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마리아주 Tokyo Mariage Style Mook 2
김호진.김미선 지음 / 브이북(바이널)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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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책의 표지를 보고서 여유롭게 와인 잔을 테이블에 놓고 있는 이가 누군가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바로 이 책의 저자인 탤런트 김호진이 아니던가. 그리고 더 놀란 건, 탤런트로만 알았던 그가 복어요리를 비롯해서 무려 5개의 요리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는 게 아닌가. 어느 캐릭터에 대한 평면적인 사고가 입체적으로 전환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그는 와인 마니아라고 불릴 정도로 와인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다. 아니 형이상학적으로 안다는 표현보다는 즐긴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김호진은 그렇게 와인을 찾아 도쿄 행에 오른다. 그리고 그의 여행의 목적성은 뚜렷하다. 현지에서 몇 대를 두고 물려 가며 가업을 잇는 장인 정신을 찾아서, 그리고 타인의 것을 모방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음식을 찾는 기행이었다.

개인적으로 지난 10월말에 일본 도쿄에 다녀왔는데, 가기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아마 나도 현지답사를 나섰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에 젖었었다. 게다가 물가가 비싸기로 아시아에서 선두를 다투는 서울과 일본의 와인 값을 비교해 본다면, 일본이 더 싸다고 하지 않는가. 게다가 한 요리하는 작가가 말하는 대로 와인과 음식에도 궁합이 있는 법, 그래서 책의 제목도 그대로 <도쿄 마리아주>라고 짓지 않았던가. 좋은 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에서, 맛있는 음식까지 더해진다면 그거야말로 도원경(桃源境)이 따로 있겠는가 싶었다.

<도쿄 마리아주>에서는 모두 해서 36개의 와인 바와 레스토랑들이 소개가 된다. 특히 지난 가을 숙소가 있었던 아사쿠사의 <오사카야>는 언뜻 지나쳐 가며 본 듯도 싶었다. 진작 알았더라면, 당연히 들러서 음식 맛을 보았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대를 이어 95년째 영업 중이라는 <오사카야>의 분위기는 정갈했다. 하지만 여전히 지면 만으로는 그 분위기와 미각과 그리고 음식과 와인이 주는 식감을 느낄 수가 없으니 안타깝기만 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와인 바 두 곳을 꼽으라고 한다면 15번째로 소개되었던 오모테산도 노상에 있다는 오크통이 잘 어울리는 <카민>과 19번째 <우피>를 꼽겠다. 캐주얼한 분위기를 더 좋아해서 그런 진 몰라도 왠지 정장을 차려 입고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고품격의 레스토랑이나 와인 바보다 이렇게 선술집 분위기가 나는 곳이 더 마음에 들었다. 어느 가을날에, 오모테산도를 걷다 지친 발걸음을 쉬기 위해 큼지막한 오크통 앞에서 마시는 와인 한 잔의 여유란 상상만 해도 즐겁다. 도쿄에 갔을 적에 에비스 스테이션에 가긴 했었는데 <우피>의 존재를 몰랐던 나는 같이 갔던 동행과 함께 에비스 맥주만 마시고 돌아온 기억이 난다. 다음번에 도쿄에 가게 되면 ‘머스트’ 방문할 곳 중의 하나가 추가되었다.

일본에 갔을 때, 생맥주(나마비루), 카레, 돈까스 그리고 스시를 꼭 먹어 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마지막 스시를 못 먹어 본게 무척 아쉬웠는데, <도쿄 마리아주>의 지은이는 그 유명한 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실제 모델이었다는 야마다 히로시 할아버지가 운영하게 <칸파치>에 들러 주인장이 그 자리에서 바로 만들어내는 스시를 마치 어미 새가 아기 새에게 먹이를 주듯 그렇게 받아먹으면서 직접 초밥을 만들어 보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단다. 한마디로 말해서 완전 부러웠다. 나도 우에노에 가게 되면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상상을 해봤다.

