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뜸 했었지.

 

책 읽기도 귀찮고 뭐 그렇다. 지난 주말 독서모임이었는데 못 나갔다. 가고 싶었는데 사실 책도 다 읽지 못하고 모임 시간이 늦어져서 나갈 자신이 없었다. 앤 타일러의 <파란 실타래> 거진 다 읽었는데 후반 추진력이 부족했다.

 

지난주엔가 알라딘 적립금으로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세트 그리고 샤워루 궈의 <연인들을 위한 외국어 사전>를 샀다. 전자는 아직 풀어 보지도 않고 사무실에 방치되어 있다. 사실 이 책을 산 건 약간의 허세였다고 해야 할까. 그동안 모은 적립금으로 산 책이라 뿌듯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 소장용으로 그만이겠는 걸 뭐 그런 생각을 해봤다. 장식용이라면 로베르토 볼라뇨의 <2666>도 만만치 않은데. 그리고 보니 볼라뇨의 대작도 5개 중에서 2권까지 읽고 접어둔 상태다. 이거 리뷰 쓰려면 다시 잡아야 하나. 메타픽션의 최고봉이라고 할 수 있는 볼라뇨에 도전했다가 보기 좋게 날아 떨어진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야만스러운 탐정들>도 읽다가 어느 순간 접어 버렸다. 제발트의 책들도 그렇고 어째 하나 같이 이렇게 중도탈락하는 책들이 많은가. 이번에 다시 <아우스터리츠>에 도전했건만 역시나 지지부진하다. 존 반빌의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도 지난 늦은 여름휴가 때 98쪽까지 읽었는데 뭐 내용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맥스였던가 아마 주인공이. 죽은 아내를 뒤로 하고 예전에 여름을 지내던 휴양지에서 옛 시절을 추억하는 내용이었던 것 같던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위키피디아의 플롯 서머리를 좀 읽어 보고 다시 도전해봐야겠다.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지금부터다. 어제 샤오루 궈의 <연인들을 위한 외국어 사전>을 슬쩍 펼쳐 봤다. 그전에 읽던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심연> 그리고 어제 산 로저 크롤리의 바다나라 베네치아 공화국 이야기를 읽기 전에 워밍업 정도였는데, 읽다 보니 절반 가량이나 훌쩍 읽어 버렸다. 일단 재밌고, 페이지가 술술 넘어간다. 이미 절판의 운명에 처해진 책이라 시중에서는 구할 수도 없다. 나도 중고로 샀다. 책 컨디션이 아주 좋진 않지만 뭐 읽기에는 부족함이 없으니까.

 

우리의 주인공 미스 좌우앙은 사회주의 공화국인 중국 출신으로 농민계층에서 쁘띠 부르주아 계급으로 신분상승을 이룬 부모의 도움으로 영어를 배우기 위해 1년짜리 비자를 받아 영국 런던으로 향한다. 물설고 낯선 런던에서 영어 배우기는 쉽지 않다. 나도 언젠가 비슷한 체험을 해서일까, 사방에서 악전고투하는 좌우앙의 이야기에 순간 몰입해 버렸다. 아마 나의 몰입독서체험기는 보통 이런 수순을 따르리라. 바이섹슈얼 영국 남자를 극장에서 만나 사랑에 빠져 버린 미스 좌우앙. 전혀 다른 세계에서 자란 이들의 화학적 결합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서로의 몸을 탐닉하면서도 여전히 공간을 두려는 남자와 예의 공간을 없애고 온전한 사랑을 구가하려는 여자의 이야기는 조금씩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한다. 영국의 문예지 <그랜타>가 선정한 주목받는 영국 신예 작가 중의 하나로 꼽았다고 해서 읽기 시작했는데 기대 이상이다. 같이 선정된 작가 중에 <우리의 낯선 시간들에 대한 진실>의 작가 애덤 풀스의 책도 지난 주에 도서관에서 빌려 오긴 했는데 아직 첫 장도 넘기지 못했다. 역시 같은 목록에 오른 제니 페이건의 <파놉티콘>도 지난 주에 램프의 요정 중고 도서 목록에 두 권이나 올라와 있어서 사려고 했는데 배송료 때문에 고민하다가 두 권 다 날아가 버렸다. 언젠가 나와 인연이 된다면 중고매장에서 만나게 되겠지. 지금 당장 읽지 못해 큰일날 책은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리고 보니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심연>도 예의 파국으로 치닫는 미국 중상층 부부의 결혼이야기다. 매력적인 바람둥이 멜린다를 아내로 둔 남자 빅터 반 알렌의 삶은 참으로 고달프다. 웨슬리라는 부촌에 사는 이들의 사교생활을 위해 끊임없이 초대되는 파티에 불려 나가야 하는 것도 고역인데, 그 파티장에서 아내의 새로운 애인들과 만나야 하는 빅터의 심정은 오죽할까. 아내의 전 애인 중에 우연히 살해된 남자를 자신이 죽였노라고 고백해서 현재의 애인을 떼어 놓는데 성공한 빅터. 물론 그의 고백은 사실이 아니다. 이런 위태로운 결혼상태를 어떤 일련의 사건(?)으로 몰아가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실력이 대단하다. 도대체 어떤 결말이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걸까. 이 책부터 읽어야 하는데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들이 주변에 너무 많다.

