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중경삼림 - Wong Kar Wai Collection Vol.2
왕가위 감독, 임청하 외 출연 / 이오스엔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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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늦은 시간에 웃음을 찾는 사람들과 개콘을 차례로 보고 나서 막 텔레비전을 끄려던 차에 왕정문이 나오는 영화 <중경삼림>을 보게 됐다. 정말 오래전 영화였었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마 극장에 가서만 세 번이나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같이 사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하던데. 이 영화가 왜 좋냐고 묻는데, 난 크리스토퍼 도일의 핸드헬드 카메라 기법을 운운하고 있었다. 왜 좋냐고? 글쎄.

 

아마 첫 번째 에피소드가 임청하와 금성무가 나오는 이야기였고, 두 번째가 젊은 날의 양조위와 왕정문(혹은 왕비)이 나오는 에피소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끝까지 다 보지는 못했고, 두 번째 에피소드 중에서 왕정문이 일하는 샐러드바에 매일 같이 찾아와 스튜어디스 애인에게 줄 샐러드를 사가는 경찰 663(양조위 분)의 이야기부터 본 것 같다.

 

모름지기 영화에 로맨스가 빠져서는 될 이야기도 안될 법. 친척 집에 와서 일을 거들어 주고 있다는 페이(왕정문 분)는 경찰 663에 대한 호감을 몰래 키워가고 있다. 조연으로 등장한 663의 애인이 누군가 해서 찾아 보니 주가령이라고 한다. 역시 조연도 그냥 쓰지 않은 모양이다. 페이는 매일 같이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그야말로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큰 소리로 틀어 놓고 산다. 아마 언젠가는 캘리포니아에 갈 꿈을 꾸는 모양이다.

 

샐러드바 주인장의 권유로 경찰 663은 생선튀김과 샐러드를 사서 애인에게 주었다가, 아니 음식도 이렇게 골라 선택의 여지가 많은데 하물며 남자친구는 하는 말을 남기고 가차없이 663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떠나는 길에 그가 자주 들르는 샐러드바에 들러 이별의 편지와 아파트 열쇠를 맡기고 떠나는데, 이게 바로 페이가 663의 집을 드나들게 되는 결정적 계기 혹은 비밀연애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 된다. 페이는 빈 시간을 이용해서 663의 집을 찾아 전여친의 흔적을 세세하게 지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신 자신을 채워 넣기 시작한다. 어제 난 여기까지 보고 어쩔 수 없이 텔레비전을 꺼야했다.

 

그전에 리뷰를 쓰면서는 홍콩 반환을 앞둔 브리티시 홍콩 시절의 불안감을 중점적으로 쓰곤 했던 기억인데, 이제 시니카 홍콩이 된지도 한참 시간이 흘렀다. 난 그 영화를 보고, 처음으로 홍콩에 갔을 때 부러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는 퀄룽의 청킹맨션을 찾기도 했는데 그냥 그랬던 것 같다. 주인공 왕정문이 부른 <몽중인>을 참 좋아해서 홍콩에 갔을 적에 싱글 CD를 사기도 했다. 참 사연 많은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예전엔 미처 몰랐던 무더운 여름날에 하이네켄 맥주를 쉴 새 없이 들이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뭔 놈의 방송 규제가 그리도 많은지 경찰 663이 노점에서 마시는 코카콜라에도 솜방망이가 따라 다니고, 페이가 663의 집에서 몰래 바꾸어 놓는 정어리통조림/파인애플 통조림도 흐릿하게 처리가 되고 있었다. PPL이 언제부터 방송가를 슬금슬금 점령해 왔는데 고작 영화에서 몇 컷 보여주는 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

 

시간이 되면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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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돈이 내린다면 - 2004년 카네기 메달 수상작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41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 지음, 이재경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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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로또를 산다. 예전에는 잘 살지 않았는데, 몇 번 꼴등에 당첨되다 보니 한 주간 기다리는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고나 할까. 물론 은근한 기대감도 없다고 할 수는 없으리라. 그런데 막상 로또에 당첨이 되면 그 돈을 가지고 뭘 할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그런 로또에 맞은 친구들의 이야기라면 어떨까. 시나리오 작가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가 쓴 <하늘에서 돈이 내린다면>은 우리 나이로 10살짜리 꼬마 데미안과 그의 형 안소니 커닝엄의 돈벼락 맞은 이야기다.

