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로마사 1 - 1000년 제국 로마의 탄생 만화 로마사 1
이익선 지음, 임웅 감수 / 알프레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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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도착순서 때문에 이익선 작가가 쓰고 그린 <만화 로마사>2권부터 읽게 되었다. 책의 서문에는 감수를 임웅 선생이 맡았는데 왜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로마사를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들어 있었다. 보통 사람은 경험에서 배우고,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운다는 말이 있다는데 현명해지기 위해 그리고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겐 역사를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울러 감수자는 어느새 로마사하면 모두가 알게된 시오노 나나미의 영웅 엘리트주의에 대한 냉정한 비판도 마다하지 않는다. 얼토당토않은 국정교과서의 등장으로 가짜 역사가 판을 치는 세상에, 우리는 고대인의 지혜를 빌릴 정도의 수준이 되었는가 싶어 기분이 찜찜해졌다.

 

모두가 알다시피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가 로마를 건국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전에 이미 아이네이아스라는 트로이전쟁의 망명자가 알바롱가에 원시 로마를 세웠다는 전설이 구전으로 전승되어왔다. 로마 이전에도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서양 문화의 원류가 되는 그리스 미케네 문명을 필두로, 예의 미네케 문명을 초토화시키고 그리스에 암흑시대를 가져온 도리아인들의 내습 그리고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대결로 유명한 도시국가 시절도 빠지지 않고 저자는 언급하고 있다. 당시 지중해의 패권을 다툰 두 세력은 그리스와 페니키아인들이 북아프리카 지금의 튀니지 부근에 세운 카르타고였다. 그에 비하면 라틴인들의 로마는 조그만 부락에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대전쟁에서 패한 망명자들이 세운 소국 로마가 세계적인 대제국으로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어떤 진실이 숨어 있는 걸까. 로마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로마의 관용(클레멘티아)과 포용력을 그 첫 번째 이유로 꼽을 것이다. 고대사회에서 공동체의 배타성은 필연일 수밖에 없었다. 오로지 혈연으로 구속된 관계만이 온통 적대적인 환경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방인들에게 기본적으로 배타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테베레 강변에 건국한 도시국가 로마는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자원도, 고대 시대에 국가경영에 필수적인 인력도 턱없이 부족했다. 그렇게 때문에 한때 적이었던 상대까지도 생존을 위해 포용할 수밖에 없는 그런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런 소국 로마의 약점이 대제국으로 가는 과정에서는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큰 장점으로 작동했다는 것이다.

 

로마의 초대왕이었던 로물루스는 생산인력의 재생산에 필수적인 여인들을 이웃 사비니 부족에게서 약탈하는 방식으로 처리했다. 훗날 로마의 특징을 이루게 되는 무력에 의한 제압이 하나의 국가적 방식으로 채택되는 순간이었을까. 사비니 여인의 납치 사건은 관용과 포용을 상징하는 로마의 한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되었노라고 작가는 분석한다. 이 사건은 훗날 르네상스 시대 혹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회화의 한 가지 인기 주제가 되어 니콜라 푸생이나 자크 루이 다비드 같은 화가들에 의해 재탄생하기도 했다. 그들의 그림을 보면, 로마 시대의 복원보다 당대의 상황에 맞는 복식으로 재창조했다는 점이 눈에 띄기도 한다.

 

건국 이래 250여 년 동안 로마는 왕정시대였다. 일종의 부족연합체였던 로마의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는 라틴인에, 그들이 주변에서 납치해온 사비니 계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로마 원주민들은 농업에 주로 종사했는데, 훗날 로마에 새로 합류하게 되는 에트루리아인들은 상공업에 능통한 상인과 기술자들이 많았다. 거의 전쟁을 날을 지새우다시피 하는 상황에서 병장기를 만들 에트루리아인들의 존재는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다수 공공건축물의 수요 역시 그들의 도움을 필요로 했다. 이렇게 구성된 다민족 국가 초기 로마의 모습은 어느 사회나 그렇듯,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라틴인과 사비니인 그리고 에트루리아인 간의 갈등을 잉태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로물루스의 뒤를 이어 추대에 의해 두 번째 로마 왕이 된 철학자 같은 사비니계 누마 폼필리우스는 로마인들 간의 갈등을 잠재우고 사회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 종교를 이용하기에 이른다. 훗날 기독교를 국교로 삼기 전까지 로마 사회는 기본적으로 열린 다신주의 시스템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로마의 상징처럼 된 야누스 신전을 세우고, 왕이 스스로 대신관(폰티펙스 막시무스, 공화정 말기 카이사르도 대신관을 역임했다)이 되어 국가 제의를 주관하면서 무례하고 난폭한 성정의 로마 시민 교화에 나섰다. 다시 라틴계 툴루스 호스틸리우스가 3대 왕위에 올라 라틴 원조국가라고 할 수 있는 이웃 알바롱가를 복속시키고 로마인으로 받아 들여 본격적 세력 확장에 나선다.

 

4대 왕 앙쿠스 마르키우스는 테베레 강 어귀의 오스티아를 정복하면서 비로서 지중해로 나가는 관문을 여는데 성공했다. 그의 시대에 등장한 에트루리아인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는 이방인으로 선거를 통해 왕위에 오르는데 성공한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다른 사회에서라면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이방인 출신 왕의 등장이 로마에서는 가능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5대왕부터 마지막 왕까지 모두 에트루리아인들이 왕위를 독식하면서 나머지 라티인과 사비니인들의 불만도 비등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비교적 선정을 펼치던 타르퀴니우스는 선왕 앙쿠스의 아들들에게 암살당하고, 노예 출신이라고 알려진 세르비우스 툴리우스가 타르퀴니우스 미망인의 기지로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그후 44년 동안, 6대 왕 세르비우스는 외적의 침입을 물리치고 성벽을 쌓아 로마의 안전을 도모했고, 인구조사를 통해 전쟁에 필수적인 병력 무장한 시민들의 숫자를 파악한 획기적인 군사개혁 등의 선정을 베풀어 로마 시민들의 인기를 끌었다.

