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홀과 시간여행 (보급판) - 아인슈타인의 찬란한 유산
킵 손 지음, 박일호 옮김, 오정근 감수 / 반니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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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타임머신 얘기가 657페이지부터 나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제목이 <블랙홀과 시간여행>이니까, 그래도 중반부터는 시작될 거라 생각했다. 이 책은 707페이지가 끝이다.


앞에서 무슨 얘기를 한 걸까? 시간과 공간의 상대성이 나오고 백색왜성의 신비를 풀어내고 곡률의 잔물결을 설명한 뒤 블랙홀의 증발과 안쪽의 상황을 전해준다. 그러니까 핵연료를 소진한 별이 내폭파하여 블랙홀이 되는 과정을 이런저런 얘기에 태워 보내는 게 이 책의 임무다. 기대했던 이야기를 만나기에는 너무 먼 여행을 가야 한다. 사건의 지평선을 건너 영원히 박제된 광자처럼, 기다림은 영원에 가깝다.


저자 킵손이 대중에 알려진 건 영화 <인터스텔라> 덕분일 것이다. 모든 걸 실제로 구현하는데 미친 남자 크리스토퍼 놀란은 단순한 블록버스터 하나를 만드는 데에도 세계적인 물리학자 킵손의 감수를 받았다. 그는 놀란에게 웜홀의 비밀과 시간여행의 가능성을 얘기해 준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니 그 노력을 들인 <인터스텔라>도 사실은 다 뻥이라는 걸 깨달았다.


50페이지 밖에 없는 이야기를 짜낼 대로 짜보자. 우선은 웜홀이다. 웜홀은 우주에 난 구멍이다. 이 구멍 하나가 이 쪽 우주에, 다른 하나가 10광년 떨어진 곳에 있다면 이 구멍을 통로로 이용해 우리는 10광년의 거리를 단숨에 이동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웜홀이 완전히 상상에 근거한 산물이라는 점이다. 세상 모든 것을 빨아들여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 그 존재를 의심할 법한 블랙홀조차 생성에 관한 한 지극히 타당한 물리 법칙을 따른다. 우리 우주의 법칙에 의하면 블랙홀의 존재는 필연적이다. 하지만 웜홀은 그렇지 않다. 우리 우주는 웜홀을 만들 이유가 없다.


그래도 킵손은 두 개의 전략을 제시한다. 하나는 중력 진공요동 속에서 웜홀을 낚아채 원하는 크기로 늘리는 양자전략이다. 중력 진공요동은 아주 작은 공간 안에 존재하는 용광로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 안에서 시공간은 무한한 방식으로 존재했다가 소멸하기를 반복하는데 말 그대로 모든 게 가능하다 보니 그중 하나가 웜홀일 확률도 생각보다 낮지는 않은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공간을 구부리고 늘린 뒤 찢어 이어 붙이는 것이다. 그림으로 보면 이 말은 생각보다 복잡하지 않다. 그러나 나는 공간을 구부린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도대체 어떤 힘을 이용해 그걸 한다는 건지는 도저히 상상이 안 된다. 이 우주는 모든 공간이 하나로 연결된 풍선 같은 게 아닌가? 어디서부터 어디를 구부린다는 건가? 풍선에서 우리가 원하는 만큼의 공간을 잘라내는 게 우선일지도 모른다. 커다란 2절지를 접기보다는 색종이가 훨씬 쉬울 테니까 말이다. 구부린 공간에 존재하는 별들은 어떻게 되는지도 궁금하다. 외계인이 구부려 놓은 공간에 재수 없게 지구가 걸리면 우리 몸도 같이 구부러지는 걸까? 평소에 요가를 해뒀으니 다행이다. 나마스테! 물론 우주의 법칙은 우리 눈에 반듯해 보이는 공간도 사실은 엄청나게 휘어져 있다는 걸 증명한다. 중력이라는 게 휘어진 공간 그 자체 아닌가! 질량이 커질수록 공간은 더 많이 휜다. 공간을 구부린다고 해서 별이 접히거나 그 안에 사는 우리가 접히는 건 아니다. 그렇다 해도 공간을 구부려 이어 붙이는 걸 구현하는 기계와 힘을 상상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저런 문제를 극복한 뒤 어쨌든 웜홀을 만들었다 치자. 그다음은 이 웜홀을 늘려 쪼그라들지 않게 유지하는 게 관건이다. 이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이름부터 신뢰하기 힘든 '이상 물질'이다. 그래도 이상 물질은 존재할 가능성이 웜홀보다는 높은 것 같다. 이 물질은 음의(-) 평균에너지 밀도를 갖는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고, 아무튼 수축하는 공간을 밀어내는 역할을 한다. 미래에 고도로 발달한 문명이라면 이 에너지를 자유자재로 활용해 웜홀을 우주선이 통과할 정도의 크기로 유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토성 옆에 웜홀을 만든 <인터스텔라>의 머피 쿠퍼처럼 말이다.