 

요즘 아이들이 커닝엄 형제처럼 다 영악한지는 모르겠지만, 그 중에서도 부동산에 많은 괌심을 가지고 있는 안소니는 특별하다. 아니, 사실상의 주인공이 데미안도 만만치 않다. 수많은 가톨릭 성인 열전을 꿰고 있다는 점에 특히 그렇다. 거의 모든 방면에 수호성인이 떡하니 버티고 서서, 우리 사바세계를 관장하고 있다는 것을 꼬마 데미안의 구구절절한 설명을 통해 알게 됐다. 물론 성녀 카타리나의 죽음처럼 비극적인 이야기를 수업시간에 들려 줘서 아이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말이다.

 

유럽의 실질적인 경제통합을 앞두고 영국과 몇몇 나라를 제외한 전유럽에서 유로통화 출범을 앞둔 시대적 상황이 전개된다. 영국은 실제로는 유로 대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자국 통화 파운드를 고집하고 있지만 소설에서는 영국도 파운드화를 유로로 대치하기로 했다는 가정 하에 이야기가 진행된다. 자신의 은둔처에서 하나님에게 기도하던 데미안에게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돈벼락이 떨어진다. 자그마치 22만 9,370파운드(대략 우리 돈으로 4억 원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다)의 돈뭉치가 데미안에게 그야말로 굴러 떨어졌다. 소설을 계속해서 읽으면 알게 되겠지만, 이 돈은 폐기하기 위해 모은 구권을 탈취한 강도 일행이 실수로 떨어뜨린 돈으로 우연하게 데미안과 안소니가 습득하게 된 돈이다.

 

어머니의 죽음 덕분에 알게 된 수많은 성인들과 환시를 통해 직접 대화를 하기도 하는 데미안은 횡재하게 된 이 많은 돈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돕기 원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선한 의미의 도움도 색안경을 쓰고 보는 어른들의 시선에 대한 작가의 비판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시간이 없다. 언제까지 습득한 파운드를 보관하고 있을 수는 없다. 정해진 날짜까지 파운드를 유로로 바꿔야 한다. 물론 이런 거금을 들고 은행에 간다면 바로 의심을 살 것이다. 이 돈이 어디서 났는지 은행직원에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유로로 환전은 불가능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금융실명제가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는 서구 사회 금융권의 선진적 단면을 볼 수가 있다. 이미 꽤 오래 전의 일인데도 영국에서는 그랬구나. 여전히 차명계좌와 불법자금 거래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

 

예상하지 못했던 거액의 돈을 갖게 된 데미안과 안소니 형제는 그야말로 돈을 물쓰듯 펑펑 써댄다. 아이들의 세계지만, 돈이 보여주는 위력은 놀랍다. 자전거를 사지 않고 대신 빌려 주는 대가로 10파운드를 친구들에게 뿌리고, 미술 과제를 대신해주는 대가로 100파운드는 우습다. 그렇게 많은 돈이 풀린 결과, 아이들 사이에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에 이른다.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 작가는 어른 세계에 빗대 통화팽창으로 인한 경제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커닝엄 형제에게도 문제가 찾아온다. 바로 돈을 탈취한 대열차강도들이 흘린 돈 22만 파운드를 찾아 나선 것이다. 바로 여기서 인지수사가 동원된다. 최근에 느닷없이 생긴 돈으로(데미안이 기부한 돈이다) 식기세척기에 텔레비전 같은 최신 전자제품을 사는데 돈을 쓴 모르몬교 이웃들이 타깃이 된 것이다. 용의주도한 안소니 덕분에 꼬리가 잡히지 않았지만, 열 살짜리 꼬마의 기부 행동이 화를 불러오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아빠의 새로운 여자친구로 등극한 도로시 아줌마까지 가세해서 도대체 아무도 믿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파운드를 유로로 바꿀 시간마저 턱없이 부족하다. 더 큰 문제는 막대한 돈이 생겼다고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이야말로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가 이 소설을 통해 다루고 싶었던 주제가 아닐까.

