처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올해에는 시간을 두고 아르킴볼디가 등장하는 <2666>과 <야만적인 탐정들>을 읽어야겠다. 책은 고만 사고, 집에 있는 책부터 읽자고 다짐하건만 항상 헛된 구호가 된다는 게 맹점.

 

 

자꾸만 이야기가 곁다리로 새는 데, 며칠 전 동네 카페에 갔는데 전혀 색다른 버전의 <야만적인 탐정들>을 만났다. 우리가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열린책들 버전은 칼라의 1권과 2권의 책인데, 내가 사는 동네 책읽는 군포 카페의 작은도서관에서 흰 표지의 단권으로 되어 있는 책을 발견했다. 그 날은 하필이면 핸드폰이 미처 가져 가지 않아서 그냥 왔는데 오늘 아침에는 마침 핸드폰을 가지고 있어서 바로 세 컷을 찍었다.

 

영문판 위키피디아에 소개된 플롯을 통해 소설을 디비 보자. 소설은 1인칭 시점에서 내레이팅이 되는데, 몇몇의 내레이터들이 등장하고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이야기는 “멕시코에서 실종된 멕시코인들”로 1975년 후반, 미래의 시인을 꿈꾸는 17세 소년 후안 가르시아 마데로가 화자로 등장한다. 그놈의 도대체 정체를 알 수 없는 내장사실주의에 대한 무의미해 보이는 토론이 아마 지긋지긋하게 나를 괴롭혔던 기억이 난다. 법대생 마데로는 대학을 중퇴하고 멕시코시티 주변을 여행한다. 실체가 불분명한 내장사실주의에 회의하면서도 점저 깊숙하게 빠져 드는 그런 상황이 계속된다.

 

 

두 번째 이야기는 소설의 제목은 <야만적인 탐정들>도 대략 전체 소설의 2/3 가량을 차지한다고 한다. 단권으로 된 소설의 총 페이지 수는 982쪽인데, 그렇다면 최소한 600쪽 이상이 할애된 모양이다. 이 부분은 1976년부터 1996년까지 20년 이상의 시간을 다루면서 자그마치 40명 이상의 내레이터가 등장한다. 내장사실주의 설립자들과 울리세스 리마, 아르투로 벨라뇨를 비롯한 북미, 유럽,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 대륙을 넘나들며 다양한 캐릭터들과의 인터뷰로 구성되어 있다. 뜨내기들처럼 유럽에서 수년 동안, 술집과 야영장을 누비며 보헤미안 스타일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소설을 통해 알게 된다. 벨라뇨가 스페인 바닷가에서 결투를 마다하지 않는 문학비평가에 도전하는 동안, 리마는 이스라엘에서 짧은 형을 살기도 한다.

 

세 번째 이야기는 “소노라 사막”에서는 다시 마데로가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시간의 연대기에 따른다면, 첫 번째 이야기에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이다. 1976년 1월, 마데로와 리마 그리고 창녀 루페가 등장한다. 멕시코에서 루페의 포주 알베르트와 부패한 멕시코 경찰에게 쫓기면서, 내장사실주의의 창시자인 세사레아 티나헤로를 찾아 나선다.

 

 

다른 리뷰와 대충 알아 먹은 위키피디아 플롯만으로는 도저히 이 소설이 어떤 종류의 소설인지, 볼라뇨가 소설에서 하고 싶은 말이 도대체 무엇인지 가늠이 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 결론은 내가 읽어야 한다는 거겠지. 그런데 자그마치 천쪽에 육박하는 소설을 내가 과연 싫증을 내지 않고 읽을 수 있을까? 게다가 지금 서평 도서들이 자그마치 5권이나 배송 중이지 않은가. 그래 그렇게 가는 거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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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잔 이펙트
페터 회 지음, 김진아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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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책 좀 읽는다 하는 사람들이라면 덴마크 출신 작가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이란 책을 알 것이다. 나 역시 그 책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소장만 하고 읽진 않아서 왜들 그렇게 절판 당시 타령을 해대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금은 재출간 돼서 언제라도 구해서 볼 수 있어서 그런지 복간된 후에 오히려 인기가 줄었다고 해야 할까. 아마 많은 이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알고 있거나 가지고 있지만 읽은 사람은 또 드문 그런 책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정해 본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수잔 이펙트>(2014)는 페터 회 작가의 최신작이자 8번째 작품이다.

