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 위의 남자
다니엘 켈만 지음, 박종대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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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틸】은 강렬하게 시작한다.

- 신발 -

지금까지는 우리에게 전쟁이 찾아오지 않았다. (첫 문장)

한 시골마을에 유명한 광대 '틸 울렌슈피겔'이 나타나 한바탕 공연을 펼친다. 공연은 절정에 치달아 틸이 줄을 타고 사람들을 선동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틸의 재촉에 신발을 벗어던지고 신발을 맞아도 개의치 않고 웃는다. 그러다 틸의 욕설에 눈살을 찌푸리며 자기 신발을 찾아 헤매기 시작하는 데, 신발을 찾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동안 쌓였던 숨겨두었던 꾹 눌러두었던 분노, 질투가 폭발하였다. 서로 치고받고 뒹굴고 물어뜯고 우는 난장판이 되었다.

그리고 슬며시 틸은 다시 마차를 타고 떠났다.

이후 아무도 그 난장판을 입에 담지 않았지만 잊히지 않고, 마을 곳곳에 주민 틈틈이 남아 의아함과 두려움을 불러왔다.

1년 뒤 전쟁이 우리를 찾아왔다. (32쪽)


틸이 지닌 광대로서의 능력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타인의 마음을 긁어 드러내고 싶지 않은 부정적인 감정이나 치부를 드러내게 만든다. 익살스런 시작으로 호응을 돋우더니 어느새 바보, 멍청이 취급을 당하니 사람들이 어리둥절하게 된다. 이런 틸이 전해주는 독일의 30년 전쟁 이야기에 우리는 초대받았다. 이제 초대장을 펼쳐보자.


틸_줄 위의 남자, 차례



틸의 유희 <신발>

유명한 광대 '틸 울렌슈피겔'이 탄생하게 된 배경이 그려지는 <공중의 제왕>

30년 전쟁의 마지막 전투인 <추스마르스하우젠 전투>

30년 전쟁의 발발 동기인 <겨울왕>

틸과 넬레의 고난으로 대표되는 민중의 고통 <굶주림>

종교인의 독선 <빛과 그림자의 위대한 예술>

틸의 각성 <갱도>

30년 전쟁의 끝 <베스트팔렌>



틸, 줄 위의 남자/다니엘 켈만 저/다산책방



시간의 흐름에 따라 진행되는 소설이 아니기에 더 집중해서 읽게 된다.

중세 민담에 등장하는 전설적인 광대 '틸'을 중심으로 30년 전쟁의 허상과 이면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그 길고 긴 전쟁 속에서 이름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민중들의 아픔을 노래하고 있다. 

30년 전쟁의 사건 곳곳에 틸은 함께 하여 우리에게 피폐해진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민중들이 사는 마을에 수년간 양쪽 군인들이 몰려와 약탈을 반복하고, 어떤 군대에도 속하지 않은 약탈병들까지 등장하여 다 앗아간다. 이런 상황에서도 왕과 제후, 황제는 자신들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전쟁을 이끌기 위해 정치를 하고 궁정광대 틸을 옆에 두고 유희를 즐긴다. 틸은 이 모든 역사의 산증인이고 후대에 남길 이야기꾼으로 노래하고 연극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종교적인 이유로 시작된 전쟁이었지만, 정치적인 이유로 각국의 이권 다툼의 장으로 변해버린 30년 전쟁이 낯선 전쟁이었지만 그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여느 전쟁처럼 민중의 고통과 한으로 가득차 있다. 그러면서도 틸이 들려주는 익살, 해학이 단순히 무거운 역사만이 아닌 상상력이 펼쳐지는 장이 된다.


외줄타기는 추락으로부터의 도주이다. 


틸이 광대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던 원인을 제공한 예수회의 독선으로 가득찬 마녀사냥이 그려지면서 종교의 이름으로 통제, 억압하던 시대의 아픔이 크게 다가온다.

