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수용소 - 내 이름은 르네 타르디 슈탈라크ⅡB 수용소의 전쟁 포로였다
자크 타르디 지음, 박홍진 옮김 / 길찾기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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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해문집에서 출간된 <그래픽노블 파리 코뮌>의 작가 자크 타르디의 전작이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도서관에서 <포로수용소>를 빌려다 읽었다. 프랑스의 국민작가라 불린다고 하는데 국가 최고 영예훈장인 레종 도뇌르 훈장을 거부한 일화도 유명하다고 한다. 아나키스트로서 어떻게 국가가 주는 훈장을 받을 수 있겠냐고 했던가. 예술가의 대단한 의이가 아닐 수 없다.

 

1871년의 대서사시 <파리 코뮌> 이야기도 궁금하지만 당장 구할 수 없으니 일단 <포로수용소>로 만족할 수밖에. 지금은 작고하신 작가의 아버지 르네 타르디의 2차세계대전 참전기와 나치 독일의 전격전으로 프랑스가 항복하고 난 뒤 전쟁포로로 4년 8개월이나 독일 동부의 포메라니아에서 포로생활을 기록한 육성수기다. 타르디 작가는 만화에 나온 모든 내용이 사실에 바탕을 둔 실화라고 당당하게 밝히고 있다. 단 한 가지, 자신의 아버지 르네와 장인이 임시수용소에서 잠깐 만나게 되는 에피소드는 빼고 말이다.

 

타르디의 할아버지도 1차 세계대전 참전용사라고 하는데, 한 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또다른 전쟁으로 참전용사의 아들도 전차병 부사관으로 전쟁에 뛰어들게 된다. 전자가 승전의 영예를 드높였다면, 후자는 패전의 불명예를 지고 전쟁이 끝난 뒤에도 떳떳하지 못했노라고 증언하고 있다. 아버지와 자식 세대의 불화는 물론이고, 전선에 뛰어든 병사들의 사기는 높았지만 소위 앉은뱅이 전쟁이라 불린 시기 동안 프랑스 전쟁지도자들의 무능력 때문에 결국 전쟁에 지고 말았다고 르네 타르디는 그래픽노블을 통해 주장하고 있다. 과연 사실이었을지 궁금하다. 전쟁의 최고 책임은 역시 지도자들이 지는게 맞지만, 전선에 투입된 병사들 역시 일부를 제외하고는 폴란드에서 블리츠크리크(전격전)로 사기충천하고 현대식 무기와 많은 훈련을 통해 단련된 나치 독일군을 상대하기란 역부족이 아니었을까.

 

굳이 탱크가 아닌 전차라 불러 달라고 주문하는 르네 타르디의 전투는 1940년 봄에 어처구니없이 끝나 버렸다. 그리고 그는 동부 포메라니아의 슈탈라크 수용소에서 전쟁의 나머지 기간을 보내게 됐다. 적에게 패배했다는 열패감보다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효율과 규율을 강조하는 독일군의 점호와 전쟁포로들은 충분히 굶겨야 하고(가장 참기 어려운 일이었다고 르네는 증언하고 있다), 전쟁으로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는 독일 제국에 강제노역으로 봉사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프랑스 작가답게 비참한 현실 가운데서도 유머감각을 잃지 않고 있는데 특히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공중변소 장면은 압권이었다. 뒤로 팔을 걸고 볼일을 치르는 포로들의 일상이 웃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서글펐다.

 

그래픽노블은 시종일관 사실에 좀 더 객관적으로 접근해 보려는 작가 자크 타르디의 페르소나인 반바지 입은 소년과 자신의 전쟁 트라우마를 최대한 드러내면서 한편으로는 아들 세대에게 사실을 전해 주려고 노력하는 아버지 르네의 첨예한 갈등이 전면에 그려 넣고 있다. 자신의 트라우마를 자가치료하기 위해 르네는 엄혹한 시절에도 불구하고, 독일 전쟁에 기여하지 않기 위해 노동력 제공을 거부했고 귀찮은 점호를 일상놀이처럼 만들었으며 회계업무 처리를 위해 동원되었지만 숫자에 장난을 쳐서 협력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또 한편으로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꼴라보’들도 있었노라고 증언한다. 독일제국이 천년 동안 지속되라는 전망이 보일 적에는 자청해서 꼴라보레이션을 하다가,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미국의 참전으로 독일 천년제국의 꿈이 날아가 버리자 어느새 레지스탕스로 변신한 이들도 있었단다.