 

우리는 막연하게 로또에 당첨된다면 마냥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인생역전에 성공한 이들이 자산관리에 실패해서 추락한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나는 <하늘에서 돈이 내린다면>을 읽는 동안, 나의 행복 매니지먼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평범한 현실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가끔 허무맹랑한 꿈을 꾸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는 편이다. 요즘 들어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많이 부족해서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지 못하긴 하지만, 그것 또한 삶의 일부분이 아닌가. No pain, no gain 란 말처럼 고통 없이 얻어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로또는 예외겠지만.

 

단박에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대니 보일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대개의 경우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는데, 이번에는 순서가 역전된 느낌이다. 네이버 영화에서는 영화 <밀리언즈>를 코미디로 분류했던데, 개인적으로 코미디보다는 휴먼 드라마에 가깝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지금 막 영화예고편을 찾아봤는데 판타지에 가까운 감동 드라마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새들을 사서 들판에서 풀어주는 장면과 남은 돈을 가져다 기찻길에서 태우다 하늘나라로 간 엄마와 만나는 장면은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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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비용
유종일 외 지음,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엮음 / 알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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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공교롭게도 <MB의 비용>을 읽기 시작한 2015년 3월 13일, 각종 부정부패에 대한 정부는 무관용 원칙에 입각한 선전포고를 했다. 중심에는 이 책에서도 다룬 바 있는 포스코건설 동남아사업단 100억대 비자금 의혹으로 검찰이 포스코건설 본사 압수수색이라는 초강수를 두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MB정권 5년 동안의 실정에 대해 그동안 수많은 의혹과 무수한 고발들이 오래전부터 이어졌었는데, 왜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야 비로소 수사가 시작되었는지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어쨌든 잊지 말아야 할 기억투쟁의 서막이라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MB의 비용>은 아무래도 최근에 나온 전직 대통령의 자화자찬과 왜곡된 수치로 점철된 <대통령의 시간>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앞으로도 후자를 읽어볼 생각이 없지만, 왜 똑같은 사안에 대해 이렇게 다른 시각이 존재할 수 있는지 나 같은 일반 독자로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조차 없을 것 같다. 전직 대통령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22조라는 엄청난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4대강을 필두로 해서, 자원 확보와 자주개발률이라는 구호 아래 진행된 자원외교 42조라는 천문학적 비용, 원전마피아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진 원전비리, 한식의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영부인이 직접 나서서 주도했던 한식세계화 사업 등 우리가 과거에 치렀거나 앞으로 치러야할 MB의 비용은 들으면 들을수록 혈압이 치솟는다.

 

MB 대통령 당선 직후 세상에 떠들썩하게 선전했던 쿠르드 유전 개발로부터 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자원외교는 그 자체가 부실 덩어리였다.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 자원 확보를 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자원외교는 전 정권의 실세 영일대군 이상득 의원과 온갖 비리에 연루되어 결국 실형을 살게 된 박영준 왕차관(미스터 아프리카)의 지휘 아래 진행되었다. 규정에 따른 절차와 원칙을 무시하고 오로지 정권의 홍보와 실적을 위해 속도전으로 전개된 자원외교 사업은 묻지마 투자의 전형이었고, 그에 따른 후폭풍은 엄청났다. 최근에 방송된 KBS 다큐멘터리를 통해 볼리비아 리튬 광산 국유화 선언으로 인해 우리가 수입할 수 있는 리튬 자원은 전무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페루의 사비아페루 유전개발은 전직 페루 대통령이 나서서 말릴 정도였지만, 석유공사가 7,161억원이나 투자해서 성사시킨 계약은 개발허가와 판매권이 아닌 서비스계약으로 석유를 뽑아낼 수만 있지 정작 판매는 페루 정부로 귀속되는 엉터리계약이었다. 광물공사가 주축이 되어 진행된 멕시코 볼레오 광산 개발사업 역시 엄청난 손실을 보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손실이 그야말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3대 에너지 공기업인 석유공사, 가스공사 그리고 광물공사가 나선 MB 집권 5년 동안의 에너지 자원 외교의 실적은 초라하다 못해 처참할 지경이다.

