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자크의 해학 - 인문학 그래픽 노블
폴 브리지.가에탕 브리지 지음, 이세진 옮김, 오느레 드 발자크 원작 / 학고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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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의 해학/ 오노레 드 발자크 원저/ 폴&가에탕 브리지/ 학고재





웃음은 인간에게만 허락된 특권이잖소.

그냥 즐겨주시오! 내 사랑들이여,

편안한 몸으로 즐겁게 사용하시오!






『고리오 영감』으로 친숙한 오노레 드 발자크가 쓴 『해학 이야기 100』 중 4편의 이야기가 그래픽 노블로 각색되었다. 폴과 가에탕 브리지의 스케치로 재탄생한 『발자크의 해학』은 원작의 결말이나 전개가 달라진 부분이 적지 않다. 이를 염려에 두고 읽더라도 19세기에 쓰인 발자크 특유의 풍자가 21세기 현대인이 즐기기에 충분하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이는 존경하는 프랑수아 라블레에 대한 오마주로 시작한, 특별한 프로젝트였다. 30편까지 집필하고 중단된  『해학 이야기 100』  중 폴과 가에탕 브리지의 선택을 받은 작품은 <미녀 앵페리아>, <가벼운 죄>, <악마의 상속자>, <원수 부인> 4편이다. 







이야기 시작 전 발자크가 등장하여 호흡을 환기시킨다. 호탕한 발자크를 만나는 재미가 있다. 발자크를, 작품을, 19세기 프랑스 분위기를 짧으면서 강렬하게 드러내고 있다. 한 페이지의 힘이란 놀랍다.



'앵페리아'는 발자크 원작  『해학 이야기』 처음과 끝을 장식하는 인물이다. <미녀 앵페리아>와 <결혼한 앵페리아> 두 편을 합쳐 각색된 <미녀 앵페리아>가 폴과 가에탕 브리지가 선보이는 첫 번째 이야기다. 


공의회 참석차 콘스탄츠에 온 수도사 필리프 드 말라는 앵페리아를 우연히 거리에서 마주친 후 홀린 듯 빠져든다. 수도사로서 마음을 다잡으려는 그는 세치의 혀로 현혹하는 자에게 이끌려 앵페리아와의 만남을 계속하게 되는데……. 



순진한 청년 필리프와 농염한 앵페리아의 극적인 대비와 함께 고위층 성직자들의 부끄러운 민낯의 대향연이 눈길을 끈다. 수도사 필리프의 순수한 사랑이 결실을 맺기까지의 해프닝은 다 그의 새파란 용기 덕분이었다. 인간의 호기심을 부추기는 악한 존재에게 퉁명하게 안녕을 고하는 그와 그의 부인에게 축복이 내리기를 기원한다. 소박한 미래에 관한 담소를 나누며 고향 투르로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이 아름다웠다. 이제와는 전혀 다른 운명을 향해 당당히 걸어나가고 있지 않은가.



<가벼운 죄>와 <원수 부인>은 남녀 간의 정에 관해 전혀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열정적인 그들의 사랑 앞에 죄와 구원, 남편의 복수라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거침없는 전개와 반전 그리고 사실적인 그림체가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가장 눈여겨본 작품은 <악마의 상속자>다. <미녀 앵페리아>에서 출연한 '우연'씨(악마)가 재출연하고 있다. 유산만을 바라고 아버지의 죽을 날만 학수고대하는 두 아들과는 다르게 외삼촌을 잘 보살피는 우직한 조카 시콩이 주인공이다. 

양치기 시콩은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는 사실에 마냥 좋은 순진한 사나이다. 하지만 '모생주(못된 원숭이)', '피유그뤼(도둑 두루미)라 불리는 코슈그뤼 형제는 아버지와 잘 어울리는 그를 제거할 끔찍한 계획마저 세우는데…….

인간의 탐욕과 악마의 유혹이 만나 펑펑 터졌다. 인간의 검은 속내가 악마의 속삭임으로 현실화되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자신이 말한 대로 맞이한 결말, 당하는 자가 다를 뿐인 잔혹한 끝을 이끌어낸 악마 그리고 악마의 상속자였다. 




"사랑하는 양들아, 너희는 무슨 죄를, 무슨 회개를, 

무슨 속죄를 말하는 것이냐? 

보아라! 너희는 가련한 피조물에 불과하거늘! 

온종일 밭과 농장에서 죽어라 일하는 

가련하고 불쌍한 자들아, 어떠냐? 

