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적 킬러의 고백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정창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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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루이스 세풀베다의 <감상적 킬러의 고백>을 다시 사서 읽었다. 아무리 중고책이라고 하지만 커피 한 잔 값보다 못하다니. 물론 가격으로 책의 가치를 매길 순 없겠지만 말이다. 세풀베다 작가의 팬이 되게 된 계기를 제공했던 책이어서 그런지 무척이 애정이 갔다. 물론 지금은 절판돼서 구하고 싶어도 중고서점 말고도 구할 수가 없다. 8년 전에도 그랬던 것 같다. 그 때 산 책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고, 이번에 다시 사서 읽게 됐다.

 

<감상적 킬러의 고백>은 동명의 제목과 <악어>(야카레)라는 두 편의 중편 소설로 구성되어 있다. 오래 전에 읽었을 적에는 분면 전자가 더 인상적이었던 것 같은데 이번에 다시 읽을 적에는 <악어>에 더 호감이 갔다. 어쨌든 순서상 전자부터 이야기를 해보자. 금년 42세의 업계의 솜씨 좋은 킬러는 맡은 임무를 성실하게 처리하는 실력으로 세금도 떼지 않는 고소득자 대열에서 아시아와 아메리카 그리고 유럽을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오늘도 상위 1%에 육박하는 고소득을 올리고 있다. 난 왜 다른 것보다 가장 우선적으로 세금을 내지 않는다는 킬러의 말에 그렇게 공감이 갔던 걸까.

 

어쨌든 직업상 한 곳에 뿌리를 내릴 수 없는 남자는 24살 먹은 자신의 “계집애”에게 헌신적이다. 성적이 매력이 철철 넘치는 그녀를 위해 부르주아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고급 아파트를 구입해서 크고 작은 파티를 열었다나. 모든 게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던 중년 킬러의 앞길에 장애가 하나 등장했다. 그것은 바로 새로 받은 미션에 등장하는 표적이었다. 무슨 NGO단체에서 일하는 표적을 제거하는 일거리였다. 동물적 감각을 지닌 킬러는 첫인상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결국 이 일에 얽혀 그만 조기은퇴를 당할 신세가 되었다. 자신의 계집애는 결국 바람이 나고 말았고, 일거리는 꼬이고 심지어 표적에게 도움을 받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니. 마드리드에서 이스탄불로 남아가 일처리에 나서지만 미합중국 마약 단속반(DEA)까지 등장하는 원하지 않는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파리의 아지트에 도착했지만 자신의 계집애가 여전히 멕시코에서 놈팡이와 놀아나고 있다는 사실에 킬러는 분노한다. 자신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룻밤의 쾌락을 위해 창녀들과 놀아나면서 젊은 아가씨의 바람에 이렇게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장면이 참으로 우습기까지 했다.

 

결국 멕시코시티에 표적이었던 NGO 인사를 찾아내 마지막 임무를 완수하고 은퇴하는데 성공하는 킬러. 더 놀라운 엔딩을 위해 세풀베다 작가가 준비한 파이널컷은 확실히 대가의 솜씨다웠다.

 

<감상적 킬러의 고백>이 1940년대 미국 누아르 영화적 스타일이라고 한다면, <악어>(야카레)는 작가의 친환경적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낸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자리 잡은 비토리오 피혁 회사와 아마존 강 유역에 사는 아나레 족이 어떻게 연관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신자유주의에 입각한 세계화가 더 이상 저지할 수 없을 정도로 일상화된 마당에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서로 절실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태고이래 아나레 족 삶의 기반이었던 야카레(악어)가 서구 자본주의자들에게 큰 돈벌이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세계적 희귀종으로 보호되어야 할 인류 공동의 유산인 아나레 족의 야카레에 눈독을 들인 비토리오 피혁 회사는 거의 공짜로 원자재인 악어가죽을 밀수한 다음, 높은 이윤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궁리만 할 따름이다. 야카레가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아나레 족의 생존 따위는 관심도 없고, 오히려 자신의 사업에 방해가 되는 이들을 밀렵꾼을 동원해서 가차 없이 몰살시킬 정도니 말이다.

 

칠레 경찰 출신 다니 콘트레라스는 스위스의 헬베티카 보험회사 조사원으로 밀라노에 파견되어 비토리오 브루니의 죽음이 그전에 있었던 다른 두 명의 죽음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 회사가 아마존 정글에서 저지르는 추악한 범죄에 가까운 사업을 막기 위해 아나레 인디오 전사들을 동원해서 독침으로 근육을 마비시키는 방법으로 암살에 나섰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거악을 일소하기 위해 공적인 영역에서의 처벌 대신 사적 처벌이라는 신속한 방법을 사용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 대상이 자신의 아버지이기도 했다는 점에서 돈 비토리오의 딸 오르넬라로 대변되는 가진 부르주아 계급의 한계성을 엿볼 수도 있었다. 끝까지 사적 응징의 도구로 아나레 인디오 사냥꾼들을 이용하고, 그들의 안위 따위에는 관심도 없는 서구인들, 다른 표현으로는 헤아슈마레(물을 증오하는 사람들)가 가진 이중성을 세풀베다는 가감 없이 고발한다.

 

소설에서 힘없는 아나레 부족에 대한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져온 병폐의 칼날이 언제라도 우리를 향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세풀베다 작가가 구사하는 문학적 경고로도 해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경 보호나 종 보전 같은 이슈들이 단순히 우리가 살고 있는 바탕이 되는 지구별을 위한 것이라는 것은 물론이고, 더 나아가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외면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차별적 난개발로 수많은 동식물들이 멸종 위기로 내몰리고, 종 다양성에도 치명적인 위협이라는 환경보호주의자들의 경고가 있었지만 삶의 편리로 포장된 우리 인류의 이기주의에 묻히고 있는 현실이 암담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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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20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린책들 출판사는 인지도가 낮지만 문학적 우수성이 높은 작가들의 작품을 잘 소개해요. 그게 장점이자 단점입니다. 단점은 그런 작가의 작품들이 소수의 마니아층 독자들만 읽고, 책이 잘 팔리지 않아서 품절, 절판되는 경우가 많아요.

