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만 먹으면 트리플 5
장진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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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 트리플 시리즈 5

  <마음만 먹으면 > 

 

새로운 작가를 시차 없이 접할 수 있다는 트리플 시리즈 취지처럼, 이 작품을 통해 장진영 작가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이 작품 또한 시리즈 다른 작품들처럼 세 개의 단편과 에세이 한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 곤희

- 마음만 먹으면

- 새끼돼지

- 에세이_한들

 

세 작품 모두 사건들이 크게 발생하지 않는데, 등장인물들 간 감정선들이 묘한 마찰을 일으키면서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하였다. 건조하고 깔끔한 문체가 그 느낌을 배가시켰다.

 

 

<곤희>는 피해자이면서 동조자인 열아홉 살 곤희를 맡게 된 나 이야기이다. 나는 법에 따라 판결하는 정의로운 판사이다. 내가 판결한 어느 부인이 죽고, 이를 질책하듯이 부장과 선배는 나를 시험한다. 열아홉 살 생일전에 보육원을 떠나야 하는 곤희를 이틀간 돌보는 임무이다.

 

 

 생각과는 다른 이미지의 곤희를 만나고 내가 망설여지는 것이 느껴진다. 주어진 역할을 해내고 싶은 욕심과 곤희에 대한 애처로움이 가져온 선의, 인간적인 호기심 사이에서 갈등한다.

 곤희와 보내는 이틀, 나는 곤희가 살 집에도 가보고 그녀가 가보고 싶다고 한 보육원에도 가본다. 예전에 곤희가 살았던 곳, 이제부터 곤희가 살아갈 곳. 선명하게 대립되는 공간에서 곤희의 이미지는 한결같다.

 곤희가 떠나기 전날 밤에 차려준 파인애플 안주와 챙겨간 파인애플 통조림 뚜껑을 떠올려 보면 곤희는 피해자이자 동조자인 것 같다. 자신의 슬픔을 늘여놓고 위로해 주는 이들의 감정을 극대화하면서 본인은 저만치 멀리서 무심히 바라본다. 곤희를 보내고 나는 또 다른 제의를 거절한다. 이게 정답인 걸까? 곤희의 "선생님은 좋은 사람이에요."라는 말은 당혹스럽다. 도움을 청하는 말이 아니라, 관계를 끊는 말이다. 그걸 알아차리는 나 또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흥미롭다.



 <마음만 먹으면>에서 엄마와 나의 관계와 나와 딸의 관계가 교차되면서 보여준다. 나는 엄마한테 제대로 양육되지 못하고 버림 당한 채 정신병원에 갇혔다. 엄마는 나도 모르고 자신도 모르는 나의 병 원인을 알아내는 것이 자신을 증명하는 것인지 먹지도 못하는 음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나를 찾아온다. 소통하지 못하는 괴로움은 나를 더 말라 가게 한다.



 나는 엄마가 되어 똑같이 딸을 키우면서 달라지려 한다. 마음으로 아이를 키운다. 마음과 마음이 닿는 스킨십을 나누면서 처음인 엄마 노릇을 스스로 알아낸다. 어린 시절 하굣길에 넘어진 기억, 불행과 우연히 충돌했다고 우연에는 이유가 깃들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그게 내 병의 시작이고 원인이었을 것이다. 내 딸이 하원 길에 넘어졌다. 나를 바라보며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 묻는 딸에게 나는 아무것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나는 내 아이에게 예전에 기억 속에 두고 온 노래 가사를 들려준다. 이별, 그리움, 사랑, 마음 가득한 곡들의 노래 가사를 내 아이에게, 예전의 나에게 속삭이듯 들려주는 나는 마음을 먹었다.


<새끼돼지>

 하엘은 수수께끼다. 관계가 틀어질 빌미가 되는 말들을 자연스럽게 대화 사이에 끼어 넣는다. 시터가 나의 옷을 입는다, 남편이 연애를 한다. 거짓이라면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은 돌멩이를 던지고 물결이 퍼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같다. 그가 처한 상황은 안타깝지만, 내가 하엘과 가족을 분리하고자 하는 마음은 이해가 된다.

온정과 긍휼만으로는 하엘을 온전히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걸, 하엘로 인해 가족들 사이에 미묘한 틈이 생겼다는 걸 안 나는 그를 다시 지옥으로 돌려보내고 만다. 웃으면서 떠나는 하엘이는 본인이 원하는 대로 야구선수가 될 수 있을까?




