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드 블러드 : 벌거벗은 여왕님


우연히 실리콘밸리를 뒤흔든 희대의 사기꾼에 대한 콘텐츠를 접하게 됐다. 최근 테라-루나 스테이블코인 폭락 사태로 그 개발자가 제 2의 엘리자베스 홈즈가 아니냐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는데, 실물을 담보하지 않는 가상화폐가 얼마나 위험한 투기인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는 그런 시간들이 아닐 수 없다.

 

자고로 모든 비범한 기업의 성공에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법이다. 애플의 잡스 선생은 자신이 만든 회사에서 쫓겨났다가 다시 복귀해서 아이폰이라는 시대의 발명품으로 판을 뒤흔들어 버렸다. 그 시절에도 이미 많이 들은 말이지만, 아이폰이라는 게 모두 기존에 있던 기술을 짜깁기해서 만든 게 아니던가.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옛 말을 잡스 선생은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일론 머스크 역시 어린 시절에는 망상가라는 평을 들었지만, 잡스 선생의 뒤를 이어 잘 나가는 스타트업을 상징하는 사업가가 되었다. 여전히 코인 사기꾼인지 아니면 혁신의 아이콘 같은 사업가인지에 대해서는 엇갈리는 평이 있지만.

   


자 여기 엘리자베스 홈즈라는 인물이 넥스트 잡스 선생이 되기 위해 도전장을 날렸다. 잘 나가는 집안 출신이었지만, 부모 대에는 예전만 하지 못했다고 했던가. 사립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탠포드 대학 화학과에 진학한 홈즈는 19세의 나이에 훗날 테라노스가 되는 <리얼-타임 큐어즈>라는 스타트업을 설립했다.

 

그녀가 개발한 에디슨 키트는 너무나 혁신적이었다. 온갖 질병 검사를 하기 위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충분한 양의 혈액이 필요했는데, 어려서부터 채혈 공포증에 시달리던 홈즈는 핏 한 방울(아마 그거보다는 많이 필요하겠지)로 무려 250가지에 달하는 질병에 대한 검사를 할 수 있다는 에디슨 키트를 개발해냈다.

 

전세계 스타트업의 요람이라고 할 수 있는 실리콘밸리에서 비 유대계 젊은 백인 여성 CEO의 등장은 성공 서사를 위한 완벽한 충분조건이지 않았을까. 게다가 학벌도 스탠포드 중퇴라고 하지, 그야말로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구비된 성공 서사가 시작될 판이었다. 이런 획기적인 아이디어에 막대한 투자금이 테라노스에 몰리기 시작했다. 게다가 넥스트 잡스의 꿈을 키우던 홈즈는 어려서부터 경쟁심이 강했고, 억만장자가 되겠다는 자신의 오랜 꿈을 비로소 이루기 시작했다. 문제는 그게 정상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홈즈는 막대한 자금을 바탕으로 한 공격적 마케팅과 함께 모든 스타트업 선수들의 롤모델인 잡스 선생을 벤치마킹해서 검은색 터틀넥에 붉은 립스틱으로 무장하고 전 세계를 상대로 본격적인 사기를 치기 시작했다. 2013년 미국의 거대 약국 체인인 월그린과 제휴를 맺으면서 홈즈가 이끄는 테라노스는 한 때 10조원에 달하는 기업 가치를 자랑하기도 했다. 이런 투자금을 바탕으로 해서 진짜 기술 개발에 나섰더라면 좋았을 텐데 돈의 유혹에 눈이 먼 홈즈는 스타트업 기업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은 도외시하고 사기극을 계속해서 이어나갔다.

 

월스트릿저널 출신의 퓰리처상 수상기자인 존 캐리루 아저씨가 뉴요커에 실란 홈즈의 기사를 보면서 홈즈의 테라노스 제국에 대한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참 홈즈는 테라노스의 이사진을 헨리 키신저, 조지 슐치 그리고 제임스 매티스 같이 세계적으로 저명한 인사들로 채우면서 자신이 펼치는 사기극을 보다 더 신뢰할 만하게 꾸미는 데도 일조했다.

