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전기 - 축복과 저주가 동시에 존재하는 그 땅의 역사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 유달승 옮김 / 시공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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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0 페이지가 넘는 책을 한 페이지의 리뷰로 옮기는건 불가능하다. 게다가 이 책은 예루살렘의 기록 아닌가. 예루살렘에는 종교와 문명, 역사와 인종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다. 그것을 하나씩 풀어 헤쳐 온전히 날것의 예루살렘을 꺼내보는 일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책을 딱 한 번 읽고 그 내용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번역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예루살렘의 역사는 현기증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복잡하다. 수 천년의 역사 동안 그 땅에는 얼마나 많은 예수와 요한이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무하마드와 알리가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성전과 요새와 왕조가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인종과 종교가 있었는지! 어느 순간 독자는 홍수처럼 밀려 오는 지명과 이름의 압도적 물결에 휩쓸려 망망대해를 표류하게 된다. 불과 1분 전에 읽은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페이지를 뒤로 돌리는 건 예삿일이다. 역사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사람은 언제나 미궁 속을 헤매는 운명을 겪기 마련이다. 


저자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는 한 권의 책에 예루살렘의 모든 것을 넣을 작정을 한 것 같다. 이 책엔 아브라함에서 부터 네타냐후(2009년 부터 재직 중인 이스라엘 총리)에 이르는 유대인들의 기록이 있으며 이는 거의 4,000년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400년이 아니다. 4,000년 이다. 


앞에서 나는 이 책을 딱 한 번 보고 예루살렘의 모든 것을 알수는 없을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이런 말이 될 것 같다. 


이 책을 딱 한 번 읽는 것으로 예루살렘의 모든 것을 알수는 없지. 하지만 이 책 딱 한 권만으로 예루살렘의 모든 것을 알수 있는 것도 사실이네. 





여기 예루살렘이 있다. 그곳에 처음 뿌리를 내린 사람은 아마도 아브라함으로 보인다. 그에겐 이삭이라는 아들이 있었고 이삭은 야곱과 에서라는 아들이 있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야곱은 에서에게 죽 한 그릇을 주고 장자권을 가로챘다. 나중에 야곱은 낯선 자와 씨름을 벌이는데, 그 사람은 나중에 신으로 밝혀지고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는다. 그는 열 두 명의 아들을 낳았고. 그것이 바로 유대의 12지파가 되었다. 


그들의 역사처럼 파라오의 호의를 입은 건지 아니면 노예로 끌려 갔던지 그 사실 여부를 따질 수는 없지만 그들이 이집트에 있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았다면 모세가 그들을 이끌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 수는 없었을 테니까. 이 대탈출의 기적이 바로 모세 5경 중, 출애굽기(이집트=애굽)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그 후 예루살렘엔 다윗과 솔로몬이 있었다. 성전과 요새가 지어졌고 역사상 유래없는 번영을 누리게 된다. 그러나 번영은 길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북쪽의 이스라엘과 남쪽의 유다(다윗 왕가)로 갈라선다. 그리고 그들은 각각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에의해 멸망하고 만다. 디아스포라의(유대인들이 세계 각지로 뿔뿔히 흩어지게 된 것) 시작이었다.


유대인을 고향으로 돌려 보낸 것은 중동의 새로운 강자 페르시아였다. 페르시아는 바빌로니아를 멸망 시키고 유대인을 해방 시켰다. 해방된 유대인은 또 다시 페르시아를 꺽은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에 점령 당했다. 아시다시피 알렉산더는 이민족의 문화에 관대한 사람이었다. 유대인들은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알렉산더의 명은 길지 않았다. 유럽에선 그리스 문명을 이어 받은 로마가 세계를 정복하고 있었다. 로마는 자기가 정복한 나라의 속국들을 이어 받았고 거기엔 이스라엘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이스라엘의 로마인 총독은, 


폰티우스 필라테(본디오 빌라도)였다.





폰티우스 필라테는 성난 유대 군중들을 향해 강도 바라바와 예수 중 누구를 풀어줄 것이냐고 물어봤다. 유대인들은 바라바를 원했다. 폰티우스 필라테는 "물을 받아 군중 앞에서 손을 씻으며 말했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책임이 없소". 그러자 군중이 대답했다.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질 것이오".(p. 197)


오늘날까지도 많은 천박한 기독교인들이 이를 근거로 유대인의 박해를 정당화 한다(저자에 따르면 이 마태복음의 구절이 완전히 날조된 것이라 한다. 저자는 폰티우스 필라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완곡, 부드러움 따위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고 피를 보기 전에 손을 씻을 필요를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p.197).)


