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들의 중국사
사식 지음, 김영수 옮김 / 돌베개 / 2005년 12월
평점 :
절판



중국사를 개인적으로 좋아한다. 파란만장한 인물들의 각축전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에는 정말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기 때문일까. 인물 중심의 역사에 대해 비판적이긴 하지만, 영웅 위주 특히나 제왕들을 중심으로 한 기존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 또한 사실이지 않은가. 중국 출신 작가인 사식이라는 양반은 역사 속에 특출난 인물들 중에서도 제왕 혹은 군주에 입각한 역사 이야기를 <황제들의 중국사>를 통해 들려주고 있다.


가장 먼저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인물은 바로 촉한 망국의 군주 2대 황제 유선이다. 모두 잘 알고 있는 삼국지 시대 촉한 황제 유황숙 유비의 뒤를 이어 두 번째 황제의 자리에 오른 금수저 인물이다. 당양 장판파 싸움에서 조자룡이 품안에 안고 목숨을 걸고서 구해낸 인물이 바로 아두 유선이다. 선대 황제 유비는 돗자리를 짜서 팔던 인물로 난세에 형주에 기반해서 익주까지 하고, 기원도 불분명한 중산정왕의 후예라는 타이틀로 한황실의 뒤를 잇는다는 그럴싸한 대의명분으로 황제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물론 그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되는 과정에서 제갈공명이라는 아주아주 특별한 인물의 보필이 중요했던 것은 불문가지일 것이다.


구제불능 뚝심으로 촉한을 건설하는데는 성공했지만, 수성에는 실패한 인물 또한 유비였다. 형주와 익주에 기반해서 동오와 협력해서 중원의 조조를 공략하는 것이야말로 천하삼분계의 핵심이었건만, 형주를 지키던 관우는 오만으로 똘똘 뭉친 사내였고 유비군의 전략거점이었던 형주도 지키지 못하고 자신의 목숨마저 지키는데 실패했다. 그마저도 어느 정치적으로 무마하고 다시 북벌에 나섰으면 좋았겠지만 똥고집장이 소열황제는 동오 복수전에 나섰다가 일패도지하고 그만 백제성에서 운명을 달리한다. 제갈공명만 믿던 2대 황제 유선은 철저하게 내정과 외치를 실력 있는 선수들에게 맡겼다. 제갈공명의 뒤를 이어 장완, 비위 등을 기용해서 수성에 나섰지만 천하의 2/3를 이미 지배하고 있던 조조왕국와 사마씨 정권을 이길 힘은 처음부터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유선을 나라를 말아먹은 무능한 군주라고 폄하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변명에 나선다. 근 40년 동안 최고지도자의 자리에 있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의 실력이 증명되는 게 아닌가라고 말이다.


다음 주자는 당나라 태종 이세민이다. 우리 조선시대 태종과 비견될 정도로 유능한 실력자이자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군으로 꼽히는 군주지만 그 역시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형인 태자 이건성과 아우인 제왕 이원길을 죽이고 대권을 가로챘다는 것이다. 공맹의 도인 장자상속을 거부하는 것도 모자라, 골육상쟁인 현무문의 변으로 형제들을 죽이고 제위에 오른 황제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래서 정치 9단이라고 할 수 있는 이세민은 죽은 형의 가신이었던 위징을 재상으로 발탁해서 이른바 정관의 치를 이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사식 작가는 다시 한 번, 황제 이세민에게 충직한 간언을 마다하지 않는 위징의 모습이 짜고 치는 고스톱, 다시 말해 쇼였다고 분석한다. 자신의 즉위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대중을 속이기 위해 재상까지 동원한 쇼가 대대적으로 연출된 것이다. 사형수들에 대한 사면 조치 역시 사전에 약속한 기간에 돌아온다면 사면해주겠노라는 선약이 되어 있었을 것이라고 후대의 지식인은(구양수였던가 잠시 헷갈린다) 날카롭게 분석하고 있었다. 대중들의 눈을 속일 수 있었을 지 몰라도, 모두를 속일 수 있는 건 아니었던 것이다. 왕권이 차차 안정되어 가면서 치세 초반 쇼의 약발이 떨어지면서 본성이 드러나기도 했다고 했던가. 왕희지 부자의 글씨를 모은 <난정서>를 탈취하는 방법 역시 제왕의 품격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레이황 교수는 제왕에게 현재의 도덕률을 적용시키는 건 무리라고 했었지 아마.


주전충이라는 이름으로 더 널리 알려진 후량의 창시자 주온의 모습은 또 어떤가. 사식 작가는 아예 살인마라는 소제목으로 그의 됨됨이를 단박에 정리하고 있다. 당나라 말기, 안사의 난 이후 발호하는 지방절도사들을 실제로 통제할 수 없었던 황실의 고민과 동시에 덕치로 도저히 다스릴 없는 상태가 된 군벌시대에 대한 고찰이 이어진다. 원래 황소 반란군 출신의 주온은 형세가 정부군에게 유리하게 돌아가자 이끌던 무리를 이끌고 투항해서 거꾸로 반란군 토벌에 나선다. 무자비한 처벌과 유력한 가신들과 양자관계를 맺으면서 주온은 마침내 당황실로부터 선양을 받아 제위에 오르게 된다. 살인마 황제 주온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사서의 기록 그대로 다 믿을 수 없을 정도다. 이런 작자도 오로지 무력의 힘으로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니 놀랍다.