 

정밀한 의학 기기라면, 수년간 의과대학에서 연구를 거듭한 의사 출신이 맡아야 하는데 정작 홈즈에게는 그런 경험이 일천하다는 점에 의심을 품은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존 캐리루 작가가 탐사보도를 시작하면서 접촉한 전 테라노스 직원들이 엄격한 보안유지 각서 때문에 테라노스의 속사성을 외부에 알리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고 한다. 테라노스는 협박과 위협 그리고 해고로 이의를 제기하는 내부 직원들을 저격했다. 사실 이제 빌런이 된 홈즈를 상대로 막대한 소송비와 배상금까지 치를 지도 모를 그런 위험한 일에 나설 인물들은 없지 않았을까.

 

<배드 블러드>의 저자 존 캐리루는 아담 로젠도프(일명 앨런 빌)이나 타일러 슐츠 그리고 에리카 청 같은 양심적인 내부 고발자들의 도움으로 진실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숱한 방해에도 불구하고 20151016일 월스트릿저널에 존 캐리루가 테라노스 에디슨 키트에 대한 사실을 폭로하면서 홈즈 제국의 추락이 시작됐다. 2016년에는 FDA의 긴급 테라노스 실태조사, 2018년에는 미국증권거래 위원회의 고소로 홈즈가 테라노스 CEO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고, 테라노스는 상장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홈즈는 총 11개의 죄목으로 기소되었는데 대배심 평결에서 투자자들을 속인 4가지 죄목들은 모두 유죄 판정되었고, 4가지 환자를 기만한 죄들은 무죄를 나머지 3가지는 미결론으로 도출되었다. 홈즈는 존 캐리루가 자신에게 1억 달러 가까이 투자한 루퍼트 머독의 미디어 제국 가운데 하나인 월스트릿저널 소속이라는 사실을 알고 그의 탐사조사를 막아 달라고 했으나, 머독이 거절했다고 한다. 그런 걸 보면 머독도 악덕 사주는 아닌 듯.


홈즈의 경우에서처럼 사실이 아닌 것을 바탕으로 거짓말과 사기를 반복하다 보면, 그것이 진짜라고 믿어 버리게 되는가 싶기도 하다. 그리고 예전에는 권력으로 찍어 눌렀다면 새로운 세기에는 막대한 비용과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소송전으로 자신을 반대하는 이들을 제압하는 세련된 방식이 동원된다는 걸 이 케이스를 통해 깨닫게 되었다. 실제 타일러 슐츠는 테라노스를 상대로 한 소송전에서만 5억 원의 소송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그가 금수저 집안 출신이었으니 다행이지 보통 사람이었다면 감당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타일러 슐츠는 피 한 방울로 250가지 질병 검사를 해낼 수 있는 에디슨 키트 만큼이나, 레이건 행정부 시절 국무장관으로 활약한 자신의 할아버지와 연세 지슷한 이사진 양반들이 홈즈의 생일파티에서 노래를 부르고 오행시를 짓는 장면이 그렇게 비현실적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 진행형힌 테라-루나 사태 역시 마찬가지다. 그동안 시장에서 계속해서 경고등이 들어왔는데도 불구하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눈먼 투자자들이 단기이득을 노리고 부나방처럼 투전판에 뛰어든다는 이야기가 정말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았다.

 


<배드 블러드>에는 독자들이 호기심을 품을 만한 모든 요소들이 한가득이다. 19세 소녀가 살벌한 경쟁이 펼쳐지는 실리콘밸리에서 스타트업 기업을 설립해서, 저명한 경제기 <포브스>가 미국에서 가장 부자로 선정할 정도로 성공한 기업가가 되는 과정이 정말 드라마틱하지 않을까? 물론 기초가 없는 모래성을 쌓은 덕분에 성공만큼이나 몰라도 빨랐다. 화려한 성공만큼이나 몰락도 아찔했다. 최대 20년에 달하는 형량을 어떻게든 줄여 보기 위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낸 비즈니스 파트너이자 전 애인이었던 서니 발와니에 대한 폭로도 초현실적인 막장극의 완성도를 더 높여 주었다. 머독을 비롯한 숱한 투자자들이 막대한 금전적 손해를 입혔지만, 벌거벗은 여왕님은 여전히 캘리포니아의 1,700만 달러 짜리 대저택에서 호화롭게 지내고 있는 후속 보도는 또 어떤가.

 

간략하게 엘리자베스 홈즈의 사기극 <배드 블러드>를 다뤄 보았는데 곧 영화도 제작될 전망이고, 애플에서는 아만다 사이프리드 주연의 <드롭아웃>이라는 제목의 드라마가 최근 발표되었다. 과연 다른 미디어에서는 벌거벗은 여왕님이 어떻게 묘사되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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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05-19 1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영화로 제작되는 군요? <배드 블러드> 책으로 읽고 싶었는데
레삭매냐님 덕분에 진상을 어느정도 파악하게 되었네요.