너희는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지 않느냐? 

아, 그렇고말고! 너희는 그저 피땀 흘려 수고하려고 

이 땅에 태어났느냐? 하찮은지고!"








위선과 허세를 벗어던진 날것 그대로의 글과 그림으로 인간이 지니는 욕망의 본질에 접근하고자 한 작품집이었다. 놀라고 웃고 궁금해하면서 즐기는 사이에 마지막 장을 덮고 있었다. 자신의 욕구를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던 발자크의 발칙한 프로젝트 『해학 이야기』 덕분에 탄생한 『발자크의 해학』이 발자크의 묻힌 작품 하지만, 그가 애정해 마지않은 작품에 숨을 불어넣었다. 폴과 가에탕 브리지의 손길이 더해져 감각적인 그래픽 노블로 찾아왔다. 






그들이 건네는 치료 약 『발자크의 해학』으로

지친 현대인들이 잠시나마 억압과 시선을 벗어나 익살의 광장에서 자유롭게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 옮긴이 이세진의 친절하고 상세한 작품 설명이 이해를 돕는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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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왜왜 동아리 창비아동문고 339
진형민 지음, 이윤희 그림 / 창비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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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왜왜 동아리/ 진형민 장편소설/ 이윤희 그림/ 창비




<왜왜왜 동아리는 인류세에 살고 있는 우리 현대인 특히 어른의 생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민망하고 부끄러우면서도 반갑고 고마운 책이다. 어린이 스스로 목소리를 내어 변화를 향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삶의 터전인 지구에 관심을 기울여 선택하고 행동하는 그들의 발걸음과 목소리에서 희망이 싹튼다. 그리고 그 희망의 씨앗들은 공감을 타고 널리 펴져나간다. 닿는 그곳에 자신이 살아갈 내일을 챙기는 사람들이 웃음 지으며 의지를 담아 외치는 소리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다. 어렵고 힘겨운 싸움을 응원하는 진형민 작가의 마음과 염원이 전해지는 <왜왜왜 동아리>이다. 




용해시 푸른초등학교에는 '왜왜왜 동아리'가 있다. 

왜? 왜? 왜? 궁금한 것을 끝까지 파헤칩니다!


5학년 록희가 아무것도 안 하고 혼자 놀려고 만든 동아리에 예기치 않은 부원 2명이 들어온다. 그리고 그들의 궁금증을 다 같이 파헤쳐 간다. 강아지 다정이의 실종이 산불과 가뭄으로, 누나의 머릿속이 석탄발전소로 확장되면서 '기후 위기'를 체감하게 된다. 그렇게 왜왜왜 동아리 부원들은 용해시 푸른 바다를 지키는 선봉장이 되었다. 




<왜왜왜 동아리>는 기후 위기로 벌어질 수 있는 재해들을 용해시를 배경으로 실감 나게 그려내고 있다. 재해로 인한 변화와 피해로 고통받는 어린이·청소년들의 심리와 행동 변화를 세심하게 묘사한다. 




요즘 기주는

낡아서 여기저기 구멍이 뚫린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한쪽을 겨우 여며 놓으면 다른 쪽이 또 벌어져 

남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속살을 

자꾸만 들키는 것 같았다.




어른들은 끔찍한 재난으로 큰 변화를 겪은 아이들에게 '괜찮아' 다독이기만 하거나 자세히 알려주지 않고 그저 결정을 따르라고 할 뿐이다. 어쩌면 아이들은 재난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냥 살기를 바라는' 어른들에게 더 상처받을지도 모르겠다. 



나한테 물어본 적 없잖아. 이사 가도 괜찮은지. 

나는 안 가고 싶다고. 내 생각은 그렇다고.




산불로 한순간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기주네 가족, 

석탄발전소 건설공사로 바닷가 생태계가 파괴되어 바닷가를 떠날 수밖에 없는 진모네 가족뿐 아니라

기온이 높아져 명태잡이를 더 이상 할 수 없게 된 어부 집안,

겨울 기온이 높아져 죽지 않는 병충해 때문에 사과나무를 묻어야만 했던 과수원  할아버지 등등 

다양한 아픔들을 '왜왜왜 동아리' 부원들은 학교 전교생에게 알린다. 그리고 지금 가장 시급한 '석탄발전소 건설'을 막고자 서명을 받는다. 어린이들의 뜻을 모아 시청 문을 두드리는데…….








