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어렵지만 양자 역학은 알고 싶어 알고 싶어
요비노리 다쿠미 지음, 이지호 옮김, 전국과학교사모임 감수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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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에는 일상에서도 양자 컴퓨터, 양자 전송 등 '양자 역학' 관련 뉴스를 많이 접하게 된다. 그리고 현대인의 필수품인 스마트폰에도 양자 역학의 이론이 적용되고 있다. 양자 역학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우리는 이미 양자 역학의 지식을 활용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궁금증이 몽글몽글 피어나기 시작한다.

도대체 '양자 역학'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친절한 답을 제시하는 책이 있다. <과학은 어렵지만 양자 역학은 알고 싶어>



과학은 어렵지만 양자 역학은 알고 싶어/요비노리 다쿠미/한스미디어



알고 싶어 시리즈 4번째 주제는 '양자 역학'이다. 저자는 '상대성 이론'에 이어 '양자 역학'의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아주 친절하고 쉬운 설명으로 말이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다쿠미 선생님이 직장인 20대 여성 에리에게 강의를 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에리 캐릭터가 수포자라는 설정이기에 핵심적인 내용을 복잡한 수식이나 계산 없이 도표와 그림, 실험과 사례를 사용하여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고 있다. 수강생 에리는 독자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다. 다쿠미 선생님 강의를 집중해서 듣고, 궁금한 점이나 이해가 잘되지 않는 사항에 대해 질문을 하거나 핵심을 다시 한번 정리해 준다. 두 캐릭터의 티키타카를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 점점 해박해지는 에리를 보면서 '어, 나는 아직 아닌데… 이해가 안 되는데.' 위기의식과 경쟁의식을 혼자 느끼기도 한다.

 

양자 역학은 미시세계의 물리학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물리학인 역학, 전자기학, 열역학 등은 거시 세계를 설명해 주는 고전물리학이다.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인가, 상대적인가 관점에서 상대성이론과 대치되고, 거시적인 성질만 다룬다는 점에서 확률적·통계적·미시적으로 다루는 양자역학과 대치된다. 하지만 인간의 상식(긴 시간 확립된 이론을 교육받아 후천적으로 형성된)에 부합하는 고전물리학은 대부분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물리현상에 충분히 부합되고 있다. 긴 시간에 걸쳐 체계적으로 확립된 고전 물리학과는 달리, 양자 역학은 과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저자도 미시 세계의 물리 법칙이 거시 세계의 물리 법칙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그 경계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밝혀내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다고 밝히고 있다.



뜨거운 감자, 양자 역학!

그 놀라운 세계로 우리를 이끌어주는 <과학은 어렵지만 양자 역학은 알고 싶어>

 

HOME ROOM

1. 수식 없이도 양자 역학을 이해할 수 있다.

2. 양자 역학은 새 시대의 필수 교양!

3. '미시 세계'의 물리학

4. '미시 세계'에서는 물리 법칙이 달라진다.

5. 양자 역학을 공부하는 의미

6. 양자 역학의 4가지 포인트




'양자 역학'에 대한 다쿠미 선생님의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HOME ROOM으로 큰 틀과 의미를 정리해 주니 더 수월하고 진지하게 시작할 수 있었다. 특히 양자 역학을 공부하는 게 일상생활에서 몸에 뱄던 고정관념을 버리고 새로운 발상을 받아들이는 훈련이 되며,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는 즐거움과 감동을 언급하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과학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창이다. 어떤 창을 통해 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게 풍경이다. '양자 역학'이라는 흥미로운 창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기대된다.



16강을 통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양자 역학을 알려주고 있다.

 * 입자는 입자, 파동은 파동으로 분리되던 세상이 입자일 수도 있고, 파동일 수도 있는 이중성을 띄게 되었다.

파동을 통해 전자의 존재 확률을 생각해 볼 수 있고, 관측하기 전까지는 '어떤 위치에 있었는가?' 같은 확정적인 생각을 할 수 없다.

* 놀랍게도 '관측'이 '결과'에 영향을 끼친다. 이 부분이 제일 흥미로우면서도 아리송한 부분이었다. 양자의 세계에서 '정보를 얻는 것'이 결과에 영향을 끼치는 현상이 신기하고 재밌지만 솔직히 지금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터널 효과'로 태양의 핵융합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불확정성'은 우리의 일반적인 감각과 상식에 반하여 미시 세계를 설명한다.

* 마법 같은 관계인 '양자 얽힘',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보이지 않는 실로 이어져 있는 것 같은 관계로 'A가 결정되면 B도 결정'된다.





양자 역학을 이용한 신기술로 '양자 컴퓨터'와 '양자 전송'을 들고 있다. '중첩'과 '양자 얽힘'을 이용한 기술로 기술 자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어려운 관계로 본질에 대해서만 서술하고 있다. '양자 전송'은 광속을 초월한다? 인간도 '양자 전송'이 가능하다? 등 궁금증을 가질만한 질문을 에리가 대신해주고 친절한 설명은 우리 다쿠미 선생님의 몫이다. 그리고 그 이해와 관심은 읽는 우리 독자의 케이크로 남았다.

