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외
루이스 세풀베다 지음, 권미선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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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된 책의 운명은 참 기구하기만 하다. 작년에 처음으로 칠레 출신의 망명작가 루이스 세풀베다의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아쉽게도 거의 대개의 책이 절판의 운명에 처해 있었다. 우선 시중에서 살 수 있는 책들은 죄다 사고, 또 절판돼서 구할 수 없는 책들은 중고서점을 돌아다니면서 힘들게 구했다. <감상적 킬러의 고백>과 <귀향> 모두 그렇게 구했다. 하지만, 세풀베다의 또 다른 책인 <소외>는 도저히 구할 수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인근 도서관에서 빌려다 보게 됐다.

<소외>(Historias marginales)는 2000년에 나온 모두 35편의 길고 짧은 에세이들을 모은 수필집이다. 개인적으로 세풀베다의 책을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그런 간결성이다. 그가 발표한 다른 소설들도 예외 없이 길지 않은 장편(掌篇) 스타일의 글이 주를 이루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글에 깊이가 없는 건 절대 아니다. 그의 글에는 사랑하는 조국을 떠나 어쩔 수 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도 수구초심의 마음으로 조국 칠레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그리고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에 대한 절절한 세풀베다의 애끊는 심정이 투박하게 묻어 있다. 세풀베다는 정의에 대한 선동 같은 과격한 방법 대신, 자신이 보고 듣고 느낀 바를 그대로 글로 담담하게 풀어내기에 더 멋진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를 상대로 맞짱 뜬 세풀베다는 가장 먼저 독일의 악명 높은 강제수용소이자 네덜란드 소녀 안네 프랑크가 최후를 맞이한 것으로 알려진 독일의 베르겐 벨젠 수용소로 독자를 차분하게 안내한다. 수용소의 어느 돌멩이에 새겨진 <나는 여기에 있었고, 아무도 내 이야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절규가 새겨진 문구는 지난 세기 인류의 양심에 크나큰 상처를 입힌 일대 사건에 대해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강제한다. 뒤에 나오는 리투아니아 출신 유대인 레지스탕스 아브라함 슈츠케버와 나치의 만행을 자신의 존재로 입증해 보인 페데리코 아무개(프리츠 니만트)의 이야기들은 서로 공명하면서,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과거사를 조명해 준다.

한 때 그린피스 활동을 했던 작가는 지중해 고래 존재의 소중함에 대해, 독일에서 망명생활 중에 한 가족처럼 지냈던 소로바스의 죽음을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면서 삶의 소중함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설파하기도 한다. 지구의 끝 파타고니아의 난개발을 막기 위해 몸으로 맞선 이들의 영웅적인 모습과 혹한의 영지 라플란드 체험기, 아마존 마누 밀림이 가진 종의 다양성에 대해서도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조국을 침략한 파시스트 군대에 대항해서 전투기를 직접 몰고 싸웠던 스탈린그라드의 백장미 여전사들과 사랑하는 애인을 잃고 엘살바도르의 정글에서 불의에 맞서 싸운 게릴라 여의사의 이야기에서도 역시 가슴 뭉클한 감동의 전이를 체험한다.

<소외>에는 이런 영웅적인 이야기 말고도, 고급 레스토랑이 아닌 시장통에서 보통 사람들에게 정말 맛있는 파스타를 양껏 제공해준 아름다운 여인 로셀라 아주머니, <죽음만 빼고는 모두 해결 방법이 있다>라는 신조로 죽는 날까지 가난한 고객들의 수도관을 걱정한 마에스트로 코레아 그리고 배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폐선장을 차려 배를 해체하는 미스터 심파 등 우리네 삶 가운데 있는 보통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술술 풀어낸다.

역시 수필집 <소외>에서 압권은 바로 세풀베다의 조국 칠레의 암울했던 피노체트 군사독재 시절을 이겨낸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얼결에 꿀과 젖이 흐르는 땅 아메리카(미국)이 아니라, 고기를 무한정으로 먹을 수 있다는 라틴 아메리카에 둥지를 틀게 된 이방인의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사형집행인’들로부터 모진 학대와 고문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신념과 콤파녜로(동지)들에 대한 의리를 지키다 불구가 되거나 혹은 자신의 귀중한 생명마저도 잃은 사람들, 오로지 진실을 알리겠다는 신념으로 <아날리시스> 잡지를 발행한 세풀베다의 고집스러운 친구 후안파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의 아픈 상처의 퍼즐을 세풀베다는 투덕투덕 이어 붙이고 있었다.

