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숲속의 소녀들 - 신경학자가 쓴 불가사의한 질병들에 관한 이야기
수잰 오설리번 지음, 서진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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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학자가 쓴 불가사의한 질병들에 관한 이야기

 

 

잠자는 숲속의 소녀들/수잰 오설리번 지음/한겨레출판

 

 

책 제목이 왜 '소녀들'일까? 궁금했다.

신경학자 수잰 오설리번이 세계 곳곳에서 집단적으로 발생한 심인성 장애들을 조사하고 정리한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이유를 가늠할 수 있었다.


기능성 장애에 걸리는 환자 중 적어도 3분의 2가 여성이라고 한다.(p268) 스웨덴, 니카라과, 카자흐스탄, 쿠바, 콜롬비아, 미국과 가이아나에서 집단적으로 발생한 증상들의 피해자들 대부분이 십 대 여자였으며, 쿠바 내 미국 대사관 외교관의 아바나증후군 외에는 여성들이 주된 환자였다. 그리고 대부분의 증상에 발작과 실신, 수면 증상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잠자는 숲속의 소녀들>이라는 책 제목에 대한 호기심은 충족되었다. 그렇다면 신경학자 수잰 오설리번이 세계 곳곳에서 불가사의하다고 명명되는 집단 발병에 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쫓아가볼 차례라고 생각했다. 각종 의학 용어와 증상 관련 단어, 지리적 명칭 등 대부분 취약한 분야라 따라가는 점이 버거웠지만, 저자가 독자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와 그리는 바에 대한 공감이 책을 마지막 페이지까지 넘길 수 있게 지탱해 주었다.


기존에 심리학 관련 도서를 읽으면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전문가 평가와 일반인 평가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번에도 저자는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렌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이 책은 기능성 장애에 대해 다루고 있다.

'히스테리'라 불렸던 병이 지금은 전환장애로, 또 더 최근에는 기능성 신경장애라는 더 적합한 표현으로 불리고 있다고 한다. 일반의학 영역에서 심인성 장애와 신경학에서 기능성 신경장애는 모두 믿을 수 없을 만큼 흔하며, 매우 심각한 질병으로 발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늘 이런 사실은 잘 모른다.

완곡한 표현이나 상투적인 문구, 오해 뒤에 숨겨지기 때문이다. 기능성 신경장애를 의학적인 '불가사의'라고 하는 언론의 묘사가 단적인 예이다.


심인성 장애 - 기능성 장애 - 전환장애

우리 사회가 '심인성'이라는 용어에 대해 어떤 거부감을 표시하는지 저자는 400 페이지 분량의 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심인성'에 포함된 정신, 마음이라는 뜻의 접두사인 'psych'는 너무도 빈번하게 정신적인 유약함 혹은 정신 이상으로 잘못 해석된다. 그렇기에 일반인들은 심인성 장애 진단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래서 소리에서, 독에서, 백신에서, 악마에서 질병의 원인을 찾고자 하였다.


 

저자가 들려주는 집단 발병 이야기들은 흥미로웠다.

지리적, 문화적 제약과 함께 특정 나이대에서만 발생한다는 점이 특이했다. 그리고 이 집단 발병 피해자들이 처한 환경이 대부분 열악하다는 공통점도 눈에 띄었다. 신경학자로서 순수하게 그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데이터를 수집해나가면서 '실질적으로 치료하는' 의사로서의 책임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과 함께 '만나 그들의 고통을 목격한' 의사로서 도의와 역할이 상충하면서 고민하는 저자의 내면이 진실되게 다가왔다. 나 또한 콜롬비아의 라칸소나 지역 소녀들의 이야기가 매우 가슴 아프고 참담했기 때문이다.


"마치 훈련받은 그림자가 된 기분이래요."(p.115)




저자는 심인성 장애를 설명하는 공식을 '스트레스' 하나로 규정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을 지적하고 있다.

심인성 장애나 기능성 질환을 앓고 있는 많은 환자에게 생길 수 있는 최악의 결과는 삶의 어떤 특별한 사건이 환자의 증상을 일으키는 원인이며, 환자가 그 사실을 부인한다고 의사가 주장하는 것이다. 저자 또한 범한 오류로, 환자와 의사 사이가 틀어져 앞으로 나아갈 기회를 잃어버리게 될 위험이 크다. (p.143)


이 책을 읽으면서 '신체화'에 대해 알게 되었다. 질병에 대해 문화적으로 형성된 개념 역시 신체화할 수 있다고 한다.