 

문제는 막장 드라마 주인공 같은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의 등장이었다. 연로한 장인 왕 세르비우스를 죽음에 몰아넣으며 왕위에 오르는 막장극을 연출한 희대의 악당은 공포 정치와 숙청 같은 정적 제거라는 방식으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했다. 신전 건축 같은 대규모 공사로 시민들에게 노역을 부과하면서 원성을 쌓아갔다. 막장 드라마의 압권은 타르퀴니우스의 망나니 아들 섹스투스의 루크레티아 성폭행 사건으로 결국 왕정의 몰락을 가져왔다. 저자는 현실성이 떨어지는 예의 사건보다 경제침체기에 타르퀴니우스의 통치에 불만을 품은 로마 시민들의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고, 왕의 추방시킨 사건이라고 분석한다.

 

<만화 로마사> 1권에서 다룬 내용들은 실제 역사라기 보다, 아무래도 후손들에 의해 미화된 전설 혹은 전승에 가까운 이야기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느낌을 받았다. 어쨌든 거시적인 차원에서 로마 건국에 대한 이야기들을 살펴봤고, 로마 왕정 초기 시대의 문제점들과 갈등을 신생국 로마가 어떤 방식으로 현명하게 풀어나갔는지 그런 흐름을 주도한 정치 지도자로서 왕들에 대한 모습 그리고 왕정 폐지라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전개된 공화정의 대두에 살펴 볼 수가 있었다. 로마사라는 대항해의 산뜻한 출발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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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존 버거 지음, 강수정 옮김 / 열화당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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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알게 되었는데 열흘 전, 이 책의 저자인 존 버저 선생이 영면에 들어가셨다고 한다. 작가 생전에 그의 책은 몇 권 가지고 있었지만 한 권도 읽지 않고 있다가, 돌아 가셨다고 하니 부리나케 고인의 책을 뒤적거리게 됐다. 서문에 나온 대로 모두가 잊어가는 신자유주의판 자본주의의 총아 이윤이 유일한 추구해야할 욕망이 되어 버린 시절에 망자에 대한 이야기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하신 분이 막상 그 세계에 들어갔다는 전언에 다시 한 번 인생무상을 느끼게 된다.

 

소설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은 세계 각국을 나그네처럼 부유하는 저자가 스스로 ‘파쇠르’(passeur: 사공 혹은 밀수꾼, 안내자)가 되어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출발해서 스위스의 제네바 그리고 폴란드의 크라쿠프로 독자를 인도한다. 자전적 스타일의 소설은 먼저 첫 번째 기착지로 리스본을 선택했다. 대항해 시대 브라질과 모잠비크 같은 거대한 식민지를 거느렸던 세계의 중심 포르투갈이 어쩌면 리스본을 강타한 대지진을 변곡점으로 삼아 자본주의 산업혁명에 동참하지 못하면서 쇠락해 갔다는 묵시적 예언이 등장하기도 한다. 현지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런 분위기를 전달하면서 존 버저 작가는 리스본의 거리들을 부유한다.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돌아가신 어머니와 해후하는 장면에서는 망자에 대한 작가 나름의 추모의 염(念)이 읽히기도 했다. 아무래도 특이한 소설이라는 점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소설의 어디에선가 어머니가 즐겨 쓰시던 “이젠 너무 늦었어!”란 상투적 표현이 어떤 사건에 대한 지칭이 아니라 시간이 접히는 방식, 다른 표현으로는 구원할 수 없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르는 시간의 주름에 대한 것이라는 부분을 읽고는 가히 충격에 빠졌다. 어쩌면 소설가, 작가의 임무는 바로 평범한 일상에서 이런 심오한 사유를 이끌어낼 수 있는 문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전문기술가란 말인가. 대가가 달리 대가의 대접을 받는 게 아니었군. 어디선가는 세상에 헛소리를 쓰는 일이 너무 많다고 투정하는 아들에게, 지금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다만 자신이 거짓말을 쓰는지 아니면 진실을 쓰는 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구분해야 한다고 훈수두는 부분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걸 혼동하면 안된다고 망자는 준엄하게 아들을 꾸짖는다. 소위 말빚을 지고 사는 글쟁이라면 깊이 새겨 두어야 할 말이라고 생각된다. 죽음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고, 우리의 존재 이유는 고치기 위해서라는 어머니의 주장은 계언처럼 가슴을 파고든다.

 

제네바에서 생을 마친 맹인 시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만남을 그린 이야기도 자못 흥미진진하다. 사실 전설적인 보르헤스에 대해서도 명성의 그림자만 밟았을 뿐, 사실 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다. 아니 왜 아르헨티나 사람이 스위스에 가서 죽었지하는 마음에 네이버캐스트의 도움을 받아 간략한 대시인의 삶을 추적해 봤다. 국가사회주의자 페론 시절 어처구니 없는 탄압을 받기도 하고, 가계의 유전적 원인으로 실명한 위대한 시인의 일대기가 다시 한 번 나그네의 기억을 통해 욕망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도시에서 되살아난다. 칼뱅의 도시 제네바에 가보지 않았으니 존 버저의 말처럼 얼마나 모순적이고 불가사의한 도시인지 직관으로는 알 방법이 없지 않은가. 망자 어머니, 작가 그리고 작가의 딸 카티아와 찾은 보르헤스의 묘지에서의 시간은 한없이 더디게 흘러간다. 전혀 물리적이지 않은 비현실적인 설정이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존 버저의 돌아가신 어머니도 예의 묘지에 함께 있었을 거라고 상상하고만 싶어졌다.

