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나의 선택 1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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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많이 흘렀다. 평민귀족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코르넬리우스 씨족의 술라가 막 떠오르던 시절의 이야기에서 영광과 위엄으로 가득 찼던 시절을 보낸 두 영웅이 무대에서 퇴장하는 순간이 온 것이다. 이미 마리우스는 세상을 떠났고, 펠릭스라 불리던 호시절의 술라 역시 말년을 앞두고 다시 한 번 로마, 아니 세계의 패권을 쥐고자 동방원정을 마치고 이탈리아 브린디시움에 상륙했다. 영웅들의 뒤를 이을 새로운 영웅들이 부상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들은 바로 폼페이우스 마그누스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율리우스 집안의 카이사르다.

 

이탈리아 전쟁(동맹시 전쟁)이 공화정 로마의 명운을 건 고귀한 목적과 절박한 이유를 내세운 그런 전쟁이었다면, 술라와 마리우스-킨나를 승계한 카르보의 두 번째 내전은 그저 누가 로마를 지배하는가에 대한 싸움이었노라고 콜린 매컬로 작가는 단정 지어 말하고 있다. 누가 봐도 확실한 정권교체기에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대의를 쫓는 이들도 있었지만, 미래의 권력과 재화를 위해 뛰는 기회주의자들도 소설에 수없이 부침을 거듭한다. 왜 이렇게 현실 세계의 그것과 닮아 있는 걸까. 콜린 매컬로의 <마스터스 오브 로마>는 역사소설이라는 범주를 뛰어 넘어 현실세계로 지평을 넓히는 수작이었다.

 

놀라운 건, 이천년 전의 역사적 사실에 무대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심리상태와 대화를 통해 살을 붙이는 콜린 매컬로 작가의 수려한 문학적 솜씨다. 물론 이 방대한 시리즈를 위해 시력을 잃을 정도로 수많은 문헌을 조사했다고 들었는데, 저가의 그런 노고는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상상의 경계를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가령 예를 들어 술라의 살생부에 올라 목숨을 건 도주를 하던 중에 카이사르가 학질(한 겨울에 말라리아에 걸리다니!)에 걸려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카이사르의 모친 아우렐리아가 자신의 아들을 독재관 술라에게 살려 달라고 청원하는 과정은 또 어떤가. 역사에 남은 기록은 아지만 충분히 가능한 설정이 아닌가. 개인적으로 <풀잎관> 시리즈를 아직 읽지 못해 저간의 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오래 전에 읽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남긴 기억의 편린과 인터넷 검색을 통해 대강의 역사적 윤곽을 따라잡았다.

 

토지를 소유한 전통 귀족 가문이 로마를 이끌어야 한다는 모스 마이오룸에 입각한 술라파와 새로 부상한 기사계급으로 대표되는 카르보파는 로마를 양분했다.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가치와 정부에 대한 사고 그리고 미래의 로마를 상이한 집단의 사회적 통합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폭력적 제로섬 게임으로 승부를 가려야만 했다. 이것이 바로 내전발발의 원인이었다. 어쩌면 이 상황은 공화정 로마에서 제정 로마로 가는 거대한 사회적 시스템 이행기의 전초전에 해당한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탁월한 정치적 인간이었던 술라가 고민했듯이, 이런 사회적 통합은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블랙홀 같은 문제였다. 현대 민주주의에서는 대화와 타협이라는 방법이 제시되지만, 고대 로마에서는 전쟁 혹은 내전이라는 폭력적 방법이 최종 해결책이었다. 고대나 현대나 소모적 방법 대신 창조적 방법을 강구하고 시행하는 것이야말로 최고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이 문제는 시리즈에서 다룰 가장 위대한 로마인이 설계를 맡게 될 것이다.