 

제니 페이건의 책처럼 아르테에서 나온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의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도 도서관에서 빌리긴 했는데 아직 못 읽었다. 밥상머리 도서관에서 언제든 빌릴 수 있는 책이니 일단 반납하고 읽고 있는 책들이 정리되는 대로 다시 읽어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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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3-03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존 반빌의 <바다>를 구하고 싶은데, 절판본이라서 중고가가 비싸네요. ^^;;

레삭매냐 2016-03-03 17:48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
너무 터무니 없이 비싼 가격에 매겨둔 것
같아요.

전 그래서 강남 램프의 요정까지 가서 구
했습니다. 컨디션은 썩 좋지 않지만 말이죠.
없는 것 보다는 낫다 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cyrus 2016-03-03 17:50   좋아요 0 | URL
역시 서울 알라딘 매장이 좋군요. 저에게 대구점 한 곳도 부족합니다. ㅎㅎㅎ

레삭매냐 2016-03-03 17:56   좋아요 0 | URL
제가 주로 애용하는 램프 매장은
제가 사는 산본점, 분당점 그리고 수원점이죠.

가끔 신림점에도 가고, 독서모임이 있을 때면
신촌까지 원정가곤 하지요. 아 그리고 보니
부천점도 갔었네요. 그나마 이쪽은 초이스가
좀 있네요.

cyrus 2016-03-03 17:59   좋아요 0 | URL
제 개인적인 느낌이지만 종로점에도 희귀템이 종종 나오기도 합니다. 저는 종로점에서 파울로 코엘료의 《다섯번째 산》와 앤토니어 수잔 바이어트의 《바벨탑》 세 권짜리를 구입했습니다. 정말 그때 기분이 최고였습니다. ^^
 
외교상상력 - 지나간 백년 다가올 미래
김정섭 지음 / Mid(엠아이디)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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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데이트> 2016년 2월 23일 ~ 25일

 

2016년 초부터 북한 핵실험과 인공위성 발사 이슈가 총선을 앞둔 마당에 모든 어젠더들을 삼켜 버리고 있는 형세다. 이 와중에 우리나라는 외교안보 라인의 총체적 난국과 무능함을 날것 그대로 생중계로 보여주는 중이다. 이런 시류에 출간된 김정섭 저자의 <외교상상력>은 1차 세계대전 이래 혼란스러운 국제무정부 상태를 냉철하고 날카롭게 분석한 안성맞춤의 외교입문서로 보인다. 나같은 외교정책에 문외한도 쉽게 접할 수 있게 간략하면서도 기존의 이론들로 자세하게 풀어준다.