이 책을 통해 한 가지 배운 점이 있다면 바로, 와인을 마시던 아니면 음식을 만들던 간에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조건 와인이 비싸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고, 얼마든지 중저가에서도 자신만의 와인을 고를 수가 있다는 것이 김호진의 주장이었다.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개인적으로 독일 라인 지방에서 나는 리슬링 품종의 와인을 좋아하는데, 그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던 적이 있었다. 그 때만 하더라도 오래되고 비싼 와인이 더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몇 번 테이스트를 해보면서 가격이 싸고 영(young)하더라도 내 입맛에 딱 들어맞는 와인을 찾을 수가 있어서 아주 즐거웠던 적이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오래간만에 리슬링 와인 한 잔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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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미셀러니 - 와인에 관한 비범하고 기발한 이야기
그레이엄 하딩 지음, 차재호 옮김 / 보누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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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왠지 와인하면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가? 보통 사람들은 범접하기 힘들다는 느낌부터 받게 되는 게 사실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와인의 종류가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다. 2005년에 처음 출간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이 저자 그레이엄 하딩의 책 <와인 미셀러니>는 이런 와인의 신비한 세계를 독자들에게 인도한다.

샤르도네, 쇼비뇽 블랑, 돔 페리뇽, 메를로, 카버르네, 리슬링, 토카이 등등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이름들은 그나마 어디서고 한 번 들어본 적이 있지만, 무통 로쉘드 같은 정말 고급 와인들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사실 와인 병에 붙어 있는 라벨도 제대로 읽지 못한 적도 많다.

와인의 기본 정의는 “발효된 포도 주스”라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정의에 대해 책의 부제로 딸려 있는 대로 ‘와인에 관한 비범하고 기발한 이야기’들을 사회 전반에 걸친 모든 방면에서 풀어 나간다. 역시 역사를 전공한 이답게, 와인의 유래로부터 시작을 해서 와인에 쓰이는 용어, 와인 병의 제조, 와인을 숙성시키는 오크통, 라벨 그리고 문학과 영화에 이르는 그야말로 와인에 대한 백과사전적 정보들을 짤막하면서도 아주 유용한 스타일로 그리고 매우 유기적인 관계로 빚어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와인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던 많은 것들을 이 책을 배울 수가 있었다. 예를 들면, ‘펀트’는 와인 병 밑에 움푹 들어간 부분을 지칭하며, 얼리지(Ullage)는 코르크 하단 부분과 실제 와인 사이의 빈 공간을 말한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해 하던 빈티지(Vintage)에 대해서는 실제로 포도를 수확한 해를 의미한다는 것도 덤으로 배웠다. 이건 개인적으로 아주 궁금해 하던 사실이었다. 또한 포트 와인에 대해서 이 책을 통해 보고, 인터넷 리서치를 통해 알게 됐다. 포트 와인이란 주로 북서 포르투갈 지방의 도우로 밸리(Douro Valley)에서 만들어진 증류 포도주를 말하는데 대개의 경우, 스윗한 레드 와인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얻은 최대의 수확은 바로 와인 비평가 로버트 파커를 알게 된 것이었다. 미국 볼티모어 출신의 로버트 파커는 원래 변호사 출신으로, 1975년부터 와인 비평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가 개발한 100점 만점 기준의 와인 평가 시스템은 국제 와인 시장에서 공인을 받고,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독일 라인 지방에서 나는 리슬링 품종의 와인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달다는 ‘아우슬리스’ 등급을 좋아한다. 타닌이 많이 들어가 있는 드라이한 레드 와인보다는 아무래도 조금 단맛이 나는 화이트 와인을 선호하는 편이다. <와인 미셀러니>를 통해 알게 된 헝가리 토카이 지방에서 난다는 토카이 와인을 한 번 사보려고, 인터넷 서치를 해봤는데 역시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건 아닌 듯 싶었다.

