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너무 어려운 스몰토크 - 나의 특별하고도 평범한 자폐 스펙트럼의 세계
피트 웜비 지음, 임슬애 옮김 / 윌북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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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너무 어려운 스몰토크/ 피트 웜비 지음/ 윌북




서른 넷에 자폐 진단을 받고서야 사는 게 어려웠던 게 이해가 갔다는 지은이 피트 웜비다. [나에겐 너무 어려운 스몰토크]를 집필한 그는 영어교사로 안정된 커리어를 쌓아가고 딸을 출산하여 부모가 되었을 때 우울증과 번아웃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다. 자신의 상태를 파악할 수 있게 된 그는 교사직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온라인 공간에서 자폐성 장애 '홍보대사'로 활동하였다. 그의 활동은 세간의 관심을 끌었고 그 결과로 책 [나에겐 너무 어려운 스몰토크]이 나왔다. 





그는 자신이 자폐인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확히 한다. 자신의 견해, 경험 그리고 이해를 바탕으로 자폐인이 타인의 친절에 기댈 필요가 없는, 행동을 이상하게도, 위험하게도 보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미래를 앞당기고자 이 글을 썼다.







신경 전형인과 신경 다양인, 가면쓰기, 심리 탈진, 자기 자극 행동, 실행 기능 장애, 자폐성 관성, 병리성 요청 회피, 거부 민감성 위화감 등등 자폐성 장애와 관련된 용어를 적절한 예시와 자세한 설명으로 정리하고 있다. 그의 글에 스며있는 간절함이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묻어나 마음을 움직였다.




"나는 지도 한 장 없이 어두운 숲에 버려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분투해야 했다."




개인마다 편하고 맞는 속도와 환경이 있는데, '사회', '학교', '직장' 공동체에서는 개개인의 형편보다는 집단의 규칙, 원칙이 우선시되어 시스템이 유지된다. 비자폐인인 나조차 버겁거나 지겨울 때가 있다. 그렇기에 저자 피트의 눈높이 맞춤 문장에 깊이 공감하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단순히 자폐인들의 특성과 상황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주변에서 취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치를 알려주고 있어서 더 유익하다. 보통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자 할 경우, 요구사항을 들어주거나 직접적으로 물어보면 된다. 하지만 자폐인은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으니 이런 지침들은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리라.







우리나라에서도 관계를 돈독히 하는 방법으로 '스몰토크'를 추천하는데 영국 또한 매한가진가 보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한 모범답안이 있는 스몰토크 활용팁을 본 적이 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물 위에 뜬 기름처럼 떠다니지 않기 위한 유화책 정도로 받아들였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자폐인 피트에게는 정답 없는 질문이자 공허하고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우리의 삶 자체가 한계선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선을 넘고 만다."



비자폐인도 가면을 쓰지만, 자폐인의 경우 가면쓰기는 생사가 걸린 문제라 한다. 하지만 가면쓰기가 성공하면 또 그것대로 부정적인 면이 있다. 바로 다른 사람을 속이는 데에 능숙해진 나머지 자기 자신도 '속이는' 것이다. 이 문장을 읽으면서 움찔했다. 긴 세월 함께 하다 보니 같이 성장하고 줄거리를 갖추게 된 가면을 떠올랐기 때문이다.



신경 전형인은 자동차가 유턴하는 것처럼 쉽게 하는 일을 전환할 수 있다.

반면 일반적으로 자폐인은 원양 정기선과 비슷한 속도로 유턴을 하기에

엄청난 인내심이 필요하다.



저자는 여러 주제와 인생 주기별로 자폐인으로서의 자기 경험을 녹여냈다.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 잠복기에 겪은 혼란과 시련, 진단 후에는 자폐인에 관한 잘못된 정보들로 인한 어려움과 차별들을 열거하고 있다. 그리고 어떻게 변화해나갔으면 아니 바꿀 수 있다는 열렬한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신경 전형적인 세상을 비전형적으로 바꿔 모든 사람을 위한 비전형적인 세상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미 세상에는 온갖 정보가 있기에 사람들이 읽고 듣기만 하면 된다는 뼈 있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시선 맞추기를 일종의 몸짓 언어라고 봤을 때,

(우리에게는) 소통에 있어 시선이 갖는 의미가 매우 다르다.

