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에 독서 모임 때문에 다시 읽게
된 <올리브 키터리지>.

또 색다른 느낌이 든다. 이래서 책은
자꾸만 읽어야 하는 걸까. 어제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절반이나 후딱 읽어 버렸다.

기시감까지 등장하니 어찌 반갑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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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곽 안내서 - 제137회 나오키 상 수상작
마쓰이 게사코 지음, 박정임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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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골라서 읽기 시작한 이유는 단 두 가지였다. 하나는 나오키 상 수상작이라는 점 하나, 그리고 다른 하나는 기타모리 고를 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고 재밌더라는 입소문 때문에. 그런데 재밌긴 한데 왜 진도가 잘 나가지 않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꾸역꾸역 읽어내긴 했지만 기대 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에도시대 도쿄 요시와라 유곽에 있던 마이즈루야라는 기루에서 잘 나가던 ‘에이스’ 오이란(아마 게이샤하고는 좀 다른 것 같다) 가쓰라기가 연루된 실종사건을 파헤치는 미남자의 궤적을 쫓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일반적 기루와는 달리 기루에 등루하기 위해서 절차도 꽤나 복잡하다. 내레이터로 추정되는 미남자는 인물로 환영을 받으면서 등루에 앞서 히키테자야를 비롯해서 오이란의 시중을 드는 이들, 업자, 중개업자, 남자 게이샤 등 정말 다양한 인물들을 상대로 희대의 에이스 오이란 가쓰라기에 대한 면밀한 초상을 그린다.

 

그것은 마치 일본 문화를 규정해 버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몬>처럼 제각각 자기가 처해 입장에서 다른 이야기들을 토해낸다. 어느 이야기에는 진실이 숨어 있을 수도 있고, 또 어떤 이의 말에는 거짓이 숨어 있을 수도 있다. 가쓰라기 실종사건에 얽힌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서는 바로 그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미남자가 수집한 정보와 판단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어떤 정보를 취합하는지는 전적으로 작가가 조종하는 미남자의 판단에 달려 있지 않은가. 미지의 미남자는 어떨 때는 기루에 처음 출입하는 초짜처럼 행동하다가, 정보의 양이 많아지면서 은근슬쩍 눙을 치기도 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고수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쩌면 모든 판단은 독자에게 달려 있다고 말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독자가 가쓰라기 미스터리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매력적으로 보이는 도쿄 유곽에 대한 호기심과 좀 복잡하지만 인물관계도 그리고 그들이 소설 중에서 맡은 역할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그런 부분들을 제대로 짚지 못하다 보니 조금씩 책 읽는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후반으로 가면서 독서의 맥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미남자가 조금씩 흘린 정보대로 가쓰라기가 무가 출신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서 출발한 서사는 결국 복수극이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아울러 뛰어난 오이란이 되기 위해서는 뛰어난 외모는 물론이고, 손님과 밀당할 줄 아는 능력, 주변인에게 친절을 베풀어 좋은 인상을 남겨야 하는 그런 면모 등도 갖추고 있어야 한단다. 그런데 특히나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더더욱 그래야 할 것 같다. 한 번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는 가쓰라기는 바로 그 점을 이용해서 자신의 복수극을 완성하고 준비한 도피자금을 가지고, 낙적을 앞두고 모두가 방심한 틈을 타서 유유히 사라져 버린 것이다. 더 이상 기루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으니 다른 방식으로 자유의 몸이 되는 길을 선택했다고 해야 할까.

 

미미여사의 에도시대물은 나름 재밌게 읽었는데, <유곽안내서>는 좀 달랐던 것 같다. 너무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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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3-08 13: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 인물이 각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이것이 교차되어 전개하면 독자의 반응은 모 아니면 도입니다. 어떤 독자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어떻게 한 방향으로 전개될지 궁금할 겁니다. 그렇지만 작가가 쓰고 싶은 내용이 너무 많으면 독자들은 그 복잡한 이야기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이 소설은 후자의 경우인 것 같습니다.

레삭매냐 2017-03-08 14:09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에도시대 기루 문화에 대한 상세한 지식이
없다면 무리이지 않을까 싶네요.
단순히 유곽에 대한 관심만으로는 버겁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오키상 수상작이라고 해서 기대하고 달려 들었
다가 낭패를 본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오래 전 알라딘 간담회에 간 적이 있었다.