자 그럼 이제 시간 여행이 남았다. 여기까지 읽어서는 도대체 이게 시간여행이랑 무슨 관계가 있는지 의아할 것이다. 공간과 공간을 연결한 통로 따위가 어떻게 시간여행을 가능케 한단 말인가? 아마 이 얘기를 다 듣고 나면 당신은 킵손이 제시한 시간여행도 우리가 원하던 형태는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우선 웜홀이 연결한 두 입구가 웜홀의 내부에서 볼 때는 서로에 대해 정지해 있고, 그래서 하나의 기준좌표계를 공유하며, 따라서 동일한 시간 흐름을 경험할 것이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다만 외부에서 바라볼 때 두 입구는 다른 기준좌표계에 있으므로 시간의 흐름은 서로 다르다. 나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해했지만 이게 왜 그렇게 되는 건지는 알 수 없었으므로 여러분에게도 그냥 받아들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자, 이제 진짜 시간여행을 할 차례다. 당신은 30cm 길이의 웜홀로 연결된 두 개의 입구를 만들었고 하나는 당신의 집 거실에 다른 하나는 마당에 주차해 놓은 우주선의 내부에 놓아두었다. 권태기에 빠져 우울해하던 아내는 새로운 자극을 위해 우주선을 타고 광속 여행을 하기를 원했고 당신은 마음속으로는 환호를 질렀지만 굉장히 서운해하며 그 여행을 허락했다. 대신 변치 않는 마음을 증명하기 위해 여행 내내 웜홀을 통해 손을 잡고 있기로 했다.


2024년 1월 5일 오전 10시 당신의 아내는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지구를 떠났다. 6시간쯤 우주를 여행하다 그녀는 다시 방향을 바꿔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의 기준에서 여행은 총 12시간이었고, 이는 손을 잡고 있었던 당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웜홀을 통해 바라본 우주선의 창문에는 당신의 집이 보였기 때문에 당신은 손을 놓고 아내를 맞으러 마당으로 나갔다. 그런데 웬걸, 마당은 비어있다. 우주선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고성능 천체망원경으로 관측하니 당신 아내의 우주선은 아주 빠른 속도로 지구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지구의 관점에서 봤을 때 아내의 여행은 10년이 지나야 완료될 것이다(움직이는 속도에 영향을 받는 시간의 상대성을 떠올려보자).


12시간인 줄 알았는데 10년이라니. 얼마나 기쁜가!! 당신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10년을 기다렸고 마침내 아내가 돌아왔다. 우주선에 들어가 웜홀을 통해 집을 바라보니 이제 막 아내의 손을 놓고 마당으로 뛰쳐나갔으나 텅 빈 마당을 보고 어리둥절해하는 나 자신의 모습이 보인다. 당신은 웜홀을 기어들어가 10년 전의 나에게 아내의 여행은 10년 뒤에나 끝날 것이라 얘기해 준 뒤, 그의 환호를 뒤로한 채 다시 웜홀을 거쳐 나와 10년 전의 아내의 손을 잡고 2034년을 살아간다. 물론 아내에게는 선택권이 있다. 우주선 내부의 웜홀을 통해 10년 전으로 돌아가 젊은 나와 함께 살지, 아니면 혼자서만 10년의 세월을 맞은 늙은이와 함께할지. 이러나저러나 나에게 큰 손해는 없는 것 같다.


