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신윤복
백금남 지음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사실을 가지고 쓰는 팩션이란 장르는 매우 유혹적이면서도, 한편으론 자신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양날의 칼 같은 느낌이다. 얼마 전, 읽었던 로버트 해리스의 <임페리움>의 경우에 마르쿠스 키케로의 생애를 그리면서 작가의 내공이 느껴질 정도의 치밀한 고증이 상상에 날개를 달아주었었다. 자, 그렇다면 오늘 이야기할 <소설 신윤복>의 경우는 어떨까?

2008년 문화계를 휩쓸고 있는 키워드는 바로 신윤복이다. 텔레비전에서는 <바람의 화원>이, 영화에서는 <미인도>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어떻게 보면 시류에 편승하는 면도 없지 않아 있지만 서로의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나름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은 것 같다. 조선 후기 문화의 르네상스 시기였다는 영정조 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표암 강세황, 단원 김홍도 그리고 혜원 신윤복의 일대기가 백금남 씨의 구성에 의해 재탄생되었다.

궁금한 것은 이 소설의 핵심을 이루는 강세황-김홍도 그리고 신윤복의 관계가 정말로 큰스승-스승 그리고 제자의 관계였냐는 것인데, 아마 책의 제목에 붙어 있는 대로 “소설”이라는 단어가 이런 논쟁을 슬쩍 비켜나게 해주지 않았나 하는 추론을 해본다. 영조 대에 사도세자와 더불어 풍류를 즐겼던 강세황은 장차 보위를 이을 세자의 총기를 흐리게 하는 환쟁이라는 누명을 쓰고 영조 앞에서 진검승부를 펼쳐 보이게 된다. 그의 출중한 실력에 감탄하는 영조는 그에게 벼슬을 제수하고자 하나, 강세황은 짐짓 사양한다.

중국 남종화의 영향을 받은 강세황은 사실보다는 마음을 그려야 한다는 전통적인 문인화의 입장을 고수하면서 시서화(詩書畵)의 조화를 이루고 먼저 예인(藝人)은 인격을 수양해야 한다는 생각을 견지하며 제자들에게 가르친다. 단원은 그 스승의 도를 깨우치고, 풍속화를 그리면서도 속기(俗氣)를 배제한 자신만의 일가를 이루어간다. 반면, 역시 강세황과 스승 단원으로부터 그 뛰어난 재기를 인정받지만, 춘화를 그렸다는 누명을 쓰고 억울한 죽음을 당한 아버지와 몰락한 집안의 한을 그대로 이어받은 혜원은 직접적인 사물을 묘사하고, 당시 지배층이던 사대부 양반들의 위선을 폭로하는 그림들을 그려낸다.

시대정신의 발로인지 절대군주 정조가 그렇게도 싫어하던 춘화들은 민간에서 계속해서 범람하고, 걷잡을 수 없을 수준에 다다른다. 한편, 단원은 자신의 제자 윤복에게 한(恨)을 가르치기 위해 최북 선생에게 애제자를 의탁한다. 스승 단원은 서치홍포, 쥐와 무가 그려진 그림을 불가에서 화두(話頭)를 던져 주듯이 내주며, 쥐와 무외에 다른 그림이 있다는 언질을 주며 윤복에게 깨달음을 얻으라고 주문한다.

무아(無我)의 경지에서 일가의 도를 깨우치기 위해 정진하는 표암이나 단원과는 달리 끓어오르는 젊음과 가족의 한에서 비롯된 정념을 안고 사는 윤복에게 그림은 유일한 탈출구였다. 게다가 집안이 몰락하면서 어쩔 수 없이 기녀가 된 누이와, 어려서부터 정분을 나누던 애인 송이와의 만남으로 빚어지는 상황 앞에서 윤복은 화원에서 그림만 그릴 수가 없었다. 결국 임금조차 말릴 수 없었던 윤복의 일탈이 시작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제는 더 이상 읽지 않게 된 ‘이문열’의 <금시조>가 떠올랐다. 그 글에 보면, 그림에 일가견이 있는 고죽을 그의 스승 석담 선생이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비인부전(非人不傳:사람이 아니면 전하지 않겠다)의 왕희지의 일화가 <소설 신윤복>에서도 반복됨을 느꼈다. 옛 선인들은 그림을 그리는 재주보다도 서권기(書卷氣), 문자향(文字香)으로 대변되는 서화의 정신으로 쳤다. 그런 점에서 신윤복은 기예는 뛰어나지만, 서화의 정수에 득도하지 못하고, 지나친 속기가 그의 기예마저 망친다는 표암의 주장에 공감이 간다.

