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전쟁이라는 신화 - 미국의 제2차 세계대전, 전쟁의 추악한 진실 질문의 책 12
자크 파월 지음, 윤태준 옮김 / 오월의봄 / 201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에 프레시안에서 <전쟁국가 미국>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것 같네요. 당시에 아주 인상 깊게 읽었는데 이번에 책으로 엮여
나왔으니 일독해 볼만한 것 같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희재 삼국지 1 - 형제의 의를 맺다 이희재 삼국지 1
이희재 지음 / 휴머니스트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네이버 댓글 이벤트로 이희재 화백의 <이희재 삼국지>를 접하게 됐다. 역시 모본은 나관중의 <삼국지연의>로, 사실 3에 소설 7이라고 했던가. 후한말 황건적의 거병, 국정을 농락한 그 이름도 유명한 십상시가 등장하고, 무엇보다 유관장 삼총사가 등장하는 도원결의를 비롯해서 천하쟁탈에 나서게 되는 원소와 조조 그리고 강동의 호랑이라고 불리는 손견까지 주요 인물들이 차례로 등장해서 자웅을 겨루게 되는 과정이 자세하게 실려 있었다.

 

사실 이런저런 다양한 판본의 삼국지들을 접하다 보니, 새로울 것도 없지만 고전의 제 맛이란 이렇게 다양한 해석에 있는 게 아닐까. 인덕이 후하기로 유명한 유비 현덕에 대해서도 촉한정통론을 내세우는 나관중식 사관에 따라 진행되고 있지만, 완고한 수구주의자로 새로운 시대의 시작보다는 훈구 세력의 일환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은 인물 유비가 자신보다 훨씬 더 뛰어난 재능과 권력 그리고 영웅들과의 쟁투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황제의 자리에까지 올랐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이희재 화백이 그린 삼국지 1편에서 가장 불운한 사나이는 바로 대장군 하진이 아니었을까 싶다.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국정을 농단한 십상시 환관세력을 일소할 기회가 있었지만 잘못된 판단으로 자신의 목숨과 하황후 그리고 조카 홍농왕 소제 회의 목숨까지 달아나게 만들었다. 건석을 비롯한 환관들 역시 마찬가지 신세로, 황제 주변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전횡하다가 결국 군벌 세력에게 초토화되는 운명이란. 그리고 보니 푸른 하늘(창천)은 죽었다며, 기의했던 농민반란 세력 황건적도 마찬가지 신세였다. 태평도를 따르는 세력이 반군으로 기세를 올리긴 했지만, 정식 군대와 대결하게 되었을 때 자신들의 실력을 몰랐던 걸까? 유관장 삼총사가 이끄는 의군에게 연전연패하는 모습을 보면 준비되지 않은 군세로 반란에 나선 것 자체가 문제였는지 모르겠다. 황건적의 모습에서 청나라 말기 홍수전을 중심으로 한 태평천국의 난이 연상되기도 했다. 역사란 그렇게 반복되는 모양이다.




만화 삼국지는 비교적 충실하게 나관중 원작의 궤적을 추적한다. 십상시들을 제압하기 위해, 조조의 간언대로 대장군 하진이 움직였다면 황건적 토벌에서는 무능했지만 후한의 마지막 황제 헌제를 앞세워 폭정을 일삼은 서주 자사 동탁의 발호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역사에 가정법이란 없지만, 황건적에 패해 도주 중이던 동탁을 장비가 단칼에 없애 버렸다면 후한말 군벌시대는 예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긴 그렇게 따지자면, 유비군단 역시 군벌이긴 마찬가지였으니.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분열과 통일로 움직여 가는 중국사의 거시적 차원을 엿보게 된다. 통일된 제국은 어떤 역사적 장면을 계기로 해서 분열하기 마련이고, 그렇게 분열된 소왕국들은 다시 통일을 향해 가기 마련이 아니었던가. 물론 아직 삼국지연의에서는 분열의 초기라 수많은 영웅들이 명멸해 사라지고, 남은 이들을 중심으로 해서 이야기 전개가 되겠지만 말이다.