아인슈타인 -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God does not play dice)." Vs 보어 - "신이 주사위 놀이를 하든 말든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Stop telling God what to do)."

다쿠미 선생님이 불확정성을 설명할 때 사용한 주사위의 예를 보면서 두 지성의 논쟁이 떠올랐다. 양자 역학 입장에서는 주사위의 예가 딱! 적당한! 알맞은! 설명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과학은 어렵지만 양자 역학은 알고 싶어>

20세기 새로운 과학으로 '상대성 이론'과 함께 세상을 뒤흔든 '양자 역학'에 대해 입문하고 싶은 이들에게 주저 없이 추천한다. 다쿠미 선생님과 에리의 조합은 우리에게 큰 즐거움을 주고 있다. 벌써부터 새로운 알고 싶어 시리즈가 시다려진다.

 

<한스미디어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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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게, 큐레이터 - 뮤지엄에서 마주한 고요와 아우성의 시간들 일하는 사람 8
남애리 지음 / 문학수첩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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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다. 

나는 이 직업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 프롤로그 마지막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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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 지방에서 올라와 경기도에 자리 잡은 후 쭉 살고 있다. 수도권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경제적 부분도 있겠지만 교육·문화 전반적인 인프라를 포기할 수 없어서이다. 저자도 책에서 밝히고 있듯이 우리나라의 사회·경제·교육 자원들은 수도권에 특히,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자차가 없더라도 거미줄처럼 잘 짜인 지하철을 이용하면 이런 혜택을 누릴 수 있으니 지방으로 내려가는 건 쉽지 않다. 공기가 좋지 않다, 교통이 불편하다, 온갖 불평불만을 늘여놓으면서도 일상의 혜택을 포기하기에는 욕심이 많은 나이다. 이런 나와는 다르게 시골에 있는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를 시작한 이의 이야기를 만났다.



<소소하게, 큐레이터>는 큐레이터로 10여 년의 시간을 보낸 저자가 그간의 일과 감정, 생각을 엮은 책이다. 부제 '뮤지엄에서 마주한 고요와 아우성의 시간들'의 의미를 잘 담고 있다.


소소하게, 큐레이터/남애리/문학수첩/일하는사람 08



코로나19 전에는 아이들과 1년에 3,4번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하고, 경기도미술관 전시와 수업에도 종종 참여했다. 그곳에서 만나는 도슨트, 학예사는 특별한 느낌이었다. 순수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교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모든 작품이, 모든 전시가 그런 감정을 이끌어낼 수는 없다. 그렇기에 그 안에 담긴 스토리를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알아가기에는 시간도 방법도 마땅치 않기에 도슨트나 전시자료집 도움을 받는다. 도슨트의 설명이 덧입혀진 작품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남의 나라로 유출되었다가 우리나라로 다시 돌아와 수리되어서 처음으로 전시되는 작품이라는 설명은 가슴 깊숙한 곳에서부터 벅차오르는 무언가를 이끌어내었다. 전시장을 채운 수많은 작품들 중 하나가 아니라 특별하게 다가와 시간을 들여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나에게 큐레이터는 작품과 연결해 주는, 고마운 존재이다.



<소소하게, 큐레이터>는 이런 나에게 큐레이터 세계를 확장시켜준 책이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바쁨을 피해 정적인 곳에 숨고 싶었고, 고양이가 좋았으며, 공기 좋은 곳에서 여유롭게 글 쓸 시간을 얻고 싶어서 시골에 있는 박물관의 큐레이터가 되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순진한 희망 사항일 뿐이었고, 어느새 그는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가 전하는 큐레이터로서의 일상은 정장과 하이힐로 갖춰 입고 우아하게 전시장을 누비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까마득히 먼 우주 너머에서 펼쳐지는 대혼란 그 자체였다.





전쟁을 방불케하는 '전시'의 모든 것을 쏟아낸 1장을 통해 기존 큐레이터의 이미지는 쨍그랑! 부서지고 만다. 텅 빈 화이트 큐브가 있다. 전시를 기획하여 그 공간을 주제에 맞춰 채우고 관람객을 받는다. 그리고 다시 철거하여 텅 빈 화이트 큐브만 남았다. 수많은 이들과 작품들이 오고 가던 공간을 가득 채우던 아우성이 사라지고 고요가 찾아올 때까지 큐레이터는 한결같이 그곳에 존재한다. 업무가 분리된 큰 박물관과는 달리 설치와 철거, 벽면 보수까지 껴안은 시골 박물관 큐레이터는 지치지도 않고 또다시 지역 작가를 위한 전시와 소외된 이들을 돌아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호기롭게 진행한다. 망했다고 표현된 글 끄트머리에 애정이 잔뜩 묻어있다.

