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소와는 다르게 느린 속도로 안드레 애시먼의 <하버드 스퀘어>를 읽는 중이다.
작년엔가 이 책이 너무 읽어 보고 싶어서, 원서를 주문한 것은 안 비밀이란다.
코로나 때문에 책은 석달 정도 전 세계를 떠돌다가 잊어 버릴 즈음해서 결국 도착했다.
책을 받은 다음에 몇 페이지 정도 읽다가 때려 치우고, 지금 원서는 어디에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번역서가 짜잔 출간됐다.
바로 사서 읽기 시작했다.

어제 만료되는 적립금을 쓰기 위해 부랴부랴 인근 램프의 요정을 찾았다.
그리고 3,500원 짜리 스누피 책갈피를 샀다. 살 책은 사실 없었고... 너무 멀리 있어서 사러 가기에는 쫌 그랬다. 여전히 사고는 싶지만 – 어쨌든 책갈피는 항상 부족하다. 읽다 말기의 반복 때문이라고 해두자.
안드레 애시먼의 <하버드 스퀘어>를 읽으면서 나는 자꾸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가 떠올랐다. 하버드 박사 과정의 화자는 소설 <조르바>의 지식인 그리고 이집트계 유대인 “내”가 카페 알제에서 만난 칼라지는 조르바로 그렇게 읽혔다.
자기혐오라는 공통점을 가진 두 남자는 하버드 스퀘어라는 공간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우정을 쌓아가기 시작한다. 아마 근본주의자들이었다면 불가능했을 둘의 우정은 종교나 인종을 뛰어 넘는다.
나도 해피 아워 시간에 낮술을 먹어 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미처 시도는 하지 못했다. 왠지 낮에 술을 마시면 안될 것 같다는 유교보이 같은 생각 때문이었을까? 그럼 그전에 대학교 교정 잔디밭에서 매일 같이 낮술이고 밤술이고 가리지 않고 먹은 건 어떻게 변명하려고.
어쨌든 그가 쓴 “해피 아워 거지”라는 표현이 왜 이렇게 와 닿던지. 튀니지의 튀니스 시디 부 사이드 출신의 34세(추정) 칼라지는 속사포처럼 빠르게 말을 쏘아댄다. 나와 칼라지 모두 이방인이지만, 조건이 확연하게 다르다. 칼라지는 불법체류자 신분의 택시 운전사고, 나는 하버드 대학 영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준비 중인 영주권자다. 물론 둘 다 이방인이지만, 미합중국에서 합법적으로 살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인 그린 카르트의 소유 유무로 신분은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하버드 박사 학위만 따낼 수 있다면 자신이 그렇게 위선적이고 허위라고 비난하던 써클 속으로 진입할 수도 있었다.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어쩌면 안드레 애시먼 작가는 이 모든 글들과 하버드 스퀘어에서의 외롭고 고단하며 배고픈 추억들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이 멋드러진 글을 지은 게 아닐까 싶다.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서 말이다.
<아웃 오브 이집트>와 <알리바이>를 읽고 나서 청년기의 저자의 삶에 대한 자전적 소설 <하버드 스퀘어>를 만나게 된다면 금상첨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순서가 좀 어긋나긴 했지만 그래도 전작들을 만나서 다행이지 싶다.
번역을 보다가 확실히 그곳에 살아 보지 않은 역자의 번역에 조금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스토로우 거리는 사람이 다니는 곳이 아니다. 스토로우 “드라이브”는 차만 다리는 자동차 전용도로다. 그런 점에서 메모리얼 거리도 마찬가지고. 현지의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종이에 인쇄된 문자만으로는 번역하면 이렇게 되는구나. 구글 지도를 보니 메모리얼 드라이브는 찰스강을 기준으로 강변북로 정도 되겠지 싶구나.
184쪽 : 작은 이탈리아 -> 리틀 이태리
이건 압구정을 "갈매기와 친하게 지내는 정자"라고 번역하는 격이지.
안드레 애시먼이 저술한 낯선 곳에서 이방인으로써 느끼는 스산함과 이러저러한 감정들이 절절하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뭐 그땐 그랬지라고 말해야 할까.
어제 저녁에 부랴부랴 사들인 스누피 책갈피들. 아주 요긴하게 쓸 작정이다. 누군가의 훼방만 없다면 말이지.
[잡썰]

지금 책을 받으러 램프의 요정으로 달려 갔다.
며칠 전에 스타니스와프 렘의 책들이 우수수 쏟아진다는 소식에 서둘러서 책주문을 날리려고 마음 먹었다.
뚜학! 그런데 문제는 배송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미 씨제이 대한통운 파업으로 배송을 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긴 했지만, 이건 아니잖아 아니잖아~
배송이 네 가지 옵션이 있어서 이번에는 우체국 택배를 눌렀다. 무려 3월 2일 배송예정이라고. 그래도 어쩌랴 싶어서 신청했는데 이번에도 나가리. 그래서 이번에는 편의점 택배를... 이번에도 역시 어김 없이 실패했다. 그러니까 책을 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는 그런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은근과 끈기의 대한국인이 책 주문을 포기할쏘냐. 그래서 결국 마지막 옵션인 중고서점 배송을 선택했다. 이건 되더라. 아, 중고서점 배송은 다른 물류 시스템을 이용하는가 보다.

책을 사고자 하는 우리 책쟁이들의 집념은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다.
어떤 식으로 포장이 되어 있을까 궁금했는데, 박스 포장은 아니고 이렇게 비닐 봉다리에 담겨 있더라. 본인 확인 절차를 거쳐 직원분이 책을 넘겨주셨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대표작 <솔라리스>는 4년 전 이맘때쯤에 오멜라스 버전으로 만났다. 그 때도 가히 충격적이었었는데... 이번에 민음사에서 총 3권이 새롭게 알로록달로록 ‘구린’ 표지를 달고 등장했는데, 그 중에서 나의 픽은 유머 감각이 빛난다는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였다. <솔라리스>는 이미 읽었으니 <우주 순양함 무적호>는 희망도서로 오늘 인근 도서관에 신청했다네.
막 읽고 싶어서 근질근질하다. 난 에스에프 팬도 아니면서 4년 전에 왜 그렇게 에스에프 소설들을 읽어댄 걸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