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의 시간
유영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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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한 해 실종되는 사람 수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9만 5천 명입니다."

"가출이나 일시적인 잠적을 뺀, 순순하게 실종된 사람이 9만 5천 명이죠.

쉽게 말해, 하루에 260명씩 사라지는 셈입니다."

 

우연히 접한 신문기사가 모티브가 되어 세상 밖으로 나온 <화성의 시간>

- 「사망보험금 타려 아내 5년간 감금」 서울신문, 2012.7.2

 

유영민 작가가 풀어내는 서사에 가슴이 먹먹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한해 실종 인구가 10만 명 가까이 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루에 260명이라니,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요? 그 질문에 대한 한 줄기 답이 될 수 있는 소설을 만났습니다.

 

안토니 반 다이크 작 <Study Head of a Young Woman> 속 여인의 시선 처리가 마음을 흔드는 <화성의 시간>

 

화성의 시간/유영민/자음과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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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어느 날, 여느 주부와 다를 바 없는 여자가 집 근처 재래시장으로 장을 보러 간 이후 실종이 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 여자의 오빠 문창수가 민간조사원 김성환에게 6년 전 사라진 여동생을 찾아달라는 조사를 부탁합니다. 실종된 지 5년이 지나 실종선고 심판을 요청한 상태로 선고가 내려지면 실종자는 법적 사망으로 간주되며 모든 과정에 1년 정도 소요된다고 합니다. 문창수는 실종 선고가 내려지기 전에 여동생 문미옥을 찾고자 합니다. 선고가 내려지면 매부인 오두진이 보험금으로 30억 원을 타게 되기 때문이죠.

 

성환은 6년 전 사라진 여자, 문미옥을 찾기 시작합니다. 사실 성환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경찰을 그만두고 민간조사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유능한 경찰이었던 그는 많지 않은 손에 쥔 정보로 문미옥의 흔적을 쫓기 시작합니다.

성환은 조사를 진행하면서 문미옥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들을 얻게 됩니다.

한결같이 그녀를 밝고 따뜻하고 정 많은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다 결혼했는데 다른 직원들은 아무런 낌새도 챌 수 없었다고 합니다.

부부가 살던 아파트에서 만난 할머니께서는 부부가 연기를 하고 있었다고 얘기를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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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환이 조사를 하면 할수록 초반에 오두진에게 가졌던 의심이 옅어지고 다른 가설이 등장합니다.

- 보험금 사기극 -

딱 6년의 시간을 1억 6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행성, 화성에서 보내기로 마음먹은 미옥.

가해자-피해자가 아닌 공모를 한 것입니다.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벼랑 끝까지 몰린 미옥의 사정이 충분히 공감되는 상황이라 소설 속이 아니라 현실 이야기인 듯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결핍은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모두 공허와 결핍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두진, 문미옥, 김성환, 아내, 노숙자 야구모자

 

그 결핍을 어떤 방식으로 채울지는 각자 다 다들 것입니다. 하지만 결핍이 너무나 크면 결국에는 잡아먹혀 공허한 껍데기만 남게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오두진처럼 말이죠.

오두진이 만드는 디오라마가, 문미옥의 생일 별자리 수호성인 화성이 그 공허와 결핍을 공간화해서 보여줍니다.

 

하지만 오두진과 다르게 문미옥은 희망을 꿈꿉니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면서 영혼과 기회라는 희망의 빛을 키웁니다. 이는 현재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달라서이지 않을까 싶네요.

오두진은 어린 시절부터 계속된 결핍으로 공허의 방으로 가득 찬 어른으로 자랐고,

문미옥은 평탄한 삶은 아니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소중한 아이까지 낳게 되어 진정한 가정을 이루었기에 돈이 결과인 공모 관계였지만 목적이 달랐습니다.

채워지지 않은 결핍은 파멸을 부르듯 오두진은 끝을 보려 하지만, 그에게도 빛이 있었네요. 살갑지는 않지만 온기가 느껴지는 거리에서 곁을 두고 있는 존재가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떠나는 그들의 뒷모습이 기억에 남네요.