 


일을 하다가 지치면 수장고에서 홀로 재충전을 한다는 저자는 수장고를 찾을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다양한 업무로 쫓기고 민원 전화에 전시 연계 체험용 의상을 다림질까지 처리해야 한다. 그런 순간에는 큰 기관에서 일하던 때를 그리워하기도 하지만, 전시의 1부터 100까지 오롯이 혼자 처리해 힘들지만 아주 작은 것이라도 자기 생각대로 할 수 있는 작은 박물관 큐레이터라서 다행이라 여긴다. 큐레이터로서 충만한 만족감이 전해져 와서 부러웠다.

항상 부족한 예산과 항상 넘치는 잡무에 현재에 의문을 품고 의미를 잃어버린 채 회의감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고작' 전시 따위가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는 힘을 보여주기도 하고, 예술을 통해 삶의 위안을 얻고 재미를 느끼고 희망을 품기도 하는 기적 같은 경험들 덕분에 저자는 오늘도 박물관으로 출근한다.

 


박물관이라는 공간에서 시간의 제약을 벗어나 작품을 매개로 교감하는 관람객의 모습은 참 다양하다. 우대 단골 고객인 어린이 단체와 가족 단위 관람객들은 큐레이터의 신경을 곤두서게도 하지만 놀라운 감동의 순간을 선사하기도 한다.

<70년 전의 편지> 챕터는 강렬한 아우라를 뽐내며 박물관 블루스를 장식한다. 생활사 유물들 중 사람들의 삶을 가장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편지'로, 유물 정리 중 연애편지를 발견한다. 한국전쟁에 파견된 한 미국인 병사가 사랑하는 아내에게 쓴, 70년 전 편지의 주인공을 찾는 이야기다.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이야기가 담긴 사사로운 편지가 유물이 되어 후세에 전해진다는 것이 새삼스럽고 놀라웠다.

 


큐레이터의 다양한 면면들을 잘 보여주고, 시골의 작은 박물관 큐레이터로서 느끼는 책임과 자각, 고민을 담담하게 하지만 의미 있게 담아내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뮤지엄을 사랑하는 덕후로 은혜로운 성덕임을 자랑스러워한다.

자신이 느낀 예술 속 아름다움과 의미를 타인과 공유하고자 끊임없이 고민하는 저자 같은 큐레이터 덕분에 퍽퍽하고 건조한 현대인 일상이 아름다워지고 풍성해진다. 잠시 시간을 내어 말을 걸어오는 작품을 만나러 전시장을 가보는 여유를 챙겨보면 좋겠다.

 

<소소하게, 큐레이터>를 통해 들여다본 큐레이터의 공간은 흥미롭고 매력적이었다. 일하는 사람으로 만나본 큐레이터, 주변에서 쉽게 접하지 못하는 세계를 여행할 수 있어서 좋았다.

 

<문학수첩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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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 영국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 계급의 사랑과 긍지
브래디 미카코 지음, 노수경 옮김 / 사계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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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으니 우리 모두는 친구다."

 

긴축재정에 대해 통렬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던 브래디 미카코가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로 돌아왔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통쾌한 문체로 우리를 휘어잡는다. 브렉시트로 대두된 아저씨에 대한 비난과 혐오가 만연한 시대에 '해머타운의 아저씨들'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문제적인' 존재로 간주되는 그들이 남편이자 이웃인 그녀가 전하는 이야기들은 힘이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 강한 호소력을 발휘한다.

 

 

내게 영국의 노동계급 아저씨에 대한 이미지를 구체화시켜준 영화들이 있다.

풀 몬티(1997년작)

빌리 엘리어트(2000년작)

 

두 작품 모두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가 총리로 있던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 현대화로 제철소가 문을 닫아 실업자가 되거나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을 강행하는 것에 노조가 장기 파업으로 대항한다. 실업자가 된 노동자들, 파업과 시위를 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영국 노동 계급의 아저씨로 각인되었다. 두 영화의 결이 다른데,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 소설 속 '해머타운의 아저씨들'은 두 영화 어느 장면에서도 어색하지 않다. 신기한 일이다.

 



브래디 미카코는 남편을 비롯한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 계급의 아저씨들의 일상을 서술하고 있다. 브렉시트 찬성파로 악역, 악마로 낙인찍힌 그들이 일상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애처롭고 안타깝다가도 정의로우며 사랑스럽고 또다시 먹먹하게 만든다. 영국 노동자로서 권리와 임금 그리고 고용 조건을 건강한 노동 시장을 바라는 그들의 간절함이 브렉시트로 발현되었을 뿐이다. 건강한 복지국가에서 성장하고 일했던 그들이 이민자들에게 자신의 밥그릇을 뺏기는 것 같은 불안감과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절실하게 다가온다.