확인도 없이 큰 돈을 투자한 투자자들...
일확천금에 대한 기대가 물증보다 강력한
확신이 되었을것 같아요

헨리 키신저 충격입니다.

레삭매냐 2022-05-19 14:22   좋아요 2 | URL
영화에서는 제니퍼 로렌스가
홈즈 역할을 맡는다고 하네요.

왜 이사진에 얼굴 마담들만
있고, 진짜 전문가들이 없는지
투자자들이 의문을 표하지 않
았을까요? 묻지마 투자의 대표
적인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키신저가 아직도 건재하다는 게
더 놀랍습니다.

sijifs 2022-05-19 12: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상당히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영화와 드라마 제작 소식이라니 나중에 개봉하면 꼭 봐야겠군요

레삭매냐 2022-05-19 14:23   좋아요 2 | URL
존 캐리루 작가가 퓰리처상
을 두 번이나 받은 이유를
절실하게 알려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전 우선 <드랍아웃>부터
볼 생각이랍니다.

mini74 2022-05-19 16: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앗 저도 이거 기사였나 어디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근데 이렇게 큰 사기를 친 사람들은 요즘은 이야기를 팔아서 또 부자가 되더라고요. ㅎㅎ 참 아이러니합니다. 사기도 크게 쳐야 되나봐요

레삭매냐 2022-05-19 17:42   좋아요 2 | URL
어느 기사에서 봤는데 횡령액이
100억 이상이면 백퍼 집행유예
라고 하더라구요.

그 이하는 실형이구요. 그니까
해먹으려면 왕창~! 해먹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봅니다.
 
그후의 삶
압둘라자크 구르나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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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너무 늦게 나온 노벨문학상 작가의 최신작. 탄자니아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새로운 언어로 작품활동을 시작한 압둘라자크 구르나 작가의 문학 여정에 동참하고자 한다. 별점은 아직 책을 만나 보지 못한 상태에서 중립적으로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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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을유세계문학전집 17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김현균 옮김 / 을유문화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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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모든 일에는 시작이 있는 법이다. 오래 전 을유문화사에서 새로운 문학전집 시리즈가 나온다 하여 잔뜩 기대를 했다. 그 중에서 나의 원픽은 듣도 보도 못한 칠레 출신 스페인 망명작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이라는 책이었다. 그 결과는 대박이었다. 이럴 수가 있나 그래. 그 때 아마 이 양반은 저 하늘의 별이 되었을 터인데, 고인이 구사하는 놀라울 정도로 뻔뻔한 블랙 코미디에 그만 뻑이 가 버렸다.


나중에 보니 이 작가가 미국에서도 대박이 났더라. 그러니까 요절한 작가라는 미국 독자들이 대환장하는 강력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데다, 그네들이 맛볼 수 없었는 독재문학이라는 신선한 장르를 무기로 삼아 아메리카 대륙을 공략하는데 성공했지 싶다. 무엇보다 영화 <나우 앤 씨>에선가 우디 해럴슨이 볼라뇨의 대표작이자 벽돌책 <야만스러운 탐정들>을 읽는 장면은 충격적이었다. 그래 미국에서도 이 정도란 말이지.


볼라뇨를 읽다 보면 알게 되겠지만, 나치와 2차 세계대전은 조국 칠레의 암담했던 상황 만큼이나 작가가 사랑하는 주제다. 이번에는 나치즘의 본토인 독일이 아닌 대서양 바다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서 발생한 자생적(?) 나치 추종자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코미디 드라마에 초점을 맞춘다. 볼라뇨의 이 백과사전식 파시스트 열전을 넷플릭스에서 만들어 주면 어떨까라는 작은 바람이 있다. 최근 넷플릭스가 전 세계의 이야기들을 모두 웹드라마로 만들 기세를 보면 볼라뇨의 작품들도 곧 영화화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스물스물 피어오른다.


