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백홈
황시운 지음 / 창비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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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홈”하면 역시 서태지다. 최근에 비밀결혼과 이혼으로 다시 한 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가수가 전면에 등장하는 소설 <컴백홈>은 그렇게 서태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고 해야 할까?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황시운 작가는 자신의 첫 장편으로 어쩌면 자신의 우상이었을지도 모를 그런 가수에 대한 오마주를 바친다.

창비장편소설상이라는 타이틀에 빛나는 <컴백홈>의 주인공은 열일곱 살 소녀 박유미 양이다. 이름 한 번 빼어나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앳된 소녀의 과체중이다. 0.1톤을 한참 웃도는 주인공의 육중한 몸무게는 고통의 원천이자 세상으로부터 소외의 주범이다. 그런데 그녀는 왜 그렇게 음식에 탐닉하고 주체할 수 없는 폭식의 나락에 빠져든 걸까?

지금도 그런 진 모르겠지만 한 때 시대정신의 선두주자였던 아티스트 서태지와 얽힌 운명의 끈이 있다고 유미는 굳게 믿는다. 기성세대의 간섭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한 선구자의 도전은 쉽지 않았다. 서태지의 그런 도전정신을 그 누구보다도 잘 이해한다고 자부하는 유미는 언젠가 그와 함께 달나라로 갈 꿈을 꾼다. 놀랍군! 그런데 그러기 위해 반드시 이뤄야 할 선행조건이 있으니 그건 바로 다이어트 성공이다.

유미의 육중한 몸매는 학교에서 “슈퍼울트라 개량돼지”라는 잔혹한 별명과 함께 공식 왕따로 늘상 얻어터지고 삥을 뜯긴다. 게다가 그녀를 괴롭히는 일진 짱 지은은 유미가 인정하는 유일한 친구다. 경제적으로 무기력한 아버지를 대신해서 어머니가 돈벌이 전선에 나서고, 상대적으로 자식에게 무심한 가정환경도 빼놓을 수가 없다. 어쩌면 파괴되어 가는 오늘날 가정의 모든 단면이 유미네 집구석이 대변하는지도 모르겠다.

유미는 혹독한 다이어트를 통해 보통 사람이 되는 고행에 나선다. 폭식과 거식의 반복을 통해 자발적 거식증 환자로 되기로 작정하고 프로아나가 되기로 한다. 하지만 폭식의 아름다운 추억을 아는 유미가 쉽사리 프로아나가 되기는 쉽지 않다. 끝없이 계속되는 음식의 유혹을 참아 가면서, 고통스러운 폭토의 과정을 겪는 유미가 그저 애처로울 따름이다. 한편, 유미를 괴롭히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녀의 편이 되준 지은이 어느 날 갑자기 미혼모가 되어 종적을 감춘다. 사정도 모르고 호스로 자신을 사정없이 내치는 엄마를 “까고” 가출한 유미는 지은을 찾아가 엄마가 되어가면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친구의 변신에 혼란을 느낀다.

<컴백홈>에는 정말 21세기 대한민국 청소년이라면 누구나 고민해봤음직한 모든 문제가 줄줄이 쏘시지처럼 달려나온다. 집에서도 친구로부터도 인정받지 못하는 불쌍한 존재인 유미는 오로지 MP3 플레이어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게서 위로를 받을 뿐이다. 그런데 그 음악조차도 철저하게 신비주의로 무장한 상업 아티스트가 소산이라는 걸 알고 있을까? 해당 아티스트에 대한 가치판단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예전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이제 더는 그 아티스트가 시대정신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건 사실이니까.

가정이 흔들리는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인 경제 문제에는 해답이 없다. 실업이 곧 생존을 위협하게 된 작금의 상황에서 자영업자로 내몰리는 가장의 선택지는 너무나 좁게 느껴진다. 어쩌면 자식에게까지 철저하게 무관심한 유미 아빠의 행동이 이해가 되기도 한다. 물론 딸이 가출했는데, 문자 한 통 보내지 않은 그의 무심함을 변호하고 싶은 마음도 없지만. 사실 유미네 집안의 가족사를 따지고 보면, 유미네 엄마도 할 말은 없을 것 같다. 둥지의 김선생이 말하는 것처럼 새끼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는 종자라니 어쩌겠는가.