 

 

교육, 의료, 실업 등 사회 전반에 걸쳐 탄탄한 복지 시스템이 구현되었던 시대를 경험한 이들이기에 긴축 재정으로 붕괴된 복지 시스템을 받아들이는 게 힘겨웠을 것이다. NHS 국가보건서비스와 노동조합의 힘을 믿는 순수한 노동 계급의 아저씨들은 그들의 쓰러져가는 왕국을 다시 세우기 위해 EU 탈퇴를 찬성한다. 그리고 EU를 탈퇴하면 영국이 EU에 지불하는 거액의 분담금을 NHS에 쓸 수 있다는 달콤한 유언비어가 크게 이런 생각을 거들었다. 그들은 잔류파가 투표에서 이길 것이라고 생각하여 정부와 EU 관료들을 위협하자는 단순한 생각으로 찬성 표를 던졌으나 아이러니하게도 탈퇴 찬성 표가 더 많았다.

 

인생이 우리를 속일지라도/브래디 미카코 지음/노수경 옮김/사계절



힘겨운 하루 일과를 보내고 선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피로를 푸는 베이비부머 세대 노동자들은 점차 입지를 잃어가고 있다. 수명은 늘어가고 직장을 줄어들고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가능하게 해준 NHS 의료제도 또한 붕괴되고 있다. "질병은 공동체가 비용을 함께 부담해야 하는 재난이다."라는 발족 이념마저 빛이 바랜 오늘날 우리의 해머타운의 아저씨들은 절대로 NHS를 포기할 수 없다.

 

 

해머타운의 아저씨 세대는 현 사회에 최후의 저항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저자의 말처럼 삶의 주된 배경이 되는 시대가 너무 다르다.

'이마에 땀이 맺히도록 일하면 보수를 받는다'와 같은 삶의 방식은 이제 지겹다며 젊은이들이 대항문화를 형성하던 시대를 살았던 베이비부머 세대와 '이마에 땀이 맺히도록 일해도 보수를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라는 보합제와 제로 아워 계약이 횡행하는 오늘을 살고 있는 Y 세대는 극명하게 대치하고 있다. 어느 한쪽의 잘못이라고 특정 지어 말할 수 없는 아니, 이는 대립과 갈등을 증폭시키고 폭력과 혐오로 이어지게 부추기는 사회와 위정자 그리고 언론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본다.





더 이상 이민자 NO!를 부르짖던 아저씨들이 일상 속에서는 철없는 십 대 아이들의 배외주의를 꾸짖고, 외국인 아이의 얼굴에 묻은 초콜릿을 닦아주는 친절함을 보인다. 이는 모순적인 모습이라기 보다 인간적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발등에 떨어진 생존의 문제와 영국 노동자의 임금과 안정된 고용 조건을 지키기 위해 브렉시트를 찬성하지만, 함께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존중과 따뜻한 배려는 당연한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 겉모습에 놀라 도망가고 싶다가도 그들의 투박한 호의에 스르르 이끌리게 된다. 저자 브래디 미카코의 글 저변에 깔린 애정에 어느새 물들었나 보다. 글을 읽다 상상하며 피식 웃고 있는 나를 보면 말이다.

 

 

해머타운의 아저씨들의 가감 없는 이야기를 뒤로하고, 제2장에서는 영국의 세대와 계급, 술에 대한 내용을 정리하고 있다. 출생연도에 따른 세대에 대한 구분은 우리나라에서도 통용되고 있는 일반적인 구분법이었다. 그것보다는 영국 특유의 세대가 설명된 페이지가 흥미로웠다. 좋아하는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에서 유래한 브리짓 존스 세대와 그의 남자친구들인 래즈 세대 설명이 눈길을 끌었다.

노동 계급은 문화적 계층이 아니라 경제적 계층으로 다양한 인종을 포함하고 있다. 그 다양성이 노동 계급의 결속력을 약화시킬 것처럼 부풀려지지만 저자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 인종, 문화, 종교, 젠더에 상관없이 같은 지역에서 같은 수입으로 일하는 한 경제적인 문제는 공통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의 흔적, 조각들이 얼기설기 엮여 또 다른 이야기와 관계를 만들어가는 그들의 순수한 역사를 읽으면서 '아저씨' 카테고리 안이 다채로워지고 있다. 논리적으로 말하는 아들에게 밀리는 듯해 소리를 냅다 지르는 모습에서부터 눈 오는 밤 길가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노숙자를 가엽게 여겨 흔쾌히 집에서 재워주는 용감무쌍한 모습 이면에 멀리 떨어져 잊을 만하면 연락을 전하는 또래의 아들을 떠올렸을 애처로운 부정과 나이, 국경, 외모 다 상관없이 사랑 하나에 설레는 모습까지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적절한 음악과 함께 여유롭게 수용하고 있다.

 

 

야단맞고, 멍청한 일을 하고, 호되게 당하고, 엉덩이를 내놓으면서

아저씨들의 인생은 앞으로도 이어진다.