나는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진정한 사랑을 읽을 수가 있어서 루이스 세풀베다의 글을 사랑한다. 어떤 미사여구보다도, 때로는 투박하고 세련되어 보이지 않는 그의 글이 너무나 좋다.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 번, 세풀베다의 조국 칠레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작가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절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자신의 소중한 생명마저 초개같이 내던진 나의 영웅 살바도르 아옌데의 묘소를 언젠가는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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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 일기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민정 옮김 / 문학세계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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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연달아 벨기에 출신의 작가 토마 귄지그의 책을 읽게 됐다. 첫 번째 책에 나와 있는 “아멜리 노통브의 뒤를 잇는‘이라는 카피 때문에 아직 한 번도 읽어보지 못한 노통브란 작가에 대해 호기심이 폭발해 버렸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 <적의 화장법>과 <오후 네 시>라고 한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난 <제비 일기>라는 백 쪽이 조금 넘는 그야말로 에세이 같은 그녀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하게 됐다.

주인공 위르뱅(이조차도 가명일지 모르겠다)은 최근의 실연으로 모든 감각의 자살을 맞이한다. 성적 유희로 대변되는 촉각은 말할 것도 없고, 청각과 시각, 그리고 필연적으로 돈이 많이 드는 미각마저 상실해 버렸다. 그나마 그를 위로해 주는 것은 오감은 후각 정도? 오토바이광인 그는 파리 시내를 질주하다가 사람을 치고 직장에서마저 잘리게 된다. 그리고 어느 당구장에서 우연히 만난 러시아 사내 유리를 만나면서 킬러로 화려하게 부활하게 된다.

소설의 화자 위르뱅은 의뢰받은 고객을 “클린”하는 서비스에서 비로소 자신의 존재감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사람을 죽이면서 느끼게 되는 죄책감은 어쩌구? 그는 철저하게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을 클린하면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죄책감을 털어낸다. 인간 존재를 머리에 총탄 두 방으로 지우는 일에 쾌감을 느낀 그는 가끔 프리랜서 잡에도 도전해 보지만, 의뢰받은 일과는 차원이 다르다. 위르뱅이 이 살인청부에 매력을 느끼는 결정적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넉넉한 보수다. 역시나 먹고 살기 위해서는 킬러도 돈이 필요하구나! 다시 한 번 사회경제적인 요소를 간과할 수 없는 우리네 팍팍한 삶을 되돌아 보게 된다.

한편, 감각과 쾌락에 부재에 시달리는 위르뱅은 여성동료 킬러의 존재에 집착한다. 실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그녀의 존재는 그에게 판타지로 작동한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떠올랐다. 위르뱅과 그를 고용한 조직에서 많은 “클린”작업을 하는 것 같은데, 여론이나 경찰에서는 속수무책으로 그들을 방관하는 걸까? 마지막 장관 일가족 작업에서 비로소 위르뱅은 텔레비전을 통해 자신의 작업에 대해 보게 된다. 아니면 의도적으로 빼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노통브의 <제비 일기>는 전형적인 느와르 스타일의 소설이다. 어쩔 수 없이 주인공 캐릭터에 배어 있는 여성성이 냉혹한 킬러의 그것과는 많이 상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계속해서 작년에 읽은 루이스 세풀베다의 단편 <감상적 킬러의 고백>과 비교를 하게 됐다. 노통브의 킬러 소설은, 살인이라는 금기를 다루면서 독자의 감정이입을 철저하게 거부한다. 독자는 위르뱅의 클린작업과는 전혀 무관한 3자의 입장이기 때문에, 관조적인 입장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위르뱅의 클린을 주시한다. 작가는 독자의 감정이입을 유도하면서도, 동시에 차단하는 묘한 줄타기를 선보인다.