종교인, 왕, 제후 등 기득권층을 꼬집고 비웃음거리로 만드는 데 주저함이 없는 틸을 곁에 두고자 하는 겨울왕과 겨울왕비를 보면서 높은 자리에 있는 그들이지만 진정한 친구를 찾을 수 없는 허전함과 외로움을 엿볼 수 있다. 자기를 비웃고 풍자하는 틸에게 오히려 위안을 얻고 함께 하고자 하는 겨울왕비 '엘리자베스 스튜어트'에게 틸은 자신의 존재 이유를 말한다.



"평화로운 죽음보다 더 좋은 게 뭔지 알아? 죽지 않는 거야. 그게 훨씬 좋아."

"난 이제 간다. 항상 그래왔어. 어떤 곳이 비좁게 느껴지면 난 떠나. 난 여기서 죽지 않아. 오늘은 죽지 않아. 죽지 않을 거야."



광대의 자유로운 영혼이 안내하는, 판타지와 현실을 넘나드는 30년 전쟁의 서사를 이제 덮는다. 부디 모두에게 틸의 유희가 전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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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와 폐허의 땅
조너선 메이버리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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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체와 폐허의 땅』

: 강렬한 표지와 더 강렬한 추천사로 무장하고 돌아온 조너선 메이버리

시체와 폐허의 땅/조너선 메이버리 저/황금가지



많은 스토리의 단골 소재인 좀비,

우리나라의 킹덤, 부산행, 반도이나 미국의 새벽의 저주, 28일 후, 워킹 데드 등 떠오르는 영상물들이 많다. 스릴러, 추리소설 분야 책을 즐겨있지만, 잔인하고 끔찍한 장면 묘사는 좋아하지 않아 위의 작품 중 28일 후 만 감상했다. 이렇게 좀비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소설은 이번 작품 <시체와 폐허의 땅>이 처음이다. 좀비 시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호밀밭의 파수꾼>이라는 평 때문에 호기심이 생겼다. 대부분 끔찍한 살육, 서로 죽이거나 죽는 추격전, 극적인 탈출이 주를 이루는 좀비물에 성장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준 이유가 궁금해졌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

좀비의 공격으로 세상이 멸망한 '첫 번째 밤' 이후의 시간을 다룬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좀비가 나타나 발생한 세상의 혼란이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라,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조명한다.


살아남은 이들은 철조망으로 울타리를 쳐 마을과 시체들의 땅을 분리했다. 이전 시대처럼 편리한 생활을 이루면서 살아가지는 못하지만 근처 좀비들을 처리해서 어느 정도 안정된 상황이라 일상을 누리면서 생활을 한다. 한정된 인원과 자원으로 유지되는 마을이라 14세가 되면 누구나 직업을 가져야 배급을 받을 수 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

좀비의 공격으로 세상이 멸망한 '첫 번째 밤' 이후의 시간을 다룬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좀비가 나타나 발생한 세상의 혼란이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라, 남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조명한다.


살아남은 이들은 철조망으로 울타리를 쳐 마을과 시체들의 땅을 분리했다. 이전 시대처럼 편리한 생활을 이루면서 살아가지는 못하지만 근처 좀비들을 처리해서 어느 정도 안정된 상황이라 일상을 누리면서 생활을 한다. 한정된 인원과 자원으로 유지되는 마을이라 15세가 되면 누구나 직업을 가져야 배급을 받을 수 있다.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 베니 이무라는 결국 사냥꾼이 되기로 했다.(첫 문장)

벤저민 이무라는 다양한 직업을 경험해 보지만 딱히 맘에 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결국 좀비 사냥꾼을 하기로 한다. 그래서 평소 사이가 좋지 않지만, 유명하고 존경받는 좀비 사냥꾼인 이복형 톰에게 배우기로 한다.