‘돌진하는 이야기꾼’이라는 황시운 작가는 독자에게 그래서 넌 어떻게 생각하는데?라고 묻고 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외모 지상주의가 판을 치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 병폐는 앞으로도 없어지지 않을 것 같다. 양아치, 날라리가 되기 위해서도 기본은 받쳐 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작가는 날카롭게 꼬집는다.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성공의 사다리를 악착같이 기어오르기 위해 내면의 모습이 아닌 타인의 시선에 의해 결정되는 외모라는 외적인 요인에 집착하는 현대인의 초상에 급소를 찌르는 포복절도에도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골계미를 추구하면서도 냉정한 현실감각을 잃지 않는 작가의 냉정함이랄까?

백문이 무소용이다. 직접 읽어 보고, 작가의 맹랑한 글쓰기를 몸소 체험해 보라. 스포일이 될까 봐 소심하게 적지 못한 구구절절한 잔재미를 느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5월의 마지막 날에 만난 수작(秀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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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통신 1931-1935 - 젊은 지성을 깨우는 짧은 지혜의 편지들
버트런드 러셀 지음, 송은경 옮김 / 사회평론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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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트런드 아서 윌리엄 러셀. 우리가 흔히 버트런드 러셀이라고 부르는 영국 출신의 수학자, 철학자, 수리논리학자, 역사가, 사회비평가 그리고 반전운동가로 한 세기를 풍미한 위대한 석학의 공식 이름이다. 게다가 백작이라는 작위까지 가지고 있다. <런던통신 1931-1935>은 지난 2005년에 <인간과 그밖의 것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는 <Mortals and Others>의 개정판이다. 6년 전에 나온 책이 비해 엄청 뚱뚱해졌다.

<런던통신>에는 제목에도 나와 있다시피 모두 1931년에서부터 1935년까지 5년간 발표된 135편의 에세이가 실려 있다. 책을 읽기 전에 항상 목차를 꼼꼼하게 살펴보곤 하는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글은 <나폴레옹이 행복했더라면>이었다. 80년 전의 교육 현장에서도 여전히 아이들은 불행했나 보다. 아이들의 즐거움은 기성세대는 허용할 수가 없었던 걸까? 러셀은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애정과 상식 그리고 착한 마음만 있으면 된다고 주문한다. 행복의 비결이 그렇게 간단하다니! 인류사에서 위대한 성취를 이룬 위인이나 영웅들의 유년 시절엔 잔혹한 요소가 숨어 있었다고 러셀은 꼬집는다. 러셀의 말대로 그런 요소가 성취의 원동력이 되었을진 모르겠지만, 불행의 산물이었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20세기 초반에도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유럽에서 볼 때 여전히 신생국가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던 미국과의 비교가 인상적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노인들의 ‘소싯적’ 경험 타령은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보다도 세월은 더 많이 산 경험에 기인한 선입견을 경계하라고 러셀은 주장한다. 유럽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그런 경험이 없는 미국의 자유주의적 창조성이야말로 저물어 가는 제국 영국을 대신해서 신흥국가 미국이 패권국가로 발돋움하게 된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유럽을 여행하는 관광객들에 대한 예리한 관찰도 빼놓을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여행하면서 느낀 점을 러셀과 공감하다니 영광이다. 관광객이라는 이름의 이방인이 관광수입을 올려 준다는 명목으로 현지인들의 일상을 방해할 권리가 있던가? 우리는 과연 그들 나름의 규범과 질서를 준수하면서 관광의 즐거움을 찾고 있는 걸까?

<돈을 향한 공포, 돈에 의한 공포>에서는 자본주의 사회 병폐 중의 하나인 금전만능주의를 경고한다. 교육 시스템과 영화 같은 미디어를 통해 확대 재생산된 금전에 대한 집착이야말로 다른 모든 가치를 초월한 성공의 지표로 인식되는 세태를 이 철학자는 한탄한다. 게다가 소위 말하는 부자들이 한 세기 전의 부자들처럼 교양과 문화 면에서 존경받을 만한 행태를 보이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공공의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고흐나 렘브란트의 유산은 자본의 증식을 위한 투자의 대상일 뿐이다.