 

어디선가 이 책을 미학적 스릴러라고 평하는 것을 보았는데 다 읽고 나니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리고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니라는 점도. 소설의 주인공 수잔 스벤센은 올해 44세 그리고 코펜하겐 대학에서 물리학 강사로 일하고 있는 중이다. 시작은 스벤센 가족이 빠진 곤경으로부터 시작한다. 21세기 가족 시스템의 은밀한 내부가 그렇듯, 스벤센 가족 역시 파국일보 직전이다. 전직 법무부 장관이라는 토르킬 하인이라는 이름의 사나이가 수잔에게 은밀한 제안을 한다. 물론 로버트 레드포드가 드미 무어에게 영화에서 한 것 같은 그런 제안은 아니고, 미래위원회라는 조직의 마지막 보고서를 찾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독자들은 알게 되겠지만, 수잔은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이라도 그녀 앞에 서면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인은 그녀의 그런 능력을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

 

미래위원회라는 조직이 있는지도 몰랐던 수잔과 가족들은 비밀을 파헤칠수록 자신들의 안전이 위협받는 사실과 한 때 전도유망한 청년들이 만든 미래위원회 위원들이 하나둘씩 죽음을 맞으면서 막장 드라마 같이 시작되었던 소설은 드디어 미학적 스릴러로 진화하기 시작한다. 게다가 수잔의 과거가 등장하면서 요즘 뜨거운 이슈 중의 하나인 페미니즘에 대한 문제제기도 빠뜨리지 않는다.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삶을 살아야 하는 여성이 아닌 인간으로서 존재의식의 발로라고 해야 할까. 단순히 재밌는 막장드라마를 기대했던 독자는 혼돈 속으로 빠져 들기 시작한다.

 

어느날 자신과 솔로 댄서로서 한 세대 앞서 페미니스트로서 삶을 산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고아원/소년원에서 세상을 배운 수잔 스벤센의 가공할 만한 과거에 대한 고백에 파티에 모인 이들의 입이 쩍 벌어진다. 어떤 이야기들은 정말 숨겨야만 하는 게 아니었던가. 아니면 그렇게 헤진 상처를 만천하에 공개함으로써 더 화끈한 힐링을 원했던 걸까. 소설 <수잔 이펙트>에서 다루는 파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결국 우여곡절 끝에 미래위원회가 준비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 수잔은 인류의 미래가 결국 파국이고, 소수의 엘리트들만이 생존을 위해 준비한 패러다이스로 자신도 초대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지막지한 핵군비 경쟁 혹은 환경파괴로 인류의 생존은 더 이상 안전을 담보할 수 없게 되었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인류의 미래를 선택받은 소수에게만 전하겠다는 행정편의적인 이기주의가 독자가 결말에서 만나게 되는 핵심이다. 소설에서 전개된 내용을 우리 사회에 전개하게 된다면, 종말론적 노아의 방주에 탑승하게 된 사람들은 누구일까? 그다지 쓸모가 없어 보이는 정치인들? 막대한 금권을 자랑하는 재벌가 사람들? 인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할 환경전문가 혹은 농업생산과 에너지생산을 담당할 기술자들? 문득 우리 사회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협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수잔 이펙트>를 읽으면서 새삼 깨닫게 됐다.

 

질문은 다시 원점으로 회귀한다. 그렇다면 다양한 분야에서 인정받은 소수를 제외한 그야말로 꼬리칸에 탑승한 보통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너무 뻔할 걸 물어서 식상한가.