 

주지하다시피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영국이 세계패권국가였다. 명예혁명과 산업혁명으로 민주주의와 서구 유럽의 선진적 경제적 성장을 바탕으로 대영제국은 유일무이한 패권국가로 부상했다. 이런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던 영국에 도전장을 낸 국가는 중부유럽의 신흥 독일제국이었다. 후발 주자였던 독일은 철혈재상으로 불리던 비스마르크의 지도 아래 영국, 러시아와 협력해서 프랑스를 고립시키는 전략을 최우선 정책으로 삼았다. 프랑스 프로이센전쟁의 승리를 바탕으로 비로소 통일제국의 면모를 갖추게 된 독일은 전쟁이라는 폭력적인 방식으로 영국의 패권에 도전했다. 나중에 저자가 기술하는 대로 패권국가 간의 헤게모니 쟁탈전은 영국에서 미국으로 넘어가게 되는 비교적 평화로운 방식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전쟁이라는 방식을 선호하는 모양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전 후 유럽 대륙에서 독일, 오스트리아 그리고 러시아 세 개의 제국이 붕괴되고 지속적 평화 유지를 위한 국제기구로 국제연맹이 결성되었지만 주창자였던 미국이 국내 사정으로 빠지면서 처음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후 국제연맹은 일본의 만주침략과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 그리고 히틀러의 영도 아래 재무장에 나선 제3제국의 라인란트 진주 등을 막지 못하면서 유명한 존재로 추락하게 된다. 서방 세계는 2차 세계대전에서 다시 한 번 격돌하게 되는데, 전쟁이 끝난 뒤 1차 세계대전에서 비교적 관대한 조처를 받았던 독일을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강이 분할해서 동서 간의 완충지대로 만드는 것으로 중부 유럽에 항구적인 평화 시스템을 구축하기 노력을 시작한다. 물론 곧바로 민주주의 진영과 공산주의 진영 간의 냉전이 시작되었지만 말이다.

 

두 번째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각국이 모여 합의한 브레튼우즈 협정으로 전후 설계도가 마련됐다. 영국에 이어 세계적 패권국가가 된 미국의 우월한 생산력과 경제력이 뒷받침된 이 시스템 역시 전후 반세기 가량 흐르면서 지방할거 시대를 맞아 각국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는 중이다. 김정섭 저자는 서방에서 시작된 외교 이야기를 동서로 이어지는 횡축과 과거에서 현재로 연결되는 종축을 따라 서술하고 있다. 서방세계의 냉전, 세계의 화약고가 된 아랍세계와 이스라엘의 대결, 국내외의 다양한 사정으로 중동에서 발언권을 잃게 된 미국, 이라크의 붕괴와 이란의 부상으로 세계의 새로운 골칫거리가 된 이슬람 국가(IS, 다에쉬) 문제,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세계의 새로운 중심 중국, 전쟁하지 않는 나라에서 자위권을 발동시켜 보통국가로 진입하려는 일본의 현재, 그리고 무엇보다 새로운 위기의 진원지가 된 북한의 위험한 모험에 이르는 다양하면서도 포괄적인 외교 이슈들의 핵심을 저자는 하나씩 각개격파하는 식으로 상세한 설명을 곁들인다.

 