청대의 옹정제와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문자옥이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전자는 이민족 출신 황제로 다수의 한족(漢族)을 지배하기 위해 만주족의 중원지배를 정당화하고 다른 의견을 사상적으로 탄압하는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논점은 명나라의 기운이 다했기 때문에 청나라가 천명을 대신한 것이라고 선전했지만, 명나라는 청나라에 의해 멸망한 것이 아니라 이자성의 농민군에 의해 멸망한 것이다. 이민족의 정복왕조를 정당화하기 위한 논리로서는 역부족이었고, 일반 대중을 설득하기에도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증정 사건을 통해 지식인을 포섭하고 <대의각미록>이란 책을 출간해서 선전에 나섰지만, 결국 자신의 아들이었던 건륭제 시대에 <대의각미록>이 금서로 지정되고 증정 역시 처형되고 만다. 역설적으로 자신의 아들에 의해 자신의 정책이 실패였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청나라 옹정제와 달리 주원장은 다른 이유에서 문자옥을 유발했다. 비천한 농민 혹은 도적 출신으로 홍건적 병졸로부터 시작해서 만인지상의 자리인 황제가 된 주원장에 대해서도 사식 작가는 냉정한 평가를 내린다. 양자강 인근의 남경을 근거로 해서 곽자흥의 부장으로 출발한 주원장은 몽골족의 원나라 조정에 대항하는 한족의 지도자로 추앙받았지만 실제로 원나라를 상대로 한 전쟁에서는 그다지 두각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다른 군벌들이 원나라와 총력전을 벌이는 동안, 내실을 다지고 있다가 두 마리 호랑이가 기운이 빠지자 그 틈을 타서 경쟁 군벌들인 한림아, 장사성과 진우량을 제압하고 나서야 비로소 원나라 정벌에 나섰다.


자신의 비천한 태생 덕분에 지식인 계급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주원장은 문서에 기록된 사소한 실수들을 빌미로 엄청난 문자옥을 일으켰고, 자신과 고락을 같이 하며 개국에 나섰던 공신들 역시 숙청의 피바람 속에 무사할 수가 없었다. 개국공신이었던 서달, 호유용 그리고 남옥 역모 사건으로 수만 명에 달하는 학살극을 벌였다. 이 모든 옥사의 이유를 자신의 태자에게 확고한 황제권을 물려주기 위함이었다고 변명했지만 이 역시 저자에게는 싸이코패스 킬러의 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 중국 황제들의 역사를 가늠하며 과거를 현재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망국의 군주로 만대의 비난을 받는 유선도 안락공이라는 이름의 사마 씨의 포로가 되었지만 즐거워 촉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고백하는 장면에선 제왕이기에 앞서 인간이었던 황제들의 속살을 엿볼 수가 있었다. 같은 망국의 군주로 죽으면서 남긴 <죄기조>에서 자신의 실수를 고백하고, 무고한 백성들을 해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 명나라 숭정제의 일화에서는 비장미마저 느낄 수가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국인 이야기 1 - 아버지의 시대
리쿤우, 필리프 오티에 지음, 한선예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이번에 중국 윈난 출신 리쿤우 작가의 <중국인 이야기> 합권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 냉큼 도서관에 가서 첫 번째 권을 빌려 왔다. 아쉽게도 1권만 나오고 나머지 권이 나오지 않고 있다가 이참에 통으로 나온 모양이다. 지난 달부터 계속해서 중국 관계 서적들을 섭렵하고 있는 중인데 어쩌면 올봄 독서의 궤적이 중국을 향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대학 시절 역사를 전공해서 그런진 몰라도, 역사책 읽는 속도가 소설 보다 더 빠르다는 건 안 비밀. 특히나 중국사에 대해서는 더더욱.


월초에 술 먹고 나서 책을 잃어 버리는 바람에 독서 슬럼프에 빠졌었는데 알라딘에 책 사러 가서 서서 읽은 <중쇄 미정>과 리쿤우 작가의 <중국인 이야기>로 완전히 독서 슬럼프에서 탈출하는데 성공했다. 역시 책읽기 슬럼프 탈출의 가장 좋은 방법은 만화 읽기가 아닐까 싶다.


서두가 길었다. 리쿤우 작가는 3년 전에 <내 가족의 역사>라는 그래픽노블로 처음 만났었다. 이번 <중국인 이야기>에서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방 세대인 작가 샤오리가 직접 겪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중국 남부 윈난성 쿤밍 출신으로, 아버지는 공산당 서기 출신 혁명가로 자본계급 부르주아를 경멸하는 골수 혁명당원이었다. 작가는 직접적으로 독재자 마오쩌둥을 비난하지 않고, 혁명 초기에 모든 인민이 우러러 보던 지도자의 영락성쇠를 있는 그대로 조명하고 있다.