 

하지만 역시 결혼한 지 얼마 안되는 사랑하는 아내와 떨어져 기약 없는 포로생활을 지속하는 것이 가장 힘들지 않았을까. 감옥에 갇힌 죄수도 자신의 형량을 알고 기다릴 수 있는데, 전쟁포로들은 전쟁이 끝나야 집으로 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히틀러의 군대가 무적처럼 유럽대륙을 휘젓고 다니는 동안, 고향으로 돌아겠다는 그들의 바람은 헛될 꿈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독일군의 포로에 대한 형편없는 처우 역시 절망을 가속화시키는 조건이었을 것이다. 똑같은 포로라고 하더라도, 미군의 대우는 달랐다고 하는데 전쟁 초기 어이없는 패전으로 프랑스군에 잡힌 거의 없던 독일군은 프랑스군을 미군처럼 대우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르네 타르디의 생각인 모양이다. 일견 수긍이 가는 주장이다.

 

또다른 형태의 강제수용소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전쟁포로인 르네는 알고 있었을까? 그들에게 아주 간혹 가다 허용되는 샤워실이 누군가에는 죽음의 순간일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도자들의 잘못된 판단과 결정 때문에 애꿎은 병사들이 배고픔과 추위, 가혹행위에 시달려야 했다는 사실에 난 분노했다. 그리고 자크 타르디가 이 그래픽노블을 통해 명백하게 그리고 있는 반전 메시지에도 적극 찬성한다. 같은 포로로서 자신들보다 낮은 대우를 받는 사람 좋은 폴란드 혹은 러시아군 포로에 대한 연민과 동정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타르디 작가는 아버지 르네의 입을 빌어, 지속적으로 정치지도자들에 대한 비난에 지면을 할애한다. 결국 최종적으로 누구도 원하지 않는 전쟁을 피해야 하는 결정은 그들이 내릴 테니까 말이다. 여전히 전쟁이 진행 중인 분단국가에 사는 사람으로 전쟁을 직접 겪은 세대의 이야기가 남다르게 들리지 않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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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톡 2 - 조선 패밀리의 활극 조선왕조실톡 2
무적핑크 지음, 와이랩(YLAB) 기획, 이한 해설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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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 밥상머리카페에 책을 빌리러 갔다가 그전부터 눈여겨 보던 무적핑크라는 작가의 <조선왕조실톡> 두 번째 권을 빌려 왔다. 부제가 조선 패밀리의 활극이라고 한다. 요즘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카카오톡 메신저를 대화의 매개체로 사용한 아주 획기적인 발상의 만화가 아닐 수 없다. 우선, 메신저라는 매개체를 사용해서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라는 스타일의 사극에 대한 진입장벽을 신랄하게 뽀개 주었다. KBS에서 하는 역사저널 그날인가하는 프로그램도 역사에 대한 고정관념을 일신하는데 아주 혁혁한 공을 세우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무적핑크 작가는 한술 더 뜬다고나 할까.

 

조선 패밀리의 활극은 2부로 구성되어 있다. 1권에서는 패밀리들이 칼싸움을 불러 일으켰던 개국시절의 정권쟁탈전부터 세종의 아들 수양대군이 명분도 없는 쿠데타를 일으켜 멀쩡한 왕위계승권자인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르는 계유정난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종을 이은 연산군 시절까지를 다루었다. 2권에서는 연산군의 폭정을 뒤엎고 얼떨결에 왕위에 오른 중종 시대부터 스타트한다.

