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슐츠 씨 - 오래된 편견을 넘어선 사람들
박상현 지음 / 어크로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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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슐츠 씨/ 박상현 지음/ 어크로스





 - 오래된 편견을 넘어선 사람들 



찰스 슐츠는 우리에게 <스누피>로 익숙한 <피너츠>를 그린 만화가이다. 책 제목 <친애하는 슐츠 씨>는 이 책에서 소개되는 일화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오래된 편견과 그를 넘어서고자 한, 넘어선 사람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다.


박상현 저자는 '당연'이 아닌 '왜 그런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세상을 둘러보고 어느새 인류의 오래된 습관으로 자리 잡은 편견을 바꾸는 이들의 행보를 전하고 있다. 일상에서 편견을 맞닥뜨린 사람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따르지 않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데부터 시작되었다. 



오래된 습관으로 자리 잡은 편견을 부수기 위한  사람들의 결단에 대한 이야기는 현재의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지금 나에게 편하고 익숙한 무언가가 누군가에게는 큰 차별이고 편견이자 폭력일 수 있겠다는 자각에 흠칫 놀랐다. 이런 개개인의 깨달음이 모여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변화시키고 행동의 방향을 좀더 나은 세상을 향하게 할 것이다. 



<친애하는 슐츠 씨>가 던진 흥미로운 화두로 감았던 눈을 뜨고 새롭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는, 놀라운 경험이 펼쳐졌다. 가제본으로 책의 모든 내용을 살펴볼 수 없었지만, 인류의 오래된 습관들 중 '개인적 습관'을 넘어 '사회적 관습'으로, '문화'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들을 되돌아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박상현 저자는 흡연, 의복 내 주머니, 참정권, 보스턴 마라톤 등 시대와 사회가 구성원들에게 요구하는 역할과 기대를 반영하고 있는 차별의 현장을 증거와 사례를 들어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가 날카롭게 지적한 지점을 마주하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개인적 습관이 사회적 관습이 되면 다양한 이권이 개입하게 되고, 이를 철저히 감싸고 보호하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을 최소화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소나기에는 온몸이 금방 젖지만 이슬비에는 젖는 걸 잘 모르는 것처럼 서서히 스며들어 당연하고 자연스러워지는 편견과 차별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주의와 관심이 필요하다. 특히 사회적 합의와 공동체 참여가 편견을 옹호하고 있다면 더더욱 힘겨울 것이다. 







차별을 겪는 이들의 목소리에 사회가 적극적으로 반응하여 변화를 이루고자 하는 연대의 움직임이 꿈틀 된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지만, 흑인 인권 신장에 힘쓴 마틴 루서 킹이나 장애인 인권을 부르짖은 주디 휴먼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쉽지 않다.


박상현 저자는 슐츠 씨와 아니 브릭스 씨의 사례를 들어 사회 변화에 동의하고 그 과정에 동참하는 일이 대단한 일이 아니라 아주 상식적인 결정이라 말한다. 아주 오래되고 차별적인 사고방식을 깨닫고 더 이상 따르지 않겠다!!!









친애하는 슐츠 씨가 해리엇 글릭먼 씨의 부탁에 귀 기울여 흑인 아이 '프랭클린 암스트롱' 캐릭터를 그린 것처럼, 

테니스 스타 빌리 진 킹 씨가 요청한 여성 스포츠 재단 이사 자리를 기쁘게 수락하고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엄청 열심히, 경쟁적으로 하는 여자아이들' 캐릭터(특히 페퍼민트 패티)를 그린 것처럼,

기이한 이유로 여성의 등록 자체를 금지한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캐서린 스위처가 첫 공식 여성 완주자가 될 수 있도록 변칙 참가를 도운 브릭스 코치처럼.




변화는 동참하는 이들이 많을수록 더 빠를 것이기에 <친애하는 슐츠 씨>를 통해 이 시대의 슐츠 씨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오래된 습관을 뛰어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우리가 경청하고 수용하며 공감할 수 있도록 이끈다. 무지에서, 외면에서 비롯된 습관에서 벗어나는 선택의 손을 내밀고 있다. 주저 말고 덥석 손을 잡아본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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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보이 - 전면개정판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1
팀 보울러 지음, 정해영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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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버보이/ 팀 보울러 지음/ 다산북스




팀 보울러 작가의 <리버보이>가 한국어판 100쇄 기념으로 전면 개정판이 출간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큰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학부모 활동으로 사서 & 책나래 활동을 하게 되면서 청소년문학에 다시 빠져들었다. 그중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바로  <리버보이>다. 아이들에게, 주위 분들에게 적극 추천하는 책 중 하나가  <리버보이>, 작가도 팀 보울러다.