첫 번째 나치 추종자로 등장하는 에델미라 톰슨 데 멘딜루세는 아메리카 대륙을 통틀어 나치의 대모 같은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부르주아 집안 출신의 재력을 바탕으로 시인과 문인 행세를 하며 계속해서 허섭쓰레기 같은 작품을 발표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어느 작가의 작품이 생명력을 얻어 계속해서 문학 세계라는 험난한 바다를 자력으로 항해할 수 있다는 더 바랄 게 없겠지만, 우리 책쟁이들이 알다시피 그러기에는 정말 쉽지 않은 게 바로 이 바닥의 생리다. 하지만, 또 에델미라 아줌마의 경우처럼 돈이 많다거나 지속적으로 파시스트 작가들의 문단활동을 후원할 수 있는 자금과 시간적 여유가 있다는 그건 또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이 유한마담의 자손들 역시 엄마와 비슷한 궤적을 그리게 된다. 참 그녀의 딸이 히틀러와 같이 찍은 사진을 두고두고 울궈 먹는다는 설정은 정말!


에델미라 같이 문단에서 활동한 인사들이 있다면, 이름은 까먹어 버렸지만(너무 많은 이들이 등장하다 보니 이름조차 다 외울 수가 없다, 부디 양해해 주시길) 콜롬비아 출신 영맨 시인들인 이그나시오 수비에타와 고메스 등은 아예 무장친위대로 변신해서 전장에 나선다. 세상에 다른 부대도 아니고 바펜 SS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 최정예 부대로 전투에 이기기 위해서라면 전쟁범죄도 마다하지 않았던 그런 극악의 부대가 아니었던가.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드디어 유럽에 상륙한 미군 부대들이 바펜 SS에 학을 뗀 나머지, 바펜 SS 출신 포로는 잡지 않겠다고 맹세를 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콜롬비아 출신 의용군 전사는 라틴 아메리카 출신으로 유일무이하게 히틀러에게 철십자훈장을 받을 정도로 순수 아리안족을 능가하는 출중한 전투력을 전장에서 보여준 바 있다. 개인적으로 이 서사가 과연 볼라뇨의 독창적 상상의 결과물인지 아니면,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의 소설적 변용인지가 사실 궁금했다.


그 동네의 걸출한 멕시코 출신 여성 지식인 이르마 카라스코에 대한 이야기는 또 어떤가. 카라스코의 작품 세계보다는 스탈린주의자로 알려진 건축가였던 남편 가비노 바레다와 있었던 ‘사랑과 전쟁’은 요즘 너튜브에서 대유행 중인 스케치 코미디 부부생활을 능가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스페인 내전에서 내셔널리스트 편에 서서 맹활약을 한 카라스코와 정치적으로 너무 달랐던 남편 바레다와의 결혼 생활은 어쩌면 시작부터 파국을 예고했던 게 아닐까. 빈번하게 발생하는 구타라는 이름의 도메스틱 바이얼런스에도 불구하고 이별과 재결합이 교차하는 희비극이 블랙 유머가 가미된 볼라뇨 스타일로 너울거린다.


개인적으로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에 등장하는 빌런 중에서 가장 문제적 캐릭터는 바로 아이티 출신(포르토프랭스)의 막스 미르발레가 아닐까 싶다. 글로 밥 벌어 먹고 살겠다는 이들은 자신에게 문재(文才)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바로 접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지 못하고, 다른 괴랄한 방식으로 얼치기 문학가라는 자신의 입지를 사수하려는 인물들이 다수 포진해 있는 문학계의 엄정한 현실을 볼라뇨는 예리하게 저격한다. 표절로 날아가 버렸다고 생각한 어느 작가가 문학이 주는 꿀을 포기할 수가 없어 다시 돌아온 장면을 보면서 이 동네가 거의 아수라판인지 절실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볼라뇨가 살아 있어서 우리네 문단에서 횡행하는 이 꼴을 알았다면 얼마나 신랄하게 깠을까. 그러지 못하고 여전히 상부상조하는 주례사 비평의 거품은 꺼지지 않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를 대표하는 파블로 네루다와 옥타비오 파스를 가차 없이 깠던 볼라뇨 정도의 패기를 지닌 비평가나 동업자들도 보이지 않는다는 게 더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또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막스 미르발레라는 문제적 사이비 작가는 출발부터 타인의 작품들을 표절했다. 그가 얼마나 교묘하게 표절을 했는지 심지어 원작자도 모를 정도였다고 했던가. 표절의 기술이 늘면서, 미르발레는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을 만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수집해서 자신이 개발한 극강의 표절 수법으로 새로운 작품을 창조해냈다. 오, 놀랍지 않는가 말이다. 미르발레가 얼마나 표절을 잘 했는지, 그의 눈부신 재능을 탐낸 이들이 표절 전문가의 표절작을 다시 한 번 표절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역시 무언가에 득도하게 되면, 윤리의식을 뛰어넘어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생산해 내게 되는 모양인가 보다. 뭐 이 정도라면 표절문학이라는 장르가 하나 생겨나도 무방하지 싶다.