이웃 중국의 부상만큼이나 걱정거리가 날이 갈수록 우경화되어 가고 있는 이웃 일본에 대한 우려다. 지난해 말 비가역적 위안부 협상이라는 굴욕적 사태부터 시작해, 중국에 대항하는 한미일 동맹시스템의 핵심 파트너로 일본을 선택한 미국은 유사시에 동아시아의 중요한 7개 미군기지를 지원할 수 있는 후방 지원을 일본에게 기대하고 있다. 패전국가 독일과는 달리 역사청산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곧바로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국제무대에 복귀한 일본은 중국이 추월하기 전까지 세계 2위의 경제력을 자랑할 정도로 아시아에서 뛰어난 경제발전을 이룩해냈다. 그간 미국의 안보우산 속에서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뤄냈지만, 역내 국가 간의 관계는 여전히 삐걱대고 있다. 유사시 미국의 일본에 대한 역할론은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게 아닐까 하는 우려에 핵심적인 방점이 찍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다루는 거시적 차원에서 전세계 외교를 아우르는 노력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하고 싶다. 하지만 좀 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동북아 정세의 안보딜레마에 대해 기대를 했다고 하면 무리일까. 초반에 저자가 저술하는 대로, 한 나라의 자위권에 해당하는 미사일 방어시스템이 오히려 주변 경쟁국가를 자극해서 군비경쟁을 촉발시킬 수 있다는 안보딜레마의 역설을 우리는 몸소 체험하고 있지 않은가.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위협 때문에, 우리에게는 적합하지 않은 방어 시스템인 사드(THAAD:종말단계 고고도 지역방어체계)을 도입하고 남북협력의 상징이었던 개성공단 폐쇄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로 중국과 러시아는 사드 시스템이 우리의 방어 시스템의 범위에서 벗어나 자국의 안보에 침해한다는 판단 아래 대사 초치해서 항의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미국에 너무 의존하는 편승(bandwagoning)으로 우리가 처한 외교안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하는 건 너무 안일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우리의 안보보다 동아시아에서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고, 무기판매에 집중한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 전 누출된 위키리크스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된 바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한 외교안보 정책의 수립과 실행이 중요한 시점에 김정섭 저자의 <외교상상력>은 제목 그대로 천편일률적인 인과관계에 바탕한 외교정책이 아닌 보다 창조적인 상상력이 가미된 강대국 간의 균형(balancing) 잡힌 외교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물론 그에 대한 우리의 외교 역량 이슈는 또다른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뱀다리] 사소한 오탈자와 실제 역사와 다른 기술이 눈에 띄었다. 78쪽에서는 영국 수상의 이름을 쳄벌린이라고 했다가. 83쪽에서는 챔벌린으로 통일하지 않았고 체코의 중요한 지명인 주데덴란트를 역시 같은 83쪽에서는 수데덴란트로 표기하고 있다. 81쪽에서는 오스트리아 헝가리 이중제국에서 불가리아가 분열되었다고 기술하고 있는데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 주불가리아 대사관의 불가리아 약사를 살펴보면 불가리아는 오스만 터키에서 독립했다. 나치의 폴란드 침공에 대해서도 체코와 같은 수법(83쪽)으로 썼다고 기술되어 있는데, 독일과 폴란드 사이에 영토할양이나 병합 건은 없었으며 1939년 9월 1일 전격전(블리츠크리크)으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것이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사소한 것들일 수 있겠지만, 이러한 사소한 부분들이 책의 완성도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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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2-25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통 `쳄벌린`을 `체임벌린`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레삭매냐 2016-03-03 17:49   좋아요 0 | URL
제가 나중에 수정했는데 그 표현이 아니라
어디서는 쳄벌린이라고 했다가 어디서는
챔벌린이라고 하더라구요. 오류 정정했다고
하니 다음 판에서는 수정할 모양입니다.
 
쾌락 을유세계문학전집 80
가브리엘레 단눈치오 지음, 이현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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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어디선가 가브리엘레 단눈치오란 이탈리아 출신 풍운아의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단순하게 돈키호테 스타일의 파시스트 정치가였다고 생각해 왔는데, 알고 보니 단눈치오가 희대의 바람둥이이자 장미소설삼부작을 발표하기도 한 프랑스 자연주의와 니체의 영향을 받은 탐미주의 소설가였다고 하지 않는가. 놀랍다. 극단은 서로 통한다고 했던가. 베니토 무솔리니의 지지자이자 경쟁자이기도 했던 단눈치오는 52세의 나이에 1차 세계대전 때 직접 비행기를 몰고 적국이었던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 상공에 돌입했던 전쟁 영웅이었다. 전쟁이 끝난 뒤에는 승전국임에도 이탈리아의 어떤 영토적 성취도 얻지 못하자 1919년 자신을 추종하는 삼백여명의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아드리아 해에 위치한 피우메 시를 1년 반 동안 점령하기도 했다고 한다. 게다가 대머리에 추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로마의 귀부인들과 숱한 로맨스로도 유명했다고 하니 그야말로 한 시대를 풍미한 인간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단눈치오가 26세이던 1889년에 발표된 장미소설의 첫 번째 작품에 해당하는 <쾌락>의 주인공은 자신의 문학적 페르소나라고 볼 수 있는 안드레아 스페렐리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사회적 도덕규범이나 윤리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쾌락만을 신봉하는 철저한 에피쿠로스 추종자인 안드레아는 유부녀이자 로마 사교계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엘레나 무티를 만나면서 치명적 사랑에 빠지게 된다. 부르주아 가정 출신으로 조상 대대로 이어져온 귀족문화를 칭송하는 작가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의 대세가 된 공화주의나 민주주의에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 문학 작품이 작가 자신의 본성을 반영하는 거라면 <쾌락>의 곳곳에 배어있는 작가의 다분히 극우 민족주의적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소설 초반 단눈치오는 지극히 탐미주의적 시선으로 청년 안드레아가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엘레나에게 빠져 드는 과정을 집요하게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안드레아가 엘레나를 처음 만난 순간 운명적으로 그녀에게 빠져 드는 순간을 그리고 이어지는 사교 파티와 경매에서 그녀가 던져주는 힌트를 물고 사랑의 감정을 극대화해 가는 과정에 대한 단눈치오는 농밀하게 그려낸다. 하루를 벌어먹고 살기 힘든 프롤레타리아들의 이야기보다 어쩔 수 없이, 먹고사니즘의 걱정 없이 오늘 하루는 또 무슨 재밌는 일이 없을까라는 고민으로 가득한 부르주아 귀족계급의 이야기가 소재로 쓰일 수밖에 없는 당시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아 기분이 찝찝하기만 하다.