제국주의 국가 영국과 미국을 따라 잡기 위해 모든 인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쇠붙이를 공출하는 장면은 이미 지난달에 읽은 옌롄커 선생의 <사서>에서 이미 접해서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쥐를 박멸하고, 파리와 모기 그리고 벼룩, 이와 전쟁을 벌이는 장면은 우리나라 유신 시절 새마을운동을 떠올리기도 했다. 인민을 동원하는 독재는 그런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걸까. 모두가 알다시피 그냥 약진도 아닌 대약진을 표방한 운동은 파멸적 기근으로 농촌과 도시 모두에 파멸적 결과를 불러왔다. 중국 역사상 최악의 장기간에 걸친 대기근으로 수를 파악할 수 없는 이들이 굶어 죽었던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수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중국의 귀중한 역사 유산들이 생산성 향상을 위해 파괴되는 참상을 작가는 재현해냈다. 오랜 세월, 착취와 억압 그리고 수탈을 견딘 인민에게 자유와 평등을 약속했던 혁명의 결과가 고작 기아와 죽음 뿐이었다니 허탈할 따름이다.


하지만 진짜 비극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조반유리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내세워 연이은 실정으로 권위가 약화되어 가고 있던 마오쩌둥은 십대 홍위병들을 동원한 문화대혁명으로 중국 전통 가치들은 모조리 파괴하기에 이른다. 극중에서 샤오리는 빼어난 그림 그리기 실력을 발휘해서 홍위병의 일원으로 인민의 적으로 규정된 이들은 공격하는데 앞장섰었던 참담한 사실을 고백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학교 교장으로 복무하던 이들이 고깔모자를 쓰고, 자신을 비판하는 글판을 목에 걸고 조리돌림을 당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그것도 자신의 제자들 앞에서. 이런 비정상적인 사태가 마오쩌뚱이 죽은 1976년까지 진행되면서 중국의 역사발전의 추는 미래가 아닌 퇴행적으로 진화되었고, 거의 한 세대에 대한 교육이 후퇴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한편, 열혈 공산당원이었던 아버지 라오리 집안이 지주 출신이었다는 사실이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밝혀지면서 아버지 역시 무사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재교육 수용소에 갇히고, 가족들은 지인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재난의 시기를 피할 수가 있었다. 1972년 인민해방군에 선전화가로 지원한 샤오리는 4년 뒤, 마오쩌둥이 죽었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한 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실감한다.

리쿤우 작가의 멋진 그래픽노블을 통해 아직까지도 중국에서는 위대한 영도자로 추앙받는 마오쩌둥의 실체를 다시 만나볼 수가 있었다. 우선 리쿤우 작가의 그림 스타일은 유럽 스타일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시나이로 작업을 맡은 필리프 오티에 덕분일까? 왠지 서구인이 그린 중국 역사라는 생각이 든다. 개인적으로 당대에 대한 좀 더 생생하고 디테일한 르포르타주를 원했지만, 모두의 뇌리에서 지우고 싶은 어두운 과거인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이라는 민감한 주제라 그런지 그런 디테일까지 기대하는 것은 무리였을까.


문화대혁명이라는 친위쿠데타를 통해 인민들 간에 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를 만들고, 오직 모든 권력을 독재자에게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집권연장에 성공했을지는 몰라도 이미 혁명공약은 폐기되었고 수년에 걸친 전쟁으로 피폐해진 삶을 역전시키기에는 지도부의 능력과 대내외적 조건들은 역부족이었다.


1부 <아버지의 시대>에서 국공내전의 승리 이후 격동의 시절을 다뤘다면 나머지 2, 3부에서는 아마도 개혁개방를 시대를 그릴 것 같다. 문화대혁명 시기에 숙청당한 덩샤오핑과 류사오치 그리고 천윈 그 중에서도 특히 작은 거인이라 불리며 오늘날의 신중국을 만든 덩샤오핑에 대한 이야기들이 기대가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중쇄 미정 - 말단 편집자의 하루하루
가와사키 쇼헤이 지음, 김연한 옮김 / 그리조아(GRIJOA)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애니북스에서 나온 출판물 <중쇄를 찍자>를 먼저 읽고 싶었는데 후발 주자인 <중쇄 미정>을 읽게 됐다. 연초 서적유통 업계의 송인서적 부도 사태로 도서유통을 의뢰했던 중소 출판사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는 뉴스를 들은 게 불과 얼마 되지 않은 느낌이다. 난마처럼 얽힌 출판업계의 관행 문제에서부터 시작해서, 무엇보다 이제는 더 이상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세태로 출판계의 불황 행진은 단군 이래 계속 이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도 책을 꾸역꾸역 읽는 동지들이 있는가 하면 활자 대신 모바일의 신세계에 빠져 책을 멀리 하는 이들도 있는 모양이다. <중쇄 미정>의 저자 가와사키 쇼헤이 씨는 일본 가상의 표류사라는 작은 출판사를 바탕으로 출판계를 다룬 멋진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마감에 쫓기는 편집자의 일상에서부터 시작해서, 오탈자 없는 책은 없다며 신출내기 편집자를 위로하는 편집장, 마작에 빠진 저자로부터 원고를 받아 내기 위해 마작판에 직접 뛰어 들어 손해를 만회하는 실력을 보여 주는 주인공의 모험담이 쉴 새 없이 전개된다. 역시 극화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재미도 있으면서 또 출판강국이라는 바다 건너 이웃 나라에서 소규모 출판사들이 거의 하루에 한 개씩 무너져 가는 현실에 대해서도 가감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 물론 수십만권씩 팔리는 베스트셀러를 취급하는 대형 출판사는 문제가 없겠지만, 권종을 늘리고 변덕스러운 독자들의 취향에 맞는 책을 만들기 위해 무엇보다 자신이 독자라는 입장에서 책을 만들고 싶다는 편집자들의 고군분투가 아주 실감나게 그려졌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편집자란 무엇일까? 가장 저렴한 비용의 문화생활을 위한 소재를 공급하기 위한 산업전사일까? 아니면 책의 창조자라고 할 수 있는 저자와 소비자인 독자를 연결하는 중매쟁이라고 해야 할까. <중쇄 미정>을 읽으면서 다양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계속되는 출판계의 불황을 도서정가제 탓으로 돌리기도 하는 것 같은데 독서 및 출판강국 일본에서는 전면적인 형태의 도서정가제가 실시되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온라인 서점을 중심으로 해서 자행되고 있는 도서할인율 때문에 할인을 처음부터 고려한 거품이 책 가격에 형성된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다. 책 가격이 비싸니 도서관이나 중고서점을 이용하게 되는 것도 사실이 아닌가. 사실 책 본연의 목적이 독서에 있다면 굳이 소장하지 않아도 읽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닐까? 물론 책이 가진 여러 가지 특성 중에 지질감이 느껴지는 물성과 소장에 도달하게 된다면 또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말이다.