베니(벤저민)은 좀비를 매우 증오한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분노로 가득 차있다. 왜? '첫 번째 밤'에 좀비에게 물려 엄마와 아빠를 잃은 기억이 자신이 기억하는 첫 기억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좀비에게 물린 아빠, 그 아빠에게 쫓기는 엄마, 엄마의 하얀 블라우스와 빨간 소매를 뒤로 한 채 자신을 안고 도망치는 톰이 기억의 파편들로 남아 베니를 괴롭히고 톰을 미워하게 한다.


좀비 사냥꾼이 되기로 한 베니는 톰과 함께 '시체들의 땅'으로 들어가 다양한 일들을 직접 경험한다. 좀비를 만나고, 좀비 사냥꾼들의 만행을 목격하고, 좀비들을 돌보는 수도사를 만난다. 그리고 톰이 행하는 좀비 영결식을 목도한다. 이제껏 자신이 믿었던 진실의 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벤저민 이무라는 다양한 직업을 경험해 보지만 딱히 맘에 드는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결국 좀비 사냥꾼을 하기로 한다. 그래서 평소 사이가 좋지 않지만, 유명하고 존경받는 좀비 사냥꾼인 이복형 톰에게 배우기로 한다.


베니(벤저민)은 좀비를 매우 증오한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분노로 가득 차있다. 왜? '첫 번째 밤'에 좀비에게 물려 엄마와 아빠를 잃은 기억이 자신이 기억하는 첫 기억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좀비에게 물린 아빠, 그 아빠에게 쫓기는 엄마, 엄마의 하얀 블라우스와 빨간 소매를 뒤로 한 채 자신을 안고 도망치는 톰이 기억의 파편들로 남아 베니를 괴롭히고 톰을 미워하게 한다.


좀비 사냥꾼이 되기로 한 베니는 톰과 함께 '시체들의 땅'으로 들어가 다양한 일들을 직접 경험한다. 좀비를 만나고, 좀비 사냥꾼들의 만행을 목격하고, 좀비들을 돌보는 수도사를 만난다. 그리고 톰이 행하는 좀비 영결식을 목도한다. 이제껏 자신이 믿었던 진실의 세계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시체와 폐허의 땅>은 진실에 대해 말하고 있다. 분명 진실은 한 가지일 텐데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진다. 눈에 보이는 사실뿐만 아니라 사실 이면에 감춰진 진정한 진실이나 미처 살피지 못한 사실들로 인해 진실이 달라질 것이다. 선택할 수 있는 우리가 제대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시체와 폐허의 땅/60쪽



'첫 번째 밤' 톰 가족에게 일어난 비극에 대한 진실,

마을과 버려진 세계 '시체들의 땅' 사이의 울타리에 대한 진실,

찰리와 해머 일당 좀비 사냥꾼에 대한 진실.

책을 읽을 때 중점을 두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우리의 시선은 어떤 진실을 향하고 있는지 말이다.

책을 읽을 때 중점을 두고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우리의 시선은 어떤 진실을 향하고 있는지 말이다.



<시체와 폐허의 땅>은 '좀비'에 대한 시선도 남다르다. 좀비를 괴물로 치부하지 않고, 존중받아야 할 대상으로 본다. 죽은 사람이고 어떤 원인 모를 이유로 저렇게 변해버린 사람이다. 살아있지 않아도, 우리에게 두려운 존재일지라도, 어쩔 수 없이 죽여야 할 때조차도 존중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한다. 가족들에게 부탁받아 좀비의 마지막을 보내는 영결식을 수행하는 톰. 그 의미를 이해하면서 베니는 한 단계 성장한다.



그리고 악한 의도 없이 위협을 하는 존재인 '좀비'와 고의로 악의를 품을 수 있는 찰리 일당이 대비되면서 과연 진정 괴물은 누구인가?에 대해 묻고 있다. 물려고 달려드는 좀비는 위험한 존재이지만, 힘없는 이들을 힘으로 지배하고 이득을 취하려고 하는 찰리는 두려운 존재이다. 찰리의 악행은 이미 수많은 이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톰과 베니의 선택은 이제 단 하나뿐이다.