 

성종의 둘째 아들이었던 진성대군은 공신들의 추대로 그야말로 얼떨결에 왕위에 오른다. 물론 그는 실권이 없는 바지사장에 불과했다. 1506년 박원종과 성희안 등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반정으로 중종은 공신들의 전횡에 휘둘리고 있었다. 어느 정도 군왕으로서의 짬밥을 먹게 되자, 자연스레 왕권을 휘두르고 싶어졌을 것이다. 무적핑크 작가가 그림을 맡았다면, 실록돋보기 코너에서는 이한이라는 분이 해설을 맡았다. 조금은 가볍게 이야기를 시작하면 후발주자인 이한 씨가 맡아서 부족한 정사 부분을 깨알 같은 글씨로 채워주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공신들의 압력으로 아내마저 내친 중종은 훗날 사림의 영수로 추앙받게 되는 조광조를 등용하기에 이른다. 성균관 대표선수이자 성리학 이념으로 똘똘 뭉친 조광조와 중종은 왕도정치를 주창하며, 다방면에서 문제를 일으키기 시작한 훈신들을 제압하기로 의기투합하게 되었다. 조광조 선수는 곧은 정신과 올바른 몸가짐으로 개혁의 기수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지만, 능구렁이 같은 훈신들을 제압하기에는 정치가로서 융통성이 역부족이었다고나 할까. 자신의 권력은 어디까지나 군왕이었던 중종이 받쳐줄 때에만 가능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 조광조 개혁의 실패 원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게다가 수구세력이자 기득권층이었던 훈신들의 위훈삭제 이슈는 그야말로 파국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군왕의 지지와 애정을 잃은 조광조의 개혁이 기묘사화라는 방식으로 와해되면서 조선왕조 패밀리는 자연스레 쇠락을 길을 걷게 된다. 중종의 뒤를 이은 인종이 수개월 만에 승하하고 나이 어린 명종이 등극하면서 조선 패밀리의 국운 쇠락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되어 버렸다. 명종의 뒤에서 수렴청정을 하며 실제적 권력을 행사했던 문정왕후 윤씨 일파의 폭정은 의외로 실록카톡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것 같다. 이 시절에 아마 임꺽정이 등장해서 일세를 풍미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사화나 정쟁 부분에 대해서는 상세하게 다루면서도 외척으로 절정의 권력을 행사했던 소윤 윤원형 일파의 폐해에 대해 다루지 않았는지 그것이 알고 싶다 나는.

 

왕조가 흥성을 이루는 전기를 지나고 나면, 안정기를 거쳐 반드시 위기가 닥치기 마련이다. 조선 패밀리의 절대위기는 바로 선조 시대에 도래하게 된다. 조선시대 정치를 규정하는 사색당파라는 부분을 붕당붕당 돌을 던지자라는 식으로 유쾌하게 그려내긴 했지만, 사실 정권 다툼에서 지는 쪽은 어쩌면 멸문지화를 당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중국 송나라 시절처럼 사대부들의 언로를 틔우기 위해 형벌이나 유배는 보내도 죽이지는 않는다는 원칙은 조선 패밀리 시절에는 씨도 먹히지 않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했다. 요즘에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공천이라는 무기를 들고 칼춤이 난무하지만, 조선 패밀리 시대에도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해 사화라는 방식이 아주 유용하게 사용된 모양이다.

 

방계 계열로는 처음으로 국왕의 자리에 오른 선조는 왕권 강화를 위해 서인을 적극 기용하기에 이른다. 그 중에서 선조의 호위대로 앞장서서 기축옥사를 일으켜 동인들을 숙청한 주인공이 바로 우리에게는 속미인곡 사미인곡 같은 가사문학으로 널리 알려진 송강 정철이다. 임진왜란이라는 전대미문의 대전란을 앞두고, 정철은 마구잡이로 칼날을 휘둘러 미증유의 위기를 앞두고 유용한 인재들을 소진시키는데 앞장섰다. 그나마 류성룡 같은 이가 살아남아 다행이었지, 정철의 무자비한 숙청은 마치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을 앞두고 소련의 스탈린이 자국의 유능한 장군들을 솎아내 독소전 초반의 괴멸적인 패배를 부른 장면이 연상시켰다.