시에나 사례를 보면서 이 신체화의 위험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심인성 질환이 여성에게 더 흔하게 나타나는 질병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 병이 의료계에서 소홀히 여겨진다는 저자.

아직까지 집단심인성질환은 소수의 전문가에 의해 정의되고 논의되는 방식과 이 집단 밖의 사람에게 이해되는 방식이 서로 단절되어 있다. 의료계에서는 이 질환이 집단의 상호 작용을 통해 생기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가끔은 집단사회원성질환이라 부르는 것이 더 적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진짜 정신질환라기보다는 사회현상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회복을 향한 가장 좋은 방법은 공동체 차원의 긍정적인 반응일 것이다. 비판하지 않고 들어줄 수 있는 공동체, 지원해 주는 공동체, 건강에 대해 전체적인 시각을 지닐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저자 수잰 오설리번은 말한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4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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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부수는 말 - 왜곡되고 둔갑되는 권력의 언어를 해체하기
이라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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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바로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이를 먹으면서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말'의 무게를 실감하게 되었다. 적확한 의미를 담아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어른에 국한되는 부분은 아니겠지만, 나는 비로소 나이를 먹으면서 본질과는 다르게 왜곡되는 '말'을 직시하게 되었다. 그래서 『말을 부수는 말』 책을 통해 권력에 의해 왜곡되고 둔갑되는 언어를 들여다보고 해체하는 일련의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무서웠다. 쉽게 흔들리고 쉽게 눈과 귀를 닫아버린 '나'를 들여다보는 작업이기도 했다.



말을 부수는 말/이라영 지음/한겨레출판

 


고통 - 노동 - 시간 - 나이 듦 - 색깔 - 억울함 - 망언 - 증언 - 광주/여성/증언 - 세대 - 인권 - 퀴어 - 혐오 - 여성 - 여성 노동자 - 피해 - 동물 - 몸 - 지방 - 권력 - 아름다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말들은 묵은 때를 벗고 이라영 작가의 손을 거쳐 순수한 언어의 의미를 되찾았다. 그 의미를 이어나가고 지켜나가할 역할은 독자인 우리의 몫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투영된 나의 자화상은 권력의 편보다는 사회적 소수자와 약자 편 가까운 곳에 서 있다. 그렇기에 작가의 시선에 통감하고 말을 부수는 지난한 작업을 응원하게 된다. 예전에는 불편하지만 무심코 흘렸던 '말'을 여기서 하나하나 차근차근 작가를 따라 살펴보니 외면했던 영겁의 세월 동안 차곡차곡 쌓인 왜곡과 기만이 넘치다 못해 썩어 고여있었다.

 

 

읽으면서 콕콕 찌르는 문장들이 있다.

<고통> 청자가 있는 고통은 조명 받는다. 누구도 알아보지 못하는 고통이야말로 진정한 고통이 아닐까.

고통을 말하는 일은 그 자체로 운동이다. 이 표현처럼 포기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고, 증언하고, 기록한 이들의 나날들이 과거부터 계속되어 왔다. 고통의 연대를 통해 세상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고통을 말할 수 있어야 하고, 들어줄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고통이, 내 주변의 고통이 아니면 외면하거나 무시해버리기 쉽다. 주변의 고통에 좀 더 마음과 귀를 열어야겠다는 반성이 들었다.

 

 

<색깔> 비슷하게 생긴, 닮은 얼굴이라 더 가깝게 느끼면서 동시에 닮은 얼굴이라 더 쉽게 착취한다.

인종차별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내용들을 읽으면서 주위를 떠올려 보았다. 이제는 내가 살고 있는 주변에서 외국인과 쉽게 만나고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지인으로 엮인 그들과 같은 나라 사람들이지만 다른 공간에서 접하는 이들에게 차별 없이 친절하게 대했나? 잠시 생각해 본다. 아는 언니가 올해 이사를 가면서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몽골인이라며 불편해했던 기억이 책 속 문장과 오버랩되면서 감정이 복잡해졌다.

 

 

<억울함> 자기 연민에 휩싸인 자와 투쟁하는 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갈린다는 사실을.

"억울함을 당해서 밝히려고 하지 말라. 억울함을 밝히면 원망하는 마음을 돕게 되나니" 불교 경전 <보왕삼매론>

저자로서는 <보왕삼매론>에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한 스님의 법문을 통해 이 '억울함'에 대해 비로소 이해했다고 한다.

