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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철학자들 ㅣ 대원동서문화총서 8
야마모토 미쓰오 지음, 지영환 옮김 / 대원사 / 1989년 11월
평점 :
야마모토 마쓰오의 '최초의 철학자들'은 고대 그리스, 로마 철학자들의 유쾌한 일화들을 모은 책이다.
사실 고대 철학자 하면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가 제일 유명하지, 나머지 이전, 이후의 철학자들에 대해선 알기 쉽지 않다. 알더라도 단편적일 뿐, 위의 세 사람처럼 자세한 학설로서 아는 이들은 적다. 그 때문에 소크라테스 이전, 이후 철학자들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어렵고, 더욱이 희랍철학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지 못 한 사람들에겐 거대한 수수께끼처럼 다가온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이들의 철학을 접할 수 있을까.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철학자 열전'이라도 읽어봐야 할까. 물론 읽으면 좋겠지만 위의 세 사람(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도 어려운 사람에겐 너무나 읽기 벅찬 책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최초의 철학자들'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고대 그리스, 로마 철학자들의 사상과 그들의 재미있는 일화를 통해 쉽게 알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본 책은 저자인 야마모토 마쓰오 교수가 총 29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논의했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마치 담화록처럼 쓰여 있으며, 딱딱한 철학 학설보다는 철학자들의 철학이 담긴 삶과 재미있는 일화들을 다루고 있는 게 특징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다 보면 철학책을 읽는다기보다는 마치 명언집과 이솝 우화 같은 재치와 교훈을 주는 책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또한 오늘날에는 볼 수 없는 지식인들의 당당한 모습, 즉 자신의 학설을 몸소 실천하는 그들의 위대한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비록 고대 사람들이기 때문에 정확한 사실인지는 알 수 없는 일화도 있었으나 이 사실을 제쳐두고서라도 충분히 흥미로웠던 이야기였다.
하지만 워낙 오래된 책이고 번역의 질 또한 좋지 않아 읽는 데 다소 애를 먹었다는 점이 아쉬웠다(폰트도 오늘날과 달리 아주 잘아서 쉽게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음). 그리고 철학자들의 일화를 모았다는 점에서 독특한 주제였으나 본격적인 철학책으로서는 가벼운 느낌이라 교양서로 읽기 적당한 것 같았다.
그래도 이렇게 잘 알지 못했던 고대 철학자들의 일화를 봄으로써 벽이 느껴졌던 이들에 대한 철학사상에 흥미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에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피타고라스는 ‘우정이 평등이다‘, ‘친구 사이에 소유물은 공유하는 것‘이라고 말했던 최초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육체가 죽으면 혼은 일단 그 곳을 떠나지만 다시 다른 육체와 연결된다는 윤회설을 믿었다. 그리고 떠난 육체는 전세의 행적에 따라 어떤 자는 사람, 어떤 자는 소, 또 어떤 자는 개의 몸을 빌어 각각 배당된다고 말한다. - P23
‘인간들은 신들이 자기네들처럼 태어난 존재이며 옷을 입고 목소리나 모습을 가진 자로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소나 말이나 사자가 손이 있거나, 혹은 인간들처럼 손으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작품을 만들기도 할 수 있다면 말은 말, 소는 소와 비슷한 신들의 모습을 그릴 것이다. 에티오피아인들은 자기네 신들의 사자 코에 피부가 새까많다고 말하고, 트라케인들은 파란 눈에 빨간 털이 있다고 말한다.‘ -크세노파네스, 종교를 비판하며- - P28
전하는 바에 의하면 헤라클레이토스는 언젠가 에페소스의 시민들로부터 법률 제정을 부탁받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이 도시가 나쁜 헌법에 의해서 다스려지고 있다는 이유로, 매정하게 부탁을 거절했다. 그 다음에 그는 아르테미스의 신전으로 가서 그곳에서 천진난만한 어린아이들과 장난을 치며 놀았다. 그러자 시민들은 그의 뒤를 쫓아와서, 주위를 에워싸고 이 철학자가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가 하고 어이없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다. "왜 그렇게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얼간이들? 너희들과 함께 정치를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어린이들하고 노는 편이 훨씬 낫다!" - P34
"조금 나쁘게 얘기했다고 해서 화를 내는 건 도대체 무슨 까닭일까요?" 엠페도클레스 : 기분 나쁜 말을 듣고도 괴로워하지 않았다면, 좋은 소리를 듣고도 기뻐하지 않았을테니 말일세. - P48
디오니시오스 왕 : 무엇 때문에 너는 내게로 왔는가? 아리스티포스 : 제가 가진 것을 드리고 제게 없는 것을 받아내기 위함입니다. 지혜를 필요로 할 때는 언제나 소크라테스에게로 갔지만, 지금은 돈이 필요하므로 페하께로 찾아 온 것입니다. 디오니시오스 왕 : 부자들은 전혀 철학자들의 문을 두드리지 않는데, 철학자는 무슨 일로 부잣집 문을 두드리는가? 아리스티포스 : 철학자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만, 부자들은 자기에게 꼭 필요한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 P75
"너희들은 당나귀를 투표에 의해 말로 임명하지 않는가? 마찬가지로 낯선 자를 투표로 장군에 임명하는 자네들도 이와 같다네" -안티스테네스, 민주주의를 비판하며-
"희망이 무엇입니까?" 아리스토텔레스 : 눈 뜨고 있는 자의 꿈이다. - P109
누군가 공중 목욕탕에서 돌아오는 길에 디오게네스에게 물었다. ‘거기에 사람들이 많습니까?‘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없소‘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이 그에게 그냥 ‘많았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이번엔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디오게네스는 인간이라고 할 만한 자는 없고, 많은 동물이나 노예들이 있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 P113
어느날, 한 사나이가 자기 아들을 데리고 와서 자랑을 잔뜩 늘어놓으면서 ‘이 아이는 참으로 영특하고 똘똘한 아이입니다‘라고 소개하자, 디오게네스는 ‘그렇다면 자네는 어째서 나를 필요로 하는 건가?‘라고 되물었다. - P114
플라톤이 ‘인간이란 두 다리가 있고 깃털이 없는 동물이다‘라고 정의를 내려 많은 칭찬을 받았다. 그러자 디오게네스는 어느날 털을 다 뜯어 낸 닭을 쳐들고 플라톤이 강의하고 있는 곳으로 가서 ‘이것이 플라톤이 말하는 인간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플라톤은 나중에 ‘손톱과 발톱을 가진‘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플라톤은 사람들로부터 ‘디오게네스는 어떤 인간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고는 ‘그 사람은 미친 소크라테스다‘라고 대답했다. - P117
디오게네스가 양지에 느긋하게 드러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이때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찾아왔다. 그는 약간 머리를 쳐들고 대왕 쪽을 힐끗 보더니 다시 누웠다. 알렉산드로스 : 나는 대왕 알렉산드로스이다. 디오게네스 : 나는 디오게네스, 개다. 알렉산드로스 : ..... 너는 내가 두렵지 않은가? 디오게네스 : 너는 선한 자인가? 알렉산드로스 : 그렇다. 디오게네스 : 그렇다면 선한 자를 내가 뭣 때문에 두려워하겠는가? 알렉산드로스 : 오오, 그래. 혹시 원하는 게 있는가? 디오게네스 : 햇볕이나 가리지 말고 비켜라.
훗날 알렉산드로스는 ‘내가 만일 알렉산드로스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는 걸 원했을 것이다‘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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