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시일反 - 10인의 만화가가 꿈꾸는 차별 없는 세상 창비 인권만화 시리즈
박재동 외 지음 / 창비 / 200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우연한 기회에 지난 노무현 정부시절의 국가인권위원회와 창비사의 합작으로 모두 해서 10명의 만화가들이 모여 집단창작으로 차별과 인권에 대한 만화책을 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새해 들어 처음으로 도서관에서 그 책과 만날 수가 있었다, <십시일反>이 바로 그 제목이었다. 제목에서부터 차별과 인권침해에 대해 반대한다는 뚜렷한 주제의식을 표출하고 있었다.

먼저 인권(人權)에 대한 정의를 알아보기 위해 위키피디아에게 물었다. 인권이라 하면 인간으로서 태어나면서 부여된 그 어느 누구로부터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와 지위에 긍정하는 개념이라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만한 건 어느 민족이나 국가에 관계없이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현실세계에선 적용되지 않는 일이지만 말이다.

물신(物神) 혹은 맘모니즘(Mammonism)에 입각한 최고를 위한 경쟁과 성공제일주의가 우리 사회의 모든 가치를 아우르고 있는 상황 속에서 차별을 없애고, 모든 사람들이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일지도 모르겠다. 대한민국 1%만을 위한 정부에서는 ‘욕망의 정치’만을 강조하면서 모든 국민들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21세기 신경제발전이라는 미명 하에 대량해고와 대규모 실업위기로 내몰고 있다.

하지만 박통이 경제건설을 지휘하던 시대의 ‘삽질정신’은 성장 위주의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의 몰락과 더불어 더 이상 그 유효하지 않은 사회적 패러다임이 되어 버렸다. 이제는 사회에서 소외된 약자들인 장애우, 외국인 노동자, 여성, 빈민층을 아우르는 모든 이들이 함께 나가는 다양화된 사회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십시일반>에서는 이런 바람과는 달리 전개되고 있는 현실 세계를 냉혹하게 그리고 있다. 세계화 논리로 제3세계 국가들에서 대한민국으로 유입된 외국인 노동자들의 삶은 처참하기 그지없다.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원하지 않는 일자리들을 채운 그들은, 비인간적인 근무조건과 형편없이 낮은 임금, 체불 등의 열악하기 그지없는 상황 속에서 고국에 두고 온 형제자매 부모들을 위해 오늘도 땀방울을 흘리고 있다. 경제가 좋지 않으니, 외국인 노동자들 혹은 산업연수생들을 모두 본국으로 돌려보내라는 식의 보수 언론에서 쏟아내는 구호들은 오늘 “오마이뉴스”에 나온 한홍구 교수의 국가 파시즘을 연상시킨다.

우리와 다른 피부색을 가진 이들을 보는 우리의 시각은 그만큼 차별적이다. 여성과 장애우들을 보는 시각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기초생활 수급자들의 현실은 보지 않고 오로지 행정편의주의 위주의 시각으로 다가서는 국가공무원들의 모습에서는 그들이 과연 인권에 대한 기본적인 의식이 있는지에 대해 묻고 싶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끔찍했던 경험은 자신이 사는 아파트 평수에 의해 어울리는 친구들의 ‘격’이 달라진다는 조남준 씨의 만화 <누렁이 1>이었다. 제도교육에서 그렇게 함께 더불어 사는 삶의 중요성을 가르치지는 않고, 나만 잘먹고 잘살면 된다는 식의 자기중심주의적 사고를 어린이들에게 심어주고 있다는 사실이 개탄스러웠다. 노암 촘스키는 미국 사회에서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5개의 철자로 된 단어로 “class"를 꼽았다. 누구나 부인하지만,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사회계급의 실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부와 재산의 정도에 따른 사회계층화는 부지불식간에 그렇게 어린 나이에 학생들에게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는걸 새삼 깨닫게 됐다.

