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부탁해요, 폼포니오
에두아르도 멘도사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역사물을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그중에서도 팩션으로 역사상의 인물에 가공의 사건을 더한 장르라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에 민음사에서 출간된 스페인 작가 에두아르도 멘도사의 <예수를 부탁해요, 폼포니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재밌고, 유머 넘치는 주인공에 역사적 인물인 예수 그리스도, 그의 아버지 요셉 그리고 마리아까지 등장하다니 놀랍기만 하다.

본격적인 책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최고의 베스트셀러라는 성경에 대해 기본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책을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다고 장담한다. 심지어 옮긴이가 각주에서 다루지 않은 것도 성경의 어디에선가 본 듯한 데자뷰를 느끼기 때문이다. 그만큼 원저자인 멘도사가 성경에 대해 박식하다는 방증일까? 호기심에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이야기는 예수의 어린 시절을 파고든다. 사실 신약의 복음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에 대해서는 세세하게 다루고 있지만, 성장기 대부분은 베일에 싸여 있지 않은가. 바로 그 점에 착안해서 멘도사는 우리의 주인공 폼포니오 플라토를 등장시킨다. 로마 시민 출신으로 자연학에 심취한 생리학자이며 철학자를 자처하는 폼포니오는 신비스러운 물을 찾아 곳곳을 누비지만 습관성 장염으로 지독한 냄새를 피우는 가스에 요란한 청각 효과까지 내뿜는다.

방랑자로 떠돌던 폼포니오는 팔레스타인의 나사렛이라는 작은 마을에까지 흘러들어오게 되고, 우연히 만난 꼬마 예수로부터 자신의 아버지 요셉의 억울한 누명을 풀어 달라는 제안을 받게 된다. 작은 마을에서 조용하게 살던 목수 요셉은 마을의 부유한 유대인 에풀론을 살해했다는 혐의를 받고 십자가 처형을 목전에 두고 있다. 자신에게 협조를 거부하는 요셉을 구해야 하는 기구한 운명에 처한 방귀쟁이 폼포니오! 그가 사건에 접근할수록 미스터리는 점점 꼬여만 가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살던 기원후 1세기경의 모습은, 현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호민관 아피우스 풀크루스는 군단병들을 쥐어짜내며, 개발이 예정된 택지를 빚을 내서라도 사들이려는 탐욕스러운 투기업자의 모습으로 다가온다. 호민관이란 모름지기, 평민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관리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탐하는 모양새가 어째 영 탐탁지 않다. 게다가 무신론자가 분명한 주인공 폼포니오의 영혼불멸에 대한 개똥철학은 그야말로 멘도사 작가가 시전하는 언어유희의 극치다.

당시 세간에 퍼진 그리스인들에 대한 편견 역시 날 것 그대로 펄떡펄떡 뛰어다닌다. 로마인들이 즐겨 찾는 공중목욕탕에서 자신의 은밀한 부분을 서슴지 않고 보여주려는 죽은 에풀론의 노예 필립포를 비롯해서, 그리스 유학파 출신으로 에풀론의 아들인 마태 역시 게이가 아닌가 하는 의심을 자아낸다.

폼포니오는 셜록 홈스 같은 명탐정은 아니다. 사건의 실마리를 위해 탐문을 하다 알게 된 직업여성 사라에게서 폼포니오는 근심도 덜고, 슬픔도 위로받는 그런 평범한 인간이다. 그리고 그녀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했을 때에는 진심으로 애도하기도 한다. 한편, 로마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팔레스타인 유대인의 염원을 메시아의 도래로 치환시키기도 한다. 바리새파 산헤드린 공회가 실질적인 지배를 하는 유대 사회의 숨겨진 비위에 대해서도 에두아르도 멘도사는 비판을 마다하지 않는다. 수많은 메시아를 참칭하는 이들이 등장했지만, 훗날 진짜 메시아가 등장했을 때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는 모두 그를 부정했지 않은가. 조금은 엉뚱한 결말이었지만, 사라진 진짜 범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에서 다시 등장하게 되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멘도사의 놀라운 캐릭터 작법에 감탄했다!