 


삼국지연의 초반에 해당하는 에피소드에서 인상적 장면 하나는 작은 마을에서 현령으로 복무 중인 유비를 감찰하러 나온 독우를 버드나무 회초리로 사정없이 두들겨 패는 장비의 모습이다. 그리고 보니 유관장 형제 중에 둘째에 해당하는 관우도 고향에서 썩은 관리를 살해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부당한 권력행사에 저항하는 인물인 관우가 썩어 빠진 후한에 대항해서 거병한 황건적을 소탕하러 나선 모습은 역설적이지 않은가. 삼공의 후예이자 유서 깊은 가문 출신의 원소가 돗자리를 짜서 팔던 유비를 우습게 보고, 대장군 하진(백정 출신이라고 했던가)이 환관의 양자 출신이라며 조조를 경멸하는 장면도 당시의 시대상이 어떠했는지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다. 자신이 가진 실력보다 가문이나 출신 따위를 논하던 시절이 오로지 무력이라는 실력이 말하는 실력 위주의 시대로 전환하고 있던 동란의 시대가 아니었을까. 이러한 시대에 수구주의자 유비가 어떤 비전을 대중에게 보여 주었을까 하는 그런 의문이 들었다. 유비의 중원 제압 실패의 원인 중에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한 이런 수구적 발상 탓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다.

 

기회가 된다면 이희재 화백의 나머지 9권에 해당하는 삼국지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록으로 딸려온 <삼국지 고사성어>를 살펴 보니 거의 다 아는 내용이지만 또 고사성어로 만나는 그런 재미가 있었다. 월단평(月旦評)으로 난세의 간웅이라는 평을 들은 조조가 흐뭇해 하더라는 이야기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나관중에 의해 의도적으로 폄하된 문제적 인간 조조는 평범한 시절이었다면, 보통 이하의 그런 관료로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까 싶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04-10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정말 삼국지 한 번 제대로 못 읽고 죽을 것 같습니다.. ㅎㅎㅎ 그 유명한 이문열 삼국지도 안 읽어봤어요. 정본을 읽어보고 싶은데 뭘 읽어봐야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혹시 알고 계신다면 조언 부탁드립니다. ^^

레삭매냐 2017-04-11 14:29   좋아요 1 | URL
예전엔 애정했었지만 작가의 실체를 알고 나서는 다시는
집지 않겠노라고 작가의 책인지라 선뜻 추천하기가 망설여지네요.

그래도 싸이러스님이라면 가려서 보실 거라 믿습니다.
삼국지 초심자시라면 아무래도 말씀하신 작가의 책으로 시작하시
는 게 좋지 않을까 사료됩니다. 걱정도 되지만요.

만화로는 고우영 삼국지를 추천해 드립니다.
 
윤광준의 新생활명품
윤광준 지음 / 오픈하우스 / 2017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소개에 나와 있는 대로 잘 모르지만, 사진가이자 오디오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윤광준의 새로나온 생활명품 소개책을 읽게 됐다. 9년 전에도 ‘새로운’ 생활명품 책을 냈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아마 신문에서 연재하고 있는 모양이다, 이번에는 그의 생활명품 책과 만날 수가 있었다.

 

대부분의 명품 소개가 그렇듯, 내가 아예 모르는 정보들도 있었고 단가 때문에 만날 수 없는 그런 물건들도 다수 있었으며, 이제는 LP 레코드를 듣기 않게 돼서 나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그런 정보들도 있었다. 예전에는 미디어가 카세트테이프와 LP 밖에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데 이제는 음악의 대부분을 mp3 파일로 듣다 보니 저자가 소개한 ECM 레이블에 대해서도 시큰둥했다. 그리고 보니 오래 전 CD에 미쳤을 때, 도이치 그라모폰이나 EMI 클래식 음반들 그리고 더 오래된 복각CD들을 찾아 다니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 때 명동에 있던 디아파송인가 하는 CD전문점에도 자주 들렀던 것 같은데 아직도 있을까. 아마도 없어졌겠지 싶다.

 

집안 청소를 도맡아 하다 보니 청소기에도 관심이 많다. 이미 집에서 사용하고 있는 진공청소기는 먼지를 빨아들이는 흡인관의 튜브 부분이 고장나 버렸는데 새로 사지도 못하고 그냥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 아니 차라리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더 편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독일산 명품 밀레 청소기의 유혹은 과연 대단했다. 여윳돈만 있다면 당장에라도 달려 가서 사고 싶었다. 문득 아무리 디지털 시대가 발전해서 달나라에도 갈 상황이라고 하지만, 책의 경우만 하더라도 전기가 없다면 전자책이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러니 수천년이 지나도록 로제타 스톤 같은 아날로그 스타일의 기록이 유효하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너무 멀리 나갔나.