톰은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을 베니와 함께 매듭지었고, 그 과정에서 '첫 번째 밤'에 대한 오해를 풀고 진정한 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가두고 있던 철조망에서 벗어나 시체들의 땅 저편 '동쪽' 미지의 세상으로 떠난다. 언젠가 보았던 비행기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그들처럼 자유롭게 살아가는 또 다른 이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란히 걸어갔다.

 






톰은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을 베니와 함께 매듭지었고, 그 과정에서 '첫 번째 밤'에 대한 오해를 풀고 진정한 가족이 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가두고 있던 철조망에서 벗어나 시체들의 땅 저편 '동쪽' 미지의 세상으로 떠난다. 언젠가 보았던 비행기를 다시 만날 수 있기를. 그들처럼 자유롭게 살아가는 또 다른 이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라며 나란히 걸어갔다.








<시체와 폐허의 땅>을 읽으면서 가족애를 느끼고, 베니와 친구들, 톰과 친구들의 소중한 우정에 감사하며, 베니와 닉의 사랑을 응원하였다. 박진감 넘치는 액션 묘사에 같이 긴장감이 고조되었고 좀비로 변해버린 가족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마지막 편지에 같이 울컥하고 말았다.


그리고 철조망 안에서 안전하다고 믿으며 살아가는 마운틴사이드 마을 주민들과 새로운 내일을 꿈꾸며 두려움을 이기고 떠나는 톰 일행이 오버랩되면서 살아가는 자세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다양한 매력을 지닌 소설 <시체와 폐허의 땅>이 영상으로 제작 중이라 하니, 톰과 베니 형제의 케미를 스크린에서도 기대해 본다.


영웅이 된 사람들은 보통 전혀 그런 삶을 살고 있지 않다가,

어느 순간 자기 내면에서 타오르는 큰 불꽃을 발견한 사람들이었어.

불꽃은 언제나 마음속에 있었겠지만, 발견할 기회가 없었던 거지.

자신이 가장 최악의 시기에 가장 밝게 빛나게 되리라는 것을 평생 모르고 사는 거야. (2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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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의 시간 - 제26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유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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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의 시간』

'불펜'의 사전적 의미

: 야구에서 구원 투수가 경기 중에 준비 운동을 하는 장소



불펜의 시간/김유원 저/한겨레출판사



우리는 어떤 규칙을 지키고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승부의 세계에 던져진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합니다.

<불펜의 시간>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인 준삼, 혁오, 기현을 통해 묵직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이기는 게 중요할까?

얼마나 중요할까?

무엇보다 중요할까?"



"이 주임은 누구처럼 살고 싶어?"

이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질문을 받은 준삼은 한동안 대답을 못 하다가 때마침 TV에 나온 야구선수인 "권혁오요." 라고 답을 합니다.

준삼이 바라는 권혁오처럼 사는 인생은 무엇인지 저자는 <불펜의 시간>을 통해 짜임새 있게 풀어내고 있습니다.

다큐멘터리 연출자로서 쌓아온 현장지식이 현실감을 부여해 야구로 대표되는 스포츠, 증권회사로 대표되는 기업, 스포츠 신문사로 대표되는 언론을 배경으로 결과적으로는 '승부'에 집중하는 사회 시스템을 잘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 소설의 주제의식은 권혁오 선수의 '볼넷'이 구심점이 되어 확장됩니다.

준삼과 기현은 각자 자신의 직장 안에서 선수로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만의 치열함으로 승부하고 있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기쁨보다 예정된 모욕'을 선택한 준삼은 악취와 모욕을 견디다 모욕을 주는 사람이 되는 끔찍한 일까지 잘 견뎌내 끝까지 회사에 남고 싶습니다.