대미를 장식하는 카를로스 라미레스 호프만 중위의 서사는 확장된 <먼 별>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지난주에 <먼 별>을 읽기 전에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에 수록된 부분을 먼저 읽고 <먼 별>을 주파했다. 주인공들의 이름이나 몇 가지 소소하게 달라진 부분들이 있었지만, 역시나 중편으로 개작하기에 충분히 넉넉한 공간들을 볼라뇨는 잘 활용해서 청어람 같은 작품을 생산해냈다. 이 또한 강력한 서사의 힘에 덧댄 게 아닐까 추정해 본다.


파시스트 작가 열전의 양식을 띠고 있는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의 구조는 건조하고 딱딱하다. 잊지 마시라, 볼라뇨가 얼마나 친절하지 않은 작가인지에 대해. 아메리카 대륙에 분포한 파시스트 작가들의 생몰연대를 기본적으로 다루면서 그들이 어떻게 성장하게 되었는지, 성장과정에서 파시즘에 서서히 물들어 가는 보통 사람들로서 그네들의 삶에 작가는 천착한다. 어느 누구도 태어나면서부터 괴물은 아니었다. 멘딜루세 패밀리만 보더라도, 멘딜루세 여사의 영향력 아래 자란 자녀들이 파시스트 작가로 걷게 될 미래가 빤히 보이지 않던가 말이다. 볼라뇨가 이 책에서 전달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누구나 파시즘에 경도된 몬스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확증편향과 보고 싶어 하는 사실만 보게 되는 진영 논리의 틀에 갇혀 나와 다른 이들과의 공존을 맹렬하게 거부하고 있지 않은가. 상대방이 옳고,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사고의 유연성이 필요한 시간이다. 나와 다름이 틀림이 아니라는 기본 명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주말에는 잠시 쉬었다가 다시 볼라뇨를 읽기 시작했다. 아욱실리오 라쿠투레가 등장하는 <부적>과 침술사 피에르 팽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팽 선생>을 동시에 읽고 있다. 이러다가 이야기가 헛갈리게 될 지도 모르겠다. 나의 5월 볼라뇨 읽기는 그렇게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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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5-16 17: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볼리뇨 도장깨기입니까 매냐님 ㅎㅎ 작가들 전작읽기 넘 좋아보입니다. *^^*

레삭매냐 2022-05-16 17:51   좋아요 2 | URL
거의 재독이라 그런지,
아주 술술 넘어가고 있답니다.

그러고 보니 <나치 문학>은 무려
삼독이었네요.

페넬로페 2022-05-16 18: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역시나 오늘도 로베르토 볼라뇨 작가의 매력을 뿜어 주시네요~~
칠레 출신이라 더 쓸 것이 많겠어요.
저도 도장깨기 중입니다^^
다른 책으로요~~

레삭매냐 2022-05-16 20:03   좋아요 3 | URL
그니깐요. 제가 오래 전 이 바닥
에 투신할 무렵에 작고하신 루
이스 세풀베다 샘의 책들을 넘나
좋아했었는데... 그 분도 가시고
다른 칠레 작가로 점 찍은 선수
가 바로 볼라뇨 되겠습니다.

책들이 많으니 선택의 폭이 넓지
않나 싶습니다. 부디 볼라뇨의
매력에 흠뻑 빠지시길 기대해
보렵니다.

새파랑 2022-05-16 18: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 레삭매냐님 저번에 글 보고 볼라뇨 책을 읽어볼까 하고 우주점에 갔더니 이 책이 딱 있더라구요. 그래서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좀 어려워 보여서 안샀는데 별 세개라니 좀 그런가 보군요. (삼독이셔서 별 세개?)

아직 안팔렸는지 검색해봐야 겠습니다 ㅋ

레삭매냐 2022-05-16 20:05   좋아요 3 | URL
제가 처음으로 볼라뇨를 이 책
으로 만났을 적에는 그야말로
뻑이 갔었습니다. 아마 그 당시
에는 별 다섯 개를 주지 않았나
싶네요.

그런데 두 번 그리고 세 번 읽
게 되니 그리고 볼라뇨의 다른
책들이 원체 좋다 보니 좀 짜
게 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쓰리 앤 하프 정도가 되지 않
나 싶습니다.

