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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밀리 레스토랑 가자. 上
와야마 야마 지음, 현승희 옮김 / 문학동네 / 2024년 4월
평점 :
>> 1편 리뷰글
https://blog.aladin.co.kr/730272122/15635832
-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와의 첫 만남.
<가라오케 가자!>는 마지막에 공항에서 재회한 두 사람을 마지막으로 끝난다. 원서를 읽었을 당시에는 쿄지네 회장님처럼 눈물 글썽글썽하며 박수 쳤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뒤이어 일본 현지에서 <가라오케 가자!>의 후속작인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가 연재 중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오우 마이 갓!!! 바로 연재 중인 잡지를 결제해서 읽어봤다. 번역기와 학교 다닐 때 잠깐 배웠던 제2외국어의 힘을 빌려 띄엄띄엄 읽어봤으나 언어의 장벽은 엄청났다😭 대충 줄거리는 알겠는데, 정확한 스토리 흐름을 이해하는 것에 어려움이 컸다. 때문에 <가라오케 가자!>와 마찬가지로 정발 되기를 정화수 떠놓고 빌고 또 빌었다.
하지만 역시 존버가 답이라고 마침내! 드디어!!! 올해 2024년에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 상권이 정발 되었다. 초판 부록인 포토카드는 물론이고 예전과 달리 알라딘, 예스 24, 교보문고 등등 여러 인터넷 서점에서 각기 다른 특전품을 준다길래 에잇 모르겠다! 하고 닥치는 대로 구매했다. 그리고 남은 책들은 주변에 있는 친구들에게 전도하면서 나눠줬다. 이거 보라고.. <가라오케 가자!>의 후속작이라면서 말이다. 사실 <가라오케 가자!> 때에도 전도했었는데, 그때 친구들은 지금까지 가벼운 순정 만화나 역사 만화 같은 걸 보던 애가 갑자기 이런 장르(나와 달리 만화 경력이 어마어마했던 친구들임)를 볼 줄은 몰랐다며 놀라워했었다. 심지어 아직까지도 덕질을 한다는 사실에도 신기해했다.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걸! 이미 푹 빠져버렸으니 말이다.
여하튼, 기쁜 마음에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를 처음부터 끝까지 쉬지 않고 쭉 읽었다. 그리고 (이미 봤던 장면이긴 해도) 마지막의 '그 장면'을 봤을 때는 비명을 질렀다. 단, 기쁨의 비명이라기보다는 충격의 비명이었다. 확실히 한국어로 연이어서 읽으니 잡지 연재분으로 봤을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는 이전의 <가라오케 가자!>와 확연히 다른 분위기와 스토리로 전개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충격이었던 것은 사토미와 쿄지의 모습이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가라오케 가자!>에서의 경쾌하고 능글맞던 쿄지는 온 데 간 데 사라지고, 피곤함과 진지한 모습의 40대 아저씨의 모습으로 등장하며, 사토미도 더 이상 <가라오케 가자!>에서처럼 쿄지 때문에 쩔쩔매거나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심지어 <가라오케 가자!>에서 완벽해 보였던 두 사람의 관계가 점차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때문에 처음에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를 읽었을 때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두 사람은 더 이상 서로를 좋아하지 않고 이대로 헤어지는 거 아니냐는 걱정까지 들었다. 그리고 혹시 내가 놓친 게 있었나 하고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를 읽은 뒤에 <가라오케 가자!>를 다시 읽어봤다. 재독해 본 결과,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는 비록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지만 작품 곳곳에 <가라오케 가자!> 못지않은 감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앞서 나는 <가라오케 가자!>가 소나기 같다고 했었다. 반면에 나는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를 '여우비'라고 생각한다. 여우비는 환한 대낮에 잠깐 오다가 그치는 비를 뜻한다. 먹구름 하나 없는데 비가 내렸다는 점에서 '여우에게 홀렸다'라는 의미로 '여우비'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다.
소나기는 먹구름이 낀 하늘에 내린다. <가라오케 가자!>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쿄지와 검은색 센추리 자동차, 그리고 어두운 뒷세계 사람들이 대거 등장한다. 현실의 밝은 대낮과 분리된 또 다른 세계, 그리고 쿄지와 사토미가 노래 교습을 하는 곳 역시 밀폐된 가라오케 방이었다. 이러한 부분은 하나의 '먹구름'이었다고 본다. 그런 환경에서 내린 소나기가 쿄지와 사토미의 마음을 적신 것이다.