<한들>

 자살을 시도했던 동생이 전화를 했다. 베지밀 병을 내가 가져갔다고 돌려달라고. 아무 편의점에 들어가 베지밀을 사 마시고 헹구고 돌려줬다.

"고마워. 이제 가도 돼."

 내 동생 산주는 예전의 산주가 아니다. 되찾았다 한들 잃어버리지 않은 건 아니듯.

그래도 다시금 관계를 맺어가는, 동생이 아는 미래대로 실현시켜주는 언니가 있어 산주가 다시 웃을 수 있을 것이다.


 등장인물 성격이 강하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서로를 자극하는 관계들이 신경을 날카롭게 만드는 소설이다. 짧은 단편들인데도 호흡을 길게 가져가야 했다. 몇 번씩 다시 읽게 되는 소설이다.

 

<자음과모음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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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빠진 이야기
수나노 지음 / 바른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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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책을 받기 전에 <어깨 빠진 이야기> 소개 글을 읽었을 때는 제목이 추상적인 의미라고 생각했었다. 어깨가 빠지는 상황처럼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수나노가 성장하는 이야기일 줄 알았다. 하지만, 오산이었다. 정말! 어깨 빠지는 이야기!!!였다. ⊙.⊙


바른북스 출판사 <어깨 빠진 이야기> 소개 이미지


 수나노가 살아온 시간들 속에서 어깨가 빠지는 사고가 시작이 되기도 하고, 끝이 되기도 하면서 많은 일들이 벌어지게 된다. 수나노는 일반적인 평범한 삶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로 인해 다양한 경험들이 쌓이고 그런 인생 경험들을 통해 성장하게 된다.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동경과 꿈에 대한 열정으로 무작정 떠난 멕시코에서 스케이트장에서 넘어져 어깨가 빠지는 일이 벌어진다. 그 당황스러운 현장에 함께 한 이는, '조나단'으로 친구의 친구로 현지를 소개해 준다 해서 만난 아는 사람일 뿐이다. 고맙게도 조나단은 119 앰뷸런스도 타고 병원도 같이 가주고, 가족까지 불러서 함께해 준다. 낯선 이국땅에서 두렵고 외롭고 난처했을 상황이 따뜻한 공기로 가득 차게 해줬다. 얼마나 고마운 친구인지, 이렇게 인연이 만들어진다.

낯선 이국땅에서 만난 좋은 현지인들도 있는데, 이와는 반대로 힘이 되어줘야 할 직장 한국인 대표는 오히려 그녀를 협박하고 열정페이만을 강요한다. 그래도 강한 수나노는 이런 경험으로 멕시코를 등지지 않고 또 다른 직장을 찾아 날아오른다.새가슴인 나는 젊었을 때 홀로 여행을 간다는 것을 꿈도 꾸지 못했는데, 이렇게 당차게 꿈을 향해 나아가는 수나노의 열정과 용기에 감동받아 그녀의 앞날을 절로 응원하게 된다.



 대학생 때 과테말라로 여행을 갔는데 거기서 만난 이들과 동굴 탐험을 떠나게 된다.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결국에는 포기하게 되고 혼자 낙오되는 과정에서 어깨까지 빠지게 되는, 맘 아픈 경험을 하게 된다. 고통을 이기기 위해 흡입한 마리화나 몇 모금은 끔찍한 환각을 남겨주면서 큰 가르침을 주었다. 이런 경험들 속에서도 교훈을 얻고 힘을 얻는 그녀는 강한 사람이다.