<와인 미셀러니>를 읽으면서 와인에 대해 무조건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에 맞는 와인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와인의 묘미를 깨닫는 정도가 아닐까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기회가 된다면 나도 무통 로쉘드 같은 고급 와인을 한 번쯤은 마셔 보고 싶다는 충동도 느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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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틀
루스 베네딕트 지음, 김윤식.오인석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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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려서 알게 된 루스 베네딕트 여사의 <국화와 칼>. 일본인들의 내면세계를 파헤친 수작이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정작 그 책과 대면하기에는 20년이란 세월도 더 걸린 것 같다. 그만큼 고전과의 대면의 기회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

이 책을 말하기에 앞서 이 책이 씌여지게 된 배경부터 말하는 게 순서인 것 같다. <국화와 칼>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 중이던 1944년 미국 전쟁성의 의뢰를 받아, 일본인들의 문화와 사고를 이해하고, 종전 후 일본 점령기를 준비하기 위한다는 뚜렷한 목적성을 가지고 씌여졌다. 종전 후인 1946년에 발간되었다. 특히 이 책의 저자인 베네딕트 여사는 일본인 특유의 수치(하지)와 죄의식에 대한 관점에서 이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과 미군이 육전에서 대규모로 처음 맞붙었던 과달카날 전투에서 ‘덴노헤이까 반자이’를 외치며, 기관총탄이 빗발치는 미군 진지로 목숨을 초개 같이 던지면서 무모한 육탄공격을 벌이는 일본군에 대해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합리적인 사고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광경들을 목도했다. 그러한 상황들은 타라와, 펠렐류 그리고 남방의 각처에서 벌어졌다. 도대체 무엇이 일본군들로 하여금 그런 무모한 돌격을 감행하게 하였는가.

유럽전선에서 대치하고 있던 나치 독일의 그것과는 또 다른 문화적 충격에 미국의 전쟁지도부에서는 일본과 일본인들 그리고 그들의 문화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에 루스 베네딕트 여사는 <국화와 칼>을 통해 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미국 페리 제독의 내항 이래 강제적으로 개방하게 된 일본의 도쿠가와 바쿠후는 근대화라는 세계적 흐름에 굴복하게 된다. 아울러 천황 중심의 왕정복고를 원하는 조슈와 사쓰마 번을 중심으로 결국 1868년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면서 단기간의 근대화를 통한 부국강병을 이루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은 천황과 신토를 중심으로 하는 그들만의 독특한 국가중심주의적 도덕체계를 수립한다.

우선 가장 우선적으로 일본인들에게는 모두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계층구조의 관습을 지키도록 태어나면서부터 교육받아온 사실을 주지시킨다. 천황을 중심으로 해서, 최고 정치지도자인 쇼군, 영주인 다이묘, 사무라이, 농민, 상인 그리고 천민들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신분에 걸맞은 행동을 하도록 사회적 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이는 천황에 대한 주[忠]로 이어지게 된다. 주와 더불어 중국에서 도입된 고[孝]는 자신과 부모간의 도리를 규정짓는다.

이런 계층구조의 관습은 태평양전쟁 당시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각지 정복에 나선 일본과 그 점령지 하에서의 갈등의 시초가 된다. 일본은 각 나라에 대해 일본국가의 우월성을 바탕으로 자신들의 계층구조에 따른 형과 아우, 선진국과 후진국의 구조를 받아들일 것을 일방적으로 요구했지만, 그들의 문화와 관습이 다른 나라에서도 적용될 리는 만무했다. 아시아 여러 국가들의 저항에 일본 제국주의는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으로 대응을 했다.

다음으로 온[恩]이라는 채무적 개념이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개인과 사회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한다. 그 중에서도 도저히 갚을 길이 없는 천황에 대한 온이 바로 전쟁 당시 일본군들이 천황을 위해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온과 유사한 개념으로 기무[義務]가 있는데, 기무는 천황에 대한 주와 부모에 대한 고를 동시에 지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기무에 있어서도 부모에 대한 고보다도 천황에 대한 주가 우선시된다.

