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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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내가 공지영 작가의 책을 마지막으로 읽은 것은 몇 년 전인가 읽었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었다. 오래되어 기억이 휘발되어 버리고 지금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것은, 공지영 작가에게 자신의 글에서 다루었던 사형수들의 삶은 과연 무엇일까 하는 생각일 뿐이다. 내가 삐딱선을 탄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과연 작가들에게 타인의 리얼리티는 단순하게 작가적 상상력의 소재에 지나지 않는건 아닐까.

작가는 <도가니>에서 보다 한층 자극적인 소재로 독자들에게 접근을 시도한다. 어떤 분은 책의 내용을 알고 차마 못 읽겠다고도 말했었다. 보통의 경우에 책에 대한 편견 없이 대하려고 하기 때문에 사전 정보 없이 바로 책읽기에 뛰어 들었다. 그리고 바로 책을 읽으면서 그 분이 왜 책을 읽지 않겠다고 선언을 했는지 바로 이해가 갔다.

<도가니>의 배경은 안개로 유명하다는 지방의 무진(霧津)이다. 그 유명한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을 미처 읽어 보지 못해 그 내용에 대해 알 수는 없지만, 역시 무진을 배경으로 한 <도가니>에서 그 이야기를 빼놓고 갈 수는 없겠지.

중국에서 사업을 하다 실패하고, 아내의 소개로 무진의 어느 농아학교로 오게 된 기간제 교사 강인호가 등장한다. 사립학교 채용을 위해 관행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다섯 장의 학교발전기금은 그에겐 차라리 모멸이었다. 처음에 강인호에게 자애학원은 자신의 재기를 도모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교사로 일하게 된 자애학원에서 원치 않았던 엄청난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 내동댕이쳐지게 된다.

<도가니>는 최근에 본 윤태호 작가의 만화 <이끼>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다. 우선 토착화된 지역민들이 일심동체가 돼서 외부에서 온 인사들(강인호와 서유진)의 진리와 정의를 밝히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우리는 아무런 문제없으니 공연히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조용히 우리와 지내거나 아니면 이곳을 떠나라는 식의 양자택일을 강요한다.

도저히 상식이라고는 통하지 않는 추악하고 끔찍한 사실을 감추기 위해, 금력과 관권 그리고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들의 악행을 덮으려 하는 지역 기득권층에 대해 공지영 작가는 날카로운 활시위를 겨눈다. 소설에서 거대한 빙산에 작은 망치 아니 맨손으로 달려드는 서유진의 모습에 작가의 그것이 얼비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많지 않은 소설의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악머구리 끓듯한 작은 도가니탕 같은 무진의 이야기들을 읽기가 사실에 다가가기가 너무 힘들었다. 작가의 글쓰기 패턴을 볼 때 분명 대한민국의 어디선가 일어났던 사건을 모티브로 삼았을 텐데, 그 생각을 할수록 책장을 넘기기가 버거워졌다. 더 힘들었던 건, 어떤 일이 있더라도 정의는 승리한다는 식의 도식적인 결말 대신에 그래도 이런 광란의 도가니 속에서 삶은 계속 되더라라는 엔딩이 예상되서였다.

그런데 작가가 <도가니>에서 다루고 있는 더 본질적인 것은 바로 사실을 대하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 일들이 벌어졌을 때,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는 진실보다는 차라리 위선적이지만 포장되고 가공된 거짓들에게서 위안을 받는다는 것이다. 왜냐구? 참혹한 진실보다는 적당히 뚜드려 맞춘 거짓이 우리들의 마음에 자책으로 수치심을 덜어 주기 때문에. 자애학원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한 무진 시민들의 일반적인 속내 또한 다르지 않았다.