팩션이 가진 장점 중의 하나는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을 가지고, 그 사실 중에 빠진 부분들에 작가의 상상력을 채워 넣는다는 점이다. 신윤복의 생애도 그가 그린 그림들 말고는 상당 부분에 물음표가 찍혀져 있다. 작가의 입장에서 이렇게 좋은 소재가 또 있을까 싶다. 그러니 텔레비전이나 영화에서는 심지어 그가 여자라는 주장까지도 하지 않는가 말이다. 하지만 <소설 신윤복>에서는 불가한 이야기다. 조선조 여성성을 그리기 위해서라도 그의 존재는 반드시 “열혈대장부”여야만 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바람의 화원>과 <미인도>의 대척점에 서 있다.

등장인물들의 세부묘사와 곳곳에 포진해 있는 지금도 볼 수 있는 그림들에 대한 설명들의 조화는 팩션 장르가 가진 장점을 만개해 주었다. 하지만 팩션에서 더 나아가 김홍도가 일본에 건너가 우키요에의 대가를 이룬 도슈샤이 샤라쿠라는 주장은 너무 많이 나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철저하게 고증에 근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윤복의 사형으로 등장하는 김득신의 경우에는 17세기에 살았던 이로 화적 떼에게 살해된 김득신과 화가 김득신 동명이인을 한 사람으로 만드는 오류를 범했다. 이것은 명백한 실수인데, 작가가 어떻게 대답할지 못내 궁금하다.

그리고 김응환과 단원이 일본 지도를 그려 오라는 정조 임금의 명을 받고 대마도에서 일생을 마쳤다고 하는데, 네이버의 백과사전에서는 부산에서 죽었다고 나온다. 그 외의 연풍현감 발령 등의 시간적 구성에서도 역사적 사실과는 많은 차이점들을 보여 주고 있다. 물론, 전가보도의 무기처럼 이 책은 “소설”이다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겠지만 말이다.

인간사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처럼 애증으로 점철된 관계도 또 없을 것이다. 스승에게 배우지만 스승의 그림자를 뛰어 넘어야 하는 것처럼 어려우면서도 반드시 이루어야하만 하는 일도 드물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들이, 청출어람의 고사처럼 문화와 예술의 지속적인 발전을 담보하는 정수일 것이다. 회화가 품고 있는 정신세계의 구현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현현시키겠다는 아티스트로서의 자긍심의 충돌은 불가피했다. 그 고통의 순간, 혜원은 궁극의 깨달음을 얻으면서 자신의 필생의 역작을 탄생시킨다. 지은이가 표현한 대로, “조선의 아름다움”을 그려낸다.

책을 읽으면서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확실히 재밌는 책이긴 하지만, 팩션 장르에서 주는 즐거움만큼이나 무언가 부족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역사적 사실에 대한 보다 철저한 고증의 부족과 연대기적 시간 구성의 결여에서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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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번째 책이야기 <국화와 칼> _ 을유문화사



북스토리 (http://www.bookstory.kr)

Photo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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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단 모집기간 : 2008년 12월 3일 수요일 ~ 2008년 12월 10일 수요일 (8일간)
◆ 모집인원 : 10명
◆ 서평단 발표일 : 12월 11일 목요일 (북스토리 홈페이지 -> 서평마을 -> 서평단 공지사항 참조)
◆ 서평작성기간 : 12월 15일 ~ 12월 29일(책수령후 평균 2주 이내)