"인간관계에서 숱하게 일어나는 억울함은 굳이 밝히지 않아도 다 밝혀지기 때문이다. …… 단 적극적으로 억울함을 밝혀야 할 때가 있다. 내 억울함을 밝히지 않아 다른 사람도 그와 같은 억울함을 당할 일이 생긴다면 이때는 적극적으로 밝혀야 한다. 이를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억울한 일을 겪도록 돕는 꼴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타인의 고통과 억울함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투쟁하는 이들은 '나'와 '우리' 그리고 '죽은 자'의 억울함을 연대한다. '다시는' 혹은 '더는' 이 간절한 언어는 개인의 억울함 해소를 넘어 공적 사안으로 만들기 위한 투쟁임을 절실히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권력은 이런 억울함 마저 오역한다. 특권층의 억울함을 '공정'으로,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의 억울함을 '무능력'으로 뒤바꾼다. 저자는 '다시는'이 가리키는 방향에서 오역된 억울함의 실체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세대> 한국인들이 특권의 불평등에 분노하는 게 아니라 "특권에 접근할 기회의 불평등에 분노"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한국의 능력주의, 박권일 2021)

MZ 세대, X세대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한 번도 의식하지 못했던 부분을 인지하게 된 꼭지였다. 세대 구분에 대한 기준도 모호하고, 사용하는 나조차도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묵과했던 부분들을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했다. '공정 세대'라는 개념은 특정 계층의 억울함을 특정 세대의 분노로 둔갑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충분히 수긍되었다.

 

 

<권력> '합리적이고 공정한' 기준에 따라 직무와 무관한 능력까지 검증받으며 억울한 상황에 처하는 노동자들이 있는 반면, 알아야 하는 사람들은 당당하게 모르거나 몰라도 된다 우긴다.

2016 트럼프의 당선, 2022년 윤석열의 당선이 시사하는 바를 관통하는 꼭지로 권력의 언어에 대해 가장 빠르고 가장 쉽고 가장 뼈 있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나 자신은 생각 없이 무심코 내뱉은 말이 상대방에게는 큰 상처가 되거나 반대의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의도하지 않고 던진 '말'도 찔리면 아프다. 그렇다면 거대한 칼이 되어 우리 사회 곳곳을 향해 거침없이 휘둘러진, 작정하고 왜곡된 권력의 언어가 만든 상처는 어떨까. 뼈아픈 상처를 입는 이들은 사회적 약자이고 소수자라고 안심하고 있는가. 권력층에게는 우리가 그들이고 그들이 우리다.

 

저자는 「작가의 말」에서 이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밝히고 있다.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쓰는 게 아니라, 화두를 던지기 위해 쓴다. 권력의 말을 부수는 저항의 말이 더 많이 울리길 원한다.

"세상의 아름다움은 고통을 통해 우리 몸속에 들어온다"는 시몬 베유의 말을 늘 되새긴다. 고통을 통과한 언어가 아름다움을 운반하기를, 그 아름다움이 기울러진 정의의 저울을 균형 있게 바꿔놓기를. 이 세계의 모든 고통받는 타자들이 관계의 대칭에 의해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의 주체가 될 수 있기를.

 


고통에서 아름다움까지

 

권력의 고리는 탄탄하지 못하지만 이리저리 엮여있어서 그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다. 그래서 권력을 뒷받침하는 왜곡된 언어를 부수는 저항의 연대는 더 끈끈해져야 한다.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느껴져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어져도 저항의 목소리를 이어져야 한다는 작가의 결연한 의지를 읽었다. 우리 한번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봅시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4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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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 모음 2022.가을 - 54호
자음과모음 편집부 지음 / 자음과모음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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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음과모음(계간) 가을호

 부자 - 삶과 돈의 문제 

 

 

자음과모음 제54호(2022 가을호)/자음과모음



계절마다 발행되는 잡지인 자음과모음 가을호를 만났다. 가을, 이 풍요로운 계절에 게스트 에디터 최별 PD는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라는 마음을 기꺼이 인정하고 삶과 돈의 관계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이 생각하는 부자, 안락한 삶, 누리고 싶은 내일을 풍성하고 다채로운 구성으로 기획하였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