 

 

애정이 가득 담긴 영국 노동 계급의 아저씨 이야기를 정신없이 읽다 보니 기분이 유쾌해졌다. 영국 아저씨들의 인간적이고 유쾌하고 다정한 일상을 공유하면서 그들이 혐오와 증오의 대상이 된 이유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브래디 미카코 저자가 원흉으로 지목하는 '긴축 재정'이라는 놈은 정말 죄가 많은 것 같다.

 

 

아저씨들의 여러 에피소드 중에서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이야기들이 몇 개가 있다.

션의 <브라이턴 동화> & 스티브의 <노 서렌더> & 사이먼의 <타올라라, 사이먼> & 레이의 <데어 제너레이션, 베이비> & 마이클의 <그랜 토리노를 들으며>


"나는 온 세상을 여행하며 알게 되었어. 노동조합이 약한 나라의 노동자는 슬픈 존재라는걸."

사이먼은 노동조합에 들어가 노동 운동을 하지 않는 젊은이와 이민자들이 싫었던 것이다.

반면에 노조에 가입해 싸우던 예전의 이민자들은 좋아했단다.

요즘 들어오는 EU 이민자들은 몇 년 동안 일을 하고 돈을 저축해 자기 나라로 돌아갈 생각만 하며

"영국 국내 노동자의 대우와 임금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 그를 열받게 한다고 했다. (125쪽)

 

 

평상시 나의 이민자와 노동 시장에 대한 얕은 생각(별로 깊게 생각하지도 않았다)을 관통하는 충격적인 문장이었다. 이런 공동체 의식과 책임 의식으로 똘똘 뭉친 '해머타운의 아저씨들'을 나 또한 축복하고 싶어졌다.

워킹 클래스 히어로들이여, 언제나 인생의 밝은 면을 보기를!

 

 

영국의 베이비부머 세대와 밀레니엄 세대의 인정사정없는 싸움처럼 우리나라도 양극화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혐오와 증오, 분노가 가득한 사회에서 자라나는 우리의 2세들은 어떤 미래를 꿈꾸게 될까? 두렵다. 향상심을 중요시하고 유유자적하고 싶지 않고 가족끼리의 화목한 시간보다 쉬지 않고 일하고 싶어 하는 레이첼이 자꾸만 떠올라 무섭다. 더더 위로 올라가고 싶다는 욕망의 껍질 속에는 아래로 추락할까 봐 무서운 두려움이 웅크리고 숨어있다.

개인이 온전히 스스로를 책임져야 하고 매 순간 증명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있다고 믿는 이 사회를 뒤흔들 수 있는 담론의 길이 열리기를 소망한다.

 

<사계절 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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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그리고, 타이베이 - 이메이의 어반스케치와 펜드로잉으로 기억하는 대만 여행
이명희(이메이) 지음 / 밥북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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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를 공포로 몰고 갔던 코로나19 팬데믹이 안정세를 보이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는 지금, 우리 가족은 해외여행을 가도 되려나?라고 설레고 있다. 코타키나발루, 다낭, 타이베이 등 여러 후보지들이 거론되었다.

때마침 출간된 이메이님의 <걷고 그리고, 타이베이> 책을 통해 타이베이'에 대한 정보를 얻으면 유용하겠다 싶었다.


걷고 그리고,타이베이/이명희 글과 그림/밥북



코로나19 창궐 이전에 떠난 타이베이 드로잉 여행을 책으로 엮었다. 여행은 함께 하는 사람과 목적에 따라 달라진다. 같은 공간이지만 시선이 닿은 곳이 달라진다. 『걷고 그리고, 타이베이』은 그림 그리는 지인들과 함께 한 드로잉 여행이었기에 일반 여행과는 결이 살짝 다른 느낌이다.

 

그리운 낯선 공간, 여행하는 기분을 느껴보는 시간을 가졌다.

보통 사진으로 접하는 풍경과 음식들인데 드로잉으로 만나니 느낌이 색다르다. 사진처럼 찍어낸 완벽한 전달이 아니라 화가의 눈에 담겨 다시 종이에 펜으로 그려진 2차 산물로 마주하는 타이베이의 이곳저곳이 감각적으로 다가왔다. 색채가 없어 더 단순하면서도 깔끔해 본질을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이메이 작가의 눈에 비친 공간, 음식, 사람들의 모습이 이렇구나.

여행지로 타이베이에 호기심이 있는 상태라 더 세세하게 보게 된다. 나는 이곳에 가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도 해보고, 아, 이곳은 꼭 가봐야지. 이 음식은 내 취향인데. 소중한 정보들을 수집하면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잔망스러운 포즈의 오숑이 새겨진 스탬프(출처 : 브런치)

 


여행의 시작은 공항에서부터다. 이메이 작가 역시 공항에서 미션을 시작으로 타이베이 여행을 호기롭게 시작한다.

귀여운 미션 깨기에 이메이 작가에 대한 호기심도 커졌다. 타이완 관광청 공식 캐릭터인 반달곰 '오숑' 스탬프로 시작한 여행은 어떤 소소한 행복을 전해줄 것인지 두근두근했다.

