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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보다 더 자유로운 삶 -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리디온, 대화록 연구
에픽테토스 지음, 김재홍 옮김 / 서광사 / 2013년 9월
평점 :
`왕보다 더 자유로운 삶`은 스토아 철학의 대표자인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라디온`, `대화록`을 연구한 도서이다.
보통 그리스, 로마 철학 하면 소크라테스나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를 떠올리기 쉽지만, 당시에 일반인들 사이에서 유명했던 철학은 에픽테토스의 `스토아 철학`이었다. 실제로 그리스를 넘어 로마 시기에도 많은 정치가와 유명인들이 스토아 철학을 인생철학으로 삼았다고 하니 할 말을 다 한 셈이다.
하지만 몇 세기가 지난 지금은 스토아 철학에 관한 이야기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오늘 살펴볼 에픽테토스도 현재 남아있는 기록이 `엥케이라디온`과 `대화록` 정도이며, 국내인 우리나라에선 이것마저도 제대로 된 번역본을 찾기 힘들다. 그나마 에픽테토스를 느낄 수 있는 건 `철인왕`이라 불렸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통해서이다.
최근에 명상록을 읽고 스토아 철학에 관심이 생긴 주인장은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에픽테토스와 관련된 책을 찾기 시작했고, 그때 발견한 책이 바로 이 `왕보다 더 자유로운 삶`이었다.
역자이자 지은이인 `김재홍` 박사는 과거 까치 출판사에서 (지금은 품절된) 에픽테토스의 `엥케이라디온`을 번역한 분이다. 그 분이 과거 번역했던 엥케이라디온을 재번역하고 덧붙여서 `대화록`의 일부를 분석한 글을 실은 게 본 책이다.
지금까지 경구나 명언으로 밖에 겪지 못했던 에픽테토스의 말들은 대부분이 `엥케이라디온`에서 나온 것이었다. `내 손안의 작은 책`이라는 뜻의 `엥케이라디온`은 에픽테토스가 설파한 주장이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처럼 기록되어 있다.
`본성적으로 노예적인 것`과 `본성적으로 자유롭고, 자신의 것`으로 세상을 구분한 에픽테토스의 말은 외부의 정의로운 세계를 갈망한 다른 철학자들과 달리 내면의 자유를 꿈꿨던 철학자이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건 상황보다는 `믿음;, 즉 그 상황을 바라보는 본인의 생각이었고,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고유의 `자유`라는 것이다.
상황은 언제든지 누군가에 의해 바뀌기 때문에 영원하지 않고, 본인의 힘이 미치지 않지만, 믿음과 생각은 오로지 자신의 `자유의지`로 움직일 수 있으므로 얼마든지 좋은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다고 에픽테토스는 말한다. 그리고 이런 인간의 `자유의지`, `이성`은 신이 주신 선물이며, 동시에 신도 어찌하지 못하는 소중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에픽테토스는 이러한 자신의 철학을 단지 말로만 외치지 말고 직접 행동으로 옮기라고 말했다. `연회에서 어떻게 먹어야만 하는지를 말하지만 말고, 마땅히 네가 해야만 하는 대로 먹어야 한다.`라는 그의 말은 `네가 좋은 방법을 알고 있다면 너는 행동으로 그것을 보여야 한다. 너는 마땅히 그럴 수 있고,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이를 보고 본받지 않겠는가`를 말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에픽테토스의 스토아 철학은 실천적이다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엥케이라디온`을 비롯해 헬레니즘 시기의 철학사도 정리해서 다루고 있다.
나 같은 경우 에픽테토스의 사상을 먼저 알고 싶었기에 패스했지만 뒤의 `대화록`의 연구는 읽어 보았다.
`대화록`은 엥케이라디온과 달리 에픽테토스가 플라톤이 했던 논박의 방식으로 일반인들을 상대로 대화한 것을 제자가 모아서 기록한 작품집이다. 다만 아쉽게도 엥케이라디온은 본 책에 번역되어 나와 있는 반면 `대화록`은 전문이 없으며 말 그대로 논문처럼 몇몇 장면에서만 인용되어 나온다.