<제비 일기>는 확실히 재밌다. 간결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신속한 전개 역시 마음에 들었다. 이 짧은 소설로 아멜리 노통브의 작법 스타일을 가늠해 보기가 쉽지 않겠지만, 첫 만남치고는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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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미오와 줄리엣 - 셰익스피어의 매혹적인 사랑 이야기 만화로 읽는 셰익스피어 시리즈 1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소니아 르옹 그림 / 좋은생각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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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하도 수많은 버전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봐와서 그런진 몰라도 텍스트에 대한 기대는 사실 접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에 좋은생각 출판사에서 ‘만화로 읽는 셰익스피어“ 시리즈 1탄으로 나온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는 그렇게 나에게 다가왔다.

같은 하늘을 등지고 살 수 없는 철천지원수 가문인 몬터규 가와 캐풀릿 가가 일본 도쿄를 배경으로 해서 다시 태어난다. 그제나 지금이나 궁금한 것은, 두 가문이 가진 원한의 역사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영국이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노라고 선언을 했던 대작가 셰익스피어는 참으로 불친절하기만 하다.

좀 책하고는 논외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바즈 루어만 감독의 <로미오+줄리엣>에서 보여준 영상미는 21세기 신판 <로미오와 줄리엣>의 전범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번쩍이는 은색 몸통의 총신과 점프 컷으로 쉴새 없이 폭력과 액션이 흘러 넘치는 뮤지컬 스타일의 영화에 대한 기대가 원제가 <망가 셰익스피어>라는 소니아 르옹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도 역시 재현되고 있었다.

루어만 감독의 영화에서 총이 폭력의 상징처럼 등장했다면, 일본 도쿄를 배경으로 한 망가 버전에서는 일본도가 총을 대신한다. 하늘하늘한 유럽 스타일의 드레스 대신, 일본식 정통 기모노를 입은 줄리엣! 로잘린에 대한 사랑 앓이를 하던 로미오는 원수의 딸인 줄리엣을 보는 순간, 그야말로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버린다. 금기가 강할수록 그에 대한 반대급부적인 욕망이 비례해서 더 커진다고 했던가? 운명의 희롱대로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렇게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간의 버전들이 로미오의 남자다움에 집중했다면, 이번 망가에서는 줄리엣의 와일드함에 초점을 맞추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결혼을 강제하는 아버지에게 반항을 하고(맞기는 어머니가 대신 맞는다!), 폭주족 복장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신사의 사제를 찾아가는 모습에선 역시 바뀐 시대의 아이콘으로서의 줄리엣의 단면을 엿볼 수가 있었다. 하긴 그리고 보니 실제 소설에서도 줄리엣은 14살이라고 했던가? 어리다, 너무 어려!

주인공도 주인공이지만, 머큐쇼와 벤볼리오 그리고 티볼트 같은 사이드킥들의 활약도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역시 뭐니뭐니해도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캐릭터는 바로 줄리엣의 유모와 로렌스 사제가 아니었을까? 계속해서 바즈 루어만의 영화와 정전 셰익스피어 그리고 망가 세 개 버전이 혼란스럽게 교차하고 있다는 느낌이 가득했다.

수 세기가 지나도 여전히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비극적 스토리의 고갱이는 여전했다. 다만, 좀 더 극적이거나 자신만의 개성적인 스타일로 담아내 주었으면 싶은 아쉬움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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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카레니나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박형규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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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하게 세운 2010년 고전읽기의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러시아 문학계의 거장 레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기 시작했다. 어려서부터 하도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에 대해 그야말로 귀에 목이 박히게 들어왔지만, 정작 제대로 그들의 작품을 읽은 적은 없는 것 같다. 도스토옙스키는 물론이고, 톨스토이의 작품 중에서도 단편선 정도를 읽었던 게 전부인 것 같다.