 중학교 때 첫사랑? 같은 오묘한 감정을 느끼는 상대와 데이트 중 어깨가 빠지는 사고, 고등학교 때 SNS 친구와 마음을 나누다가 만났다 이상한 일을 당하게 되고 이 때문에 왕따가 되어 외로이 학교생활을 했던 일, 산악회 동아리 활동을 하다가 인연을 만나 좋은 관계를 만들어가다가 어깨가 빠지는 사고를 시작으로 엇갈리게 되는 일까지 그녀의 연애사는 결코 순조롭지 않았다. 이렇게 수시로 어깨가 빠지는 상황이 계속되다 보니, 사람을 만나 좋은 감정으로 빠지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본인은 계속 신경 쓰이고 조심스럽고 당연히 그 부분에 대해 세심하게 배려해 주는 이를 바라게 되었을 텐데 맘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게 여러 일들을 겪고 엄마가 된 수나노, 칠레에서 생활하고 있는 그녀는 남매의 어엿한 엄마이다. 딸아이와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감행한 스케이트장 나들이! 멕시코에서의 기억은 그녀를 움츠리게 만들고 딸아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신경 쓰인다. 다행히 동행한 친구 엄마 도움으로 아이는 스케이트를 타게 되고, 마음을 놓을 때쯤 사고가 일어난다. 그리고 다시 병원행!!! 이번엔 그녀가 아닌 그녀 딸, 금이 간 딸 어깨를 확인하면서 의사 선생님께 어깨 상태를 여쭤보는 그녀의 마음이 어땠을지는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좋은 것만 주고 싶은 게 부모인데, 하필이면 살아오면서 많은 일들을 불러온 어깨를 유전으로 물려주게 되었으니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일 것이다.


 하지만, 수나노에게 말해주고 싶다.


 현진이는 수나노의 딸이라고. 그녀가 그랬던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움을 이기고 앞으로 힘차게 나아갈 것이라고, 그녀가 해줄 수 있는 건 딸의 선택을 믿고 존중해 주고 커가면서 겪을 그 수많은 일들을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힘이 되어주는 든든한 버팀목의 역할이다. 남에게 보여주는 삶이 아닌, 사랑하는 이들과 소중하고 따뜻한 추억 쌓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딸아이의 삶을 응원해 주자.



<바른북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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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가족이 마음의 안정을 주지 못한 지금,
민희와 하빈은 달리기 시작한다.

땀방울이 흐르고,
숨이 가빠지고,
다리가 단단해지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두 소녀의 힘찬 달리기 여정이
그들만의 인생 지도를 조금씩 그려나가고 있다.
두 소녀의 달리기에 동참하여 같이 달리고 싶다. ☆

https://m.blog.naver.com/jamo97/222399290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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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스파이 스키 스쿨 1~2 세트 - 전2권 책이 좋아 3단계
스튜어트 깁스 지음, 김경희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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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파이 스키 스쿨> 

 

 

CIA, 첩보, 스파이, 작전, 악당

 

 

 어린이와 함께 어울리기 힘든 단어들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가슴이 뛰고 흥분되는 단어들이다. 온갖 모험들이 떠올라 손바닥에 땀이 맺히는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스파이 스키 스쿨_스튜어트 깁스

 

 이번에 만난 <스파이 스키 스쿨>이 바로 어린이 + 스파이, CIA, 악당이 결합된 스파이 첩보물이다. 주니어 요원들이 어마어마한 악당을 상대로 활약을 펼치는 이야기로, 초등 고학년들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CIA 요원이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인 친구라는 설정에 호기심과 관심이 더 간다는 초6 아들의 평처럼 완벽하지 않고 다소 어수룩한 면을 보이는 십 대 요원 등장이 반갑다.

 그리고 틈틈이 서술된 스파이 교육 매뉴얼도 따라 해보면 기억력, 주의력 향상에도 도움이 될 것 같다. 눈에 띄지 않게 주변을 관찰하고 기억하는 훈련이 기억에 남는다.

 

 

 주인공 벤 리플리는 의도치 않게(지난 시리즈 참조, 이번이 무려 네 번째 시리즈라는 ♡) CIA 요원으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스파이 스쿨 다른 동료들보다 이론적인 측면은 약하지만, 이미 실전에서 익힌 생존능력과 천부적인 감으로 이번에 '눈토끼' 작전에서도 핵심요원으로 활약하게 된다.

 한 번도 타본 적 없는 스키를 배울 수 있고, 스파이 집안 출신 에리카 헤일과 함께 수행하는 작전이라 흥분한 벤 요원! 에리카를 좋아하지 않는 스파이 스쿨 학생은 없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정작 에리카는 연애 감정이 '0'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벤은 자신이 상대해야 할 악당의 존재를 알고는 긴장하게 되는데......

 

 

 스파이 세계라면 항상 따라다니는 거짓 신분, 가장 친한 친구 마이크한테조차 말할 수 없는 비밀. 진실을 말할 수 없기에 시작된 거짓은 결국 파장을 불러오게 되고, 마이크와 벤이 끝까지 우정을 지킬 수 있는 지도 이 소설에서 관전할 대목이다.