 

일본의 전국을 통일하고 조선은 물론이고 명나라까지 정복하겠다는 허황된 꿈에 젖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7년 대전란으로 조선 패밀리를 절체절명의 위기로 몰아넣는다. 물론 이미 그전에 전쟁의 위협을 눈치챈 조선 패밀리는 서인 황윤길과 동인 김성일을 통신사로 파견했지만, 서로 상반된 의견을 내놓는데 그치고 전쟁 방비는 전혀 하지 않은 상태로 그렇게 허송세월하고 있었다. 1592년 부산에 상륙한 왜군은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수도 한양까지 단박에 진격하기에 이르렀다. 패밀리 최고의 찌질한 임금 선조는 백성들의 운명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수도를 내버리고 도주하기에 이른다. 정확하게 358년 뒤에 어느 지도자와 똑같은 모습으로. 성난 백성들은 자신들을 버리고 도망간 임금이 거처하던 궁궐을 불살라 버리는 것으로 화풀이를 했다고 전한다.

 

선조는 창피하게 몽진한 것만으로도 부족해서 명나라로 망명하겠다고 고집을 피우고, 전란 수습을 급하게 세자로 봉한 광해군에게 일임해 버린다. 분조를 이끌고 7년 대전란을 수습하는데 전력한 광해군은 아버지의 질투를 받아 보위에 오르기까지 지난한 권력투쟁의 시절을 맞이하게 된다. 군왕이 그렇게 도망가 버렸지만, 백성들은 조선 패밀리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의병을 조직해 왜군에 대한 게릴라전을 시작한다. 육지에서 그런 움직임이 있었자면, 바다에서는 성웅으로 존경받는 이순신 장군이 해로를 장악하고 왜군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적극적인 공세로 나서면서 전쟁은 장기전으로 돌입하게 된다. 초반의 성공으로 단기전으로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이 장기전으로 바뀌고, 명나라의 만력제마저 무슨 생각으로 참전을 결정하면서 임진왜란은 16세기 최대의 국제전으로 비화되기에 이른다.

 

무적핑크와 해설을 맡은 이한 씨는 과연 선조의 주장대로 임진왜란이라는 전대미문의 전란을 극복한 것이 흔히 재조지은이라 불리게 되는 명나라 파견군의 도움 덕분이냐 아니면 홍의장군 곽재우를 필두로 전국 각지에서 기의한 근왕군 그리고 해군총사령관이었던 이순신 장군 등의 활약 때문인가라는 해묵은 논쟁에 불을 당긴다. 어쩌면 단순하게 딱 한가지 이유를 꼽는 것 자체가 넌센스가 아닐까. 그런 모든 요소들이 합쳐져서 국난을 극복하게 되었다는 생각이다. 자신의 왕권유지에만 급급했던 선조 역시 밀덕 류성룡을 기용하고 육전에서는 권율을 그리고 오락가락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순신을 기용한 결정은 나름대로 평가를 해주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번에 <조선왕조실톡>을 읽으면서 중요하게 느낀 것 중의 하나는 1차 사료에서 어떤 사실을 취사선택해서 다루느냐에 따라 역사적 관점도 역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일반독자를 상대로 모든 부분들을 다룰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집중적으로 투자를 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선택과 해석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그리고 너무 거시적인 차원에서 정치사에 치중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제 역순으로 패밀리 탄생의 시대를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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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디 - 사랑의 연대기
미즈바야시 아키라 지음, 이재룡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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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애견인도, 애묘인도 아니다. 그리고 개도 먹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개를 먹는 사람들을 폄훼할 생각도 없다.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도 그리고 동물을 먹는 사람도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 보면, 가끔 엄동설한에 꽁꽁 무장하고 고양이밥을 챙겨 주러 나온 사람들을 볼 때가 있다. 우리와 함께 사는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참 이뻐 보인다.

 

이 책 <멜로디>는 일본 출신의 18세기 프랑스문학 전문가이자 일본의 프랑스 문학 선생님 미즈바야시 아키라가 자신의 생에서 12년을 함께한 가족 멜로디에 대한 추억을 담은 사랑의 연대기다. 보통의 이야기들은 시간의 연대순을 따라 가기 마련인데, 작가는 마지막을 맨 앞에 배치했다. 어린 나이에 프랑스 문학과 언어에 매료가 되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프랑스로 떠나 경계인의 삶을 산 인문학자가 남긴 사랑의 연대기다.