국화와 칼 (을유문화사) / 루스베네딕트 (지음)
국화(평화)를 사랑하면서도 칼(전쟁)을 숭상하는 일본인의 이중성을 해부한 책.1946년,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 여사가 미 국무부의 의뢰를 받아 2년 간의 자료 수집과 연구 끝에 내놓은 이 일본 문화 연구서는 서구인이 결코 이해할 수 없었던 일본인의 '이중성'을 연구 주제로 삼고 있다.
적국을 현지답사할 수 없었던 베네딕트는 일본에 관한 기존 연구서와 2차문헌을 폭넓게 독파하고, 소설과 같은 문학적 자료들과 전시 선전용 영화까지 섭렵해 인류학적 데이터를 추출했다. 일본을 방문하지 않고 객관적인 입장을 유지하면서 일본문화의 핵심을 지적해낸 이 책은 일본을 이해하는 고전으로 자리하고 있다. 

◆ 참가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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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서평단 가입 게시판에 "국화와 칼 서평단 신청합니다."라고 써주시고 간단한 서평단 가입의도를 적어주시면 됩니다.
3.자신의 블로그에 서평단 모집 이벤트를 스크랩(복사, 카피)해서 꼭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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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단 선정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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옵션 : 블로그를 여러개 가지고 계신 분들은 제약 없이 포스팅 하셔도 됩니다. 
많은 블로그, 카페에 게시하시면 높은 점수를 얻으실 수 있습니다.

◆ 도움주실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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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세계사 - 지금의 세계지도와 역사를 결정한 59가지 전쟁 이야기
김성남 지음, 진선규 그림 / 뜨인돌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전쟁이란 무엇일까? 독일의 유명한 군사전문가인 클라우제비츠에 의하면 전쟁은 고도의 정치적인 행동이라고 한다. 정치적으로 도저히 해결이 되지 않았을 때, 최후의 방법으로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 그 유명한 손자병법의 저자인 손자도,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것이야말로 상책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인류사에서 전쟁은 필요악처럼 그렇게 존재해 온 것도 사실이다. 김성남 씨가 글을 쓰고, 진선규 씨의 멋들어진 일러스트가 수를 놓고 있는 <전쟁세계사>에는 표지에 나오는 타이틀대로 “지금의 세계지도와 역사를 결정한 59가지 전쟁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제1장에서는 전쟁을 하는 사람들이라는 부제로, 전쟁터에서 뛰어는 모습을 보여 주었던 전사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 중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에피소드는 테베의 150쌍의 동성연애자들로 구성된 신성군단 이야기와 바이킹의 광전사(狂戰士) 베르세르크가 광대버섯에 들어있는 암페타민 다시 말해 각성제를 먹고 전장에서 그렇게 미친 듯이 흥분해서 날뛰었다는 가설이었다. 테베의 동성애자들로 구성된 신성군단은 그런 끈끈한 유대감(?)을 바탕으로 당시 최강의 육군으로 불리던 스파르타군을 대파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단다. 아무래도 전사 개개인의 개별 능력이 중시되는 고대의 전투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던 전사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다음 장에서는 전쟁 도구와 기술의 발달사를 그리고 있는데, 역시 뭐니 뭐니 해도 고대 최강의 무기는 로마군의 제식 병기로 에스파냐에서 생산된 철로 만들어진 단검 글라디우스와 7세기 중반 칼리니코스가 발명했다는 동로마제국의 비밀병기 “그리스의 불”이었다. 단순한 운동에너지를 전달하는 타격 무기로서의 검의 기능성에 찌르기를 겸한 글라디우스는 로마가 지중해 세계를 제패하고 팍스 로마나를 건설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핵심 무기였다. “그리스의 불”은 당시 욱일승천하던 이슬람 아랍군의 콘스탄티노플 공방전에서(717-8) 동로마 제국을 위기에서 모면하게 하는데 있어서 최고의 수훈을 세우기도 했다. 물론 이런 기술들은 훗날 개발된 기관총 같은 대량살상무기에 비교할 순 없겠지만, 당시의 기술력으로 보았을 때 전세를 뒤집을 만한 첨단기술이었다.