자, 여기서 기무와는 또 다른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기리[義理]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기리는 자신이 예전에 받았던 친절로부터 시작을 해서, 모욕에 대한 복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범주를 아우른다. 하지만 기무와는 달리 “본의 아니게” 다시 말해서 본인이 원하던 그렇지 않던 간에 행해야 하는 점이 구별된다. 기리의 경우, 적합한 시기에 되갚지 않으면 그 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제 이상에서 나열된 사항들을 실제 상황에 적용시켜 보도록 하자.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은 미영연합국이 중경으로 이동한 장개석 정부에 대한 물자공급 루트인 레도 공로를 차단하고 궁극적으로 지속적인 저항을 하는 중국을 굴복시키기 위해 버마-인도 침공 작전인 임팔작전을 개시한다. 당시 버마방면군을 이끌던 15군 사령관 무다구찌 렌야 중장은 개전 초기 말레이 전선에서 뛰어난 무공을 세운 전형적인 사무라이 스타일의 장군이었다. 15군 휘하 31사단을 이끌던 사또 중장은 임팔작전 초기 인도의 코히마를 점령하는 수훈을 세우는 활약을 보였지만, 계속되는 연합군의 물량작전에 전 부대가 고사의 위기에 내몰리게 된다.

사또 중장은 천황에 대한 주를 다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자신의 부대원들을 살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항명이라는 절체절명의 상황에 직면한다. 20세기 전쟁에서, 13세기방식의 보급을 가지고 우세한 적과 싸워야 하는 상황 속에서 20세기 신식 군대교육을 받은 지휘관의 고뇌였다. 하지만 사또 중장은 자신의 직속상관인 무다구찌 사령관이 보급 약속을 어겼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뜻대로 후퇴를 감행한다. 이것은 바로 봉건시대 다이묘와 사무라이간의 관계의 재현이다. 다이묘가 자신의 휘하에 있는 사무라이들에 대해 모욕을 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다할 때에는(봉록의 유지) 그들에게 무한한 기무와 기리를 요구할 수가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을 경우에 사무라이들은 다이묘에게 대한 저항을 한다.

이러한 관계의 복잡성은 현대전이었던 태평양전쟁에서도 어김없이 재현되었다. 포로들은 죽을 때까지 항복하지 않고 싸우려고 했으며, 포로가 된 것은 피할 수 없는 수치였다. 그렇게 악착같이 저항을 하던 일본인들이 천황의 패전 사실을 알리는 방송 한 마디에 바로 자세를 바꾼 사실을 미점령군들은 처음에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전쟁지도부에서는 1억 총옥쇄 운운하면서 본토결전을 대비하고 있었다. 미군도 일본 상륙전이 감행이 되면, 최소한 100만 명의 사상자가 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이러한 사상자들의 수는 미국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수치였다. 하지만 종전 후 일본인들이 보여 준 미점령군에 대한 우호선린적인 모습들을 그들을 아연하게 만들었다.

모욕과 수치의 대척점에 서 있는 다른 명제인 명예에 대해서도 일본이 본격적인 세계열강으로 나가는 계기가 되었던 러일전쟁의 예를 저자는 들고 있다. 러일전쟁 당시 육전에서 뤼순 요새 포위공격을 벌였던 노기 마레스케 대장은 당시 러시아군 사령관이었던 스토예셀 장군의 명예로운 항복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항복한 러시아군에게도 합당한 대우를 해주었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 이래 미국과 영국으로부터 세계열강을 제대로 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수모를 받았다고 일본인들을 생각했다. 대양 국가로서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일본에게 열강과의 군축회담을 통한 함대 수의 제한 등의 조치는 국가적 수치였다. 마지막으로 진주만 공격이 있기 전, 일본에게 전달된 소위 ‘헐 노트’는 태평양 지역에서 일본의 패권주의에 대한 치명적인 일격이었다. ‘헐 노트’를 받아본 일본 지도부에서는 무조건적인 항복이냐 아니면 개전이냐의 양자택일을 요구받았다고 생각했다.

이런 과정이 개전 초기, 필리핀 바탄반도에서 대규모로 항복한 미군에 대한 소위 말하는 “죽음의 행진”과 같은 잔혹행위의 바탕이 되었다. 기리는 이렇듯 얼마나 시간이 걸리든 간에 반드시 되갚아야 하는 채무관계였음을 명백하게 증명해준다.