<왜왜왜 동아리>는 '기후 위기'라는 중요한 주제를 다루는 작품이다. 전 세계가 우려하고 변화하려는 움직임이 있는 문제지만, 일상에서 체감하는 변화는 미미하다. 소설 속 석탄발전소 공사처럼 '환경'보다는 눈앞의 '경제 발전', '일자리'를 위한 정책과 사업이 펼쳐진다. 그리고 편리한 현대 생활에 익숙한 우리도 일상 속 실천이 쉽지만은 않다. 하지만 점점 더워지는 지구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진형민 작가는 앞장서는 실천가 록희, 진경, 석주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지만, 작은 도움을 주는 이들을 잊지 않는다. 결정적일 때 큰 도움이 아닐지라도 작은 관심과 친절도 보탬이 된다고 말한다. 

'미래를 지키는 금요일', '왜왜왜 동아리'처럼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활동도 이들의 활동에 귀 기울여주고 응원하는 작은 관심과 친절이 뒷받침되어야 힘을 얻는다. 관심이 지속되다 보면 왜왜왜 동아리 부원들처럼, 미래를 지키는 금요일 부원들처럼 이런저런 소동을 벌이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역시나 어른들은 이것저것 따지는 게 많아서 

용감해지기가 어려웠다. 








<왜왜왜 동아리> 부원들 모두 개인적인 문제에서 시작했지만 사회·공동체 문제가 된 궁금증을 파헤쳐 가면서 성장해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진다.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자기 생각을 말하기 시작하고, 뜻을 모아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하나씩 준비해나가는 우리 아이들의 유쾌한 선전포고가 벅찬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수찬이는 기주, 진모처럼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거나 록희처럼 관련되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들과 활동하고, 동아리 부원들 가족들과 다 함께 부침개를 먹거나 아이들과 나란히 서서 밤바다를 바라보는 순간을 소중히 여긴다. 가족의 인정을 받기 위한 모임의 결과보다 함께 하는 순간이,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아는 수찬이 대견했다. 


기주는 불타버린 산 밑 집이 그립고  할 수만 있다면 다시 돌아가고 싶다. 왜 하필 우리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나 붙잡고 따지고 싶고, 불쑥불쑥 화가 치밀었다. 그런 기주가 왜왜왜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마음을 다잡아간다. 예전처럼 다 괜찮아지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차츰 받아들인다. 


'후회하지 않으려고' 왜왜왜 동아리에 가입한 진모는 록희와의 특별한 인연과 약속을 지키고 싶어 한다. 그리고 새로운 바람이 생겼다. 록희 옆에서 힘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는. 그래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고마워, 아빠."

"뭐가?"

"아빠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게 해 줘서."

"당연히 록희도 자기 생각을 말할 수 있지."




대척점에 있는 록희와 아빠. 긴장과 갈등이 커질 거라 생각했는데, 지혜롭게 해결해나가고자 노력하는 록희 가족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부녀는 서로를 존중하며 소신대로 행동한다. 누구나 자기 인생을 사는 거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할머니가 중심을 잘 잡아주는 것 같다. 







<왜왜왜 동아리>는 기후 위기 시대에 자기 생각을 당당히 말하고 생각이 같은 이들과 연대하며 성장하는 이들의 발자국을 기록하고 있다. 록희와 진모, 수찬, 기주, 진경이 브레이크를 힘껏 밟고 있는 이 순간, <왜왜왜 동아리>를 읽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해 보자.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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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아이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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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의 아이/ 김성중 저/ 문학동네




시간과 공간, 차원을 넘어서는 '연결'의 순간을 빚어내는 이야기, 바로 김성중 작가의 <화성의 아이>다. 


챕터마다 다른 인물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조각을 조합하여 전체 그림을 완성해나갈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야기의 방향과 틀이 각 인물의 기억에 의해 부서지고 다시 세워지는 과정이다. 특히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예상과는 다른 전개로 <화성의 아이>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관한 사유를 격려한다. 


책 속 첫 번째 화자는 화성으로 쏟아 보낸 열두 마리(?!)의 실험동물 중 유일하게 생존한 '루'다. 루가 유령 개 '라이카'와 탐사로봇 '데이모스'를 만나 척박하고 황량한 화성에서 적응해가는 이야기에 빠져 있었는데, 루가 죽었다. '화성의 아이'는 루의 딸 마야였던 것. 삼백 년 동안 엄마 자궁안에 있었던 마야는 출생 비화부터 시선을 사로잡는다. 





나는 온 우주에서 오직 너만을 걱정한단다. 