레삭매냐 2017-04-21 10:06   좋아요 0 | URL
열린책들 정도면 메이저급이 아닌가요? ㅋㅋ

출판사가 전반적으로 번역서 위주로 가는
느낌입니다.

말씀 하신 대로 다른 출판사에 비해 품절/절판
비율이 높긴 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잘 팔
리지 않으면 바로 절판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졌도다
다빙 지음, 최인애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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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의 끝자락이었던 2월에는 중국 작가들의 책에 꽂혀 한동아 정신없이 그들의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주로 옌롄커와 류전윈 작가의 책들이었는데 문혁 시절을 직접 경험한 이들의 어두운 중국사를 엿볼 수가 있었다. 이번에 읽은 자칭 ‘야생 작가’이자 중국의 신세대격인 바링허우 세대 다빙 작가의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졌도다>는 기존 중국 작가들이 구사하는 엄숙한 시대상을 다룬 소설들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선보인다. 기성 작가들이 고난으로 가득했던 시절에 대한 회상을 문제의식으로 삼았다면, 산둥 미술학원 출신으로 리장 주점의 주인장이자 배낭여행가라는 다양한 타이틀을 가진 바링허우 세대 다빙 작가는 실화소설이라는 장르로 독자의 마음을 폭격한다.

 

모두 다섯 편의 실화소설이 담긴 소설집 가운데 역시 타이틀로 선정된 <강호의 도가 땅에 떨어졌도다>부터 읽었다. 제목만 봐서는 무협지 수준의 일대 활극이 펼쳐지지 않을까 하는 황당한 기대감부터 들었다. 하지만 내용은 다빙 작가가 서슴지 않고 형제라고 부를 수 있는 희소라는 남자는 게이다. 자신이 무명이었던 시절부터 돌봐준 상남자 스타일의 희소의 커미아웃에 다빙은 그만 망연자실하고 만다. 희소가 게이라니. 그의 도움을 받아 문인의 길을 걷게 된 다빙이 인세를 받아 절친의 털어 놓을 수 없는 비밀을 알게 된 순간, 역설적이게도 강호의 도가 떨어졌노라고 작가는 고백한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구하기 위해서 두 번씩이나 결혼하면서도, 정작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는 결혼할 수 없는 운명에 처한 형제를 위해 싸아니 다빙은 결혼식 사회를 봐주겠노라고 약속했다지. 소설을 쓰기 위해 강호를 주유하면서 정작 자신을 형제라고 생각하는 친구의 아픔을 헤아리지 못한 것에 대한 회의와 반성 등이 이어진다.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형제를 돕는 일을 나중으로 미루는 게 말이 되는가. 그래서 그는 따뜻한 닭고기 수프보다 쓰디쓴 탕국이야말로 삶의 본질이라고 했던가.

 

중국 인민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시골 출신으로 시인이 되겠다는 라오셰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유랑가수로 그 넓디넓은 대륙이라는 이름의 강호를 누비며 자신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이들을 돕는 남자의 이야기에 그만 뻑이 가버렸다. 지진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이들을 위해 자신이 가진 것을 남김없이 내어주는 이타정신으로 똘똘 뭉친 이 남자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공산주의 사회에 이식된 천민자본주의로 하루가 다르게 빈부의 격차가 심화되어가고 있는 마당에 여전히 언젠가 시집을 발표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유랑하는 싸나이 라오셰의 이야기 또한 비범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실화소설이라고 해도 감동이고, 군바리라는 동명의 이름을 다빙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해도 감동은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오, 이 작가 제법 글 좀 쓸 줄 아는 모양인데.

 

개인적으로 이 소설집에서 최고의 이야기는 <은방울>이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모처에서 은세공 장인의 도제가 되어 은세공품을 만들던 시절의 이야기였던가. 잘 나가는 산둥 미술학원 출신의 미술지망생이 어찌 멋진 은세공품 하나 만들지 못할 것인가 하는 자만심에 도전한 은방울 만들기는 처참한 결말을 불러온다. 싸부님은 제대로 가르쳐 주려고 하시지 않고, 한 번 보고 만들라고 하셨던가. 그런데 진짜 이야기는 같은 싸부님 휘하에 있던 사저의 이야기였다. 남성판 피그말리온이라고나 할까. 어려서부터 짝사랑하던 남자와 같은 학교에 진학하고, 같은 직장에 다니면서 결국 바보 온달이를 장군 온달이로 만드는데 성공하고 직장에서 찌질이 남친을 보필해서 결국 사랑에 빠지게 된 사저의 첫사랑은 비극으로 귀결된다. 그는 항성이었고, 그녀는 그의 주변을 도는 이름 없는 소행성이라고 했던가. <은방울>은 누가 봐도 뻔한 신파조의 사랑과 배신의 드라마지만, 그만큼 재밌었고 결말에서는 찡한 감동이 전해져왔다. 다빙이 만든 은방울을 걸고 있던 소년과 만나는 씬은 이 소설집에서 최고의 장면이었다.

 

<은방울>에서 정점을 찍어서일까? 나머지 이야기들은 상대적으로 흥미가 덜했다. 34세의 젊은 나이에 동굴잠수를 하다가 죽은 생명의 은인이었던 다이버에 대한 추모, 그래서 삶에서 모험을 즐기는 건 좋지만 무엇보다 안전에 제일 중요하다는 강조하는 지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평범한 건축가로서의 삶을 거부하고 멀리 뉴질랜드로 워홀러가 되어 떠나 마침내 자신의 길을 찾게 된 S씨 이야기. 문득 퀸스타운이라는 곳에서 거리예술가로 거듭난 S씨가 어떤 나라 말로 노래를 불렀는지 궁금해졌다. 예전에 보스턴에서 일본말로 노래를 부르던 일본 아가씨와 밴드에게 영어로 노래를 부르라고 핀잔을 주던 이들의 모습이 떠올라서 말이다. 어쨌든 정해진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원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하지만 나도 그럴 수 있을 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가 원하는 삶은 도대체 무엇일까?