 

전반적으로 봤을 때, 소설은 만족할 만한 수준이었지만 문제는 공간적 배경이 되는 덴마크라는 나라였다. 현재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이나 중국 혹은 독일 같은 나라라면 또 모르겠지만 꼴랑 인구 560만 명 정도의 나라에서 이런 스케일의 미래비전을 준비하다니 놀랄 수밖에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하도 페터 회 작가가 닐스 보어 연구소 타령을 해대서 위키피디아로 닐스 보어에 대해 조사해 보기도 했다. 또 소설을 읽으면서 한편으로 우리보다 GDP가 거의 두 배나 되는 복지선진국도 역시나 이런저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여담이긴 하지만 최근에 재밌게 본 드라마 <김과장>에서 주인공 김과장이 삥땅을 쳐서 모은 돈으로 이민을 가려던 나라가 덴마크였다는 점이 새삼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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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
루스 호건 지음, 김지원 옮김 / 레드박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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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호건이라는 처음 들어 보는 영국 베드포드 출신의 작가의 책 <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를 읽었다. 인터넷으로 작가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검색해 봤지만 그다지 쓸모 있는 정보들은 구할 수가 없었다. 그녀의 대략적인 나이도, 다른 작품에 대한 정보도 전혀 없었다. 책 표지에 나와 있는 대로 대학에서 영문학과 희곡을 전공했고 시청 공무원 생활도 좀 하다가 5년 전에 암 진단을 받아 애니 레녹스 스타일의 헤어를 하고 있다는 점 정도. 책을 다 읽고 나니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동했지만 프라이버시 이슈 때문인지 암튼 그 정도였다.

 

소설 <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고질적인 까치라고 스스로 명명한 그녀의 특징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싶다. 우선 은둔작가 앤서니 퍼듀와 그의 충실한 비서로 활동하게 되는 로라가 등장한다. 앤서니는 아주 오래 전 정말 사랑하는 테레즈라는 아가씨를 비극적으로 잃은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비밀을 하나 가지고 있는데, 잡동사니 분실물로 가득찬 동물원 같은 유실물들을 보관하고 있다. 자신의 생의 끝이 가까워 왔음을 짐작한 성자 앤서니는 남편 빈스와의 불행했던 결혼생활을 마감하고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는 로라에게 평생 돈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을 만한 유산과 자신이 그동안 모은 유실물들을 주인들에게 찾아 주라는, 그리고 부서진 심장을 고쳐 주라는 부탁을 남겼던가.

 

가정부 같은 존재에게 자신의 막대한 유산을 남긴 스캔들이야말로 동네 호사가 아주머니들의 입담에 오르기 좋을 법한 그런 소재가 아니었던가. 뒤에서 자신의 험담을 해대는 그들에게 쑥맥 같은 로라가 던진 한 방은 이 소설에서 가장 통쾌하고 유쾌한 장면 중의 하나였다. 로라의 모험에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놀라운 능력을 가진 이웃집 소녀 선샤인과 정원사 프레디까지 합류해서 다채로운 이야기을 이끌어 낸다.

 

또 하나의 이야기에는 유니스와 바머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출판업자 바머는 게이다. 로라에 버금갈 정도로 성실하고 사람 좋은 유니스는 게이 고용주와 진실한 우정을 쌓아 나간다. 그리고 보니 소설 <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에는 일정한 분량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지닌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나서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앞서 언급한 로라는 너무 어린 나이에 등장해서 자신을 유혹한 빈스를 백마탄 왕자님이라고 생각했고, 세상 경험 없는 유니스 역시 마찬가지다. 바머의 여동생 포샤 역시 능력자 오빠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전을 필사하다가 결국 포스트모던한 스타일의 소설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도 한다. 물론 소설에서 긍정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안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다운증후군 소녀 선샤인도 예외는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현자의 말을 누가 듣던가? 유령 같은 존재 테레즈의 심술에 시달리던 로라에게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역할 역시 선샤인이다. 이런 모든 것들을 성사 앤서니는 이미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렇다면 루스 호건 작가의 플롯은 거의 완벽하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소설의 말미에 정교하게 준비되어 있다. 사실 소공녀 같은 스타일의 초반 전개가 몰입에 방해가 된 것도 사실이다. 로라와 프레디의 로맨틱 핑퐁게임 역시 마찬가지고. 유령 같은 존재로 변신한 테레즈의 방해도 이걸 마술적 리얼리즘의 현현으로 받아 들여야 하나 싶기도 했다. 성자 앤서니가 수집한 유실물들을 정리해서 사람들에게 알리는 방법으로 인터넷 웹사이트를 선택한 것도 어쩌면 진부하다고나 할까. 그렇게 최첨단 기술을 도입할 거라면 차라리 요즘 사람들에게 대유행인 인스타그램을 등장시키는 건 어땠을까. 서로 엇갈려 보이는 이야기를 한 접점으로 모이게 유도해서 대미를 장식하는 루스 호건 작가의 기술은 정말 탁월했노라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가는 거지 뭐.