……

'나는 당신을 아주 깊이 믿고 좋아하며, 아마 당신은 내가 몇 년 동안

눈동자를 들여다보고 싶은 유일한 사람일 거예요.'라는

대대적인 애정 고백에 가깝다.




제대로 알지 못하기에 두려움을 느끼고 무서워한다. 자폐인의 자기 자극 행동에 대한 몰이해와 공감력, 외로움에 대한 거짓 정보, 비발화 자폐인에 대한 무관심과 무시 등등 이미 스트레스 상태로 살아가는 자폐인에게 얼마나 무심하고 폭력적인 세상인가. 나 또한 반성하게 된다. 전형인의 테두리 안에 있는 이들이 소수자들을 이해하려는 노력과 관심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닐까. 피트 웜비의 상상이 현실이 되기 위해 이 책을 펼쳐보는 작은 수고부터 시작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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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거래 하실 분만 청어람 청소년 3
이송현 외 지음 / 청어람주니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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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거래 하실 분만/ 청어람주니어




청어람주니어 출판사에서 출간 중인 ‘청어람 청소년‘ 시리즈 3번째 이야기는 <쿨거래 하실 분만>이다. ’중고 거래‘를 소재로 4명의 작가가 참여한 앤솔로지 작품집이다.

생활 양식과 소비 패턴이 변하면서 중고 거래는 점차 활성화되었다. 요즘에는 플랫폼을 통해 중고거래를 하는 추세로, 특히 ‘우리 동네’로 기반으로 하는 ’당근 마켓’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거래 시 매너 온도와 후기 등을 참조하여 좀 더 안전하게 할 수 있다. 동네 중심으로 중고 거래, 무료 나눔, 구인 등의 커뮤니케이션을 제공한다. 동네 주민끼리 하는 거래가 다수라 연령층도 다양해지고 있다. 이런 실생활을 바탕으로 <쿨거래 하실 분만>은 중고 거래 앱을 사용하는 청소년의 상황을 제각각 그려내고 있다. 같은 재료를 가지고 특색 있는 음식을 만들어내는 요리사들처럼 4명의 작가들은 중고 거래 앱을 활용하는 요즘 청소년의 사정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진의 조합이 화려하다. <몬스터 차일드>, <마이 가디언> 시리즈의 이재문 작가, <일만 번의 다이빙>, <나의 수호신 크리커>의 이송현 작가, <혁거세 슈퍼>의 송우들 작가 그리고 첫 단편집과 장편 소설 출간을 앞두고 있는 구소현 작가이다. 중고 거래 앱 상의 청소년을 쫓아가다 보면 그들의 진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니 육아용품, 전집류를 시기별로 중고 거래, 무료 나눔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필요한 시기가 짧은 터라 중고 거래가 유용했다. 판매자와 구매자는 각자의 니즈를 충족하고, 소비 구조도 순환되니 좋은 시스템이다. 물론 많은 사람과 많은 물건과 많은 니즈가 머무는 공간이라 다채로운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쿨거래 하실 분만>은 이를 활용하여 요즘 청소년들의 일상을 친근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들의 거래를 통해 무엇을 좋아하고 필요로 하는지 주변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짝사랑이 준 처음이자 마지막 선물인 스케이트보드를 중고 거래하다 원데이 클래스를 받게 된 이린(이송현, 쿨하지 못해 다행이야), 공작새처럼 치장하기 위해 신발 신상을 구입하고 중고 거래하는 해수(이재문, 오늘의 무료 나눔), 엄마가 마음대로 팔아버린 책 아니 흑역사를 되찾기 위해 중고 거래에 뛰어든 다주(송우들, 개츠비의 개츠비의 개츠비), 중고 거래 앱을 통해 자기 집에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반 친구와 친해지면서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된 두영(구소현, 캐비지스 인 더 와일드).