조금은 엉뚱한 상상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폼포니오라는 유쾌하면서도 박식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은 시리즈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공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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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행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2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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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누쿠이 도쿠로의 <우행록>을 읽었다. 영어 제목으로는 <A Catalog of Follies>, 한자를 풀어 보니 어리석은 행동들의 기록 정도라고나 할까. <우행록>은 재작년에 비채를 통해 처음으로 소개된 <통곡>에 이어, 세 편의 증후군 시리즈를 거쳐 5번째로 국내에 소개된 누쿠이 도쿠로 작가의 책이다. 특이하게도 누쿠이 도쿠로 작가의 부인도 미스터리 작가라고 한다.

일본 작가들의 글이 소재를 불문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자유로운 소재의 선택이 왠지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하기도 한다. <우행록>에서도 일본의 수도인 도쿄도에서 벌어진 잔혹한 일가족 살해사건이 그 중심에 있다. 이 미스터리는 어느 르포라이터가 살해당한 다코 가족의 일상을 수소문하는 형식으로 시작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르포라이터가 가장 먼저 의심이 갔다. 도대체 이 사람은 누구일까? 사건 발생 1년이 다 되어 가는 시점에서 과거사를 캐고 다니는 이가 궁금해졌다. 혹시 이 르포라이터가 아직 잡히지 않은 범인은 아닐까? 그가 만나는 인터뷰이들이 하나같이 호의적으로 그를 대한다는 점도 참 신기했다. 사실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게 자세하게 말하고 싶지 않을 텐데도 인터뷰이들은 시시콜콜한 과거의 이야기들을 모두 작가에게 들려준다.

어느 미스터리물처럼 <우행록>도 도대체 누가 범인이고, 무슨 동기로 그런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는지에 초점이 맞춰진다. 하지만,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그런 범인과 동치 찾기보다는 다코 내외의 과거사로 무게중심이 이동한다. 모두 6명의 인터뷰이 중에서 그나마 이웃인 첫 번째 두 케이스는 나은 편이다. 그저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선 준비운동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진행되는 인터뷰에 의하면, 다코 집안의 가장인 다코 히로키는 일본 유수의 대학인 와세다를 졸업하고 국내 굴지의 부동산 개발회사에 다녔다고 한다. 그의 15년 지기인 인터뷰이는 다코가 입사 초기 회사에서 겪은 일과 연애에 얽힌 비사를 들려준다. 직장 동료에게 자기가 점찍은 여자를 먼저 채 갔다는 이유로 혹독한 보복을 하기도 했다는 말에 그럼 그가 범인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인터뷰이의 시선으로 보는 다코는 과히 호의적으로만 볼 수 없는 사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역시 특정 인터뷰이의 ‘필터’를 통해 접하는 다코 히로키의 일면이다.

역시 인터뷰의 압권은 바로 죽은 다코의 아내인 다코 유키에, 결혼 전에는 나쓰무라로 불린 유키에의 대학 동창인 미야무라 씨의 이야기다. 역시 명문인 게이오 대학에서 화려한 대학생활을 한 유키에에 얽힌 비화가 하나둘씩 드러난다. 집안, 성적 그리고 부유함이라는 삼박자를 모두 갖춘 내부생과 외부생의 이야기에 그만 혀를 찼다. 게다가 외부생은 내부생만의 써클에 들고 싶어하고, 그런 외부생의 심리를 나쓰하라가 이용했다는 미야무라의 이야기는 오래전에 본 영화 <라쇼몽>을 떠올리게 했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편견의 지배를 받는다. 자기가 가진 필터를 통해 세계를 보고, 판단한다. 20대 초반의 게이오 대학을 다닌 학생들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미야무라는 자기는 내부생이니 외부생이나 하는 것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하지만, 역시 한참 시간이 지난 뒤의 이야기다. 게다가 자기는 그런 사람들과 차원이 달랐다는 식의 말은 어쩐지 신뢰가 가지 않았다. 출중한 아름다움으로 나쓰하라 그룹에 어울리게 된 외부생 다나카를 철저하게 이용한 내부생과 나쓰하라에게 미야무라는 비난을 날린다. 그러면서 그녀는 다코 가족 사건이 우발적인 범행이 아니라 원한관계에 의한 것이라고 확신한다.