 

이제는 은행마저 인터넷은행 시대가 되어 점점 피할 수 없는 디지털 시대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인간의 감성을 아날로그로 지향하고 있다는 점을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어제 들른 카페에서도 보니 중고 LP판들이 몇 장 있더라. 카페에는 아마도 mp3 파일로 튼 재즈 음악들이 넘실대고 있었는데, 레코드 플레이어는 보이지 않았다. 빈티지 스타일의 북카페를 강조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북카페라고 하는데 읽을 만한 책 대신 왠 놈의 디자인 책들만 가득한지. 생활명품 이야기 하다가 샛길로 샜다. 역시 지금도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아날로그 감성의 대표주자는 바로 연필이다. 세계 최초로 연필의 6각 모양을 도입하고, 흑연과 점토의 이상적 조합으로 파버카스텔 9000이라는 시대의 명품을 만들어낸 파버카스텔 사에 대한 이야기는 역시나 흥미로웠다.

 

 

나도 개인적으로 볼펜보다 연필을 즐겨 사용한다. 파버카스텔을 즐겨 사용했다는 고흐나 헤밍웨이 급은 아니지만, 종이에 사각거리며 무언가 중요한 정보들을 적어 나가는 과정이 아주 마음에 든다. 그리고 보니 내가 사무실 책상에서 애용하는 수동식 연필깎기도 중국에서 만든 파버카스텔 제품이었구나. 예전에 산 전동 연필깎기는 미국에서 산 제품으로 110볼트라 트랜스가 없어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고작 연필 하나 깎겠다고 트랜스까지 동원해야 하나.

 

정확하게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저자는 생활명품을 찾아 불원천리를 마다하고 찾는 그런 스타일인가 보다. 생막걸리로 유명한 울산 복순도가를 찾기도 하고, 반년 동안 독일에도 두 번씩이나 갔다고 한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에, 온전하게 발효시킨 생막걸리를 고집하는 복순도가의 마케팅 전략은 이웃한 일본이나 와인의 본고장 프랑스의 다양한 스타일의 술 제조를 못하게 만드는 낡은 주세법의 틀 안에서 이룬 쾌거가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일반 막거리보다 8배나 비싸도 찾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는 말에 이해가 갔다. 개인적으로 막걸리를 선호하지는 않지만 당장에라도 한 잔 마셔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이 책에서 처음 읽은 글은 바로 핀란드의 명품가위 피스카스였다. 전 세계 명품산업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독일 제조업의 힘은 일상의 사소한 것에도 놓치지 않는 세심함이라고 저자는 쓰고 있다. 물론 피스카스가 독일 제품은 아니지만, 사실 가위 같이 평범한 제품 하나에도 소비자의 관점에서 어떻게 하면 그립을 편하게 만들고 어린아이도 다치지 않고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가 고심한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이케아 성공의 비결을 최근 어느 칼럼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이케아 사장은 스웨덴의 모든 아이들이 자기 회사가 만든 질 좋고 저렴한 책상하고 마음껏 공부할 수 있게 만드는 게 꿈이라고 했던가. 단순하게 이윤만 생각하면 시장에서 뛰어들었다가 퇴출당한 기업과 비교를 통해 기업의 목적이 성패를 좌우한다는 글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이케아의 창업자 잉그바르 캄프라드가 조국 스웨덴에 세금내는것을 회피하기 위해 막대한 규모의 탈세를 저질렀다는 건 이제 비밀도 아니지만 말이다. 사는 게 다 그런 거겠지 뭐.

 

어쨌든 윤광준 씨의 생활명품 소개를 통해 여전히 세계는 넓고 내가 모르는 브랜드들이 차고 넘치며, 구매와 소비를 자극하는 생활명품들이 산재해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당장 주황색 칼라의 피스카스 가위를 사고 싶었지만, 일반 가위보다 훨씬 비싸서 그냥 포기해 버렸다. 한 자루에 1,800원씩 하는 파버카스연필보다 여기저기서 거저 얻은 연필을 사용하기로 했다. 파버카스텔을 사용한다고 해서 내가 하는 메모의 질이 달라지는 건 아닐 테니까 말이다. 인간은 이렇게 실용적이다.