이해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10년 전의 나, 지금의 나, 그리고 아내 중 그 누구도 웜홀이 처음 생겼던 2024년 1월 5일 오전 10시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상상하는 타임머신과, 이론적으로나마 가능하다고 알려진 타임머신의 가장 큰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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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이야기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민음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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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슐러 K. 르귄은 왜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했을까? <기묘한 이야기들>을 읽고 나니 딱 그 생각이 떠올랐다. 같은 장편으로 비교한 게 아니니 올가 토카르추크 입장에선 좀 억울할 수 있겠지만 재미는 어슐러 K. 르귄 쪽이 더 나았다. 더 명확하다는 말이 맞을 수도 있다. 어슐러 K. 르귄이 '사회적'이라면 올가 토카르추크는 뭐랄까, 올개닉(organic) 요거트 같은 느낌이 있다. 히피스럽기도 하고, 마주치면 '피스'를 외칠 것도 같고, 무정부주의적이면서, 자연친화적이다. 전자가 인간 사회에 깃든 병에서 소재를 배양해 이야기를 직조한다면 후자는 지구 위를 굽어보며 툭 튀어나온 인간의 이상 행동을 관조한다. 르귄의 메타포들은 우리에게 성차별이나 빈부격차 같은 것들을 떠올리게 하고 그것이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것인지 알려준다. 이를 통해 우리는 더 나은 세계가 무엇인지 꿈꿀 수 있다. 올가 토카르추크는 인간의 세계가 아니라, 이 지구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역설한다. 그녀는 지구에서 자리하는 우리 종의 위치를 이렇게 표현한다.


"진화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여전히 침팬지이나 고슴도치이고 낙엽송입니다."(p. 147)


그래서 이 소설에는 기꺼이 다른 존재가 되려는 사람이 나온다. 인간이라는 굴레어서 벗어나 낙엽, 고슴도치 혹은 늑대가 되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건 없다. 그들과 우리는 구성하는 원자는 다를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기꺼이 다른 존재가 되려는 사람보다 그의 가족들에게 더 공감이 간다. 왜 사랑하는 사람들을 두고 떠나려 하지? 이야기를 곰곰이 따라가다 보면 인간으로 태어난 게 죄처럼 느껴진다.


올가 토카르추크는 지금까지 우리 종이 살아온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다른 종 위에 군림하고, 자연을 멋대로 파괴하면서, 함께 살아갈 방법을 고민하기보다는 다른 것을 바꿔 자기에 맞추는 폭력을 행사해 온 게 바로 우리 인간이라는 것이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변화를 촉구하는 수단으로써 이러한 이야기들이 효과적인가 하면 잘 모르겠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이 우리 인간 종에 내재한 근본적 결함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결함을 나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고, 따라서 고쳐야 할 대상으로 여기지만, 본성을 고쳐 산다는 게 정말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 든다. 비버는 댐을 만들어 주변 환경을 파괴하고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높인다. 비버에게 그 본성을 버리고 다른 동물처럼 정정당당하게 수영해서 사냥하라고 하는 게 옳은 일인가? 아니 가능한 일인가? 인간은 다른 존재라고, 스스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달라야만 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자연은 늘 균형을 맞추는 법을 찾아냈고 우리 인간도 대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인간은 본성에 내재한 결함을 고쳐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기보다 이 세상에서 우리 종 자체를 없애는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 같다. 세계적인 저출산 문제가 정말 우연의 일치일까? 생물의 역사에는 수많은 멸종의 기록이 있다. 이번엔 그 차례가 우리 인간에게 온 것일 뿐이다. 차이가 있다면 이 소멸을 스스로 선택했다는 것. 모든 것이 조화롭게,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게 인간의 관점에선 아주 아름다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우주라면, 지구 하나쯤 박살 나 먼지가 된다 한들,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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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중국사 16 : 안사의 난 이중톈 중국사 16
이중텐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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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융기는 젊은 시절 꽤 배포가 있었다. 좋게 봐줘도 황위와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연이 멀다고 할 수밖에 없는 그가 역사의 무대로 오르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능한 위 황후와 안락공주 때문이었다. 본디 큰 권력이 사라지고 나면 그 공백의 크기를 메우기가 쉬운 게 아니다. 천하에 인재가 아무리 많아도 무측천에 비할 인물은 손에 꼽을 정도였을텐데 하물며 그 좁디좁은 황가의 인력풀에서는 오죽했겠는가. 그래서 이 여황의 자리는 덕도 능력도 없는 자들의 수중에 떨어졌다.