  

빼어난 시인이자 동판화가이기도 한 안드레아는 엘레나 무티의 사랑은 얻는데 성공하지만 결국 변심하여 자신의 곁을 떠난 연인 때문에 실의에 빠져 만나는 여인마다 염문을 뿌리는 연쇄사랑꾼으로 변신하기에 이른다. 바닥에 떨어진 그의 윤리 의식은 유부녀건 처녀건 가리지 않고 원하는 상대의 사랑을 얻는데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구애의 과정에서 벌어진 사소한 다툼 때문에 19세기식 귀족문화의 잔재인 결투 과정에서 상대의 치졸한 반칙으로 치명상을 입고 사촌의 집에서 치료를 위한 칩거에 들어가게 된다. 그 와중에 만나게 된 마리아 페레스에게 빠지게 된 사랑꾼 안드레아. 이 통제되지 않는 야생마 같은 사나이의 엽색에 그저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제임스 조이스를 비롯한 다수의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단눈치오는 <쾌락>으로 시인에서 소설가로 변신을 선언했다. 후속작들에서 단눈치오는 계속해서 변신의 과정을 겪게 되는데, 유럽 제국주의 세력이 전 세계를 호령하던 19세기 말 데카당스한 그런 분위기들을 소설의 곳곳에서 감지할 수 있었다. 단눈치오의 문학적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안드레아에게 관심사는 오로지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다. 진귀한 예술작품, 귀를 즐겁게 만드는 소네트, 아름다운 여인들과의 끝없는 로맨스 그리고 경마와 결투 같은 경쟁을 통한 원초적 승리의 기쁨에 이르기까지 탐미적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는다. 불행한 결혼생활의 포로가 된 여성들은 안드레아의 추구하는 그럼 탐미에 도취될 수밖에. 그런 관계의 연쇄반응을 작가가 실제적으로 즐겼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인간에게 사랑이 어떤 의미에서 필요조건이겠지만, 사랑 이야기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는 않는다. 무언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생산을 담당하지 않았던 귀족 클래스의 사랑놀음에 대한 작가의 자전적 진술이 사실 조금 불편하게 다가왔다. 생존을 위해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자신들의 노동을 팔아야 하는 순간에도 그들은 항상적인 행복에 만족하지 못하고 극한의 쾌락에 진력하고 있었다. 문학적으로는 아름다울 수 있는 단눈치오의 극한의 탐미적인 문장과 서사구조가 사바세계와 동떨어진 느낌이라고나 할까.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사랑과 그에 종속된 요소인 쾌락을 전면에 내세운 이 소설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것은 문학소비자인 내가 너무 현실적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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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21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언제나 쾌와 불쾌사이에서 서성이는 한 마리의 이성을 가진 야수와 같다. *^
 
친절에 대하여 - 친절을 성공 다음으로 미루는 이들을 위한 행복론
조지 손더스 지음, 강주헌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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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설터 그리고 제프 다이어와 함께 작가들의 작가라 불리는 조지 손더스의 2013년 시러큐스대학교 졸업식 축사를 담은 책 <친절에 대하여>를 읽었다. 사실 그의 책으로는 작년엔가 나온 <12월 10일>을 먼저 읽었는데 아직까지도 리뷰를 쓰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다시 한 번 정독하고 나서 리뷰를 써야지 싶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가도, 또 책을 읽은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 가는 마당에 기억을 되살려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이창래 선생의 책도 마찬가지지만.