 

저자는 근대 철학의 시조라 불리는 데카르트의 기계적 동물론에 반대한다. 그의 이러한 반대는 자신의 가족이었던 골든레트리버 멜로디와 함께 하는 삶에서 체득한 것으로 데카르트는 물론이고 그의 계승자였던 말브랑슈가 말한 동물에게는 지성도, 영혼도 없다는 견해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인간의 천성을 넘어 동물의 자연권을 주창한 루소의 편에서 동물들이 인간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살아 가야한다는 미즈바야시 선생의 주장이 내게는 좀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멜로디의 입양, 성장, 출산 그리고 소멸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통해 저자가 진심으로 멜로디를 동물이 아닌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8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임종을 함께 하지 못했듯, 미즈바야시 선생 역시 사랑하는 멜로디의 임종을 함께 하지 못했다. 나카노 거리를 활보하길 즐기고, 주인의 귀가를 진심으로 반기며, 그 좋아하는 먹이도 주인과 함께 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극도의 절제력을 발휘해서 참아낸 기다림의 미학이 미즈바야시 선생과 멜로디의 관계를 통해 이 에세이에서 멋지게 재현되었다. 인간 세계의 일로 바쁜 와중에서도, 멜로디의 마지막 가는 길을 준비해 과정은 개인적으로 읽기가 쉽지 않았다. 간접 체험을 하는 독자도 이럴진대 하물며 멜로디를 가족으로 받아 들이고 12년을 함께한 미즈바야시 선생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에세이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 중의 하나는 프랑스 어를 하는 지인들과 함께 한 크리스마스 파티에 멜로디를 초대해서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한 기록이었다. 즐거움으로 가득한 공간에 한동안 소외된 자신의 또 다른 가족을 초대한 미즈바야시 선생의 용기야말로 진정 함께하는 삶을 위한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또 멜로디를 마지막으로 보내며, 사랑하는 미셸에게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이야기들을 글의 힘을 빌어 하는 장면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부국어인 프랑스 어를 사랑하고, 가족이었던 멜로디를 가슴에 묻은 인문학자가 남긴 사랑의 연대기는 그래서 더 절절하게 다가왔는지 모르겠다. 참고로 이 책은 미즈바야시 아키라 선생이 프랑스 어로 쓴 글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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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그랜타>라는 문예잡지가 있는 모양이다. 보통의 경우 온라인 무료 서비스를 하는데 여기는 철저하게 유료 사이트로 운영 중에 있는 모양이다. 온라인 기사를 보려면 회원 가입하고 12파운드인가를 내라고 하는데 그 돈이면 책을 한 권 더 사겠다. 그래도 구글의 도움을 받아 십년 주기로 발표하는 “영국 최고의 젊은 작가들” 목록을 참조할 수 있었다. 어디선가 선정된 작가들이 모여 찍은 사진을 봤는데 그런 기획이 참신했다. 왜 우리나라는 이런 기획조차 못하는 걸까. 한국 문학이 맨날 위기라고 하는데,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단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그랜타>에서는 1983년 이래 매 십년 주기로 40세 이하 20명의 신진 작가들을 선발해서 소개해 오고 있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하고 인터넷 현대영국작가사전을 참조해서 나만의 목록을 만들어봤다. 그동안 모두 7명의 작가의 책 8권이 소개되었는데 그중에 세 권은 또 절판되어 구할 수도 없게 됐다. 이들은 모두 영어로 작가 수준의 책을 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적인 확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본국인 영국은 물론이고, 호주와 역시 세계 최고의 시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미국도 아우를 수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닌가.

 

이번에는 모두 20명 중 12명의 여성작가들이 대거 포진하면서 다수를 차지한 점이 눈에 띈다. 그 외에도 중국, 나이지리아, 가나, 미국, 방글라데시 그리고 파키스탄이라는 전 세계적 배경으로 하고 있으니 진정한 의미에서의 다국적군의 형세를 갖추고 있다. 그리고 십년 전인 2003년에 이름을 올렸던 제이디 스미스와 애덤 써웰이 다시 등장했다는 점도 이채롭다. 이번 심사위원으로는 그랜타 리스트에 두 번 올랐던 애덤 마스-존스, 가즈오 이시구로 그리고 앨 케네디가 심사를 맡았다. 그 외에도 비평가 스튜어트 켈리와 소설가 로메시 구네세케라가 포함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명단이 발표되고 나서 말들이 많았지만, 다음의 주목할 만한 작가들이 40세가 넘었다는 이유로 제외된 점도 아쉽다. 그들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차이나 미에빌(China Miéville), 모신 하미드(Mohsin Hamid), 레이나 다스굽타(Rana Dasgupta), 히샴 마타르(Hisham Matar), 스칼렛 토마스(Scarlett Thomas).