너무 오래 전이라 사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어쨌든... 당시만 하더라도 획기적인 당일배송이라는 시스템으로 후발 온라인 주자로서 업계 1위인 예스24를 누를 비장의 무기라는 그런 소리를 들었었다.

역시나 당일배송의 위력은 상상이상이었다.


그런데 사실 또 되짚어 보면 당장 읽어야 하는 책은 그렇게 많지 않다. 오늘 당장 읽지 않으면 죽는 그런 책이 어딨나. 그래도 왠지 당일배송이 주는 스피드감에 다른 온라인 서점보다 알라딘을 애용해 온 것 같다.


아마 처음 당일배송 시절에 우체국택배였던 것 같다. 그러다 현대택배로 택배사가 바뀌었다. 적응을 못했다. 현대택배는 말로만 당일배송이었지 이틀배송이었다. 특히나 내가 사는 곳은 더더욱이나. 그래서 어디선가 불평을 했더니, 특히나 우리 동네 현대택배가 말썽이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한동안 책과 만날 시간이 없어서 그러려니 했다.

그러다가 요 며칠 사이 뚜껑이 날라가기 시작했다.

이제 당일배송이라는 표현을 제발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예 당일배송 택배사 지정도 되지 않는다. 알라딘에서 이런 배송문제로 공지를 제대로 한 적이 있었던가? 계속해서 당일배송으로 고객을 현혹하면서 실제로는 당일배송이 안되고 있는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 회사에 책이 필요하다고 해서 애정하는, 아니 그동안 애정해 오던 알라딘으로 주문을 넣었다. 뭐 어제 저녁에 주문하거니 당일배송이 안되는 것 쯤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배송이 시작되었다는 깨톡과 함께 예상수령일이 자그마치 금요일이라는 거다. 오늘은 수요일이다. 그럼 주문으로부터 시작해서 4일 배송이라는 건가? 잠시 내가 미국에 사는 줄 착각했다. 짜증이 확 밀려왔다. 피곤하군.


말이 필요없다, 알라딘이 어서 빨리 신속하게 택배사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란다.

그리고 되지도 않고 있는 당일배송이라는 문구는 삭제하고 4일 배송이라고 당당하게 밝혀 주기 바란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책을 고객들이 뚜껑 날라가지 않고, 다른 온라인 서점을 이용할 수 있도록 말이다.

아 짜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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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맥(漂麥) 2017-03-08 11: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감 백배!!! 저도 바로 이 글을 쓰려다가 에이~ 안하고 말지... 하면서 글쓰기를 포기했는데요. 정말로 당일배송 저거 빼버렸으면 합니다. 괜히 밤늦게 혹시나 하고 기다린 1인...^^

레삭매냐 2017-03-08 11:48   좋아요 0 | URL
제가 사는 책이라면 이러지 않았을 텐데,
회사 책 주문하고 4일 배송예정이라고 하니 정말...
기가 막히네요.

cyrus 2017-03-08 13: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당일배송이 안 되면 택배 회사나 알라딘 배송담당 부서가 고객에게 배송 지연 문자를 보내야합니다. 그 정도면 웬만한 고객들은 참을 수 있어요.

레삭매냐 2017-03-08 14:07   좋아요 0 | URL
어느 회사나 다 그렇듯 다 부처이기주의죠.
발송 부서에서는 책 출고했으니 자기네 책임이 아니라고 할 것이고,
택배야 외주업체니 그쪽으로 문의해 보라 뭐 그런 식이겠죠.
아무도 책임지지 않으려고 할 겁니다 보나마나.
배송담당부서에서도 깝깝할 것이에요. 전사적으로 택배사 선정이 안
될 걸 왜 우리가 책임져야 하냐 뭐 이 정도.

이런 서비스를 안하니 뚜껑이 날라가는거죠.
어쨌든 빨리 택배사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네요.