이 책이 다른 전쟁을 다룬 책들과 변별이 되는 특징 중의 하나는 작가가 역사 속의 전쟁에서 어떻게 보면 비중 없이 다루어졌을 일반 병사들의 시점에서 종군기를 작성했다는 점이다. 특히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왕의 동방 원정을 따라 출정한 밀로스의 가상 일기는 인상적이었다. 변변한 장비도 갖추지 않은 채, 끝없는 알렉산드로스 왕의 원정에 신물을 내면서도 전투에서 이기고 약탈로 한몫 챙기겠다는 병사의 상상에서 당시 전쟁의 양상을 그려볼 수가 있었다. 아주 참신한 아이디어였던 것 같다.

역시 전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웅들의 일대기 중에서는 동로마 제국의 명장으로 유스티아누스를 보좌한 벨리사리우스와 나폴레옹에 대해 폄하하기 위해 숙적 영국의 매스 미디어에서 나폴레옹이 단신이었다는 프로파간다가 눈길을 잡았다. 동로마 제국의 기초를 닦은 유스티아누스였지만 명장 벨리사리우스를 계속해서 기용하면서도, 혹시나 그가 역심을 품고 황제의 자리를 찬탈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에, 카르타고와 이탈리아 원정에서 대성공을 거둔 벨리사리우스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여 주지 못하는 모습에서 황제와 뛰어난 장군간의 조화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됐다. 역시 프랑스 대혁명 이래, 전 유럽을 휩쓸었던 나폴레옹을 의도적으로 깎아 내리기 위해 그의 키가 작았다는 주장을 내놓은 영국의 매스 미디어들의 선전전 덕분에 아직까지도 나폴레옹에 대한 이미지 훼손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마지막으로 인류사에 있어서 큰 획을 그은 전쟁들을 다루고 있는데 아마 무엇보다도 서방과 동방의 첫 대결이자 이후에 역사를 가른 페르시아 전쟁 당시의 테르모필레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을 저자는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 전쟁의 승리로 인해 그리스 문명 세계가 독자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주의 승리 운운하는 것은 좀 지나친 도약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지상전을 맡았던 스파르타는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전제주의 제도를 가지고 있었고, 민주주의 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 아테네 역시 극도로 억제된 신분에 의한 민주주의를 운영하고 있었다. 어찌됐던, 페르시아의 침공 실패로 그리스 문명은 기사회생하게 되면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 건 사실이다.

13세기 코레즘제국을 초토화시키고, 계속해서 이슬람 세계를 향해 파죽지세의 진군을 하던 몽골군은 지금의 팔레스타인 부근의 아인잘루트에서 이집트와 시리아 맘루크들의 연합군을 상대하게 된다. 그동안 시리아와 이집트의 맘루크들은 중동의 패권을 두고 다퉈 왔지만, 몽골의 위협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연합하게 된다. 한편, 훌라구가 이끄는 몽골군의 주력은 대칸[大汗]을 위한 쿠릴타이를 위해 몽골로 돌아가고, 키트보가가 이끄는 잔여 병력은 맘루크 연합군의 매복에 걸려 전멸하고 만다. 이슬람 세계를 무적의 몽골군으로부터 지켜낸 이 전투에 대해 모르고 있어서 그런지 짧지만, 인상적인 에피소드였다.

전반적으로 책의 구성을 보았을 때, 참신한 시도들과 조화를 이루면서 책 읽기에 부담이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개설서적인 의도로 편집이 되어서 그런진 몰라도 깊이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도 무엇보다 좋았던 일러스트레이터 진선규 씨가 그린 일러스트들로 유머가 배어 있으면서도 적재적소에 배치한 일러스트들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제 막 세계에 유서 깊은 전쟁들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이들을 위한 입문서로서 제격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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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키 서울 브라보 대한민국 - 20세기 한국을 읽는 25가지 풍속 키워드
손성진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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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서울신문사 기자 출신의 손성진 씨가 지난 우리네 삶의 흔적들을 담은 책 <럭키 서울 브라보 대한민국>의 키워드는 바로 정(情)이었다. 이제는 그 자취조차 찾을 수 없는 쫀드기, 뽑기 같은 불량식품 먹거리에서부터 시작을 해서 박가분-구리모 그리고 흑백텔레비전에 이르기까지 지난 20세기 대한민국 풍속사의 변천을 자세하게 그려냈다.