사실 볼라뇨 작가에게 별은
의미가 없습니다. 기냥 다 좋
습니다.

건수하 2022-05-17 08: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열린책들에서 볼라뇨 나오기 시작했을 때 궁금해서 이 책부터 시작해봤었는데
라틴 아메리카를 잘 모르고 다 허구이다보니 생소해서 읽기가 어려웠었습니다.

레삭매냐님 글 보니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

레삭매냐 2022-05-17 16:03   좋아요 1 | URL
오래 전을 되짚어 보면
저도 그랬던 것 같습니다.

볼라뇨 작가의 방대한 라틴
아메리카 문단에 대한 지식
이 그대로 휘몰아 치다 보니
소화가 쉽지 않았습니다.

다시 읽어 보시면 또 색다른
재미를 느끼시지 않을까 추
정해 봅니다.
 



나는 예언자다.

 

뭐 이 정도면 점집을 차려야 하나.

작년 노벨문학상 발표가 된 뒤, 내가 올린 포스팅이다.

 

https://blog.aladin.co.kr/723405103/13003832

 

다음주에 드디어 압둘라자크 구르나 아자씨의 책 세 권이 나온다고 한다.

나는 놀라웁게도 그 세 권의 출간되는 책들(올 클리어!)과 시기도 대충 맞혔다. 내가 하고서도 놀랍다.



 

<바닷가에서>

<낙원>

<그후의 삶>

 

그런데 역자가 모두 다르다. 왜 오래 전에 만났던 헤르타 뮐러의 생각이 나는 거지. 각각 다른 역자들이 번역을 맡다 보니, 같은 작가면서도 책마다 다른 느낌이 들지 않았던가. 그런 점에서 앨런 홀링허스트의 케이스 모범이라고 생각했지만, 출판사가 바뀌면서 그 룰로 깨지는 바람에. 일단 최근에 나온 두 책은 만나보지 못해서 일단 유보.

 

우선 <낙원>의 역자인 왕은철 교수의 번역이 가장 낫지 않나 추정해 본다. 이미 쿳시 전문가로 명성을 떨친 바 있다. 시인 출신으로 영문 텍스트 번역에서 두각을 보이는 황유원 작가도 굿. 나머지 한 분은 잘 모르겠다. 내가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다 보니 아무래도. 압둘라자크 구르나 작가의 경우도 한 명의 역자가 줄기차게 번역해 주기를 바랬지만, 아무래도 세 권 모두는 무리지 싶다.

 

키보드 소리가 너무 크다는 컴플레인 때문에 일단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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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네24에서 <낙원>을 선주문했다.

주말이라고 상품권을 뿌려 대니 도저히 사지 않고

배길 재간이 없네요.


램프의 요정에서는 <그 후의 삶>을 살까 어찌까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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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2-05-13 2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ㅎ컴플레인 건 분이 누굴지 궁금합니다. 저는 가끔 폰보고 있음 똘망이가 앞발로 툭툭 치며 컴플레인 겁니다. 인간아 북플에 글 그만보고 나를 쓰다듬어라. ㅎㅎ 즐거운 저녁 보내세요 ~

mini74 2022-05-13 23:37   좋아요 2 | URL
앗 중요한 걸 까먹었어요. 로또 번호 좀 ㅎㅎㅎ

레삭매냐 2022-05-14 10:09   좋아요 1 | URL
저희 집 꼬맹스가 자는데
시끄럽고 해서요 ㅋㅋㅋ

그러고 보니 저도 로또 번호 콜~
오늘 한 장 사야겠습니다.

다른 건 죄다 꽝이네요.

coolcat329 2022-05-14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쓰신 작년 저 글 읽은 기억나네요. 번역 될 작품 다 맞추셨어요! 😚
저도 이 책들 다 찜해뒀답니다. 기대됩니다.

레삭매냐 2022-05-16 20:01   좋아요 0 | URL
저는 하나씩 사들이고
있답니다.

이러다 다 살 판이네요.
저도 기대만빵입니다.
 
먼 별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권미선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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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11볼라뇨를 읽는 중이다. 역시 예전에 한 번 읽었던 글들이라 그런지 소화가 쑥쑥되는 그런 느낌이랄까. 볼라뇨 읽기 가운데 <먼 별>과 만났다. 그리고 내가 가장 처음으로 만난 볼라뇨의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 맨 끝에 실린 단편을 확장해서 리라이팅한 것이 바로 <먼 별>이었다.