 

다음에 등장하는 폴란드의 유서 깊은 도시 크라쿠프에서 작가는 역시 망자가 된 켄을 추억한다. 히틀러라는 미치광이 전쟁광의 초기 성공을 상징하는 폴란드에서의 블리츠크리크, 세계대전의 변곡점이 되었던 스탈린그라드에서의 역사적 패배 같은 에피소드들이 차례로 등장하면서, 거리에서 주점에서 자신에게 비평의 실체를 전수해준 뉴질랜드 사람 켄에 대한 추억들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처음 만났을 때 29년이라는 세월을 초월해서, 어린 꼬마에게 자기연민을 혐오하며 지식인의 나약함을 경계해야 한다는 도덕적 명제를 전수해준 사나이. 인간이 인간을 만나 정신적 교류를 하는데 과연 그런 나이차가 중요한 걸까? 상대방을 진정한 하나의 인격체로 대한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얼마 전, 오래 전에 만난 동생이 그 시절에 무슨 생각으로 자신들을 대했느냐는 질문에 빙그레 떠올랐던 미소가 생각났다. 삶이 다 그런 거지.

 

*** 지금까지 당연히 출판사에 표기된 방식으로 John Beager는 존 버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아니었다. 오늘 유투브에서 본 동영상에 의하면 존 버저는 자신의 이름을 “버저”라고 발음했다. 이보다 더 명백한 증거가 있을까? 앞으로 다시는 버거라고 부르지 않겠다. 그의 이름은 버저다.

 

마드리드에서 만난 베네수엘라 신경제 출범식을 준비하는 홍보전문가들의 분주한 모습을 옵서버(관찰자)로서 지켜보는 모습도 흥미로웠고, 프랑스 아르데슈 골짜기에서 발견된 라스코나 알타미라 동굴벽화보다 훨씬 오래 전에 크로마뇽인들이 그렸다는 신비한 쇼베 동굴벽화에 대한 설명도 인상적이었다. 결국 나는 존 버저 선생의 글을 통해 뉴저먼 시네마의 기수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이 연출을 맡은 다큐멘터리 <잊혀진 꿈의 동굴>에까지 도달하게 되었던 것이다. 현생인류보다 훨씬 존재했던 단순한 원시인들로만 알려졌던 크로마뇽인들은 동굴에서 야생곰들과 함께 거주하면서 목탄으로 놀라운 인류사적 회화의 시원을 우리에게 남겨준 것이라고 저자는 명징하게 증거한다. 그의 설명을 듣고 다큐멘터리를 통해 영상으로 만나본 동굴벽화의 실체는 현대인들의 형상화를 능가하는 수준이라 놀라고 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존 버저가 전문가의 입장에서 기술적 제작 방식까지 분석하면서 동굴인들의 회화에 접근했다면 미술문외한인 독자는 그저 경이의 눈길로 헤어조크 감독의 카메라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는 독일 베를린에서 출발해서 폴란드를 거쳐 모스크바에 달하는 대초원길에서 만난 폴란드 출신 이민자들의 신산한 삶에 대한 스케치는 아직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다른 분들이 남긴 리뷰를 통해 만난 존 버저의 또다른 걸작 <제7의 인간>에서 다룬 주제들과 일맥상통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20세기 지도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조국 폴란드의 말과 동사 변화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던 역사적 사실에서부터 돈벌이를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 차별과 무시를 감수해 가면서 기피하는 노동으로 돈을 벌고 성공해서 귀향하게 되는 이민노동자들의 삶은 이천년 전 지중해를 방황하던 오디세우스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돌아온 고향은 그들이 떠나기 전의 모습과 달라졌고, 악착같이 이국땅에서 번 돈으로 자신들의 소박한 꿈을 이루려는 소망들이 나열된다. 노비 타르크라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미렉과 단카의 떠들썩하고 흥겨운 결혼식 그리고 갓 태어난 올렉까지 가세한 가정의 탄생을 역시 옵서버의 입장에서 일체의 가감없이 마치 한 편의 포토리얼리즘을 보는 듯 존 버저는 묘사했다.

 

내가 처음 만난 존 버저의 작품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과의 조우는 기이했다. 오롯하게 여행기라고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해서 미술평론가로서 그의 특기만 나와 있는 것도 아니고, 유년 시절부터 시작해서 망자와의 대화, 그리고 예술평론가로서 어떤 방식으로 출발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들이 두서없이 제공된다. 독자는 존 버저라는 이름의 파쇠르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 헤매다 보면 어느새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어리둥절해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게 내 모습이었다. 역시나 대가의 면모는 한 권의 책으로는 도저히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뭐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읽어야 할 존 버저의 책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점에 안도했다. 정유년 새해 목표 중의 하나는 존 버저의 책읽기로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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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로마사 2 - 왕의 몰락과 민중의 승리 만화 로마사 2
이익선 지음, 임웅 감수 / 알프레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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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전공하지 않은 비전문가가 쓰고 그린 로마사를 읽는 느낌은 어떨까라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2~3년 정도 걸릴 것을 예상하고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지만, 이미 시간이 훌쩍 지나 10년이나 되는 시간이 필요했고 드디어 올해 세상의 빛을 보게 됐다. 그리고 로마사에 대한 컨텐츠는 기대 이상이었다. 이미 마키아벨리의 <로마사논고>, 예전과는 열광했지만 지금은 정치적 성향 때문에 더 이상 관심을 끊게 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그리고 최근 연달아 출간되고 있는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를 통해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오래 전에 읽었기에 잊어버려 생소한 이야기들을 다시 만나게 됐다. 특히 로마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넘어가는 시기는 역사적으로도 오래되었기도 하거니와 사료들의 절대부족으로 인해 저자가 표현한 대로 전승에 상당 부분 의존해야 하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만화 로마사> 두 번째 이야기는 기원전 509년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가 이끄는 반왕정 세력이 거만한 타르퀴니우스를 몰아내는 것으로 시작된다. 건국 이래 250년 동안 지속된 왕정은 라틴계와 사비니계 토착 귀족과 에트루리아 왕들의 연합체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저자는 유부녀 폭행 사건으로 공화정 혁명이 시작되었다는 전승에 의문을 표하며, 대신 귀족 계급과 전쟁을 통해 획득한 토지분배라는 당근정책으로 민중을 포섭해 숫적 우위를 지키려는 왕정 세력 간의 계급투쟁적 성격도 가지고 있었다고 분석한다. 어찌 되었던 더 이상 왕의 독재를 원하지 않았던 로마 민중과 귀족들은 로마 부근에서 호시탐탐 왕정복고를 노리는 타르퀴니우스의 위협은 물론이고, 인근 부족의 침입에도 대비해야 하는 이중고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특히 클루시움의 강력한 에트루리아 연맹의 수장이었던 포르센나의 원조를 받아 거의 신생 공화정 로마를 포위하고 탈환직전까지 가지만,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기록될 정도의 기개와 의기를 가진 가이우스 무키우스 스카이볼라 같은 영웅들의 분전에 힘입어 가까스로 포르센타를 설득해 그전에 점령한 베이이를 반환하는 굴욕적인 조건으로 포르센나군을 철수시키는데 성공한다.