손문상 씨가 그린 <사회적 유전>을 보면 더 이상 자본주의 시스템 아래서의 ‘공정한 경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백한 진실을 접하게 된다. 부유층에서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다양한 방면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사교육비로 무장한 차세대 일꾼들을 양성해내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살인적인 물가상승과 해고의 위협에 노출된 그림에 등장하는 노동자들에게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 같은 상황이다. 사회적 성공을 유일한 통로처럼 보였던 교육에서조차, 평등한 기회들은 박탈당하고 있었다.

책을 덮으면서 정말 암담해졌던 이유 중의 하나는 이제 더 이상 MB정부 아래에서는 이런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성찰과 배려를 기대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 고난의 세월을 통해 이루어낸 풀뿌리 민주주의가 ‘경제살리기’라는 지상과제에 밀려 그 빛을 잃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사회적 진보는 한 발자국을 떼기가 힘들지만, 반동에 의한 퇴보의 폐해에 의한 사회적 손실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연말 단군 이래 최악의 경제위기라는 말들 가운데서도 그 어느 때보다도 소액기부금의 행렬이 많았다는 흐뭇한 뉴스 기사를 들었다. 정말 그 어느 때보다도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정신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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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
퍼시 캉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끌레마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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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요즘처럼 디지털 카메라가 대중화되기 전에 필름 카메라와 더불어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있었는데, 사양길에 접어들면서 아예 폴라로이드 필름을 더 이상은 생산하지 않는단다. 그러니 사용하고 싶어도 더 이상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을 수가 없다는 거다. 이렇게 일상에서 사용하다가 더 이상 그 제품이 생산이 되지 않는다면 어쩌지? 바로 이 시점에서 퍼시 캉프의 <머스크>는 시작된다.

올해 69세의 아르망 엠므 씨는 25년간 철도공사 직원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은 프랑스의 비밀정보부에서 암약해온 인물이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온 그는 자기 자신에게 엄격한 삶의 규율을 적용시키고, 옷매무새가 흐트러진다는 건 상상도 할 수가 없을 정도의 멋쟁이다. 하지만 그건 이미 40년 전의 이야기이고, 이제 그는 평범하게 늙어가는 노인네다.

여자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엠므 씨에게는 자신만의 비장의 무기처럼 느껴지는 존재가 있으니 그건 바로 <머스크> 향수다. 발정기의 사향노루 수컷에서 추출한 천연재료로 만든 향수는 ‘호색한’ 엠므 씨의 평생의 동반자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엠므 씨는 자신의 정부 이브로부터 자신의 냄새가 바뀌었다는 지적을 듣는다. 거의 평생을 함께 해온 향수의 변화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늙어 버렸단 말인가? 크로노스의 되돌릴 수 없는 시간들이 전개되기 시작한다.

우선 엠므 씨는 문제의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해낸다. 머스크의 제조회사에 정중하게 편지를 써서 답장을 받는 엠므 씨. 회사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천연재료를 사용하지 않고 머스콘이라는 인공재료를 사용해서 <머스크>를 계속 생산할거라는 사실을 알려 준다. 하지만, 엠므 씨에게 필요한 것은 ‘인공’ 머스크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전 프랑스 나아가서는 전 세계에 망라해서 <머스크> 향수를 획득하기 위한 가열찬 투쟁에 나선다.

하지만 그의 남은 생애 동안 필요한 절대량의 머스크 향수를 얻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결국 작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한 끝에 그는 향수의 양을 줄이는 방법을 선택한다. 그와 동시에 그는 존재감을 상실하면서 급속한 노화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더 이상의 자신의 추락을 볼 수 없었던 정보요원의 출신의 영리한 엠므 씨는 극적이면서도 결정적인 다른 방법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사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은 <머스크> 책의 표지에 다 나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주인공 아르망 엠므 씨가 붉은 색의 머스크 향수를 뿌리는 장면. 그 향기는 이미지화 되어서 왼편으로는 제목인 <MUSK>를 그리고 있고, 오른편으로는 머스크의 원료를 추출하는 사향노루의 그림이 보인다. 남성인 엠므 씨와 그의 여성에 대한 선호, 그리고 그를 남자답게 만들어주는 그의 심리적 안정제라고 할 수 있는 수컷 사향노루는 모두 본질적으로 동일선상에 놓여져 있다.