 

성훈과 아내도, 노숙인 야구모자도 실체가 없는 삶, 허상인 삶을 살고 있었지만 모성 자체인 문미옥을 만나면서 그들은 변하게 됩니다. 그동안 그들을 짓눌렀던 분노, 슬픔 그리고 죄책감과 공허를 조금씩 내보내고 바깥세상으로 꿋꿋이 나갈 채비를 합니다.

삶의 고요함과 평온함 속에서 반짝이며 빛나는 아름다움을 찾길 바라는 마음으로 직접 지은 윤슬이라는 이름의 딸과 미옥이가 살아갈 따뜻하고 사랑이 넘치는 행복한 내일을 그려봅니다.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을 맘껏 누리길.

 

공생하지 못하고 결핍된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을 소설 속에서 허무하고 가슴 아픈 사건사고들로 접하니 더 슬프고 죄책감이 듭니다. 그리고 내 위치, 역할에 대해 되돌아보게 됩니다. 어떤 부모가 되어야 할지,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지. 옆에 있는 아이가 사람이 결핍되지 않도록 밝은 미소와 따뜻한 온기를 전해줘야겠습니다.

 

그리고 미옥이 말한 것처럼 상처 줬던 세상의 모든 것들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사랑의 마음과 슬픔의 마음과 그리고...... 용서의 마음이 깃든 자비를 말이죠.

살면서 거치는 모든 인연이 부처가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고, 사실상 나쁜 인연이란 없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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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식범 케이스릴러
노효두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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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식범(面識犯)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얼굴을 아는 관계인 사건의 범인을 말한다. 그래서 책 제목만으로 아는 사람이 저지르는 끔찍한 범죄를 상상했었다. 이 얼마나 단순한 생각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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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심리학자 도경수는 하안대학교 전임교수가 되면서 6년 전 하안시에 정착했다. 매년 명절과 부모님의 기일이 되면 홀로 산소를 찾던 경수는 그날도 아버지의 기일을 맞아 산소로 향했다. 매번 묵었던 숙소로 가던 중, 경수는 갑작스레 교통사고를 당한다. 그리고 코를 찌르는 화학약품에 취해 납치되고 만다. 

차가운 공간에 갇혀 있다가 가까스로 도망친 경수는 뒤쫓아오는 이를 피해 지나가던 차를 얻어타고 벗어나려고 하였으나...... 그 순간 깨달았다. 운전석에 앉은 사람의 얼굴이 자신의 얼굴과 똑같다는 것을!

범인의 정체를 몰랐던 공포보다 자신과 똑같이 생긴 도플갱어가 납치한 사실을 아는 순간, 끔찍한 수렁으로 빠지게 되어 벗어날 수 없다는 지독한 좌절감에 휩싸였다. 두려움과 함께 가족들 걱정으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려고 하는 것일까?

 

이 소설을 복수극을 다루고 있다. 

자신의 얼굴과 똑같은 범인을 알아차리는 순간 공포가 온몸을 휘감는다. 

그리고 자신의 행세를 하는 범인이 접근하는 상대가 가족이라면 온몸을 휘감았던 공포는 올가미가 되어 옭아매고 조여들며 압박해온다. 

범죄 심리학자 도경수와 똑같은 얼굴을 한 채 경수 가족에게 접근하는 이 남자는 어떤 연유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일까?

 

아이가 실종되고 범인이 잡히기까지 얼마나 끔찍한 시간들을 보냈던가?

드디어 잡혔다!

범인이 아닐 거라고 의심하지는 않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은 부분들이 있어서 그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범인은 결단코 내.아.이.를 죽.이.지.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정황상 그는 내 아이를 죽인 범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가? 

 

나성경의 살인 사건으로 두 가정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진짜 범인을 찾아 그날의 진실을 알고 싶고 똑같이 복수하고 싶은, 슬프고도 끔찍한 복수극이 시작되었다. 치밀한 계획으로 시작된 복수는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나타나 계획과는 다르게 전개된다. 그 와중에 상관없는 이들까지 다치게 되면서 복수의 칼날은 복수를 하는 자에게 또한 고통을 주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당사자를 마주한 성경의 아버지 석준은 묻는다. 

"왜 그런 거야?"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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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식범/노효두/고즈넉이엔티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 입장이라 대치되는 두 가정이 이해가 되었다. 