진보주의자였던 러셀은 대의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해서도 탁월한 식견을 보여준다. 교육과 경제 민주주의가 따르지 않는 정치 민주주의는 엉터리라고 선언한다. 대중의 교육과 경제적 소외가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온다는 것을 현실세계에서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억압의 일상화에 대한 분석을 통해 러셀은 민주주의 완벽한 체제라는 동의하지 않으며 어떤 점에서는 위험하다고 밝히고 있다.

유려한 문장을 구사하며, 자신의 다양한 주장을 드러낸 석학의 면면을 짧은 글에 담기란 쉽지 않다.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삶의 구석구석을 파헤치며 자신의 신념을 지켜낸 지난 세기의 산 증인이 들려주는 에세이의 울림은 그래서 더 깊다는 느낌이다. 처음으로 만난 러셀의 텍스트가 에세이라는 형식이어서 그런지 어렵지 않고 쉬워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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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라트비아인 매그레 시리즈 1
조르주 심농 지음, 성귀수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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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열린책들에서 작년부터 야심 차게 선전해온 조르주 심농의 매그레 형사 전집의 첫 번째인 <수상한 라트비아인>을 읽었다. 사람이 구식이어서 그런지 요즘 케이블 텔레비전만 켜면 등장하는 최첨단 스타일의 수사 방식보다는 우직하게 옛 스타일을 고수하는 피터 러브시의 피터 다이아몬드 같은 구닥다리 형사가 좋다. 그러니 휴대전화나 팩스 혹은 첨단을 달리는 지문감식기 같은 장비가 없던 1930년대 창조된 캐릭터인 쥘 매그레 반장도 마음에 들 수밖에.

이미 유럽에서는 1930년대에서부터 국제적 수사공조가 이루어졌는지, 라트비아 출신의 수상한 인물인 피에트르가 유럽을 가로질러 프랑스로 향하고 있다는 첩보가 우리의 주인공 매그레 반장의 손에 들어온다.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는 매그레 반장은 삽으로 석탄을 퍼 넣는 주철 난로의 온기를 쬐어 가며, 근처 식당에서 배달된 샌드위치와 맥주를 즐기며 상대와의 ‘게임’을 즐긴다. 이제 막 근대적인 수사 시스템이 체계를 갖추어가던 시절의 이야기가 <수상한 라트비아인>을 통해 소개된다.

이 수상한 라트비아인을 마중 나간 기차역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매그레 반장을 특유의 ‘촉’을 발동시켜 유력한 용의자로 짐작되는 피에르트의 뒤를 쫓는다. 세계의 수도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 파리의 뒷골목과 노르망디의 페캉을 누비면서 범인이 남긴 단서를 수집하는 매그레. 이런 큰 덩치에 잠복이 어울리지 않지만, 범인도 인간인 이상 반드시 틈을 보일 것이라는 “균열 이론”을 자신한다. 이 균열 이론이야말로 매그레 반장이 사건 해결을 자신하는 원천이다.

미행에 나섰다가 암살당할 뻔하고, 신뢰하는 단짝 파트너를 잃는 위기를 겪으면서도 매그레 반장은 굽히지 않는다. 형사는 그에게 천직이었을까? 휴대전화는커녕 전화도 교환원을 통해서 해야 하고, 제대로 된 자동차도 없어서 택시를 타고 미행하는 묘사는 올드스쿨 스타일 수사의 전형이었다. 조르주 심농은 형사가 ‘게임의 상대’(범인)와 집요한 승부를 통해 형성하게 되는 기묘한 심리적 교감도 빠트리지 않는다. 내가 범인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라는 역지사지의 추리는 매그레 반장을 신화의 반열에 올려놓은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조르주 심농은 사건 자체뿐만 아니라 1930년대 파리의 시대상을 독자에게 전달하는데도 탁월한 실력을 발휘한다. 세계 곳곳에서 이러저러한 이유로 파리를 찾은 삶의 군상이 그의 손끝에서 부활한다. 빽빽하게 세입자로 들어찬 허름한 아파트에 사는 외국인의 모습이나 오페라 극장 그리고 심야의 살롱을 찾는 부유한 미국 사업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당시의 시대상이 드러난다. 하지만 명확하게 드러내지는 않지만, 드문드문 등장하는 왜 외국인이 프랑스 땅에 들어와 사느냐는 작가의 극우적 시선이 불편하게 다가왔다. 프랑스를 위대하게 만든 혁명의 삼박자였던 자유, 평등 그리고 박애 정신을 심농은 잊었던 걸까?