데이지 2017-03-08 21: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사는 곳은 수도권이 아니라 당연히 저만 그런 줄 알았는데;; 수도권에 살아도 당일배송이 안되는군요 헐... 그럼 애초에 당일배송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데 왜 그럴까요 알라딘측에서도 당연히 인지하고 있을 문제인데 더 이해가 안가네요

레삭매냐 2017-03-09 08:58   좋아요 0 | URL
당일배송은 유니콘 같은 거죠 뭐.
사람들이 믿지만 실제로 볼 수는 없는.

더 기가 막힌 건 이틀 배송도 심지어
아니라는 겁니다.

알라딘고객센터 2017-03-09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더 만족스러운 서비스 제공해드리지 못해 송구합니다. 우체국택배는 출고 후 2일이 소요되는 것으로 수령예상일을 표기하고 있는데요. 해당 지역 중 일부 택배 불가 지역이 포함되어 있어 해당 우편번호 지역은 일반 택배 불가, 우체국택배 가능 권역으로 분류되어 있다 보니 당일배송 제외지역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해당 우편번호 소속 주소지를 택배 및 당일배송 가능/ 택배 불가(우체국택배 가능) 권역으로 세분화 할 예정입니다.
조만간 이 작업이 마무리되면 고객님 거주지역 또한 당일배송 가능하오니 참고해주시고, 서둘러 마무리하겠습니다. 지속적으로 현 주소지별 택배 가능여부를 업데이트 해 서비스 이용에 불편 없도록 하겠습니다.이후 이용중 불편사항은 고객센터 1대1상담 이용해 신고해주시면 신속히 해결해드리겠습니다. 편안한 시간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Athena 2017-04-05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습니다~! 매번 느끼는데요 타 업체에 비해 늦게 와요. 당일 배송인 것들 당일날 안오고 거의 다음날 왔습니다.
 
고향 하늘 아래 노란 꽃
류진운 지음, 김재영 옮김 / 황매(푸른바람)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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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다. 제법 두터운 책이었는데 잡은지 3일 만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다. 그 정도로 가독성이 뛰어나다는 반증이리라. 류전윈 작가의 장편소설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청제국을 몰아낸 중화민국 시절로부터 시작해서 중일전쟁, 해방 그리고 문화대혁명 기간에 이르는 장장 60여년에 걸친 격동의 시절을 마촌이라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해서 그려낸 작가의 실력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의 시작은 마촌 마을 촌장인 젊은 쑨뎬위엔이 목이 졸려 피살되는 장면이다. 마촌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지주계급 쑨 씨와 리 씨 집안의 알력다툼에서 파생된 살인청부사건이었다. 자고로 비밀이란 없는 법, 조상 대대로 촌장직을 도맡아온 리 씨 집안 리라오시가 배후에서 꾸민 일이었다. 신흥 지주계급의 가장 쑨라오위엔은 성급히 복수에 나서지 않고 분위기를 봐가면서 치밀하게 일을 꾸민다. 그것은 마치 민국 초기 공화주의자 쑨원이 군벌 위안스카이에게 고개를 숙인 형세 같다고나 할까. 공화주의의 물결리 넘쳐 나던 시기, 마촌 마을 역시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몇백년 동안 공고하게 유지되어 온 기득권 지배질서에 대한 작은 균열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위안스카이의 득세처럼 다시 촌장이라는 권력을 되찾아온 리라오시는 잠시 방심하기에 이른다. 결국 쑨 씨 집안 양자인 쉬다부이에 의해 차도살인을 당하게 된다. 이로써 쑨 씨 집안과 리 씨 집안은 대대로 원수지간이 된다.

 

다음 시절은 태군(일본군)의 입성으로 시작된 중일전쟁 기간인 1940년이다. 당시 중국 사람들은 자신들을 침략한 일본군을 둥양귀즈(东洋鬼子)라고 불렀다고 한다. 하지만 무력으로 자신들을 겁박하는 그들 앞에서는 태군이라고 정중하게 부를 수밖에 없었다. 양쪽 집안의 차세대 주자들인 쑨스건은 팔로군 장교로 그리고 리샤오우는 중앙군 장교가 되어 국공합작으로 일본군을 상대한다. 쑨마오단은 일본군에 협력하는 매국노로 등장한다. 알다시피 당시만 하더라도 민국 시절인지라 모든 조건에서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군이 천하를 쥐고 있는 형세였다. 하지만 인민의 군대를 표방하는 오합지졸 팔로군이 미래에 중원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고 누가 예상했을까. 카이펑 1고 출신의 쑨스건은 자신의 선택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회의에 빠지기도 한다.