그 욕심에 무슨 문제 있는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돈'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외면할 수 없다. 기술의 발달로 물질적 풍요가 넘치고, 세계화를 넘어 우주시대를 내다보는 오늘날 눈에 보이는 실질적이고 명확한 잘 사는 삶, 멋진 인생은 '돈'과 직결된다. 삶의 주거지, 주거형태, 직업, 직장, 연봉, 차. 성인이 된 나는 타인을 알아가는 질문지 안에 이런 항목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있었다.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 잣대의 변화는 자연스레 삶이 향하는 방향도 달라지게 한다. 영끌, 가상화폐, NFT 등 주된 이슈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도 물질적 향유와 시스템 속 편리를 포기하지 못하는 나에게 '부자가 되고 싶다'라는 날것의 욕망, 욕심에 대한 진지한 접근과 해부는 호기심으로 다가왔다.

 

 

 

 

거침없이 스스럼없이 '부자'를 갈망하는 자신을 드러낸 최별 PD는 주변인들을 소환하여 <돈의 문제>에 관한 진솔한 에세이를 부탁하였다.

 

4편의 에세이에는 '부자'와 '돈'에 관한 진지한 고민들이 드러나 있었다. 디그니티(품위, 위엄)을 타인과 세상을 대하는 자세이자 태도로 디그니티가 넘치는 자야말로 '부자'라 생각하며, 기업의 가격경쟁력 마케팅에 흔들리지 않기 위한 500원의 디폴트를 챙기는 이야기부터 에세이를 맡기로 한 지인의 부친상으로 최별 PD가 직접 쓴 세상살이 이야기까지 여러 목소리가 담겨있다.

 

그중 장미빛 「잘 사는 법도 가.지.가.지」와 조재형 「우리를 부자로 만드는 키워드」 에세이가 특히 눈길을 끌었다. 장미빛 님이 쓴 에세이는 꿈꾸는 내일이고, 조재형 님이 쓴 글은 공감하고 지금 당장 실천하고 싶어지는 마음가짐과 자세였다.

 

더 높이 오르기를, 더 빨리 달리기를 채근하는 안팎의 목소리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질펀히 주저앉는다. 최선을 다해, 안주한다. '한 곳에 자리를 잡고 편안히' '현재의 상황이나 처지에 만족'하며.

남의 욕망이 아닌 내 욕망으로 시간을 채워야 만족스럽게 살아갈 수 있다.

 

<부자 - 삶과 돈의 문제> 주제와 연관되어 수록된 3편의 미니픽션은 색달랐다. 집은 거주지, 보금자리라는 생각을 지니고 살아가는 부동산, 재테크 문외한인지라 이번에 처음 듣는 키워드 '임장기'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좋아하는 최양선 작가의 〔초록 대문 집〕이 기억에 남는다. 자신이 주체는 아니었지만 가해자였던 내가 얼룩진 과거의 상처 그리고 그리운 친구를 갑자기 마주하게 된 순간을 감성적으로 잘 그려내어서 좋았다.

 

 

<기록Ⅰ비서울>

"다시 돌아오실 거죠?"

 

이 섹션도 집중해서 읽었다. '서울' 정말 지긋지긋하다고 하면서도 벗어날 수 없는 곳인가 보다. 어지간히 어긋나지 않으면 서울살이에서 벗어나기를 마음먹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나는 서울이 아니라 경기도에 살고 있지만 말이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올라온 도시, 경기도는 마냥 낯설었다. 결혼 후 남편 직장 때문에 이사한 거라 혈혈단신인 이곳에서 남편의 퇴근만 기다리며 한동안 지냈던 것 같다. 재택근무를 하지 않고 직장을 옮겼더라면 좀 더 나았을까? 그래도 결혼으로 힘겨운 출근에서 벗어나 한시름 놓은 상태라 재택근무로 안온한 하루하루가 소중했다. 어느 정도 나이가 되면 귀촌 하고픈 나 홀로(남편은 싫다 하고) 꿈은 잠시 접어두고 자식농사에 수도권을 벗어나는 생각은 감히 해볼 수가 없다. 사회·경제·문화 인프라를 내 자식에게 제공하기 쉬운 이 공간에 대한 미련, 집착이 내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기록Ⅰ비서울> 섹션을 더욱더 감정이입해서 읽었다. 류하윤 님의 〔나의 제자리〕 기록을 내 기록인 것마냥 꾹꾹 써 내려갔다.