 

MB 집권 시기 의욕적으로 진행한 4대강 역시 책의 1부에서 다루고 있는 국고의 <탕진>이라는 주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애당초 그의 대선 공약 중의 하나였던 대운하 건설이 국민적 저항으로 무산되자, 다른 이름으로 포장해서 내놓은 것이 바로 4대강의 시초였다. 자그마치 22조에 달하는 천문학적 비용을 어떻게 충당할 것이냐는 질문에 4대강에서 준설한 모래를 팔아 비용을 마련하겠다는 엉뚱한 대답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결국 이 사업 역시 국민의 혈세가 소용된 사업이었다. 홍수대비효과와 많은 수의 일자리 창출효과 등 온갖 장및빛 청사진으로 도배가 되었지만, 이 역시 감사원 감사 결과 실패한 사업이었고 4대강 곳곳에 설치된 수많은 보들은 수질오염과 녹조라떼 같은 환경재앙의 원인이 되었다. 지금까지 들어간 비용만도 국민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판인데, 강이 다시 흐르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존의 12개 보 철거를 위해서는 2천억 정도의 비용이 그리고 현상유지만을 위해서도 지속적인 비용이 청구될 전망이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게다가 4대강 사업에 참가한 건설사들의 계획적인 담합으로 탕진된 비용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고 한다. 그들이 이미 받아 챙긴 1조 6천억 원에 비해 비용에 비해 재판과정에서 11개 업체들에게 물린 벌금은 고작 업체당 5,000만 원에서 7,5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그 외에도 최악의 국가적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던 원전 케이블 납품비리, 국가안보를 볼모로 잡아 대기업 롯데에 몰아준 특혜의혹, 낙하산 인사가 회장이 된 KT의 무궁화 위성 헐값매각, 현재 검찰의 수사망에 걸린 포스코 정준양 전 회장의 비자금 의혹 등 수많은 이슈들이 바로 탕진의 주범이라는 것이 <MB의 비용>에서 다루고 있는 주장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화가 나는 점 중의 하나는 성과도 보이지 않는 영부인 한식세계화 사업의 디너파티 예산은 아끼지 않으면서, 당시 영유아들에게 제공하는 백신 비용 등의 예산을 가차 없이 깎아낸 정부의 행태다.

 

한편 후반부를 장식하는 <실정>에서는 지난 정권에서 파탄난 대북한정책, 부적격인사, 내곡동 사저에 관한 비리문제, 부자감세 그리고 미디어법 등에 대해 전문가들과의 대담을 통해 접근하다. 북한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을 하면서 북한의 핵포기와 내부붕괴를 압박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그렇게 집권 5년기를 허송세월했다. 5·24선언으로 남북경협와 금강산 관광 등이 모두 중단되면서 남북관계는 경색되었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었다. 경협을 통한 지원이 북한에게 일방적인 퍼주기가 아니라 평화통일을 위한 선불이라는 개념에 공감할 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왜 검찰이 권력형 비리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분석과 감사원이 제 기능만 제대로 하더라도 정권마다 되풀이되는 형사처벌로 가기 전에 시정하고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MB의 비용>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대척점에 서 있는 <대통령의 시간>을 읽을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시간이 된다면 비교 대조를 위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비용이다. 문득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 이 책의 정가가 자그마치 28,000원이라는 말을 듣고 한참을 웃은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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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 - 2015년 제11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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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한 남자와 여자 그리고 꼬마의 이야기다.

 

제목을 보는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고양이가 오리를 잡아먹은 게 아니라, 오리가 고양이를 잡아먹었다구? 뭐라구? 어디선가 SF 적 장르소설의 혐의가 스멀스멀 피어나는 것을 감지할 수가 있었다. 부리나케 작가의 경력을 뒤져 보았다. 오래전, 피씨 통신 시절에 장르 소설을 썼었던 열혈청년이었구나. 바로 감이 왔다. 그런데 차근차근 소설을 읽어 보니 그런 SF 스타일의 소설이 아니라, 청년실업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저성장 시대의 한 풍경처럼 그렇게 소설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는 내게 다가왔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불광천이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다. 역시 봄이 오는 불광천 풍경은 소설에서 묘사된 것처럼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다만, 소설의 키워드로 작용하고 있는 오리를 볼 수가 없어 좀 아쉬웠다. 대신 비둘기 부대는 많이 볼 수가 있었다. 아마 불광천을 지배하고 있는 조류는 소설에 나오는 오리가 아니라 비둘기인 모양이다.