 

다빙 작가의 이야기들을 읽으면서 참으로 별별 이야기가 많은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도 그런 이야기 사냥에 나설 다빙과 수많은 청춘들의 삶의 이야기에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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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질문의 책 12
자크 파월 지음, 윤태준 옮김 / 오월의봄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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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언컨대 이번에 읽은 자크 파월의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는 올해 최고의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 진작에 이런 책이 출간되지 않았는지 아쉬울 따름이다. 책이 출간되기 전에 프레시안에 연재되던 기사를 통해 접했을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 수준의 역작일 줄은 미처 몰랐다. 전쟁국가 미국의 세기를 열었던 2차 세계대전의 실체를 수정주의 역사관에 입각해서 파헤친 자크 파월 작가에게 갈채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다.

 

전쟁사에 관심이 많아서 타임라이프에서 나온 방대한 분량의 <World War II> 시리즈를 헌책방에서 사 모으면서 전쟁의 세부적인 면에 관심을 가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거시적인 측면에서 독일 나치 파시즘과 일본 군국주의에 대항해서 자유와 정의를 위한 전쟁이었다는 미국의 참전이 사실은 미국 사회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지배계급과 파워엘리트 계급의 이익을 위한 것이었다는 분석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 이면에는 독일 파시스트들과 전쟁에 돌입하기 전까지 미국 재계와 파워엘리트들은 동방의 대적 스탈린의 소비에트야말로 지구상에서 박멸해야 하는 숙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자본주의 시스템과 자유무역의 세계화라는 테제를 통해 ‘더러운 30년대’로부터 탈출을 도모했던 미국 파워엘리트들에게 서유럽에서 벌어진 전격전 그리고 소비에트를 상대로 한 나치 독일의 독소전은 전쟁물자 수요를 충족시켜줄 절호의 기회였던 것이다. 자신들이 직접 전쟁에 참가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파시즘에 경도되어 있던 미국의 파워엘리트들은 엉뚱하게도 태평양에서 경쟁국이던 일본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던 중국 철군과 전쟁수행에 꼭 필요한 전략물자인 석유금수 조치로 결국 진주만 기습을 실행하게 되었고, 자신들이 원하던 태평양에서의 패권수립을 위한 전쟁을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유럽전쟁은 나치 독일과 공산주의 소비에트가 서로 물고 뜯으면서 자신들이 생산하는 전쟁물자들을 캐시앤캐리 그리고 렌드리스라 명명된 방식으로 소진하는 것이야말로 미국 재계와 파워엘리트들이 원하는 최상의 조건이었다고 자크 파월은 자신의 저서에서 밝히고 있다.

 

다른 전쟁물자도 독일에 진출한 다양한 미국 기업들의 자회사들의 자발적 협력으로 양산하기에 이르렀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중요했던 석유 제품들로 구성된 연료를 공급했던 록펠러 그룹 스탠더드 오일의 활약이야말로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전쟁이 발발하기 전 스페인을 장악한 또다른 파시스트 프랑코와 프랑스 비시 정부를 통해 유입된 석유 연료와 석탄에서 추출할 수 있는 합성연료 기술이야말로 나치 독일이 전격전으로 폴란드와 서유럽을 단기간에 석권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다.

 

한편, 스탈린의 소비에트는 1941년 6월 22일 독일 민족의 레벤스라움을 앞세운 나치가 동방의 숙적을 상대로 전격전을 개시하면서 수도 모스크바 함락을 가시화되기도 했지만 결국 12월 5일 주코프의 대대적인 반격으로 파죽지세의 독일군을 저지한 사건이야말로 세계대전의 극적인 반환점이었다고 자크 파월은 주장한다. 보통 1942년 여름의 청색작전이라 불린 독일군의 하계공세를 스탈린그라드에서 막아낸 것이 전세의 승부를 갈랐다고 하지만, 실제는 1941년 12월의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히틀러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분쇄한 것이 전쟁의 흐름에 결정적이었다는 것이다. 독일이 조기에 전쟁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사라지면서 히틀러 군대의 패배는 기정사실화된 것이다. 아울러 스탈린은 300만에 달하는 독일 정예군을 상대하면서 미영 동맹군에게 조속한 시일 내에 서유럽에서 제2전선을 열어 달라는 SOS를 끊임없이 보냈지만, 영국의 노회한 제국주의자 윈스턴 처칠은 차일피일 시간을 미루면서 전쟁의 대부분을 소비에트가 담당하게 내버려두었다. 마지못해 실행한 디에프 공략전의 실패는 서유럽 제2전선의 지연을 정당화하는 선전에 매우 주요했다. 당시 전사자의 대부분이 나다군이었다는 점도 눈여겨 볼만하다.

 

서방에서는 1944년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전개된 제2전선이 2차 세계대전 승리의 결정적 원인이라고 선전해 왔지만 그 시기에 이미 독일의 패전은 기정사실이었고 소비에트는 서유럽에서 지분 경쟁을 위해 상륙한 미영연합군의 의도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한 마디로 말해 다된 밥상에 숟가락을 얻겠다고 덤벼드는 서방 동맹군들의 모습을 경멸했을 지도 모르겠다. 미영 연합군은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교두보를 장악하고 서진을 개시했지만, 노련한 독일군의 매복전술에 걸려 진격이 지지부진 하던 가운데, 연합군 사령관 아이젠하워는 동맹국 소비에트에 어쩔 수 없이 SOS를 날린다. 무시무시한 바그라티온 작전을 개시한 붉은 군대는 서방으로 단숨에 600KM 이상 진격을 감행하면서, 히틀러의 본진인 베를린 함락을 목전에 두게 된다. 아마 이 즈음해서 마켓가든 작전이라는 무모한 작전으로 단박에 네덜란드를 해방시키고 라인강을 건너겠다는 서방 연합군의 시도는 독일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무산되고, 1944년 겨울에 폰 룬트슈테트가 전개한 벌지전투로 독일 본토 진공은 더욱 요원해졌다.