 


★ 역사와 낭만이 담긴 타이베이의 가게

타이베이 하면 음식을 빼고 말할 수 없는 나라이다. 식도락 여행이라 할 정도로 많은 여행객들이 자신의 베스트를 정리해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이 책에서는 유명한 맛집뿐만 아니라 숙소 옆 딤섬 가게나 계획했던 유명 맛집이 열지 않아 우연히 들어가게 된 가게들을 만날 수 있다. 여행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이런 우연들이 오히려 여행을 더 값지고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향신료 같아 좋아한다. 물론 적당히~

타이베이 여행 계획에 디저트 가게 '빙두'를 추가하였다. 디저트 문화가 잘 발달한 타이베이이기에 작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 디저트를 꼭 먹어보고 싶어졌다. 곧 그 따스함을 나눌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 사람과 삶이 보이는 타이베이의 시장

우리 가족도 여행을 가면 꼭 시장에 간다. 재래시장에 가면 그 나라의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문화를 엿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물론 '여기는 관광객을 위한 공간입니다.' 대놓고 판이 벌어지는 시장도 있다. 하지만 현지인들의 일상을 조금은 가까이서 볼 수 있어서 좋다. 이메이 작가가 추천해 준 시장들이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을 자라나게 하는 영양분이 되어서 괴롭다. 코로나19 팬데믹, 정말이지 싫다.

 


★ 탐험의 묘미가 있는 타이베이의 거리

이메이 작가에게 타이베이의 첫인상은 언뜻 보기에 한국과 비슷해 보였지만 달랐다고 한다. 특히 도로 위를 가득 채운 오토바이 부대들을 예로 들었다. 타이베이도 이웃 동남아 국가인 베트남처럼 오토바이가 주요 교통수단이지만, 이메이 작가 말로는 정리가 잘 되어 있고 덜 혼잡해 보였다고 한다. 영상으로 접하는 오토바이 부대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쭉 이어지는 행렬을 처음 접했을 때는 참 인상적이었다.

 

처음 들어보는 골목의 낯선 이름이 친숙하게 느껴질 정도로 골목을 걷고 또 걷고 싶었다.

 

책 제목처럼 많이 걸은 여행이었다. 어반 스케치를 위해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고 피사체를 그리는 작업은 일반적인 관광명소를 방문하는 여행과는 다르다. 그리고 구불구불 복잡하게 이어진 타이베이의 골목길은 우리네 옛 향수를 자극하는가 보다. 도시 계획으로 반듯반듯하게 낸 도로가 빠르고 편하기는 하지만, 어렸을 때 한 번쯤 헤맸을 골목길에 대한 추억 하나 간직한 나는 골목길이 정겹다. 그 같은 마음이 닿아 나도 어느새 타이베이의 골목길을 걷고 있는 듯했다. 미로 같은 그 길 끝에 애틋한 할머니 집, 그리운 단짝 친구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아 발걸음마저 가볍다.





★ 과거와 현재, 미래를 잇는 타이베이의 명소

 

여행 중에만이라도 마음이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이고 싶었다.

 

타이베이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는 명소들을 그림으로 만났다. 사진과는 또 다른 감성이다. 여행 기간 중에 비가 자주 와서 더 운치 있는 그림으로 표현되어서 마음에 닿는 곳이 많았다. 연말에 간 여행이라 타이베이에서 새해를 맞이한 이메이 작가는 타이베이 101 불꽃 축제를 함께 하게 되었다. 서로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같이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외치는 특별한 순간에 가슴이 울컥했다는 글에 부러움에 울컥해졌다.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오래된 군인 마을 쓰쓰난춘, 시먼딩의 별 서문 홍루도 계획표에 추가되었지만, 나를 설레게 하는 공간은 따로 있었다.

'타이베이'하면 떠오르는 게 디저트,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이다. 타이베이의 골목길을 읽을 때 '말할 수 없는 비밀'에서 주인공들이 걷던 거리들이 떠올랐다. 그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생생한 건물과 거리들이 내가 가지고 있는 타이베이의 이미지였다. 그런데 명소 '타이베이 필름 하우스'를 소개해 주는 글에서 반가운 이름이 나왔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 DVD 수집이 취미여서 결혼할 때 혼수로 DVD를 가져올 정도였다. 그리고 그중 좋아하는 영화가 '카페 뤼미에르'였다. 그런데 타이베이 필름 하우스가 바로 그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과거 미국 대사관 건물을 복합공간으로 개조한 건물이라고 한다. 애정이 퐁퐁 샘솟아 꼭 들러야 하는 곳이 되었다. 그곳에서 영화를 보고 카페 뤼미에르에서 맛있는 커피를 즐기는 상상으로도 행복한 기운이 나를 감싼다.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만나는 취향은 삶을 풍성하게 해준다.