아이를 잃은 한 가정과 그 비극을 자신의 아이가 했다고 믿었던 또 하나의 가정. 

그 슬프고 끔찍한 사건 앞에서 경수는 극단적인 방법을 취했다. 순간의 잘못된 선택이 이렇게 큰 비극을 몰고 올지 알았더라면...... 하는 일순에 후회를 하겠지만 같은 상황이 되면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 인간은 이기적이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씁쓸함이 들었다.

 

이 일로 해체된 가해자의 가족들이 커다란 비밀을 공유한 채 가면을 쓰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입지를 다지며 살아가는 모습에 이질감과 불쾌감을 느꼈다. 사회적 명성 너머 개인적 평안과 안정이 결여된 공허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그들은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곁에 두고 있는 듯했다. 

 

 

내가 나임을 포기한 순간부터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스스로 믿을 수 없다는 건 세상 누구도 믿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아마도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얼굴이 어색해지기 시작한 게. (p.59)

 

 

성경이 살인 사건에 대한 전말이 드러난 순간 석준을 강타했던 감정의 물결에 나도 휩쓸려 한없이 떠내려갔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살인사건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배경에는 이유 없이 외면당하고 무시당하고 배척당했던 겹겹이 쌓인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 그 아픔이 또 다른 약자에게 분노로 발산되어 부메랑처럼 우리에게 돌아온 결과였다. 

 

우리 어른들이 드러내는 선입견, 고정관념, 편견들이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전달된다. 우리는 간과한다. 아이들의 세계와 어른들의 세계가 분리되어 있다고 여긴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이들의 세계는 어른들 세계의 축소판이다. 아이들의 세계를 보고 놀랄 일이 아니라 우리 어른들의 세계를 직시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말로만 "바르게 살아라.", "정직하게 살아라.", "친구들과 싸우지 말아라.", "거짓말하지 말아라."가 아닌 어른 스스로가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것이다. 어른의 세계가 변하면 자연스레 아이의 세계도 달라진다. 

 

 

욕실 천장에 맺힌 물방울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잠시 머릿속을 비우고 아무 생각 없이 그걸 바라봤다. 

그 물방울은 아슬아슬하고 위태롭게 흔들렸지만 끝내 떨어지지 않았다. 

그때 경수는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저 물방울처럼 자신도 악착같이 버텨내겠다고. (p.290)

 

진실을 알려고 하지 않은 채 보이는 결과만을 덮으려고 한 경수와 한나.

그 잘못된 결정을 부여잡고 지키겠다고 악착같이 버텼던 것이다. 도대체 무엇을 그렇게 지키고자 한 것일까? 진실이 없는 그들의 세계는 이미 끝이 정해져 있었던 건 아닐까. 

 

 

자신이 죽인 저 아이를 다시 살려야 했다. 

꽤 오랫동안 범인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에 매몰돼 있었다.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이제라도 그쪽으로 생각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p.325)

 

 

 

하아~ 깊은 숨을 내쉬어 본다.  

억눌려서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 풀어진 기분이다. 

<면식범> 단순히 죄를 저지른 범인을 벌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범죄가 일어나게 된 배경을 조명하면서 오늘을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소설이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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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돌아오라 부를 때
찰리 돈리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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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돌아로라 부를 때/찰리 돈리/안은주/한스미디어



강렬한 표지로 이목을 잡아끄는 이 책은 마지막 책장까지 긴장을 늦추지 않고 나를 지독하게도 끌어당겼다. 찰리 돈리 소설을 처음 접한 나는 그가 선사한 이 매력적인 세계가 뇌리에서 희미해질 때까지 천천히 음미할 것이다. 그리고 그 세계가 흐릿해지고 어느새 사라지면 그의 또 다른 소설을 펼치기로 마음먹었다.

 

시체 없는 연쇄살인, 40년 전의 진실을 파헤치다.

범죄 재구성 전문가 로리 무어는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회사를 정리하던 중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40년 전 '도적'이라는 이름으로 악명을 떨친 연쇄살인범은 피해자의 시체가 발견되지 않아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었지만, 사건의 유일한 증인을 재판정에 서지 못하도록 살인했다는 죄목으로 구속되어 62년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로리의 아버지 프랭크가 '도적'의 편에 서서 도왔다고 한다. 설상가상 로리는 코앞에 닥친 '도적'의 가석방을 도와야 하는 처지에 놓이는데......