 

한편, 카르보 휘하 장군들과 참모보좌관들의 무능한 전략적 판단 때문에 현직 집정관이라는 합법성과 이탈리아 본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병력의 우세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층이 주도하는 옛 로마 공화정의 부활이라는 대의명분을 걸고 내전에 나선 술라에게 굴복하고 만다. 술라에게 극렬하게 저항한 반대파의 주축은 평민출신 귀족과 마리우스 시절에 부를 쌓은 기사계급 그리고 기원전 3세기 때 이탈리아에서 로마의 패권에 도전했던 삼니움 전쟁의 후예들이었다. 카르보와 마리우스 2세로 대표되는 반대파를 제압한 술라는 대대적인 숙청에 나선다.

 

바로 이 시점에서 소설의 제목인 포르투나(행운의 여신)의 선택이 등장한다.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술라를 필두로 한 폼페이우스, 카이사르 모두 자신이야말로 포르투나가 선택한 영웅이라고 주장한다. 별명이 펠릭스(행운아)였던 술라는 제외하고, 내전 무대에서 병참과 조직 운영에서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한 폼페이우스는 카이사르에 비해 상대적으로 포르투나의 선택에 근접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술라의 명령대로 시칠리아로 가서 로마의 안정적인 식량공급을 확보하고, 아프리카로 도주한 카르보의 잔당을 소탕한 폼페이우스가 요청한 개선식 요청을 술라는 편지로 간단하게 무시한다. 정당한 재판 없이 현직 집정관인 카르보를 죽인 젊은 지휘관의 야만성을 술라는 냉정하게 비판하면서 죽은 아버지의 별명을 따서 “꼬마 도살자”라고 부른다. 작가는 폼페이우스가 천성적으로 동정심이 없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훗날 정치적 라이벌인 카이사르와의 대결에서 그가 패배하게 되는 결정적 요소가 아니었는지 유추해 보게 된다.

 

독자는 이미 알고 있지만, 진정한 포르투나의 선택은 바로 카이사르로 귀결된다. 이제 겨우 17세가 된 카이사르는 마리우스가 채운 유피테르 대제관이라는 족쇄에 걸려 군사적 업적을 세우고 로마의 프린켑스가 되겠다는 야망을 접은 상태다. 하지만 영웅은 영웅을 알아본다고 했던가. 술라는 십대의 카이사르에게서 수많은 마리우스를 보았다고 했다. 7번의 집정관 경력과 불세출의 전쟁 영웅이었던 가이우스 마리우스의 경력을 뛰어넘는 가장 위대한 로마인의 모든 자질을 갖춘 영웅이 드디어 본격적인 정치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카르보와 마리우스 2세로 대표되는 반대파를 제압하고 대대적인 숙청에 나선 술라는 카이사르에게 킨나의 딸과 이혼하라고 명령한다. 정치개혁에 앞서 모든 것을 종교에 의존하는 로마 관습을 개선하기 위해 선출직 제관을 폐지하는 개혁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현재 로마의 프린켑스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던 독재관의 명령을 무시하고 목숨을 건 도주에 나선다. 궁극적으로 카이사르의 항명은 한낱 애송이에 지나지 않았던 카이사르의 명성을 로마 정계에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난다 긴다 하는 실력자들이 독재관의 서슬퍼런 권위 앞에 끽소리 못하고 시절에 철부지 소년의 도발은 충격적인 정치적 퍼포먼스였다. 콜린 매컬로 작가는 그렇게 가이우스와 술라의 대결을 마무리 짓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시대를 장식할 영웅들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모멘텀을 제시한다.

 

개인적으로 <포르투나의 선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폼페이우스와 바로가 나눈 대화에 등장하는 술라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존엄”(디그니타스)에 관한 부분이다. 로마 귀족 남자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인 존엄은 무형의 자산이면서 어떤 형태로든 확장이 가능하며, 망각과 상실을 뛰어넘는 개인이 가질 수 있는 가치의 총합이라고 한다. 콜린 매컬로가 분석한 술라의 존엄은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을 준비하며 공화국 재건에 여념이 없는 펠릭스 술라의 본질을 규정하는 동시에 가이우스 마리우스가 술라에게서 빼앗은 그가 당연히 누려야할 것들을 되찾기 위해 동족상잔의 비극과 가혹한 시련을 견뎌야 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술라가 제시한 로마인의 존엄은 역시 가장 위대한 로마인에게 전승되어 확장될 거라는 점도 지적하고 싶다.