이 책을 주문하면서 함께 산 버즈북에서 그의 경력 중에 오점으로 남아 있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부역 혐의를 중점적으로 찾아봤다. 전후 나치 부역 혐의로 거주지 지정을 받았고, 1949년 모리스 가르송의 변호로 혐의를 벗었다는 점 정도가 전부였다. 심농이 만약 레지스탕스 저널의 편집장이었던 알베르 카뮈나 레지스탕스 영웅이었던 장 물랭처럼 조국을 위해 적극적인 저항활동을 했다면 과연 이런 혐의를 받았을까? 그가 남긴 한마디 코너에서 빠진 “N"은 어쩌면 나치에 대한 그의 변명이 아니었을까? 부족한 정보로는 심농의 전중 활동에 대한 평가는 잠시 유보해야 할 것 같다.

솔직히 자그마치 75권에 달한다는 매그레 반장 시리즈를 다 읽을 자신은 없다. 언제나 그렇지만 시간이 늘 부족하고 읽은 책들은 차고 넘치니 말이다. 책 디자인은 참 마음에 든다. 기존의 열린책들에서 나온 책들과는 또 다른 느낌이라고나 할까. 전집 중에서 나중에 선별해서 몇 권 읽어야지 싶다. 그나저나 로베르토 볼라뇨의 다른 책들은 언제나 볼 수 있는 걸까. 심농의 시리즈보다 더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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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펭귄클래식 13
허균 지음, 정하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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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로 칼비노가 그랬던가. 무릇 고전이라 하면, 처음 읽는다고 말할 게 아니라 지금 다시 읽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고. 물론 그런 말이 모든 책에 적용되면 좋겠지만,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나 도스토옙스키의 저작에는 해당이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에 다시 읽은 허균의 <홍길동전>은 이미 내용도 빠삭하게 알고 있고, 또 그 분량에서 전혀 부담이 되지 않는지라 읽기 전부터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은행이나 관공서에 서식 샘플란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홍길동이란 이름을 모르는 이는 없으리라. 조선시대 허균이 쓴 <홍길동전>의 내용도 이러저러한 경로를 통해 익히 알고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세종 대에 홍승상 댁의 서자로 태어난 홍길동이 온갖 역경을 딛고, 입신양명을 꿈을 이룬다는 것이 <홍길동전>의 기본 줄거리다.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서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태어난 홍길동은 비록 양반 집안이긴 하지만, 적서차별에 따라 관계에 진출할 수가 없었다.

유머 코너에서도 하도 많이 소재로 삼아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호부호형’하지 못하는 한(恨)도 어린 홍길동에게 깊은 상처가 되었다. 당시 심리치료가 없어서 그랬지 지금이었다면, 바로 정신과 상담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설상가상으로 홍승상의 애첩인 초낭이 이제 막 십 대에 접어든 길동을 없애기 위해 자객까지 동원한다. 길동은 어디서 배웠는진 모르겠지만, 오묘한 도술로 위기를 벗어나면서, 초낭과 함께 이 일을 도모한 자객과 관상녀에게 복수를 한다. 그 어린 나이에 복수설한을 하고 강호에 나서게 되는 길동!

자신의 출중한 재능을 국가를 위해 사용할 수 없는 이가 갈 길은 빤하다. 도적의 무리에 합류해서 우두머리가 된 길동은 분신술을 사용해서 전국에서 백성을 갈취하는 탐관오리를 응징하는 의적 활빈당을 조직한다. 역설적이게도 조선시대 최고의 명군이라 칭송받던 세종 시대에도 그렇게 간악한 무리가 많았던가. 홍길동의 눈부신 활약에 발칵 뒤집힌 조정은 그 당시로써는 가장 유용한 방법이었던 연좌제를 동원해서 길동의 체포를 도모한다. 이미 조정 신료의 작전을 눈치챈 길동은 임금과 대신을 한껏 농락한다. 도저히 실력으로 길동을 제압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들은 하는 수 없이 길동이 원하는 병조판서직은 제수하고 그를 포용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바꾼다.