 

누가 봐도 분명 김근우 소설가의 페르소나로 보이는 화자 내가 등장한다. 삼류소설가를 자칭하며 출판사에서 원고를 빠꾸먹은 나는 생존의 위기에 내몰린다. 진부하지만 통장 잔고에 돈이 남아 있을 리가 없다. 이제 도대체 누가 소설을 읽는가라는 질문을 자주 듣는 시대에, 책보다 커피에 투자하는 비용이 더 많은 시대에 소설가는 기피직종이 된 느낌이다. 어쨌든 나는 생존하기 위해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찾는다는 기묘한 전단지에 이끌려 어느 노인 앞에 서게 된다. 초반에도 이야기했지만,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오리가 노인이 자식보다 더 애지중지하는 세 살짜리 암코양이 호순이(이름 한 번 호방하다)를 잡아먹었단다. 그래서 그와 그의 동료 여자에게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들려 불광천을 누비며 범인, 아니 범압(犯鴨)을 찾으라는 특명을 내린다.

 

동료 여자는 한 때 잘 나가는 증권사 직원이었지만, 그놈의 한탕주의 때문에 나와 비슷한 처지에 몰린 상황이다. 그래도 남자와 여자는 그나마 일말의 양심이 있다. 범압 사냥에 나서 노인에게 일당 5만원에 고용된 처지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신들의 고용주인 노인의 상황에 안쓰러움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렇다, 바로 그런 측은지심이야말로 인간관계 형성의 기본이 아니었던가.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노인의 손자 꼬마까지 등장해서 구성된 범압 3인조는 오늘도 오리 추적에 나선다.

 

이 꼬마는 능청스럽게 성공보수를 노리고 노인을 위해 호순이를 잡아먹은 가짜 오리를 만들자는 아주 발칙한 제안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무리 처지가 궁색해서 노인의 터무니없어 보이는 제안을 받아들인 남자와 여자지만 그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남자는 꼬마가 배달한 김치통이 나뒹굴고 있는 노인의 아파트 청소를 하고, 여자는 노인에게 가정식 백반을 만들어주면서 그들의 신뢰를 점점 쌓여 가기 시작한다. 과연 그들은 범압 사냥에 성공할 수 있을까.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읽는 독자라면 알겠지만, 남자와 여자 그리고 꼬마가 과연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잡았는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황당해 보이는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듣게 되는 그들 삶의 이야기야말로 김근우 소설가가 이 소설을 통해 하고 싶었던 주제가 아닐까 하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은근슬쩍 집어넣은 소설가의 내력도 주목할 만하다.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스토리텔링의 장인이라는 직업이 과연 존재한다면, 소설 속의 주인공처럼 묵묵하게 그 과업을 해낼 자신이 있을까. 팔리지 않는 소설, 다시 말해 사람들이 궁금해 하지 않는 그런 이야기에 목매고 오늘도 컴퓨터 자판을 부서지게 두들겨 대는 군상이 있다는 사실이 낯설게 다가왔다.

 

그런 점에서 소설 속의 화자가 내세운 허먼 멜빌의 <모비딕>(그 엄청난 두께 때문에 앞으로도 읽을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든다)에 나오는 에이해브 선장의 복수, 오리를 찾는 노인의 허망한 노력 그리고 소설가의 소설쓰기는 삼위일체다. 우리는 한 배를 탄 운명공동체로 뭉뚱그리고, 노인의 집념이 어이없다는 점을 잘 알면서 현실의 경제적 궁핍에서 탈출하기 위한 방편으로 삼고 있는 자신들의 노력 혹은 노동을 정당화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는 그야말로 삼중고에 시달리는 진실에 김근우 소설가는 무의식의 뜰채를 들이민다.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 속에 피어나는 연민과 동정 같은 감정의 파노라마 역시 빠질 수 없는 요소다. 그렇게 세상을 담은 이야기는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김근우 소설가가 이번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을 계기로 다시 잘 팔리는 작가가 돼서 그의 로망대로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 여행에 나서게 되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마지않는다.