 

일본 출판계의 또다른 특징이라고 한다면, 두 개 정도의 도서유통사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책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책의 유통을 위해서는 책을 전국에 뿌릴 도서유통사의 마음에 드는 것도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하루키 같은 초대형 베스트셀러 작가의 경우는 다르겠지만, 군소출판사들 같은 경우는 열심히 만든 책 샘플을 가지고 심판의 날에 앞서 배급수량을 판정받는 게 향후 이어질 중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작은 출판사일수록 중쇄를 찍어야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것 아닌가. 그만큼 책이 잘 팔린다는 말이겠지. 전국에 최소한 2,000명의 든든한 후원자들만 있다면 얼마든지 책을 만들겠다는 그들의 결기가 남다르게 들렸다. 어느 출판사 사장님은 예전에 술자리에서 전국 2,000개 도서관에서 납본할 수만 있다면 꼭 찍고 싶은 책이 있다고 말하셨지 아마.

 

기획회의에서 잘 팔릴 책을 만드는 게 중요하냐 아니면 편집자들이 만들고 싶은 책을 만드는 게 중요하냐는 논의를 보면서, 어쩌다 걸리는 베스트셀러 책을 발판으로 삼아 안 팔리지지만 소수의 독자를 위한 책을 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 어느 편집자의 말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게 우리의 엄연한 현실이니까. 세상 사람들이 모두 김밥이나 짜장면만 먹는다고 생각해 보시라 얼마나 답답한가. 가끔은 파스타도 먹고 삼겹살도 먹어줘야 하는 게 아닌가. 하긴 또 누군 그걸 주식으로 삼을 지도 모르겠지만.

 

역시 출판사도 사업을 영위해야 하고 이익이 중요하기 때문에 분기 말 결산을 앞두고 표류사 직원들이 한 데 모여 배틀 로열을 하는 장면은 정말 압권이었다. 보너스를 지급하라는 주장과 유급휴가를 보장하라는 요청이 난무하고, 책을 더 팔아먹기 위해 이벤트도 하고 영업력을 강화하라는 장면을 보니 세상사는 건 어디나 다 똑같구나 싶어졌다. 물론 그들은 문화사업의 최전선에서 우리 독자를 위해 대신 싸우는 전사들이라는 점이 다를 뿐.

 

배틀 로열이 끝나고 연이은 적자 때문에 도산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듣고 돈 많이 받는다며 편집장이 사표를 날릴 쯤, 갑자기 등장한 싸장님이 자신이 가진 산을 팔아 손해를 벌충하겠다며 나선다. 멋진 싸장님이 아닐 수 없다. 물론 만화 같은 설정이 아닐 수 없겠지만. 뭐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아무리 출판업계를 다룬 만화라지만, 만화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은가.

 

지난 화요일날 회식 때 들고 다니던 책도 잃어버리고 잠시 책읽기 슬럼프에 빠졌었는데, <중쇄 미정>으로 본궤도에 올랐으면 하는 그런 바램이다. <중쇄를 찍자>도 읽고 싶은데 타이밍이 좀 엇갈렸다. 이제 진짜 봄이다, 책읽기에 더욱 매진하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닭털 같은 나날
류전윈 지음, 김영철 옮김 / 밀리언하우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지난 주말 모두 세 권의 중국 소설을 읽었다. 한국 소설보다는 영미소설을 주로 읽는 편인데, 간만에 중국 소설을 읽다 보니 색다른 재미에 빠져 자그마치 세 권이나 읽게 됐다. 세 권 모두 처음으로 만나는 옌롄커와 류전윈 작가의 책들로 가독성이 뛰어나서 바로 바로 다 읽을 수가 있었다. 이 책은 중국문학 번역의 일가를 이룬 김태성 씨 대신 김영철 씨의 번역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 류전윈 작가의 책이라고 했던가. 황석영 선생이 극찬했다는 띠지가 눈에 띄었다.