 

국내에는 두 번째로 나온 조지 손더스의 책으로 대학을 마치고 사회로 진출하는 예비산업역군들에게 친절을 당부하는 글이다. 책에서 조지 손더스는 문득 살면서 후회하는 일이 있느냐고 묻는다. 어느 정도 살아 보니, 점점 후회하는 일들이 많아지더라. 어려서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은 일, 나이 들면서도 이런저런 이유로 미루었다가 하지 못한 일들 그리고 가보지 못한 곳들에 대한 후회 비슷한 감정이 슬쩍 밀려왔다. 그런데 조지 손더스는 뜬금없이 친절하지 못한 일을 손꼽는다. 그리고 삶의 목표로 친절을 삼으라고 조언한다. 뭐지?

 

우리는 성공지상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모든 성공은 금전적 치부로 직결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소유에 대한 평가다. 내가 가진 학위로부터 시작해서(돈을 벌 수 있는 밑천이 된다), 재화를 취득할 수 있는 안정된 직장, 가지고 있는 자동차 그리고 부동산 등등. 하지만 이런 물질적 성공들은 하나 같이 채워질 수 없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더 넓은 평수의 아파트, 더 좋은 입지를 가진 삶의 터전, 남들보다 더 나은 자동차 등은 자식들의 교육에까지 마수를 뻗치고 있다. 자신의 단편소설에서 현대 자본주의 미국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아끼지 않아온 작가는 그런 물질적 요소 말고 친절과 사랑이라는 어떻게 보면 진부하지만 모든 사람이 원하는 가치를 정면으로 부상시킨다. 아니 사람들 중에 친절과 사랑을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었던가.

 

작가는 우리가 다수에게 친절하지 못한 이유로 이기심을 꼽고 있다. 그는 이기심을 장애이자 질병으로 규정한다. 우리 호모 사피엔스는 기본적으로 홀로 살아갈 수가 없는 존재다. 각박한 경쟁이 끝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럼에도 천박한 언론은 고장난 테이프 마냥 경쟁만이 살길이라고 떠들어대니 답답할 노릇이다. 지난주엔가 오마이뉴스에 실린 미국 아미시 교도들의 경쟁 대신 상생하는 삶에 대한 기사가 떠올랐다. 경쟁 하지 않고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데도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인 경쟁만 요구하는 시스템에 정나미가 떨어졌다.

 

나도 살면서 작가의 말대로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고 친절하게 대하면서 살려고 노력 중이다, 타인의 시선으로 볼 땐 어떨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조지 손더스의 말대로 내 삶의 목표를 친절로 삼는다면, 내 안에 사랑이 더 많아질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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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에디션 D(desire) 9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그책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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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날에 <캐롤>을 읽었다. 때마침 영화가 개봉해서 그런지 소설까지 세간의 관심을 끄는 모양이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본국인 미국보다 유럽에서 먼저 인기를 끌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데, 그녀의 작품들이 속속 영화화되는 걸 보면 작가가 집필한 소설의 가치를 이제야 깨닫게 된 걸까. 그냥 대충 사랑에 빠진 두 명의 레즈비언에 대한 소설이겠거려니 하고 집어든 소설 <캐롤>은 좀 더 복잡한 서사 구조로 독자를 유혹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19살 먹은 테레즈 벨리벳이다. 연극 무대 디자이너를 꿈꾸며 크리스마스 대목에 백화점 알바를 하던 그녀는 매장에 들른 캐롤과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된다. 테레즈에게는 유사 남자친구인 부유한 집안의 리처드 셈코가 있지만 도통 그에게는 관심이 없다. 화가 지망생인 리처드가 결국 자신에게 관심을 끊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리라는 걸 테레즈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시쳇말로 질척거릴 정도로 집착하는 리처드에게서 테레즈는 그의 집착과 단호함이 언젠가 폭력적인 증오로 휘발되리라는 걸 예단한다.