비록 민주화의 성지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무진이지만, 이제는 빛바랜 옛 추억에 불과하고 지금은 모두 한 자리씩 잡고 공고해져 가는 기득권층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밝혀져야할 진실 따위는 슬쩍 눈감아 버리면 그만이라는 암묵적인 합의가 예의 도시에 농무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공지영 작가의 종교에 대한 다소 회의적인 시각은 무진 영광제일교회 신도들의 불의와 부조리에 대한 아멘과 할렐루야 선창을 통해 청각화되고 있었다. 교회 울타리 안에 있는 ‘우리’들은 옳고, 그 밖에서 우리들을 핍박하는 무리들은 모두 사탄이라고 외쳐대는 맹목적인 신앙의 모습들이 자못 두렵기까지 했다. 나중에 법정에서 진실이 가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악당들의 잘못에 대해 비판 없이 아멘을 읊조리는 그네들의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IMF 이후 하루가 다르게 보수화되어 가는 우리 사회에서 다시 한 번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는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한 경종을 울려주는 것 같은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가 무척 반가웠다. 비록 책읽기가 쉽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네 현실을 무시하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어쩌면 거짓이 우리네 양심을 잠깐 동안 자유롭게 해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불의에 대해 언제나 눈을 감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정답은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모든 것을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진실과 거짓이 뒤범벅이 된 광란의 도가니 속에서 오늘 하루를 사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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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없는 사람
커트 보니것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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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세상에 없는 82세의 노작가의 마지막 백조의 노래와도 같은 책을 만날 수가 있었다. 마크 트웨인 이래 미국 최고의 작가라는 호칭을 얻은 커트 보네거트의 책을 지난 4월 달에 처음으로 만났다. 그리고 마치 그의 작품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듯 그렇게 그의 책들을 하나하나 읽기 시작했다. 그가 생전에 마지막으로 쓴 <나라 없는 사람>은 자신의 평생을 반추해 보는 작가의 자전적인 에세이처럼 다가온다.

미국에서 독일계 후손으로 태어나 2차 세계대전 징집되어 참전하기도 했던 커트 보네거트는 1944년 12월 14일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동부 독일의 드레스덴으로 이송되었다. 노작가는 드레스덴에서 강제노동을 하던 도중, 영국군과 미군이 추축이 되어 감행한 1945년 2월 13일부터 15일까지 대폭격으로 드레스덴 시가지가 불타고, 13만 5천명이 살상당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게 된다. 이 인류 역사상 유래 없었던 대참상은 훗날 커트 보네거트를 반전 평화주의자의 길로 인도한다. 아울러 이 사건은 향후 작가의 작품 활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전 세계에서 자유와 정의 그리고 평화를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미국에 사는 보네거트지만 그는 스스로 자신은 (자유와 정의, 평화가 없는) 나라 없는 사람이라고 이 책을 통해 말하고 있다. 소수의 얼간이들이 지배하고 있는 미국은 그 헤게모니와 방향성을 상실한 채, 국민들이 스스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기본적인 교육과 의료혜택을 받을 수 없는 현실을 개탄해 마지않고 있다. 그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동지로 부시 행정부 시절 내내 부시 대통령을 갈구었던 마이클 무어 감독을 들 수가 있겠다.

구닥다리 작가답게, 컴퓨터로 쓱싹쓱싹 쳐나가는 글보다는 손수 타이핑을 하고 교정을 봐서 전문 타이프라이터에게 자신의 육필 원고를 동네 구멍가게에 가서 산 마닐라 봉투에 넣어 우체국에 가서 붙인다. 그리고 한 점의 스스럼도 없이 뻔뻔하게 예의 우체국에서 일하는 아가씨와 사랑에 빠졌노라고 고백한다. 그의 솔직한 고백과 글쓰기에 대한 태도가 너무 편하게 글을 찍어내는 요즘의 그것과 변별이 되어서 그런 진 몰라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모두 13편의 에세이와 각장의 시작마다 자신이 만들어낸 캐릭터 ‘보코논’ 혹은 자신의 이름으로 쓴 묵시적인 교훈들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스스로가 수다쟁이라고 칭하는 커트 보네거트는 철지난 옛 이야기처럼 대가족제의 장점을 설파하고, 그 중요성에 살짝 방점을 찍는다. 핵가족제가 시대의 트렌드마냥 위세를 떨치고 있는 시기에 어느 노땅의 반란처럼 다가온다.

인류의 미래에 대해 암울한 생각을 숨기지 않지만 그래도 인류가 만들어낸 여러 가지 발명품 중에서 특히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대놓고 드러낸다. 특히 아프리카계 흑인들에게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는 블루스는 모든 음악의 원조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흠, 상당히 일리가 있는 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자신을 두려움으로부터 방어하는 기제로서 유머에 아주 높은 가치를 부여한다. 어려서부터 타인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싶어서 웃기는 말에 남다른 관심을 보였던 보네거트의 솔직담백한 고백에 웃음꽃이 슬그머니 피어오른다.