 

로마 공화정 체제의 수호를 위해 이런 외부로부터의 충격과 싸우는 와중에, 로마 내부에는 당장 해결해야 하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원로원으로 대표되는 로마의 실질적 지배계급인 귀족과 상대적으로 권한과 사유재산이 적었던 평민 간의 대립이었다. 로마가 궁극적으로 미래에 ‘팍스 로마나’라는 세계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그런 내부의 모순을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공화정 로마의 끊임없는 팽창은 제국주의적 수탈의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다. 귀족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평민을 달랠 수 있는 전리품과 토지를 분배하기 위해서는 전쟁이 꼭 필요했다. 그런 실제적인 이유 때문이었는지 하루가 다르게 팽창하는 로마의 위협을 느낀 이탈리아 반도 내의 유력한 부족은 시시때때로 로마를 침공해 왔다.

 

문제는 그런 상시적 전쟁국가 로마의 현실이 평민들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평민들의 의무 중에 하나인 병력소집에 응하게 되면, 그들의 농경지는 누가 경작한단 말인가. 그리고 증가하는 채무 때문에 채무 노예로 전락하게 되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공교롭게도 로마 평민들의 의무였던 군복무는 그들에게 짐이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회적 평등권 주장이 점증해 가던 로마 사회에서 그들이 가진 강력한 항의의 수단이기도 했다. 기원전 494년 볼스키 족과 아이퀴 족의 침공 와중에 로마군의 중무장 보병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평민들이 침공에 대비하는 대신, 성산으로 알려진 몬스사케르 산에서 자신들의 권리신장을 주장하며 시위에 돌입했다. 로마 원로원은 하는 수 없이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평민들의 권리를 보호할 2인의 호민관 제도와 평민회 도입을 승인하기에 이른다. 공화정 도입 이래 반세기만에 로마 평민들은 비로서 의미 있는 승리를 거둔 것이다.

 

계속되는 외적의 침입에 대항해서 오늘날 미국 신시내티 시의 유래가 된 킨킨나투스를 독재관으로 선출해 군사대권을 맡기기도 했다. 훗날 술라나 카이사르가 원래 독재관 취지를 변형시켜 자신의 독재에 이용하기도 했지만, 첫 독재관이었던 킨킨나투스는 보름만에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고 대권을 원로원에 반납하는 그야말로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원형을 보여주기도 했다. 어쩌면 공화정 로마가 숱한 위기를 모면하고 국가를 유지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그런 엘리트 계급의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진행 중인 국가원수 탄핵의 과정에서 들어나는 지배 엘리트 계급의 파렴치한 국정농단 행위를 보며, 왜 우리나라에는 고대 로마 사회에서 숱하게 목격할 수 있는 그런 끝없는 사회지도층의 자기희생 대신 부정부패와 기회가 되었을 때 사리사욕을 챙기겠다는 추한 욕망만이 존재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21세기 현대인들의 사고가 기원전 5세기를 살던 사람들보다 못하다는 비애감에 서글퍼졌다.

 

다시 고대 로마로 돌아가 로마 평민들은 호민관 제도와 평민회 도입에 이은 최초의 성문법이라고 할 수 있는 <12표법>(BC 451), 귀족과 평민간의 결혼을 허용하는 카놀레이우스법(BC 445), 2명의 최고지도자인 집정관 중 한 명은 평민 중에 선출되어야 한다는 리키니우스법(BC 367)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평민회 의결 사항은 원로원의 승인 없이도 법적 효력을 지니게 된다는 호르텐시우스법(BC 287) 등이 차례로 통과하면서 귀족과 평민 간의 갈등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 외부적으로도 가공할 갈리아 족의 침공으로 수도 로마가 거의 점령될 뻔하기도 하고, 50년에 걸친 삼니움 전쟁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있듯이 5번이나 독재관의 자리에 오른 마르쿠스 푸리우스 카밀루스의 지도 아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발전의 전기를 마련했다. 특히 마그누스 그라이키아의 거점이었던 타렌툼 전쟁으로 도시국가 타렌툼을 정복하면서 지중해 패권 장악을 위한 거점 확보에 성공한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타렌툼 전쟁에서 상대했던 피로스 대왕의 코끼리 부대와의 전투는 공화정 로마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 넣었던 카르타고 한니발 부대의 맛보기였던가.