여기서 다음 인터뷰이로 넘어갈 때마다 잠깐씩 등장하는 꼬마 여자 아이의 목소리가 있다. 난 솔직하게 말해서, 이 여자 아이가 죽은 다코네 막내딸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놀라운 진실로 독자를 인도해간다.

5번째 인터뷰이는 다코의 대학시절 스키 동아리부원으로 애증의 관계가 얽힌 이나무라 에미라는 여성이다. 그녀의 말을 통해, 다코가 얼마나 성공지향적이었으며,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파렴치한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흠, 이 여자도 충분히 다코에게 원한을 가질만하군. 마지막으로 등장한 오가타는 미야무라의 옛 애인으로 나쓰하라에게 반해 그만 미야무라를 배신한 전력의 사나이다. 물론, 그의 이야기는 미야무라의 진술과는 상이한 점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를 통해 독자는 미야무라의 죽음도 알게 된다. 도대체 범인은 누구고, 그들 가족에겐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우행록>은 참 독특하다. 철저하게 인터뷰라는 객관적이면서도, 지극히 주관적인 진술을 통해 독자가 궁금해하는 미스터리에 접근해 가는 방식이다. 등장한 6명의 인터뷰이는 모두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르포라이터에게 매우 협조적이다. 그냥 미제사건에 대한 르포를 쓰겠다고 해서 모두가 르포 작가에게 협조적인 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개인적으로 그런 자발적인 협조의 동기가 무척이나 궁금했다.

아니면, 다코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이들은 알게 모르게 그들이 다코 가족에게 가지고 있던 콤플렉스(학벌, 직장, 단란한 가정 등)에 대한 무의식적인 반발이었을까?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임의대로 타인의 삶을 재단하는 그네들의 삶의 모습에서 '이중성(duality)'의 아이러니가 슬쩍 비쳤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하는 ‘필터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해주는 수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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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 크루소 - 아후벨의 그림 이야기
알베르토 모랄레스 아후벨 지음, 고인경 옮김 / 별천지(열린책들) / 2010년 4월
품절


난 왜 이 책을 보기 전에 오래전에 본 탐 행크스 주연의 <캐스트 어웨이>가 떠올랐을까? 이미 300년도 더 전에 영국 출신의 작가 대니얼 디포가 쓴 <로빈슨 크루소>를 연상시키는 가장 최근의 비주얼은 바로 탐 행크스가 연기했던 페덱스 직원이었다. 하지만, 이번 달에 열린책들의 임프린트인 별천지에서 출간된 쿠바 출신의 그래픽 디자이너 아후벨이 재창조한 <로빈슨 크루소>의 이미지는 10년 전에 본 영화보다 훨씬 더 강렬하게 다가왔다.

원작에서 로빈슨 크루소는 법률을 공부하라는 부모님의 뜻에 반대하고는 17세기 중반에 원양항해에 나선다. 폭풍을 만나 배는 난파가 되고, 로빈슨 크루소는 무어족의 노예가 된다고 하는데 이런 소설의 전반부는 일러스트 버전의 <로빈슨 크루소>에서는 빠져 있는 것 같다. 브라질에서 플랜테이션 농장주가 된 로빈슨은 다시 한 번 항해에 나섰다가 엄청난 폭풍을 만나 동료를 모두 잃고, 외딴 섬에 표류하게 된다.

아후벨은 고향을 떠나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청년 로빈슨의 삶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도저히 제어할 수 없어 보이는 사나운 바다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바닷가에 내팽개친 로빈슨.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서 살아남아야 했던 그는 난파한 배에서 필요한 물자를 구해서 다시 섬으로 돌아온다, 강아지 한 마리는 외로운 그에게 보너스다.