 

[뱀다리] 책의 뒤편에는 책에 소개된 생활명품 제품들을 살 수 있는 사이트들과 정보가 수록되어 있다. 친절하시기도 하여라. 그 중에서 관심이 가던 트로이카 문진의 가격대를 알아 봤는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로구나. 분명 갖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지만, 가격이 비싸서 바로 패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쥐 The Complete Maus 합본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주말 정말 오랜 만에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다시 읽었다. 만화로 미국의 저명한 문학상인 퓰리처상 수상을 할 정도라면 어느 정도의 예술성은 담보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도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기억의 편린 정도가 남아 있었는데, 세월이 지나 다시 읽어 보니 나치의 잔혹한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비애에 다시 한 번 느낄 수가 있었다.

 

아트 슈피겔만의 그래픽노블 <쥐>는 두 가지 이야기를 축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작가의 아버지 폴란드 출신 유대인이었던 블라덱 슈피겔만이 아냐 질버베르크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평화로운 시절을 보내다가 나치 독일의 침략을 받고 게토에 거주하며 쫓기던 가운데 결국 절멸수용소 아우슈비츠로 끌려 갔다가 살아남게 되는 이야기 하나 그리고 그렇게 살아 남은 아버지 블라덱이 스웨덴을 거쳐 미국으로 이주했지만 여전히 아우슈비츠 시절의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재 자신과의 불화를 그린 이야기 둘.

 

미국에서 미국인으로 자란 아트 슈피겔만의 눈에 반평생을 외국에서 보낸 아버지 블라덱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존재였던 모양이다. 아우슈비츠의 후유증을 결국 극복하지 못한 작가의 어머니 아냐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아버지 블라덱은 같은 수용소 출신 말라와 결혼했지만 인색한 유대인 구두쇠의 이미지를 문자 그대로 보여준다. 후반에 블라덱이 보여주는 흑인에 대한 지독한 인종차별은 나치의 인종차별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 모습은 이스라엘 가자지구에서 여전히 진행 중인 이스라엘군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탄압을 연상시킨다.

 

작가는 그래픽노블에 담은 이미지들이 반유대주의를 부상시킬 수 있다는 점을 잘 알면서도 포스트홀로코스트 진실을 알리겠다는 사명감으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전달하고 있다고 강변한다. 자신이 구입한 식료품을 상점에 가서 반납하겠다고 고집 피우는 아버지의 모습에 넌더리를 내기도 하고, 가스를 켜기 위한 성냥을 아끼기 위해 호텔에서 제공하는 종이성냥을 슬쩍하기도 하고 집세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루종일 가스를 켜둔다는 말에서는 정말 질려 버렸다. 하지만 블라덱이 보여주는 이 모든 근검절약 정신이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아우슈비츠에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전략이었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이해못할 바도 아니었다. 블라덱 슈피겔만 역시 시대의 희생자였던 것이다.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다고 진술한 블라덱 슈피겔만은 젊은 시절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은 호남자였다고 한다. 진지한 교제를 하기도 했지만, 부유한 집안의 여성과 결혼을 통해 신분상승을 꿈꾸던 그에게 직물공장으로 백만장자였던 질버베르크 집안의 아냐야말로 이상적인 배우자였다. 처갓집의 후원 덕분에 잘 나가던 블라덱은 첫아들 리슈를 낳고 그야말로 꿈같이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이웃 독일에서 히틀러의 집권 이래 점증하던 유대인 박해는 2차세계대전이 시작되고, 독일이 폴란드가 침공해서 제국령과 보호령으로 나누면서 폴란드 유대인들에게 현실이 되었다. 폴란드군으로 징집되어 전투에 나섰지만 전쟁포로가 되어 집으로 무사히 귀환했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운명은 가혹했다.

 

전 유럽의 유대인들을 절멸시키겠다는 나치 독일의 최종해결책이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비록 유대인으로 박해를 당했지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블라덱 가족은 뿔뿔히 흩어지고 차례로 가스실로 실려 가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교묘하게 위장된 벙커와 가지고 있던 금품으로 위기를 모면하고 수차례나 운좋게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1944년 마지막으로 헝가리로 탈출하려던 계획이 실패하면서 블라덱과 아냐는 한 번 들어가면 굴뚝으로만 나올 수 있다던 아우슈비츠, 폴란드 이름으로는 오시비엥침으로 끌려 간다. 역시 수용소 생존자였던 프리모 레비가 그의 저서에서 알려 주었듯이, 젊은 블라덱이 가지고 있던 건강과 기지 그리고 언어능력은 그가 수용소에서 살아남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에 비하면 허약하고 의지도 부족했던 아냐가 리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정말 기적이었다.