 

테레즈의 경제적 상황은 리처드나 부유한 집안 출신의 캐롤과는 확연하게 대비된다. 그들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들인 반면, 테레즈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무대 디자이너 조합에 가입을 목표로 꾸준히 돈을 저축하며 초라한 월세방을 전전한다. 어떤 점에서 보면 테레즈는 자신의 인생의 목표는 뚜렷하지만, 사람들과의 관계는 서투르기 짝이 없다. 소설의 초반에 나오는 로비체크 부인과의 에피소드도 그렇고, 캐롤과 사랑에 빠지게 되는 과정도 그렇다. 잘 나가는 하지와 결혼해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사는 캐롤은 이혼에 직면해 있다.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린디의 양육권을 두고 남편을 상대로 소위 사랑과 전쟁을 벌이는 동안, 그녀의 삶에 ‘애송이’ 테레즈가 침투하기 시작한다. 한편, 테레즈는 캐롤의 오랜 친구인 애비에게 질투심을 폭발시킨다. 이 모든 것을 일천한 연애경험부족 탓으로 돌려야 할까.

 

캐롤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테레즈는 정말 순수한 감정으로 그녀에게 빠져 들기 시작한다. 동시에 그녀를 쫓는 애달픈 눈길의 리처드는 분노에 찬 증오를 내뿜는다. 역설적으로 리처드가 그런 행동을 할수록 테레즈의 감정은 캐롤에게 다가서게 된다. 테레즈에게 캐롤과 함께 한 순간들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런 순간들이지만, 리처드와 함께 하는 시간들은 지루하고 고역스러운 시간들일 뿐이다. 테레즈가 리처드를 사랑하긴 했었던가. 어느날 캐롤이 테레즈에게 함께 여행하자는 제안을 하면서 중서부를 가로 지르는 두 여인의 여로가 시작된다.

 

LGBT의 시대에 시대를 앞서간 캐롤과 테레즈의 사랑 이야기는 매혹적인 주제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보니 영화 <캐롤>의 감독도 커밍아웃한 토드 헤인즈다. 게다가 버디무비와 로드무비의 형식까지 갖추었으니 완벽하지 않은가. 한 명은 잃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애송이 처녀와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이혼소송 중인 상류층 유부녀의 일탈이야말로 영화화하기에 더 없는 소재가 아닌가. 철부지 소녀를 마냥 사랑하는 부서질 것 같이 위태로운 남자. 게다가 그렇게 여행길에 오른 테레즈와 캐롤을 미행하는 탐정까지 등장하니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동시에 소설 <캐롤>은 아무 것도 모르는 철부지 소녀 테레즈가 캐롤과의 사랑을 통해 여인으로 성장해 가는 그린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소설에 나오는 문장 중에 “그걸 사랑이라고 부르지 못할 이유가 없었어”를 읽는 순간 숨이 턱 막힐 정도였다. 우리는 사랑에 대해 끊임없이 규정하고 싶어 하지만, 정작 모든 사랑은 규정할 수 없는 고유의 아우라가 있지 않은가. 그저 관용의 눈길로 바라보면 그만인 것을 너무 빡빡하게 대하는 게 아닐까. 타인의 시선으로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그네들만의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소설에서 보여주는 진정한 사랑에 도달하는 길은 험난하기 짝이 없다. 긴 여행길에서 테레즈와 캐롤이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을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무리 없이 그려낸다. 시카고로, 디모인과 워털루 그리고 수폴스로 이어지는 그들의 여로에서 그들은 서로에 대해 더 알게 되고, 서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과정의 순간들을 작가는 인상적인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소설 <캐롤>이 언제 발표된 책인지 궁금해서 위키피디아로 검색해 보니 이 소설의 또 다른 제목이 <The Price of Salt>로 1952년에 발표된 그녀의 두 번째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에는 클레어 모건이라는 필명으로 나왔다. 2차 세계대전 중에, 전선으로 떠난 남성들을 대신해서 공장에서 선박을 조립하고 용접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졌지만 그들의 사랑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보수적이었다고 하이스미스는 캐롤의 이혼과정에서 테레즈가 캐롤에게 미처 건네지 못한 연서가 결정적인 단서로 작용하는 점을 강조한다.

 

긴 여행을 거쳐 두발로 서게 되는 테레즈의 사랑에 대한 결정은 아름답다. 레즈비언 소설이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마케팅 문구보다 자주적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는 테레즈 벨리벳의 해피엔딩이 더 마음에 들었다. 긴 명절 연휴에 읽기에 부족함이 없는 책이었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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