시중에 나와 있는 여러 버전 중에서 지난해 말 문학동네에서 야심차게 발간한 세계문학전집의 그 첫 번째를 장식하는 <안나 카레니나>는 모두 3권 8부로 구성이 되어 있다. 번역도 러시아 문학이라면 국내에서 자타의 인정을 받는 박형규 교수가 맡아 주셨는데, 러시아국가연방훈장에 빛나는 그의 경력에 믿음이 가는 정전(正傳)을 기대해 보게 된다. <안나 카레니나>는 동료 러시아 작가인 도스토옙스키는 역사상 “완전무결”한 작품이라고 칭찬을 했다는 책의 뒷날개 카피에 그만 구미가 동했다. 도대체 어떤 작품이기에 작가로서 자존심도 접고 극찬을 했는지 말이다. 거장의 묵직한 3부작에 드디어 그 첫발을 내딛는다.

그 유명한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라는 문구로 <안나 카레니나>는 사회의 가장 기본적 단위인 가정의 기저를 파고든다. 제정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에 사는 스테판 아르카디이치 오블론스키(스티바)의 불장난으로 다복해 보이던 오블론스키 집안에 평지풍파가 일어난다. 쉬체르바쓰키 공작의 큰 딸인 돌리는 남편의 외도에 그간 참아왔던 분노를 폭발시킨다. 무려 아이가 5명이나 있지만, 스티바의 관심은 아내 돌리와 아이들이 아니라 독신자로서의 삶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편, 스티바의 친구 콘스탄틴 드미트리치 레빈은 대도시 모스크바나 페테르부르크 대신 시골인 포크로프스코예에서 농장을 경영하며 조용하게 살고 있다. 한 때, 지방의회에도 참여했으나 자신의 힘만으로는 개혁할 수 없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자유주의적인 사고에 따라서 보다 개인주의적인 처지에서 농촌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레빈은 돌리의 막냇동생인 키티를 짝사랑한다. 스티바와 레빈은 친구지만, 자신의 가정교사를 사랑한 불륜남과 이제 막 사교계에 데뷔한 처녀를 사랑하는 짝사랑남만큼이나 큰 괴리감을 토로한다.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18세의 키티는 레빈에 대해서도 호감을 느끼고 있지만, 그녀가 정말 사랑하는 남자는 바로 궁정 무관 출신의 브론스키 공작이다.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브론스키에 비하면, 레빈의 처지는 그저 초라하게만 느껴진다. 정숙한 외모와 우아하고 자유로운 동작의 키티에 대해 자신만의 공상 속에서 시적 아름다움의 단계로까지 승화시켜, 자신의 마지막 힘까지 짜내 힘겹게 청혼했던 레빈은 자신의 연적 브론스키의 등장으로 키티에게 완곡한 거절을 당하고, 참담하게 물러난다.

러시아 호남자의 상징처럼 다가오는 브론스키는 사실 키티와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다. 결혼의 의무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 오로지 화려한 사교계의 연애만을 즐기고 싶은 브론스키는 자신의 어머니를 마중하러 기차역으로 나갔다가 주인공 안나 아르카디예브나 카레니나(안나)와 파멸의 그림자를 드리운 운명적 첫 만남을 갖는다. 훗날 걷잡을 수 없는 열정으로 인해 타오르게 되는 사랑의 단초가 되는 이 만남은 소설의 결정적 동인으로 작용한다.

오블론스키 집안의 “사랑과 전쟁”을 진화하기 위해 투입된 구원투수 안나는 자신의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해낸다. 역시 8살 난 아들을 데리고 있는 현모양처의 전형으로 안나는 자신의 올케를 잘 설득해서 백척간두에 서 있던 가정의 위기를 어설프게나마 봉합한다. 오랜만에 모스크바 사교계에 나온 안나는 곧이어 초대받은 무도회에서 키티가 사랑하는 브론스키 공작을 독차지함으로써 이번에는 스스로 위험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안나와 브론스키의 행복은 키티의 불행으로 귀결된다.

무서운 속도로 치닫던 소설의 전개는 순간 숨을 고르면서, 레빈의 형인 니콜라이의 얘기를 슬쩍 끼워 넣는다. 한 때 신앙심 깊은 수사의 삶을 살던 니콜라이는 타락과 방탕의 길에 들어서면서 수상쩍은 행동을 일삼는다. 자본주의를 타격하라는 주장을 하면서, 경제 조건을 개혁하라는 공산주의자의 주장에 동조하기도 한다. 니콜라이를 방문하고서, 실연의 상처를 안은 채 포크로프스코예로 돌아온 레빈은 여전히 아름답고, 신성하며 이상적인 부인상을 꿈꾸며 고향집의 부흥을 꿈꾼다.