지난 세기 후반, 당시 지상과제였던 경제발전은 전근대적이었던 우리네 삶의 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버렸다. 동시에 어쩌면 그 당시 우리가 가지고 있던 정서들도 그 삶의 모습들과 함께 사라져 버리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아무래도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던 어린 시절의 불량식품 이야기들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책을 보다 말고, 교직에 계셨던 어머니에게 물어 보면서 기억이 나지 않거나 하는 부분들에 대해 보강 설명을 들을 수가 있었다.

가령 쫀드기나 뽑기 같은 불량식품의 경우에는 개인적으로 직접 체험해 보았으니 안다고 하더라도, 송충이 잡기나 쥐를 잡아서 쥐꼬리 잘라오기 같은 숙제는 알 수가 없었는데 어머니가 상세한 설명을 달아 주셔서 이해가 쉽게 갔다. 풀빵, 붕어빵 그리고 국화빵이 모두 한 형제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 수가 있었다.

두 번째 이야기인 트렌드세터 에피소드들 가운데서는 장발, 미니스커트 그리고 통금이라는 주제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70년대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가 판을 치던 가운데, 독재의 영속화를 위협한 것은 바로 젊은이들의 자유정신이었다. 고등학교 시절까지 억압받아온 젊은 영혼들은 남자들은 장발, 그리고 여자들은 복장으로 자신들의 시대정신을 표현해냈다. 하지만 독재정권 답게, 억압적으로 이런 시대정신을 억누르려는 사고는 공권력을 동원해서 단속해서 결국에는 즉심, 입건 심지어는 구속에 이르기까지 했다. 그렇게 입으로는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면서도, 국민들의 기본권마저 침해하는 전근대적인 사고발상이 애처롭기까지 했다. 통금 역시 미군정과 한국전쟁으로 장장 37년간이나 시민들의 자유를 옥죄어왔다. 유년 시절의 기억을 되돌아보면, 통금 단속에 걸리지 않기 위해 통금 사이렌이 울리면 황급하게 귀가하던 어른들이 담벼락에 찰싹 달라붙어서 마치 스파이더맨마냥 슬금슬금 집으로 향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통기타와 포크송이 주류를 이루던 70년대 음악계 이야기 역시 매력적이었다. 그 시절 오디오는 정말 귀한 아이템이었다. 실용을 추구하던 우리 부모님에게 오디오 컴포넌트는 꼭 필요한 물건이 아니었기 때문에 항상 뒷전으로 밀리기 마련이었다. 아마 그 시절에 지금과 같은 홈시어터 시스템을 구축할 수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다. 하긴 그 시절에는 조그만 카세트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해 하던 시절이었으니까.

금지곡에 얽힌 이야기들은 역시 정치와 관련되어져서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해서 해외의 수많은 명곡들을 접할 수가 없었다. 유신독재 정권 아래 사는 모든 사람들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행복해야만 했는지, 레드컴플렉스 때문에 ‘붉은’이란 단어에 극도의 히스테리컬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었다. 표지에 공산당의 시조라 할 수 있는 마르크스의 얼굴이 들어가 있는 비틀즈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음반도 통째로 금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은이가 정말 하고 싶은 말들은 그게 아니었다. 비록 가난하고 못 먹고, 못 입고 그렇게 어려운 시절이었었지만 그래도 그 시절에는 사람냄새가 나는 삶이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하지만 고도의 경제발전과 더불어 진행된 핵가족화, 개인주의는 기존의 그런 공동체적인 우리 전통의 삶의 형태마저 송두리째 앗아가 버렸다는 것이다.

