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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테르담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24
이언 매큐언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2월
평점 :
과연 소재와 이슈의 마법사라고 부를 만하다. 이언 매큐언의 부커상 수상작(1998년 수상)으로 작가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암스테르담>을 “다시” 읽었다. 아마 내가 처음으로 읽은 이언 매큐언의 작품이다. 그전에도 한 번 읽었지만 리뷰로 기록을 남기지 않았나 보다.
소설 <암스테르담>은 죽음으로 시작한다. 소설에 나오지도 않는 망자 몰리 레인의 장례식에 모인 네 명의 남자들의 이야기다. 고인의 남편 조지 레인은 죽은 부인의 애인들이 못마땅하기 짝이 없다. 우중충하고 이미지의 돈 많은 출판업자 조지가 어떻게 해서 자유로운 영혼인 몰리를 아내로 삼았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처음부터 작가는 망자에 대한 정보 없이 산 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바탕으로 고인에 대한 이미지를 빌드업하기 시작한다.
먼저 클라이브 린리가 있다. 중년 남자로 유산상속을 받아 젊어서부터 고생을 모르고 살았다. 그리고 정부에서 의뢰받은 밀레니엄을 기념하기 위한 교향곡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크고 작은 성공을 체험했다고 해야 할까. 아티스트답게 예민한 성격의 소유자로 산행을 즐긴다. 산행 중에 떠오른 악상이야말로 클라이브의 재산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주자는 <더 저지>의 편집국장으로 맹활약 중인 버넌 핼리데이다. 나중에 조지가 제공한 “사진”을 대중에 공개하는 역할을 맡는다. 현 내각의 외무장관 줄리언 가머니도 빠질 수 없는 몰리의 애인이다.
매큐언 선생의 책을 읽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선생은 작품의 길이에 상관없이 5개의 챕터로 소설을 구성하는 취미를 갖고 있다. 소설 <암스테르담>도 예외는 아니다. 이언 매큐언 선생은 등장인물들이 종사하는 직업을 통해 캐릭터의 성격을 하나씩 밝혀 나간다. 역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클라이브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신문기자, 출판업자 그리고 정치인보다(그리고 보니 거의 사회를 이끄는 모든 직업군을 망라한 느낌이다) 지식인으로 무언가를 창조하는 작곡가라는 직업이 갖는 우월감이라고나 할까.
작가는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그들에게 일종의 뮤즈로서 영감을 주었던 여신이었던 몰리 레인에 대한 이미지를 재창조해낸다. 누군가에게는 작업의 영감을, 삶의 의미였고 혹은 무한한 쾌락을 주었던 인물이 이제는 한 줌의 재로 남게 되었다는 허망함이 압도적이다. 중세 이래 인간에게 무한반복 중인 ‘메멘토 모리’는 매큐언 선생의 소설에서도 변주되고 있었다.
소설을 읽는 몰리를 사이에 둔 연적이자, 수십 년 지기였던 클라이브와 버넌의 관계도 흥미로웠다. 어쩌면 소설에 등장하는 조지를 제외한 나머지 남자들은 몰리의 마지막 남자였던 조지가 만든 음모의 희생양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진흙탕 개싸움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고상한 지위와 직책을 가진 사람들 역시 욕망에 있어서는 보통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외무장관 가머니의 에피소드를 살펴보자.
크로스드레싱에 캣워크 포즈를 취하며 잘 나가는 보수정치인의 이미지를 떠올려 보자. 겉으로는 강력한 이민규제 법안을 밀어 붙이고, 신자유주의 정책을 지지하는 우파 정치인의 사생활이 실제와는 너무 다르다는 사실에 유권자들은 어떤 판단을 내릴까. 거기에 양념처럼 곁들여서, 판매부수를 올리기 위해서라면 저명한 정치인의 평판을 하루아침에 날려 버릴 수도 있는 선정적인 가십성 기사를 게재하고, 개인의 사생활 보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언론매체의 본성에 대해서도 작가는 일침을 가한다. 문제는 그런 방식이 오래 전부터 횡행해 왔고, 지금은 그 당시보다 더 심각해졌다는 정도의 차이 정도랄까.
등장인물들의 개인사 뿐만 아니라, 이미 그 시절부터 브렉시트를 두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져 왔다는 것을 이언 매큐언 소설의 곳곳에서 느낄 수가 있었다. 미래를 위한 하나의 유럽인가? 아니면 위대한 대영제국의 부활인가에 대한 논쟁은 이미 통합 이전부터 영국의 국가적 이슈였다는 점을 매큐언 소설의 읽으면서 피부로 느낄 수가 있었다. 과거냐 미래냐, 청년세대와 노인세대 간의 갈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 온 것이다. 그렇게 축적된 추체험의 발현이 브렉시트라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물로 나왔을 뿐이다. 문학을 통해 그런 정치적 가능성을 엿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흥미를 돋우는 요망한 상상은 접어 두고 다시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인간관계가 언제나 그렇듯, 상호간의 호혜적 관계 유지는 지난하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클라이브와 버넌의 관계로 작가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의 손익분기점”의 설명을 시도한다. 아무리 친구라고 하지만 내가 아닌 타자의 이익을 위해 내가 언제까지 손해볼 수 있을까? 결론은 작가가 소설에서 표현했듯이, “우정에 대한 전반적이고 상세한 재정의”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클라이브와 버넌이 암스테르담에 간 결정적 이유다. 얄궂은 두 개의 초대장이 서로에게 발부되었다고 해야 할까나.
소설 <암스테르담>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장면 두 가지를 꼽고 싶다. 하나는 세상사에 지친 클라이브가 악상을 떠올리기 위해 레이크 디스트릭트를 찾아 산행하는 장면이다. 필생의 역작을 위해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는 필요악이지 않을까. 다만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지식인으로서 사회적 의무조차 외면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지 작가는 독자에게 묻는다. 다른 하나는, 결정적 순간에 버넌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로즈 가머니의 여사의 정치적 쇼다. 아무리 사전에 연출된 것이라고 하지만, 로즈 가머니 여사처럼 천연덕스럽게 궁지에 몰린 남편의 위기탈출을 돕는 장면은 압도적이었다. 뭐 이언 매큐언 정도 되는 작가라면 이 정도의 반전 정도는 당연히 준비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군더더기 없이 핵심만으로 인간관계의 저변을 파고들어, 이렇게 멋진 소설을 창조해낸 작가의 역량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나의 이언 매큐언을 찾는 여정이 즐거울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