얘야, 모든 별은 어머니이고 우리는 춥지 않단다. 

- 루





라이카가 루가 암컷이며 임신한 상태라는 걸 깨달았던 순간, 데이모스가 루가 화성에서 마야를 낳고 마야가 먹고 섭취할 세계의 일부를 실어 나르는 존재, '캐리어 백'으로 만들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예상했던 순간 가슴이 저릿했다. 라이카가 딸처럼 아꼈던 루, 미소가 아름다웠던 루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마야에게로 이어져 사랑스러운 아이로 성장하였다. 마야가 화성에서 자라나는 시간은 우리에게 화성을 감각하게 만든다. 지성 넘치는 라이카와 마음을 가진 데이모스와 사랑스러운 마야가 거니는 화성 언덕을 같이 걷는 듯하다. 




마야의 출생과 함께 화성의 테라포밍이 시작되었다. 루의 무덤에서 초록색 식물이 태어난 것을 기점으로, 데이모스는 마야를 위해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분투한다. 물이 존재한다는 가정 하에 펼쳐지는 테라포밍은 루와 마야와 라이카와 데이모스의 '연결'이다. 마야의 지성과 환상은 루에게 기인했고, 라이카와 데이모스는 루의 딸을 키우고 있으니 말이다. 화성에서 그들만의 '그릇'을 확장해나가고 있는 행보가 유독 따뜻하고 다정하게 다가오는 건 '연결'이 내포된 사랑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애정'이라는 말을 알았고, 

'그리움'이라는 말도 알았다. 

그것은 끝없이 한 방향으로 

데이터를 송신하는 행위였다.

- 데이모스





루 - 마야 - 라이카 - 데이모스에 이어 '키나'가 화자로 등장한다. 지구에서의 끔찍한 기억들로부터 벗어나고자 금성으로 향했지만, 결국에는 화성에 버려진 눈꺼풀이 없는 지구인 소녀이다. 유령 개와 탐사로봇의 돌봄이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인간과 비슷한 실험동물인 마야가 비슷한 연령의 인간 키나에게 빠져드는 것은 당연하다.




나의 친구, 나의 연인, 영원한 붉은 별 키나.

- 마야





상처와 상실로 고통받은 영혼들이 한 공간에 머물면서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부드러운 분위기가 갑자기 '남자'의 등장으로 변한다. 그리고 마침내 '알리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원한다…… 무엇을? 다른 존재와의 연결을.

내가 원하는 건 친근한 관계 속에 편안히 붙박여 

자기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 것. 

나아가 하나의 육체에 고정되어 형식이 통일되는 것이다. 

다시 몸을 갖춰서 지구로 돌아가는 것이다.

- 알리체




미장아빔. '이야기 속의 이야기'인 액자식 구성은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단순하게 풀어내지 않고 여지를 남기고 교차하면서 긴장을 유발하거나 반전을 이끌어낸다. <화성의 아이>도 인물들의 이야기 전부를 다 들어야 단추들을 제자리에 꿸 수 있다. 미래 지구의 암울한 사회, 무너지지 않을 자본주의, 끝없는 실험으로 키메라를 만들어내는 과학자, 자신을 신이라 믿는 실험체까지 이야기를 구성하고 있는 유기적이고 복잡한 세계관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표면 아래 흐르고 있는 끈끈한 유대와 사랑 그리고 연결을 향한 목마름을 느낄 수 있다. 




SF 장르에 언어적 유희와 신화, 샤머니즘 그리고 과학자의 만용이 버무려진 <화성의 아이>는 시간과 공간 그리고 차원마저 넘어서는 '연결'을 보여주고 있다. 안정적이고 끈끈한 그들의 연결은 그들이 행동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모처럼 일광이 좋은 날인 데다 노른자가 터지자 
태양이 터지기라도 한 듯 풍요로운 흥분이 
우주선 안에 떠다녔다. 





김성중 작가의 아름답고 다정한 문장 덕분에 더없이 충만해지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작가가 선택한 마지막 화자에게 특별히 더 귀 기울여보기를 바란다. 쉽게 만날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에. 




"나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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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든 분식 - 제1회 문학동네초승달문학상 대상 수상작 초승달문고 52
동지아 지음, 윤정주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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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든 분식/ 동지아 글/ 윤정주 그림/ 문학동네



동지아 작가의 첫 번째 책 <해든 분식>

제1회 문학동네초승달문학상 대상 수상작이다. 