없는 것 없이 모두 갖춰진 현대적 삶은 그 시절의 정(情)을 담보하지 않는다. 물질적으로 이렇게 풍요로워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네 정신은 날로 피폐해져 가는 것만 같다. 우리보다 반세기 전에 이미 이런 물질주의와 소비주의가 인생에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서구인들의 깨달음에, 우리는 이제서야 조금씩 접근해 가고 있는게 아닐까. 한 세기에 걸친 옛 시절에 대한 풍속여행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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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고전을 읽는가
이탈로 칼비노 지음, 이소연 옮김 / 민음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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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의 <의천도룡기>에 보면 무당파의 장문인인 장삼봉이 큰 위기 가운데 사랑하는 제자의 아들 장무기에게 태극권의 비결을 알려 주는 장면이 나온다. 장삼봉은 태극권을 시전하고 나서, 장무기에게 얼마나 깨달았느냐고 묻는데 장무기는 시전이 거듭될수록 점점 더 잊어 먹는다는 대답만을 한다. 이제 막 읽은 이탈로 칼비노의 <왜 고전을 읽는가>를 완독하고 나서 든 나의 느낌이 그랬다.

이탈리아가 배출한 뛰어난 문인인 이탈로 칼비노가 자신이 선정한 서양 문학의 고금을 아우르는 작품들에 대해 저술한 다양한 글들을 모은 <왜 고전을 읽는가>는 오늘날 고전을 읽고자 하는 이들에게 많은 것을 제시해 주고 있다. 본격적인 책에 대한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선 이 책을 나름 쉽게 보았다가 낭패를 당한 이의 기록이자 개인적으로 그동안 얼마나 고전과 담을 쌓고 살았는지에 대해 처절하게 반성을 하게 되었다는 점을 미리 밝혀 두고자 한다.

먼저 칼비노는 책의 머리에서 <왜 고전을 읽는가>라는 짧은 에세이에 대해 우리가 읽어야만(물론 전혀 그런 당위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는 고전들에 대한 개인의 고견을 피력하고 있다. 그의 의견에 의하면 우리는 고전을 “읽는다”가 아니라, 항상 “다시 읽고 있다”라는 표현으로 자신의 고전에 대한 허풍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사실 오늘날처럼 수많은 신간들과 정보가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평생이 걸려도 가능하지 못할 고전들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고전(古典)에 대한 정의가 라틴어 클라시쿠스(classicus)에서 기원한 클래식(classic) 즉 다시 말해 무조건 오래되서 좋은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물론 이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어야겠지만, 전적으로 칼비노의 의견에 동의하는 바다. 개인적으로 근현대에 나온 작품이라고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소중한 경험과 특별한 영향력을 미친 작품이라면 응당 고전의 범주에 무난하다고 생각을 한다.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 작고한 김소진 작가의 “신풍근 배커리 약사” 같은 작품은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이 된다.

그의 주장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의 하나는 바로 고전을 읽으면서, 독자 스스로가 작품 자체를 바꿀 수도 그리고 바꾸어 나갈 수도 있다고 가정한 부분이었다. 미처 읽지 못한 책들이라도 어디선가 본 것 같은 데자뷰를 제공해 주고, 또 읽었던 책이라면 또 새로운 경지를 제공해 줄 수 있는 특별한 나만의 책을 만들어내는 경험이란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는 소중한 독서의 체험이 아니던가 말이다.

고전과의 만남을 통해 그 구조를 파악하고, 인류 역사를 통해 설정되어져온 규정들을 체험하며 언젠가는 그 고전들로 채워진 나만의 서가를 꿈꾸는 것은 독서인 모두의 꿈이 아닐까 상상해 볼 수가 있었다.

그 외에 모두 해서 35편의 글들을 통해 호메로스의 인류 시초의 원초적 모험기 <오디세이아>로 시작을 해서 현대 작가인 체사레 파베세의 인류학과 민속신화학을 아우르는 인간 희생 제의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 군들을 만나게 된다. 칼비노의 인류의 문화사 전반에 걸친 예리한 분석과 시공을 초월하는 공력 앞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여 독서를 해서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시샘마저 들었다.