 

우여곡절 끝에 종전이 다가오면서 전후 세계질서 재편에 대한 경쟁이 대두되었다. 사실 스탈린의 소련이 유럽에서 전쟁의 대부분을 감당했기 때문에 뒤늦은 제2전선으로 전쟁에 개입한 미국과 영국은 스탈린에게 할 말이 없었다. 다양한 차원의 유화책으로 스탈린을 달래고, 심지어 나치 독일과 개별협상을 통해 반소비에트 십자군을 동원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까지 엿보이면서 서유럽 각국의 전후체제에 대한 설계가 시도되고 있었다. 스탈린은 가장 큰 희생을 치른 승전국으로서, 제정러시아 시대 폴란드에게 잃은 영토의 실지회복, 주변국가에 반소비에트 정권이 들어서는 것에 대한 반대 그리고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라는 과제에 집중하면서 나머지 부분들에 대해서는 충분히 양보할 의향을 보였다. 하지만 이탈리아를 해방시킨 미국과 영국이 해방 과정에서 반파시스트 활동을 보인 빨치산과 좌파 계열 게릴라들의 새로운 정부 참여를 원칙적으로 배제하고, 수구반동적인 바돌리오 원수 내각을 출범시키는 것을 보면서 스탈린은 자신들이 해방시킨 지역에는 자신들이 원하는 정치, 사회 그리고 경제 시스템을 이식한다는 전범을 따르게 된다. 그 결과 동유럽에 소련의 위성국가들이 줄지어 탄생하고, 이른바 철의 장막 탄생의 원인이 되었다.

 

한편, 1945년 2월 드레스덴 대폭격은 무서운 속도로 베를린을 향해 돌진해 오던 붉은 군대에 대한 경고장이었다. 도저히 붉은 군대의 서진을 따라 잡을 수 없었던 미영 연합군은 전략적으로 중요하지도 않았던 드레스덴을 표적으로 삼아 스탈린의 붉은 군대에게 신경질적인 경고를 보여 주었던 것이다. 무시무시한 공군을 동원한 전략폭격이 과연 붉은 군대에게 무슨 효과가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무고하게 죽은 20만 명에 달한다는 드레스덴의 시민들만 억울할 따름이다. 전략적 목표보다 정치적 의도에서 실시한 이 인간도살은 커트 보네거트의 그 유명한 소설 <제5도살장>에서도 다뤄진 바 있다. 루스벨트의 뒤를 이어 등장한 트루먼의 원자외교 역시 이런 정치적 목적에서 봐야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스탈린이 유럽에서 제2전선을 요청했자면, 태평양전쟁을 거의 홀로 치른 미국 역시 유럽에서 전쟁이 끝나는 대로 극동아시아에서 스탈린이 일본을 상대로 제2전선을 열어 줄 것을 수차례 요청했다. 1945년 여름 일본에서의 본토 결전을 앞두고 100만 명의 사상자가 예상된다는 전쟁성의 보고에 경악한 미국 전쟁지도부가 조속한 종전을 위해 원자폭탄의 사용을 결정했다는 것이 그동안 정설이었지만, 이 또한 스탈린에 대한 경고장이었다는 것이다. 정말 종전을 원했다면 히로시마나 나가사키 같은 이류도시보다 도쿄나 오사카 같은 대도시가 표적으로 더 합리적이지 않았을까. 자신들이 유럽에서 그랬던 것처럼, 스탈린이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는 게 싫었던 미국의 전쟁지도부들은 서둘러서 원폭에 나섰지만, 만주에서 붉은 군대가 이빨 빠진 호랑이 같았던 존재인 관동군을 격파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스탈린의 군대가 미국이 고군분투한 태평양전쟁 말기에 생색만 내고, 제정러시아 시대 잃었던 영토인 사할린과 쿠릴열도를 강탈해 갔다는 미국의 주장은 서유럽의 전후처리 과정을 볼 때, 그 어떤 일관성이나 합리성도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기존 역사학의 전통적인 해석에 과감하게 반기를 든 이 기념비적인 저작의 후반부는 독일 파시스트들과 결탁해서 거의 반역에 가까운 행위를 저지른 미국 기업들에 대한 신랄한 고발과 전쟁이 끝난 뒤에도 파워엘리트 계급의 이익을 위해 복지국가 대신 전쟁국가의 길을 선택한 역사적 사실에 방점을 찍고 있다. IBM의 독일 자회사 데마호그가 펀치카드 같은 신기술을 이용해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효율적인 방법으로 관리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포드의 자회사인 포드-베르케와 제네럴모터스의 자회사인 오펠이 미군과 싸울 나치 독일군을 실어 나를 수많은 수송용 트럭들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기존 주류 역사가들을 지금까지 외면해 왔다는 자크 파월의 주장이 과연 “좋은 전쟁”이라고 포장된 2차 세계대전의 추악한 진실에 조금 다가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다수 미국 기업들에게 자국의 병사들에게 치명적인 해가 될 수도 있는 전쟁물자 생산이라는 모럴 이슈(moral issue)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바로 이윤이었다. 그리고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가스실에서 살해하는데 사용한 치클론 B 독가스를 생산한 이게파르벤 관계자들에 대한 엄정한 대한 처벌이 이뤄졌는가? 치열하게 전쟁이 치러지는 와중에서도 독일내 미국 자회사들에 대한 피해는 경미했으며, 전쟁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생산에 돌입할 수 있을 정도로 현상유지를 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더러운 30년대 과잉생산으로 몰락할 뻔 했던, 서구 자본주의 체제의 영수 미국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절호의 기회를 맞아 전쟁물자 생산이라는 거의 무한정에 가까운 수요를 찾아 가까스로 체제의 위기를 벗어나는데 성공했다. 문제는 전쟁 시기에 동맹국이었던 소비에트의 전범을 찾아 미국 시민들이 공정한 부의 사회분배 그리고 복지국가 건설에 관심을 가지게 되자, 파워엘리트의 근심 걱정은 폭발할 수준에 도달했다. 1917년 10월혁명 이래, 전세계에서 인민민주주의 볼셰비키 박멸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온 미국 주류계급에게 노동계급의 각성이야말로 가장 반갑지 않은 사회적 현상이었다. 그래서 독일 파시즘과 일본 군국주의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제국은 기존의 강력한 동맹국인 소련을 주적으로 삼아 열전(hot war) 대신 냉전(cold war)에 돌입하기에 이르렀다.