개인적으로 루스 베네딕트 여사가 단 한 번도 일본을 방문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이 책을 저술했다는 사실에 대해 놀랐다. 문화인류학에서 필드 리서치의 중요성은 두말할 것도 없이 중요한데, 그 과정을 빼놓고 기존의 자료들과 재미 일본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 책을 저술했다고 한다. 그런 반면, 그렇기 때문에 보다 객관적인 입장을 고수할 수도 있었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이 책에서 천황에 대해 기술된 대로, 일본인들의 국민감정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천황의 신성부인 성명을 내는 정도로 해서 미국의 프랭클린 대통령은 전후 천황제 존속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고 한다. 점령 당시, 미국의 대일본 정책수립에 <국화와 칼>은 큰 영향을 주었다.

루스 베네딕트의 여사가 60여 년 전에 집필한 일본국가에 대한 문화인류학적 접근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최근 일본 문화의 개방으로 책과 영화들을 쉽게 접하게 되었는데, 개인적으로 가까운 나라이면서도 국가 자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 같다. <국화와 칼>을 통해 일본 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가 있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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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대한 끔찍한 사랑
제임스 힐먼 지음, 주민아 옮김 / 도솔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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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처음 보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전쟁이 끔찍하다는 것인가 아니면 전쟁을 사랑하는 것이 끔찍하다는 것인가. 역시 이 책의 저자인 제임스 힐먼은 융 심리학을 다년간 연구한 이답게, 인간의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적으로 형성된 전쟁에 대한 불가해한 사랑과 숭배에 대한 원형(archetype)적 분석을 통해 전쟁에 대한 접근을 시도한다.

일찍이 프로이센의 군사 전략가였던 클라우제비츠가 선언했듯이 전쟁은 최고의 정치행위로써 인간의 역사와 함께 해왔다. 인류의 전 시기를 통틀어 그 어느 시대에도 전쟁이 전무했던 시기는 없었다. 그렇다면, 전쟁은 우리의 삶에서 일상화 되었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저자는 바로 이 점에 착안을 해서 ‘전쟁은 정상적이다’라는 자신의 명제를 제시한다.

누구나 전쟁을 싫어하지만 그 반대로 전쟁을 사랑하기도 한다. 미국의 저명한 여류학자인 수잔 손택은 전쟁을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고 말했지만 저자는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한다. 전쟁에 대한 몰이해를 단순한 인식론에 기인한 방법론의 부재로 볼 것이 아니라, 고대의 신화에 의거해서 분석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다음 장에서 전쟁의 필연적 성격인 비인간적 성질이 나열된다. 개개인의 전투력이 중시되던 고대의 전쟁에서, 대량생산된 최첨단 무기로 무장된 전쟁은 미디어를 통해 수치화된 데이터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다. 사선을 넘는 전쟁터에서의 치열함은 엄청난 수의 사망자와 부상자들을 숫자들로 치환하면서 탈인간화의 과정을 거쳐 비인간화에 이르게 된다. 실제 전장에서 발생하는 전투신경증으로 인한 인간 구조의 손상은 그전과 그 이후를 명백하게 구별한다. 전쟁에서 흔히 발생하게 되는 성적 폭력과 잔혹행위들 역시 빼놓을 수가 없다. 게다가 전쟁터의 병사들이 행사하는 무기들 역시 전쟁에 있어서 하나의 상징으로 작용한다.

세 번째 장에서는 전쟁의 숭고미에 대해 힐먼은 다시 신화적 접근을 시도한다. 전쟁의 신인 아레스/마르스와 아름다움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비너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대립 쌍으로 존재한다. 멋지게 차려 입은 채 포탄과 총탄이 빗발치는 죽음의 전쟁터로 돌진하는 기병대 병사들의 돌격은 장엄 그 자체로 묘사가 된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 바로 그 죽음의 공포 한 가운데 바로 지고한 아름다운 숭고함이 인간의 이해와 상상을 초월한 상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자, 이제 융의 분석 심리적 전쟁에 대한 고찰은 잠시 뒤로 하고 현실의 세계로 돌아가 보자. 미국의 제어할 수 없는 총기문화를 저자는 ‘만들어진 전통’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미국의 건국과 더불어 총기문화가 미국사회에 뿌리를 내렸다고 총기옹호론자들은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 미국 내에 총기문화가 자리 잡은 건 19세기 남북전쟁을 통해서였다. 수많은 청년들이 전쟁에서 무기를 직접 다뤘었고, 총기에 의한 폭력이 일상화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미디어를 통해 방송되는 섹스와 폭력적인 이미지 때문에 폭력적인 행동을 낳는다는 주장에 대해 제임스 힐먼은 구체적인 연구 결과를 들어가면서 반박한다. 텔레비전 같은 영상매체가 없었던 미국 독립초기의 식민주의자들이나 고대의 전사들이 현대인들보다 덜 폭력적이었던가? 폭력적 비디오 게임이라고는 생전 구경도 채 하지 못한 아프리카의 소년병들의 잔혹행위에 대한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종교는 전쟁이다’라는 명제로 귀결을 짓는다. 신화의 신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지만, 종교는 다르다. 특히 유일신을 믿는 종교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뿌리가 하나인 기독교,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필연적으로 상대의 존재를 인정할 수가 없었다. “모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전쟁”이었다는 1차 세계대전에서 적대하는 양 진영의 병사들이 모두 같은 이름의 하나님을 외치면서 죽이고 죽어갔다.