 

이 중에서 내가 사서 읽은 책은 샤오루 궈의 <연인들을 위한 외국어 사전>이고, 어제 헬렌 오이예미의 <이카루스 소녀>를 사들였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적게 찍은 책들이 잘 팔리지 않으면 바로 바로 절판시켜 버리기 때문에 그래서 책은 나왔을 때 바로 사야 하나. 이제 도서정가제 때문에 구간이라고 해도 할인율이 없기 때문에 천상 중고서점을 이용하는 수밖에. 하긴 새책도 중고서점으로 사지.

 

다음은 그랜타 리스트에 오른 작가 중에 최근에 나온 작가 애덤 써웰의 신간에 대한 이야기다. 제니 페이건의 책 <파놉티콘>은 알고 있었지만, 애덤 써웰이 책 <나의 포르노그래픽 어페어>란 희한한 제목을 달고 출간됐다고 한다. 원제는 <Politics>인데 어쩌나 이런 제목을 가지게 되었을까. 원서의 표지도 양파 세 개가 나란히 놓여 있는 사진인데 반해 국내 출간작의 표지는 상당히 도발적이다. 게다가 성인인증까지 받아야 접근이 가능하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야하길래!

 

자그마치 2003년에 나온 책이라고 하는데 13년이 지나도 아직 우리가 소화해 내기란 역부족인 모양이다. 나는 지금 미즈바야시 아키라의 <멜로디>를 읽고 있는데 아무래도 애덤 써웰의 책부터 읽어야 하는 게 아닐까. 오늘 중으로 주문장을 날리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숲에올빼미란 출판사에서 거진 2년만에 나온 신간인데 정말 소개가 안된 모양이다. 세일즈 포인트를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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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18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싱싱한 정보 아주 좋습니다. 이 글 찜합니다. ^^

레삭매냐 2016-03-18 17:57   좋아요 0 | URL
싱싱하다니요 ㅋㅋㅋ
자그마치 3년 전의 정보랍니다.

제가 요즘 새로 관심을 튼 부분에 대해
조사하다가 알게 된 거지요.

오늘 결국 애덤 써웰의 소설 질렀습니다.
421원 들여서 샀습니다.
 
불새 여인이 죽기 전에 죽도록 웃겨줄 생각이야
바티스트 보리유 지음, 이승재 옮김 / arte(아르테)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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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 페이건의 <파놉티콘>과 오스카 로메로 주교의 전기를 필두로 해서 아르테에서 요즘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 반갑다. 이 책 역시 저자인 바티스트 보리유의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만나게 된 책이다. 내가 무척 애정하는 중고서점에 이 책이 있다는 걸 알고서는 바로 달려가서 사서 읽기 시작했다. 첫날 절반가량 읽어서 이틀이면 다 읽을 줄 알았는데 변수 덕분에 열흘이나 걸려서 다 읽을 수가 있었다.

 

저자는 책읽기 좋아하고 마이클 잭슨의 춤을 멋지게 출 줄 아는 방년 27세의 의사 선생 바티스트 보리유로, 그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들을 모아모아 만든 책이 바로 <불새 여인이 죽기 전에 죽도록 웃겨줄 생각이야>의 형태로 세상에 그 자태를 드러내게 되었던 것이다. 주로 응급실에 서식하는 젊디젊은 인턴 선생은 어린 시절 퐁디셰리에서 우연히 만난 백작부인의 모습을 보고 의사가 될 결정을 내렸노라고 회고한다. 어릴 적 결심을 유지하기란 쉽지 않은데, 이런 책을 낼 정도의 뛰어난 문장력과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라면 역시나 어린 시절부터 비범했던 모양이다.