이후 세계를 지배한 것은 그리스도교였지만, 그게 그리스도교의 우월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는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다. 변덕쟁이에 야심가였던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중요한 내전을 치르기 전날 밤(312년) '하늘에 빛으로 된 십자가'가 '이 신호와 함께 너는 승리할 것이다!'라는 문구와 함께 겹쳐져 내려오는 것을 보았고 군인들의 방패에 크리스투스의(Christos. 영어로는 Christ) 첫 두 글자인 키로(Chi-ro)를 그렸다. 그는 승리했고 로마를 차지했다. 당시 로마는 곧 세계였으며, 이로인해 그리스도교가 세계의 종교로 거듭나게 된다. 이후 300년 동안 그리스도교는 적수가 없었다. 마호메트의 이슬람교가 등장하기 전까진 말이다. 





이슬람교는 많은 무지한 기독교인들이 오해하는 것과는 달리 하나님, 예수, 성경, 마리아 등의 개념을 공유하는, 기독교와 아주 유사한 종교다. 실제로 이슬람교가 등장한 초창기엔 종교간 충돌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이슬람교가 마호메트를 선지자로 규정하자 상황은 달라졌고 수 백년이 흐르는 동안 그 상황은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악화되었다.


이제 예루살렘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의 공통 성지가 되었고 역사상 유례없는 핫 플레이스가 되버렸다. 여름에는 작렬하는 태양이, 겨울에는 살을 에는 추위가 존재하는, 전략적, 경제적 가치도 없는 바위 투성이의 쓸모없는 땅이 말이다.


이 각축전에서 먼저 승기를 잡은 건 이슬람이었다. 고도로 발달한 문명과 군사력을 앞세운 이슬람은 유럽의 스페인과 중동의 대다수 지역을 정복했고 예루살렘은 보너스였다. 그런데 이슬람은 많은 기독교인이 생각하는 것만큼 무자비하고(칼이냐 코란이냐) 문란한(할렘 문화) 민족이 아니었다. 그들은 종교적으로 매우 관대했고 이 때문에 예루살렘에는 유대인과 그리스도인과 이슬람 교도들이 사이 좋게까지는 아니었지만 '공존'하는게 가능했다. 문제는 기독교인들이었다. 종교적 광신에 빠진 중세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은 성지를 이교도의 손에서 빼앗고자 피의 축제를 벌였고 이게 바로 4차에 걸친 십자군 전쟁이다.


그러나 이 대혼란 속에서 유대인은 단 한 번도 승기를 잡아본 적이 없다.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의 주인이 바뀔 때 마다 심한 박해를 받았고(특히 그리스도인들의 박해) 그저 더 관용적인 침략자가 나타나 자신을 구원해 주길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처지에 있었다. 그들이 이 땅을 다시 차지하게 된 건 1948년이 되어서였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에 이르러 유럽의 유대인 유력자들 사이에서 '시온 주의'가 발흥하게 된다. '시온 주의'란 뿔뿔히 흩어진 유대인들, 세계 각지에서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핍박을 받는 모든 형제들을 그들의 고향 예루살렘으로 모아 유대인 국가를 세우자는 운동이었다. 유럽의 왕들 중 일부는 '기생충 같은 유대인들을 내 땅에서 없앨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심정으로 또 일부는 '유대교에 대한 막연한 경외감'으로 또 일부는 '불가사의한 예언의 광신'에 휩싸여(예언에 따르면 유대인이 다시 예루살렘이 돌아왔을 때 메시아가 강림한다) 이 운동에 참여했다. 유대인들의 땅으로는 남미의 아르헨티나, 아프리카의 우간다 등이 제시됐다. 그러나 그 무엇도 예루살렘이 가진 거대하고 위대한 상징을 능가할 수는 없었다. 


1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17년, 유대인의 지지를 얻고 싶었던 영국은 '밸푸어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를 세우는 것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시온 주의자들은 드디어 자기 나라를 세울 수 있다는 기대감에 부풀어 올라 영국을 도왔다. 마침내 영국은 예루살렘을 차지했다. 