 

어쩌면 가슴 훈훈한 베드타임 스토리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의 다른 작품에 대한 정보를 좀 얻어 보고 싶었는데 그럴 수 없으니 온전하게 <잃어버린 것들의 수집가>로만 판단할 수밖에. 다소 신파가 섞여 있긴 하지만 완독하고 나면 후회는 없을 것 같다. 초반의 어수선한 분위기는 감안해서 읽으면 도움이 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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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 전에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로 절멸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증언문학의 대가 프리모 레비의 책을 처음으로 읽었다. 오늘 이야기할 레비의 유이한 소설 <지금이 아니면 언제?>를 7년 전에 샀지만, 지금까지 소재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작년에 다시 레비를 읽으면서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책을 읽으면서 세상에, 용비어천가니 하는 기가 막힌 번역과 오탈자 때문에 제발 돌베개에서 이 책을 다시 번역해서 세상에 보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는데 레비 30주기를 맞아 돌베개에서 바람대로 책이 출간되었다고 하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같은 절멸수용소 생존자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은 엘리 위젤이 시오니스트로서 걷고 있는 길과는 다른 방법으로 세상과 화해한 화학자이자 문학가였던 레비가 우울증 때문에 67세의 나이로 토리노에서 세상을 떠난지 30년이나 되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홀로코스트를 다룬 문학이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어떤 이들은 홀로코스트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는 강변을 늘어놓고 있다. 제대로 된 역사청산 작업과 진정한 의미에서의 화해가 얼마나 지난하고 어려운 사회적 과제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무엇보다 작년에 오탈자 때문에 적잖은 짜증을 내면서 꾸역꾸역 읽어냈던 유대인 빨치산 유격대의 활약을 그린 <지금이 아니면 언제?>가 재출간된 것을 열렬하게 환영한다. 예전에 쓴 리뷰를 읽어 보니, 너무 줄거리 파악에만 치중한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시간을 내서 한 번 새로운 버전을 구해서 재독해 보는 것도 레비 30주기의 의미 있는 일이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은 레비가 죽기 5년 전인 1982년에 발표된 그의 두 번째 소설이다. 첫 번째 작품은 1978년 스트레가상에 빛나는 <몽키스패너>라고 한다. 이 책도 조만간 구해서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혹자들은 나치 치하에서 왜 유대인들이 무력저항을 하지 않았느냐는 그런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는데, 어쩌면 레비는 그런 유대인들의 소극적 저항에 대한 반대급부에서 지인이 실제로 들은 유대인 빨치산의 무장저항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었던 전쟁 중에는 몰랐지만, 스탈린의 적군이 결국 나치를 패망시킨 뒤에는 유대인들이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필연적으로 경계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아무리 나치가 연합군에게 패퇴하고 있는 중이었다고 하지만, 파리해방전이나 전쟁 말기에 바르샤바 봉기에서 그들이 보여준 실력을 보면 실제로 있었던 유대인 빨치산 활동이 과연 얼마나 전쟁의 대세에 영향을 미쳤을 지 회의적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좋은 세상이다. 이제는 인터넷 억세스만 있다면 유투브 동영상을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는 그런 세상이다. 문득 유투브로 프리모 레비의 동영상을 찾아 봤고, 1982년엔가 프리모 레비가 직접 출연한 <아우슈비츠로의 귀환(Back to Auschwitz)>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볼 수가 있었다. 조국 이탈리아에서 기차를 타고 폴란드 땅인 오시비엥침/아우슈비츠로 가면서 그 시절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내레이터와 나누는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자신은 화학자로 냄새로 주변환경을 분석할 수 있다고 했던가. 이탈리아에서는 맡을 수 없었던 보리 냄새와 불타는 석탄 냄새를 잊을 수 없노라고 말했다. 나치 치하의 폴란드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던지던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절대 호의적이지 않은 욕설에 가까운 말도 들었다고 한다. 고급 호텔에 편안하게 기차여행을 하던 현재와 달리 40년 전에는 가축들이나 싣는 그런 화차에 실려 라거(수용소)로 향했다. 포졸리 역에서 기차에 탄 그들은 아우슈비츠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으며, 처음에는 보헤미아에 있는 아우스터리츠로 가는 줄 알았다고 한다. 어떤 잔혹한 운명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 채, 점령군들이 가축 내몰듯 화차에 실어 보낸 것이다. 그는 아우슈비츠에 밤에 도착했다고 진술하는데, 끔찍한 5일 간의 여행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기차에서 죽었고, 그 어느 누구도 아무 것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하긴 곧 죽을 존재들에게 그런 설명이 왜 필요했겠는가. 이탈리아 출신 유대인들은 식량이나 물을 준비하지 못했고, 아기(밤비노)는 먹을 것이 없어 젖이 떨어진 어머니에게 아침부터 밤까지 보채면서 울었단다. 그리고 함께 이송된 650명 중에 4/5가 바로 다음날 가스처형실에서 죽었다고 그는 증언한다.