네 명의 친구들은 중고 거래로 자신들의 세계를 한 걸음 더 넓혀가고 있었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물건에 깃든 기억, 마음, 재능, 시간 등등 삶을 쌓아가고 다듬어가는 그들만의 노력이 담겨 있었다.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각자의 사연이 담긴 물건이 이동하고 다시 쓰이면서 가치와 의미가 변했다. 무료 나눔을 받고 리폼한 물품을 판매해서 얻은 수익으로 의미 있는 봉사와 나눔을 하는 재이, 비슷한 상처를 지닌 친구를 위해 물건을 팔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돈을 모으는 한경,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좋아하는 스케이트보드를 참고 또 몰래 탔던 준표,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라도 좋아하는 감정을 고백하고 웃을 수 있는 인서의 다음 이야기도 궁금해졌다. 모든 게 빠르게 변화하는 요즘, 자신의 호흡을 지키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아이들의 속내를 들여다보는, 유의미한 시간이었다. 거래는 쿨거래 하지만 인간관계는 따스한, 청소년들이 들려주는 진짜 이야기, 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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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보카도
김혜영 지음 / 그늘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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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보카도/ 김혜영 지음/ 그늘





김혜영 작가의 <아보카도>는 서양 정물화 한점처럼 겹겹의 질감을 지닌 채 찾아왔다. 여덟 편의 단편들이 엮어낸 묵직한 결과물은 상처 입은 누군가 아니 우리가 토해낸 감정들이 그려낸 흔적이자 숨이었다. 결코 가벼울 수 없는 이별 끝 상실의 무게와 고통을 하나하나 주워 담아 펜 끝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 먹먹한 길을 거닐다 보면 나도 모른 채 묻어두었던 억 겹의 아픔과 슬픔이 고개를 든다. 내 것인지 김혜영 작가 것인지 소설 속 인물 것인지 주인을 알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된다. 우리 모두 과거 혹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누구나 이별을 겪고 상실을 마주한다. 자명한 사실을 김혜영 작가의 <아보카도>으로 미리 예습하거나 다시 복기하는 듯하다.




"억지로 참지 마.

우리는 모두 충분한 애도를 해야 해."




속수무책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는 순간을 밀도 있게 그려낸 김혜영 작가 덕분에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다. 참지 않아도 된다. 꾹꾹 눌러 담기만 했던 감정을 충분히 드러내어 발산해야 비로소 인정하고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잊을 수 없지만 충분한 애도를 해야 슬픔 너머를 볼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김혜영 작가는 상실의 오늘을 여러 각도에서 그려내고 있다. 여덟 편의 이야기로 살펴본 삶의 면면은 촘촘히 짜여 빠져나갈 틈이 없었다. 작가가 공을 들여 기어이 틈을 만들고 성긴 사이로 흘러내리게 하였다. 걸러지고 남은 무언가를 움켜지고서야 우리도, 인물도 고개를 들어 내일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안 보인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 감춘다고 사라지는 게 아니다.

그 섬이 거기 계속 있듯이 이제 선도 모두에게 그런 의미일 것이다.

- ‘박수기정 노을’ 중




여덟 편의 이야기 중 가장 와닿았던 이야기는 <박수기정 노을>이었다. 선의 일생이, 제주의 자연이 눈앞에 펼쳐지면서 18장의 짧은 이야기가 경이로운 울림을 선사하였다. “잘 살았다. 온전히 살았다."라는 그 충만함과 위로를 느꼈다. 죽을 뻔한 선이를 20년을 품어준 제주와 가족의 앙상블은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하고 따뜻했다.




"네가 어떤 상황이든 우린 변함없이 친구 맞지?

저 대추나무가 우리 집에 오게 돼서 기뻐."

- ’대추’ 중




<대추>는 비관 자살한 남편을 떠나보낸 후 자신이 좋아하는 사과와 남편이 좋아했던 대추를 합한 사과대추 묘목을 충동적으로 주문한 나미의 이야기다. 묘목을 심을 때가 마땅찮은 그녀는 친구 오인에게 주면서 위로받는다. 홀가분한 기분도 잠시 무례한 타인의 행동에 흔들렸던 나미가 다시금 단단히 여물어가는 결말이 좋았다.



한참 동안 뱉지 못한 씨앗 하나가 여전히 입속을 굴러다녔다.