하지만<패밀리 레스토랑 가자>는 지금까지 밀폐된 공간 내지 어두컴컴한 것들이 대부분인 <가라오케 가자!>와 반대로 주로 해가 뜨고 있는 대낮을 배경으로 한다. 새벽 시간에 알바를 하는 사토미지만 일하는 패밀리 레스토랑은 새벽에도 환한 빛을 비춘다. 또한 쿄지와 사토미가 만나는 시간은 주로 아침 시간이고, 가라오케의 밀폐된 공간이 아닌 식당과 같은 공개된 장소에서 만난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되기도 한다.
이렇게 뜨거운 대낮에 사람의 마음을 적실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다. 실제로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는 내내 건조한 분위기를 내뿜는다. 때문에 몇몇 독자들은 쿄지와 사토미의 관계가 파국에 치달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과연 정말로 그럴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뜻 보기엔 건조하기 그지없는 분위기지만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에는 마치 문학처럼 쿄지와 사토미의 진심이 작품 곳곳에 숨겨져 있다.
가령 사토미의 책장에 꽂혀 있는 <크라바트>라는 동화책은 마법사에게 저주를 받아 그 밑에서 노예처럼 일하던 주인공이 마지막에 성가대 소녀의 도움으로 인해 구원받는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단순한 우연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동화책이 사토미의 방에 있다는 건 이야기 속 성가대 소녀처럼 야쿠자로서 괴로워하는 쿄지를 구원해 주고 싶다는 심정을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외에도 사토미가 입고 있는 티셔츠는 물론이고, 사토미가 쿄지에게 문자를 보낼 때 흐르는 '무라시타 코조(村下孝蔵, 1953년 2월 28일 ~ 1999년 6월 24일)'의 <바람개비(風車, かざぐるま)>라는 노래(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괴로워하는 내용을 담고 있음), 모리타 선배가 부르는 노래(사랑에 빠져버릴 것 같으니 건드리지 말라는 가사), 그리고 와야마 작가님의 세계관에서 어쩌면 '사랑'의 의미를 담고 있을 '카레(<여학교의 별>에서 호시 선생님의 아내가 아픈 호시 선생님을 위해 카레를 만듦)>' 등등 하나하나 얘기하기엔 너무 많다.
비단 배경뿐만이 아니다. 사토미와 쿄지, 이 두 사람의 세세한 행동과 대사 하나하나에도 진심이 담겨 있다. 0화에서 쿄지의 잔소리를 자기도 모르게 의식하는 사토미라든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와중에도 틈틈이 쿄지를 위한 '선물'을 마련하기 위해 먹는 밥도 줄여가며 저금을 한다든지, 쿄지에게 문자 하나 보낼 때도 끙끙대는 모습, 그리고 막상 연락이 없으면 죽었나 하고 걱정하는 모습까지. 쿄지와 이별하겠다는 다짐과 다르게 사토미의 태도는 쿄지로부터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황상 제3자인 내가 보기에도 사토미는 쿄지를 좋아하고 있다. 다만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 뿐! 결정적으로 마지막에 사토미가 쿄지에게 했던 '그 행동'은 사토미의 모순적인 마음을 잘 나타낸다고 본다.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싶다며 쿄지에게 이별을 얘기한 사토미지만, 정작 다른 평범한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 행동'을 한다.
쿄지도 상황은 마찬가지인 걸로 보인다. <가라오케 가자!>와 달리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에서는 노래 교습 장면은 하나도 보여주지 않고 두 사람이 함께 식사하는 장면만 나온다. 애초에 노래 교습을 위해 만난 사이인데 말이다. 이는 뭘 의미하는 걸까? 게다가 쿄지는 사토미와 만날 수 있으면 만나려고 한다. 오사카에서 도쿄까지, 일을 마치고 꼬박 밤을 새워서라도 만난다. 게다가 9화에서는 일부러 시간까지 내면서 사토미와 같이 밥을 먹는다. 이별을 생각 중인 사토미가 내내 정색을 하고 있는데도 쿄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마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는 듯이. 자기 때문에 사토미가 기자한테 파파라치를 당하자 일부로 4개월 동안 거리를 두기도 하는 등 예전과 달리 사토미에게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인다. 2화에서 가볍게 발끝 인사를 하는 장면도 그렇고, 9화에서 이별을 통보 이후에 엘리베이터 벽에 기댄 쿄지의 뒷모습 다음으로 CCTV가 비치는 장면은 개방적인 장소인 만큼 감정을 억누르는 듯한 쿄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듯 <가라오케 가자!> 때처럼 적극적이지 않는 두 사람이지만 알게 모르게 서로를 생각하고 있다.