 

블라덱은 수용소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자원과 운을 총동원했다. 아첨을 해야 할 때는 상대를 가리지 않고 아첨을 했고, 말단에서 권력을 행사하던 카포에게도 영어를 가르쳐 준다는 빌미로 호감을 얻은 정보로 가스실로 향하는 선별작업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직물상인으로 함석장이나 제화공 기술은 하나도 모르면서, 남보다 기술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파악한 블라덱은 기지를 발휘해서 위기를 모면할 수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훗날 미국에서 다이아몬드 상인으로 풍족해진 다음에도, 땅에 떨어진 전선 조각 하나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음식은 모두 소비해야 한다는 철두철미한 절약정신을 버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트 슈피겔만이 자신의 유년시절을 회상하면서, 어른들은 모두 자면서 끔찍한 비명을 지르는 줄 알았다고 했던가. 정말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소련군의 진격으로 아우슈비츠가 무사하게 해방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다수의 유대인들이 다시 독일내로 수용되었다는 점은 미처 몰랐다. 그리고 그렇게 어렵사리 살아남았지만 또 그 와중에 어이 없이 죽어 갔다는 점도 다시 알게 됐다. 도대체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들만이 “마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단 말인가.

 

그래픽노블 <쥐>는 블라덱이 우여곡절 끝에 살아 남아 사랑하는 아냐와 다시 만나는 장면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슈피겔만 작가는 아버지의 기억을 토대로 해서 자신만의 그래픽노블을 완성시켰다. 나치에게 핍박당하는 유대인은 쥐로, 유대인의 천적이라고 할 수 있는 나치는 고양이로, 폴란드 사람들은 돼지로(상당히 의미심장하다), 미국인들은 개로 그리고 프랑스 사람들은 개구리로 묘사했다. 개인위생과 청결을 중시하는 그들의 눈에 미국에서 만들어진 미키 마우스라는 캐릭터 역시 마음에 들지 않았으리라. 나치는 인류에게 해만 끼치는 존재라는 의미에서 유대인을 쥐에 비유했다. 전쟁 전에는 그렇게 친절하던 폴란드 사람들이 유대인들이 나치에 쫓기는 존재가 되자, 박정하게 대하는 장면도 그렇고 전쟁이 끝난 뒤에 자신의 재산을 되찾기 위해 찾아온 유대인을 폭행하고 심지어 살해하는 장면은 정말 끔찍했다. 어렵사리 회복한 자신들의 땅인 팔레스타인에서 악착같이 정착촌을 세우고, 다수의 아랍민족에게 포위된 상황 속에서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점은 이해하면서도 과연 평화로운 공존은 불가능한지 다시 묻게 된다.

 

블라덱 슈피겔만의 생존기만큼이나 아들 아티와의 지난한 갈등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1970년대 뉴욕 퀸즈 레고 파크에 거주하는 블라덱은 자신의 기준에서 보기에 제멋대로인 아들 아티를 이해할 수가 없다. 보다 실용적인 직업 대신 만화가의 길을 걷는 아들 아티를 그가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래픽노블의 시작에서 등장한 친구에 대한 개념에 대해 아들에게 실질적인 조언을 하는 아들과 아버지와의 간극만큼이나 어쩌면 홀로코스트는 우리에게 실제 경험자들과 거리가 있는 지도 모르겠다. 아들 아티 역시 홀로코스트의 악몽으로부터 평생 벗어날 수 없었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의 뇌리에 각인된 죽음에 대한 공포를 영원히 제거할 수 있을까? 그것은 어디까지나 타인의 추체험에 불과한 것이다. 내 것이 아닌 체험의 기억을 아티의 말처럼 없었던 것으로 하기도 불가능했으리라. 이런 세대 간의 간극이야말로 갈등의 원인이 아니었을까. 유서 한 장 없는 어머니의 죽음도 역시나 아트 슈피겔만에게 트라우마였으리라.