위 황후는 무측천을 밀어내고 황위에 오른 중종의 아내였고 안락공주는 그녀의 딸이었다. 두 사람은 생각했다. 나라고 왜 여황이 될 수 없겠는가? 선례는 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준다. 이 꿈은 특히 무능한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더 크게 자란다. 중종이 천명을 다하는 것조차 기다릴 수 없었던 두 여인은 그를 독살한다.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는 이후에 벌어진 사태가 정확히 알려준다. 이융기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조정에 들어와 위황후 세력을 모조리 처형한다. 그가 옹립한 황제는 자신의 아버지 이단이었다. 이단은 당나라의 5대 황제 예종이 된다. 이융기는 스스로 태자의 자리에 올랐다.


예종 이단은 무측천의 넷째 아들이자 중종 이현의 동생이었고 이융기는 그 이단의 셋째에 불과한 남자였다. 뒷배가 없을 리 없었다. 그 든든한 지지자의 역할은 무측천의 막내딸 태평공주가 맡았다. 그런데 태평공주는 왜 이들 부자를 도와주었던 걸까? 당연히 스스로 여황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태평공주는 이융기를 너무 얕잡아 봤거나 자신을 어머니와 동일시할 정도로 과대평가했던 게 분명하다. 승자는 이융기였다. 그가 바로 당나라의 6대 황제 현종이다.


현종의 정치는 부족함이 없었다. 오죽하면 그를 태종 이세민에 비교했을까? 태종이 연 정관의 치는 당나라의 전성기였고 현종이 연 개원의 치는 당나라의 부흥기였다. 천하를 무씨의 손에서 다시 이 씨의 것으로 찾아왔고 무능한 황족과 그에 들러붙은 간신들을 뿌리 뽑았기 때문이다. 이랬던 현종도 말년에 가서는 총명함을 잃고 무너지기 시작한다. 아마도 그는 너무 오랫동안 황위에 앉아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당 나라를 통틀어 가장 오랜 기간 재위한 황제였다. 정치에 흥이 다 식은 노인은 천하의 일은 재상에게 맡기고 자신은 사랑하는 여인과 온천욕을 즐기는 데 열정을 쏟았다. 여인의 이름은 귀비 양옥환. 일명 양귀비였다.


찬란했던 제국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돌아올 수 없는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한다. 안사의 난이 시작이었고, 환관의 전횡이 보탰으며, 황소의 난이 마지막 장을 열어 오랑캐가 종지부를 찍었다. 안사의 난 이후로 중앙 정부와 변방의 군대는 서로를 신뢰하지 못했다. 그들은 대부분 오랑캐의 후손이었고 번장이라 불렸다. 안사의 난을 일으킨 안녹산은 소그드인, 제국의 수호자 고선지는 고구려인이었다. 번장이 있는 지역은 점점 번진이 되었고 당나라 황제는 명의만 가진 허수아비로 전락했다. 황제는 끊임없는 난을 평정하기 위해 또다시 번장, 혹은 오랑캐의 힘을 빌렸다. 악순환의 소용돌이였고, 빠져나올 수 없는 늪이었다.


황소의 난은 돌궐 일파인 사타족 이극용의 갈까마귀 부대에 진압된다. 황소를 배반하고 관군에 붙었던 주전충은 이후 실력을 키워 번진을 세운 뒤 마침내 당나라를 멸하여 오대십국이 시작된다. 아! 페르시아인과 소그드인과 고구려인과 선비족과 돌궐이 사이좋게 장안에 모여 정치에 참여하고 장사를 하고, 없는 것이 없다는 서시에서 흥겹게 춤을 추고 술잔을 기울이던 인터내셔널 대제국 당나라는, 그 위세와 위용이 꿈처럼 느껴질 정도로 허망하게 무너져 사라졌다. 오랑캐(선비족)가 세운 나라가 오랑캐(돌궐)에게 무너진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또 다른 오랑캐,


이극용과 주전충이 붙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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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톈 중국사 15 : 무측천의 정치 이중톈 중국사 15
이중텐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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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측천이다. 기나 긴 중국 역사에 기록될만한 여자가 어찌 한 둘이겠냐마는, 그 수많은 여인들 중 오직 무측천만이 황제에 등극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무측천이다. 여황 폐하다.