내가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를 여우비라 한 것도, 전혀 비가 내릴 것 같지 않은 상황임에도 예전과 같은 '알 수 없는 끌림'이라는 비가 내려 이들의 마음을 적시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냥 지나가길 바라는 소나기와 다르게 여우비는 사람들로 하여금 왜 내리는지 의문을 품게 한다. 알 수 없는 끌림 정도로만 끝났던 <가라오케 가자!>와 달리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는 처음으로 본인들의 감정에 의문을 표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 '과거'를 넘어 '미래'로 향하는 두 사람.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의 또 다른 특징은 이야기가 앞으로의 '미래'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가라오케 가자!>가 추억을 회상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면,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는 현재 시점에서 쿄지와 사토미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현재진행형' 스토리이다. 마치 제3자가 보는 듯한 시선으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일정한 시간에 따라 흐르고, 변화한다.
작중에 종종 등장하는 달력이라든지, 두 사람이 만나 식사하는 날이라든지, 마사노리가 '시간'에 쫓기며 만화 작업을 한다든지, 핸드폰 배터리가 나가는 바람에 시간을 알 수 없었던 사토미에게 자신의 시계를 주는 쿄지, 그리고 곧 다가올 마지막 날 등등.... 전체적으로 시간의 흐름이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에서는 강조되고 있다. 또한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토미는 점차 쿄지를 향한 마음을 의식하기 시작하고, 쿄지도 쿄지 나름대로 분위기라든지 사토미를 생각하는 태도 역시 달라진다.
이로 인해 독자들은 앞으로 두 사람이 어떻게 될지, '미래'를 생각하게 된다. <가라오케 가자!>에서 말했던 것처럼 와야마 작가님의 세계에서는 독자들 스스로 세계를 만들어갈 수 있는 자유가 있다고 했다.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에서 독자들로 하여금 미치게 만드는 요소가 바로 사토미와 쿄지의 미래를 독자들 나름대로 추측해 보며 애간장(?)을 태우게 한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자기도 모르게 하루 종일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에 대해 생각하고, 헤어 나올 수 없게 된다.
- 만화를 현실 속 일상의 영역에까지 끌어올리다.
작가님은 책의 후기에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를 연재하기로 결심했던 이유로 '사토미의 행복'을 말하고 있다. 그리고 '과연 사토미가 야쿠자인 쿄지와 만나면서 행복할 수 있을지', '두 사람의 관계가 이대로 계속되는 게 맞는지' 고민했다고 한다. 이건 '야쿠자'와 '대학생'이라는 사회적 위치 문제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앞서 <가라오케 가자!>의 결말이 현재(현실)나 미래로 향하는 게 아니라 노래방 교습을 위한 관계, 그러니까 중학교 때와 똑같은 관계로 끝나버릴 수도 있다는 점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만약 <가라오케 가자!>로 작품이 끝났더라면 독자들에게도 이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해프닝이라 여겼을 수도 있다. 가볍게 읽을만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는 단순 해프닝으로 끝나버렸을뻔한 두 사람의 관계를 일상 속 현실의 영역에까지 끌어올려 이야기를 계속해간다.
비록 이 때문에 <가라오케 가자!> 자체에서 느낄 수 있었던 재미는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이들에게 '미래'는 주어졌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두 사람이 관계를 계속 이어나갈지, 아니면 헤어질지에 대한 문제 말이다. 낙관적인 말을 하자면 낮에 내리는 여우비는 그만큼 무지개가 뜨기 쉽다는데, 언젠가 쿄지와 사토미의 미래도 무지개 깃들 날이 오지 않을까.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언젠가 밝은 빛 아래에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전체적으로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는 겉으로는 평범한 일상의 모습을 띠고 있어서 이전의 끌림이나 애틋함이 없는 것 같아 보여도 분명 읽다 보면 마치 여우에 홀린 것처럼 곳곳에 뜨거운 마음으로 적셔진 부분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다른 사람들에겐 평범해 보이는 사소한 것들이어도 어느새 두 사람의 감정에 젖어든 독자들에겐 다르게 보일 것이다. 특히 <가라오케 가자!>와 와야마 작가님의 팬이라면 100퍼센트 여우에 홀린 것처럼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에 빠져들 것이다. 이건 내가 장담한다.
여담으로 <패밀리 레스토랑 가자>의 배경은 도쿄 '가마타(蒲田)' 지역이라고 한다. 사토미가 일하는 '사이제리야'라든지 쿄지와 만났던 장소, 같이 밥을 먹었던 식당 등등을 찾아보니 실제로 있는 곳이었다. 지금은 비록 시간이 없어서 직접 가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장소를 찾아보니 두 사람이 현실 세상에 존재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언젠가 반드시 순례(?)를 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