 

나는 이상으로 가득한 사람이고, 현우는 이상을 현실로 만드는 걸 즐기는 사람이다.

삶에 따라 터전이 달라지기도 하지만, 터전에 따라 삶이 달라지기도 한다.

내 마음을 삶으로 살아내는 일에도 계속 최선을 다하고 싶다.

나에게 친절할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가을의 시소' 선정 과정을 담은 페이지가 인상적이었다. 전문가가 아닌 문학을 '애호'하는 대학생들과 함께 후보작들에 대해 논의하고자 모인 대담을 지면에 담았다. 4명의 대학생들과 2명의 편집위원들이 허심탄회 감상을 나누는데 후보작품들을 읽어보지 않아 정확한 내용을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 하지만, 시를 이해하기 위한 접근법에 대한 부분이나 같은 작품을 읽고 쏟아지는 감상들이 흥미로웠다. 문학 관련 전공자이거나 창작활동을 하는 문학 애호인 대학생들의 시선과 목소리를 잘 담아낸 기획이었다.

 

잡지는 매력적이다.

한 가지 이야기만 담고 있지 않아서 이 지면이 내 마음과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 다른 이야기를 만나면 된다는 여유로움을 준다. 자음과모음(2022 가을호) 또한 수록된, 모든 작품들이 공감되고 이해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세상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분명 존재해야 한다. 내가 공감하든 안 하든. 남에게 상처 주기로 마음먹고 독기로 가득 차 악으로 쓴 혐오, 망언, 차별이 아닌 이상 언제든 소리 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들어줘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자음과모음(2022 가을호)는 좋은 만남이었다. 부정할 수없이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돈'에 대한 고민으로 부자로 살고 싶은 욕심을 해부해 보고 제 나름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을 담고 있기에 솔직했다.

내가 읽고자 고른 시, 소설이 아니라 소개된 시, 소설을 만나면서 문학의 영역이 확장되는 경험을 하였다. 어쩌면 예전의 나라면 결코 읽지 않았을 시, 소설을 이미 읽은 지금의 나는 또 다른 시, 소설을 소화시키기 위해 작가의 다른 작품들을 찾고 있으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자음과모음(2022 가을호)는 나에게 숙제를 남겼다.

가을의 시 〔문보영 지나가기

가을의 소설 〔전예진 베란다로 들어온

'가을의 시소'를 읽어보기

* 숙제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설레는 시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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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트 돔 아래에서 - 송가을 정치부 가다
송경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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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일보 송가을인데요>로 초짜 열혈 사회부 기자 '송가을'을 세상에 선보였던 작가 송경화 기자는 무대를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옮겨 '정치부' 기자 송가을을 창조해냈다. 단단한 송가을의 파란만장한 국회 생존기가 <민트 돔 아래에서> 숨 가쁘게 펼쳐진다.

- 송가을 정치부 가다

 


민트 돔 아래에서/송경화 장편소설/한겨레출판


 

 

저자가 기자라 소설 속 기자들 일상 표현에 생동감이 넘친다. 그리고 일반인들은 모르는 정치부 기자와 그들의 취재원인 국회의원의 세계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정치용어와 기자 용어 및 은어들이 익숙하지 않아 헷갈리는 것도 잠시, 금세 적응할 만큼 흡입력이 강한 작품이다.

 

기자와 국회의원, 하나의 목표가 아닌 각양각색 목표와 목적으로 모인 국회는 욕망의 용광로가 되어 뜨겁게 타오른다. 과연 열혈 기자 송가을은 그 치열한 전쟁터에서 '좋은 기자'가 되고 싶다는 자신의 신념을 끝까지 지킬 수 있을 것인가?

 

 

<민트 돔 아래에서>는 송가을의 좌충우돌 고군분투 국회 적응기를 의정 활동 중심으로 풀어나간다.

고도일보와 타 신문사들과의 경쟁 구도, 고도일보 내부 줄다리기, 국회의원의 잇속 챙기기를 기저에 깔고, 의정 활동에서 벌어지는 사건, 사고, 이슈들을 바라보는 이해관계 군상의 시선 또는 태도 차이를 잘 조명하고 있다. 우리네 현실에서 벌어진 사회적 약자의 비극적인 사건, 사고들을 소재로 활용하여 국회, 언론, 정부의 진정성 있는 자세를 다시금 환기시킨다. 이런 인재는 왜 되풀이되는가? 소설 안에서 벌어지는 행태를 보면 딱! 답이 나온다.