 

'도적'이 사건을 저지르는 시대인 1979년 이야기와 로리 무어가 '도적'의 가석방을 두고 진실을 파헤쳐 가는 2019년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진행된다. 40년이라는 시간 간극이 있지만, '도적'을 둘러싼 두 여인의 추적은 갈수록 긴박해지고 아찔해진다.


과거 실종되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대중들의 관심이 고조되고 사회는 공포에 젖어가고 있을 때 실종된 여성들을 외면할 수 없었던 앤절라는 증거를 수집하고 사건을 분석하여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그녀는 자폐를 앓고 있으나 매우 똑똑한 여성으로 결국 범인이 누구인지 알아낸다. '도적'의 정체를!!!


40년 후 로리 무어 역시 자폐를 앓고 있다. 한정된 인간관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녀는 범죄를 재구성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경찰이 해결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맡아서 처리해 주고 있다. 일정한 생활리듬으로 생활하지 않는 그녀는 긴 휴식 후 <카밀 버드 살인 사건>을 맡게 된다. 이 여성의 사건을 맡게 된 직후,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고 그녀는 아버지가 40년 동안 맡았던 '도적' 사건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리고 그 일은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게 된다.


 

"언제나 선택의 여지는 있단다."

"어떤 것도 너를 겁줄 수 없단다. 네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진실은 놓치지 쉽죠. 바로 우리 앞에 있어도요."

 


초반에 소설을 읽을 당시에는 스릴을 위해 변태적인 살인을 즐기는 도적 때문에 불쾌감이 커서 작가가 독자에게 반복해서 흘리는 단서와 복선을 놓쳤다. 그냥 범죄자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어 피해자에 대한 감정이입으로 고통을 느끼면서 활자를 읽었다. 그러던 중 하나의 조각이 딸깍 맞춰지면서 모든 의문들이 스르르 전부다 사라지는 마법이 일어났다. 하지만 진실은 너무 잔인했고 '도적'은 끈질겼다. 하나의 조각이 딸깍 맞춰지는 순간 나는 숨이 턱 막히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돈리의 잘 짜인 각본이 제대로 나를 강타한 것이다. 스릴, 강박, 집착, 추적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절정에 다다랐다.

 


"살인자들은 왜 살인을 저지르는가?"

"살인자가 존재하는 한 어떤 시점이 되면 선택이 내려진다.

누군가는 어둠을 선택하고, 누군가는 어둠에 선택당한다."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왜? 나를 이해시킬 명확한 답을 찾을 수가 없다.

영혼에서 중요한 뭔가가 결손되어 있는 존재라는 로리의 표현이 적당한 것 같다. 원래 그러했을 수도, 차츰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소중하다고 느끼고 소통하는 중요한 뭔가가 결손되었으리라.

 

로리는 눈을 감은 채 장미에 코를 대고 그윽한 향기를 마셨다. 그런 후 쪼그리고 앉아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끝까지 읽으면 책 앞표지가 눈에 더 들어온다, 분홍빛 장미가.

 

자폐를 앓고 있어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일이 버거운 로리와 앤절라! 하지만 어느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진실을 마주하는 그녀들을 만날 수 있어서 가슴 벅찼다. 로리 무어와 앤절라, 그레타 할머니가 너무나 그리울 것 같다. 왠지 로리 무어와는 곧 다시 만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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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 유혹하는 예술가 - 시대를 앞선 발상으로 아르누보 예술을 이끈 선구자의 생애와 작품
로잘린드 오르미스턴 지음, 김경애 옮김 / 씨네21북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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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폰스 무하의 유혹에 빠져든다.

그만의 독특한 스타일에 이름과 그림은 알고 있던 예술가였다. 하지만 어쩌면 하나도 몰랐다는 게 맞는 표현일 듯싶다. 이렇게 웅장한 책을 받고 그를 알아갈 생각에 가슴이 설레는 걸 보면 그는 나에게 미지의 세계였다.