일단 연구서이기 때문에 앞의 엥케이라디온과 달리 읽기 조금 힘들었지만, 에픽테토스가 어떤 사상과 생각을 가지고 이러한 주장을 했는지가 세세하게 나와 있다.
제목의 `왕보다 더 자유로운 삶`은 위와 같이 에픽테토스의 정신적 자유를 단번에 보여주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현실에 수긍하고 정신 승리한다는 비판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단순한 결론을 내리기엔 에픽테토스의 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의지`와 `이성`은 현실에 수긍할 수 있는 여지가 있지만 이는 그렇게 결론을 내린 `그 사람들`만의 `믿음`일 뿐이다. 이 믿음은 본인이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이에 따라 목적과 행동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만약 본인이 스토아 철학이 현실에 수긍만 하는 보수적인 철학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당신이 그만큼 현실에 수긍하고 있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며, 다양한 생각을 인정한 스토아 철학의 무한한 가능성 중 아주 사소한 것만 발견했다는, 좁은 시각을 가졌다는 사실을 본인의 입으로 말하고 있는 것과 같다.
아무튼, 스토아 철학과 에픽테토스에 대해 관심이 있고, 이를 좀 더 세밀하게 알고 싶은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인간아, 철학자의 교실은 병원이라네. 너는 즐거워서가 아니라 고통으로 그곳을 돌아다녀야만 하네. - P14
만일 네가 본성적으로 노예적인 것들을 자유로운 것으로 생각하고, 또 다른 것에 속하는 것들을 너 자신의 것으로 생각한다면, 너는 장애에 부딪힐 것이고, 고통을 당할 것이고, 심란해지고, 신들과 인간들을 비난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기억하라. - P30
사람들을 심란하게 하는 것은 그 일들 자체가 아니라, 그 일들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다. 자신의 일이 나쁘게 된 것에 대해서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은 교육받지 못한 사람의 일이다.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교육을 받기 시작한 사람의 일이다. 다른 사람도 자기 자신도 비난하지 않는 것은 교육받는 사람의 일이다. - P36
만일 네가 또한 그런 사람으로 보이기를 원한다면 너 자신에게 그렇게 보이도록 하라. 너는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을 것이다. - P52
만일 누군가가 너의 몸을 우연히 마주친 사람에게 더넘긴다면 너는 화가 날 것이다. 그런데 너는 너 자신의 정신을 우연히 만나는 사람에게 떠넘겨서,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 사람이 너를 욕보인다면 너의 정신은 교란되고 혼란스럽게 되는데, 너는 어째서 이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가? - P58
어떤 경우에도 너 자신을 철학자라고 부르지 말고, 또 철학자가 아닌 사람들 사이에서는 철학적 원리들에 관해 너무 많고 복잡한 것들을 말하지 말라. 예를 들면 너는 연회에서는 어떻게 먹어야만 하는지를 말하지만 말고, 마땅히 해야만 하는 대로 먹어라. 철학적 원리들을 소화한 것으로부터 나온 그 행위를 보여라. - P82
신은 인간을 단지 신과 그 작품들의 구경꾼으로만 이 세상에 내놓은 것이 아니라, 그 해석자로 오게 했다.
네가 누구인가를 생각하라. 먼저, 하나의 인간이다. 프로하이레시스(이성, 자유의지)보다 더 권능을 가진 것은 없다. 의지는 나의 기능이다. 절대군주도 또한 주인도 내 의지에 반해서 나를 구속하지 못할 것이고, 다중도 개인에 대해서 또한 강한 자도 약한 자에 대해서 그렇게 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각 사람에게 부여된 신의 선물이기 때문이다. - P329
신은 너 자신을 너에게 위탁했다. 신은 말한다. "나는 너보다 더 믿을 만한 자가 없다. 나는 너를 믿는다. 나를 위해서 너 자신을 자연적인 상태로, 공경스럽게, 신실하게, 고결하게, 혼란되지 않게, 방해받지 않도록 유지해야 한다"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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