물질자본주의 세계에서 직업에서의 소외, 다시 말해서 은퇴는 어떤 의미에서 남성성의 상실과 동가로 비추어진다. 한 때, 여성들에게 작업을 걸어 많은 성공의 추억들을 가지고 있는 아르망 엠므 씨는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노화) 대신 마스크 향수로 만들어진 인공적 이미지 속에서 여전히 과거의 영광들을 추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머스크 향수 생산중단은 그에게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엠므 씨에게 그것은 단지 물질적 공급의 중단이 아닌 남성으로서의 자신감의 상실로 이어진다. 자신감을 되찾기 위해 엠므 씨는 부단한 노력을 계속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노화에는 가속도가 붙는다. 결국 그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으로 몰린다.

2000년에 나온 탓인지, 현재 프랑스를 비롯한 EU 국가들에서 사용되는 화폐 단위인 유로가 아닌 프랑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도 등장하는 향수의 도시 그라스에까지 머스크 향수를 찾아 나서는 아르망 엠므 씨의 집요한 여정도 또한 유쾌한 경험이었다. 예전에 <엠므 씨의 마지막 향수>라는 제목으로 2001년에 출간되었다가 작년에 다시 빛을 보게 된 책이라고 하는데, 이렇게 그늘에 가려져 있던 재밌고 유쾌한 책을 다시 세상에 등장시켜준 끌레망 출판사에게 갈채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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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한 조선인물실록 - 역사적 인물들, 인간적으로 거들떠보기
이성주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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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출판계의 키워드 중의 하나는 “조선”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작년에 개인적으로 읽은 “조선”이란 말이 들어가는 책만으로도 4권이나 됐다. 이처럼 “조선”이란 키워드를 사용한 책들과 동일선상에 놓여져 있는 <발칙한 조선인물실록>의 저자 이성주 씨는 이미 2006년과 2007년에 소위 “엽기”라는 타이틀을 단 일련의 역사서적을 내면서 자유로우면서도 창조적인 역사 글쓰기의 전범을 보여준 바 있다.

<발칙한 조선인물실록>에서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으면서도 조금은 비틀리거나 왜곡된 인물들에 대한 교정과 더불어 미처 모르고 있던 사실들에 대한 전달에 이르기까지 아주 친절하게 다뤄주고 있다. 일단 각 에피소드들의 소제목부터 눈에 확확 들어온다. <왕보다 소주가 좋아!?>, <노비, 왕에게 딜을 걸다>, <부마 자리 거절했다가 막장 인생이 된 남자> 이 얼마나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문구들이던가.

이 책을 폈을 때, 가장 호기심이 가는 이야기는 바로 부마의 자리를 사양했다가 그야말로 가문이 풍비박산이 나서 노비의 지위에까지 떨어진 전 춘천군 지사 이속(李續)의 이야기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조선 초기의 절대군주 태종의 옹주를 며느리로 들이라는 왕명(?)을 거절했다가 그만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고 만 인물. 호기롭게 부마 자리를 거절하기는 했지만, 왕조국가 조선에서 절대 권력자인 왕의 의사에 반하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처절한 교훈이었다.

이 이야기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 역시 태종의 즉위에 앞서 2차 왕자의 난의 주인공이었던 태종의 종형이자 태조 이성계의 4남이었던 회안대군 방간(芳幹)의 후예들의 왕족복귀를 위한 꾸준한 노력 또한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왕족에서 순식간에 역적으로 몰려, 평민의 지위에 떨어지게 된 회안대군의 자손들은 왕족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수백 년간 탄원을 해서 결국 300여 년만인 숙종 대 조선조 왕족의 족보인 선원록(璿源錄:왕실족보)에 오르게 되는 쾌거를 이루게 된다.