 

전쟁이 막바지로 치닫는 중이던 1944년 2월, 패색이 짙어가던 가운데 연합군을 상대하기 위해 총동원 시스템에 돌입했던 독일 3제국은 만성적 노동부족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이에 유대인 라거의 공짜 노동력은 그들에게 소중한 자원이었다. 유대인 이송열차가 도착하면, 나치 의사들이 수감자들의 건강상태와 교육 정도를 파악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필요한 인력 자원들을 분류해냈다. 파두아에서 온 레비의 친구는 이미 모든 희망을 포기한 듯, 살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고 두 번 다시 그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화학자였던 레비는 전문가들을 필요로 하는 이게파르벤 트러스트 덕분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라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충분한 칼로리였는데, 수용소에서 공급하는 1,600~1,700칼로리로는 폴란드의 강추위와 고된 노동을 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레비는 말한다. 수용소 음식이 역겨웠다는 다른 이들의 증언과는 달리 그 정도는 아니었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어쩌면 나라면 절대 가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죽음의 수용소를 다시 찾은 레비는 강철 멘탈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던가? 자살로 마감한 그의 삶을 되돌아 볼 때, 그지없이 허망해 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어떻게 책 이야기로 시작했는데, 유투브에 올라와 있는 레비의 다큐멘터리로 이야기가 옮겨갔는지 모르겠다. 자 다음으로 이번에 <지금이 아니면 언제?>와 짝으로 출간된 <릴리트> 이야기를 넘어가 보자. 오늘 수중에 넣은 <릴리트>에는 모두 36편의 산문에 가까운 짧은 소설들로 구성되어 있다. 레비의 소설집 <릴리트>는 <가까운 과거>, <가까운 미래> 그리고 <현재>로 구성되어 있는데 1981년에 발표된 <Lilìt e altri racconti>를 바탕으로 해서 2부와 3부가 추가된 구성이다. 아마존 서지목록을 검색해 보니 영어판으로는 <Moments of Reprieve>라고 소개가 되었는데, 모두 15편의 짧은 소설이 담겨 있었다.

 

급한 마음에 처음의 세 꼭지를 읽었는데, 영문판에서는 <라포포트의 유언>으로 된 제목이 국내판에서는 <카파네우스>로 되어 있었다. 나머지는 거의 영문판 제목과 비슷한 것 같다. 제목을 대조해 보니 영문판 중에 11편이 <가까운 과거>에 담겨 있고, 나머지 4편은 제외된 것 같다.

 

다른 레비의 작품들이 긴 호흡으로 간다면, 선과 악을 상징하는 이미지로서 <릴리트>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상대적으로 부담 없이 레비의 증언문학에 입문하는 이들에게 아주 적합하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고한 작가의 작품이라 아껴 읽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어디 세상사가 그렇던가. 내쳐 달려서 단박에 모두 읽어 버릴 지도 모르겠다. 요즘 독서 슬럼프에 빠졌었는데, 레비의 책으로 빠져 나올 수 있게 된다면 그 또한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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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7-04-27 1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디나이얼,이라는 영화를 보았어요. 홀로코스트를 완전 부정하는 사람과 그걸 증명하려는 측의 법정 싸움이 지난하게 이어지고 결국 승리는 하지만 부인하는 측은 또다른 주장을 끊임없이 펴는 것으로 맺더군요.