타이베이 필름 하우스 내 카페 뤼미에르 전경


독특한 드로잉 여행 에세이를 만나 색다른 여행을 떠났다 다시 현실로 돌아온 기분이다. 언제쯤 캐리어를 끌고 타이베이로 떠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메이 작가의 『걷고 그리고, 타이베이』 덕분에 그 시간이 더 빨리 올 것 같다.

많은 이들의 여행 감성을 자극할 『걷고 그리고, 타이베이』,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밥북출판사에서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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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본스
애나 번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창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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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본스 NO BONES/애나 번스 장편소설/창비



도서와 서평단 미션 종이와 함께 담당 편집자의 편지가 도착했다.


서평단 자격으로 미리 받아본 도서는 정식으로 출간될 책의 홍보용으로 제작된 가제본이며, 전체의 절반 정도에 해당하는 분량이다. 서평단 활동을 하면서 저자의 편지를 받아본 적은 있지만, 담당 편집자의 편지는 처음이다. 그만큼 이 소설에 대한 애정이 깊으면서도 우려되는 점이 있다는 뜻일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소설은 배경지식이 소설에 대한 이해 정도에 크게 작용한다. 애나 번스의 장편소설은 <북아일랜드 분쟁>을 다루고 있기에 이에 대한 역사적 지식이 뒷받침되면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좀 더 수월하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 시간과 정성을 들여 <노 본스>를 읽으려는 독자에게 친절한 설명을 손수 남긴 편집자의 바람처럼 가치 있는 시간을 기대하며 읽기 시작했다.


"트러블은 목요일에 시작됐다."

*the Troubles* 1960년대 후반부터 1998년까지 약 30년간 계속된 북아일랜드 독립 투쟁을 둘러싼 혼란기를 일컫는다. 지리상으로는 아일랜드섬이나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에서 친아일랜드계인 카톨릭교도 세력과 친영국계인 개신교도 세력이 충돌한 비극적인 현대사의 한 대목이다.

 

 

이 소설은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북부의 구역인 '아도인'이라는 작은 지역 공동체를 중심으로 일어난 일을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마다 중심인물이나 시점이 달라지며, 7살 아이 어말리아를 시작으로 '평범한' 이웃들이 등장한다. 7살 아이들이 모여 한가로이 노는 평범한 일상에 '트러블' 소식은 아이들 말처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꾸며낸 이야기처럼 현실성이 없었다. 하지만 친구의 말처럼 '트러블'은 정말 일어났고 일상은 파괴되었다.

 

 

『노 본스 NO BONES』는 분쟁으로 인간성이 상실되어 가는 일련의 과정을 '아도인'을 중심으로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가족과 이웃, 친구, 학교, 마을. 적이 아닌 가까운 관계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라 더 이해할 수 없고 잔인하고 끔찍하게 느껴진다. 폭력에 잠식당하는 아도인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보여주는 외면과 무관심 그리고 냉대는 인간성이 상실되고 그 자리에 폭력과 광기가 자리 잡는 과정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인간을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 '기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영국과 아일랜드, 가톨릭교와 개신교. 편가르기로 팽팽하게 분열되고 상대편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아무런 고민 없이 망설임 없이 일어나는 혼란과 파괴의 일상을 마주하였다.

 



아일랜드에서 영국으로 이주한 톤 가족의 아들, 제임스 톤이 영국군으로 북아일랜드에 배치되어서 선물을 사들고 군인 친구들과 어머니 친척인 러빗 가족을 방문하여 안부를 묻고 친해지는 초반의 훈훈한 이야기가 『노 본스 NO BONES』 소설 속 유일한 다정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제임스 톤의 황당하고 어이없는 죽음은 더 비극적이었다.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에 대한 순수한 개인의 호의가 시대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처참하게 짓밟히는 현장을 목도하는 것은 커다란 아픔이자 슬픔이었다.

 

어머니의 잉글랜드식 벨파스트 말투가 점점 벨파스트식 잉글랜드 말투로 바뀌고 있었다.

 

분쟁과 전쟁은 일상을 파괴하고 인간들을 극단의 상황으로 몰아붙인다. 전쟁이 벌어지면 각종 범죄와 비극이 발생한다. '나라의 독립'이라는 명목으로 각자 옳다고 믿는 가치와 명예를 위해 시작된 일이겠지만, 정의롭고 공평하며 정당한 목적과는 다르게 많은 부분들이 무분별하고 폭력적으로 진행된다. 폭력뿐만 아니라 온갖 범죄들이 자행된다. 그리고 가장 끔찍한 진실은 약자가 가장 큰 고통을 짊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여자, 아이, 노인, 성소수자, 장애인, 환자 등 사회적 약자가 가장 먼저 그리고 무겁게 고통받게 된다. 『노 본스 NO BONES』 에서 마주하게 되는 수많은 죽음, 폭행, 협박, 상실 또한 어밀리아를 비롯해 가장 약한 존재들에게 가해졌다.