 

또 한 가지 아무리 종신독재관인 술라는 합리적 보수주의자의 면모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독재자답게 반대파를 숙청하는 데 있어 무자비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내전기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카이사르 역시 동의하고 있다. 로마를 다시 접수한 뒤에 자기 권력의 기반인 병력을 해산하는 순간,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냉철한 판단 역시 주목할 만하다. 사회시스템 재건의 영속을 위해 까다로운 법률적 절차를 준수해야 한다는 점도 독재자는 잘 알고 있었다. 물론 필요에 따라 생략해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관철시키기도 했지만 말이다. 이 시절이 2016년이 아니라, 기원전 1세기경이라는 점도 무시하면 안될 것이다.

 

자 이제 무대는 준비되었다. 그동안 역사 무대를 휘젓던 영웅이 퇴장하면, 다음 세대의 영웅들이 등장해서 로마 인민들과 포르투나 여신의 간택을 받기 위해 가열찬 투쟁을 벌일 것이다. 콜린 매컬로는 바로 그 과정을 조율하는 문학적 마법사로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의 독자를 인도하리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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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6-08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도 가제본을 먼저 읽으셨군요. ^^

레삭매냐 2016-06-08 21:44   좋아요 0 | URL
촉박하다고 생각했는데 재밌어서 생각보다 금세 읽었답니다 :>
 
나의 포르노그래픽 어페어
애덤 써웰 지음, 황보석 옮김 / 이숲에올빼미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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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좀 그렇지. 영국의 문예지 <그랜타>를 통해 알게 된 작가 애덤 써웰, 한창 <그랜타>가 선정한 젊은 유망주 작가 이름으로 나온 책들을 찾다가 그의 문제적 데뷔작(2003)이 최근에 출간된 사실을 알게 되어 바로 주문했다. 얼마나 야하길래 19금 소설이라며 성인인증을 받아야 검색이 가능한 걸까. 더 역설적인 사실은 원작의 제목이 <Politics>라는 것이다. 놀랍군. 지난번 독서모임에 가서 이 책을 소개하니 모두들 스마트폰을 꺼내 검색하는 진풍경도 경험할 수가 있었다. 쇼킹할 정도로 야하다는 전언에 모두가 주문장을 날릴 기세였다.

 

나는 이 책을 지난 3월부터 읽기 시작했는데 지난달에 이런저런 책들을 읽어야 했던 관계로 1/4 가량 읽은 시점에서 멈췄다. 그리고 이달(5월) 들어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그전에 읽었던 부분들이 기억이 나지 않아 주인공 나나와 모이샤 그리고 안잘리 같은 캐릭터들에 대한 기억을 되살리느라 고생깨나 했다. 제목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를 사기 싫어서 진짜 100만년 만에 책포장을 해서 들고 다니며 읽었다. 물론 자극적인 장면이 없진 않았지만 생각처럼 그렇게 흥미롭지 않았고 다 읽는데 자그마치 석 달이나 걸렸다. 물론 집중해서 읽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애덤 써웰이 이 책을 발표할 당시 25세 약관을 절반가량 보낸 나이였다. 소설에는 역사건축학을 전공하는 상류층의 매력적인 아가씨 나나와 그의 유대인 애인이자 연극배우로 활동하고 있는 모이샤 그리고 마지막으로 3자동거의 마지막 퍼즐인 안잘리가 등장한다. 소설에는 참 많이 섹스 라이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마치 그들은 섹스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듯이 그렇게 말이다. 그리고 작가는 화자(나레이터)로 등장해서 전지전능한 신처럼 주인공들의 심리상태를 꿰뚫고 있다. 이 소설이 관음증을 즐기는 이들을 위한 작품이라면 작가의 설정은 대단히 성공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관계를 혼란스러워 하는 주인공들의 심리 저변을 훑는 탁월한 묘사가 일품이다.