한편, 모스크바에서 브론스키와의 운명적 만남 끝에 안나는 결국 자신의 남편인 알렉세이 안드로비치가 기다리는 페테르부르크로 도망치듯 달려온다. 하지만, 그 기차 안에서 다시 브론스키를 만난다. 브론스키의 안나에 대한 고백은 그녀의 가슴에 일대 파문을 던진다. 이어 안나는 알렉세이와의 결혼생활이 사랑 없이 불만, 허위와 기만으로 가득 차 있다고 마음속으로 선언한다. 페테르부르크에 몰아치는 눈보라는 안나의 험난한 앞날에 대한 복선으로 다가온다.

2부에서는 브론스키의 안나에 대한 감정을 읽어 버린 키티가 시름시름 병을 앓게 되며, 다시 기만적인 결혼생활로 돌아온 돌리의 대한 묘사로 시작된다. 결국, 브론스키와 안나의 관계는 험담에 열을 올리는 페테르부르크 사교계의 화젯거리가 되고, 아내의 부정을 인정할 수 없는 노련한 정치가 알렉세이 안드로비치의 불안은 가중되기 시작한다. 자신의 아내도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알렉세이 안드로비치는 분노하기에 이른다. 안나와 브론스키의 결정적 불륜 탓에 알렉세이의 사랑 없는 결혼의 종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편,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레빈은 실연의 아픔을 딛고 농사일에 매진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레빈의 스티바는 자신의 숲을 팔아 돈을 마련하기 위해 레빈을 찾아온다. 페테르부르크의 관리직에서 나오는 봉급만으로는 가족의 생활비와 자신의 유흥비를 마련하기 어려웠던 탓인지, 지방 상인의 농간에 원래 가격보다 무려 3만 루블이나 싸게 숲을 팔게 되는 스티바.

안나와 브론스키가 불륜의 끈을 놓지 않고 지속하는 가운데, 영화 <벤허>의 전차경주를 연상시키는 경마대회로 안나와 알렉세이 안드로비치의 갈등으로 치닫고 결국 자신과 브론스키의 관계를 남편에게 밝히는 안나. 이제 결정의 공은 남편에게 넘어갔고, 과연 안나의 운명을 어찌 될 것인가.

항상 하는 고민이지만, 러시아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 긴 주인공들의 이름과 그들의 애칭은 정말 혼란 그 자체다. 1권을 다 읽으면서도 여전히 주인공들의 이름은 낯설기만 하다. 우리나라 소설의 주인공들처럼 보통 삼음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 같은 보통의 독자라면 오프라 윈프리의 북클럽이 제시한 것처럼 주인공 목록 표라도 만들어서 시시때때로 이름을 확인해야 하는 걸까 싶을 정도다.

책을 읽으면서 귀족 출신의 톨스토이가 묘사하는 19세기 후반 러시아 사회와 풍속에 대한 사실주의적 묘사에 그만 혀를 내두르게 되었다. 물론, 귀족이라는 자신의 계급적 기반으로 해서 수많은 야회와 사교계의 무도회를 섭렵한 탓도 있겠지만, 대가의 섬세한 기술방식은 가히 “완전무결”이라는 찬사를 들을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울러 남성이면서도, 안나와 키티 그리고 돌리 같은 주요 여성 주인공들의 변화무쌍하면서도 복잡다단한 심층의 얼개를 기가 막히게 짚어내는 필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사랑에 눈을 뜨게 된 레빈과 키티의 사랑과 실연에 아픔을 다룬 부분에서는 또 어떠한가. 도저히 인간 삶을 모두 체험하고 달관한 대가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서구 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아 점점 기존의 러시아 전통에서 벗어나 자유연애에 바탕을 둔 결혼풍속에 대한 톨스토이의 분석 또한 예리했다. 허위와 기만에 가득 찬, 결혼생활에 타격을 가하는 ‘신여성’ 안나에게 가정이라는 종래의 구속적 제도보다는 자신의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사랑이 없다면 행복도 불행도 없다는 선언은 지금 읽어도 여전히 충격적이다. 그렇다고 2세기 전 노땅 작가라고 해서 톨스토이가 유머가 떨어지는가? 쉬체르바쓰키 공작 내외의 부부싸움을 읽어 보라, 어지간한 유머작가는 댈 것도 아니다(116쪽 참조). 브론스키 경마 장면의 디테일한 묘사 역시 스펙터클 그 자체였다. 이렇게 탁월한 연출력을 보여주는 톨스토이가 금세기에 영화감독이었다면 아카데미 감독상은 내내 그의 몫이었으리라.