 

기존의 ‘좋은 전쟁’이 파워엘리트 계급과 노동자 시민계급 모두에게 이익이 되었다면, 냉전은 철저하게 파워엘리트 계급에게만 좋은 그런 전쟁이었다. 소비에트를 파멸에 몰아넣기 위해 평화, 복지국가 대신 군사적 케인스주의를 선택해서 미국은 전쟁국가로 탈바꿈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전쟁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전비는 해가 갈수록 증가하기에 이르렀고 기업들이 부담해야할 세금을 일반 시민들이 부담하게 되고, 대처와 레이건으로 대변되는 신자유주의 지도자들의 복지시스템에 대한 사악한 공격으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에 절대 빈곤층이 자그마치 14%에 달하는 역설이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자크 파월은 말하고 있다. 미국은 이후에도 사담 후세인이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같은 꼬마 악당들을 양산해서 전쟁국가의 면모를 유지하고 있지만, 냉전시대 같은 좋은 시절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어릿광대 같이 천방지축으로 좌충우돌하는 지금의 대통령을 보면서, 미국 시민들은 어쩌면 자신들을 지배하는 파워엘리트의 실체를 보고, 그 어느 때보다 자각할 것을 강제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자크 파월의 기념비적인 저작을 보면서 아무래도 랑케 실증사학으로 훈련된 덕분인지 저자가 인용한 상당 부분이 전언이나 혹은 가설이라는 점이 못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저자가 다루고 있는 상당 부분이 역사서에 남길 만한 내용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해 볼 때, 그럴 수밖에 없지 않았나 하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좋은 전쟁 기간 동안, 미국 다국적기업 산하 독일 자회사들이 나치 독일의 전쟁을 수행하는데 꼭 필요한 전쟁물자를 생산해서 엄청난 수익을 냈다는 사실을 어떻게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겠는가. 설사 그런 기록이 남아 있다고 해도, 파기하는데 전력을 다하지 않았을까. 또 하나 놀라운 점 중의 하나는 미국 대기업들이 전시에 ‘이전 가격 조작’으로 대표되는 회계 트릭을 이용해서 정당한 세금납부를 회피하는 교묘한 전략을 개발되었다는 점이다. 전세계를 상대로 엄청난 사업을 벌여 천문학적 수익을 내면서도 모국에 한 푼의 세금도 내지 않는 파렴치한 행위가 이미 좋은 전쟁 시절부터 있어왔다니 그저 놀랄 따름이다. 자크 파월이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에서 다룬 좋은 전쟁이 누구에게 좋은 것이었나라는 대주제를 비롯해서, 전쟁을 통한 미국식 자본주의의 세계화, 소비에트와의 무제한 군비경쟁, 반역행위에 가까운 협력을 저질렀던 미국대기업들의 독일내 자회사들에 대한 고발 그리고 복지국가가 아닌 전쟁국가의 길을 걷게 된 미국 파워엘리트 계급의 실체에 이르기까지 개인적으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사고 체계에 일대 혁신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역작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올해의 책으로 선정하기에 조금도 부족한 점이 없다.

 

[뱀다리] 다 좋았는데 몇몇 지명에 대한 오기, 주요 인물의 잘못된 생몰연도 그리고 눈에 띄는 오탈자가 눈에 걸렸다. 요즘처럼 인터넷 백과사전이 발달한 시기에 영문 위키피디아 한 번만 돌려봐도 바로 알 수 있는데 아쉬웠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좋은 책의 완성도에 오탈자 때문에 흠이 가면 안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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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ybooks 2017-04-18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레삭매냐 님, 오월의봄입니다. 이렇게 책을 읽어주시고 공들여 리뷰도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명 표기 등 오류가 몇 군데 있나 보네요. ㅜㅜ 혹시 그 부분들을 보내주시면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maybook05@naver.com 선물도 드릴게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레삭매냐 2017-04-19 09:10   좋아요 0 | URL
알려주신 이메일로 오탈자 제보 전송하겠습니다.
 
안녕, 초지로 - 고양이와 집사의 행복한 이별
고이즈미 사요 지음, 권남희 옮김 / 콤마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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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하는 길에 길냥이들에게 사료와 먹이를 알뜰하게 챙겨 주는 캣말들을 볼 때가 많다. 어려서는 동물을 좋아했었는데 십자매 한쌍을 키우다가 먹이를 주지 않아서 굶겨 죽인 다음에 다시는 동물 키울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됐다. 한 마리가 죽은 뒤에, 다른 한 마리는 풀밭에 놓아 주었는데 새장에 갇혀 살아서 그런지 야생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이 여전히 눈에 선하다.

 

일인가구 시대를 맞아 반려동물을 식구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많이 늘어난 것 같다. 반려동물들에게 옷을 입히고, 아기들을 싣는 유모차 같은 데 태워서 다니는 사람들도 많이 봤다. 인간이건 동물이건 간에 서로 교감하고 삶을 나눌 수 있다면 무엇이 문제가 될까 싶어졌다. 오늘 읽은 고이즈미 사요 작가의 가슴훈훈한 펫로스(pet loss)를 다룬 <안녕, 초지로>를 읽으면서 동물키우기에는 젬병이지만 그래도 악성종양으로 마지막을 맞이하는 초지로 이야기에 눈물이 차올랐다.