전쟁이 끝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유대인들은 영국이 프랑스와 아랍인들에게도 똑같이 팔레스타인을 약속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온 주의는 물거품이 됐고 예루살렘은 영국의 통치하에 그리스도인과 유대인과 이슬람인이 공존하는, 유대인들로서는 예전과 전혀 다를게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유대인은 2차 세계 대전이 끝날때 까지도 자기 나라를 세울 수 없었는데, 영국인의 배신에 실망한 일부 유대인들은 히틀러가 600만명의 유대인을 학살하고 있었음에도 영국이 아닌 독일의 승리를 바라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유대인들은 결국 무력 항쟁을 통해 영국군을 몰아 내고 마침내 1948년, 이스라엘을 건국한다. 옛 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망한지 2,700년이 지나서였다.


이 후 이스라엘의 역사가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적대적인 *아랍 국가들에 둘러 쌓여 있었다. 이들은 호시탐탐 예루살렘을 점령할 계획을 세웠고 각지에서 폭탄 테러와 유대인 살인이 벌어졌다. 2,700년 만에 되찾은 이스라엘을 다시 한 번 멸망의 위기로 몰아 넣은 것은 이집트의 대통령 '나세르'였다.


단 하나의 아랍 국가를 원했던 민족주의자 나세르는 아랍 국가들 사이에 가시처럼 걸려 있는 이스라엘을 파멸시키고 싶었다. 그는 주변 아랍국을 선동해 전쟁을 일으켰다. 이게 현대 전쟁사의 최고 드라마 6일 전쟁이다. 


아랍 연합군은 50만의 병력, 5,000대의 탱크, 900대의 비행기를 확보했다. 이스라엘은 27만 5,000명, 1,100대의 탱크, 200대의 비행기를 확보했다.(p. 814)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 심지어 이스라엘인 조차도 자국의 승리를 점치지 않았다. 이스라엘은 과감한 선제 기습 공격으로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1967년 6월 5일 오전 7시 10분, 이집트로 날아간 이스라엘 조종사들이 그들의 공군을 궤멸시켰다. 이스라엘은 불가사의한 승리를 거머쥐었다. 그것은 마치 2,700년 간 유보해왔던 축복이 한 순간에 내려진 것 같았다. 이제 그 누구도 유대인들의 손에서 예루살렘을 빼앗을 수 없었다.





역사는 언제나 가해자의 잔인함을 고발하지만 동시에 복수심에 불타는 피해자 어떻게 가해자로 변신하는지를 주목하기도 한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겪어온 폭력과 멸시의 고통을 이슬람인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들은 가자 지구를 폭격해 수 많은 민간인을 사살하고 폭탄 테러의 위협으로 부터 유대인을 구한다는 명목으로 비인간적인 격리를 실행하고 있다. 끔찍한 게토의 추억을 갖고 있는 유대인들이 말이다.





아브라함에서 시작한 예루살렘의 전기가 2000년대 이스라엘의 모습에 이르러 마무리 지어지면, 드디어 끝났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세계의 역사를 단숨에 들이킨 듯한 자신감이 충만해 온다. 


이 책은 유대인들에 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예루살렘에 대한 책이다. 예루살렘에는 수 많은 종교와 민족과 국가가 존재해왔다. 저자는 그 모든 것들을 어느 일방의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한다. 어쩌면 그의 의도가 예루살렘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니며 따라서 그것을 두고 피를 흘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의도를 받아 들일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종교 때문에 폭탄 테러와 비인간적인 학살이 자행되는 곳이다. 아이러니한건 그 곳에 사는 사람 모두가 정의와 평화를 꿈꾼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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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란 2012-08-09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루살렘을 안다는 것은 인간을 안다는 것이라고 감히 생각합니다. 인간의 부조리가 한 곳에 응축된 곳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고요, 외계인이 지구상에 나타난다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지역이라면 이곳이 아닐까...정말 예루살렘을 상징하는 수많은 것들....천국이 있다면 이런 곳은 아니 겠지요?

한깨짱 2012-08-09 13:15   좋아요 0 | URL
지옥이 있다면 이런 모습이겠지요. 예루살렘은 정말 복잡하고 미묘한 곳인것 같습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신이 거하는 곳에 오히려 절망과 폭력만이 가득한 아이러니. 읽는 내내 정말 복잡한 심정이었어요.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사랑
폴 세르주 카콩 지음, 백선희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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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를 처음 봤을 때가 기억난다. 연출 수업에서 였을 거다. 교수님은 누벨바그를 언급하며 '네 멋대로 해라'를 틀었다. 숏 컷트의 진 세버그가 나왔고 중절모를 쓴 장 폴 벨몽도가 나왔다. 네러티브는 제멋대로 질주했고 컷은 사정없이 튀었다. 숨가쁜 90분이 지나고 영화는 갑자기 '뜩' 하고 끝났다. 다른 모든 영화가 시시하게 느껴졌다. 