지구상에서 가장 기독교적인 국가인 미국의 예는 또 어떠한가. 많은 이들이 호주가 영국의 유형수들이 건국한 나라라고 알고 있지만, 미국의 역사 또한 만만치 않다. 한나 아렌트의 언급대로 폭력은 수단에 좌우되지만 우선적으로 그 충동을 필요로 한다. 기독교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대로 일신교적 축자주의에 근거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한 아마겟돈이 그 해답이 될 것이다.

우리의 전쟁에 대한 입장은 모순 그 자체이다. 전쟁이 가져다주는 죽음과 파괴에 대해서는 혐오하면서도, 전쟁터에서 피어나는 남녀 간의 사랑 그 이상이라는 전우애(comradeship) 같은 숭고미 혹은 그 전쟁의 일상성을 받아들이는 입장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힐먼의 주장대로, 전쟁의 신과 미의 여신이 공존하는 원형의 틀(patterns) 속에서 전쟁의 심층 심리에 대한 이러한 신화, 철학 그리고 신학적 접근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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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 하룻밤의 지식여행 41
리우스 지음, 윤길순 옮김 / 김영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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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 십년 전에 영어로 된 멕시코 출신의 만화가 리우스가 그린 마르크스 입문서를 만난 적이 있었다. 그 때 다 읽었던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얼마 전에 헌책방에 갔다가 다시 리우스가 그린 쿠바혁명과 체 게바라에 대한 책을 접하게 되면서 리우스에 대한 관심이 증폭됐다. 바로 인터넷을 이용해서 알아보니 비교적 최근인 올해 초에 김영사를 통해 하룻밤에 지식여행이라는 이름으로 <마르크스> 개설서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미 그전에 <플라톤>과 <헤겔> 그리고 <융>을 이 시리즈를 통해 본 적이 있어서 선뜻 구매를 했다.

저자인 리우스의 표현대로 초등학교 5학년 정도의 수준이면 볼 수 있다는 말에 현혹이 되어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역시 사회과학의 대가인 마르크스의 저작들이 본격적으로 소개가 되면서 머리가 아파왔다.

여느 마르크스를 다룬 책처럼 그의 일생에 대한 소개로 시작을 한다. 유대계 독일 출신으로 아버지 대에서 기독교로 개종을 하면서 유대교와는 단절된 삶을 살았다. 본대학과 베를린대학에 수학하면서 본래 법학 전공으로 시작을 했지만, 철학 쪽으로 방향 전환을 하게 된다. 사상적으로 헤겔 좌파의 영향을 받아, 헤겔의 관념론을 배척하고 그의 변증법과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받아 들여 자신의 사상의 기초로 삼게 된다.

그 후, 파리 망명시절 프랑스의 여러 사상가들 푸리에, 생시몽 그리고 프루동 등의 영향을 받아 자신의 철학적 체계를 가다듬는다. 하지만, 역시 그의 삶 가운데 있어 가장 최고의 만남은 평생지기가 된 프리드리히 엥겔스와의 만남이었다. 경제적으로 평생 가난했던, 마르크스의 경제적 후원자이자 사상적 동지로써 마르크스 사후 그가 미발표한 저작들을 편집해서 세상에 내놓게 되는 역할도 맡게 되는 엥겔스와의 조우는 마르크스 인생의 가장 큰 행운이 아니었을까.