<닭털 같은 나날>은 동명의 소설과 <기관> 그리고 <1942년을 돌아보다> 이렇게 세편의 중편소설을 한데 묶은 소설집이다. 첫 번째 주자로 등장한 표제작 <닭털 같은 나날>은 출근 전 두부를 사야 하고, 근근히 살아가는 우리네 삶과 별다를 게 없는 처지의 주인공 린의 가정사를 다루고 있다. 육아전쟁을 치러야 하는 우리의 현세태를 그대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많은 공감이 갔다. 출산과 육아 모두 개인의 책임이 되는 세상에, 인구절벽이 눈앞에 있다며 호들갑을 떨면서도 정작 지난 10년 동안 엄청난 비용을 출산장려에 사용했지만 별무소용이라는 뉴스가 떠올랐다. 취업, 주거비용 등 모든 삶의 지표가 바닥을 치는 현실세계에서 자력으로 아이를 낳고 기르라는 구호가 허망할 따름이다.


대처에 자리 잡은 린에게 극성스러운 각다귀 떼처럼 달려드는 고향 사람들을 대접해야 하는 암묵적 관계에 대한 이야기도 주목을 끈다. 합리적 관계보다는 연줄에 인연을 대는 시스템적 문제라고나 할까. 병에 걸려 도움을 받을까하는 심정으로 고향 은사도 비슷한 사정으로 주인공을 찾지만, 아내 리의 퉁명스러운 대꾸에 체면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다. 무서운 속도로 후진 사회주의 국가에서 시장경제를 도입한 개발도상국으로 발전했지만, 그 이면에는 이런 관계의 파괴가 부산물로 떡하니 자리잡고 있더라는 류전윈 작가 나름의 비판이라고 해야 할까. 붕괴된 공동체주의를 대신한 소가족 중심 이기주의 발호가 엿보였다.


아내와 협력해서 아이 돌보기에 게으른 가정부를 비난하는 장면, 아내의 이직을 위해 인맥을 동원해서 청탁을 넣었다가 망신을 당하기도 하고, 아이 유아원 입학을 위해 전전긍긍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다가 앙숙이었던 이웃의 도움으로 간신히 원하는 유아원에 들어갔지만 그것 역시 다른 꿍꿍이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찝찝해 하는 주인공의 심리묘사가 어쩌면 그렇게 우리네 그것을 적확하게 겨냥하고 있는지 놀랄 지경이었다. 그것은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고나 할까. 한편으로는 여전히 모두에게 공평무사한 시스템 대신 고놈의 “꽌시”에 좌우되고 있는 중국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냈다고나 할까.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유효한 ‘관계’에 얽힌 이야기들이 새삼스럽지 않았다.


다음 주자인 <기관>에서는 좀 더 사회주의/공산주의 중국의 이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직장에 종사하고 있는 일단의 인물들이 잇따라 등장한다. 사건의 발단은 장의 부국장 승진이었다. 파벌에 의해 간부가 될 기회를 가지지 못했던 장이 파벌 다툼에 의해 어부지리로 승진하게 되자, 원래 있던 부처에서 승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보이지 않는 사투가 벌어진다. 느닷없는 차오 여사와 스캔들로 낙마할 위기에 처한 장 부국장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진진하고, 승진을 위해 잠시나마 감정을 감추고 합종연횡 하는 장면이 마치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 전국시대에 펼쳐지는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뒤에서는 뒷담화로 열을 올리기도 하지만, 또 앞에서는 비굴한 모습을 보이며 날카로운 발톱을 감추고 아부하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스물아홉 살 먹은 린의 직장생활 적응기는 헬조선에 사는 우리 청년들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어 더 공감이 갔다. 입사 초기, 치기 어린 청년처럼 행동하던 린은 직장 생활 4년 만에 비로소 자신이 직장에서 보여준 태도로는 도저히 승진이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다. 그가 승진에 목을 매게 된 궁극적인 이유는 보다 나은 주거공간의 확보다. 평사원 입장에서는 타인과 함께 사는 합거를 해야 했는데, 거의 생지옥 같은 합거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라면 남들은 먹다 남은 배 껍질을 치우는 허드레 청소부터 시작해서, 장 부국장의 이삿날 전심전력으로 하는 노동도 마다하지 않을 태세다. 생존을 위해 기본적 존엄마저도 부정하게 만드는 냉혹한 사회주의 평가 시스템의 부조리를 고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게다가 당원이 되기 위해 차오 여사에게 아부도 마다하지 않지만, 역효과만 내고 승진과 입당이 연달아 거절되는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보잘 것 없는 감투와 주거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직장에서 벌어지는 요지경 같은 암투에 대한 디테일이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마지막 작품인 <1942년을 돌아보다>는 유사 기록문학 같은 르포르타쥬 형식의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세 소설 중에 최고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1942년,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표현으로는 민국 31년 류전윈 작가의 고향 허난성에는 기록적인 가뭄과 메뚜기떼의 습격으로 상상을 초월하는 대규모 기아가 발생했다. 무려 3,00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잠정적 기아피해자였고 그 중에 1/10에 해당하는 300만명이 기아사태로 숨졌다. 당시의 참상은 <타임>지 특파원이었던 테오도르 화이트 기자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렇다면 당시 중국의 지배자이자 기아사태를 해결하지는 못해도 완화시킬수 있는 장제스 위원장은 도대체 무얼 하고 있었단 말인가?