 

아무래도 인간보다 수명이 짧은 반려동물을 기르면서 거의 식구처럼 생각했던 존재의 상실을 준비할 수 밖에 없는 그런 운명일까. 자연사가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주인공 초지로처럼 악성종양으로 시름시름 앓는 녀석을 위해 고이즈미 작가는 충실한 집사이자 헌신적인 간병인으로 최선을 다한다. 연세가 드셔서 언젠가 작가의 표현대로 무지개다리를 건너가실 부모님을 위해 그렇게 헌신적일 수 있을까 정도로 작가의 헌신은 대단하다. 라쿠와 같이 자신의 가정에 도착한 자그마치 8KG이나 나가는 뚱보 고양이 초지로를 작가는 정말 사랑했던 모양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은 정말 한줌 밖에 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럼에도 꾸준하게 삶에 향해 정진할 수 있는 힘은 바로 생각보다 가벼운 행복의 총량이 아닐까. 라쿠와 초지로 남매와 함께 했던 과거 회상 장면에서는 칼라 대신 흑백으로 정감을 더한다. 도도한 성격의 라쿠와 달리 다정다감했던 그리고 여성인 작가와 커플을 이루었던 시절에 대한 아기자기한 회상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유선 종양으로 출발한 초지로의 병환은 악성종양으로 발전해서 함께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자각에 도달하게 된다. 힘든 치료나 안락사 대신 초지로가 살아 있는 동안, 최대한 보살펴 주고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고이즈미 작가의 결심으로 초지로는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게 된다. 비록 암세포가 골반을 파괴하면서 스스로 거동을 못하게 되면서 그렇게 건장했던 녀석이 날이 갈수록 야위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슬펐을까. 그런 과정을 통해 작가는 초지로와의 이별을 하나씩 준비한다. 마지막 순간에 초지로의 관이 될 바구니를 장만하고, 마지막 시간들을 블로그에 담아 지인들에게 알라기도 한다. 초지로의 쾌유를 응원하는 팬들은 무병 식재 부적을 보내기도 했다고 했던가. 초지로가 그렇게 천국으로 간 다음에는 꽃바구니에 담아 화장하고, 유골함에 담아 제상을 차리기도 했단다. 우리하고는 좀 다른 추모문화가 낯설기도 했지만 그 또한 사람사는 방식이겠지 싶다.

 

사랑하는 초지로를 그렇게 보낸 뒤, 유기묘 시설에서 꼬마 고양이 간지로를 데려 왔다고 했던가. 초지로와는 또다른 성격의 간지로와 더불어 살면서 펫로스의 상처를 딛고 일어서게 되었다는 글로 <안녕, 초지로>는 끝을 맺는다. 그 어떤 말보다 ‘내 삶의 구원자’라고 초지로와 라쿠들에게 말한 장면이 개인적으로 감동적이었다. 삶의 고락을 함께 한 반려동물들에게 이보다 더 큰 찬사가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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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17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는 길바닥에 있는 떠돌이 개와 고양이의 사체를 보면 안 본 척 피하면서 지나갔어요. 이제는 사체를 발견하면 동물 사체 처리를 담당하는 관청 부서에 전화합니다. 반려동물의 사체를 땅에 함부로 묻을 수 없다고 합니다. 위생 문제 때문에 규제한 것 같습니다만, 사실 동물 사체를 땅에 깊숙이 묻어 놓으면 썩어가는 사체는 토양 성분을 좋게 만드는 비료가 됩니다.

레삭매냐 2017-04-18 10:28   좋아요 0 | URL
로드킬 당해서 죽은 동물들 보면
참 마음이 안됐더라구요.
얼마 전에도 도서관 앞에서 차에 치어
죽은 비둘기를 봤답니다...

참 이상한 규제도 다 있군요.

qualia 2017-04-17 1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저는 동물 사체를 함부로(사적으로) 땅에 묻으면 안 된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봅니다. 동물학계에서도 질병학 · 전염병학 · 위생학 등등을 고려해 함부로 땅에 묻으면 안 된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기르던 반려동물이 죽었을 때 옛날처럼 개인 스스로 땅에 묻을 수 없다면 그것처럼 또 말도 안 되는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뭐 이런 식으로 말하면 과학적으로, 법적으로 참 무식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저는 저 스스로 어쨌든 땅에 묻어주고 싶습니다. 실제로 새와 고양이 사체를 여러 번 땅 속에 묻어주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특히 도시에는 묻어줄 만한 땅 자체가 거의 없습니다. 양지 바른 곳, 깨끗한 곳, 나중에라도 파헤쳐지지 않을 곳, 이런 곳들이 무척 귀합니다. 또 거의 모두 남의 땅이거나 시유지, 도유지(?), 국유지밖에 없잖아요. 해서 죽은 반려동물을 묻어줄 곳을 구하기가 무척 어렵죠. 이 댓글을 쓰다가 제가 오래전에 묻어주었던 고양이 무덤이 공사로 파헤쳐졌다는 사실을 깨닫고 가슴이 무척 아파옵니다. 그곳은 나무들이 많은 한 대학교 정원 혹은 작은 숲이었는데, 인간들이 파헤쳐서 무슨 지하 시설물을 만들었습니다. 이럴 땐 사람들이 정말 싫습니다.

레삭매냐 2017-04-18 10:32   좋아요 0 | URL
남겨 주신 글 보고 생각해 보니 그렇네요.
가족처럼 생활하던 반려동물을 천국에 보내기
위해서도 땅이 필요하군요.

사람들도 생존 때문에 땅이 필요한데, 죽은
동물들에게도 안식처가 필요할텐데...