 

국공합작으로 중앙군과 팔로군이 합심해서 일본군에 대항했으면 좋으련만, 언젠가 외적이 물러가면 서로 적으로 갈라설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는 두 군대는 항일전 중에도 항상 적대적일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설상가상으로 쑨 씨 집안과 리 씨 집안의 불화로 인해 쑨스건과 리샤오우의 사이도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였다. 쑨스건이 이끄는 팔로군은 일본군을 상대로 공을 세워 보겠다는 알량한 계획을 세웠다가 일패도지하고 엄청난 비극을 마촌 마을에 불러온다. 5명의 일본군이 항일 게릴라들에게 살해되자, 일본군 중대장은 현에 주둔 중인 모든 병력을 동원해서 마촌 마을에서 처참한 학살극을 벌인다. 마촌에 드리워진 죽음의 연대기가 시절을 마다하지 않고 반복된다.

 

자 다음은 해방이다. 압도적인 군세의 장제스 중앙군을 물리친 공산당이 마침내 대륙의 주인이 되었다. 국민당 시절에 내노라하고 행세를 하던 지주계급은 공산당 빈농단이 주도하는 토지개혁으로 몰락하게 되었다. 단지 몰락하는 것 뿐만 아니라 타도의 대상이 되어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빈농들 앞에 이끌려 나와 토지와 가산을 몰수당하고 비판받는 처지가 되었다. 민국 시절만 하더라도 지주 계급 앞에서 벌벌 떨던 이들이 세상이 바뀌어 주인을 대신하게 된 것이다. 그나마 팔로군 출신 쑨스건을 둔 쑨 씨 집안에서는 다행이었지만, 마촌에서 대대로 지주였던 리 씨 집안의 몰락은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였다. 그나마 자씨가 온건하게 토지개혁을 할 때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둥베이 지방에서 토지개혁을 경험했던 판씨가 새로운 공작원이 된 후에는 그야말로 가혹한 토지개혁으로 리 씨 집안은 결딴날 상황이 되었다. 결국 마을의 빈농 출신 자오츠웨이와 라이허상의 의기투합해서 지주 리원우의 집안을 콩가루로 만든다. 황무지 다황와에서 국민당이 남긴 못이자 잔적으로 활동하던 리샤오우는 집안의 복수에 나섰다가 공산당 정규군의 공격을 받아 체포되어 총살을 당한다.

 

이제 소설의 마지막 무대는 바로 문화대혁명이다. 지주계급을 척결하고 마을의 지배자가 된 자오츠웨이와 라이허상은 한 때 ‘야초’를 같이 뜯던 혁명동지였지만 마오쩌둥이 부추긴 권력을 타도하라는 허망된 구호에 힘입어 전투대와 조반단을 만들어 불화하기에 이른다. 서로를 주자파니 조반파니 비난하던 사이에 기름장수 리후루까지 가세해서 마을은 3개 파벌로 나뉘어 권력투쟁으로 세월을 보낸다. 그냥 입으로만 하면 좋았을 것을, 서로 상대방의 종이 되지 않겠다고 오기를 부리며 합종연횡이 난무하는 가운데 결국 유혈사태로 또 사람이 죽게 된다.

 

류전윈 작가는 네 개의 장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는 역사를 마촌이라는 작은 마을에 대입해서 풀어낸다. 대륙에서 장제스의 국민당과 마오쩌둥의 공산당이라는 거대 세력이 중원을 두고 사생결단에 나섰다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마촌의 상황도 역시 마찬가지였다는 것이다. 그가 다른 책들의 한국어 서문에서 말하고 있듯이, 서로 다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인간사가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작가는 문학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아무래도 해방군 출신 작가다 보니 공산당에 유리한 입장에서 서술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작가의 양심은 과연 혁명이 런민[人民] 혹은 라오바이싱[老百姓]들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하는 본질적 문제를 회피하지 않는다.