 

죽음과의 최전선에 싸우는 바티스트 선생은 어느날 호스피스 병동의 불새 여인과 운명적인 만남을 갖는다. 아마 비슷하게 1년 전 어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낸 체험에서였을까? 급박한 시한부 인생을 맞이하게 된 불새 여인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겠다는 일념으로 먼저 환자에게 죽음과 당당하게 맞서 싸울 수 있도록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슈퍼인턴 아멜리와 애정전선을 구축하고 있는 중인 블랑슈, 간병인, 간호사 그리고 동료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갖가지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수집하기에 이른다.

 

표지에도 당당하게 나와 있는 것처럼 레개 사자머리 인턴은 어머니가 남겨 주신 “모든 것은 하나다”라는 유언을 당당하게 집행하는 투사다. 저자는 호스피스 병동과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갖가지 질병과 사건사고로 응급실을 찾는 인내심 없는 환자들을 미소라는 치명적 무기와 빼어난 유머감각으로 환대하는 멋쟁이다. 도대체 의사의 말이라고는 들어 먹지 않는 고집불통 환자들에게는 나름대로 강경하게 대처하고, 동료 슈퍼인턴 아멜리의 인종차별을 묵과하지 않다가도 병실에서 자지러지게 울어제끼는 아이들을 상대할 때는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한 남자로 변신하기도 한다. 과연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죽음을 상대하면서 저자와 같은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바로 그 지점에서 저자는 죽음과 싸우고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의사들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연약한 존재일지도 모른다고 속삭여준다, 아주 부드럽게. 겉으로 보기에 냉정하고 무뚝뚝해 보이는 이들도 사실은 그 누구보다 죽음이 두려워서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그렇게 위장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정말 어이없는 사고로 죽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면서 자세히 알게 되었다. 한편,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서 사람의 생명을 죽이고 살리는 일 역시 돈에 좌지우지된다는 부조리도 파악할 수가 있었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금전으로 환산되어지는 것이야말로 비극의 원천이 아닐까. 너무 현실적이어서 슬픈 이야기들이 응급실에 쇄도하는 환자들처럼 바티스트 보리유 작가의 손끝에서 피어난다.

 

또한 보리유 작가의 슈퍼인턴 동료 아멜리처럼 아무런 죽음의 징후가 보이지 않던 사람도 돌연사라는 이유로 죽을 수 있다는 사실에 적잖이 충격을 받기도 했다. 교통사고로 자식을 잃은 부모가 죽은 이와 함께 살고 있다는 이야기에도 공감이 갔다. 짐작은 했지만, 아이슬란드 화산사건으로 레이캬비크에 묶여 있다는 불새 여인의 아들 토마 역시 비슷한 케이스였다.

 

불새 여인과 죽어가는 이들을 위해 보리유 작가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다. 천일야화에 등장하는 셰에라자드가 살기 위해 이야기를 지어냈다면, 우리의 보리유 작가는 순전히 이타적인 이유에서 불새 여인들에게 비극을 성공적인 생존기로 바꾸는 주술을 선사한다. 죽어가는 불새 여인에게서 어머니의 그림자를 엿보아서였을까? 불새 여인 역시 죽은 아들의 환영을 보리유 작가에게 투영했을지도 모르겠다. 인생 좀 살아본 대선배로서 인생을 즐기면서 살라고 충고한다. 오늘 당장 죽을 지도 모르는 불새 여인의 조언은 그래서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숱한 죽음을 체험하면서 피폐해지는 영혼을 달래기 위해 누군가는 막대사탕을 줄기차게 빨아 대고, 동료와 함께 럼주를 곁들인 ‘위장의 시간’을 갖기도 하고 신나는 레이브 파티를 즐기기도 한다.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그보다 더한 것을 허용해도 되지 않을까.

 

우리 인류는 하나라고, 모든 것은 하나이며 이 세상에 존재했던 것들은 아무런 의미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보리유 작가의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에 남겨 주신 말이야말로 <불새 여인>의 핵심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자식을 통해 계속 살아 있다는 그 표현의 울림은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참 오래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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