청년이었던 로빈슨은 섬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며 장년, 중년으로 접어든다. 그런 세월의 흐름을 아후벨은 로빈슨의 덥수룩한 수염으로 대체하는 기지를 발휘한다. 그의 청교도적인 삶을 강조하기라도 하듯, 그는 항상 손에서 성경을 놓지 않는다. 카누를 만들어서, 자신이 사는 섬 주위를 탐험하기도 하지만 얄궂은 바다의 기상조건은 어렵사리 만든 카누도 전복시켜 버린다.

그러던 어느 날, 해적들이 지나가기도 하지만 로빈슨이 몰랐는지 아니면 관심을 두지 않았는지 조용하게 지나간다. 그는 무료한 나날을 달래기 위해 수많은 글을 쓰기도 한다. 그의 그런 조용한 일상에 한 사건이 터진다. 식인종들에게 잡혀 먹을 뻔한 프라이데이를 구해내고, 그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킨다. 아마 이런 부분에 있어서 식민제국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아후벨은 그런 정치적인 사안보다는 염소의 젖을 짜고, 물고기들과 바다 속에서 유영하는 자유로운 영혼 프라이데이에 더 초점을 맞춘다.

맨 마지막에서 해적선(?)을 탈취해서 마침내 섬을 떠나는 데 성공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 과정이 매끄럽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마 이 부분에 대해 더 자세히 알려면 아무래도 원전을 읽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로빈슨 크루소>를 보면서, 이렇게까지 글이 하나도 없을 줄은 미처 예상을 하지 못했다. 정말 대니얼 디포의 고전을 쿠바 출신의 그래픽 디자이너 아후벨은 멋지게 이미지화하는데 성공했다. 앵글로색슨 특유의 냉정한 기록이, 라틴아메리카 작가 특유의 정열로 치환된 이미지들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군더더기들 대신 이야기의 고갱이만을 뽑아 올린 아후벨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앞으로도 아후벨이 고전의 이미지화라는 작업을 계속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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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의 우편배달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지음, 우석균 옮김 / 민음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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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전에 <일 포스티노>란 영화를 볼 기회가 있었다. 지인이 비디오테이프로 선물을 해줘서 막 보려고 비디오에 넣었는데, 비디오테이프가 고장이 났는지 어쨌는지 도대체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무척이나 오래 흘러 드디어 영화 <일 포스티노>의 원작인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읽었다. 읽기 전부터 많은 사람이 추천을 해줘서 기대를 품고 읽기 시작했는데,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책도 영화와 마찬가지로 너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지 않은가. 칠레를 대표하는 문인이자, 글을 모르는 이들도 시집 한 권쯤은 가지고 있다는 파블로 네루다라는 실존 인물과 그를 흠모하는 이슬라 네그라의 우편배달부 마리오 히메네스가 소설의 주인공이다. 시기는 칠레 대선을 앞둔 1969년으로부터 시작된다.

일자리를 찾아 산안토니오 항구를 배회하던 마리오는 우체국에 붙어 있는 구인광고를 보고 바로 우편배달부로 지원을 한다. 사실 시골 어촌에 편지를 주고받을 일이 무어 있겠느냐만, 담당구역인 이슬라 네그라에는 이미 칠레를 넘어 세계적인 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던 파블로 네루다가 살고 있었다. 전 세계 각지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우편물을 배달해야 하는 중차대한 임무가 마리오에게 주어진다.