사실 그가 이 책 <왜 고전을 읽는가>를 통해 소개해 주는 많은 고전들을 간접적으로 접하면서 미처 내가 모르고 있는 방대한 양의 고전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또 어떤 책들은 예전에 읽었어도 채 망각 속으로 사그라지어 버린 책들이 많았으며, 대부분의 책들은 국내에 소개가 채 되지 않아 접하고 싶어도 접할 수가 없는 책들도 있었다. 특히 그가 찰스 디킨스의 작품 중에서 최고로 꼽았던 <우리 서로의 친구>의 경우에는 번역되어 출간되지 않았다는 점이 너무나 아쉬웠다.

칼비노가 흠모해 마지않는 아리오스토의 <광란의 오를란도>는 현대 영화가 가시는 가시성과 영화편집의 요소들을 들어가며 비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더 나아가 중세를 지배해 왔던 프톨레마이오스적인 닫힌 우주관에 반대해서, 열린 시공간을 지향하는 패러다임에 대한 분석은 경이와 찬사를 보낼만하다. 물론 매력적인 이야기와 플롯의 구성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 물리시간에 어렴풋이 들었던 갈릴레오의 <프톨레마이오스와 코페르니쿠스의 두 가지 주요 세계관에 관한 대화>에서는 보다 심오한 주제들을 다루고 있었다. 특히 그 가운데서도 알파벳이라는 기호를 통해 인류의 귀중한 정보들을 동시대인들과 소통할 수 있고 또 후세에도 전달할 수 있는 창조물이라는 그의 주장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철학적 사고의 정수였다. 또한 알파벳은 운동과 변화의 근본 요소로서도 작용할 수 있다는 생각은 코페르니쿠스적인 사고의 전환이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을 통해 다시 인식하게 된 스탕달, 발자크 그리고 디킨스의 작품들과의 조우는 최근의 독서를 하는 가운데 느꼈던 최고의 즐거움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으로 비롯된 뜨거운 혁명의 기운이 대륙에 가득했던 시기의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스탕달과 발자크의 작품들에 대한 진정한 매력들에 대해 희미하나마 맛을 보면서 원전을 읽고 싶다는 의욕을 칼비노는 사정없이 고취시키고 있었다. 디킨스는 발자크가 촉발한 공간적 서술 대상으로 도시가 지니고 있는 요소들에 더해, 입체적이면서도 다양한 인물 군을 추가하면서 산업사회로 전진해 나가고 있던 19세기 영국 사회의 초상을 그려내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

최근에 이 책에 소개된 고전들과 만나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던 차에 우연히, 이 책을 읽던 중에 마크 트웨인의 <해들리버그를 타락시킨 사나이>란 단편소설과 접하게 됐다. 칼비노의 쓴 적용을 통해 <해들리버그를 타락시킨 사나이>와 그 책의 저자 마크 트웨인을 재발견하는 소중한 경험을 하게 됐다. 19세기 청교도적인 도덕률로 무장한 ‘정직한’ 미국 시민사회의 위선과 탐욕을 사정없이 까발려 내면서, 자신의 조국이 그렇게 자랑해 마지않던 가치들을 조롱하기를 그치지 않았던 마크 트웨인의 적당한 중립주의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칼비노는 해들리버그를 엉망진창으로 만든 진짜 죄악은 어디에 있었는지 묻는 것으로 글을 마치고 있다.

물론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작품 설명과 레몽 크노의 철학을 다룬 글들은 거의 이해하지 못한 것도 부끄럽지만 사실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나의 내공이 칼비노의 그것에 한참 미치지 못함을 말이다.

칼비노의 <왜 고전을 읽는가>는 올해 내가 읽은 160번째 책이었다. 하지만 그 어느 책도 칼비노의 책처럼 나에게 이렇게 책읽기, 특히 고전에 대해 도전을 던져주었던 책은 없었던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다시 책읽기를 배운 소감이다. 단편적이긴 하지만 왜 어느 상황에서 세부묘사가 필요한가, 어느 특정한 공간의 설정이 어떤 상황에서 중요한가, 여전히 부족하지만 어떤 철학적 접근이 필요한가 등은 정말 소중한 체험이었다. 나도 칼비노가 말한 대로, 나만의 소중한 경험과 특별한 영향력을 가진 고전들을 갖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나의 이 첫 걸음은 발자크의 <고리오 영감>으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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