자유와 정의가 꽃피울 자신의 조국 미국을 사랑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온갖 사회의 부조리가 판을 치고 있는 미국을 어느 날 화성인이 침공해 주기를 내심 바라는 이중적인 면도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미국의 희망을 다른 곳이 아닌 오늘도 열심히 공공도서관에서 금지된 책들을 대중들에게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서들에게서 찾는다. 그에게는 텔레비전도, 신문 같은 대중매체들도 하나 같이 믿을 수가 없는 존재다. 오로지 책만이 우리에게 진리(veritas)를 전해 준다고 역설한다.

역시 평화주의자답게 기존의 미국 사회에 널리 퍼져 있는 기존의 (전쟁) 영웅상에도 반기를 든다. 마초주의로 무장한 영웅들이 아닌, 아무 것도 아닌 사소한 것에 주목해서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한 오스트리아 출신 의사 이그나츠 제멜바이스의 손씻기 운동을 언급한다. 수많은 산모들이 산욕열로 죽어가는 안타까운 현실을 타파하기 위해, 제멜바이스는 가장 쉬우면서도 효과적인 손씻기를 제안한다. 그에 대한 후폭풍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우리네 평범한 영웅들의 말로가 그렇듯 제멜바이스 역시 기존의 의학계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고 정신병원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커트 보네거트의 <나라 없는 사람>은 팔순을 넘긴 노작가가 이 세상과의 이별을 앞두고 부른 ‘백조의 노래’처럼 다가온다. 아들과 세상살이의 본질에 대해 마치 선문답을 하듯 대화를 하고, 자신이 왜 노벨상을 받지 못했는지에 대해 농담을 하며 작가로서의 파란만장한 삶을 매조지할 준비를 차분히 하는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얼마 전에 읽은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에서 대작가와 담배를 같이 피우기도 했다는 닉 혼비가 어찌나 부러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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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의 원근법>을 리뷰해주세요
고뇌의 원근법 - 서경식의 서양근대미술 기행
서경식 지음, 박소현 옮김 / 돌베개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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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책을 보면서 분명 서경식이라는 한국 저자 이름 옆에 ‘박소현 옮김’이라는 글이 적혀 있어서 적잖이 놀랐다. 한국 사람이 한국말로 글을 썼는데 또 다른 한국 사람이 번역을 했단 말인가? 그런데 책날개를 펼쳐 보면서 바로 그에 대한 오해가 풀렸다. 서경식 저자는 재일동포로 일본에서 거주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아하 그랬구나. 그런데 저자에 대한 나의 상상의 날개는 쉬지 않고 펼쳐졌다. 현직 법학부 교수가 서양근대 미술기행 에세이를 썼다고?

서경식 작가는 책의 말머리에서 자신의 저술의 방향에 대해 매니페스토를 선언한다. 왜 우리 근대미술은 예쁘다는 미의식에서 자유롭지 못한가. 물론 예술이 모두 정치적인 색채를 띠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예술의 미의식을 지배하고 국가의 통제 아래 두려고 했던 반동적 움직임에 대해 기성의 예술가들의 무기력함을 질책하고 있다. 특히 분단과 전쟁 그리고 오랜 군사독재를 경험한 우리나라에 독일의 오토 딕스가 그린 것과 같은 “전쟁제단화”가 없다는 사실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다. 물론 저자가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일본의 경우야 더말할 것도 없다.

2부로 나뉜 책에서 전반부는 작가 자신이 직접 발로 뛰면서 체험한 유럽 특히 독일 화가들을 소개하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반 고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고뇌의 미학과 학살 같이 어두운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사실 이 <고뇌의 원근법>을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에밀 놀데 외의 전반부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 오토 딕스 그리고 펠릭스 누스바움 같이 1차 세계대전 패전 후 성립된 바이마르 공화국에서부터 나치 지배 하의 독일 치하의 예술 활동에 대해 전혀 알지도 못했고, 알려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르네상스 이래 탐미주의적인 미술계의 전반적인 추세에 반대해서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기치 하에 전쟁과 독재 그리고 서구사에서 도저히 씻을 수 있는 한 획을 그은 홀로코스트에 이르는 전 과정을 그린 굵직굵직한 인물들을 서경식 저자는 집어내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서 회화나 조각 같은 예술 장르가 아름다움을 다뤄야 한다는 미의식을 가지고 있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책을 덮거나 혹은 괴로움으로 책읽기가 고뇌의 시간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예술을 통해 국가지배를 정당화하려고 했던 1930년대 나치 독일 이데올로기에 맞서 치열한 예술 세계를 전개했던 이들의 생생한 실제 이야기들은 ,역주행하고 있는 민주주의를 목도하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다소 투박하고 원시적으로 보이는 색채나 선을 구사하는 에밀 놀데의 <그리스도의 생애> 연작 시리즈를 비롯한 일련의 작품들은 아리안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인종우월주의적 이데올로기를 자신들의 존립기반으로 삼았던 나치 도당에게 한없이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나치들은 에밀 놀데를 비롯해서 유대인 화가들의 작품들을 모아 퇴폐미술전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주의에 예술을 종속시키려는 노력을 끊이지 않고 시도했다.