 

날것이 넘실대는 공간 속에서 '좋은 기자'에 대한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한 송가을의 분투는 밝은 내일만을 그리지 않는다. 바르고 옳은 길이라 믿었던 일의 결과가 쓰라리고 참담한 상처로 돌아와 예전처럼 껍질 속으로 들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송가을은 또다시 일어섰다. 문을 열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들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했다. 누군가의 목숨 값으로 이룬 '정의'는 눈물로 얼룩진 반쪽짜리인 기쁨, 그러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힘이 되어준 결의가 아닐까 싶다.

 

 

 

 


송가을 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여 유기적으로 이야기를 채워나가 구성이 탄탄하다. 고도일보 동기이자 정치부 말진으로 국회에서 부대끼면서 어느새 정이 들어버린 기민호, 대학교 시절부터 그를 좋아해 기자가 된 박동현, 최연소 정치부장이자 최초 여성부장인 서수경, 보수 성향의 3선 국회의원을 아버지로 둔 진보 성향의 윤장미, 특이한 초선 국회의원 금문성 등 각양각태의 인간상이 등장하여 이야기가 풍성해졌다. 개인적인 서사와 정치사회적 신념들이 상충되면서 전개되는 과정이 몰입하게 만든다.

 

송가을의 학창 시절 상처와 연결된 필리핀 대사 인터뷰는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는 결말을 보여주었다. 올바른 길을 가려는 그의 의지가 흔들리지 않게 다져주었다. 지난날의 상처를 딛고 각자의 자리에서 따뜻하고 바른 내일을 꿈꾸는 청년이 된 송가을과 친구의 모습은 감동이었다. 박새롬의 죽음과 대비되어서 더 애틋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한층 더 성숙해진 송가을을 상상할 수 있었다.

 

 

읽으면서 조금 의아하고 불편한 부분이 있었다. 송경화 기자도 의식하는 부분인 듯싶다. 기자들이 사용하는 표현에 일본어 잔재가 이렇게 많이 남아있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다. 정확한 표준어 사용에 누구보다 앞장서야 하는 직업군이 맛이 안 산다고 일본식 표현을 계속 사용하는 듯한 설명이라 공감되지 않았다.

 

그리고 기자들의 고충이 곳곳에 잘 드러나 있었다. 변하는 시대의 요구에, 조직 문화에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맞지 않더라도 감수해야 하는 부분에 대한 고민, 기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들을 느낄 수 있었다. 현장에서, 기사로 성장하는 것이 기자이겠지만, 소설을 통해 질문과 고민들을 털어놓고 생각해 보는 것도 또 다른 성장과 변화의 길일지도 모르겠다.

 

 

<민트 돔 아래에서>소설에서 다루고 있는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들을 위한 정책과 지원에 대한 조명과 관심은 송가을을 비롯한 기자, 국회의원이 꼭 장착해야 할 자세이자 무기가 아닌가 싶다.

 

"오늘 아침 장사 폭망이네. 제목에 더 센 걸 넣었어야 했나 봐.

저격수 가지고도 망설이고 앉아 있었으니……."

 

"기자님, 정치인한테는요.

자기 부고 기사를 제외하곤 모든 기사가 이득이에요."

 

 

기자와 국회의원이 자본주의 체제에서 인간미를 잃지 않고 공존하는 세상을 위해, 이미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들이 아닌 소외된 이웃에게 마이크를 건네는 포용의 자세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저 사람들은 목소리 낼 방법이 저거밖에 없는 거 아닐까?"

 

"사람들이 외면하는 이들, 약자들에게 먼저 손 내밀고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하는 기자.

난 그게 좋은 기자라고 생각해."

 

 

기자들의 워너비 '정치부'에 입성한 송가을 기자는 국회의사당 출근 첫날에 뜻밖의 사실을 깨닫는다.

"국회 돔이 민트색이었어? 하늘색인 줄 알았는데……."

 

낯설고 두려운 공간이었던 국회 안에서 의원 단식이 시작되자 평온하게 드러누워 '여의도에 어울리는 기자, 좋은 기자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송가을.

설렘이 한 방울 추가된 것 같은 민트색, 그 설렘은 송가을을 욕망의 용광로 '국회'에서 살아남게 해주었다. 이제는 기자 생활의 꽃이라는 청와대 출입 기자, '1호 기자' 송가을을 오매불망 기다려본다.