 

아마 내가 이 책을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은 친구의 추천 덕분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정말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아트 슈피겔만의 <쥐>와 만나게 됐다. 클래식은 시공을 초월해서 읽어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지난 주말에는 예전에 읽었던 책들과 다시 만나는 그런 시간들이었다. 지금 다시 읽게 된 커트 보네거트(보니것보다 보네거트가 왜 더 마음에 드는걸까)도 마찬가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극락 타이 생활기 - 쾌락의 도가니에서 살다
다카노 히데유키 지음, 강병혁 옮김 / 시공사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한 때 빠져서 국내에 출간된 다카노 히데유키 작가의 모든 책을 구해서 읽은 적이 있다. <극락 타이 생활기>도 역시 그 시절에 읽었던 책이다. 거진 십년이 다 되어 가는 마당에 다시 한 번 읽게 되었다. 작가가 사회 초년병 시절인 26세 때, 치앙마이에 있는 대학으로 일본어 강사로 취직이 되어 인연을 맺게 된 타이라는 나라에 대한 개인적 보고서라고나 할까. 포스트 콜로니얼적인 시선이 담겨 있기는 하지만, 일본이라는 나라의 저력을 읽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사실 동남아는 일본의 경제적 무대가 되지 않았던가. 소니를 필두로 한 전자제품을 비롯해서 일제 자동차들이 동남아 시장을 석권한 것은 비밀도 아니다. 그런데 그 배경에는 누가 봐도 분명 괴짜인 다카노 히데유키 같은 작가들이 문화 선봉대로 나서 현지인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고, 일본 문화에 대한 거부감을 희색시킨 결과가 아닐까. 물론 필리핀 같은 나라는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게 호되게 당해 여전히 반감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타이는 또 경우가 다르지 않은가.

 

작가에 따르면 타이에서는 세 가지 터부가 존재한다고 한다. 하나는 푸미폰 국왕(재작년에 사망했다), 둘째는 불교 그리고 나머지는 타이를 실제적으로 지배하는 군부다. 진짜 타이 사람들이 경영하는 타이 레스토랑에 가보면 푸미폰 국왕은 물론이고, 왕족이 한 번이라도 방문했다면 사진으로 기록을 남겨 자랑스럽게 전시한다. 일본 사람에게 혼네와 다테마에가 있다면, 지극히 개인적인 타이 사람들 역시 자신의 본심을 외지인에게 잘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이주가 잦다 보니, 꾸준한 교우 관계를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휴대전화 보급률도 상당히 높아서 우리처럼 같은 번호를 십수년씩 유지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지경이다. 대신 수시로 바꾸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연락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고 작가는 분석한다. 어쩌면 그런 점이 가벼운 인간관계의 본질 아닐까. 또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의 뒤에서 하는 격렬한 험담도 한몫할 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술버릇도 나쁘다고 하니 거 참. 일본 사람들은 술을 마시면서 비로소 본심을 드러낸다고 하는데, 타이에서는 반대로 본심을 드러낼 정도가 되어야 술을 같이 마시게 된다고 했던가. 역시 나라마다, 민족마다 개성이 다른 모양이다.

 

어쩌면 타이에 진출하려는 기업들이 꼭 알아 두어야 하는 괜찮은 정도도 상당하다. 동남아 각국에서는 경제를 주무르는 중국계 화교에 대해 일종의 제약을 두고 있는 현실인데, 타이에서는 그런 것이 일절 없다고 한다. 다만, 언어에 대해서만큼은 무조건 타이말을 고집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언어로 민족간 동질성을 확보한다고 가정한다면, 적어도 타이에서는 타이말을 할 줄 안다면 같은 사람들로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타이에서 토지를 구입하려면 외국인 신분으로는 토지 구입이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상당히 많은 부분이 자유롭지만 또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다. 타이는 왕국답게 철저하게 신분제가 고착화된 계급사회라는 점도 놀랍다. 인근 미얀마만 하더라도, 사회주의 독재 덕분에 그런 계급은 사라지지 않았던가. 이웃 말레이시아 역시 무슬림 국가이다 보니 그런 철저한 신분제를 유지할 수 없을 텐데 또 타이는 상대적인 모양이다.