 

 

 요즘같이 옴짝달싹 못하는 팬데믹 시대에 로키산맥에 위치한 스키장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파이물은 우리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준다. 상상만으로도 시원하고 숨이 탁 트이는 스키장, 호화로운 호텔, 흰 눈으로 뒤덮인 로키산맥, 악당들을 제압하는 짜릿함까지 종합선물 세트이다. 그리고 벤, 에리카, 제시카, 마이크, 조, 자와 등 등장하는 십 대 아이들뿐만 아니라, CIA 요원들도 완벽하지 않고 나름의 흠을 가진 존재들이라 더 친근하다. (전기 벽난로에 마시멜로를 구워 먹으려고 하는 CIA 요원을 떠올려 보면 금방 이해가 될 것이다.)

 

 악당 레오 청과 골든 피스트 작전을 상대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띤 '눈토끼' 작전

 요원 개개인의 장점이 팀 활동 시에는 단점이 되기도 하고, 단점이 장점이 되기도 하면서 서로 힘을 보태주고 뒤받쳐주는 팀이 되어갔다.

 벤, 혼자 힘으로는 해낼 수 없지만 동료들과 힘을 합해 하나하나 차근차근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능력을 보여주었기에 다음 행보도 무척 기대가 된다.

 

 악당 아버지의 정체를 모르는 십 대 딸 제시카 청과 친구가 되어 정보를 알아내야 하는 벤이 스키 스쿨을 계기로 접근하는 과정에서 제시카의 친구에 대한 갈망이 느껴져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다. 십대에서 친구 제하고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2권으로 편성되어 있지만, 무리 없이 읽을 수 있다. 어른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당돌한 주니어 요원들이 실수를 하기도 하지만, 특유의 유연함으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을 함께 하다 보면 금세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을 것이다.

 

 골든 피스트 작전을 화끈하게 날려버리는 이야기,

주니어 요원들이 활약하는 풋풋한 스파이물

<스파이 스키 스쿨> 강력 추천!!!

 

 

 

그리고 <스파이 스키 스쿨> 책을 읽기 시작하시오!!!

 

 

 

<알에이치코리아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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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옮김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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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의 나무들 _ 헤르만 헤세 저

 

헤르만 헤세의 책을 받은 순간

탄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내용을 떠나(책은 물론 내용이 가장 중요하죠. ^^)

책 표지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자연과 함께 찾아온 선물 같았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는

나무와 삶에 대한 성찰을 담은

18편의 에세이와 21편의 시를 엮은 책입니다.

나무를 통해 인생을 얘기하는

헤르만 헤세를 만나볼 수 있는 시간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흐름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나무들의 다양한 변화와 상황,

그리고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는

헤세의 감정, 생각, 고찰, 인생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헤세는 나무를 사랑합니다.

나무는 오랜 세월을 살기 때문에 긴 호흡으로

평온하게 긴 생각을 해 우리보다 지혜롭습니다.

그래서 나무의 말에 귀 기울일 수 있다면,

나무를 부러워하거나 갈망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되기를 갈망한다

하였습니다. 그것이 고향이며,

그것이 행복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무를 통해 삶을 통찰하는 자세를 찾은 자,

바로 헤르만 헤세입니다.

 

 

헤세는 우세한 나무 종류가 없는

도시나 풍경은 완전한 이미지가 되지 못하고,

낯설고 무심하게 남는다고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본질적인 것이 나무였던 셈이죠.

오랜 시간을 보내고

많은 추억이 있어도 낯설다 하니,

헤세가 나무를 통해 자신의 많은 부분을

채워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을 읽으면서

나 자신이 인간이 만들어놓은,

정형화된 조형물 안에서만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의 영향을 배제하고라도,

너무나 많은 시간을

건물 안에서 보내고 있었네요.

 

 

그리고 책 속에 나온 나무들을

대부분 모르겠습니다.

물론 지리적 특성 때문에 자생하는

나무 종들이 다를 수 있겠지만,

나무에 대한 얕은 지식 때문이겠죠.

 

 

하지만, 식물이 좋아져서

요즘 원예에 취미를 들이고 있으니

조금은 달라질 거라 믿고 싶습니다.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화분 속 식물들의 변화에

행복해지는 순간순간들이 분명 있으니까요.