자신의 실력을 과시한 길동은 임금에게 새로운 국가 건설을 위한 자금을 두둑하게 얻어내 자신을 따르는 무리와 함께 먼 곳으로 나가 성도섬을 거쳐 율도국에 자리를 잡아 잘 먹고 잘 살다가 신선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전후복구가 한창이던 17세기 초반에 쓰인 <홍길동전>은 전란으로 사회질서가 극도로 혼란하고,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의 근간이 흔들리던 시기를 대변하는 사회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다. 당장 먹고살 것이 없던 시기에, 건국 초기 세종 시대는 그야말로 당시를 살던 이들에게 이상향이었을 것이다. 여러 사회 부조리 가운데서, 자유로운 신분상승을 가로막고 있던 적서차별이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워 수가 틀리면 새로운 질서를 만들라고 선동하는 허균의 <홍길동전>이 기득권층에겐 아마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전통적 유교질서와 윤리야말로 양반들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지켜야 할 가치였으니 말이다.

가뜩이나 기존의 질서가 흔들리고 있던 판에, 재능과 실력을 갖춘 하층 세력의 대두가 기득권층으로서는 못마땅했을 것이다. 게다가 허균은 <홍길동전>을 한문이 아닌 상민이나 아녀자들도 읽을 수 있는 한글로 저술함으로써 독자의 저변 확대에도 이바지했다. 그런 점에서 최초의 국문 고전소설 작가의 영예는 허균에게 돌아가야할 것 같다. 책의 실린 방각본 경판을 읽어 보려고 하니, 구두점과 띄어쓰기 구분이 되지 않아 현대 독자에게는 역시나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회적 요소에 그리스 고전에서 흔히 등장하는 영웅 살해 모티브까지 들어 있어서 소설의 재미를 더해준다. 가문에 화가 미치기 전에, 원인을 제거하자는 데 홍승상과 정부인 그리고 길현까지 가세하는 장면에서는 개인의 행복에 우선하는 가문이라는 유교 이데올로기의 비정함이 엿보였다. 전기소설에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의 재능은 홍길동도 예외가 아니었다. 어느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서는 남들과 다른 특출난 재능이 필요하다. 비록 도적 무리이긴 하지만, 입신양명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홍길동은 자신이 가진 재능을 도적에게 보이고 단박에 우두머리 자리를 꿰찬다. 분신술을 쓰며 전국 팔도를 누비며, 임금과 조정 신료까지 농락하는 이 영웅에게 누가 도전한단 말인가.

옥에 티라고 한다면, 허균은 역사 공부를 소홀히 했던 걸까? 세종 시대 이야기를 쓰면서 선조 시대에 만들어진 훈련도감을 언급하는 걸 보면 요즘 같으면 어림없었을 일도 세월이 수상하던 시기에는 그냥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가기도 한 모양이다. 그리고 경판 24장본과 완판 36본에도 할 말이 있다. 완본의 1/3가량이 줄어들 정도라면 그 디테일에서 현저하게 차이가 날 게 분명한데 과연 누가 그런 편집을 단행했을까? 요즘 같았으면 저자가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엉뚱한 상상에 젖어 보기도 했다.

읽을 때마다 또 새로운 <홍길동전>은 변화무쌍하다. 역시 고전의 맛은 접할 때마다 새롭게 발견하는 새로움이 아닐까? 옛것에서 새로움을 발견하는 온고지신의 즐거움이야말로 우리가 ‘다시’ 고전을 읽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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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1 펭귄클래식 74
샬럿 브론테 지음, 류경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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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고전처럼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 역시 읽지는 않았지만, 익숙한 고전 중의 하나였다. 최근 미아 와시코브스카와 마이클 패스벤더가 주연을 맡은 영화 <제인 에어>의 개봉으로 새로이 그녀의 원작이 주목을 받게 됐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아서 영화에 대한 평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이번에 읽게 된 원작 소설 이야기를 해보자.

소설 <제인 에어>의 주인공이자 소설 속의 화자로 등장하는 주인공은 바로 나 제인 에어다. 열 살배기 꼬마 숙녀는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외숙모 새러 리드 부인과 세 명의 사촌형제의 구박 속에서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낸다. 제인이 사는 게이츠헤드 장에서의 생활은 고통 그 자체였다. 어린 제인과 리드 부인의 불화는 제인의 외숙부가 유언으로 남긴 제인의 후견부탁에서 비롯됐다. 제인은 리드 부인의 부당한 대우에 항의하고, 자신을 괴롭히는 사촌 존 리드와 한판 싸웠다가 혹독한 벌을 받기도 한다.