큰아이가 초등학생일 때 읽었는데 벌써 고등학생이 되었으니 7,8년의 시간이 흐른 셈이다. 출간 후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쭉 올리고 있으니 명작은 시간에 빛바래지 않고 더 가치가 더해질 뿐이다. 


이번에 개정판으로 다시 마주한 <리버보이>가 시간을 거슬러 과거로 이끌었다가 다시 오늘을 그리고 언젠가 마주할 미래를 향해 흘러가면서 긴장된 몸과 마음을 이완시켜주었다. '죽음'하면 흔히 연상하는 맹목적인 두려움과 고통이 아니라, 강물이 흐르고 흘러 기어이 바다에 이르는 것처럼,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날 준비를 하는 것처럼 끝이지만 또 다른 시작이라 말해준다. 이 다정하고도 가슴 뭉클한 안식과 위로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큰 울림으로 와닿는다. 






"강물은 알고 있어. 

흘러가는 도중에 무슨 일이 생기든, 

무엇을 만나든 결국엔 아름다운 바다에 닿을 것임을.

결말은 늘 아름답다는 것만 기억하면 돼."





흐릿한 안갯속을 거니는 듯 시작된 <리버보이> 다시 읽기는 기억의 방에 자리 잡고 있던 제스와 할아버지 그리고 리버보이를 소환하였다. 머릿속에서 옛 친구처럼 찾아오는 문장 구절을 예쁘게 단장한 새 책에서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이런 내용이 있었나? 이런 내용이 나왔던 것 같은데? 기억을 더듬어가며 읽는 <리버보이>의 목소리는 더 또렷해졌다.








일상이지만 자칫 무겁고 슬픔이 크게 자리 잡을 수 있는 소재를 자연과 예술 그리고 환상과 꿈으로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게 그려냈다. 마법 같은 할아버지와 손녀 그리고 리버보이와의 이별은 통한의 울음이 아닌 안식의 눈물을 흘릴 수 있도록 감성적으로 이끌어준다. 부딪치고 부서져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가는 우리네 삶을 관조하도록 인도한다. 



그리고 너무나 닮은 두 사람, 할아버지와 손녀. 서로를 향한 깊은 이해와 지극한 사랑은 샘이 날 정도였다. 제스 가족들이 보여준 진한 사랑과 굳은 신뢰는 유대감이 약해진 오늘날 우리네 가족들을 되돌아보게 하기도 하였다. 






"오늘 여길 떠날 거야. 

이제 강을 보내야 할 시간이야.

난 바다까지 헤엄쳐 갈 거야."





숨죽인 채 강물 소리에, 자연의 소리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 채 바다로 흘러가는 광경을 지켜보는 상상만으로도 온몸이 떨렸다.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을 내다볼 수 있는, 진정한 이별을 가슴에 품은 제스를 통해 아픔과 슬픔이 내재된 삶의 찬란함을 단단하게 보여준다. 






안녕, 리버보이.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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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소설Y
조은오 지음 / 창비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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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조은오 지음/ 창비/소설Y






안전하다. 하지만 외롭다.

이런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은 적이 없는 이들은 없다. 하지만 서로를 믿고 함께 하기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타인을 순수하게 믿고 곁을 내어주는 경우가 많지는 않겠지만, 분명 우리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 생각한다. 






<버블>은 '갈등이 존재한다는' 외곽과 '통제되어 안전하다는' 중앙으로 분리된 세상이 배경이다. 공동체의 통제하에 철저히 독립된 존재로 살아가야만 했던 중앙의 제2인류 '나'는 '타인을 마주하고자' 감은 눈을 뜨고 버블 밖으로 나오게 된다. 그 용기 있는 발걸음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면서 뜨거운 감동을 선사한다. 



'사람이 사람을 믿는다' 소중하고 귀하지만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버블의 07 = 온영은 사람이 두려우면서도 궁금하다. 그리고 믿고 싶어 한다. 하지만 갈등을 예방한다는 이유로 서로 대화를 나누지 못하게 하거나, 서로를 바라보지 못하게 눈을 감게 하는 등의 공동체 규칙을 다른 사람들은 잘 적응한다는 공동체의 말에 갇혀 지냈다. '자신이 비정상'이라 생각한 '나'가 '자신이 정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은 큰 전환점이 되었다. 




눈을 감는다. 얼굴을 쳐다본다.