 

혁명이 약속했던 자유와 평등 그리고 민주주의가 과연 해방 이후 잘 지켜졌는가? 해방 후 공작원 자씨가 진행했던 대로 평화로운 방식의 토지개혁 대신 굳이 판씨의 과격한 방식을 필요했던 걸까? 얼마든지 원만한 방식의 개혁이 가능했지만, 공산당은 그런 방식을 원하지 않았다고 작가는 증언한다. 오랜 세월 낯을 대하고 살아온 작은 마을에서조차 불화를 조장하고, 하찮은 권력을 위해 사람의 생명까지 바쳐 가면서 투쟁에 나섰는데 국가단위의 권력투쟁은 오죽했을까. 한편, 중앙군 출신으로 총살대에서 죽어간 리샤오우의 말처럼, 공산당이 과거 적대세력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고 핍박하는데 그들이 반동이라고 부르는 악질분자들이 죽음을 불사한 저항이라는 선택 말고 무엇이 있었을까 싶다.

 

자그마치 세 세대를 여유롭게 오가며, 류전윈 작가가 구사하는 서사의 힘은 역시 대단했다. 아울러 소설 속에서 한몫하던 이들도 가차 없이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시키는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것은 마치 장강의 도도한 흐름 앞에 어느 누구도 버틸 재간이 없다는 암시였을까. 이 소설은 전쟁과 내전으로 그리고 문화대혁명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권력투쟁 가운데 수없이 스러져간 이들의 죽음을 노란꽃으로 승화시킨 류전윈 작가의 역작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금까지 읽은 류전윈 작가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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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디 때문에 아시아 문학선 12
류전윈 지음, 김태성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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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선생은 류전윈의 <말 한 마디 때문에>를 그의 대표작으로 보인다고 했었는데, 지난 달부터 꾸준히 류전윈 작가의 책을 읽은 바에 의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대 작가 옌롄커가 조금 큰 스케일의 서사를 구사한다면, 류전윈은 상대적으로 골계미가 가득한 소시민들의 삶에 천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전자도 좋고, 후자도 좋다.

 

이야기는 허난성 옌진 마을에 사는 양바이순[楊百順]의 고난에 찬 삶을 추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두부장사하는 라오양의 둘째 아들인 양바이순은 어려서 멋지게 함상하던 뤄창리를 동경하며 자랐다. 자식들이 그렇듯, 양바이순 역시 아버지의 두부장사 가업을 이어 받을 생각이 없다. 여전히 중국 전통의 도제 시스템에 따라 자기가 하고 싶지 않지만, 아버지와의 불화 때문에 집을 떠나고 싶어서 마구잡이로 일자리를 잡기에 이른다. 하지만 실(實)보다는 허(虛)를 추구하는 그의 본성 때문일까 이제 막 성인이 된 양바이순에게 돼지 백정일도, 염색공방에서 물긷는 일도, 대나무 쪼개는 일도 무엇 하나 진득하게 하는 법이 없다.

 

아직 어린 그의 품성 탓을 하기에 세상은 모질기 짝이 없다. 있는 그대로의 양바이순의 전력을 들은 이들은 하나 같이 끈기 없는 그를 탓하며 도제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그런 가운데 아버지 라오양은 아들 가운데 하나를 옌진신학에 진학시켜 현의 관리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착수하는데, 둘째 아들 양바이순 대신 양바이리를 보내기 꼼수를 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사실을 양바이순이 알게 되었을 때 아버지에게 느낄 배신감을 생각해 보라. 그리고 세상에 비밀은 없다고 바로 알게 되지 않던가. 알려지지 않는다면 문학에서 비밀의 존재 또한 필요 없는 서사의 부수적인 요소일 듯.

 

그렇게 형 대신 옌진신학에 진학한 양바이리가 열심히 공부에 전념했더라면 그나마 좋았겠지만, 양바이리는 친구 뉴궈씽과 어울려 시답잖은 말장난 같은 ‘펀콩’에만 열심이다. 황제조차도 자식 교육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더라는 일을 생각해 본다면 아주 이해가 안가는 일도 아닐 것이다. 옌진 현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현의 정책이 좌지우지된다는 것처럼, 현장의 스타일에 따라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그네들의 기구한 운명에 류전윈 작가는 자신의 골계미와 해학을 잔뜩 부여하기도 한다. 어쨌든 양바이리 역시 형 양바이순의 운명 못지않게 유전을 거듭한다.