 


알폰스 무하, 유혹하는 예술가/로잘린드 오르미스턴/한겨레출판사



이 두툼하고 고급스러운 책의 앞표지는 1897년작 백일몽이다. 충족되지 못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비현실적인 세계를 상상하는 것. 이 고혹적인 삽화는 '무하 스타일'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으로 알폰스 무하가 그녀를 통해 우리에게 말을 거는 듯하다. 살짝 올라간 입꼬리와 맑은 눈빛이 유혹하는 세계에 빠져들 시간이다.

 

이 책은 <무하의 삶과 작품> 그리고 <무하의 스타일>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알폰스 무하는 체코 출신 화가이다. 그는 조국에 대한 애정과 슬라브족으로서의 자부심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무하의 대표작이자 숙원이었던 <슬라브 서사시>를 통해 그의 간절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무하의 이런 체코에 대한 유대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를 프랑스에 팔린 사람이라고 모욕하거나 아예 프랑스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꽃> 시리즈 p.36.7 <장미 - 아이리스 - 카네이션 - 백합>



가난했던 무하는 경제적인 이유로 후원을 받아 그림 공부를 해야 했다. 쿠엔 백작과의 인연으로 그림 공부를 계속하던 중 갑작스레 지원이 끊겨 걱정 없던 학생에서 한 푼도 없는 예술가가 되어야 했다. 시간이 흐른 후 쿠엔 백작은 무하가 학생으로 머물지 말고 예술가적 재능을 이용해 미술계에서 성공하는 인물이 되기를 바라 후원을 중단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다. 무하를 향한 쿠엔 백작의 염려와 무하의 열정과 노력이 상업미술계로 이끌었고, 결국에는 예술계에서 독톡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무하는 생계를 위해 아동서적의 삽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다 운명의 배우 사라 베르나르를 만나게 되었다. 무하가 그린 <지스몽다> 포스터는 사라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그는 사라와 두터운 신뢰를 형성하게 되었다. 무하는 의상, 무대장치, 배경, 포스터 삽화, 장신구에 이르기까지 베르나르의 모든 것을 디자인하면서 '여신 사라'를 창조했다. 사라는 그의 미술적 재능과 만족할 때까지 정보를 수집하는 그의 노력하는 자세에 감탄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의 손에 탄생한 사라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사라 베르나르의 공연 포스터들 <지스몽다> <사마리아 여인> <메데>


사라 베르나르 사진 & 알폰스 무하의 유화

 


그의 스타일을 흔히 아르누보로 평가하는데 무하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예술의 특성상 '아르누보' 스타일이라는 표현을 예술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가졌다. 무하는 자신의 '스타일'은 고국 체코의 전통예술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렇듯 그는 고국 체코에 대한 정신적 유대가 강한 인물이었다.

 


"나는 내 작품이 상류층 인사들의 응접실을 장식하는 모습을 보았다... 나는 화관과 그림이 있는 전설적 장면이 가득한 책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내 동포들의 것을 사악하게 도용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았다... 이 모든 장면을 목격하면서 내 생의 남은 시간 동안에는 오직 내 나라를 위한 작품을 만들 것을 엄숙히 다짐한다." _1900년 발칸반도를 여행하면서 친구에게 쓴 편지 중



순수미술과 상업미술의 경계를 허물다_알폰스 무하, 유혹하는 예술가 p.106,7



순수미술과 상업주의 가교 역할을 한 알폰스 무하.

생계를 위해 삽화가가 되었고 파리에서 엄청난 성공을 이루었다. 또 장식 디자이너로서도 훌륭한 솜씨를 발휘하였다. 포스터, 장식 패널, 잡지 표지, 보석 디자인, 조각상 등 다양한 상업 분야에서 그만의 스타일로 성공을 이루었다. 훌륭한 화가였던 그는 초상화, 순수미술도 하고 싶었으나 세상은 그에게 같은 스타일의 삽화를 요구하고 또 요구했다.



짝을 이루는 장식 패널 <비잔틴 머리 : 갈색 머리> <비잔틴 머리 : 금발머리> p.129,130

 

알폰스 무하가 고갱과 친분이 있고, 폴 세잔, 에드가 드가, 클로드 모네 등과 동시대에 활동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얀 움라우프'를 만나 화가가 되기를 결심했던 무하를 떠올려보면 과연 그는 자신이 원하던 그림을 그렸던 것인가? 의문이 남는다. 하지만 '무하 스타일'로 정의되는 그 수많은 작품들이 우리 대중에게 전해준 감동은 진심이다. 그리고 예술계에서의 독보적인 지위 또한 그가 노력한 결과이다. 그의 진심이 담긴 호소력 강한 작품들은 계속 알폰스 무하를 되새기게 할 것이다.