애석하게도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조국에 대한 걱정과 항일전을 이끌어야 할 장 위원장에게 기아사태는 모든 것에 우선한 과제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각급 단위에서 상신된 보고는 가볍게 무시됐다. 한 마디로 말해 과장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설상가상으로 기아에 시달리는 허난성 농민들에게 부과된 현물세와 군량에 대한 경감조치 역시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아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고향을 떠나 기아 난민이 되고, 도처에 널린 시신이 개에게 뜯어 먹히는 장면과 참혹한 실상에 대한 기사가 외신기자에 의해 세계로 타전돼도 실상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지도자는 충칭 황산에 있는 안락한 거처에서 “맛있는 커피”를 즐기고 있었노라고 저자는 증언한다. 웃기는 일화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사건이 미국 언론에 의해 공개되었을 당시 미국을 방문 중이던 장제스 위원장의 부인 쑹메이링 여사는 타임지에 연락해서 이렇게 해괴한 사건을 보도한 화이트 기자를 해고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그것은 미국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도 불가능한 일이었노라고 작가는 첨언한다.


이렇게 국가의 기반이 되는 백성들을 돌보지 못한 정부에 충성할 필요가 있었나 하는 질문에 대해 허난성 농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발적으로 자신들을 침략한 일본군에 협력하는 길을 선택했다고 기록한다. 국가에 충성된 자로 굶어 죽느냐 아니면 매국노로 살아남느냐에 대한 갈림길에서 선택은 뻔하지 않은가. 허난성을 침공한 6만의 일본군을 도와, 농민들은 자발적으로 30만명에 달하는 자국 군대의 무장해제를 실시했다. 한편 부패한 장제스 정권에 대한 작가의 비난은 역설적으로 해방 이후, 마오 정부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지 않을까? 작가의 다른 소설인 <핸드폰> 주인공 옌셔우이의 어머니도 마오쩌둥이 지휘했던 대약진운동 시기에 아사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비록 제국주의자들의 지배에서 해방됐다고 해도, 민생고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다는 것이다. 위정자들의 잘못된 정책과 집행 때문에 수많은 인민들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지만 그들이 어떤 책임을 졌던가?


“굶어 죽는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대체 언제를 말하는 게냐?” (191쪽)


르포르타쥬의 저자가 사건의 취재를 위해 자신의 할머니에게 기아 사태에 묻는 말에 답한 할머니의 말이다. 중국 소시민들의 집단기억 속에 존재하는 기아사태란 특별할 것이 없다는 투로 들린다. 제국주의에 대한 위대한 농민혁명의 성취라는 공산당의 선전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민국 31년의 기아사태가 마지막이었다면 좋으련만, 사회주의 국가 시절에도 기아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대기근이 천재(天災)가 아니라 인재(人災)라는 표현에 절절하게 공감할 수가 있었다. 장제스 위원장을 조종해서 기아사태를 막아내는데 성공한 것을 자랑하는 서방외신기자들에 대해서도 불편한 감정을 감추지 않지만, 나름 그들의 공헌에 대해서도 공정한 내리는데 인색하지 않다. 공은 공대로, 과는 과대로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받아들이라는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따름이다.


내가 처음으로 만난 류전윈 작가의 소설들은 기대 이상의 아우라를 품고 있었다. 이웃나라에서 치열한 현실세계를 외면한 허무맹랑한 신변잡기류의 작품들이 범람하는 시절의 문학가들 보다 훨씬 뛰어난 신사실주의로 무장하고, 경제적 불이익이나 판금조치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고 매서운 비판의 필력을 구사하는 이들이야말로 짝퉁천지 짱꼴라의 나라 중국의 희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선두에 서 있는 작가 류전윈의 작품활동에 박수를 보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982년 <블레이드 러너 2019>가 나왔다. 하지만 스필버그의 <E.T.>에 열광하던 대중들은 아무도 리들리 스콧의 이 우울하기 짝이 없는 영화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대로 잊혀지는가 했던 <블레이드 러너>는 오랜 시간이 지나 재평가 받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저주 받은 싸이파이 영화 걸작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주인공 릭 데커드 역할을 맡은 해리슨 포드는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와 조지 루카스와 스티븐 스필버그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인디애너 존스>로 일약 스타 반열에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영화계 주류 입장에서 볼 때, 신참내기였을 뿐이다. 영화의 배경은 사시사철 화창한 날씨의 라라랜드 로스 앤젤레스가 아닌 미래의 우울하기 짝이 없는 항상 스모그로 가득하고 비가 내리는 디스토피아 로스 앤젤레스다.