기현은 편집장의 우호 아래 자신감 넘치는 승부사 기질로 특종을 찾아 헤맵니다. 특종에 촉을 곤두세우는 모습은 사냥을 나선, 먹이를 노리는 굶주린 야생동물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좋은 기자요, 기자의 사명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는, 승부수를 던지고 있는 이들에게 혁오의 '볼넷'은 이해되지 않는 의문이고, 용납되지 않는 반칙입니다. 준삼은 혁오의 중학교 야구부 동창으로 혁오의 아름다운 투구폼을 동경하였고, 기현은 초등학교 시절 야구를 했으나 경제적인 이유로 그만두어야 했기에 더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입니다.

혁오는 타고난 재능을 지닌 투수로 어렸을 때부터 좋은 기록을 세워 주위의 기대와 칭찬으로 촉망받는 에이스였습니다. 그런 그가 예기치 못한 사고로 제구가 되지 않아 구원투수로 나갔으나 '볼넷'으로 교체되는 상황은 사회에서 보는 기준으로는 '실패'입니다. 하지만 그가 정한 규칙인 이기지 않는(≠지는) 경기였고, 기쁨이 넘치는 투구였습니다.


불펜의 시간/김유원 저/한겨레출판사


준삼은 혁오의 아름다운 투구폼에 빠져들수록 회사 내 부조리와 악취, 모욕을 견뎌내기 힘들어집니다.

준삼이 회사원 또한 승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선수임을 깨닫고 강박으로 인해 꾸게 되는 꿈은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왜 뛰는지 아나요? 아니 생각해 본 적은 있나요? 왜 그렇게까지 뛰어야 하나요? 그 와중에도 준삼은 피범벅이 된 손으로 자판을 두드리는 듯한 제스처로 부장에게 생존을 허락받는 장면은 현대 직장인의 처절한 자화상 같아 가슴 먹먹해졌습니다.

기현은 권혁오와의 인터뷰를 통해 기자의 자세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리고 '특종'을 향한 강박에서 벗어나 사회의 또 다른 고통(의료법 로비)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불펜의 시간을 보내고 그들은 변화를 맞게 됩니다.



패배한 사람의 눈을 응시해서는 안 된다. (38쪽)

혁오야 너의 승리가 다른 사람의 상처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해.(38쪽)

추하다. 비열해질 기회까지 잡을 필요는 없다고, 놓쳐도 되는 기회도 있다고

일부러 볼넷을 던지는 사람이 알려주었다. (210쪽)

혁오가 필사적으로 지킨 아름다운 조각이 자신의 조각을 자극했음을.

누구나 아름다움의 조각을 자기고 있으며, 우리에겐 서로의 조각을 자극할 힘이 있음을.

"나도 있다." (251쪽)





이 소설은 매력적입니다.

책을 읽다가 보면 예상되거나 원하는 방향이 있는데, 중요한 대목에서 매번 빗나갔습니다.

내가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느새 캐릭터들에게 애착이 생겨서 별 탈 없이 나아가기를 바라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소설 3명의 주인공 중 '준삼'에 눈길이 계속 갑니다. 가장 자기 자신이 보이지 않는 인물이기에 그런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자신이 고민하고 계획 세우는 게 아니라 세상이 제시하는 규칙에 맞춰 기본적인 삶, 평범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직장 내 부조리를 알면서도 무시하며 최대한 버텨보려고 노력하는 평범한 그는 우리네 보통 사람이 투영됩니다. 악취를 맡을 수 있고 거북해할 수 있는 아직은, 부조리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준삼이기에 직장 생활이 더 곤혹스럽고 끔찍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혁오'가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느끼면서 변하게 됩니다. 이런 악취를 뿜어내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아름다운 조각을 가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세 주인공 외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흥미롭습니다. 인생 한방을 노리는 준삼의 아버지나 승리에 도취되지 않도록 당부하는 혁오의 어머니 현숙, 기현의 친구 새롬이 기억에 남습니다. 특히 새롬은 협동조합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그 일을 통해 쉽게 무너지지 않는 걸 만들고 싶어 합니다. 문제는 언제든지 생길 수 있고, 당면한 문제 해결이 목적이 아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단순히 하나의 현상이나 상황이 아니라 다양한 경우에 적용할 수 있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시스템. 그러려면 당면한 문제 해결에만 치중해 쉽게 분노하고 쉽게 설득당하고 쉽게 결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시선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새롬 또한 세상의 규칙 안에서는 성공한 사람은 아닙니다.