스카르메타의 의도대로, 마리오는 이 위대한 대시인에게 우편물을 배달해 주면서 소통을 이끌어 나간다. 그리고 이런 소설에 빠질 수 없는 로맨스 또한 등장하게 되는데, 그 주인공은 바로 마을 주점에서 일하는 열일곱 살의 베아트리스다. 아마 베아트리스를 처음 본 순간, 마리오의 머릿속에는 전 세계의 ‘종소리’가 합창하듯 들리지 않았을까? 시인에게 ‘메타포’를 배우게 된 마리오는 시인의 시를 표절해, 베아트리스의 환심을 사는데 전력을 다한다. 바로 이 시점에서 메타포에 대한 개안(開眼)과 사랑에 눈을 뜨는 마리오의 환희를 작가는 절묘하게 그려낸다. 동시에, 사랑에 빠져 버린 철부지 마리오를 측면에서 지원사격해주는 ‘뚜쟁이’ 대시인의 인간적인 면모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

마리오의 베아트리스에 대한 열렬한 사랑은 라틴아메리카의 모든 청년이 그러하듯이, 그녀의 어머니라는 큰 장애물을 만나게 된다. 공산당을 혐오하는 과수댁 로사 곤살레스는 순결한 자신의 딸을 마리오라는 흉측한 놈팡이로부터 지켜내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인다. 그럴수록, 사랑에 눈먼 마리오의 가슴은 버적버적 타들어갈 뿐이다. 이들의 사랑은 공교롭게도 민중연합의 대통령 후보 살바도르 아옌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결실(?)을 보게 된다.

아옌데 정부에서 프랑스 대사를 맡게 된 네루다는 파리로 떠나게 되고, 마리오는 장모 로사의 주점에서 주방장 노릇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파리의 네루다로부터 마리오에게 ‘추신’이 딸린 편지가 오게 되고, 대시인은 마리오에게 이슬라 네그라의 소리를 들려 달라는 부탁을 전한다. 네루다가 일찍이 마리오에게 알려준 메타포의 근원을 이루는 이슬라 네그라의 모든 소리가 작은 카세트테이프 리코더에 담기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들의 작은 행복은 네루다의 건강이 급속하게 나빠지고, 아옌데의 민중정부를 전복시킨 1973년 9월 11일의 피노체트 일당의 쿠데타로 만사휴의가 되어 버린다.

이 책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무려 14년이나 걸려서 썼다는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글을 읽으면서 이 정도로 멋진 책을 쓰기 위해서는 14년이 아니라 20년, 아니 30년이 걸려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블로 네루다라는 실존 인물에 마리오 히메네스라는 가상의 주인공을 등장시켜, 서로 소통하고 친구이자 동지적 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과정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묘사가 돼서 픽션이 아니라 실화가 아닐까 할 정도로 리얼리즘의 문학적 구사가 인상적이었다.

마리오의 사랑이라는 지극히 개인적 체험은, 1970년대 초반 라틴아메리카를 뒤흔들었던 아옌데 정부의 사회주의 실험의 부침과 그 맥을 같이한다. 마리오의 메타포와 베아트리스에 대한 열렬한 사랑은, 칠레 민중들의 살바도르 아옌데 박사로 대변되는 민중연합에 대한 사랑으로 대치된다. 1970년 칠레 대선에서 아옌데의 승리와 마리오가 오랜 기다림 끝에 쟁취한 사랑은 말할 것도 없다. 쿠데타 이후의 좌절과 마리오의 실종에 대한 복선 역시 그 궤를 함께 한다.

마리오라는 캐릭터를 통한 민중의 자각 역시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이리라. 종래 칠레의 지배해온 기득권층은 국민의 삶과 처우 개선에 대한 수많은 공약을 남발해왔지만, 네루다와 아옌데 만큼 국민에게 진심으로 다가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 두 명의 거인은 민중의 동지로서 그들을 껴안았다. 우파의 물자 사재기와 악의적인 호도에도, 칠레 국민의 네루다와 아옌데애 대한 열렬한 지지는 꺾이지 않는다. 우파 출신의 국회의원 랍베에 당당하게 도전하는 거듭난 마리오의 모습에서는 심지어 전율이 일었다.