다음으로 우리에게는 한석봉으로 더 잘 알려진 조선의 중기의 명필로 유명한 한호(韓濩)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도 흥미 있는 소재였다. 작가는 어머니와의 ‘떡 배틀’이라는 표현으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야기를 희화화하면서, 그야말로 붓글씨 하나로 임금 선조의 총애를 받았던 한석봉의 이야기 속으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역시 철저한 유교적 가부장 시스템 하의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에서 신분상승을 위한 엘리트 코스인 과거를 거치지 않은 상태로 발탁된 한석봉에 대해, 기득권층이라고 할 수 있는 기존 관리들의 질시는 상상을 초월했다. 결국 중앙 요처에서 빛을 발하지 못하고 지방행정관 자리를 연연해야 했던 그의 한계에서 뛰어난 재능을 살릴 수 없었던 신분제 사회의 모순을 읽을 수가 있었다.

목화씨를 고려로 밀반입해서 일약 스타로 알려진 문익점에 대한 사실도 우리가 알고 있던 거의 전설에 가까운 전승과는 확연하게 다른 이야기였다. 고려시대 공민왕의 신하로 중국 원나라의 사신단의 일원으로 파견되었던 문익점은 그야말로 줄을 잘못 서게 되서 고려의 입장에서 보면 대역죄인이었으나, 운 좋게도 원나라에서 ‘수출금지품목’도 아니었던(이 점이 중요하다) 목화씨를 고려에 소개하면서 의생활에 일대 혁신을 가져 오게 되었다. 저자의 바로 이런 역사적 사실에 입각한 교정에 찬탄을 금할 수가 없었다. 바로 이런 점이야말로 우리네 역사 교육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닐까.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다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하고 싶은 인물은 바로 조선의 14번째 왕이었던 선조다. 조선이 개국한 이래, 전대미문의 국난이었던 임진왜란 당시의 임금으로, 국정의 최고 책임자이자 유교국가 조선에서 모든 이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던 그가 한양으로 진격해 오는 왜군에 맞서 도성을 수비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만 살겠다고 평안도 의주로 몽진한 상황은 마치 한국전쟁 당시 서울 사수를 외치고서는 도망가 버린 이승만 정부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게다가 7년 대전란이 끝난 다음, 공신을 정하는 와중에서 정작 전쟁에서 왜군을 맞아 싸운 이순신과 권율을 비롯한 장군들과 의병장들에 대해서는 인색하면서도 자신을 따라 몽진했던 인물들에 대해서는 더없이 한없는 아량을 베풀어 주었던 쪼다같은 군주라고 이성주 씨는 규정하고 있다. 분조를 해가면서, 각처의 의병들을 규합해 왜군에 항거했던 세자 광해군에게는 전위하겠다는 정치적 쇼를 하는 등 그야말로 한 편의 코믹 드라마 같았다. 임진왜란 당시 출병했던 명나라에 대해 재조지은(再造之恩:거의 망하게 된 것을 구원하여 도와준 은혜)이라고 하면서 결국 전란극복은 자신의 힘이었다라는 식의 자기합리화와 끝없는 사대주의는 훗날 인조 시대에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같은 국가적 위기를 초래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이성주 씨의 이런 창조적이면서도 딱딱하지 않은 대화체의 서술이 마음에 들었다. 역사란 모름지기 과거에 일어났던 일들을 통해 현재에 배우고, 미래를 예측하는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딱딱하고 정사(正史)적인 입장만을 취할게 아니라 재밌으면서도 독자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대중적인 글쓰기가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권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임의 대로 글을 쓰지 않는다는건 책의 권말에 수록된 참고 문헌들의 목록들을 보면 바로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앞으로 계속해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역사 서적들이 계속적으로 출간이 돼서 어렵고 딱딱하다는 기존의 이미지들을 벗고 좀 더 적극적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들었다.