 

물론 일단의 평민들을 위한 개혁 조치들과 법안들이 마련되었다고 해서, 파트리키(혈통 귀족)와 플레브스(평민) 간의 갈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두 계급 간의 차별은 존재했고, 이 두 계급 간의 계급투쟁은 어쩌면 공화정 로마 기간 동안 내내 지속될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 브루투스가 100명을 추가해서 300명 정원이 된 원로원은 태생적으로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고, 새로운 인원의 충원에 인색했다. 부유한 평민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정치적 성공을 의미하는 원로원 진출을 도모했지만, 건국 이래 수백 년을 이어오면서 특권층을 형성하게 된 파트리키들은 자신들의 기득권 시스템을 흔들 지도 모를 신입 회원의 증가를 원하지 않았다. 어쨌든 원로원이 중심이 된 과두정 형태의 로마 공화정은 왕정을 붕괴시켰고, 대외적 갈등들을 봉합시키면서 이탈리아 반도 통일에 성공했으며 세계 제국으로 가는 도약을 준비하기에 이르렀다. 곧 출간될 3권 <지중해 쟁탈전>에서는 훗날 로마의 곡창이 되는 시칠리아 섬의 원주인이었던 해양세력 카르타고와의 일대결전이 기다리고 있다.

 

오래전 역사 시간에 막무가내로 외웠던 12표법, 리키니우스법 그리고 호르텐시우스 법이 생기게 된 과정을 다시 돌아보는 건 역시 거시 만화사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모름지기 역사 공부를 위해선 과정이 중요한 법인데, 무조건 암기식으로 외우니 그게 오래 갈 리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만화 혹은 독서로 만나게 되니 그야말로 이해가 쏙쏙 됐다. 역사 교육의 현장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교육이 이루어지면 정말 좋겠다는 공상을 해봤다. 시대가 퇴행한 것 같은 국정교과서가 부활된 시절에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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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1587 만력 15년 아무일도 없었던 해
레이 황 지음, 김한식 외 옮김 / 새물결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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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책은 두 번 사서 두 번 읽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내게 레이 황의 <1587 만력 15년 아무일도 없었던 해>가 그런 책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어제부터 사서 읽기 시작했는데, 예전에는 그렇게 진도가 나가지 않던 책을 이번에는 쾌속의 속독 중이다. 시절이 어수선한 탓인진 모르겠지만, 거대한 제국의 붕괴가 시작되었던 해의 기록을 거시적 차원에서 다룬 저자의 실력이 돋보이는 수작이 아닐 수 없다.

 

9세에 신종이자 만력제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더 친근한 주익균이 명 제국의 일인자가 된 지 15년이 지난 어느날 오조 사건이라는 희극적 사건이 발생한다. 저자는 언뜻 보기에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않은 사건 하나에서 파란만장한 역사 드라마의 시작을 알린다. 천여 개에 달하는 현을 효율적으로 지배하는 대제국의 통치는 법률과 시스템만으로 가능하지 않았다고 저자는 단언한다. 그보다 고래의 윤리 도덕에 의한 교화 그리고 제현의 기로와 신사의 협력이 절대로 필요했다. 무엇보다 제국의 실질적 지배자였던 문관 집단과의 관계가 중요했을 거라고 저자는 추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황제는 직접 경작하는 시늉을 하며 모든 번잡한 의례들을 소화해 내야했다. 어린 나이에 제국의 일인자가 된 만력제는 스승과 통치를 위한 유능한 조력자가 필요했고, 그런 필요를 내각대학사 원보 장거정과 대반 풍보가 채워졌다.

 

황제가 어린 소년에서 의젓한 청년 황제로 성장해 가는 동안의 집권 초반의 10년은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고 무사태평한 시절이었다. 장거정이 발탁한 총병 척계광을 비롯한 일단의 무인들이 동분서주하며 북로남왜를 제압했고, 평소 검약을 주창한 내각대학사의 의도래도 사해의 지배자인 황제조차 마음대로 재정을 집행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장거정 자신의 축재와 사치스러운 생활은 예외라는 점이 존재하고 있었다. 정치가로서 여러 가지 면에서 장거정은 확실히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수신제가에는 좀 부족한 인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관리들에게 박봉을 제공하는 명조의 시스템은 구조적인 관리들의 부정부패의 원인을 제공했다. 장거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명나라 궁정의 방대한 지출과 2만 명에 달하는 과다한 환관의 숫자 그리고 근위부대의 열악한 근무조건에 대한 지적도 저자는 빠뜨리지 않는다.

 

명나라 태조 홍무제 주원장은 승상제를 폐지했지만, 내각대학사가 실질적인 황제의 대리인으로 비서실장과 고문으로서 최고 권력을 행사했다. 거대한 영토에서 매일 같이 쏟아져 들어오는 그 수많은 상주문을 황제가 일일이 검토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후대에 환관은 무지하고 축재만 밝히는 부정적 이미지로 그려져 있지만, 명조대의 환관은 과거를 통해 입신한 문관 집단 이상의 실력을 가진 엘리트 집단이었다. 어려서부터 전문적 교육과 훈련은 받은 환관 중에 병필태감으로 발탁된 유능한 인재들은 방대한 분량의 상주문을 사전에 읽고 요약해서 황제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맡았다. 게다가 동창이라는 비밀경찰/특무기관의 장이었던 대반 풍보와 대학사 장거정이 협력해서 정보를 스크린할 수만 있다면, 어린 황제를 허수아비로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을 것 같다. 자신에게만 관대한 이상주의자 장거정의 무단통치가 계속되면서 그에 반대하는 집단의 저항 역시 점증되기 시작했다. 장거정의 뒤를 이어 제국의 일인자가 된 신시행은 도덕률로 상대방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자신들의 사리사욕도 추구했던 문관 집단의 이중성을 포착하지 못했던 전임자의 사례를 통해 교훈을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자고로 타인의 실패는 내 성공의 바탕이지 않은가.