정말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된 오토 딕스의 <전쟁제단화>를 비롯한 상이용사들의 비참한 현실과 1차 세계대전 당시 서부전선에서 실제 체험한 엄청난 살상을 동반했던 참호전에 대한 묘사는 리얼리즘의 정수로 다가왔다. 하지만 오토 딕스는 다른 예술인들처럼 정치적 망명을 택하지 않고 독일 국내에 남아 있으면서 그의 조국 독일이야말로 자신의 작품 활동의 원천이 된다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그는 독일이 통일된 후에도 서독과 동독 양측에서 찬사를 받은 몇 안 되는 화가 중의 한 명이라고 한다.

 1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화가로는 유대인 화가 펠릭스 누스바움이 등장을 한다. 부제목으로도 등장한 것처럼 “누가 펠릭스 누스바움을 기억하는가”라는 도발적인 제목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누군가 말했듯이, 아우슈비츠 이후 예술을 논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부유한 유대 가문에서 태어난 누스바움은 어려서부터 유대인이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끊임없이 투쟁을 벌여왔다. 게다가 자신의 타고난 예술가로서의 기질은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게 만들었다. 벨기에에 숨어 살던 그는 해방을 몇 달 앞두고,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강제수용소로 끌려가서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2부에서는 요절한 천재 카라바조의 그림 <토마스의 불신>을 통해 “보고 그린다”라는 양면성을 가진 세속적 욕망의 문을 통과한 예술가들의 이야기로 시작을 해서, 너무나도 유명한 화가인 반 고흐에 대한 대담 그리고 학살이라는 주제를 천사라는 매개체를 통해 구상화시킨 과테말라 출신의 작가 다니엘 에르난데스 살라사르의 이야기로 매조지를 한다.

특히 자본주의 산업혁명 이래, 미술이 산업화되어 가는 시기를 가열차게 살았지만 정작 생전에 자신의 작품이라고는 달랑 한 점 판 실패한 화가 고흐에 대한 접근은 아주 새로웠다. 우리가 살던 시대보다 120여년 정도를 먼저 살았지만, 자본에 의한 지배가 나날이 공고해지고 예술정신조차 가치가 매겨져서 국가권력보다도 더 무서운 시장논리에 좌지우지되는 현실세계는 고흐가 참아낼 수 없는 19세기말의 그것과 너무나 흡사하기만 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개인적으로 예술은 모두 아름다워야 한다는 전통적인 미의식에 대한 가히 혁명적인 개조를 이룰 수가 있었다. 서경식 작가가 말한대로, 아름답지 못한 현실을 담은 회화가 어떻게 아름다워 보일 수가 있겠는가. 현실세계를 도피해서, 물상이나 자연만을 다룰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모습을 가감 없이 다루고 있는 화가들의 부재가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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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츠 캠핑 it's camping - 초보 캠퍼를 위한 캠핑 가이드&캠핑지 100선
성연재 외 지음 / 이밥차(그리고책)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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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가에서 <잇츠 캠핑>의 돌풍이 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불과 한 달 사이에 3쇄에 들어간걸 보면, 이 책이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짐작이 가고 남음이 있을 것 같다.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무엇보다 사진이 인상적이었다. 하긴 요즘처럼 비주얼의 시대에 사진만큼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것도 없을 것 같다.

남자들에게 아마 캠핑은 어렸을 적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로망의 촉진제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목적지도 뚜렷하게 정하지 않은 채, 어느 여름 남도 바닷가를 둘러보겠다는 일념으로 친구들과 긴 여행을 떠났던 기억이 난다. 인원수를 훨씬 초과하는 텐트를 메고 다니느라 엄청 고생을 한 기억이 난다. 당시만 하더라도, 요즘처럼 오토캠핑이 일반화되지도 그리고 교통편도 좋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그 추억들은 오롯하게 지금도 기억 속에 피어오른다.