주룩주룩 비가 오는 어느 날, 우산을 잃어버린 정인이가 겪는 뜻밖의 에피소드를 사랑스럽게 담아낸 작품이다. 둘째로서 엄마한테 느낄 수 있는 서운함, 친구 사이의 우정과 부러움 그리고 미묘한 기류 등 정인이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신비한 경험이 펼쳐진다. 순수한 상상력이 만들어낸 따스하고도 맛난 하루를 만날 수 있다. 







"그 우산 펴면! 음……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것으로 변한다!

한 번 더 펼치기 전까지는 절대 원래대로 못 돌아와!"







정인이는 지안이와 소미랑 함께 튀김 삼총사다. 오지안은 오징어튀김, 고소미는 고구마튀김, 강정인은 닭강정. 닭강정은 우정 별명이자 좋아하는 음식이다. 하지만 지난주 생일파티 이후 닭강정이 예전만큼 좋지 않은데…… 

비가 오는 날, 하교하려는데 우산이 없다. 정인이는 친구 준찬(반찬)을 의심하고, 준찬은 자신이 가져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정인이는 말다툼이 이어지자 저주 걸린 우산이라며 실컷 쓰라며 쏘아붙인다. 그러고는 비를 맞은 채 학교 앞 엄마 가게 '해든 분식'으로 뛰어간다.







엄마는 배달 가고 홀로 가게를 지키면서 분식집 둘째 딸이라 겪는(다고 생각하는) 설움 털어놓는 정인이가 사랑스럽다. 언니한테 물려받아 쓰고, 가게에서 공부하는 일상이 자신의 마음을 세심히 살펴주지 않는 엄마 때문에 더 큰 상처가 되어버린다. 특히 생일 파티가 문제였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을 테다. 정인이의 속상한 마음이 비가 되어 내리듯 하늘에서 비가 주룩주룩 내린다. 정인이의 뾰족해진 마음이 글을 통해 잘 드러난다. 



정인이의 시선을 좇으며 가족과 친구들을 살피는 게 재미있다. 정인이가 바라보는 그 너머 캐릭터들을 들여다보면 정인이는 모르는 속마음을 알게 된다. 글자 사이사이에서, 문장 사이사이에서, 그림에서 빼꼼히 고개 내미는 진짜 마음이, 감정이 어여쁘다. 센스는 부족하지만 좋아하는 음식으로 파티를 열어주고픈, 항상 든든히 먹이고픈 엄마의 다정한 마음, 우정과 사랑 사이 챙겨주고 싶은 준찬이의 설레는 마음이 빙긋 미소 짓게 만든다.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오가는 사이, 정인이는 아찔한 모험은 겪는다. 숨 졸이게 만드는 아슬아슬한 상황들이 긴장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어느새 비가 그치고 햇살이 드리운 <해든 분식>이다. 정인이의 서운한 마음도 햇살이 스르르 녹여주었으려나~ 



딱 정인이 다운 상상력과 고소짭짤 매콤달콤한 맛난 분식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읽는 내내 침이 고이는 맛난 책 <해든 분식>은 읽기 전 준비물이 있다. 바로 강정인이 좋아하는 닭강정이다. 꼬치 꽂아 하나씩 먹으며 읽어야 제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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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
심너울 지음 / 한끼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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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너울이 창조한 세상 속에서 살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치게 만드는 이야기 -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


드라마 시나리오를 쓰고, 원작이 영화화되는 SF 소설가답게 눈앞에 그려지는 생생하고 감각적인 글로 독특하고도 엉뚱한 세상을 전하고 있다. 아홉 편의 단편들로 구성된 소설집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는 심너울 표 상상력을 세상에 각인시키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치고 있다. 


MBTI, 인공지능, 외계인, 초능력, 지구 멸망 등등 다채로운 소재로 꾸려진 이야기들은 미래 시점이지만 신기하게도 현재 시점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있다. 심너울 작가의 유머 코드와 현실 인식이 잘 녹아든 블랙코미디 같다가도 인류애 넘치는 정의로운 영웅들이 등장하는 히어로물 같다가도 세상 애절한 러브스토리가 펼쳐지니 산해진미로 가득 찬 뷔페 같다. 취향껏 즐길 수 있고, 애정 하는 등장인물의 이후를 상상할 여지가 많다. 


글 속 현실 에피소드는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펜촉으로 꼬집은 현상은 현실에서나 가상에서나 씁쓸함을 동반한다.  