 

작가는 계속해서 <나의 포르노그래픽 어페어>가 다정함과 친절함에 관한 이야기라고 독자에게 주입해서 말한다. 과연 그럴까?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같은 평범한 독자는 단순하게 애덤 써웰의 집필의도에 동의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영국 젊은이들의 퇴폐적인 섹스 라이프를 집중적으로 다룬 포르노 소설도 아니다. 그렇게 치부하기엔 정치적인 이야기들이 너무 들어 있다. 작가 나름의 균형감각이라고 불러야 할까. 호색을 즐기던 지도자였던 마오쩌둥에 관한 이야기나, 고국 체코를 떠나 망명작가로 성공한 밀란 쿤데라 등의 에피소드를 나나-모이샤-안잘리 3자동거에 대입해서 분석하는 장면을 보면 왜 작가가 자신의 야심찬 데뷔작의 제목을 <정치학>이라고 붙였는지 이해가 될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나의 포르노그래픽 어페어>가 성적으로 아주 재밌거나 그런 책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 아슬아슬한 재미가 있었다면 다 읽는데 석 달이나 걸리진 않았겠지. 보통의 책들처럼 어떤 부분은 지루하기도 했다가, 자극적인 장면에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기도 했다가 또 어떤 장면에서는 공감하기도 했다. 주절주절했는데, 원론으로 돌아가 제목이 주는 것만큼의 자극은 존재하지 않았더라 뭐 그런 정도.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네들의 다양한 형태의 섹스 라이프보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이 느끼는 불안 혹은 혼란에 더 호기심이 갔다. 되돌아보면, 우리네 삶에서 불안과 혼란은 원하지 않는 불청객이 아닐까. 살아 보면 알게 되겠지만, 삶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삶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나나와 모이샤 커플은 둘만의 사랑으로도 충분했지만, 스멀스멀 관계를 파고드는 불안 때문에 안잘리를 3자동거에 끼웠다가 결국 낭패를 당하게 된다. 물론 결정적인 원인은 나나의 파파가 아파서였지만, 부서진 관계는 복원되지 않았다. 해피엔딩을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갑작스러운 결말도 만만치 않았다. 쇼킹한 것 중의 하나는 파파에게 자신의 3자동거를 알린 부녀간의 대화였다. 사랑하는 딸 나나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는 파파라고 하지만,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 작가의 위험한 줄타기가 우려스러웠다 사실.

 

그들의 관계가 어느 면에서는 로맨스였다고 작가가 표현한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편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받아들이려면 어떡해야 할까? 아름다움은 그리고 사랑은 무조건적으로 숭배하고 찬양해야 하는 대상이라는 기존의 윤리에 애덤 써웰은 마치 도전장을 낸 사람처럼 그렇게 달린다. 허영과 망상이야말로 이 세상의 소설의 존재 이유라는 선언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어쩌면 그것이야말로 애덤 써웰이 이 소설을 쓴 진짜 이유가 아닐까.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섹스 라이프가 아니라 그들이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 더 나아가 윤리와 도덕에 대한 설교는 편하지 않게 다가온다. 혼란스럽기 짝이 없는 3자동거 가운데 윤리타령이라니, 차라리 환상적인 섹스를 묘사하면서 도덕이나 현실과는 무관하다는 주장이 오히려 더 호감이 간다.