레삭매냐 2017-04-27 22:56   좋아요 0 | URL
세월호의 경우처럼 진실을 왜곡하고 호도
하려는 세력은 어디에나 있는 모양입니다.

영화 트레일러를 보았는데, 홀로코스트가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를 가져
오라는 장면을 봤습니다. 그 장면은 위안부
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의 그것과
공명하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영화 <디나이얼> 꼭 보겠습니다.

cyrus 2017-04-27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돌베개! 절판된 책을 다시 펴낼 줄 알았어요. ^^

레삭매냐 2017-04-27 23:48   좋아요 0 | URL
거의 귀신 같은 예지력이셨습니다 !
드디어 다시 나왔네요.

전 우선 <릴리트>부터 사서 보고 있는데
기대만큼 재밌네요.
 
운명과 분노
로런 그로프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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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015년 최고의 책으로 추천했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미국 출신 로런 그로프의 세 번째 작품 <운명과 분노>는 확실히 재밌는 책이었다. 인류의 삶에서 배제할 수 없는 결혼과 사랑이라는 테마로 이렇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빚어낼 수 있다는 점이 정말 놀라웠다. 먼저 소설의 남자 주인공 랜슬럿 ‘로토’ 새터화이트의 이야기에 해당하는 <운명> 그리고 더 놀라운 삶의 비밀을 감춘 마틸드 ‘오렐리’ 요더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분노>를 읽어 보니 여러 매체에서 이구동성으로 빼어난 작품이라는 의견에 공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선 <운명>부터 살펴 보자. 플로리다 출신 로토 새터화이트는 그야말로 아름답고 순수한 영혼이다. 물론 그를 그렇게 만든 배경에는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유산 그리고 사랑하는 아들을 세상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어공주 출신 엄마 앤트워넷이 있다. 앞으로 수십년간 우정을 이어나갈 절친 콜리의 쌍둥이 그웨니와 관계하면서 남자가 된 로토는 불의의 사고로 따뜻한 집에서 쫓겨나 북부의 사립학교에서 성장하면서 특유의 매력을 발휘해서 모두에게 사랑받는 남자가 된다. 학교에서 엽색가를 지칭하는 ‘호그마이스터’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매력남이었던 로토는 22살 때 운명의 여자 마틸드 요더를 만나면서 180도 다른 남자로 변신하기에 이른다.

 

아, 그리고 보니 소설의 시작은 이제 막 결혼한 로토, 마틸드 커플이 바닷가에서 사랑을 나누는 장면으로 시작되었던가. 그리고 보니 결혼한 부부의 생활에 방점을 찍으면서 호그마이스터라는 별명이 무색할 정도로 섹스 장면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도 눈길을 끈다. 로토와 마틸드는 그야말로 섹스가 없다면 살 수 없는 그런 사람들처럼 장소와 때를 가리지 않고 사랑에 전념하는 그런 커플이었다. 문제는 두 사람의 결혼을 인정하지 않는 매정한 엄마 앤트워넷의 절연선언이었다. 며느리의 과거를 알게 된 앤트워넷은 경제적 지원을 끊고, 무명의 희곡 배우를 전전하던 로토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성공가도를 달리지 못하고, 좌절의 시기를 경험한다. 우연한 기회에 희곡 작가로서 재능을 발견한 로토 마틸드 부부에게 새로운 전기가 마련된다. 그런 저런 삶을 이어가던 가던 어느 날, 로토는 마틸드의 과거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고 아름답고 순수했던 청년 로토에서 24년간의 결혼생활을 겪은 중년남자의 운명은 파국으로 치닫는다.

 

사실 ‘사자’ 같이 희곡 작가로서 성공을 질주하던 남자 로토의 추락은 부부가 같이 떠난 어느 대담에서부터 잉태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헌신적으로 자신을 희생해 가며 남편을 보필한 아내 마틸드에 대한 로토의 사려깊지 못한 발언 때문에 죽을 고생을 하며 그들이 묵던 호텔로 돌아온 장면에 대한 묘사는 비록 사랑하는 사이지만 언제고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갈 지도 모를 그런 갈등의 파고가 수면 아래 잠자고 있다는 그런 경고처럼 들리기도 했다.