리우스는 마르크스주의를 다음의 세 가지로 크게 분류한다. 첫 번째로 마르크스의 철학, 두 번째로 경제이론 그리고 마지막으로 역사적 유물론이 그것이다. 마르크스는 철학적으로 세상의 존재들이 불변한다는 형이상학과 기계론적 사고에 의문을 품으면서, 그 대안적 방법론으로 변증법을 채용한다. 그의 생각에 의하면, 세상과 그 세상에 사는 인간들은 항상 변화발전이 가능한 동적 요인들이었다. 헤겔이 제시한 방법론 가운데 변증법과 관념론을 배격하는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에서 마르크스는 변증법적 유물론을 도출해 내기에 이른다.

두 번째 경제이론에 있어 그는 18세기 산업혁명 이래 등장하게 된 새로운 계급인 부르주아지와 그들에게 노동을 제공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을 역사발전의 원동력으로 규정한다. 독일 철학, 영국 정치경제학 그리고 프랑스 사회주의를 연구를 통해 노동 대 자본의 대립쌍(아마도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서 기원한)에서 유추한 경제적인 문제에 자신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자본가들은 자본, 화폐 그리고 지대를 소유하면서, 노동자들의 노동을 시간단위로 구매하면서 창출해낸 잉여가치를 독점하면서 착취의 순환구조를 통해 이윤의 극대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1848년에 발표된 <공산당 선언>을 통해 모든 노동자들이 단결해서 투쟁, 궁극적으로 정치투쟁에 나설 것을 주문하고 있다. 아울러 착취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원인을 사유재산제의 존재에 두고, 소유관계의 혁신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가정에서도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간의 생산관계로 규정하면서 뛰어난 선견지명을 보여 주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역사적 유물론을 통해서는 인간의 역사를 생산양식에 의거한 5가지로 분류한다. 원시 공산주의 사회, 노예제 사회, 봉건제 사회, 자본주의 사회, 그리고 마지막으로 공산주의 사회가 그것이다. 근대사회에 들어서기 전 단계인 봉건제 사회에서 기존의 사회질서에 반대한 부르주아지 혁명으로 본격적인 자본주의 사회가 도래하게 되는데, 이는 자본을 소유한 부르주아지들이 보다 자유로운 경제활동과 노동 밖에는 소유하지 못한 농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기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분석한다.

부르주아지 혁명과 거의 동시에 진행된 산업혁명은 산업의 기계화와 더불어 생산양식의 비약적인 발전을 불러일으키면서 비로소 본격적인 자본주의 사회의 발전 단계에 돌입하게 된다. 이 가운데, 자본주의 사회 하에서 계급투쟁이란 불가피한 역사 발전의 과정이라는 것을 마르크스는 역설한다. 이 자본주의 시스템은 자본가들의 내적 모순에 의해 붕괴하게 되고, 이에 대비해서 노동자들이 각성을 통해 정치적으로 조직화해야 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역사적 유물론의 핵심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다.

1989년 구소련을 위시한 공산주의 블록이 붕괴하면서, 지난 세기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결은 자본주의 승리로 귀결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올해 전 세계를 강타한 금융위기는 마르크스가 19세기에 이미 지적한 대로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경제적 모순들의 현현(顯現)이었다. 실물경제에 기반을 두지 않은 채, 통제되지 않은 금융자본의 투기와 시장자본주의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리라는 맹목적 믿음은 1929년 대공황 이래 최악의 경제위기를 불러 일으켰다. 이미 대공황기의 총체적 난국의 극복을 위해 케인스의 수정자본주의가 대두한 이래, 시장의 논리에 의해 자본주의를 통제하지 말라는 구호는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물론 마르크스의 사상들이 현재의 시대정신에 부합하지 않다는 지적과 여러 가지 오류들을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철저하게 휴머니즘에 바탕을 둔 그의 역사적 유물론과 계급투쟁, 역사발전 이론 그리고 페미니즘 이론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마르크스에 대한 입문서로 이보다 더 좋은 책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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