 

소설을 읽다 보면 무언가 얻어 걸리는 그런 횡재하는 기분을 기대하게 되는데 애덤 써웰의 작품에서는 그런 게 좀 약했던 것 같다. 작가의 다른 작품도 읽어보고 싶은데, 아마 어렵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북디파지토리를 이용해야 하는 걸까. 다 읽은 것만으로도 하나의 성취감을 느낌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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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
휴버트 셀비 주니어 지음, 황소연 옮김 / 자음과모음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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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영화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를 봤다. 하도 오래 전이라 영화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을 정도다. 한 때 끗발 날리던 제니퍼 제이슨 리가 여주인공 트랄랄라 역을 맡았다는 것 정도. 그리고 또 한참 시간이 지나, 한 겨울에 매서운 찬바람을 맞으며 브루클린 다리를 콧물을 줄줄 흘리면서 건넌 기억이 난다. 그로부터 또 십 수 년이지나 영화의 원작을 소설로 다시 만나게 됐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그 당시에 내가 왜 브루클린 다리를 기를 쓰고 건넜지 하는 생각이 들지만 시간이 또 지나고 나니 다 추억이지 싶다.

 

원작소설은 모두 6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초반에는 브루클린에 사는 하층민들의 이야기가 낯설었지만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여왕들의 파티 이야기(사실 조금 지루하다)를 거쳐 영화의 모태가 된 트랄랄라 이야기 그리고 선반공으로서는 최악이지만 파업 영웅 해리 블랙 이야기가 소설의 압권이었다. 이어지는 랜드샌드도 현실감 면에서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컬트 고전이라는 말이 있던데 컬트소설이라는 표현보다 사회소설이 더 맞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1950년대 미국 하층민들의 삶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드러낸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다.

 

지금은 윌리엄스버그를 중심으로 브루클린이 다시 뉴욕에서 뜨는 핫플레이스라고 하지만, 그 시절만 하더라도 맨해튼에서 밀려난 갈 곳 없는 따라지들의 집합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후진 동네였던 모양이다. 술집 그릭스를 중심으로 모인 동네 건달들이 시도 때도 없이 패싸움을 밥먹듯 벌이고, 마누라에게 손찌검을 해대는 가정폭력은 일상이며, 여왕들(드랙 퀸?)이 하루저녁 즐기기 위해 갖은 유혹을 벌이는 그야말로 욕망의 소용돌이 같은 곳이 소설에서 마지막 비상구라는 이름을 달고 나오는 브루클린이다. 개인적으로 놀란 것은 놀랄 정도로 지금의 화폐가치와는 다른 그 시절의 물가였다. 단돈 1달러로 한 가족이 아침에 먹을 장을 보고 담배까지 살 수 있었다니. 물론 지금의 가치와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남자들이 실직해서 놀고먹으면서 마누라보고 돈을 벌어 오라고 하질 않나, 주택단지 여자들은 허구한 날 모여서 험담으로 날 세우며, 건달들은 뜨거운 밤을 보내기 위해 괜찮은 술집에서 여자들을 사냥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그런 퇴폐적인 분위기마저 자욱하게 흐르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을 제대로 기른다는 게 가당키나 했을까? 하긴 아빠 엄마가 상스러운 욕지거리를 해대며 죽어라고 싸우는 장면만 없다고 해도 지금보다 훨씬 나아 보일 것 같다. 어쩌면 소설의 저자인 허버트 셀비 주니어가 어떤 부분에서는 과장했을 진 모르겠지만, 상당 부분 당대의 시대상을 그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온 트랄랄라 역시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거리에서 방탕하게 소진하면서 세월을 보낸 그런 아가씨다. 알다시피 영화에서의 결말처럼 소설의 엔딩 역시 비극이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땅개와 뱃놈들을 상대로 화려한 미모로 즐기고 한몫 잡아보겠다던 트랄랄라는 거리의 갱들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신세다. 도저히 교훈적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그런 이야기라고나 할까.