 

유가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관혼상제 가운데 두 번째 덕목에 해당하는 자식들의 혼사 편에서도 느닷없이 부유한 집안과 혼담을 맺게 된 첫째 아들 양바이예의 케이스도 주목할 만하다. 잘 나가는 집안 친좌장의 친만칭이 한쪽 귀가 없다는 루머 때문에 혼담이 깨지게 생기자, 어느 집안과도 혼사를 맺겠다고 나섰다가 덜컥 두부장수 라오양의 집안으로 시집을 가게 된 친만칭, 명청시대 소설을 너무 읽어 소설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했다가 낭패를 당한다. 물론 이런 사건도 양바이순이 겪게 되는 후반부의 이야기들에 비하면 약과겠지만 말이다.

 

양바이순은 한 마디로 말해 불운의 아이콘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가 개입된 일들은 하나 같이 어그러질 뿐이다. 그러다 결국 40년 동안 옌진에서 달랑 8명밖에 선교하지 못한 이탈리아 선교사 출신 라오잔에게까지 의탁하게 되지 않았던가. 이름까지 양모세로 바꿔 가면서, 노력해 봤지만 낮에는 죽업사에서 대나무를 쪼개고 밤마다 라오잔 선교사로부터 교리 강의를 듣는 건 정말 곤욕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던 차에 원소절 행사에서 염라대왕 역을 멋지게 해내고 현장의 눈에 띄어 채마밭 관리인이 되어 그나마 숙식을 해결하게 되었다가, 만터우 가게 과부 우샹샹의 데릴사위가 되어 안정을 찾는가 싶었지만 오쟁이진 남정네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아, 만터우 가게 데릴사위가 되면서 우모세로 개명해 또다른 정체성을 얻기도 한다. 그 와중에 자신을 곤경에 처하게 만든 이들을 찾아 백정 시절에 갈고 닦은 실력을 보여주는 중국판 액션 활극의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집에 가고 싶어도 체면 때문에 다시는 옌진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그야말로 막다른 골목에 몰린 양바이순은 예전에 자신의 사부였던 라오왕을 찾아 서부로 길을 나서는 것으로 소설은 대단원을 막을 내린다.

 

<말 한 마디 때문에>에는 정말 수많은 인물들이 부침을 거듭하는데, 특히 류전윈 작가는 양바이순이라는 젊은이의 파란만장하고 기구한 삶을 쥐락펴락하면서 우리네 인생사가 기본적으로 새옹지마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모든 일들이 다 좋을 수만도, 그렇다고 나쁠 수도 없다고 류전윈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이 책 다음으로 내가 읽고 있는 <고향 하늘 아래 노란 꽃> 같은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거대 서사 대신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를 통해 우리와는 다른 중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원한 사이다처럼 뽑아내고 있다. 다름 속의 같음이 있었다고 했던가. 대륙이건 반도건 사람사는 이야기는 다 마찬가지가 아니던가.

 

어려서 함상하는 이를 동경하던 청년은 돼지 백정을 필두로 해서 다양한 직업군을 전전하면서 세상을 배운다. 주변의 친구들이라 믿었던 이들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안정을 찾기 위해 혼인했던 배우자의 불륜에 머릿속에 폭탄이 그야말로 ‘쾅’하고 폭발하기도 하고, 수양딸마저 잃어버린 젊디젊은 싸나이의 좌충우돌 성장기는 그야말로 애틋하다. 하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그놈의 말 한 마디 때문에 사람들의 삶이 얼마나 고달파지는지 우리는 정확하게 알 수가 있다. 그리고 세파에 흘러가는 대로 살던 청년 양바이순이 뚜렷한 자기주장이 생기고,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하는 것을 목격한다.

 

중국 허난성 옌진이라는 특정한 공간에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소설의 후반으로 갈수록 양바이순이라는 캐릭터에 흠뻑 빠져 들어서 가독성이 한층 상승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선교사 라오잔이 돼지 백정 라오쩡에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는지 그리고 자신이 누군인지 아느냐는 철학적이고 사변적 질문에 주저하지 않고 명쾌하게 대답하는 장면은 정말 소설의 압권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진리는 가까이에 있는 법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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