 

로토의 죽음 다음 시간을 다루고 있는 ‘드래곤 와이프’ 마틸드의 <분노> 편에서는 로토가 정작 아내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게 전무했다는 점을 전제하고 시작한다. 고향 프랑스에서 끔찍한 사고로 부모에게 버림 받은 오렐리가 파리에서 매춘부 할머니와 보낸 시간 그리고 다시 할머니의 죽음 후에 미국 필라델피아에 사는 범죄자로 추정되는 삼촌에게 보내져 미국 사람으로 거듭나고, 대학진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에어리얼 잉글리시라는 미술품 거래상과 장장 4년에 걸친 ‘비즈니스’ 관계를 유지했다는 아무도 모르는 그런 비밀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소설에 대한 나의 흥미가 비로소 안착하기에 이르렀다.

 

어쩌면 로런 그로프 작가는 이렇게 흥미진진한 후식을 준비하기 위해 어쩌면 별다를 것 없는 희곡 작가의 삶을 전면에 배치했던 게 아닐까. 어머니의 후광으로 세상 어려움 없이 살아온 남자 로토의 이야기에 비해, 마틸드의 파란만장하고 고독할 수밖에 없었던 삶의 전개는 상대적으로 스펙터클하지 않은가 말이다. 책날개에 적힌 대로 작가가 준비한 ‘폭발적인 서사’가 독자의 시선을 사로 잡는데 걸리는 시간은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가 상대적으로 너무나 강렬했다. 물론 마틸드가 감춰온 삶의 진실들이 한 꺼풀씩 베일을 벗고 독자 앞에 등장할 때마나 예의 폭발적 서사의 힘을 느낄 수가 있었다. 독자로 하여금 끝까지 긴장을 놓지 못하게 만드는 정교한 스토리텔링은 또 어떤가.

 

마틸드와 앤트워넷이 로토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암투는 우리네 흔한 막장드라마에 등장하는 고부갈등과는 다른 차원의 서사를 선사하기도 한다. 마틸드의 과거를 아는 앤트워넷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해서 마틸드를 압박하고, 어려서부터 가족의 진정한 사랑이라곤 받지 못한 쌈닭 마틸드 역시 시어머니와의 대결을 마다하지 않는다. 아들에 대한 앤트워넷의 사랑을 잘 아는 마틸드는 갖은 핑계를 대면서, 모자의 상봉을 저지한다. 시어머니 역시 아들에게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의 실체를 까발리기 위해 갖은 뒷조사를 마다하지 않지만 어쨌든 최후의 승리자는 불굴의 투사 드래곤 와이프였다. 작가가 준비한 두 가지 비장의 무기가 과연 마틸드가 승자였는지 되묻게 만들긴 했지만 말이다.

 

같은 남자로서 셰익스피어와 세상의 모든 여자들 중에서 마틸드를 마지막까지 사랑했던 남자 로토가 불쌍했다. 아름답고 순수했던 로토는 15년 동안 자신의 작품에 대해 혹평을 주저하지 않았던 평론가 피비 델마의 냉혹한 비평에 괴로워했다. 그리고 자식이 없음을 한탄했지만, 사랑하는 아내 마틸드가 낙태를 하고 불임시술을 받았다는 사실은 몰랐다. 그것 뿐만 아니라 자신이 썼다고 생각하는 희곡 작품들 역시 사실은 아내 마틸드와의 공동 작업의 결실이었다는 것조차 모르는 그런 철부지 남편이 아니었던가. 역설적으로 마틸드 역시 로토가 언제라도 자신을 떠날지 모른다는 그런 불안감 속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 피장파장이라고 해야 할까.

 

로런 그로프의 걸작 <운명과 분노>는 우리가 완벽하게 생각하고 있는 결혼에 대해 그리고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해주는 그런 작품이었다. 물론 빼어난 재능을 가진 새로운 작가와 만나는 재미는 덤으로 따라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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