 

소설의 핵심은 역시 <파업>이 아닐까. 해리 블랙은 노조의 핵심 행동대원으로 고용주 측에선 일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선동을 도맡아서 하는 해리를 자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임금인상과 복지 프로그램 협상결렬로 시작된 파업이 해리에게는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는 하나의 화려한 무대였다. 파업사무실을 차리고 파업에 관련된 일에 열중하기 보다는 술마시고 두통을 달래면서 양성애의 세계에 빠져드는 타락한 모습을 작가는 정말 하나의 르포르타주처럼 현실감 넘치게 그려냈다. 어떻게 보면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모두 50년대 마초의 대표선수처럼 보인다. 사실은 그렇지 않으면서 자기야말로 제일 잘난 남자라는 듯이 으스대며 시시껄렁한 남성성을 과시하기 위해 몸이 달아 있는 그런 모습 말이다.

 

파업 와중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조의 최고 전술무기 해리를 잘라야 한다는 사명감에 젖은 사장과 이만하면 충분히 자신들의 실력을 보여 주었으니 협상을 마무리 짓고 일터로 복귀할 명분을 찾는 노조지도부 간의 샅바 싸움은 선수 끼리 왜 이래의 전형이다. 결국 파업이 끝나자, 그동안 자기 돈도 아니면서 흥청망청 맘대로 돈을 쓰며 게이 레지나를 유혹하던 해리는 끈 떨어진 갓신세마냥 바로 용도폐기된다. 그럴 줄 몰랐나. 그 정도면 다행이게, 동네꼬마에게 추잡한 짓을 하다가 그릭스 패거리에게 치도곤을 당해 곤죽이 될 정도로 얻어맞는다. 원래 자신의 것도 아닌 권력을 행사하다가 비참하게 추락하는 해리의 모습은 정말 일그러진 그네들의 초상이었다.

 

파업 도중에 무기력하게 피켓 시위를 하던 남자들과 그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던 경찰 간의 대결 장면도 자못 흥미진진하다. 작가는 대치되어 있는 두 세력 간의 갈등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해서 분석하고, 일촉즉발의 위기를 실시간으로 리얼하게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노조의 파업을 무력화시키고 분쇄하기 위해 경영진 측에서 동원한 하청의 전국화 수법도 선진적이었다. 자본가들의 음모에 맞서 그릭스 갱들을 동원해서 트럭을 폭파시키는 무지막지한 방법도 마다하지 않는 노조 측도 마찬가지였지만, 노동자들의 정당한 요구를 무력화시키는 자본가들에 대항하기 위한 유일한 무기는 바로 전국적 연대라는 걸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을까. 신자유주의 각자도생의 시대에는 모두 무의미해져 버린 일이지만 말이다.

 

휴버트 셀비 주니어는 다시 현실세계로 모든 캐릭터들을 소환해서 우리에게 비상구가 존재하는지 묻는 것으로 소설을 끝낸다. 어쩌면 그들에게 여기(브루클린)은 비상구가 아니라 해방구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해도 모든 것이 허용되는. 다양한 군상들이 빚어내는 1950년대 미국의 초상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위력적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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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프터 유 - <미 비포 유> 두 번째 이야기 미 비포 유 (살림)
조조 모예스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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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분량이다. 500쪽이 훌쩍 넘어가는 분량에 조금 놀랐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고 보니 전혀 분량이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대히트를 친 전작 <미 비포 유>를 읽지 않았다는 점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주인공 루이자 클라크의 18개월 전 삶이 너무 궁금해서 전작의 플롯 부분은 우리의 친절한 위키피디아 플롯 서머리를 통해 해결했다. 하지만 루의 비극은 현재진행형이었다.

 

제목이 뜻하는 것처럼 주인공 루가 간호를 맡았던 윌은 자신의 바람대로 스위스의 디그니타스 시설에서 죽음을 맞았다. 문제는 루와 윌이 진심으로 서로를 사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홀로 남은 루는 아직 윌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어찌 보면 현대판 신데렐라 스토리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신데렐라를 든든하게 후원할 왕자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남긴 유산으로 루가 정든 고향을 떠나 대도시 런던에서 지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다는 점 정도. 뭐 그 정도만 해도 소설의 전개상 충분조건은 갖춰진 셈이다.