끝부분이 날카로워 입천장을 찔러대던 그것을 왜 아직 입속에 머금고

있었을까. 나미는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서둘러 그것을 뱉어냈다.

비로소 입안이 개운해졌다.

- ’대추’ 중



<아보카도> 단편에서는 남편을 떠나보낸 화자가 상상치 못한 연유로 남편을 잃은 또 다른 여자, 친구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자신의 상황에만 몰두하던 나는 영은의 상처를 감지하지 못했다. 극단적인 상황에 이르러서야 맞춰지는 퍼즐 판 앞에서 경악을 금치 못하는 건 소설 속 그녀들도, 우리도 매한가지다. 가슴이 찢기는 고통 속에서도 지켜야 할 아이들을 위해 단단해져야 했던 나는 아보카도 같은 영은을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 속을 마주했으니 다음은 달라지기를, 둘의 진정한 연대를 기대해 본다.




오랫동안 의지했던 대상과의 이별,

우린 그렇게 서로에게 또 다른 의미의 애착 인형 같은 존재였을까.

나는 우리 사이 그런 감정이 당혹스러웠다. 외로움 때문이었다고

애써 변명하고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자위했다.

- ’아보카도’ 중





<자염>, <지연> 서사도 인상적이다. 부모와 자식, 세대를 이어가는 연결고리를 근간으로 풀어나가는 플롯이 돋보인다. 두 이야기 모두 ‘자염‘과 ’뼈가 자라는 병‘같은 독특한 소재들로 서로가 연결 지어지거나 벗어나고자 애쓰는 다음 세대의 오늘을 조명한다. 옆에서 지켜보다 가업 전승을 거부하는 아들(자염), 진실을 모르다 병을 계기로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딸(지연), 작가는 공감 가는 필력으로 두 자식의 속내를 해체하고 있다. 혼란과 슬픔의 웅덩이 앞에서 그들은 어떤 선택을 궁금하다.




"작가는 계속 성장하는 직업 같아요.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인물을 탄생 시키고 그 인물과 함께 성장하죠.

제 뼈가 계속 자라는 건

아직 제가 다 성장하지 못한 작가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 ’지연‘ 중




의료과실로 아들을 잃은, 한 엄마의 끔찍한 복수와 슬픈 결말을 그린 <BABY IN CAR>, 아이를 간절히 원하나 실패한 후 반려견에게 위안을 얻는 아내와 그 아내에게 차마 비밀을 밝히지 못하는 남편의 이야기 <너의 찰스>, 다른 단편과는 상당히 다른 결로 다가온 <공가>까지 어느 이야기도 빛을 잃지 않고 제 빛깔을 뽐내었다.







참척의 고통을 겪게 된 두 여자가 서로 엉켜 있는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마치 새끼를 잃은 두 마리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마치 한 덩어리처럼 녹아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때까지 그녀들은 멈추지 않을 것이었다.

- ‘BABY IN CAR‘ 중




소설 페이지를 넘기며 겹겹이 쌓이는 죽음, 이별, 상실, 비극, 고통, 상처가 인물들 사이로 녹아들어 가는 것을 경이에 찬 눈으로 지켜보았다. 충분히 씹어서 소화시키고 싶은 소설집 <아보카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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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편지
설라리 젠틸 지음, 최주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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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편지/ 설라리 젠틸 장편소설/ 위즈덤하우스




누군가의 지문이 새빨간 피로 찍힌 새하얀 편지봉투가 도착했다. 500 페이지에 달하는 두터운 편지, 과연 설라리 젠틸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두근거렸다.


21세기 애거서 크리스티, 설라리 젠틸 작가. 드디어 그의 작품을 국내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처음 맛본 그의 매력에 푹 빠져 헤어 나올 수 없다. 워낙 고전적인 플롯의 추리소설을 애정하는 독자라 좋아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더욱이 액자식 구조로 촘촘히 짜인 이야기와 끝까지 팽팽하게 조여오는 긴장과 불안이 아찔한 공포를 선사해 주었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맵 룸으로 가서 우정을 싹틔우고,

나는 처음으로 살인자와 커피를 마시게 된다."