이 행동이 지니는 의미를 이토록 강렬하게 그려낸 작품이 있었나 싶다. 말이 숨기고 있는 의미를 타인의 얼굴을, 눈을 응시하는 것으로 알아차릴 수 있다. 그래서 눈을 뜨고 타인을 똑바로 마주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진실하겠다는 의미이다. 









어린 시절부터 관계를 차단당한 채 각자의 버블 안에서 살기를 강요당한 중앙의 사람들. 그들이 서로의 버블 안으로 들어가고자 노력하는 분투기는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온기다. 사람이 사람에게 전할 수 있는 신뢰가 눈빛으로, 손으로, 포옹으로 퍼져나가 온몸을 휘몰아치며 이어져나가는 광경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다.




"안녕, 내 이름은 이온영이야."





숫자로 불렸던 이들이 서로를 완전히 믿게 되거나 신뢰의 증표로 이름을 밝히는데 뜨거운 무언가가 왈칵 솟구쳐 눈가를 촉촉하게 했다. 

온전히 믿는다. 믿고 싶다. 이런 마음으로 손을 내밀고 존재하지만 불리지 않는 이름을 밝힌다. 그리고 기다린다. 상대방이 반응하기까지 얼마나 초조할까 싶지만, 버블의 인물들은 서로의 버블 속으로 기꺼이 뛰어들었다. 그 용기는 삶을 크게 변화시킨다. 








'나(온영)'는 한결을 믿고 중앙의 안전한 삶을 버리고 중앙의 지원을 받고 갈등이 존재한다고 배운 외곽으로 나가고자 선택했다. 전혀 모르는 타인인 한결의 말에, 눈에, 얼굴에 자신의 미래를 걸었던 '나'는 허락되지 않은 제한구역에 들어가 보았고, 숨겨진 진실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다시 한번 선택을 하고 진실을 깨달았으나 발각되고 만다. 하지만, 버블을 깨고 서로에게 다가서 손을 붙잡은 그들은 상상 이외의 해결책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두려웠지만 용기 내 서로를 믿은 그들은 이제 외롭지 않다. 서로를 바라보고 웃으며 대화하고 요리를 하는 그들이 느끼는 행복은 '완벽한 세계'를 깨고 나서야 가능했다. 



소설 <버블>은 온영 - 선호 - 채원의 우정과 신뢰 그리고 온영 - 한결의 그 감정(사랑이라 생각한다)을 기반으로 마지막까지 놀라움을 선사한다. 단단하게 다져진 그들의 관계가 일으킬 파장이 기대된다. 버블을 깨는 방법을 아는 그들은 이제 두렵지도, 외롭지도 않다. 성장한 그들이 마음을 따르는 선택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소설 뒷이야기를 상상하며 오늘날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온영에게 힘찬 응원을 보낸다. 




"내 버블에 들어와 줘서 고마워.

네가 아니었다면 나는 여전히 그곳에 갇혀있었을 거야.

네가 버블에서 나올 준비가 되면,

이번에는 내가 밖에서 너를 기다리고 있을게."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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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 문보영 아이오와 일기
문보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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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어렵다'는 생각이 1년에 한 권의 시집을 만나는 일조차 저어하게 하는 듯하다. 그런데 문보영 시인이 색다른 일기 에세이를 출간하였다는 소식에 '시인이 쓰는 일기는 어떨까?' 호기심이 일렁였다.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





2023년 가을, 한국 시인으로 아이오와 글쓰기 프로그램(IWP)에 참여하게 된 문보영 시인이 아이오와에서의   색다른 경험으로 삶의 방향이 달라지게 된 이야기를 그녀의 감성으로, 언어로 기록하였다. 시를 접하기 전에 산문으로 만난 그녀는 참 독특하고 위트 넘치는 사람으로 다가왔다. 