 

[리딩데이트] 2014년 3월 1일 ~ 13일 오전 7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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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린세스 브라이드
윌리엄 골드먼 지음, 변용란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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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래 전에 처음부터 끝까지 보진 못했지만, 한동안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줄창 방송을 해주어서 영화 <프린세스 브라이드>의 주요 장면들을 보곤 했었다. 그런데 그전에 윌리엄 골드먼이라는 할리우드의 탁월한 스크린플레이 작가가 쓴 소설을 원작으로 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다. 사실 영화의 대강의 줄거리조차 기억나지 않지만, 영화 후반에서 이니고 몬토야가 루겐 백작에게 칼을 마구 휘둘러 대며 자신의 이름을 계속해서 소개하는 장면은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소설을 읽으면서도 가장 애정을 가지고 지켜본 캐릭터도 버터컵 공주나 해적왕 웨슬리가 아닌 이니고였다.

 

소설은 1973년에 나왔고 영화는 1987년에 만들어졌으니까 14년의 시차를 두고 소설과 영화가 세상에 나왔나 보다. 열 살 배기 소년인 나는 폐렴으로 고생하던 중, 아버지가 읽어주신 모겐스턴의 <프린세스 브라이드>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된다. 영화에서는 <케빈은 열두살>의 프레드 새비지가 꼬맹이 역을 맡았다.

 

멀지도 그렇다고 그렇게 가깝지도 않던 시절, 플로린 왕국에 내로라하는 미모의 소녀 버터컵이 살았단다. 왜 하필이면 로맨스 영화나 소설에는 절세미녀가 등장하지 않으면 이야기가 되지 않는 걸까. 외모지상주의는 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모양이다. 시골 출신의 이 소녀 곁에는 농장 머슴애란 친구가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웨슬리. 초반에는 나이를 먹을수록 아름다움 외모가 치솟는 버터컵 이야기가 나오더니, 그 다음에는 백작 부인의 행차로 웨슬리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게 된 버터컵의 극적인 변신 이야기가 이어진다. 버터컵은 그 순간 웨슬리를 자신이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고백하지만, 웨슬리는 그녀의 곁을 떠날 결심을 하게 된다. 이렇게 덧없는 청춘들의 사랑은 바람결에 날아가 버리게 되는 걸까.

 

한편, 버터컵과 웨슬리가 살던 플로린 왕국에는 험퍼딩크라는 사냥에 미친 왕자가 한 명 살고 있었는데 때가 되어 왕위계승을 하기에 이르렀고, 내친 김에 결혼도 하기로 결심한다. 이웃나라 길더 왕국 공주가 대머리였다는 사실에 식겁한 험퍼딩크 왕자는 그저 외모 하나로 색싯감을 고르기로 결정한다. 어째 하나 같이 그렇게 외모타령을 하는 걸까. 그렇게 해서 결정된 처녀가 바로 버터컵이라는 사실이 여기서 중요하다. 신분상의 문제로 평민이었던 버터컵을 바로 왕자의 신붓감으로 들일 순 없고 해머스미스의 공주로 신분세탁과 동시에 귀족의 예절을 가르쳐 당당하게 결혼을 치를 준비에 여념이 없다.

 