*** 내가 찾은 오탈자

1. 폐루 -> 페루 (11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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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마리아주 Tokyo Mariage Style Mook 2
김호진.김미선 지음 / 브이북(바이널)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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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책의 표지를 보고서 여유롭게 와인 잔을 테이블에 놓고 있는 이가 누군가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바로 이 책의 저자인 탤런트 김호진이 아니던가. 그리고 더 놀란 건, 탤런트로만 알았던 그가 복어요리를 비롯해서 무려 5개의 요리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는 게 아닌가. 어느 캐릭터에 대한 평면적인 사고가 입체적으로 전환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그는 와인 마니아라고 불릴 정도로 와인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다. 아니 형이상학적으로 안다는 표현보다는 즐긴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김호진은 그렇게 와인을 찾아 도쿄 행에 오른다. 그리고 그의 여행의 목적성은 뚜렷하다. 현지에서 몇 대를 두고 물려 가며 가업을 잇는 장인 정신을 찾아서, 그리고 타인의 것을 모방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음식을 찾는 기행이었다.

개인적으로 지난 10월말에 일본 도쿄에 다녀왔는데, 가기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아마 나도 현지답사를 나섰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에 젖었었다. 게다가 물가가 비싸기로 아시아에서 선두를 다투는 서울과 일본의 와인 값을 비교해 본다면, 일본이 더 싸다고 하지 않는가. 게다가 한 요리하는 작가가 말하는 대로 와인과 음식에도 궁합이 있는 법, 그래서 책의 제목도 그대로 <도쿄 마리아주>라고 짓지 않았던가. 좋은 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에서, 맛있는 음식까지 더해진다면 그거야말로 도원경(桃源境)이 따로 있겠는가 싶었다.

<도쿄 마리아주>에서는 모두 해서 36개의 와인 바와 레스토랑들이 소개가 된다. 특히 지난 가을 숙소가 있었던 아사쿠사의 <오사카야>는 언뜻 지나쳐 가며 본 듯도 싶었다. 진작 알았더라면, 당연히 들러서 음식 맛을 보았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대를 이어 95년째 영업 중이라는 <오사카야>의 분위기는 정갈했다. 하지만 여전히 지면 만으로는 그 분위기와 미각과 그리고 음식과 와인이 주는 식감을 느낄 수가 없으니 안타깝기만 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와인 바 두 곳을 꼽으라고 한다면 15번째로 소개되었던 오모테산도 노상에 있다는 오크통이 잘 어울리는 <카민>과 19번째 <우피>를 꼽겠다. 캐주얼한 분위기를 더 좋아해서 그런 진 몰라도 왠지 정장을 차려 입고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고품격의 레스토랑이나 와인 바보다 이렇게 선술집 분위기가 나는 곳이 더 마음에 들었다. 어느 가을날에, 오모테산도를 걷다 지친 발걸음을 쉬기 위해 큼지막한 오크통 앞에서 마시는 와인 한 잔의 여유란 상상만 해도 즐겁다. 도쿄에 갔을 적에 에비스 스테이션에 가긴 했었는데 <우피>의 존재를 몰랐던 나는 같이 갔던 동행과 함께 에비스 맥주만 마시고 돌아온 기억이 난다. 다음번에 도쿄에 가게 되면 ‘머스트’ 방문할 곳 중의 하나가 추가되었다.

일본에 갔을 때, 생맥주(나마비루), 카레, 돈까스 그리고 스시를 꼭 먹어 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마지막 스시를 못 먹어 본게 무척 아쉬웠는데, <도쿄 마리아주>의 지은이는 그 유명한 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실제 모델이었다는 야마다 히로시 할아버지가 운영하게 <칸파치>에 들러 주인장이 그 자리에서 바로 만들어내는 스시를 마치 어미 새가 아기 새에게 먹이를 주듯 그렇게 받아먹으면서 직접 초밥을 만들어 보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단다. 한마디로 말해서 완전 부러웠다. 나도 우에노에 가게 되면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상상을 해봤다.