본디 무측천은 태종 이세민의 보잘것없는 후궁에 불과했다. 당나라 시대의 후궁 제도는 1후, 4비, 9빈, 27세부, 81어처로 나뉘는데 당연히 후가 으뜸이고 비, 빈, 세부, 어처 순으로 지위가 나뉜다. 27세부는 다시 첩여, 미인, 재인의 세 등급으로 나뉘고 각 등급당 9명이 배정된다. 무측천은 이중 정 5품 재인으로 27세부 중에서도 가장 낮은 지위의 후궁이었다. 뽐낼 거라고는 그저 81명으로 구성된 어처보다는 지위가 높았다는 것. 이랬던 그녀가 무측천이 될 수 있었던 건 태종의 아들 이치, 바로 고종의 마음을 사로잡은 덕이었다.


이것은 정말 희한한 일이었다.


선왕이 붕어하면 그가 거느리던 첩은 모두 비구니가 되는 것이 상례였다. 무측천도 처음에는 머리를 깎고 감업사로 들어가 비구니가 됐다. 고종은 그런 여자를 다시 불러 자신의 황후로 삼았다. 그건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이건 단순한 제도의 문제가 아니었다. 태종의 후궁이라면 고종의 어머니 아닌가? 아버지가 품던 후궁을 왕후로 들이는 건 제도니 예법을 따지기 전에 망측한 일이었다.


두 사람이 어떻게 눈이 맞았는지, 당연히 정사에는 기록이 없다. 이중톈 선생은 태종의 병시중을 중요한 계기로 제시한다. 태종이 중병을 앓던 무렵(고구려 원정에 실패한 데다 병까지 얻어왔다) 고종은 태자의 신분으로 직접 탕약을 끓여 바쳤고 무측천은 재인으로서 음식과 일상을 책임졌다. 아버지를 간병하며 어머니와 눈이 맞다니, 고종이란 남자, 나사가 두어 개는 빠져 있었던 건 아닌가? 아니면 무측천이 그 정도로 대단한 여인이었다고 생각할 밖에.


고종은 당연히 몰랐다. 부인이 자신을 밀어내고, 함께 낳은 아들들마저 끌어내린 뒤 스스로 황제가 될 줄은! 그건 아무리 뛰어난 소설가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무측천의 손에는 피가 마를 날이 없었는데, 심지어 이 여황 폐하는 장수까지 했다. 죽기 직전까지 젊은 남자 친구들을 여럿 거느리기까지 하면서. 정말 대단한 정력이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당나라 사람들은 전부 바보였단 말인가? 황후가 황제가 되고, 국호를 당에서 대주로 바꾸고, 그녀의 아들은 어머니를 따라 무씨로 성을 바꿨다. 언제 왕조가 교체되는지 생각해 보자. 오래된 왕조는 점점 무능한 왕과 부패한 신하들로 고통받다 서서히 몰락하고 그쯤 새롭게 태어난 세력의 혁명으로 무너지는 법이다. 무측천은 여성의 몸으로, 그것도 한 왕조가 가장 번창하던 시절 오직 힘으로 찍어 눌러 자신의 국가를 세웠다.


이것은 민심의 덕이었다.


무측천은 저 대단한 이세민조차 해내지 못한 고구려 정벌에 성공했고 과거제를 적극적으로 실시해 새로운 인재들을 대거 발탁했다. 죽이고 또 죽여도 사람은 넘쳐났던 것이다. 게다가 피의 축제는 백성의 것이 아니었다. 위에서 누가 살고 죽든 무슨 상관인가. 나는 배불리 먹고, 따뜻이 입고, 편하게 자고 있는 걸.