 

자그마치 48년간 제위에 있었던 만력제는 제위 10년차에 일대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첫 번째 아들이었던 주상락이 탄생했고, 그동안 자신을 보필해서 제국을 대리통치했던 장거정이 죽었다. 탄생과 소멸이라는 인생의 순환과정처럼 황제의 스승이자 총신 장거정의 인생 역시 예외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생전에 부친의 탈상 문제 때문에 반대파들의 극렬한 탄핵으로 홍역을 겪었지만, 소년 황제의 절대적 신임으로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지만 사후에는 그럴 가능성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겉으로는 검약을 주창하면서 자신만은 예외로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언행불인치하고 파렴치한 공직자로 비난받기 시작했다. 만고의절을 위해 죽음마저 불사하고 황제에게 상주문을 빗발처럼 생산해 내던 전국 지식인들의 파상적인 공격 앞에 이미 죽은 내각대학사의 명예는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장거정의 후임자이자 현실주의자였던 수보 신시행이 분석했던 것처럼 문관 집단의 이중성에 대해 적절한 타협 대신 강공책으로 문관 집단 전부를 적으로 만들어버린 내각대학사의 치명적 실책에 대한 지적이 매섭다.

 

물론 이 정도의 위기 때문에 거대한 제국이 근간이 흔들린다는 건 말도 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24세의 나이에 문관 집단의 이중적 모습과 그들의 집요한 권력 투쟁 그리고 결정적으로 문관 집단이 “폐장입유”라는 이유로 청년 황제가 사랑하는 3황자를 황태자로 삼을 수 없게 되면서 장기간에 걸친 정치적 태업/파업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근 30년 동안, 황제는 상주문에 대한 주비도 내리지 않고 인사권 행사도 거부했다. 물론 신하들이 무도한 군주를 폐할 수도 있었지만, 황제의 한 세대에 걸친 태업 정도로는 폐립의 이유가 되지 않았다는 점도 저자는 냉철하게 지적한다. 문제는 그렇게 허송세월한 시간이 망국으로 치닫는 시계를 가속화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책의 절반가량 읽고 나서 책의 구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다. 우선 저자는 1587년 당시 최고권력자였던 만력제를 필두로 한 권력집단의 실상을 해부했다. 황제 중심의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위해 대옥사도 마다하지 않았던 태조 홍무제와 달리 만력제는 거의 바지사장에 가까운 황제일 따름이었다. 최고 통치자였던 만력제가 사실은 자금성의 죄수였다는 표현은 절묘했다. 장거정과 신시행으로 대변되는 문관 집단이야말로 명제국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다. 법률과 시스템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사서에 따른 도덕 윤리야말로 제국 최고의 규범이었다는 것이 저자의 확고한 주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폐장입유를 원한 만력제의 집요한 입태자 지연전술도 결국 자신의 뜻대로 관철되지 않았다. 암군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어려서부터 최고의 스승으로부터 제왕의 도를 배운 총명한 황제는 명나라 군신관계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무위의 방법으로 소극적 저항에 나선 것이었다.

 

다음은 타협을 모르는 보수적 원칙주의자이자 모범관료 해서를 통해 명나라의 근간을 이루는 농촌 조직을 명철하게 분석했다. 명태조의 건국 이래 200여년이 지난 시점에서 여전히 이 거대한 제국의 기반은 농촌경제였다. 제국은 인구과잉과 전국적 재정제도, 교통 통신제도의 개선 그리고 박봉에 시달리는 문관들의 인사 및 급여 제도 같이 시급한 제도 개혁이 대두되었지만, 문관 집단의 고질적 이중성 때문에 그 어떤 개혁도 추진될 수 없는 구조적 모순의 질곡에 빠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해서 같은 소수의 청렴결백한 모범관료들의 분전만으로는 도저히 일상화된 관리들의 부정부패 수입인 상례 같은 악폐들을 현실적으로 척결할 수 없었다. 해서 역시 홍무제 당시의 제도야말로 현상의 문제들을 타파하기 위한 최상의 해결책으로 생각했다는 점이 문제였다. 명나라 농촌경제를 지탱하는 농민들의 삶이야말로 제국의 영속을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돌봐야 할 대상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동시에 그들을 수탈함으로써 발생할 미래 자신들의 경제적 이권을 포기할 수 없었던 문관 집단의 비정한 이중성을 저자는 다시 한 번 큰 목소리로 비판한다. 그들은 현상유지에만 급급했기 때문에 현실세계의 균형을 가져올 지도 모를 해외무역이나 상공업의 발달로 인한 변혁을 애써 외면했던 것이다.

 