스카르메타의 14년 문학적 내공은 이렇게 1970년대 격동의 칠레를 다루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마리오 히메네스로 대변되는 민중의 삶을 해학적으로 그려내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균형을 잃으면 바로 심각해질 수 있는 미묘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대시인과 시골뜨기 우편배달부라는 어쩌면 서로 상극인 주인공을 민중의 관점에서 친구이자 동지로 그려낸 점이 더욱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이제 네루다가 영면을 취하고 싶었던 이슬라 네그라가 아닌,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찍은 영화 <일 포스티노>를 보면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의 감동을 되새길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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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우셰스쿠 - 악마의 손에 키스를
에드워드 베르 지음, 유경찬 옮김 / 연암서가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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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루마니아 출신 작가 헤르타 뮐러의 책을 읽으면서, 그녀의 조국 루마니아를 서슬 퍼런 전체주의국가로 만든 희대의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의 이름이 떠올랐다. 한 때는 소련의 위성국 중에서 독자적인 노선을 걸으며 인간적 공산주의의 모델로 서방에 알려졌던 루마니아에 대한 진실이 그 베일을 벗는다.

프랑스 출신의 저널리스트 에드워드 베르는 루마니아 혁명으로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권좌에서 축출되고 나서, 직접 루마니아를 찾아 이 독재자의 비참한 몰락과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을 추적한 <차우셰스쿠> 평전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이 책에는 공산주의 이데올로기 대신 오로지 권력의 화신으로 부패한 독재국가를 이끌었던 어느 독재자의 초상과 더불어, 우리에게는 체조의 요정 코마네치의 조국 정도로만 알려진 루마니아 근대사가 담겨 있다.

책의 구성은 자못 흥미롭다. 우선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루마니아 혁명이 발발한 1989년 12월의 루마니아로 독자를 인도한다. 사반세기 동안 루마니아를 통치하면서, 계속된 실정과 비밀경찰 통치로 루마니아 국민의 불만과 분노는 위험수위에 도달해 있었다. 그 무렵, 루마니아 서부의 도시 티미쇼아라에서 시작된 시위가 전국으로 번지자, 막바지에 다다른 차우셰스쿠 정권은 비밀경찰과 보안군에게 시위대에게 무차별 발포를 허용하며 최후의 발악을 시도하고 있었다. 결국, 차우셰스쿠와 그의 부인 엘레나는 그의 독재에 반대하는 일단의 인사들이 조직한 구국전선의 장성들에게 체포되어 약식재판을 거쳐 무려 백여 발에 달하는 총탄을 맞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이렇게 독재자의 말로를 구체적으로 추적한 에드워드 베르는 플래시백으로 루마니아의 원형을 쫓는 역사 탐험에 나선다. 고대 로마제국 시대 발칸반도에 있는 다치아(Dacia)족의 근거지였던 왈라키아와 몰다비아 부근을 아우르면서 루마니아 국가의 탄생을 예고했다. 발칸 반도의 여러 나라처럼, 루마니아 역시 오랜 오토만 제국의 식민 통치를 받았다. 터키인들의 지배 아래에서는 그리스인들의 가혹한 수탈을 경험하기도 했다. 1878년 인근의 부코비나와 베사라비아를 포함한 루마니아 왕국이 드디어 역사에 등장한다.

호엔촐레른-지그마링겐 왕가 출신의 카롤 1세가 다스리던 1878년과 1914년 사이에는 비교적 평화를 유지했다. 1차 세계대전 당시 루마니아는 전쟁 초반에는 중립을 유지하다가, 나중에 연합군 측에 섰다가 독일군에게 혹독한 시련을 당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증에는 극우파 독재자 이온 안토네스쿠는 추축국에 적극적으로 가담해서 소련을 상대로 한 동부전선에서 히틀러의 독일군과 함께 참전하기도 했다. 특히 루마니아의 플로이에슈티는 독일이 전쟁하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석유자원 확보를 위해서 꼭 필요한 유전이었다.