 

윌을 존엄사로 잃은 상실감과 공항의 아이리시 테마 펍에서 짧은 루렉스 스커트를 입고 밥벌이의 지겨움을 감당하던 루는 어느날 사고로 옥상에서 추락하게 된다. 그녀의 사연을 아는 모든 이들은 그것을 사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지만. 부모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몸을 추슬러 직장에 컴백하지만 싸이코 같은 직상상사 리처드의 갈굼이 도를 더해가던 차, 느닷없이 나타난 한 명의 등장으로 루의 평온해 보이는 일상에 다시 격랑이 일기 시작한다. 그녀의 이름은 릴리, 죽은 윌 트레이너의 딸이란다. 소설의 전개상 릴리가 모범생이라면 아무런 문제가 없겠지. 골초에 술이며 이름 모를 마약 그리고 나이트클럽에 밥 먹듯 드나다는 그런 문제아 중의 탑클래스 문제아다.

 

여전히 윌의 죽음을 극복하지 못하는 루는 아버지의 권유대로 새 출발 서클에도 나가 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낯선 이들과의 대화가 영 탐탁지 않다. 그 모임을 계기로 해서 만나게 된 샘 필딩과 썸을 타기도 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탈출하기 위해 뉴욕에 있는 네이선의 조력으로 병간호 일자리에 지원하기도 한다. 수십 년을 함께 산 부모님의 갈등도 루의 머리를 아프게 하는 문제 중의 하나다. 이렇게 스스로의 앞감당도 못하는 이십대 아가씨가 열여섯 살짜리 릴리를 감당하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조조 모예스는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꼬인 인간관계를 통해 상대방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일이 얼마나 쉽지 않다는 사실을 독자에게 주지시킨다. 동시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새출발한다는 게 상상 이상으로 어렵노라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에도 굵직하게 방점을 찍는다. 사랑을 사랑으로 극복하라는 말처럼 그렇게 만나게 된 루와 샘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어디 사랑이라는 녀석이 순탄하기만 하던가. 오해와 불신으로 위기를 만나기도 하고, 발목 잡는 과거 때문에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청춘들의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나오기도 한다. 단순하게 그런 로맨스의 감정 뿐만 아니라 자신의 미래까지 걸린 일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어떤 선택이 자신에게 최선의 것인가 끊임없이 되묻고 고민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란 말인가. 루에게는 윌과 함께 한 6개월이라는 시간이야말로 자아성찰의 계기이자, 진정한 자아에 대해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면 런던에서 샘과 릴리를 통해 얻은 건 또다른 레벨의 자아로 나아가는 결정적 순간이었다.

 

사실 위키피디아의 플롯 서머리만으로는 전작에 흐르는 전반적인 아우라를 잡아낼 수 없었다고 고백해야겠다. 하지만 윌과의 관계를 차치하고서라도, 별개의 이야기로 읽어도 조조 모예스의 <애프터 유>는 충분히 핍진성 넘치는 다양한 스토리라인을 구사하고 있다. 결말까지 도대체 이야기를 어떻게 이끌어 가려고 이런 구성으로 내달리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이야기의 힘이라고나 할까. 지나친 스포일은 하고 싶지 않지만, 전작이 비극적 결말로 마무리되었다면 이번 <애프터 유>는 상대적으로 희망찬 해피엔딩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나 행복해라며 릴리에게 루가 보낸 문자야말로 루의 앞날을 예고하는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여주인공 루에게 보통 사람들이라면 평생에 한 번 오기 힘든 기회들이 우수수 떨어진다는 설정과 윌의 딸로 등장한 릴리에 관한 부분이 너무 자극적이라는 점 그리고 샘과의 재결합을 위해-어쩌면 나중에 영화화를 위해 준비되었을 지도 모르는- 충격적인 총격장면이 개인적으로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애프터 유>가 넌픽션이 아니라 소설이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않은가.