그 학기 말 작품에서 나는 장 뤽 고다르의 화신이 되었다. 네러티브는 제멋대로 질주했고 컷은 사정없이 튀었다. 숨가쁜 28분이 지나고 영화는 갑자기 '뜩'하고 끝났다. 그것이 내 마지막 영화가 되었다.





진 세버그. 누벨바그의 여신. 진 세버그는 관습과 기성질서를 타파해 새로운 영화를 탄생시키겠다는 누벨바그의 살아있는 상징이었다. 그녀의 짧게 깍은 머리는 여성을 새롭게 정의했으며 수 천년간 여성 위에 군림해왔던 수컷 사회를 대담히 도발했다. 시도는 성공적이었다. 세상은 열광했고 숏 컷트한 여자들이 파리를 가득 채웠다. 가능성은 인정받았으나 결코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던 이 미국 출신 여배우는, 저항과 변화의 상징이 되어, 지구 반대편인 프랑스에서 뜻 밖의 대성공을 거둔다. 





1914년, 리투아니아의 젊은 단역 여배우가 로맹 가리라는 아이를 낳았다. 그는 유대인이었다. 여배우는 유대인에 대한 핍박과 가난을 피해 프랑스의 니스에 도착했다. '들고 온 짐이라곤 열네 살 된 로맹과, 아들에게 프랑스인의 운명을 만들어 주겠다는 유대인 어머니의 각오 뿐이었다.'(p. 26). 그녀는 어린 아들에게 '넌 프랑스 대사가 될 거야'라는 말을 주문처럼 외웠다고 한다. 로맹은 캘리포니아 주재 프랑스 총영사가 된다.


로맹 가리는 외교관이 되기 전부터 소설을 썼고 2차 세계대전 때는 프랑스 공군으로 참전했다. 전쟁으로는 훈장을 쓸어 담았고 소설로는 부와 명예와 인기를 얻었다. 너무 많은 것을 가진 자는 언제나 시기와 질투 속에 살아가는 법이다. 훈장과 명예와 잘생긴 외모와 뛰어난 외교 능력은 유대인이라는 최고급 양념과 버무려져 평생 핀치에 쳐박혔고 그는 소설이라는 주먹을 휘둘러 인간의 잔인함과 무지, 천박함과 편협을 고발했다.


로맹 가리의 화려한 인생은 에밀 아자르의 등장으로 정점을 맞게 된다. 에밀 아자르는 자신을 폄하하는 비평계를 묵사발 내버릴 최강의 무기였다. 전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소설이라도 프랑스 평론계는 유대인이자 드골주의자였던 로맹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면 맹수도 늙고 이빨이 빠진다. 소설가로서 로맹 가리의 경력이 끝나갈 기미가 보이자 비평가들은 그를 한물 간 소설가라고, 곰팡내 나는 다락방에 고장난 장난감을 쳐박듯 그를 몰아 붙였다. 로맹 가리는 어둠 속에서 에밀 아자르를 만들었다. 그는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여러 권의 소설을 출간했다. 로맹 가리라는 이름에 치를 떨던 비평가들이 에밀 아자르의 책에 열광했다. 에밀 아자르는 콩쿠르 상을 수상했다. 로맹 가리 또한 콩쿠르 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역사상 단 한 번도 동일한 작가에게 수상을 한 적이 없는 콩쿠르 상을 말이다.





미국에서 태어났으나 프랑스에서 성공했고 러시아에서 태어났으나 역시 프랑스에서 성공한 로맹 가리는 진 세버그의 고향 미국에서 첫 만남을 갖는다. 진 세버그는 위트와 유머와 부와 명예와 권력과 잘생긴 외모까지 갖춘 로맹 가리에게 빠져 들었다. 다가올 불행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어리석은 남자 프랑스 모뢰이는(당시 진 세버그의 남편) 로맹 가리에게 자신의 아내를 보살펴 줄 것을 부탁하고 프랑스로 떠났다. 모뢰이가 돌아왔을 때 진 세버그는 이혼을 통보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박살나 버렸고, 언제나 그렇듯 새로운 시작이 박살난 사랑의 폐허에서 탄생했다. 진 세버그의 열정으로 로맹 가리 또한 이혼 했다. 두 남녀는 결혼했다. 24살의 나이차가 났다. 