<잇츠 캠핑>에서는 그런 마구잡이식 캠핑이 아닌 보다 체계적이고, 자연을 벗 삼아 즐길 수 있는 많은 노하우들을 아낌없이 전수해준다.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52곳의 캠프 사이트들을 직접 가본 후에, 짤막짤막하게 소감을 피력하는 저자의 전개에 그저 넋을 잃은 듯, 사진과 그 안에 숨겨져 있는 이야기들에 흠뻑 빠져 버렸다.

물론 수년간 캠퍼로써, 경력을 쌓은 이들도 있겠지만 비를 피할 수 있는 작은 텐트와 추위방지용 침낭 하나만 있다면 오늘 당장에라도 떠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책에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고 있지만, 캠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기동력 다시 말해서 차량이다. 특히 오지의 비포장도로 같은 곳을 달릴 수 있는 스포츠 차량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말이다. 그 점은 아마 캠핑에 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느라 의도적으로 피한게 싶다.

가족과 함께 하는 캠핑은 더더욱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예전처럼 자연을 벗하지 않고 회색빛 콘크리트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에게, 주말의 잠깐이라도 회색빛 공해의 공간에서 벗어나 굴참나무와 전나무들이 하늘로 치솟은 산 속에서 바로 당장이라도 우수수 떨어질 것 같은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을 보며 보내는 시간들은 그 무엇에 비할 바가 아닐 것이다.

아울러 단순하게 야외로 나가 먹고 자는 것이 아닌, 일상에 피로에 시달린 자신을 되돌아보고 보다 여유로운 독서의 시간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저자들은 담담하게 사진을 통해 보여준다. 아웃도어 스포츠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플라이 피싱 역시 빼놓을 수가 없다. 자연을 사랑하는 캠퍼들답게, 열목어나 산천어 같이 희귀어류들을 잡아 사진을 찍고 바로 놓아주는 강태공 캠퍼들의 자연 사랑 정신에 경의를 표할 뿐이다.

저자들은 모두 52곳의 멋진 캠핑 사이트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나서, 역시 캠핑하면 빼놓을 수 없는 베스트 먹거리 20선을 선보여 준다. 누가 나가서 먹는건 뭘 해먹어도 맛있다고 했던가. 자연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서, 지글지글 타오르는 장작불에 더치오븐을 걸고 로스트치킨이 익기를 기다리는 캠퍼들의 허기가 느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주 기본적인 요리인 밥구이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조금은 손이 많이 갈 것처럼 보이는 토마토카레그라탕에 이르기까지 베테랑 아웃도어 쿡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개인적으로 20가지 요리 중에서 압권은 ‘비어캔치킨’이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꼭 도전해 보고 싶은 요리다.

결국 이 책 한 권을 읽고, 캠핑에 중독이 되어 버린 나머지 캠핑 물품 사이트를 뒤지고 결국에는 ‘캠핑 앤 바비큐’ 카페에도 가입을 했다. 물론 일상의 삶이 항상 발목을 잡고 있어서 과연 나의 첫 캠핑이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좀 부족하고 불편하면 어떻겠는가? 바로 그 맛이 지금도 수많은 캠퍼들이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산과 강으로 캠핑을 떠나는 이유가 아니겠는가 말이다. 말이 필요 없다, 당장에 떠날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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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리뷰해주세요
보이지 않는 사람들 - 21세기 노예제, 그 현장을 가다
E. 벤저민 스키너 지음, 유강은 옮김 / 난장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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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뉴스에서 미 국무성에서 해마다 발간하는 인신매매 보고서에 북한이 지난 6년간 인신매매 최악의 나라 3등급에 지정됐다는 뉴스를 들었다. 부시 행정부 시절이던 지난 2003년 보고서를 처음으로 작성한 이래 북한은 실제로 벌어지는 있는 인신매매에 대한 인정은 물론이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는 나라로 분류되었다는 것이다. 이 3등급의 나라에는 벤저민 스키너의 책에서도 다뤄지고 있는 수단과 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올라 있다.

<뉴스위크>와 <포린어페어스> 같이 저명한 잡지들에 글을 실어온 벤저민 스키너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서 유사 이래 가장 많은 수의 노예들이 상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작가는 노예제 해방에 있어서 선구적인 역할을 했던 영국과 심지어 헌법에 보장된 모든 이들의 평등을 위해 전쟁까지 치른 미국(물론 남북전쟁에 대한 다른 시각도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의 경우에서 모든 인류의 소중한 가치인 자유에 접근을 시도한다.