정부 주도로 MBTI 유형별 일자리 지원정책을 시행하거나, 국가 존망 위기에 최첨단 양자 컴퓨팅 인공지능이 내놓은 대책이 대형마트에 유통되는 대파의 가격에 관한 것이거나, 초능력자에게 배달 앱 같은 플랫폼에서 일거리를 제공하거나, 게임 시장의 열악한 개발 환경들은 현실 속 우리와 소설 속 등장인물들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버린다. 그들의 오늘이,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선택이 절절하고 절실하게 다가온다. 



따지고 보면 진짜 초능력은 자본 아닌가 싶더라고요. 최경현이 스톡옵션으로 번 돈만 수백억이 넘는다는데 진짜 우리 힘을 부러워하겠어요? 그 능력으로 이렇게 이용되기나 하는데?

- 내 안의 영웅, 핸디히어로 205p


진부한 인간의 한계에 얽매여 있는 존재인 현우가 결코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현우는 아무 결정도 할 수 없었다. 이 하얀 감옥 속에서, 그는 여전히 인간성의 클리셰를 사랑하고 있었다.

- 클리셰 149p






신, 창조주, 창시자에 관한 이야기가 눈에 띈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컬럼을 쓰는 작가, 게임 개발자, 가상세계 제작가, 설계자가 미지의 세계를 구축하면서 스스로를 '신'이라 여기는 장면들이 나온다. 상상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 빠져들면서 도취하여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다 다시 딱딱한 바닥에 발을 딛게 하는 현실 자각이 일어난다. 무기력한 좌절을 겪고도 다시 현실을 뛰어넘고자, 지키고자 나름대로 행동한다. 진부함을 이기기 위해 의식을 컴퓨터로 전송하고자 하거나 신의 버그를 눈치채고 세상을 구원하고자 애쓰는 인물들의 선택은 흥미로웠다. 


인간은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질서를 만들어낸다. 질서를 빚는 것만큼 신적인 일이 어딨겠는가?

- 클리셰 138p






아홉 편의 단편 중 가장 인상적인 글은 <싹둑>이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합의된 규칙, 규정에 어긋나는 일을 하는 데 일단 부담을 느끼는 터라, 커넥텀 네트워크를 연결하지 않은 '아이리스' 존재 자체가 크게 다가왔다. 수천 명의 시선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신념대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그 아이의 단단함이 놀라웠다. '소통'과 '갈등'에 대한 통찰이 인도한 의미 있는 지점이었다. 올리브는 아이리스가 말하는 진정한 소통을 스스로 서서히 깨우쳐갔다. 자아와 타아의 구분부터 다르기에 다른 아름다움을 누릴 수 있는 소통의 본질을 말이다. 







<달에서 온 불법 체류자>는 영상으로 만나보고픈, 매력 넘치는 작품이다. 초능력자가 넘치게 된 세상에서 초능력자를 관리 ·통제하는 프로미넌스와 월인의 대치는 선악 구조로 히어로물의 포맷을 따르고 있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의 향연과 주인공의 뒤늦은 자각과 각성까지 볼거리가 풍성하다. 






<키스의 기원>은 극과 극인 남녀의 사랑이 이뤄낸 결말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보다 인간이 키스를 시작하게 된 연유를 '외계인의 지구 정복'과 연결 지은 심너울 작가의 상상력은 엉뚱함을 넘어 기발하였다. 이토록 평화롭고 감미로운 방법으로 이루는 지구 정복을 노리는 녹색 꼴뚜기 닮은 외계인을 본 적이 있나 싶다. 


인공지능에 관한 인간의 상반되는 시선을 보여주는데 오히려 인공지능은 인간에게 전혀 관심이 없다. 긍정적인 여론이 뒤끓는 데, 부정적인 편의 인간이 대통령이 되도록 인공지능이 도와준다. 심너울 작가는 이 <영웅의 탄생>을 인공지능 모델의 도움을 받아 집필했다고 한다. 허를 찌르는 그의 서사는 글을 읽는 내내 즐거움을 돋우는 자극이 되어주었다. 



다양한 미래를 친절하게 보여주고 있는 심너울표 SF 소설집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

현실의 나무에서 여러 방향으로 뻗은 가지 끝에 매달린 미래 하나를 똑~ 따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수많은 가능성을 품은 내일을 그려보는 이들이 있고, 또 읽는 이들이 있다. 심너울이 전하는, 쉽지 않지만 왠지 유쾌하고 다정한 미래 이야기가 오늘의 고단함을 녹이는 불씨가 되어주었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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