애써 묻으셨는데, 고양이 무덤이 사라졌다니
안타깝네요.
 
왕안석, 황하를 거스른 개혁가
미우라 쿠니오 지음, 이승연 옮김 / 책세상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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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개혁가들은 민중에게 환영 받지 못했다.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불변의 사실이다. 우리는 지난 엄혹한 겨울 촛불혁명으로 그동안 누적되어온 적폐 처단의 단초를 만들어냈다. 이제 시작이다. 수구 기득권 계층의 저항은 그들이 쌓아온 불평등에 기반한 사회구조 만큼이나 강고하고, 그들의 나팔수 역할을 자처하는 보수언론은 촛불대선을 앞두고 언론조작에 여념이 없다. 우리는 지금 현상유지냐 아니면 새로운 미래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지난 주말부터 읽은 미우라 쿠니오 저자의 <왕안석, 황하를 거스른 개혁가>, 일본 역사가가 저술한 희대의 개혁가 왕안석 평전이 주는 교훈이 기대이상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북송 시대에 등장한 왕안석은 22세 청년등과에 성공한 수재였다. 당시 과거선발 제도에서 4등을 차지해서 관리의 길을 걷게 된다. 강서성 무주 임천 출신인 개보 왕안석은 훗날 구법당의 영수이자 이데올로그로 자신과 영원한 맞수가 되는 북방 호족 출신의 사마광과 달리 신진 사대부 출신이었다. 건국 이래 한 세기 정도 흐른 시점에서 송나라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던 지각 있는 사대부들은 이대로는 안된다는 사실을 공유하고 있었다. 당시 송나라는 북방 이민족인 거란의 나라 요나라와 서쪽 당항족의 서하로부터 심각한 군사적 압박을 받고 있었다. 문치주의를 강조하던 건국 이래 이념 덕분에, 송나라의 군사력은 형편없었다. 군사력으로 이민족을 제압할 수 없었던 송나라는 세폐라는 물질적 방식으로 이민족의 침입을 무마해 오고 있었다. 물론, 중앙정부가 요와 서하에게 제공하던 세폐는 전적으로 송제국의 인민들에게 부과되었다. 어느 역사서에서는 송의 경제력이 압도적이어서 이민족에게 제공하던 세폐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해마다 수만량의 은자와 수십만 필의 비단 제공이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되었던 건 사실로 추정된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미우라 쿠니오 저자는 당송팔대가의 한 명으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문재를 지닌 개혁가 왕안석의 초상을 그리기 시작한다. 특별한 스승을 두지 않고 독학으로 학문을 깨우친 산림의 준재 왕안석은 민생 안정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다. 불세출의 유학자이자 상고주의자였던 왕안석은 고대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요순시대의 재현이야말로 군주와 군주를 보필하는 관리들의 지상과제로 간주했다. 중국 사회를 지배한 이데올로기는 유학이었지만, 실제 국가경영에 있어 법가 사상 역시 중요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왕안석은 춘추전국시대 최후의 승자가 되는 진(秦)나라를 부흥시켰던 상앙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어쩌면 훗날 신종 연간에 신법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타협 대신 냉혹할 정도로 반대파를 일축하고 자신이 믿는 바를 밀어나간 데에는 그런 법가적 신념이 배후에 있지 않나 싶다.

 

평소 책읽기를 즐겨한 왕안석은 저술에도 힘을 써서 왕학이라 불릴 정도의 일가를 이루기도 했다고 한다. 결국 주류 유학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주희의 주자학에 밀려 이단으로 배척당하기도 했지만, 한 때 공자묘에 맹자 다음 가는 자리에 배향되기도 할 정도였다. 색을 멀리하고, 몸에 밴 검소한 생활로 정계에 투신해서도 타인에게 흠을 잡히지 않았던 그는 진정한 군자였다. 소인배 무리를 ‘유속’이라 부르며 극소수의 지기들과 교류를 고집했다. 불가에도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개보 선생은 강녕 은퇴 후, 평소에 흠모해 마지않던 종산을 오르며 다수의 불전에 주석을 달기도 했다고 한다. 당대 저명한 고승들과 교류를 마다하지 않았던 점도 저자는 빠트리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왕안석이 정계에 혜성처럼 등장해서, 건국 이래 쌓인 적폐들을 호쾌하게 일소하는 장면을 기대했는데 미우라 쿠니오 저자는 그런 중요한 이야기들을 평전의 후반으로 미뤄 두고, 어떻게 해서 왕안석이라는 문제적 인간이 성장해 왔고, 어떤 계기를 통해 궁극적 개혁에 이르게 되는 과정에 비중을 두고 설명한다. 다소 지루한 부분이 없지 않지만, 이런 입체적 접근이야말로 후대에 열혈 팬들에게는 뛰어난 개혁가로 칭송받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간신으로 비난받게 되는지, 독자의 신중한 판단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양주의 관리로 관직 복무를 시작한 왕안석은 은현, 서주, 상주 그리고 파양의 지방을 16년 동안이나 전전하며 백성들의 실태를 직접 파악했다. 누구나 희망하는 중앙직 대신 각처의 지방관을 역임하면서 누적된 시대의 적폐를 체험한 개혁가는 드디어 행동에 나서게 된다. 인종 대에 황제에게 올린 만언서에서 개보 선생은 훗날 자신이 실시하게 될 신법의 청사진을 제공했다. 상고주의자로 선왕의 뜻에 따라야 한다는 보수적 시각에서, 개혁을 위한 새로운 인재의 발굴과 양성, 종래 시부에 대한 내용으로 인재를 선발해오던 과거제의 개혁 등 국가경영 전반에 대한 개혁가의 빛나는 아이디어가 넘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송나라의 4번째 황제로 42년간 황제를 자리를 지켰던 인종이 죽고, 영종의 짧은 치세(4년)를 지나 약관의 나이로 젊은 황제가 신종은 지방관 출신 왕안석을 참지정사를 기용해서 변법에 나서기에 이른다. 개보 선생은 처음에 젊은 황제에게 강학을 통해 개혁정치의 이상과 이념을 숙지시키고자 했지만 청년 천자는 보다 신속한 개혁을 원했다. 1069년 균수법을 시작으로 마침내 연이은 신법들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대지주가 토지 겸병으로 막대한 이익을 내던 와중에 실시된 청묘법은 기근이나 흉년에 대비해서 상평창에 비축해 두었던 곡물과 돈을 이용해서 낮은 이자로 농민들에게 대출해주는 제도였다. 신법이 시행된 지 다음해, 왕안석은 재상의 자리에 올라 신법 실시에 본격적인 시동을 걸었다.