저자는 사회가 정한 규칙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신의 길을 다지며 걸어가려고 하는 준삼과 혁오, 기현의 앞길을 밝고 희망차게 그려내고 있지는 않습니다. SNS 기자로 전향한 기현의 인터뷰에서 접할 수 있었던 여성 기자에 대한 편견, 선발이 된 혁오가 보여준 경기 등이 그렇습니다. 

이제 '시작'이고 그들이 찾은 '아름다운 조각'과 '작고 단단한 것'이 주위에 스며들어 서로를 자극해 함께 나아갈 동료를 만들어가는 데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들은 세상의 시선에 얽매이지 않고 거침없이 웃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이제 그들만의 작고 단단한 것을 꼭 쥐고 공감하는 이들을 서로 자극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한겨레문학상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한겨레문학상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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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어른 - 어쩌다 그런 어른은 되고 싶지 않다
김자옥 지음 / 북스고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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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어른이 되었다.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었는데, 막상 '어른'의 무게가 무겁게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내 모습에서, 다른 다 큰 어른의 모습에서.

어른이니까,

아니면 어쨌든 어른이니까

궁색한 핑계 말고

어른 다운 어른이 되어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그런 어른>


저절로는 아니지만, 태어난 이상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리에게 부여되는 자리와 역할이 있다.

아기 - 유치원생 - 초등학생 - 중학생 - 고등학생 - 대학생 or 사회인 그리고 어른

어느 자리든 힘들다 하겠지만, 어른이라는 단계에 이르면 부담감이 클 수 밖에 없다. 가정, 직장, 사회 전반에 걸쳐 왕성한 활동을 하며 현명하고 지혜롭고 배려심 넘치는 자세로 다른 세대들을 받쳐주고 이끌어주리라는 기대를 받기 때문이다. 적어도 어렸을 때 내가 생각했던 '어른'은 이러했다. 하지만 띠로리로~~  내가 막상 어른이라 불리우는 어른이 되고보니 그건 환상이고 허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른이 되었다고 해서 어른으로서 바로 설 수 있는 사람은 소수였다. 어른이 될 준비가 필요했는데 무심했던지 부족했던지 <그런 어른>이 되지 못했다.

이 책의 묘미는 작가님과의 동질감을 느끼는 데 있다. '나랑 비슷하게 생각하고 반응하는 이가 있구나.'라는 감동?이라든지, '생각을 글로 써서 전달하는 작가도 못하네.'라는 위안?이라든지.

'이제 우리 다같이 노력해보아요.' 이런 동지의식으로 <그런 어른>되기에 동참하려 한다. 작가님 말씀대로 어쨌든 어른이 되었으니, 좀더 어른스러운 어른이 되어보자!


작가님처럼 먼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은지 생각을 해봐야할 것 같다.

- 사랑할 수 있고 사랑받는 어른

- 헐렁한 게 아니라 여유로운 어른

- 내 몫을 다하는 어른

작가님이 원하는 <그런 어른>에 공감하고 나는 유연한 어른이 되고 싶다.




<그런 어른> 김자옥 저/북스고>


숨바꼭질 같은 대화는 서로 지치게 만든다. 지킬 건 지키면서도 충분히 자기표현을 할 수 있어야 진짜 어른이다. 정말 진심이 뭔지 모를 정도로 꽁꽁 숨겨놓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가 보여주기 싫다면 인정, 하지만 그렇다면 진심을 몰라준다. 말을 해야 아나? 이런 태도를 보이면 안된다. 이해받고 공감받고 싶으면 진심을 드러내면 된다. 말하지 않기로 했다면 상대방을 탓하지 말고 자신이 감당해야할 몫이다. p.21