 

<먼 별>은 독재문학을 기초로 삼은 느와르 스타일의 추리소설이다. 볼라뇨의 얼터 이고라고 할 수 있는 아르투로 벨라노가 들려주는 연쇄 살인마 카를로스 라미레스 호프만 혹은 카를로스 비더, 그도 아니라면 알베르토 루이스 타글레의 삶을 추적한다. 전작에서 짧게 다뤄진 서사는 <먼 별>에서 보다 확장된 서사로 독자를 맞이한다. 나는 그래서 결국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을 찾아 호프만 중위의 전사(前事)를 찾아 읽어 봤다. 인물들의 이름이 조금 다르게 나오지만 크게 상관은 없다.

 

1970년대 초반, 시창작 교실에 나타난 알베르토 루이스 타글레와의 인연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는 사실 카를로스 라미레스 호프만이라는 이름의 칠레 공군 소속의 중위였다. 그러니까 그는 소위 시창작 교실이라는 간판을 걸고 불온한 모임을 갖는 좌파들의 동향을 파악하는 임무를 맡은 프락치(fraktsiya)였다. 시창작 모임에는 당시 문단에서 주목을 받던 베로니카와 앙헬리카 가르멘디아 자매도 참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다 아는 1973911, 쿠데타가 발생했고 가르멘디아 자매는 지방으로 몸을 피했다. 루이스 타글레는 어느 날 밤, 그는 문단에서 주목을 받던 가르멘디아 자매를 찾아가 살해한다. 어때, 시작부터 살벌하지 않은가.

 

시리얼 킬러 공군 중위의 기행은 이제 막 시작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공군 주력기였던 메서슈미트 Bf 109를 몰고 공중에 연기로 시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Fiat Lux라는 요한복음 첫 장에 등장하는 그 유명한 문구를 스페인어도 아닌 무려 라틴어로 쓰는 이 빌런은 분명 지식인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물론 그가 지식인이라고 해서 그가 암흑 시절에 행한 악행이 지워지는 건 아닐 것이다.

 

볼라뇨의 다른 작품 <칠레의 밤>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던 니카시오 이바카체 신부/평론가가 등장해서 카를로스 비더의 작품에 대한 평을 하는 시퀀스도 아주 흥미로웠다.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들을 작품에 등장시켜 상호간에 작용시키는 기법이 마음에 들었다. 부정적으로 표현하자면, 캐릭터의 재활용인데

 

국가적 재난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산티아고 퍼포먼스를 대충 마친 이 빌런은 자신의 아파트에서 소름 끼치는 사진 전시회를 기획해서 손님들을 초대한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저지른 범죄행위에 대한 소시오패스 같은 고백이라고 할까. 그는 분명 시인을 위장한 예술가가 아닌 범죄자였다.

 

우리의 아르투리토 벨라노는 그전에 볼셰비키 유대인이었던 후안 스테인과 디에고 소토라는 특별한 인물들을 독자에게 선사한다. 아르투리토 벨라노가 나치와 2차 세계대전 마니아라는 건, 그의 저작들을 통해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먼저 피노체트 쿠데타가 발생한 칠레를 탈출해서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서 독재에 대한 무장투쟁이 벌어지는 거의 모든 곳에 등장해서 전설이 된 시인이자 전사였던 후안 스테인은 이반 체르냐호프스키라는 독일 파시스트를 상대로 한 소련의 대조국전쟁에서 명성을 날린 공산당 장군의 조카였다. 문학과 무장투쟁이라는 상극의 요소 역시 별반 차이가 없다는 말을 작가는 하고 싶었던 걸까. 시 창작 교실의 지도자였던 양반이 느닷 없이 게릴라 전사로 변신해서 마나구아 해방과 엘살바도르 내전에 참가해서 명성을 날렸다는 그야말로 판타지에 가까운 서사가 얼마나 매력적이던지. 그리고 어려서 사고로 두 팔을 잃은 로렌소 아니 로렌사에 대한 에피소드도 기억할 만하다.

 

후안 스테인의 삶을 추적하는 장면과 슈퍼 빌런 카를로스 비더의 뒤를 쫓는 장면이 중첩되면서 몽매한 독자는 다시 한 번 문학이 오늘날 우리에게 왜 필요한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책을 읽고 나서 부조리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동력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아니 그렇게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현실을 냉철하게 분석하고 과연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점진적인 의식의 전환을 이루는 것만으로도 귀중한 시간과 비용을 들여 책을 읽는다는 행위에 대한 보상이 되지 않을까라고 감히 유추해본다.