어린 제인은 결국 게이츠헤드 장을 떠나 로우드 학교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틀지만, 그곳의 환경 역시 그녀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리드 부인으로부터 제인에 대해 좋지 않은 정보를 들은 로우드 학교의 운영자인 브로클허스트 씨는 제인에게 거짓말쟁이라는 누명을 쓰기도 하지만, 외톨이 친구 헬렌 번스를 만나면서 위안을 얻기도 한다. 하지만 발진티푸스가 대유행을 하면서 제인은 유일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헬렌을 잃는다.

로우드 자선원 학교에서 6년은 학생으로 그리고 나머지 2년은 선생으로 지내면서 세상에 맞서 싸울 수 있는 교육이라는 무기를 얻은 제인은 새로운 경험에 도전한다. 가정교사 광고를 통해 로우드 학교를 떠나 손필드 장에서 프랑스 꼬마 아델 바렝을 가르치게 된 제인. 손필드 장의 주인인 로체스터 씨와의 운명적 만남을 통해 그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렇게 역경을 딛고 자주적인 인간형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손필드 장의 숨겨진 비밀에 접근하게 된다. 평범한 인생 드라마에서 미스터리로 바뀌는 극적인 전환이 순식간에 벌어진다.

샬럿 브론테는 영국이 전 세계를 지배하던 빅토리아 시대 영국 사회의 단면을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들려준다. 부모 없는 아이가 홀로 성장하기에 부르주아지 사회가 얼마나 녹록하지 않은지, 부르주아지의 자선으로 운영되는 자선원 학교에서의 간소하고 소박한 삶이 얼마나 비참한지 작가는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물론, 리드 부인의 재정 지원이 뒷받침되긴 했지만 제인은 로우드 학교에서 자신의 부단한 노력으로 뛰어난 학문적 성취를 이루는 진취적 캐릭터로 그려진다.

제인 에어가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사랑을 찾게 되는 손필드 장의 생활을 통해 그녀는 재산과 계급이 빅토리아 시대 영국사회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하게 깨닫게 된다. 그녀의 고용인이자 주인인 로체스터가 어울리는 상류계급 인사들은 가정교사인 제인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언사를 서슴지 않는 장면은 이를 방증한다. 그들의 계급적 기반을 제외한다면 교양이나 프랑스어 실력에서 제인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 소위 숙녀들에 대한 위선과 허영을 샬럿 브론테는 조목조목 지적한다. 그런 점에서 비록 고용인와 피고용인의 관계였지만 로체스터 씨에게 당당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하는 제인의 모습은 시대를 앞서 간 여성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고아 소녀가 부자 주인과 사랑에 빠진다는 전형적인 연애담은 손필드 장에서 로체스터의 목숨을 앗아갈 뻔한 방화사건이 발생하고, 손님으로 찾아온 리처드 메이슨이 피투성이가 되는 사건을 거치면서 미스터리로 극적인 전환을 맞이한다. 제인은 겉보기에 평화로워 보이던 손필드 장에 숨겨진 비밀에 조금씩 다가서지만, 그 비밀로부터 따돌림당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한편, 사랑이라는 감정을 모르던 제인 에어가 무서운 인상과 묘한 표정의 주인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는 심리적 변화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여성작가 특유의 섬세한 감수성으로 미묘하게 바뀌는 제인이 느끼는 감정의 추이변화를 예리하게 짚어낸 묘사는 특히 일품이었다.

희비극을 오가다 결국은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되는 이 연애소설에서 샬럿 브론테는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여성상을 창조해냈다. 특출난 외모도, 유복한 부모가 물려준 유산도 없이 위기마다 자력갱생하는 주인공 제인은 아무리 “슬프고 외로워도” 울지 않고 세상에 떳떳하게 맞선다. 남자의 선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를 선택하는 빅토리아 시대에도 과연 이런 여성이 있었을까 싶었을 정도로 당찬 그녀의 모습은 매력적이다. 그저 그런 고전 스타일의 연애소설이겠지 하는 나의 편견을 한 방에 날려 버린 샬럿 브론테의 성취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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