레이 황이 주목하는 다음 분야는 척계광으로 대표되는 군사다. 태조 이래 명제국은 문관 위주의 정책으로 일관해 왔다. 군에 대한 징병과 보급 같이 필수적인 문제도 역시 문관들의 소관이었고, 당말 군권을 가진 절도사의 발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왜구와 오랑캐의 침공이 일상화된 남부의 절강 복건 지역 혹은 북쪽 장성 지방에 강력한 군권을 가진 총병의 등장에 문관 집단들이 경계심을 갖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던 것 같다. 실제로 수도 북경 부근의 군사령관이 반심을 품는다면, 무슨 수로 그들을 제압할 수 있었겠는가? 명나라 시대 군조직의 존재이유는 혹시 모를 지방 반란에 대한 진압이 최우선 목적이었다. 그런 상황이니 외부의 가공할 침략에 대한 유기적이고 조직적인 대응과 방어가 불가능했다. 북로남왜라는 표현처럼, 소수 무인집단으로 이루어진 남방에 출몰해서 끝없이 노략질을 일삼는 왜구에 대해서도 그리고 연례행사처럼 진행된 알탄으로 대표되는 북방 몽골족의 침략에도 조정은 무기력한 대응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절강성 용병들로 구성된 척계광의 척가군은 엄정한 군율과 혹독한 훈련 그리고 무엇보다 중앙의 실력자 담륜과 장거정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왜구와 몽골에 대한 상승군의 이미지를 쌓아나갔다. 물론 척계광 개인의 용병술에 대한 뛰어난 실력과 원앙진으로 대표되는 전술훈련이 적에 대한 대응력을 높여준 것도 사실이다. 척계광은 군조직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주어진 현실 조건 아래서 최선의 방법들을 뽑아내는데 주력했다. 남부 지방 왜구들을 소탕하고, 계주총병이 되어 북방전선의 실질적인 총책임자가 되어 장성의 보루 구축에 전념하던 척계광은 장거정 사후, 실각되어 말년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그와 장거정이 추진했던 군비 확장책이 성공했다면, 역사의 가정이긴 하지만 만력 연간 말년의 대청작전이었던 사르후 전투에서의 굴욕적인 패전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만력 15년>에서 마지막을 장식하는 인물은 바로 이단아 지식인 이탁오다. 레이 황 저자에 따르면 이천년 전 등장한 유가사상이 진한시대에는 선진적인 관료제도로 새로운 학풍으로 받아 들여졌을 진 몰라도, 특히 명나라 시대에는 사회의 발전을 저해하는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었다는 진단이다. 문관 집단이 가장 중요시하던 현상유지 균형 정책과 농촌경제와 생산력 발전을 가로 막은 상공업의 발전에 대한 무관심, 법률 시스템을 대신해서 황제에서 농민에 이르기까지 사서에 의한 공맹사상의 인의중시는 결국 사회발전에 퇴보를 가져왔고, 나아가 망국에 이를 수밖에 없는 모순의 결정적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관료 출신 철학자 이탁오는 관료로서의 성공 대신 자유로운 개인의 삶을 선택했다. 주희가 개발한 신유학 이데올로기에도 반대하면서, 유가가 추구하는 도의 완성과 불교 혹은 도가의 그것이 다르지 않다는 이단적인 주장을 내세우기도 했다. 번잡한 의례를 중요시하는 공맹사상과 지식인 관료 계급에 비판적이면서도, 실생활에서는 그들의 지원에 힘입어 여생을 보내는 이중적인 면모를 보여 주기도 했다. 모범관료가 해서가 지방관들에게 골칫거리였던 것처럼, 이단적인 주장을 설파하면서 당대에 받아들여질 수 없는 행실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던 이탁오는 결국 노년의 옥중에서 자결로 생을 마무리한다.

 

400쪽 남짓한 레이 황의 <1597 만력 15년 아무일도 없었던 해>를 새해 들어 숨가쁘게 완독했다. 예전에 샀던 책을 7년 만에 다시 한 번 사서 읽는 느낌은 아무래도 남달랐다. 그 시절에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리뷰를 썼었는지 궁금해졌다. 이 리뷰를 다 쓰고 나면 한 번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나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는 조너선 스펜스 교수의 <반역의 책> 그리고 명청교체기를 다룬 <룽산으로의 귀환>의 재독, 작년에 읽다 만 <건륭제> 그리고 상당 부분 읽은 하버드중국사 <청제국> 같은 숙제를 마쳐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역시 대가의 저술은 다시 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겉보기에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보였던 1587 만력 15년을 기점으로 해서 벌어졌던 다양한 인물들이 엮어낸 역사드라마의 귀결이 사실은 거대제국 명나라가 영속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자 역사의 터닝포인트일 수도 있었다는 가정은 의미심장하다. 그 어느 때보다 혼란한 시절을 통과 중인 우리는 미래에 어떤 평가를 내리게 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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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완벽한 1년
샤를로테 루카스 지음, 서유리 옮김 / 북펌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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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로테 루카스 처음 들어 보는 이름이다. 비프케 로렌츠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같은 이름의 작가라고 한다. 후자가 본명이고 전자는 비프케 로렌츠의 필명이다. 그전에 비프케 로렌츠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두 권의 책이 소개되었는데 미처 몰랐다. 독일 뒤셀도르프 출신으로 대학에서 독일 철학과 영문학을 전공했다.

 

작가가 현재 독일 함부르크에 살고 있다고 하는데, 그래서일까? 소설 <당신의 완벽한 1년>의 공간적 배경 역시 함부르크다. 소설의 시작은 비교적 평범하다. 사랑하는 아내 티나를 친구에게 빼앗긴, 다시 말해 오쟁이진 남자 요나단 N. 그리프는 새해의 시작을 달리기로 시작하지만, 아내가 남긴 선물 때문에 온통 정신이 시끄럽다. 도대체 티나는 배불뚝이 그놈의 뭐가 좋다고 신나서 따라간 걸까? 훨씬 더 부유한 출판사 사장인 자신이 제공할 수 있는 부유함을 거부하고, 재산분할 마저 마다하고 떠나간 아내에 대한 애증이 묻어난다. 그때 불쑥 등장한, 누군가 자신의 자전거에 두고 간 다이어리의 주인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원심력으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번갈아 등장하는 다른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나 마르크스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마르크스, 하지만 이름과 달리 그녀는 보육원 교사로 이번에 박봉의 힘든 보육교사 대신 절친 리자를 꼬드겨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려는 찰나다. 그것은 바로 아이들의 여가를 책임지는 <꾸러기교실>, 그런 게 있다면 나라도 당장 아이를 맡기고 싶은 절절한 심정이 들 정도로 멋진 아이디이거 아닌가. 암튼 최근 신문사에서 해고당한 남친 지몬 클람 씨를 이용해서 성대한 오픈 파티를 구상하지만 꼭 필요할 때, 남친이 지독한 감기에 걸려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위기, 위기의 연속이다.