그녀가 물러난 뒤 지리멸렬해진 당나라를 보면 확실히 무측천이 대단하긴 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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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꿈은 우연이 아니다 - 뇌가 설계하고 기억이 써내려가는 꿈의 과학
안토니오 자드라.로버트 스틱골드 지음, 장혜인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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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신체에서 가장 신비로운 기관을 꼽으라면 뇌일 것이고 뇌의 동작 중 가장 신비한 걸 꼽으라면 아마 꿈일 것이다. 꿈은 우리 무의식에 숨은 욕망을 드러내거나, 낮동안 경험한 감정적 상처를 되풀이하거나, 심지어 미래를 예지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꿈의 원인은 이 모두일 수도 있고 이 중 어느 것도 아닐 수 있다. 확언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연구의 역사가 놀라울 정도로 짧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촉발한 꿈의 해석은, 1970년대에 등장한 '활성화-통합 가설'이 꿈은 단지 뇌에서 무작위적으로 만들어진 자동발화 전기 신호를 무의미하게 반영하는 현상일 뿐이라는 주장을 펼치며 다시 수면 속으로 잦아들었다.


21세기의 최신 연구는 꿈이 '근심과 불안을 시뮬레이션하고 중요한 경험을 장기 기억으로 넘기기 위한 재생 및 인출 과정'이라는 가설을 제시하며 그 원인과 기능을 밝혀나가고 있다. 저자들은 이러한 연구를 바탕으로 꿈의 기능을 '가능성 이해를 위한 네트워크 탐색 모델'로 정의한다. 이 책은 이 모델의 작동 방식을 상세히 기술하면서 인간에게 꿈이 왜 필요한지, 꿈은 무엇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왜 꿈을 꾸는지에 대해 답변한다.


가능성 이해를 위한 네트워크 탐색! 원문은 Network Exploration to Understanding Possibilities인데 앞 글자만을 따서 넥스트업이라 부른다. 네트워크 탐색까지는 이해가 되는데 가능성 이해라는 건 도대체 무슨 말인가? 쉽게 브레인스토밍 같은 걸 떠올리면 된다. 꿈을 꿀 때 뇌는 평소라면 전혀 가치가 없다고 여기는 발상에 더 높은 점수를 준다. 여행용 캐리어를 혁신하라는 주제가 주어지면 낮의 뇌는 수납이 쉬운, 더 많은 담는, 깨지지 않는 캐리어 같은 개념을 떠올리지만 밤의 뇌는 공항 로비에서 타고 다닐 수 있는 전동 캐리어라든가, 자동으로 나를 따라다니는 캐리어 같은 아이디어를 만들어낸다. 가능성 이해란 이처럼 사실, 개념, 사물 또는 그것의 속성을 다른 것들과 연결, 대체, 혼합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보는 행위라고 말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인간은 통찰을 발휘하고 창의적 발상이 가능해진다.


이론은 그럴싸하다. 하지만 꿈의 가치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넥스트업 모델대로 꿈이 기능한다면 우리는 모두 엄청나게 창의적인 인간이 됐을 것이다. 기억을 하지 못할 뿐 꿈을 꾸지 않는 인간은 없으며 하룻밤 동안에만 수십 개를 꿀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넥스트업은 꿈의 효능이 그것을 기억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한다. 자는 동안 의식하지 못해도 꿈의 도움을 받아 기억 네트워크가 자동 업데이트 됐기 때문이다. 내가 언제, 어떤 버튼을 눌러 휴대폰 OS를 업데이트했는지 기억 못 해도 OS가 업데이트된 사실이 바뀌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넥스트업을 옹호하려면 이런 가설을 제시해야 한다. 아주아주 유용하고 위대한 발견은 애초에 발생할 확률이 엄청나게 낮다는 것. 그래서 우리가 평생 수많은 조합을 무작위적으로, 아무리 많이 만들어낸다 해도, 유용한 가치가 발생할 낮은 확률을 곱하고 나면 0에 수렴한다는 것이다.


위인들의 생애를 돌아보면 꿈이 많았다기보다는, 확실히 컸다. 그런데 꿈이 어떻게 커질 수 있을까? 아마 그 꿈이 담겨있는 뇌신경이 지속적으로 활성화됐기 때문일 것이다. 넥스트업 가설이 맞다면 자나 깨나 한 가지 생각에 골몰하는 사람들의 꿈은 확실히 커질 수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건 꿈의 재료가 현실의 경험이라는 것이다. 최대한 많이 자서, 많은 꿈을 꿔야겠다고 생각하면, 대단히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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