왜 톨스토이는 혁명이나 전쟁 같이 웅대한 주제보다, 사랑과 불륜이라는 조금은 통속적인 주제를 <안나 카레니나>의 전면에 내세웠을까? 그것은 아마도 인본주의자로서 톨스토이의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탐구의 여정이 이 대작의 바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찾던 키티에게 톨스토이는 마드무아젤 바레니카의 모습을 통해 “자기를 잊고 남을 사랑하는 것”(438쪽)이라고 너무나도 친절하게 그 답을 주고 있다.

2권에서는 콘스탄틴 레빈을 통해 18세기 후반 러시아 사회의 기저를 파헤치는 톨스토이의 사회정치적 오디세이가 펼쳐질 예정이다. 그리고 안나 카레니나의 사랑의 행로를 쫓는 나의 여정도 뒤따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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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
토마 귄지그 지음, 윤미연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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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 책 표지를 유심히 보는 편이다. 그런데 벨기에 브뤼셀 출신의 작가 토마 귄지그의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의 표지는 왠지 ‘처칠’스러워 보이는 남자의 뱃속의 풍경만을 슬쩍 본 채 지나쳐 버렸다. 그리고 리뷰를 쓰기 위해 다시 책을 펴들다가 이 책에 실린 7개 이야기 중에 두 개의 매치되는 일러스트를 분별해낼 수가 있었다. 하나는 자신의 차를 도난당한 것으로 진술하는 어느 다중이의 이야기(연쇄살인마에 방화범?)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암소 여자를 데리고 사는 앙리의 그것이었다.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는 40대 초반의 토마 귄지그는 어려서 난독증으로 고생했다고 하는데, 대학에서 학위를 받을 즈음에서야 비로소 자신의 문제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서점에서 10년간 큐레이터로 일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로 현재는 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며 글을 쓴다. 공수도와 태권도에도 일가견이 있다고 한다.

첫 번째 에피소드 <기린> 편에는 카티와 봅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여느 부부처럼 말다툼 끝에 카티가 가출을 감행하고, 은근한 화해를 도모하던 중에 정원에 난데없이 기린의 시체가 등장한다. 이렇게 황당할 데가! 도대체 기린이 어디에서 왔는지, 무슨 이유로 해서 봅네 정원에 기린이 죽어 있는지를 작가는 불친절하게도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다만, 죽은 기린을 처리하기 위해 폴란드 출신의 일꾼 다레크를 동원한다. 한창 기린을 처리하는 봅과 다레크 앞에 나타난 카티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대로 떠나 버린다. 그렇게 떠나 버린 카티에 대해 봅은 여성 모두에 대한 전형적인 일반화의 오류를 적용시킨다.

<금붕어>에서는 다중이 프랭크가 나온다. 자신의 르노 자동차가 끔찍한 범행에 사용되었다는 말을 전해 듣게 된 프랭크. 어, 그런데 가만 이야기를 듣다 보니 희대의 살인마 한니발 렉터 박사가 떠오르는 걸? 하지만, 렉터 박사는 적어도 다중이는 아니었지, 살인에 다중인격, 심지어 자신의 차에 불까지 지르는 복잡하게 짬뽕으로 버무려진 한판 스릴러가 전개된다.