'아이오와? 어, 드라마 [무빙]에서 류승범이 자란 곳이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렸는데 역시나였다. 작가 또한 그 얘기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옥수수밭과 참혹한 아이들이 전부였던 그곳이 문보영 시인에게, 나에게 어떤 공간으로 재형상화될지 기대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작가들의 모임이라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을지 알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그렇지는 않고, 3달여의 시간 동안 터를 잡고 살았던 공간에서 벗어나 낯선 공간에서 낯선 이들과 어울려 프로그램 일정을 소화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시간과 감정을 담았다. 일상의 무언가(사건, 사물, 사람)를 보고 각자 글로 풀어내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이어져 평상시 가졌던 글의 탄생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은 희석되기도 했다. 언어, 글, 책, 쓰기에 관한 색다른 시도들과 생각들을 IWP 활동을 기록한 이 책으로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30여 개국에서 온 작가들 중 1명인 문보영 시인은 많은 작가들이 자신이 태어난 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정착하여 또 다른 언어로 창작 활동을 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탈출 작가와 비탈출 작가로 표현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돌아본다. 아이오와가 너무 좋아 떠나기 싫어 눈물 흘렸던 그녀, 영어로 시를 짓고 번역하며 즐거워했던 그녀, 들판에 나무의 길을 천천히 홀로 걷기를 좋이 했던 그녀가 떠올라 한국이 아닌 다른 곳으로 탈출한 언젠가가 당연하게 다가왔다. 



You think out of box.

넌 지금까지 사람들이 세상을 본 방식과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본다.





한정되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나름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소화하고 토해내던 문보영 시인이 아이오와와 IWP를 통해 테두리를 인지하고 정체성에 대한 입체적인 탐구를 감각적으로 접하고 다른 언어로 글을 쓰는 자유를 느끼게 되면서 서서히 변하게 되는 소소한 기록들이 사랑스럽다. 그녀가 보여줄 다음 이야기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에 몸에 온기가 퍼져 나간다. 




그녀가 쓴 산문은 일상적 언어 위에 그녀의 감정 필터가 살짝 덧씌워져 명랑하고 즐거웠다. 전망이 없는 방을 배정받은 작가들이 창밖으로 보이는 '종이컵'을 소재로 다양한 이야기를 창조하고 있는 와중에 길고 긴 글로 매니저를 설득하여 전망 좋은 방으로 배정받은 에피소드가 한 예이다. 탈출에 대한 내재된 욕구를 살짝 보여주는 이 이야기에서 두 개의 방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음에도 처음 본 방에서 멈추는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햇살에 푹 담갔다 건진 방'이라는 표현에 햇빛이 방 안의 모든 것들을 감싸 안아주는 광경이 절로 떠오르니 역시 그녀는 '작가'였다.



한국에서 웅크리고 살았다는 그녀는 아이오와에서 똑같이 웅크리고 살았지만 보상받는다고 느꼈다. 한국에서는 강해져야 한다고 다짐했지만 아이오와에서는 많은 사랑을 받아 변하지 않기로 했단다. 현실과 여행의 차이일 수 있고, 일상을 공유하는 존재들의 한정과 차이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녀의 웅크림을 백번 이해하고 공감하기에 나 또한 아이오와의 'ㅇ' 음절에 무장해제되기로 한다. 






미국의 외딴 마을 아이오와의 외지고 낡은 하우스 호텔 - 하물며 철거 예정 -에서 다운타운으로 가는 길이 4가지다.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맞닿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빠른 길이며 대다수가 걷는 길을 '삶의 길'로 '스트레스 존'이라 부른다고 한다. 평지를 걷고 언덕을 오르는 3번 길을 문보영 시인은 애용한다. 그리하여 '달의 영역(moon zone)'이라 이름 붙여진 그 들판을 걸으며 나무를 관찰하는 자신을 쫓겨난 자 아니 빠져나간 자라 말한다. 다 바라보는 삶의 중심에서 치열하게 살기보다는 작은 모서리에서 고즈넉하게 살기를 바라는 그녀가 보였다.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엑스포닉 작가와 이민자들과 아이오와에서 보낸 날들이 그녀를 자유롭게 이완시켜주는 기적을 지켜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다. [닥터 두리틀]의 소년 토미 스투빈스와 앵무새 폴리네시아의 대화가 인상적이다. 여기서도 하나의 언어가 다른 언어로 대체되면서 벌어지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문보영 시인의 말처럼 번역을 하다가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사람의 언어를 하지만 이해하지 못했던 폴리네시아는 두리틀에게 말들의 의미를 배웠다. '소리만 내다가 비로소 말을 하게 되었다'는 표현이 와닿았다. 그리고 영어를 잘 몰라서, 광둥어와 만다린어를 잘 몰라서 '자유롭다'고 느꼈던 그녀가 '이해하고 싶다'고 변화하는 순간 전율을 느꼈다. 살고 싶어 하네. 삶의 방향이 변하는 순간을 목도했다. 그리고 그녀의 변화와 탈출을 응원한다. 그러기 위해 그녀가 아이오와에서 깨우친 대로 지우기 전에 예전 작품들을 탐독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문보영 시인이 최승자 시인의 아이오와 산문집 [어떤 나무들은]을 통해 모든 게 다 지나가버린 자리에서 다시 읽기, 과거를 다시 살기를 하듯 나는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으로 아이오와 시절 이전의 문보영 읽기를 시작하련다. 그래야 언젠가 엑스포닉 작가로 마주하게 될 그녀에게 반갑게 인사할 수 있을 것 같다. 여러 언어로 삶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경이를 발견한 그 순간을 행복한 순간이라, 항복한 순간이라 표현해도 다 괜찮다 느껴지니, 문보영 시인에게 설득당하고 있는 중이지 싶다.