이렇게 일사천리로 이야기가 진행되면 좋겠으련만 바로 시련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어려서부터 말타기에 일가견이 있던 프린세스 브라이드 버터컵은 결혼을 앞두고 말타고 바람 쐬러 나갔다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삼인조 괴한(이니고 몬토야, 페직 그리고 비지니)에게 납치되어 상어 밥이 될 뻔한 죽을 고비를 넘기게 된다. 이 때 납치된 버터컵의 뒤를 쫓는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있었으니, 볼 것도 없이 이미 무시무시한 해적왕 로버츠에게 잡혀 죽을 것으로 알려진 웨슬리가 불사조처럼 살아난 것이다. 그냥 농장 머슴애에 지나지 않던 웨슬리는 언제 그렇게 뛰어난 검술을 익혀 스스로 마법사 이후 최고의 검객이라 자부하는 이니고 몬토야를 제압하고, 천하장사 페직마저 기교로 패퇴시키고, 음모와 술수에 달인 비지니마저 독약으로 처리하는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침내 버터컵을 구해내 해피엔딩에 도달하는가 싶었지만, 천하제일의 사냥꾼 험퍼딩크 왕자의 추격에 잡혀 비명횡사할 운명에 처한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로 작가 윌리엄 골드먼은 이니고 몬토야가 어떻게 해서 험퍼딩크 왕자의 심복 루겐 백작과 원수지간이 되었는지 그리고 그가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도밍고의 복수를 위해 검객이 되었는지를 소상하게 들려준다. 사실 어쩌면 끝이 빤해 보이는 메인 스토리보다 중간중간에 들이치는 그런 소소한 서브 캐릭터들의 이야기에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힘이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페직 또한 어릴 때 또래들에게 당한 유년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에 소녀 심성을 가진 사나이로 등장한다. 자신을 보살펴 주는 전략가 시칠리아인 비지니를 위해 힘을 아끼지 않지만 막상 비지니가 없어지고 나자, 자신의 운율친구 이니고와 힘을 합쳐 험퍼딩크 왕자와 루겐 백작의 사악한 수중에 들어간 웨슬리를 구해내는 작전을 수행하기에 이른다.

 

소설 도중에 읽은 “인생은 공평하지 않아”란 부분이야말로 윌리엄 골드먼이 <프린세스 브라이드>를 쓰게 된 원동력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됐다. 이 말은 다른 사람이 아닌 책의 제목이 상징하는 버터컵에 적용시켜 보면 단박에 알 수 있을 것 같다. 버터컵은 어려서부터 지적 훈련을 통한 아름다움을 소유하게 된 인물이 아니다. 농부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떤 점도 닮지 않고 제 스스로 그저 아름답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험퍼딩크 왕자에게 발탁되어 장차 플로린 왕국의 왕비 그러니까 다시 말해 두 번째 가는 권력자의 지위에 오를 예정이다. 물론, 그 뒤에 기다리고 있는 운명이 잔혹하기는 하지만. 혼례식까지 왕자의 흉악한 음모를 알고 있는 사람은 소수의 측근과 독자뿐일 테니까. 타고난 아름다움 하나로 부와 권력 그리고 온 백성들의 사랑까지 독차지하는 게 공평한 일일까. 참고로 영화에서는 요즘 잘나가는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발군의 연기를 보여주고 있던 로빈 라이트가 풋풋한 시절의 버터컵을 연기했다.

 

<프린세스 브라이드>는 동화 속에나 등장할 법한 그런 아름다운 여주인공과 그녀를 사랑해 마지않는 웨슬리, 그들에 필적하는 악당 험퍼딩크 왕자, 루겐 백작의 대결이라는 전형적인 선악의 대결구조를 펼친다. 주인공이 의도하는 목적(이 소설에서는 아마도 진정한 사랑)을 이루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온갖 환난고초와 죽음까지 극복해내는 눈부신 서사구조는 확실히 재밌다. 웨슬리는 결국 검의 달인이자 고문기술자 루겐 백작이 고안해낸 기계에 목숨을 잃게 되지만, 중세스러운 시대에 어울리는 미러클 맥스와 그의 마녀부인 발레리가 엉터리로 만들어낸 부활알약을 먹고 살아나, 험퍼딩크의 왕자의 마수에서 버터컵-공주를 구해내 잘먹고 잘살았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참으로 디즈니스러운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 말미에 따라오는 에필로그는 사족처럼 보인다.

 

초반에 몰입이 좀 어려웠지만, 웨슬리가 죽었다고 생각한 버터컵이 낙심해서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겠노라고 결심하는 장면서부터 시작하는 중반부터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스크린플레이 작가라서 그런지 영화적 상상을 담아 페이지를 휙휙 넘기게 하는 그런 마법 같은 기술이 탁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표지에 보면 우측에 버터컵과 키스를 하는 웨슬리 너머로 플로린 왕국의 성을 볼 수가 있고, 좌측에서 백마를 타고 두 사람 사랑의 방해꾼인 험퍼딩크 왕자가 칼을 휘두르는 일러스트는 윌리엄 골드먼이 <프린세스 브라이드>에서 하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집약적으로 담은 컷이라고 단언하고 싶다. 일러스트 한 번 기차게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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