공감된다. 그리고 너무 자기 입장만 얘기하는 사람도 불편하다. 처음 들었을 때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가도 이제 그만, 반복되는 패턴에 지치게 된다. 너무 많이 드러내지 않고 자신이 감당할 몫도 남겨뒀으면 한다. 그래야 개선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사랑이란 그 사람 입장이 되어 생각하는 것 아닐까. 그저 보고 싶고 생각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바라는 것, 추구하는 것이 뭔지 정도는 알고, 그걸 인정하고 배려하고 존중해주는 것까지가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감정'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행동'해야 진짜 사랑이다. p.68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사랑받을려고 한다. 그만큼 사랑하는 일은 힘든 일이다. 나 자신이 원하는 것, 지키고 싶은 것이 있는 것처럼 상대방도 그렇다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여주자. 어느 순간 보면 다 눈에 거슬리는 상대방의 행동, 습관이 서로를 힘들게 하려는 게 아님을 받아들이는 것부터가 시작인 것 같다. 내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닌 것처럼, 그런 사람이고 편한 것 뿐이리라. 그래도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은 대화로 풀어보자. 우리는 어른이니까. :)

 


살면서 내가 정한 예상 답안만 줄여나가도 삶이 좀 가벼워지지 않을까. 그럼 훨씬 더 편한 마음으로 '그럴 수도 있지'라며 더 많은 것들을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p.82


답정녀로 살아가는 나로서는 뜨끔한 이야기였다. 나는 질문까지 답을 예상하고 물어보는 중증환자이다. "너는 이런 거 안 좋아하지?" 내가 뭔데 남 취향까지 정해주는 거지? 나조차 의아한데 상대방은 얼마나 어이없을 지. 고쳐야 하는 데 생각만 가득하다. 예상 답안을 줄이고 좀더 여유롭게 살아가고 싶다.

 

아이를 낳았다면 아이가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당연히 줘야 하는 사랑인 것이다. 아이가 자신의 삶을 잘 살고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싶다. 내가 낳아준 게 아니고 아이가 태어나준 거니까. p.105


'낳음 당했다' 표현에 적잖이 당황했다. 태어났다. 낳아줬다. 세상에 한 인간이 존재하게 되었다는 표현이지만 의미가 미묘하게 다른 것 같다. 나는 '아이가 태어났다.' 로 정했다. 독립적인 개체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우리 곁에 있을 때 맘껏 사랑해줘야 겠다. 사랑한다, 울 튼튼이, 튼실이 .

 


(p.142)나이를 먹어서 책을 안 읽고 생각하지 않으면 확실히 표시가 났다. 생각이 좁고, 고집스럽고, 마음이 너그럽지 못했다.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많이 하자.


(p.152)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인정하는 순간 한계를 극복하고 넘기보다는 한계라는 거친 파도를 유연하게 타게 되었다.


(p.159)괜찮은 실패의 맛을 알아가다. 조금씩 실패에 의연해지려고 하지만 아직도 실패가 두렵다. 이전과는 조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실패하더라도 낙담만 하고 있지않고 실패의 맛을 꼭꼭 씹어가며 느껴본다는 것이다. 실패의 매운 맛이 성공의 단맛을 부를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면 꽤 괜찮은 실패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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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개의 단편 주 <표제작> 숏컷이 담아내고 있는 주제의식이 눈에 띄네요.

'균형을 맞추는 추로써의 페미니즘'

왜곡되어가고 있는 페미니즘을 청소년 문학에 어떻게 접목시켜 이야기해나갈 지 궁금합니다.

숏컷, 성인들도 쉽게 도전할 수 없는 스타일인데 한창 외모에,타인의 시선에 신경쓸 나이인 십대가 숏컷으로 본인의 의지를 다지는 모습이 새롭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주변환경과 가정 상황 속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십대들의 분투기를 응원하고 싶습니다.

https://blog.naver.com/jamo97/222430079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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