 

 

『알폰스 무하, 유혹하는 예술가』

이 책은 무하가 그림에 가진 순수한 열정에 공감하고,

'무하 스타일' 그 독보적인 작품 세계를 독자들에게 잘 선보일 수 있는 데 중점을 둔 아트북이다.

그만큼 작품을 세심하게 살펴볼 수 있고, 예전에 알았던 작품이라도 그 작품에 대한 상세한 설명으로 놓쳤던 의미를 알아가는 묘미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 세계에서 미술에 대한 갈망으로 항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던 화가를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마련된 것이다. 

 

순수미술과 상업주의 중간 지점에서 대중예술의 길을 활짝 열어준 알폰스 무하는 전문가적 식견이나 지식이 없더라도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는 그림으로 대중 곁에 있어준 화가이다.

알폰스 무하의 유혹에 여러분도 빠져들기 바라며......

 

<한겨레출판 서평단 하니포터 1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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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방 책 먹는 고래 25
최미혜 지음, 어수현 그림 / 고래책빵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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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방, 그 붉은빛을 뿜어낸 태양을 쏘고 싶었다.

붉은 방/최미혜 글/어수현 그림/고래책빵

 


언니는 하늘 향해 손가락을 겨누었다.

"탕! 탕! 탕!"

언니의 칼칼한 목소리에 태양이 움찔 몸을 떨었다.

 

나라 빼앗긴 설움은 아직도 가시지 않고 낙인처럼 그분들의 가슴에 남아 있다.

나라는 해방되고 세계에서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국가로 일어섰지만, 그분들의 아픔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지독하고도 끔찍한 대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분들의 고통을 치유하고자 부단히도 노력하고 있는 일부 의식 있는 사람들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할 듯싶다. 과거로 묻어두기에는 아물지 않은 상처이기에,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아야 할 비극이기에 현재의 우리가 그분들의 고통, 아픔에 응답해야 한다.

과거의 잘못을 진심으로 반성하기는커녕 국제적인 영향력을 과시하여 본인들의 입맛에 맞게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저 오만한 일본의 행태와 그에 동조하여 "일본군 위안부는 매춘부였다." 근거 없는 허무맹랑한 논문을 버젓이 세상에 내놓은 미국 하버드대 존 마크 램지어 교수를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구친다. 이것이 우리가 과거로 묻어둬서는 안되는 자명한 이유이다.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인 혜주는 갑자기 왕할머니와 살게 되어 못마땅하다.

요양병원에 계시던 왕할머니는 재작년 겨울부터 단기기억장애로 이상해지셨다. 왕할머니의 병세에 대한 걱정과 경제적 상황의 변화로 혜주 아빠는 왕할머니를 집에 모시고자 한다.

혜주는 소녀 시절 왕할머니 사진을 서랍에 고이 모셔두었다. 사슴 같은 눈을 가진 어여쁜 소녀로 뭔가를 갈망하는 눈빛이 좋아서이다. 그런데 나와 살게 된 왕할머니는 심술궂은 백발마녀이다.

혜주는 왕할머니와 함께 하는 모든 시간이 고역이었다.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왕할머니는 본인을 언니라고 부르라고 한다. 자신을 증손녀 혜주가 아니라 여동생 영자로 알고 있는 것이다. 이대로는 살 수 없게 된 혜주는 전쟁을 선포했다.

 


 

왕할머니의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고 있다. 가족, 친구 그리고 동자 불상 덕분이다.

동자 불상은 점집 하던 분이 사정이 있어 잠깐 두고 간 건데 왕할머니가 이야기를 털어놓는 존재이다.

 

귀가 있으면서 넌 들으려고도 안 하지?

동자의 눈빛이 나를 쏘아보았다.


위안부의 고통을 문학적으로 표현

 

혜주는 이렇게 왕할머니의 과거를 알게 된다.