이 책을 통해 한 가지 배운 점이 있다면 바로, 와인을 마시던 아니면 음식을 만들던 간에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조건 와인이 비싸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고, 얼마든지 중저가에서도 자신만의 와인을 고를 수가 있다는 것이 김호진의 주장이었다.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개인적으로 독일 라인 지방에서 나는 리슬링 품종의 와인을 좋아하는데, 그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던 적이 있었다. 그 때만 하더라도 오래되고 비싼 와인이 더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몇 번 테이스트를 해보면서 가격이 싸고 영(young)하더라도 내 입맛에 딱 들어맞는 와인을 찾을 수가 있어서 아주 즐거웠던 적이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오래간만에 리슬링 와인 한 잔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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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미셀러니 - 와인에 관한 비범하고 기발한 이야기
그레이엄 하딩 지음, 차재호 옮김 / 보누스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왠지 와인하면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가? 보통 사람들은 범접하기 힘들다는 느낌부터 받게 되는 게 사실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와인의 종류가 너무 많기 때문일 것이다. 2005년에 처음 출간된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 출신이 저자 그레이엄 하딩의 책 <와인 미셀러니>는 이런 와인의 신비한 세계를 독자들에게 인도한다.

샤르도네, 쇼비뇽 블랑, 돔 페리뇽, 메를로, 카버르네, 리슬링, 토카이 등등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이름들은 그나마 어디서고 한 번 들어본 적이 있지만, 무통 로쉘드 같은 정말 고급 와인들에 대해서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사실 와인 병에 붙어 있는 라벨도 제대로 읽지 못한 적도 많다.

와인의 기본 정의는 “발효된 포도 주스”라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정의에 대해 책의 부제로 딸려 있는 대로 ‘와인에 관한 비범하고 기발한 이야기’들을 사회 전반에 걸친 모든 방면에서 풀어 나간다. 역시 역사를 전공한 이답게, 와인의 유래로부터 시작을 해서 와인에 쓰이는 용어, 와인 병의 제조, 와인을 숙성시키는 오크통, 라벨 그리고 문학과 영화에 이르는 그야말로 와인에 대한 백과사전적 정보들을 짤막하면서도 아주 유용한 스타일로 그리고 매우 유기적인 관계로 빚어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와인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던 많은 것들을 이 책을 배울 수가 있었다. 예를 들면, ‘펀트’는 와인 병 밑에 움푹 들어간 부분을 지칭하며, 얼리지(Ullage)는 코르크 하단 부분과 실제 와인 사이의 빈 공간을 말한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궁금해 하던 빈티지(Vintage)에 대해서는 실제로 포도를 수확한 해를 의미한다는 것도 덤으로 배웠다. 이건 개인적으로 아주 궁금해 하던 사실이었다. 또한 포트 와인에 대해서 이 책을 통해 보고, 인터넷 리서치를 통해 알게 됐다. 포트 와인이란 주로 북서 포르투갈 지방의 도우로 밸리(Douro Valley)에서 만들어진 증류 포도주를 말하는데 대개의 경우, 스윗한 레드 와인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개인적으로 얻은 최대의 수확은 바로 와인 비평가 로버트 파커를 알게 된 것이었다. 미국 볼티모어 출신의 로버트 파커는 원래 변호사 출신으로, 1975년부터 와인 비평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가 개발한 100점 만점 기준의 와인 평가 시스템은 국제 와인 시장에서 공인을 받고, 거의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독일 라인 지방에서 나는 리슬링 품종의 와인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달다는 ‘아우슬리스’ 등급을 좋아한다. 타닌이 많이 들어가 있는 드라이한 레드 와인보다는 아무래도 조금 단맛이 나는 화이트 와인을 선호하는 편이다. <와인 미셀러니>를 통해 알게 된 헝가리 토카이 지방에서 난다는 토카이 와인을 한 번 사보려고, 인터넷 서치를 해봤는데 역시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건 아닌 듯 싶었다.

<와인 미셀러니>를 읽으면서 와인에 대해 무조건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취향에 맞는 와인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와인의 묘미를 깨닫는 정도가 아닐까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기회가 된다면 나도 무통 로쉘드 같은 고급 와인을 한 번쯤은 마셔 보고 싶다는 충동도 느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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