 

인류는 타이렐 코포레이션에서 거의 인간과 유사하게 만들어진 안드로이드 넥서스 6 시리즈를 이용해서 인간이 갈 수 없는 외계 행성 개척에 나선다. 인간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로봇이 아닌 스스로 사유할 수 있고 감정까지 가진 이 안드로이드들을 레플리컨트라 불렀다. 신체적으로 인간보다 월등한 능력을 가진 레플리컨트들의 반란으로 곤욕을 치른 인간들은 지구별에 이들이 들어오는 것을 철저하게 금지했다. 그것은 마치 성경 속에 등장하는 에덴 동상에서 쫓겨난 인간들과 같은 신세라고나 할까. 그들을 찾아 제거하는 것을 처형(execution)이라고 부르지 않고 은퇴(retirement)라고 불렀던가. 게다가 인간처럼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일단의 레플리컨트들은 생명연장을 위해 지구에 잠입해 자신들을 창조한 타이렐 코포레이션에 침투를 기도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4년 뿐이다.

 

전직 경찰 데커드에게 지구에 은밀하게 침투한 레플리컨트들을 제거하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영화 오프닝에 등장한 첫 번째 레플리컨트 레온을 필두로 해서, 전투형 레플리컨트 로이 배티(룻거 하우어 분), 프리스(대릴 한나 분)와 조라가 그 타겟이다. 오프닝에서 레플리컨트인지 아닌지 밝히는 보이트캄프 테스트 시연 중에 레온은 심문자 홀든을 총으로 쏘고 탈출한다. 한편, 데커드는 타이렐 코포레이션의 수장 엘든 타이렐 박사의 조수 레이철(션 영 분)에게 역시 같은 보이트캄프 테스트를 한 결과, 기억이 이식된 실험적 레플리컨트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그녀가 자신이 인간이라고 믿는 레플리컨트라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레온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질문이 필요했다.

 

데커드의 아파트를 찾아온 레이철은 자신의 과거 사진을 데커드에게 보여 주며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애쓰지만, 그 사진은 타이렐의 조카 사진이었다는 사실을 말해 주며 그녀를 절망에 빠뜨린다. 한편, 로이 배티와 레온은 레플리컨트 안구제조 기술자 JF 시배스천이 타이렐 회장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은밀하게 다른 레플리컨트 프리스를 이용해서 신뢰를 얻는다.

 

레온의 아파트에서 증거를 찾던 데커드는 조라의 인조 뱀껍질 사진을 발견하고 그녀가 스트립클럽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조라를 찾아 은퇴시킨다. 상사인 브라이언트로부터 데커드는 타이렐 코포레이션에서 사라진 레이철 역시 은퇴시키라는 명령을 받는다. 레이철을 군중 속에서 찾아낸 데커드는 순간 레온의 공격을 받고, 레이철은 데커드가 떨어뜨린 총으로 레온을 ‘은퇴’시킨다.

 

로비 배티는 시배스천의 아파트를 찾아 프리스에게 나머지 동료 레플리컨트들이 모두 죽었다고 알리고, 시배스천과 함께 타이렐 회장의 펜트하우스를 찾는다. 자신의 생명을 연장해 달라는 단도직입적 요구에 타이렐 회장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하고 그 역시 로이 배티의 손에 죽음을 맞는다. 4년의 라이프스팬 연장을 위해 많은 연구를 했는지 로이 배티는 다양한 가설을 제시하고, 타이렐 박사는 하나하나 반론으로 피조물의 요구를 좌절시킨다. 직접 화면에 등장하지는 않지만, 시배스천 역시 로이 배티에게 죽었다는 보고를 데커드는 무전으로 전해 듣는다. 시배스천의 아파트를 찾은 데커드를 시배스천이 수집해 놓았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의 마네킹들 가운데 매복해 있던 프리스가 공격하고, 데커드는 프리스마저 영화의 무대에서 은퇴시킨다. 레저용 레플리컨트인 프리스에게조차 쩔쩔 매는 데커드에게 개프는 솜씨가 대단하다고 칭찬하는데, 과연 칭찬이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여전히 로스 앤젤레스에서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 로이 배티와 데커드의 마지막 대결이 펼쳐진다.

 

로이 배티와 나머지 레플리컨트들이 타이렐 박사에게 원하는 건 단 하나다. 바로 생명연장, more life. 그런데 안드로이드를 만든 인간에게도 그런 능력은 없다. 인간 자체가 유한한 존재이지 않은가. 유한한 존재가 창조한 피조물이 유한할 수밖에 없다는 건 너무나 당위의 문제가 아닌가. 더 살고 싶다는 지극히 인간적인 안드로이드의 욕망 앞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블레이드 러너>가 필립 K 딕의 <안드로이드는 전자양을 꿈꾸는가?>을 원작으로 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소설도 읽어 봤지만, 영화의 이미지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1980년대 이 저주 받은 걸작에는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들이 산재해 있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으로 보이는 안드로이드가 지닌 인간성에 대한 질문으로부터 시작해서, 지나친 난개발로 인한 환경 재앙, 다양하게 차용된 신화적 구성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예의 숨은 코드들을 찾는 데서부터 어쩌면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신화가 시작된 건 아닐까.