 

수도 변경에는 지방에서 수송해온 물자들을 관리하는 창고가 있었는데 이것을 관리하는 서리들에게 봉급을 지급하고, 위법을 저질렀을 시에는 엄벌에 처하는 하창법, 병사 관리와 향촌 관리라는 차원에서 실시된 보갑법, 역시 전쟁에 필요한 군마조달을 위한 보마법 등을 질풍노도처럼 시행했다. 개인적으로 왕안석의 신법 중에서 가장 근대적으로 판단된다는 현재 소득세에 해당하는 모역법이야말로 핵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가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공정하게 부여하는 세법이야말로 국가운영의 근간에 가장 중요한 방책이 아니었을까. 그동안 실질적 국가경영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시부 중심의 과거제 선발도 그의 개혁정책에서 예외가 될 수 없었다.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기관 정비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변법이 궁극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결국 신법 이데올로기를 수행할 전사들의 양성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우리 조선시대에도 정조가 개혁정치의 선봉을 담당할 인재들을 귀천을 가리지 선발해서 양성하는데 전념했지만, 왕의 사후 보수파의 반격으로 만사휴의가 되지 않았던가. 왕안석의 신법 역시 역사의 무대에서 비슷한 경로를 밟게 되었지만 말이다. 개혁행정가로서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는 와중에도 개보 선생은 <삼경신의> 같은 기존 경전에 대한 주석서와 역시 모든 것은 <주례>로 통한다는 그의 생각에 입각해서 저술한 <주례신의>도 발표했다. 정말 대단한 실력이 아닐 수 없다.

 

그 외에도 도시 상공업 진흥을 위한 시역법, 농전수리 정책 등이 최고권력자 신종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질풍노도 같은 신법의 등장 만큼이나 사마광, 구양수, 한기 그리고 소식 같이 당대 저명한 학자, 보수정치인들의 반발도 거셌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구법당의 강경파 보수주의자들도 한 때는 개혁만이 제국의 살 길이라는 문제의식에는 공감했다는 점이다. 시간과 지위가 정계 유력한 사대부들의 사고마저 바꾸게 만들었던 것일까. 그리고 요즘으로 치면 대선을 앞두고 범람하고 있는 가짜뉴스처럼, 왕안석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도 차고 넘쳤다. 나중에 역사서에 오를 정도로 공신력을 획득한 음해공작은 성공적이어서 명대까지 그의 이름이 간신 재상전에 올랐다는 건 비밀도 아니다. 왕안석 신법이 실패할 수 없었던 이유는 우선 타협을 모르는 개혁 주도자의 올곧은 성정을 비롯해서, 기득권층의 반발을 무마할 당근정책이 전무했다는 점이다. 아울러 백성을 위한 정책이라고 했지만, 신법의 시행으로 정부 재정은 탄탄해졌을 지 몰라도 민생의 삶은 나아진 것이 없었다는 사실이다. 다양한 신법 때문에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들은 예전에 하지 않아도 되는 노역과 세금을 내야 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조치들이었지만 당장 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누가 개혁을 환영하겠는가 말이다. 무엇보다 신법의 지지자였던 신종이 신법 시행에 따른 부작용에 염증을 내기 시작했을 때, 이미 신법의 운명은 정해졌던 게 아닐까.

 

자신이 마음속으로 고향이라고 생각해온 강녕(지금의 남경)으로 은퇴한 왕안석은 부근의 선승들과 교류를 즐기며 산림처사의 삶을 만끽했다. 중앙 정치무대에 있을 때에는 시간이 없어서 뒤로 미뤄 두었던 고전연구에도 매진하고, 시부를 지어 유유자적한 삶을 사는 자신의 심정을 담기도 했고, 엄정한 유학자에서 불교도로 변신해서 자신이 살던 양산의 저택을 절에 기부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에, 신종이 죽으면서 구법당이 다시 정계에 속속 복귀하면서 왕안석이 심혈을 기울였던 신법들이 하나하나 무산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속세를 떠난 개보 선생이라지만 충격을 받지 않았을까. 왕안석의 죽음을 시적으로 다룬 평전의 종언 부분은 정말 인상적이다.

 

다른 인물의 평전과 달리 미우라 쿠니오 작가는 <천상 심포지엄>이라는 부분을 할애해서, 간신 재상이라는 혹평과 위대한 개혁가라는 오명과 상찬을 동시에 받고 있는 문제적 인간 왕안석에 대한 비록 상상일지도 모르겠지만 치열한 고증과 각자의 입장에 의거한 어젠다 논쟁도 마련했다. 어쩌면 그가 쓴 천상 심포지엄이야말로 이 왕안석 평전의 핵심이 아닐까.

 

조기 대선을 앞두고 있다. 부족한 시간 때문에 검증이라는 미명 아래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네거티브가 난무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소모적인 논쟁보다 우리의 미래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진짜 정책대결을 원한다. 그러기 위해 촛불을 들지 않았던가. 그런 점에서 시대를 앞서간 개혁가 왕안석이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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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12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혁에 대한 의견이 두 가지로 나뉘어지겠지만, 저는 점진적 개혁을 선호합니다. 급진적 개혁도 좋습니다. 하지만 기성 세력의 반발심이 더 크게 생기는 역효과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