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악의 순간들은 언제나 아주 잠깐이고, 그 잠깐이란 시간은 경악의 순간들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비현실의 감정들이 치미는 순간이며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을 다시 모른체해버릴 순간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누군가와 함께 있게 되면, 마치 지금 막 그에게 불손하게 굴기나 한 것처럼 이내 정신을 바싹 차리고 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려고 한다.
특정한 일에 대해서가 아니라 드디어 얻게 된 삶에 대한 감정 표현이자, 정신 자세로서 전반적으로 자랑스러웠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그 막연한 자부심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 식으로 사람들은 지쳐갔다. 자신을 설명하려는 작은 시도도 쓸데없는 말대꾸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자유롭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사실을 입 밖에 낼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무뢰배나 마찬가지여서, 힐난하듯 쳐다보면 사람들은 곧 기가 꺾였다.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이런저런 유형에 따라 살면서 자신의 마음이 편해지는 객관적 느낌을 가졌으며 자신의 출신이라든지, 비듬이 떨어져 괴롭다든지, 발에 땀이 난다든지 하는 개인적 특성이나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등 매일매일 반복되는 문제들 따위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았다. 하나의 유형에 들어감으로써 개인은 부끄럽게 여겨졌던 외로움과 고독감으로부터 벗어났고 스스로를 망각했으며 비록 잠깐이긴 하지만 때로는 당당하고 떳떳한 존재가 되었다.
결국 사람들은 자신이 개인으로서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에, 어쨌든 전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에 동의했던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개인적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무언가를 알고 싶다는 요구를 조금도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상상할 수조차 없는 새로운 절망이 있을지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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