 

, 이제 본격적인 시리얼 킬러의 추적에 나설 차례가 되었다. 우선 아옌데 정부 시절 뛰어난 능력을 보여주었던 전직 경찰 아벨 로메로가 등장한다. 아옌데 대통령에게 훈장을 받은 로메로는 피노체트 시절 반체제 인사로 분류되어 3년간 옥살이를 하고 유럽으로 망명했다. 나고 자란 땅이 아닌 타지에 뿌리를 내린 이들처럼 수년간의 고생은 나라 잃은 망명자들에게는 기본 옵션이었다. 그리고 다시 모든 것을 망각시키고, 파괴해 버리는 시간이 흘러 고향으로 돌아갈 계획을 세우고 있던 로메로에게 동포 한 명이 카를로스 비더를 찾아 달라는 의뢰를 한다. 돈 걱정은 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카를로스 비더 혹은 루이스 타글레는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악행 때문에 철저하게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종적을 감췄다. 자신을 드러낸 악당보다 이렇게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사라진 전설적 살인마를 추적하는 게 소설적 재미를 더 주지 않는가 말이다. 아벨 로메로는 우리의 아르투리토를 찾아와 시인 행세를 하는 범죄자를 찾아 달라는 주문을 한다. 자신만의 문학을 포기할 수 없었던 사이비 시인이 이곳저곳에 남긴 자료들을 안겨 주면서. 50만 페세타의 사례비는 아마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아르투리토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을 것이다. 로메로가 카를로스 비더를 찾아내면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는 피는 원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암흑시절에 사라져간 이들에게 그리고 피의 복수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그저 공허한 외침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12년 전에 볼라뇨의 책들이 나오는 족족 사서 읽던 시절이 문득 생각났다. 볼라뇨를 다시 만나고 있는 이 시점에서, 그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갑자기 애정하게 된 작가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자 허겁지겁 제대로 씹지도 않고 그대로 삼켜 버렸다면, 지금은 좀 더 익은 시선으로 그의 저작들을 만나고 있다.

 

시작부터 끝까지 로베르토 볼라뇨가 <먼 별>에서 설계한 서사는 완벽하지 않았나 싶다. 독재문학이라는 베이스에 카를로스 비더-알베르토 루이스 타글레라는 시대의 악당을 배치하고, 한 시대를 명멸해 간 인물들을 관조적인 시선에서 조용하게 수놓는다. 가해자들은 용서와 화해를 말하지만, 피해자들은 복수를 원한다. 이렇게 서로 상충하는 생각들을 두고, 열린 결말이라는 탁월한 선택으로 <먼 별>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스스로를 유럽의 공장들에서 길을 잃은 묘한 시인”으로 자신을 규정한 로베르토 볼라뇨.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뱀다리] 볼라뇨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서사들이 모두 그의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들인지 궁금해졌다. 실제 피노체트 군사독재 시절에 있었던 사건 사고들에 대한 볼라뇨식 변형이 아닌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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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2-05-13 15:3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님 글을 읽을 때 매번 느끼는 감탄은 인용문을 쓰지 않아도 글을 채우실 수 있는 능력이십니다.
언젠가는 저도 그런 경지에 오르기를 바래봅니다~~
그리고 로베르토 볼라뇨 작가 다시 찜합니다^^

레삭매냐 2022-05-13 20:28   좋아요 3 | URL
감사합니다.

제가 책 읽으면서 인용하겠
노라고 밑줄도 좍좍 긋고
메모도 하지만 막상 리뷰를
쓸 적에는 기냥 느낌으로
파파밧~하는 스탈이라 인용
을 못하곤 하네요 :>

사람들마다 다 스탈이 다르니
깐요.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
다.

mini74 2022-05-13 17: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볼리뇨 작가분이 매냐님 리뷰를 본다면 감동하지 않을까요 ㅎㅎ 볼라뇨 작가를 매냐님 통해서 전 알게됐어요. 이제 책만 읽으면 됩니다 ㅎㅎ

레삭매냐 2022-05-13 20:29   좋아요 2 | URL
ㅋㅋㅋ 하늘에 계신 그 양
반이 미니님의 덧글을 봐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

칠레 출신 돌 I, 문학의 이단
아 작가의 매운맛을 속히
보시길 기대해 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