결혼하고 처음 신혼집에 방문하신

시부모님께서 선물로 사주신 화분을 시작으로,

집 안에 화분이 없었던 적은 없지만

세세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

제각기 다른 생육 환경에 무지해서

몇몇 식물들과는 작별을 해야 했던

기억이 나네요.

과습을 싫어하는 아이,

습한 것을 좋아하는 아이,

햇빛과 바람을 받아야 하는 아이,

햇빛을 피해야 하는 아이......

그 다양성을 이제서야 받아들이고

귀 기울이는 저랍니다.

 

헤르만 헤세가 나무가 전하는

작고 소박한 기쁨과 위로에

마음을 달래고 힘을 얻을 수 있었던

자연 속 풍경을 저도 찾아봐야겠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내 안에 숨어 있는

삶의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그 삶의 목소리를 순순히 따르면서

내게 주어진 일을 하고 싶습니다.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는

대작가 헤르만 헤세의 통찰이

꽃피우는 책입니다.

그리고 그를 표현하는 필력, 문체에

흠뻑 빠질 수 있는 책입니다.

쉽게 읽을 수는 없지만,

천천히 읽으면 마음으로 와닿는

숨결 같은 바람입니다.

마음에 와닿은 글들을 추천합니다.

 

<동작과 정지의 일치>

자연의 흐름은 우리가 느끼기도 전에

찾아올 때가 많습니다.

꽁꽁 얼었던 눈이 어느 순간 녹아,

살얼음이 낀 개천에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앙상하던 나뭇가지에 연둣빛 싹이 돋아난

모습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분명 자연은 그 안에서 천천히 변신을

준비하고 있었을 텐데,

무심한 우리는 스쳐 지나가

눈길을 주지 않았던 거죠.

하지만, 은혜롭게도 변신의 순간을

목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헤르만 헤세 또한 변신을 목격하고

서술한 내용이 있습니다.

 

겨우내 그 강한 바람에도

마른 나뭇잎 한 장 떨어뜨리지 않고

서 있던 너도 밤나무가

숨결처럼 부드럽고 온화한 한줄기 바람에

수많은 잎들을 떨어뜨립니다.

그 광경을 목격한 헤세는

자신과 연관 지어 사유하게 되고,

그 일이 존재의 비밀이며,

그 자체로 아름답고 행운이며,

의미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보리수꽃>

<온통 꽃이 피어>

                           p.82 삽화   &   p. 55 시


<시든 잎>

                     p.140 삽화   &   p.144 시



어느 날, 정원에 심은 자신의 복숭아나무 중

가장 큰 나무를 높새바람으로 잃었습니다.

오랜 시간을 알던 친구가 속하던 곳이

빈자리가 되어 작은 세계에

하나의 균열이 생겼고

그 균열을 통해

공허, 어둠, 죽음,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나무들도 믿을 수 없다니,

나무들도 사라질 수 있고 죽어버릴 수 있다니!

새로 나무를 심으려고 구멍을 파고

햇빛과 바람을 쐬어주고 퇴비를 주고 기다렸다

보슬비가 내리는

어느 온화한 날을 기다리게 됩니다.

하지만 다른 나무를 심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새롭게 순환을 시작하는 것에,

생명의 바퀴를 새로 굴려 욕심 많은 죽음에게

바칠 새로운 먹이를 키워내는 일에

저항하게 됩니다.

 

'이 자리는 그냥 비워둬야겠다.'




「헤르만 헤세의 나무들」는

두고두고 읽으면서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책입니다.

 

잎은 잎대로,

꽃은 꽃대로,

열매는 열매대로

제 길을 가게 하는 것.

세찬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꼿꼿이 서서

자신의 힘과 청춘을 기뻐하기도 하고,

구부러졌다가도 도로 제자리로 돌아오는 존재.

안갯속에서는

어떤 나무도 다른 나무를 볼 수 없어

모두 혼자인 나무. 사람.

쪼개져서 부러졌어도

여러 해 동안 매달려

한 여름만 더, 한 겨울만 더

버티는 삶.

 

 

주위에 있는 나무가 새롭게 다가오는

책 읽기가 끝났습니다.

이제는 실제로 나무를,

주위를 살펴볼 시간이네요.

물론 나무를 살펴본다고

갑자기 마음이 닿고

진리가 깨우쳐지는 건 아니겠지만,

좀 더 여유 있는 삶을,

좀 더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삶을,

좀 더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삶이 되지 않을까.


<창비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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