1944년 8월, 루마니아의 젊은 국왕 미하이 1세가 이끄는 친위 쿠데타가 발생해서 독재자 안토네스쿠를 타도하지만, 소련의 지원을 얻은 일단 공산주의자 그룹에 의해 루마니아의 공산화가 진행된다. 사실 종전을 앞둔 포츠담 회의에서 이미 영국의 처칠과 소련의 스탈린은 각각 그리스와 루마니아에서 90%를 지배하기로 협의하면서 루마니아는 소련이 드리운 철의 장막에 편입될 운명에 처해져 있었다. 이 시기에 비로소, 권력욕의 화신인 니콜라에 차우셰스쿠가 등장한다. 농민 출신으로 문맹에 가까웠던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의 공산주의 지도자 게오르기우 데즈를 추종하면서 서서히 루마니아 정치 무대에 나섰다.

스탈린주의를 맹신하는 차우셰스쿠는 루마니아 국민의 복지나 국가의 이익에는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자신의 동지들을 밟고 권력의 정점에 오르는 데에만 자신의 모든 역량을 집중시켰다. 그 과정에서 자신이 1944년 8월 23일, 안토네스쿠를 실각시킨 반 독일 쿠데타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등의 사실왜곡부터 시작해서 훗날 조직적으로 이뤄지게 될 우상화 작업을 시작한다.

스탈린 사후, 1956년에 벌어진 헝가리 혁명을 소련이 어떻게 무자비하게 진압하는지 목격한 루마니아 공산주의 지도부는 소련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인간의 얼굴을 한’ 공산주의 모델을 들고 서방세계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1965년 게오르기우 데즈의 사후, 공산당 사무총장으로 모든 권력을 승계한 차우셰스쿠는 정치 무대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이 얼치기 독재자는 서방세계에는 개화된 공산주의자라는 이미지를 팔면서 한편으로는 세쿠리타테라는 친위 비밀경찰 조직을 동원해서 루마니아를 공산주의 동유럽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전체주의 국가로 만들어 버렸다.

비밀경찰을 동원해서 도청과 밀고를 일상화하고, 오직 차우셰스쿠에게만 충성하는 특권조직과 자신의 부인 엘레나를 정점으로 하는 족벌 정치의 폐해는 차우셰스쿠의 독재가 끝난 지 20년이 넘는 지금도 루마니아 사회에 서로 불신하는 풍조를 남겼다. 스스로 500년 만에 한 명 나올 법한 지도자라는 망상에 빠져, 자신과 엘레나의 생일을 국경일로 삼는 등 가히 변태적 개인숭배와 우상화도 서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차우셰스쿠> 평전의 작가 에드워드 베르는 중세 봉건영주, 군주제 그리고 공산주의로 넘어가는 역사적 단계에서 빈번하게 드러난 루마니아 민중과 지식인의 협조와 타협을 냉정하게 꼬집는다.

세계 지도자들과의 빈번한 교류를 루마니아 국민에게 선전하기 위해 서방 세계를 방문했지만, 서방 지도자들은 루마니아 지도자 부부의 천박성에 그만 혀를 내둘렀다. 오죽했으면 프랑스 대통령이 영국 여왕에게 루마니아 국빈의 약탈에 대해 조심하라는 경고까지 했겠는가 말이다. 영부인 엘레나 역시 국가 간의 외교보다는 오로지 자신이 요구하는 사치품 쇼핑에만 관심을 기울였고, 무학의 콤플렉스 때문인지 세계 유수의 대학이나 연구기관으로부터 명예학위를 섭렵하는데 전력을 다했다. 책을 읽을수록, 이 얼치기 독재자의 천박함에 그만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시기의 문제였을 뿐이지, 이미 차우셰스쿠의 몰락은 예견되었다. 다만, 차악이 구악을 대신했다는 말처럼 차우셰스쿠의 독재를 끝장낸 루마니아 혁명은 미완의 혁명으로 기록됐다. 루마니아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 대신 차우셰스쿠의 하수인들이 다시 정권을 장악하고 개혁세력이 힘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리고 만 것이다. 차우셰스쿠 치세가 남긴 잔재의 청산을 위해서는 몇 세대가 걸릴지 모른다는 작가의 지적이 날카롭기만 하다.

다시 한 번 절대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할 수밖에 없다는 역사의 진리를 되새겨 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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