Iowa is generous enough to forget things

and supportive enough to remember things.


아이오와는 네가 그걸 잊도록 널 관대하게 만들고,

네가 그걸 충분히 기억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거구나. 



한겨레 하니포터8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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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 - 초대 정책실장 이정우가 기록한 참여정부의 결정적 순간들
이정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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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5주기다. '바보 노무현' 그 누구보다 나라와 국민을 먼저 생각했던 그분을 떠나보낸 지가 그렇게 오래되었구나. 이런 허전한 마음을 달래주는 책이 최근 출간되었다.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 이정우 저/ 한겨레출판





노무현이 대선 후보였을 때부터 함께 한 초대 정책실장 이정우 (명예) 교수가 저술한 참여 정부 회고록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이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다크호스 노무현 후보가 절대 우위로 점쳐졌던 이회창 후보를 이기고 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만큼 강렬한 사건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여 정부는 지독히도 사랑받거나 지독히도 미움받았다. 그럼에도 당당하게 소신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그분은 아름다웠다. 



요즘 들어 인간미 넘치고 소탈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쩍 그리웠는데 이렇게 회고록으로 그 시절을 돌아볼 수 있어서 행복했다. 그리고 비통했다. 



이정우 전 정책실장이 담은 참여 정부의 1000일은 기억 속 노무현과 알지 못하는 노무현을 면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해준다. 그래서 보수와 진보, 여당과 야당, 어느 쪽에서도 끈끈한 지지와 신임을 받지 못했던 외로운 싸움꾼 노무현을 좀 더 입체적으로 생생하게 새길 수 있다. "대통령 못해 먹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에 진심이 녹아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공격과 비난을 무던히도 받았다. 하지만 기억 속 그분은 밀짚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탄 채 쌍꺼풀 수술해서 커진 두 눈으로 있는 힘껏 웃어주신다.









노무현 대통령이 첫 장관 연수회에서 국정 철학을 전달하기 위해 한 기조연설이 기억에 남는다. 개혁 정부가 되기 위한 과제들 - 정치 개혁, 정부 개혁, 언론 개혁, 교육 개혁, 권력 기관 문제 -을 하나하나 거론하였다. 그리고 장관 ·위원장 ㆍ 수석들에게 "38명의 대통령이 되어"달라고 했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 한다. 하지만, 선거로 국민의 주권을 행사한 이후에는 대통령에게, 국회의원에게 그 힘을 위임한다. 대표들이 그 역할을 잘 수행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보를 쫓다 보니 그분이 짊어진 국민의 염원과 안녕이 잘 보였다. 얼마나 치열하게 나라와 국민을 위해 싸워왔는지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내가 욕먹어도 좋으니 다음 정권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 "




출범부터 쉽지 않았던 참여 정부는 언제나 정공법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성품을 알 수 있었다. 대북 송금 특검법, 화물연대 파업과 노사 갈등, 철도 구조개혁, 교육 개혁, 한미 간 BIT, 신행정수도, 부동산 개혁 등 결정적 순간들이 잘 정리되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참모진들의 대화가 육성으로 지원될 만큼 생생하게 전달하고 있다. 

눈앞의 성과와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펼치고자 한 진정한 대한민국의 대통령 노무현과 그의 사람들이 들려주는 1000일의 기록이었다. 




"경기는 나쁘다가도 살아난다. 

근본과 원칙을 잃지 않고 꾸준히 가야 한다.

3개월, 1년, 총선으로 결판나지 않는다."








주위 사람들에게 묻고 또 묻고, 자리에 상관없이 귀담아듣고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은 언론에 비친 모습과는 사뭇 달라 보였다. 이정우 저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다채로운 모습과 참여 정부의 정책 논의·수립 과정을 진솔하게 담아내고 있다. 








역사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귀한 자산이다. 특히나 현대사는 지금을 이해하고 풀어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정우 회고록 <노무현과 함께한 1000일>또한 그 길 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한겨레 하니포터8기 자격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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