 

우선 데커드가 은퇴시키는 레플리컨트들은 모두 여자다. 전직 경찰인 데커드는 레온이나 로이 배티 같은 강력한 남성 전투형 레플리컨트의 적수가 아니었다. 게다가 그를 따라 다니며 감시 혹은 조종하는 역할을 맡은 개프가 남기는 오리가미가 상장하는 면모들을 고려해볼 때, 데커드 역시 레플리컨트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자아낸다. 레이철이 인간의 기억이 이식된 최신형 실험 레플리컨트라면, 데커드는 레플리컨트를 은퇴시키기 위해 개발된 진화된 레플리컨트가 아니었을까. 로이 배티가 자신을 창조한 타이렐 박사를 만나 수명을 늘려 달라고 협박하는 장면과 자신의 창조주를 결국 죽음이 이르게 하는 과정은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연상시킨다. 창조주의 역할은 창조에 그치고, 그 창조에 역행하는 소멸의 몫은 결국 피조물의 담당이라는 상징이려나.

 

데커드 역시 자신이 인간이라고 생각하면서(만약 그가 레플리컨트라면), 진짜 레플리컨트 레이철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역설은 또 어떻게 설명한 것인가. 타인의 기억까지 이식된 안드로이드를 만들 수 있다는 상상력은 또 어디서 유래한 걸까. 진짜 같은 가짜가 진짜를 대신한다는 이야기는 더 이상 낯설지도 않지만. <블레이드 러너>에 등장하는 안드로이드들은 처음에는 인간을 모델로 해서 만들었지만, 갈수록 기쁨, 분노, 좌절 같은 감정들을 개발할 수 있는 걸작품이라는 설명이 등장한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안드로이드의 정체성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데커드에게 레플리컨트 사냥을 의뢰한 캡인 브라이언은 처음에 6명의 레플리컨트들이 우주선을 탈취해서 지구에 잠입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은퇴 순으로 보자면, 생명연장을 위해 타이렐 코포레이션에 침투하다가 감전사한 한 명을 제외하고 조라, 레온, 프리스 그리고 로이 배티가 차례로 죽음을 맞는다. 그렇다면 다른 한 명의 레플리컨트는 어디로 간거지? 브리핑할 적에도 다른 한 명에 대해서는 아예 정보도 제공되지 않는다. 그래서 혹자들은 남은 한 명의 레플리컨트가 데커드라는 가설을 세우기도 했다. 기억도 이식(임플랜트)이 되는 마당에, 데커드를 만드는 건 아무 것도 아니지 않을까. 물론 2049년까지 그가 살아 남았으니 레플리컨트가 아니라는 반증이 되려나.

 

그리고 자그마치 35년이라는 시간이 흘러 영화의 마지막에서 불투명한 미래 속으로 레이철과 함께 도주를 감행했던 데커드가 다시 돌아왔다. 이번에는 새로운 파트너 라이언 고슬링과 함께 2049년의 로스 앤젤레스를 배경으로 한다. 신비하면서도 음울한 배경을 고조시키는 음악은 프리퀄에서 신디사이저의 제왕 반젤리스의 배턴을 이어 받아 아이슬랜드 출신 요한 요한슨이 맡았다고 한다. 트레일러에 나온 부분만 듣고서 혹시 반젤리스가 아닌가 싶었지만 유사했지만 다른 작곡가가 맡은 모양이다. 전작에서 연출을 맡았던 리들리 스콧이 총제작을 맡았고, 캐나다 출신 감독 드니 빌뇌브가 시퀄의 연출을 맡았다. 지난 여름부터 촬영에 들어갔고, 8월 25일에는 헝가리 오리고 스튜디오 현장에서 구조물 해체 중에 건설 노동자가 죽는 사고가 발생하는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고 한다. 촬영은 11월에 헝가리에서 완료됐고, 12월부터 로스 앤젤레스에서 편집 중에 있다는 뉴스다.

 

2008년에 시퀄 프로젝트에 참가했던 관계자에 따르면, 내러티브는 레플리컨트들이 활약했던 외계 미개척지에 대한 부분과 타이렐 회장이 죽은 뒤 벌어진 일 등에 대해 다뤄질 예정이라고 했지만 여전히 내용은 어떤지 베일에 가려져 있는 현실이다. 드디어 공개된 트레일러를 보면, 라이언 고슬링이 해리슨 포드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버려진 건물 외벽에 한글로 “행운”이라는 말이 씌여 있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한국 사람들을 제외하고 그 단어가 가진 의미를 이해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그 행운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영화 개봉은 2017년 10월 6일, 앞으로 221일 남았다.

 

[뱀다리] <블레이드 러너>가 우리나라에 처음 비디오로 출시되었을 때, 제목이 <서기 2019>이었다고 한다. 흥미롭군.


댓글(1)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7-02-28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21일이라... 지금은 한참 멀었지만, 시간이 금방 가게 되면 어느덧 영화 개봉일이 다가올 거예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