 

한겨레출판 하니포터4기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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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두 컷 만화 - 마이웨이 누누씨의 할 말은 하고 사는 인생
누누씨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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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웨이 누누씨의 할 말은 하고 사는 인생

 

이번에 <인생   만화> 서평단 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누누씨 손에서 탄생한 귀엽고 깜찍한 캐릭터들이 깜찍하고 대범한 발언들을 하는, 크로스 매칭이 자연스러운 매력적인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 Z세대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너무 귀엽지 않아?" "아, 이 캐릭터 알아요." 신기한 발견이라도 한 듯 요란스럽게 보여주었던 저는 민망했답니다. SNS를 잘 하지 않는 저만 몰랐던 겁니다. ^^a

 

 

 

인생은 두 컷 만화/누누씨 글.그림/중앙books


 

13만 팔로워 OMZ 세대 선정 요즘 가장 핫한 만화!

우주 최강 귀요미상 수상

 

책 표지 앞에 떡! 하니 이런 수식어들이 있었건만, X세대인 저는 눈이 침침한 지, 보고 싶은 것만 보이는 건지 그냥 스쳐 지나갔네요. 하지만 덕분에 우리 집 Z세대들과 누누씨 이야기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짧은 기간에 많은 이들의 공감과 호응을 이끌어내는 저력을 보여준 누누씨! 게으르고 염세적이면서도 사랑과 희망을 믿고 오늘을 버티며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 듯한 만화 그리고 뻥~ 뚫리는 사이다 같은 발언에 위안과 대리만족을 느끼게 됩니다.

 

 

이 책은,

1. 쉿! 우리만의 고민 해결책

2. 인생 살기 짱 쉽다!!

3. 꼬옥 안아주면 되~ ♡

총 3 Part로 이루어졌습니다.

 

누누씨, 덕춘-덕자-덕희 세쌍둥이 토끼, 식이

총 5명?의 캐릭터들이 두 컷 만화를 책임지고 있답니다.

놀랍게도 이 캐릭터들은 익숙한 툴인 '그림판'에서 탄생하였습니다. 책 시작 부분에서 누누씨가 친절하게 <토끼 그리는 법>을 설명하고 있지만, 정말 마법의 손을 가진 사람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림판으로 그린 만화라는 생각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신기하면서도 친숙한 만화로 사랑스러움을 장착하고 다가옵니다.

 

PART1은 인☆에서 받은 고민들에 대한 해결책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진지한 세상사 고민부터 시시콜콜한 개인적인 고민까지 각양각색입니다. 누누씨는 고민들 하나하나에 똑같은 태도와 무게로 해결책을 담아냈네요.

 


읽다 보면 고개를 끄덕이고 웃게 되는 답변들

 

 

그리고 자신만의 고민을 짤로 직접 그려보는 페이지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머리를 아프게 하는 고민이 있다면 한번 그려보면 좋을 것 같아요. 강의를 듣거나 책을 읽으면 꼭 나오는 활동, 그만큼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익숙하지 않은 우리이기에 일부러라도 마주해 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고민이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조금은 덜어낼 수 있을 거예요.

 

 

마이웨이 누누씨의 할 말은 하고 사는 인생 기조를 확실하게 다루고 있는 부분은 PART2입니다.

 

누구나 한 번뿐인 인생을 너무 내달리지도 말고, 쉽게 살려고도 말라며,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가면서 처방하고 있습니다. 뜨끔하다가 푸하하하 웃음을 터트리다가 눈물도 찔끔거리면서 읽게 되네요.

 

 

사랑 넘치는 그림으로 시작하는 PART 3. 꼬옥 안아주면 되~ ♡입니다.


 

요즘 세대의 '사랑'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었습니다. 재치 넘치고 당당하게 마음을 표현하는 사랑이 여기저기에서 피어났습니다. 고민과 걱정은 내려놓고 행운과 사랑을 안고 당당히 가슴 펴고 살아가자고 토닥여주는 책입니다.

 

 

 

덕춘, 덕자, 덕희 토끼들과 식빵 식이와 같이 자신의 꿈을 이뤄나가고 있는 누누씨가 전하는 메시지가 힘찬 응원이 되네요. 깜찍한 토끼 세쌍둥이와 간간이 인사 나누는 사이가 될 것 같습니다.

 


고민, 걱정은 넣어둬. 우리가 대신해줄게. 힘들면 언제든 찾아와!!!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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