<암소> 편은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게 읽은 이야기 중의 하나다. 사랑의 부재에 시달리며 마음을 털어놓을 친구 하나 없는 무매력남 앙리는 우연히 무료 신문 전단지에 실린 “자연스럽고 순수한 교제” 광고를 접하게 된다. 그리고 수술가운을 입은 남자로부터 슬픈 표정의 젊은 여자를 인도받는다. 그녀가 ‘암소’라는 다소 황당한 말과 함께 말이다. 암소 마갈리는 앙리에게 드림걸이었지만, 수술가운을 입은 남자의 말대로 암소의 속성을 그대로 지닌 마갈리에게 앙리는 그만 질려 버리고 만다. 자신의 욕정을 채우고, 싫증 내 버리는 앙리의 모습에서 극단적 이기주의 화신의 프로토타입을 보여 준다.

<곰, 뻐꾸기, 무늬말벌, 청개구리>는 그 제목만큼이나 혼란스러우면서도 매혹적인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주인공 브루스 리의 안락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파괴하는 일단의 삼합회 두목들의 아이콘을 제목으로 삼은 이야기에서 악당들은 브루스 리의 소득에서 세금 공제하지 않은 33%를 자신들의 몫으로 주장하면서 브루스의 아이들과 사랑스러운 부인을 차례로 인질로 잡아 갖은 만행을 저지른다. 인질범들의 악랄한 협박에도 절대 타협하지 않는 브루스의 모습에서, 한 때 ‘테러범들과는 협상하지 않는다’라는 지켜지지 않는 원칙을 천명했던 미국 정부의 완고함이 연상됐다. 이 고집불통의 인간은 결국 폐인이 되어, 요가 지도자가 되어 하루하루를 살게 된다. 브루스는 어쩌면 자신의 기가 막힌 불행에 그만 실성하거나 감각이 마비된 게 아닐까?

<썰매 끄는 개>에 나오는 35살 소심 씨는 자신의 여러 결점 중에서 소심함이라는 결정적 요인 덕분에 마이너스 인생을 살고 있다. ‘컴퓨터가 용량 부족을 호소’할 정도로 방대한 분량의 야동을 모으는 소심 씨는 부족함과 바보스러움까지 장착한 나머지 해소할 수 없는 리비도로 사서 고생을 하고 있다. 핍쇼클럽에 당당하게 들어가지도 못하고, 아침마다 들르는 피에로 크루아상 분점의 ‘얼굴 찡그리는 여자’를 이상야릇한 연금술로 말미암아 사랑하게 된 소심 씨! ‘얼굴 찡그리는 여자’에게 소심 씨는 그저 신경이 거슬리는 하찮은 존재에 불과하다. 이런 소심 씨가 어떤 계기를 통해 그만 일탈을 감행하기 시작한다. 걷잡을 수 없는 그의 리비도는 폭주하기 시작한다.

토마 귄지그는 모두 7개의 이야기를 통해 남성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자신의 생각에 블랙유머를 덧입히고 있다. 때로는 작가의 꼴마초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성에 대한 옴므 파탈스러운 폭언을 구사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밝히고 싶지 않은 욕망의 근저를 파헤치는 작업에 매진한다. 갑자기 등장한 다중이 프랭크의 엽기적 행각과 브루스 리를 압박하는 삼합회 두목들의 과도한 폭력행사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작가는 인간 세계를 쁘띠 주(petit zoo), 작은 동물원으로 비유하면서 이에 대한 판단은 모두 독자의 몫으로 돌리고 있다. 이런 일들이 있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다. 작가로부터 일관된 내러티브나 남성의 심리를 속속들이 알려주는 비법을 기대했다면 아마 낭패를 볼지도 모르겠다. 에피소드는 전혀 연관성을 가지지 않는 옴니버스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솔직히 말해서 책을 읽다가 그만 어디선가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수동적인 책읽기에 길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작가가 똑 부러지게 A=B 라는 프로토타입을 제시해 주었더라면 더 속이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단편집 <세상에서 가장 작은 동물원>으로 워밍업을 했으니, 이제 그의 첫 장편 소설이라는 <어느 완벽한 2개 국어 사용자의 죽음>을 기대해 본다. 단, 이번에는 좀 더 확실한 마무리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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