우선 저자는 현대사회에서 자행되고 있는 노예제에 대한 정의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강요나 사기를 통해,’ ‘생존을 넘어선 보수를 전혀 받지 않고,’ ‘강제노동에 종사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벤저민 스키너는 중남이 소국 아이티의 만연한 ‘더부살이’로 대변되는 아동 노예들의 실상을 파헤친다. 작가는 나중에도 계속해서 언급을 하게 되지만, 절대 빈곤선에 있는 대부분의 가정들에 현대판 노예상들의 유혹이 뻗친다고 말하고 있다. 기본적인 생존을 위한 먹을 것마저 구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약속하는 교육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다. 그런 그들에게 노예 중개업자들이 나타나서, 교육을 약속하며 아이들을 아이티 중산층 가정에 공급한다. 물론 그런 거짓 약속 뒤에는 혹독한 매질과 가혹한 노동만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아쉽게도 벤저민 스키너의 현대판 노예제에 대한 고찰은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인지 전 세계적인 노예제 폐지를 위한 노력을 하고 있는 미국의 노력에 집중되고 있다. 미 국무성 산하 인신매매담당과의 무임소 대사로 활약을 한 민주당원 출신에서 공화당으로 당적을 바꾼 존 밀러가 있다. 한편, 기독교 복음주의 출신의 마이클 호로위츠는 존 밀러가 주장하는 대로 노예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가난과 빈곤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주장보다 성매매가 개입된 인신매매에 초점을 맞춘다.

작가는 아이티를 시작으로 해서, 수십 년간의 내전의 참화를 겪은 수단의 가재 노예들의 처참한 상황과 루마니아와 몰도바에서 서유럽 매춘시장을 위해 유입되는 여성들의 현실을 담담하게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이를 위해 저자가 참고한 참고자료들의 수는 방대하다. 실제로 작가가 참고문헌으로 제시한 <타임>의 “인간노예” 기사를 찾아보면서 얼마나 많은 수의 공산주의에서 벗어난 동유럽 젊은 여인들이 가난과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인 조건들 때문에 비인간적인 성적 억압과 착취를 당하는지 실감할 수가 있었다.

특히 수단의 경우에는 친정부 아랍계 민병대들에게 노예사냥으로 잡힌 수단 남부의 딩카족을 비롯한 아프리카계 소수민족들의 자유 ‘되사주기’가 수단 반군들에게 자금줄로 역이용되고 있다는 폭로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들의 자유를 위해 미국 어린이들이 모금한 소중한 자금이 수단 반군에게 병참과 무기 구입을 위한 돈줄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국제정치역학의 모순이 느껴지기도 한다.

세계의 인신매매 근절을 위해 외로운 싸움을 하는 존 밀러의 이야기는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예제와 교차 편집된다. 미국 정부에 우방이라고 할 수 있는 사우디아라비아나 쿠웨이트 혹은 인도 같은 나라들에 3등급 지정을 하고, 제재를 가하려는 존 밀러의 시도는 그의 상급자들의 정치적인 이유로 해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게 된다.

마지막으로 벤저민 스키너는 전 세계 노예인구의 절반을 차지한다는 인도로 눈을 돌린다. 인도에서도 가장 가난한 주 중의 하나라는 우타르프라데시의 채무 노예 고누 랄 콜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인도의 고질적인 병폐 중의 하나인 카스트 제도 밖에 불가촉천민인 달리트 출신의 고누는 거의 3대째 채무 노예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악질 지주들은 고누와 같은 채무 노예들에게 생존에 필요한 음식과 최소한의 물질을 공급해 주면서 대대로 그렇게 가혹한 착취를 일삼고 있었다.

인도의 법률은 카스트제도와 노예제를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가는 현대 인도에서 그 두 가지 악폐들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서구인들의 일시적인 동정에 의한 도움이 아닌, 자신들의 처해 있는 반인류적인 범죄라고 할 수 있는 예속적인 노예생활에 대한 자각을 위한 계몽활동과 더불어 그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제시되어야할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이 대명천지에 여전히 현대판 노예제도가 상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오늘도 이 지구상의 어딘가에서는 나이 어린 아이들이, 젊은 여성들을 비롯한 수많은 이들이 가난과 채무 같은 다양한 이유로 해서 착취와 학대에 신음하고 있다는 끔찍한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 벤저민 스키너의 말대로 그들에게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각성과 더 이상 노예로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것 같다. 벤저민 스키너와 존 밀러 같이 이 심각한 문제를 사람들에게 주지시키고 개선시키려는 이들의 부단한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이 지구상에서 노예제가 없어지는 그 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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