『살인 편지』는 소설 안에 또다시 소설과 현실이 그려지는, 흥미로운 액자식 구성이 강점이다. 호주의 미스터리 소설가 ‘해나‘는 미국 보스턴에 사는 열성팬 ’리오’와 편지를 주고받으며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 해나의 ‘소설‘과 리오의 ‘편지’가 교차하면서 극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순조롭던 순환이 어느 순간 리오의 집착으로 소설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게 되면서 기이하고 소름 끼치게 변질되어간다.








어느 날 도서관 열람실에 있던 프레디, 케인, 윗, 마리골드는 갑자기 비명 소리를 듣게 된다. 우연히 살인사건의 관계자가 된 프레디, 케인, 윗, 마리골드는 친밀한 사이로 발전한다. 작가라는 공통분모로 프레디와 케인은 친밀감을 느끼는데……. 도서관에서 들은 여자의 비명 소리가 프레디의 핸드폰에서 울려 퍼진다. 이를 시작으로 네 명은 살인 사건 한복판에 내던져졌다. . 살인사건에 휘말려 여러 가지 사건사고들을 겪으면서 끈끈했던 그들 사이에 균열이 시나브로 생기기 시작한다.


친밀한 관계에서 서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전개에 흔들리면서도 ‘사랑’이라는 단단하고 깊은 감정을 키워나가는 프레디와 케인 그리고 예상과는 다른 윗과 마리골드, 네 명이 주고받는 감정을 살펴나가는 여정이 이야기 몰입도를 한층 높여주었다.




"만약 내가 살인자라면 내 책이나 글이

다르게 보일까요? 예를 들자면요."




해나는 소설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살인자를 추적해나가야만 한다. 어쩌면 가장 바쁜 사람은 독자일지도 모르겠다. 독자인 우리는 설라리가 제공하는 정보는 물론이고 해나가 제시하는 범인에 대한 단서와 복선을 쫓아야 하니 말이다. 사실이라 믿었던 상황이, 사람이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속임수인지 혼란스럽다. 치밀하게 짜인 플롯은 의심에 의심을 더해주었다. 반전에 반전을 더하는 서사는 사랑, 우정, 신뢰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의미를 찾아가죠.

발견은 독자의 몫이지만, 거기까지 가는 길은

작가가 보여주는 거라 생각해요.

그러니 작가의 도덕성은 작가가 제시하는 길을

독자가 신뢰할 수 있는지에 영향을 끼친다고 봐요."







『살인 편지』 깊이 일기를 하고픈 독자를 위해 숨겨둔(?) 팁을 참고하면서 읽어나간다면 소설의 주제를 더 밀도 있게 탐구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 속을 누가 알겠어요?

마음이 끌리는 대로 따라가는 거잖아요. "





미스터리 추리극의 고전 같으면서도 절묘하게 사람의 심리를 파고드는 필력이 매혹적인 작품이다. 보여주는 대로 혹은 보이는 대로 다 믿으면 안 되는 미심쩍은 상황에서 물어보지 않으면 답하지 않아도 수수께끼 같은 이를 끝까지 믿고 싶은 마음은 단지 사랑일까? 입체적인 인물들의 합이 소설에서 현실에서 두 살인자를 쫓는 위험천만한 이야기를 탄생시켰다. 의혹의 눈초리가 한곳이 아닌 인물 한 명 한 명에 이를 수 있도록 설정한 설라리 젠틸의 예리함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부디 “나를 조심히 열어봐주세요…….“ 당부하는, 섬뜩한 편지 한 통이 도착하는 행운을 누리기를 바란다. 정말 사람 속을 누가 알겠냐마는 설라리 젠틸의 작품 속은 확실히 알았다. 속히 다음 이야기를 펼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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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개가 왔다
정이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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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개가 왔다/ 정이현 산문/ 한겨레출판




우리에게 어떤 일이 있을까.

오늘 그리고 내일 또 내일에는.