왕할머니 박명자, 왕할머니 친구 아녜스 김순녀, 오봉팔 할아버지는 한마을에 살던 친구이다.

명자 왕할머니와 봉팔 할아버지는 서로 좋아하는 사이였으나, 일제 강점기 시대에 강제징용으로 위안부로 탄광 노동자로 끌려가 운명이 갈리게 되었다. 또 아녜스 김순녀 할머니는 그 당시 왕할머니의 인생을 꼬이게 해서 왕할머니를 매일 찾아와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김순녀 할머니도 시대의 희생자였을 뿐이다.

 

혜주가 활동하고 있는 연극반 동아리 소쩍새 친구들과 옥탑방 완희 오빠에게 그 이야기를 털어놓자 완희 오빠는 특별한 제안 하나를 한다. 왕할머니와 아녜스, 오봉팔 할아버지의 아픔을 연극으로 무대에 올리자고 한다. 별똥별로 비유한 표현이 마음을 울린다. 과거의 아픔이 우리에게 제발 도와달라고 애원을 담아 보내는 게 별똥별이라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왕할머니 일행이 너희들에게 부탁하는 것이니 이제 현재를 사는 너희가 응답할 차례다.

이제 혜주, 주은, 재혁은 적극적으로 왕할머니, 아녜스, 파리 오빠(봉팔 할아버지 애칭)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오래된 일기장에서 사슴 눈빛의 소녀가 튀어나왔다.

그 영롱한 눈빛이 겁에 질려 먹빛으로 변하고 차츰 빛을 잃어가는 과정을 숨죽이며 다시 읽었다.

나는 잊고 있었다.

할머니에게도 10대 시절이 있었다는걸.

할머니에게도 우리처럼 찬란한 시절이 있었다. 빛바랜 일기와 사진은 그걸 말해주었다. (p.81)

 


열여섯 살 찔레꽃 대본 & 연극


희나리 삼총사와 함께 한 연극 『열여설 살 찔레꽃』은 관객과 배우의 구분이 없이, 과거와 현재의 구분 없이 그분들의 아픔과 상처를 공감하고 치유하는 과정이다. 이제는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희나리 삼총사의 과거가 현재의 우리에게 닿아 우물 속에 갇힌 숨겨야 하는 비밀이 아니라, 함께 치유해가야 할 고통이 되었다.

 

지긋지긋한 시절이 끔찍해서 태양을 피해 눈을 꼭 감았건만 태양빛이 꿈속까지 따라와 뇌를 갉아먹었다는 왕할머니. 이제는 태양을 노려볼 수 있어.

혼자서 오롯이 감당해야 했던 고통을 아녜스와 파리 오빠, 혜주, 주은, 재혁, 완희 오빠와 나누면서 드디어 태양을 쏘았다. "탕! 탕! 탕!"

"어디에 있는 네가 무얼 하든 난 네 편이다." 이렇게 형성된 유대감, 연대감은 붉은 방에 갇힌 왕할머니를 구해냈다.

 

위안부에 대한 아픔을 알리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아픔을 현세대와 연대하여 치유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는 최미혜 작가님의 <붉은 방>

왕할머니를 받아들이지 않고 외면하고자 했던 혜주가 중학생이 되면 오봉팔 할아버지가 속한 장애인 협회에 찾아가 외롭고 힘든 분들을 만난다는 계획을 얘기한다. 이렇게 이어지는 관심과 활동으로 시대의 아픔이 잊히지 않고 치유되기를 희망한다.

 

최미혜 작가님이 저자 글에서 밝힌 현재에도 존재하는 붉은 방, 그 아픔에도 응답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려본다.

붉은 방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우리 모두의 과제이다.

묵직하고 울림이 있는 그리고 따뜻한 연대를 말하고 있는 동화책 <붉은 방>을 많은 이들이 읽고 동참하길 바란다.

 

>> 책에서 만난 어여쁜 순우리말 <<

* 윤슬 :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

(동화책에서는 연극을 함께 하는 극단 이름)

* 희나리 : 덜 마른 장작

(동화책에서는 다 마르지도 않았는데 불속에 던지면 희나리가 소리를 내며 천지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모습처럼 왕할머니네들이 말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자는 의미로 희나리 삼총사로 부른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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