 

타이하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게이다. 일본처럼 천황을 필두로 한 국가주의가 성행하지 않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철저한 개인주의가 중심에 서 있다. 타인에게 피해만 주지 않는다면, 성 정체성이나 성적 기호 따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쩌면 침략전쟁을 일으켜거나 다른 민족의 혹독한 식민지배를 받지 않은 탓이지 않을까. 아시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일본과 더불어 외국의 식민지배를 받지 않은 나라라는 설명이 눈길을 끈다.

 

섹스산업 역시 관광대국 타이의 현주소를 드러내는 타이의 한 모습이기도 하다. 돈을 벌어 가슴을 갖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게이에서부터 시작해서, ‘팟뽕쇼’라고 알려진 방콕의 환락가 이야기는 또 어떤가. 그런데 여전히 다카노 히데유키 작가가 전하는 모든 리포트의 본질은 바로 타이 사람들의 품성에 관한 이야기다. 무더운 열대의 기후 덕분인지, 서늘한 곳을 좋아하고 우리의 입장에서 본다면 게으른 천성 그리고 모두가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부자병에 걸린 것처럼 보이는 허세를 품고 있다고 해야 할까. 국민 대다수가 불교도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지극히 현실주의자인 이중적 모습이야말로 오늘을 사는 타이 사람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아닐까 싶다.

 

타이하면 역시 식도락 이슈가 빠질 수 없을 것 같다. 일본 잡지에서는 한때 타이의 특이한 음식들에 대한 기사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던 모양이다. 타이 동북부 이산 지방의 ‘올챙이 요리’를 먹어 보겠다고 먼 거리를 달려 갔지만, 이미 올챙이들은 다 자라 개구리가 되었고 대신 논바닥을 긁어 잡은 이상야릇한 식재료들에 작가와 작가의 지인 Y씨가 도전하는 장면은 <극락 타이 생활기>에서 최고로 손꼽고 싶다. 나라면 아무리 현지 음식에 도전해 보겠다는 마음으로 그렇게 못할 듯 싶은데, 정말 눈 딱 감고 “빠직”하는 소리와 함께 개구리를 씹어 먹는 장면에선 정말 폭소가 터져나왔다. 날로 먹는 것이 아닌데, 시장통에서 어떤 벌레를 무턱대고 씹은 장면도 마찬가지였다. 또 한편으로는 1세계에 사는 이들의 포스트콜로니얼리즘 체험에 대한 리포트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 한구석이 불편해지기도 했다. 우리라면 그런 풍습이 없겠지만, 단백질 섭취가 원활하지 않은 타이의 오지에선 벌레를 먹는 것이 일상일 수도 있지 않은가. 다름에 대한 주관적 평가가 과연 옳은 가에 대해선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닌가 싶다.

 

엄청나게 큰 메콩강의 자이언트 메기를 먹어 보겠다고 불원천리를 마다하고 달려 가는 작가의 노고도 칭찬할 만하다. 하긴 요즘 우리네 인스타그램에도 먹부림 사진이 난무하는 걸 보면, 굳이 다카노 히데유키 작가만 탓할 것도 아닌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예전처럼 3미터나 되는 메기는 아니었지만, 적당한 사이즈의 녀석을 찾아 똠양꿍(토무야무쿤) 요리와 매운볶음 요리 맛을 봤다고 하는데, 결코 ‘혐오 식품’이 아니며 그렇다고 해서 진미도 아니었다는 보고다. 생선살보다는 육식성 메기의 특성상 육류에 가까운 맛이었다나. 기회가 된다면 나도 한 번 먹어 보고 싶은 생각이 잠시 들긴 했다.

 

그리고 보니 다카노 히데유키의 이 재기발랄한 타이 리포트는 20년 전 그야말로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다. 작가가 에필로그에서 기술하고 있듯이, 이 또한 농촌문화가 여전히 존재하던 시절의 타이 이야기일진대 지금은 또 타이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다. 또 한편으론 이런 괴짜 작가들의 진짜 타이 리포트의 도움을 받아, 동남아에서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일본 국가의 저력을 엿볼 수 있기도 했다. 우리네 정서상 일본 출신 돌아이 작가의 책이 우리나라에선 인기가 없는 모양이다. 계속해서 절판 품절이 되어 가고 있는데, 새로운 책은 나올 조짐도 안보이고. 한 시절 팬으로 아쉬울 따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