 

 

보편적 상식에서는 사회의 보호막인 가정, 학교가 소설 속에서는 폭력이 만연한 공간으로 묘사되어 더 충격적이다. 제임스, 믹, 어밀리아, 메리, 빈센트. 소설 속 많은 인물들이 폭력에 노출되어 신체적 상처를 입고 정신적 문제를 겪는다. 폭력과 광기는 '트러블' 이전부터 있었지만, '트러블'로 인해 더 잔인해지고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사건은 러빗네에서 벌어진 '트러블'이었다.

오빠 믹과 새언니 미나는 집에서 변태적인 성행위를 벌이고, 이를 가족과 이웃들은 외면하고 무시한다. 그런 공간에 어밀리아가 들어오고, 믹과 미나는 자기들의 논리로는 장난스러운 행동일 뿐인 극악스러운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 한다. 거기에 리지와 친구들이 가세하니 이 아수라장이 실재할 수 있는가? 부정하고픈 욕구만 강해졌다. 너무 행복하거나 너무 고통스러운 극한의 상황을 접하면 현실감이 떨어지는 것처럼 소설에서 일어나는 일상은 눈 뜨면 사라지는 허구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읽게 된다. 활자로 접하는 것만으로 끝을 알 수 없는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숨 막히는 시간을 경험하게 된다.





나에게 '아일랜드'를 각인시킨 작품이 있다. EBS 국제다큐영화제 EIDF2018 출품작 <엄마는 왜 아들을 쏘았나 A Mother Brings Her Son to Be Shot>이다. 이 다큐멘터리는 인터뷰를 통해 가족의 사연을 하나씩 밝히는 가족 드라마 형식이지만 훨씬 더 큰 이야기를 한다. 영화는 오도넬 가족이 살고 있는 북아일랜드의 수 십 년에 걸친 분쟁과, 이후 평화가 찾아왔지만 여전히 극심한 갈등 중에 있는 현재 사회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국 관할이지만 경찰이나 정부를 받아들이지 않고 아일랜드공화국군 IRA의 통제를 받는 마을 '데리'에서 사는 필립 오도넬은 '처벌 사격'이라는 벌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다. 사회에 피해를 주는 자에게 벌을 주겠다는 IRA의 행위는 법의 테두리 밖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폭력이다. 어머니 마젤라는 아들 필립을 그들에게 내어줄지 말지를 선택해야 한다. 결국 그녀는 아들을 IRA에게 데리고 간다. 아들은 다리에 총을 맞고 이것은 결코 끝이 아니다.

영화는 오도넬 가족의 처벌을 보여주고 있지만 끝나지 않은 역사적 비극의 연장선을 담고 있다.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아일랜드'가 묵직한 바윗 덩이가 되어 마음 한켠에 박혔다.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동시대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은 서글픈 현실이 되어 굴레처럼 옭아맨다.

『노 본스 NO BONES』를 읽으니 이 영화가 자연스레 소환되었다. 영상으로 접한 처참한 현실이 더 잔혹한 활자가 되어 나를 강타했다.

 


모든 일이, 언제나 그렇듯, 그다음의, 새로운, 과격한 죽음에 묻혔다.



장난처럼 시작한 자경단 활동을 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자 갑자기 얻은 권력을 남용하는 십 대, 그들을 처벌한다며 무릎에 총을 쏘는 IRA, 친딸을 성폭행하는 아버지, 학생들에게 온갖 폭력을 가하는 선생님, 호기심으로 러시안룰렛 게임을 하는 철부지 십 대 등등. 일상을 폭력과 혐오와 외면으로 채우는 이들이 토해내는 숨에 호흡이 힘들어진다. 그들과는 다르게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은 선택 아닌 선택으로 정신병에 걸리고 집착을 드러낸다. 안타까운 마음은 그들을 어루만져 주고 보살펴주고 싶지만 이런 참상에서 그려본 그들의 결말은 밝을 수가 없다. 암울한 현실이 계속되고 휘둘리면서도 타인에게 해를 가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어말리아와 빈센트에게 연민을 느끼며 그들의 앞날에 실낱같은 빛줄기가 깃들길 소망한다.



네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게 아니라고.

네가 접하든 아니든, 좋아하든 아니든 삶은 계속되고,

사실 등 돌리고 떠나는 건 너 자신일 때가 많잖아.




『노 본스 NO BONES』 절반을 읽었다. 과연 남은 절반은 어떤 메시지가 담겨있을까? 혐오와 폭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피폐해져 가는 '평범한' 이웃들에게 어떤 내일이 기다리고 있을지 두려움과 연민을 담아 변화의 불씨를 기대해 본다. 작가 애나 번스가 작품 속 문체는 냉정하지만, 연민과 유머를 잃지 않고 우리에게 말하고 있기에 희망을 품어본다. 달라질 내일을! 어밀리아가 애타게 부르던 외침에 대답하는 목소리를, 손 내밀어줄 누군가를! 우리를 그려본다.



 

 <창비출판사에서 가제본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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