 

다시 요나단의 이야기로 돌아가 신년부터 월급사장 마르쿠스 보데로부터 출판사 매출이 급전직하하고 있다는 비보를 전해 듣는다. 보데 역시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 할 일이 없었던 모양이다. 가족과 신년축하를 하는 대신 매출 부진의 이유를 찾는데 휴일을 보낸 걸 보면 말이다. 대학에서 철학 공부를 한 요나단에게 출판사 사장이란 직함은 어울리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디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던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찾아가 이런저런 고민을 상담해 보려고 하지만, 어린 나이의 자신을 버려두고 자신의 곁을 떠나 버린 이탈리아 출신 어머니 소피아에 대한 알쏭달쏭한 수수께끼만 추가했을 뿐이다. 다이어리를 찾아 주기 위해 방문한 점술사 아니 인생상담사 사라스바티 슐츠로부터 들은 새해에는 좋은 일들이 생길 거라는 위안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생에서 결정적인 한 방이란

 

혼란스러운 인생의 갈림길에 선 요나단의 고민은 또다른 소설의 주인공 한나가 지몬에게서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청혼할 거라고 예상한 자리에서 말이다. 왜 이 책의 띠지에 조조 모예스의 <미 비포 유>를 언급했는지 바로 알게 됐다. 그랬었군. 너무 장황하게 소설의 줄거리에 이야기할 순 없으니 이 정도에서 삼가는 게 맞을 듯 싶다. 소설 초반에 요나단과 한나가 시간과 공간을 교차하면서 등장하는 장면이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이 지점을 기점으로 해서 소설은 또다른 도약을 시작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시련을 극복해야 하는 사람과 우연히 습득한 다이어리에 맞춰 그동안 자신이 해보지 않았던 일들에 도전하는 출판사 사장님의 도전기가 흥미를 더해 간다.

 

샤를로테 루카스 작자를 처음 만나는 거라 그런지 그녀의 스타일이 어떤지 감을 잡을 수가 없지만, 이 로맨스 소설의 짜임새는 상당하다. 웃픈 로맨스에 구성진 스토리텔링, 미스터리까지 가미한 소설의 재미는 새해 벽두에 읽기에 아주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주인공 요나단 N. 그리프(주인공의 이름이 Grief 라는 설정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인생은 그렇게 후회라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가 지닌 인생의 트라우마의 비밀을 해결해 나가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부주의하게 두었던 회사 재무 서류를 찾기 위해 재활용 쓰레기수거차를 뒤지던 중에 만난 노숙자 레오폴트는 요나단의 정신적 멘토가 거듭난다. 요즘 드라마에서 유행하는 브로맨스의 시작이라고 해야 할까? 순수문학만을 고집하는 그리프손&북스 출판사의 사장으로서 심각한 출판사의 매출부진 앞에 과연 대대로 이어져 온 가업을 고집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오롯하게 요나단의 몫으로 떨어진다. 보데 사장이 제안한 자사의 브랜드가 싫다면, 새로운 임프린트로 대중서적을 출판하는 것도 어떠냐는 의견도 점점 순수문학 대신 대중문학을 선호하는 세태를 포착해낸 작가의 냉철한 현실감각이 돋보이는 장면이기도 했다. 예전 같으면 절대 가지 않았을 팝스타 저리가할 정도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제바스티안 피체크의 낭독회에 참가한 장면도 재밌는 삽입이었다. 덕분에 새로운 스릴러 작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고마워요 샤를로테.

 

요나단 개인적으로는 절친 토마스와 눈이 맞아 떠난 티나에 대한 감정이 사랑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다 질투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요나단은 예전에 사랑했다고 믿었던 티나에게 전화해서 진정을 담은 사과를 건넨다. 새로 만난 사랑의 와중에 과거에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를 솔직하게 고백하지 않은 덕분에 파국으로 치닫는 가운데, 정말 자신이 해결해야 했던 과거 수십 년간 외면했던 엄마를 찾아 나서기도 한다. 보통 사람에겐 한 가지 정도일지도 모르는 인생에 해결해야 할 숙제 같은 결정적 한 방이 이 남자에겐 너무 과하게 많다는 느낌이다.

 

소설의 또다른 축을 차지하는 한나의 경우는 또 어떤가. 매사에 지나칠 정도로 긍정적이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캐릭터의 주인공 한나. 하지만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냉소적 남자친구 지몬 클람의 불투명한 미래를 교정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지만, 결과는 그녀의 예상과 너무 달랐다. 한나와 지몬의 관계를 통해 내가 아닌 타인의 삶을 드라이브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었다. 나의 최선이 타인에게 최고의 행복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가정 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에겐 사라스바티 같은 인생상담사가 필요한 지도 모르겠다. 삶이 모두 컨트롤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우리로서는 인정하고 싶진 않겠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이 소설도 곧 영화화되지 않을까라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영화 관객들을 유혹할 수 있는 이런 재밌는 요소들로 가득한 이야기를 영화업자들이 가만 놔둘 리가 없지 않은가. 짧은 동영상으로 제작된 북트레일러를 보면서 우리는 참 소소한 행복들을 놓치면서 사는구나 싶어졌다. 비록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이지만 그 가운데 감사할 일이 하나도 없을까? 평소라면 내가 해보지 않을 일에 도전해서 행복을 찾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작가 샤를로테 두카스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다음의 문장으로 두서 없고 장황한 리뷰를 마친다. 당신은 어제 마지막으로 행복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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