 

어쨌든 간만에 긴장감 넘치는 로맨스 소설을 읽을 수 있었다. 원작자인 조조 모예스가 각색을 맡고 다음 주에 개봉 예정인 <미 비포 유>의 영화 트레일러를 봤는데, 에밀리아 클라크가 맡은 루 역은 정말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트레일러 중에서 루가 윌의 휠체어에 타서 360도 회전하며 대화하는 장면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윌이 루에게 그런 멋진 삶을 살도록 선물해 줬다면 <애프터 유>에서 자신의 많은 부분을 희생하며 윌의 딸인 릴리를 위해 헌신하는 루의 진심을 이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그런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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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디파지토리에서 설문조사하고 10% 쿠폰이 적용되나 안되나 테스트 해보다가 얼떨결에 그만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영문판을 사게 됐다. 맨부커상 받았다고 하니 궁금하기도 해서 누가 사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해서 하나 사야지 싶긴 했는데 이렇게 사게 될 줄이야. 맨부커상 수상소식을 들은 날 바로 주문을 했는데 이제야 도착했네 그래. 어쨌든 맨부커상 수상으로 한국 문학이 잘 팔린다고 하니 좋은 소식이긴 하다. 그것도 이즘에 새로 책을 낸 작가들의 타이밍 문제기도 하겠지만. 그런 점에서 <종의 기원>을 발표한 정유정 작가가 최대 수혜자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블로그 이웃님의 서평을 보면, 전작보다 실력이 일취월장했다는 평도 있으니 한 번 읽어 보고 싶기는 하다.

 

요즘 읽어야 하는 책들이 부쩍 늘어났다. 욕심에 이책저책 서평 신청을 하다 보니 책들이 우수수 떨어지는구나 그래. 오늘도 조조 모예스의 <애프터 유>가 도착했다. 월요일에도 두 권이나 왔는데 <금연학교>는 이미 다 읽었고, <브루클린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도 열심히 읽고 있다. 밸런스를 맞춰야 하는데 한 번 또 진도가 나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쉭쉭 나가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한창 잘 나갈 적에는 정말 마구잡이로 서평도서를 마구 신청했었는데 이젠 짬밥이 늘어서 그런지 선별해서 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욕심이 날 때도 있지만 스케줄을 보고 신청하게 됐다.

 

그 외에도 다음달 달궁 독서모임 책인 샐린저의 <아홉가지 이야기>도 발표가 나고 나서 냉큼 알라딘 헌책방에 가서 업어왔다. 오늘도 가서 절판된 로저 크롤리의 지중해 시리즈 사와야 하는데. 어제 보고서도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

 

 

살바도르 아옌데의 평전도 오늘 새벽까지 해서 40% 정도 읽었다. 모바일 독서기록장을 이용하니 아주 관리가 편하다. 이 평전의 저자 말대로 그의 최후에 대해서는 여기저기서 들은 대로 알고 있었지만, 삼대를 내려오는 칠레 명문가 금수저 집안의 자제로 의사이면서 뛰어난 사회주의자(아니 더 솔직하게 표현하자면 마르크스주의자)이자 정치가로 조국 칠레를 이상국가로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로 노력하다가 결국 사악한 기득권층과 결탁한 군부독재자들의 반란으로 사회주의 혁명의 이상을 접어야 하는 아옌데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최근에 7주기를 맞이한 비슷한 운명을 겪은 비운의 정치가의 환영을 보는 것 같은 기시감이 들었다. 선거로도 얼마든지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기존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현실을 역사상 최초로 보여준 위대한 정치가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애프터 유>도 분량이 상당한지라 밀릴 까봐 받아 들자 마자 몇 쪽을 읽었다. 나의 독서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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