책을 펼치고 처음 만난 문장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다시금 나지막이 소리 내 읽어보았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싸르르 가슴이 아려온다. 읽기 전과 후, 밀려오는 감정의 결과 깊이가 사뭇 다르니 어느새 ‘루돌‘이에게 빠져들었나 보다. ‘어리고 작은‘ 개가 몸과 마음이 다부져가는 시간을 지켜보니 절로 그렇게 되더라. 그러니 정이현 작가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소중하고 고맙고 기쁘고 애달플까. ’왔다’에 이어질 ‘갔다‘ 전에 그 아이의 어제를 제대로 알기 위해 애쓰고, 오늘을 채우기 위해 다가서고, 내일을 오늘로 만나기를 바라는 정이현 작가와 루돌이의 이야기는 마음을 데워주는 온돌이 되어주었다.








인근에 하천이 흘러 저녁마다 운동 겸 산책 겸 돌곤 한다. 반려견과 보호자를 종종 만나게 된다. 목줄을 찬 개, 안 찬 개, 대형견, 소형견, 중형견, 가족 총출동, 부부, 가족(대부분 엄마) 1인 등등 분류하자면 다양하다. 예전에 비해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확연히 늘었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

우리 집 같은 경우 아이들은 반려동물을 간절히 원했지만, 나는 무서워하고 남편은 싫어해서 이제는 마음을 접은 상태다. 독립 후를 꿈꾸고 있다. 어렸을 때는 애견카페, 애묘 카페를 찾아 갈증을 해소시켜주곤 했다.

그래서 비슷한 성향의 정이현 작가가 갑작스러운 인연으로 덜컥 ‘어린’ 개를 입양하고 법적 보호자로 등록되어 실질상•명의상 주보호자로 자리매김해나가는 여정이 흥미로웠다. 서로 다른 종, 생면부지의 두 생명이 만나 온전히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관계가 되어가는 시간이 아름답고 뭉클하였다.


유기견, 동물보호소, 임시보호, 입양, 안락사.

‘늑대‘가 인간친화적인 동물인 ‘개’로 진화한 순간부터 인간과의 관계가 그들에게는 중요해졌다. 세상에는 행복한 개와 행복하지 않은 개가 있다는 저자의 표현처럼 인간의 보살핌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개는 행복하지 않다. 개의 순수한 눈망울과 활기차게 흔들리는 꼬리를 떠올리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건만 악의를 내뿜는 사람들이 있어 가슴이 저리다.





정이현 작가는 어린 개와의 만남으로 달라지고 풍성해진 영역을 이야기한다. 단순히 개가 아닌 ‘루돌’이가 알려준 미지의 세계를 알아가는 수고와 기쁨을 전하고 있다. 개에 관심이 없던 자신이 입양한 개를 주보호자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 겪은 일상적인 개인 이야기뿐 아니라 개로 연결된 네트워크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상황에 대한 사회 이야기까지 담고 있다. 반려견 용품을 공동 구매하는 펫플루언서, 동물 친화적인 마케팅을 하지만 제한이 있는 편의시설 등 ’상업적‘ 이용 혹은 활동에 대한 고민이 이 책과 맞물려 생각거리를 제공한다. 정이현 작가가 ‘어린 개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살았겠지만 모르는지도 몰랐을 것들‘에 대하여 쓴 이 산문 덕분에 눈을 뜨고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쓸 사람이 생겨날 것이다.






‘어떤 몰이해는 경험의 결핍에서 나온다‘는 문장이 마음에 콕 박힌다. 이토록 친밀하고 밀도 높은 유대감을 나누는 정이현 작가와 루돌이가 부러울 지경이다. 주저 없이 자신을 ’엄마‘라 부르며 아무 조건 없이 어떤 이유 없이 서로를 마음껏 사랑하는 사이. 그 순수함이 아름답다.








’자유‘를 인생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살아온 작가의 변화가 놀랍다. 이제는 루돌이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 그는 루돌이가 자유의 형식과 내용에 대해 새로운 질문을 하도록 만들었다고 했다. 원하는 인생의 결을 유연하게 변하게 하는 이 다정한 존재는 압도적인 기쁨과 어렴풋한 슬픔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고 있다. ’어린‘ 개가 온 이후, 삶은 달라졌다. 그 충만함에 자꾸 눈물이 나고 자꾸 미소가 지어지니 신기하다.








한겨레 하니포터10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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