강이 나타나면 흘러내려 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거슬러 올라가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있다. 진 세버그는 후자에 속했고, 로맹 가리 역시 그랬다. 두 사람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었고 황금을 찾는 사람이었는데, 그런 사람들에게는 휴식도 구원도 전혀 없다.(p.82)


진 세버그는 사회에서 소외 받은 약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흑인 인권 운동에 참여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다. 하지만 당시는 매카시즘과 인종차별의 악랄함이 박애 정신과 숭고한 희생을 짓밟던 시절이었다. 진 세버그는 '흑인들의 창녀'라고 불렸다. FBI는 그녀를 빨갱이로 간주해 사생활을 감시했고 그녀의 명예를 실추 시킬수 있는 일이라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언론에 공개했다. 악의적인 가십은 그녀의 사생활을 파괴했고 보수적이었던 진 세버그의 가족은 그녀를 버렸다. 진 세버그의 영화 경력은 쇠퇴 일로였다. 불만족이 자기 경멸로 바뀌기 시작할 때는 누구도 도울 수가 없다(p.86). 진 세버그는 알콜 중독에 걸렸고 변함없이 인종차별에 분노해 세상 사람들의 분노를 샀다. 로맹은 그녀의 혈기를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로맹은 수 많은 이데올로기가 짧은 시간 발화했다 먼지처럼 사그라 드는 것을 경험했고, 무엇보다 세상의 비열함을 알고 있었다. 진실과 정의는 영원 불변한 가치처럼 빛나는 것 같지만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순식간에 빛을 잃고 사라져 버린다. 열광했던 사람들은 전혀 몰랐던 일인 것처럼 주머니에 손을 넣고 집으로 돌아간다. 로맹은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기에 진에게 충고했다. 그러나 그것을 알기엔 진이 너무 어렸다. 그녀는 언제나 유보적인 로맹 가리를, 불의와 차별에 저항하지 않는 로맹 가리를, 행동하지 않는 소설가라고 매도했다. 평생을 인종차별과 소외와 싸워온 로맹 가리에게 말이다. 





로맹은 아버지 역할을 자진한게 아니었다. 24살의 나이차는 로맹에게 아버지의 역할을 덧 씌웠다. 그리고 모든 아버지는 젊은 자식과 불화를 겪기 마련이다. 결혼 생활은 8년만에 끝났다. 로맹은 더더욱 글 쓰기에 몰두했고 그가 연기한 에밀 아자르는 콩쿠르상을 거머쥔다. 진 세버그는 물에 빠진 나비처럼 힘없이 침몰하고 있었다. 급기야 경제적 여유마저 상실한 그녀를 로맹은 위기 때 마다 건져주었다. 그녀는 로맹에게 감사했고 새로운 삶을 약속했지만 '추락하는 곳엔 날개가 없었다'. 그녀가 흑인 인권 운동가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루머가 퍼졌다. 사람들은 '흑인들의 창녀'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다고 떠들어댔다진은 잠적해 아이를 낳았다. 로맹은 진을 보호하기 위해 그 아이가 자신의 아이임을 밝혔다. 아이는 태어나자 마자 죽었다. 진 세버그는 아이를 유리관에 넣어 장례를 치렀는데, 그 아이가 흑인인지 아닌지를 보기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장례식장에 몰려들었다. 남의 불행에서 흥미를 느끼는 동물은 인간 밖에 없을 것이다.


'1979년 9월 8일 토요일, 진 세버그의 시신이 그녀의 르노 자동차 안에서 발견되었다'(p. 228). 그녀의 나이 마흔하나였다. 로망 가리는 기자회견을 열어 FBI가 그녀의 삶을 파괴했으며 진 세버그가 아기의 죽음 이후에 정신병원을 드나들고 자살 기도를 이었다고 말했다. 


1년여 뒤 로맹 가리는 '진 세버그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깨진 사랑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른 데 가서 알아보시길'(p.230~231) 이라는 메모를 남긴채 권총을 입에 물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가 죽고 얼마 뒤 베일에 가려져 있던 천재 작가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였음이 드러났다. 세상은 충격에 빠졌고 프랑스 비평계는 침묵했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인간의 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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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민주주의 역사
로저 오스본 지음, 최완규 옮김 / 시공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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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고대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기적처럼 느껴진다. 폭력이 영토와 권력과 집과 노예와 먹을 것과 온갖 아름답고 진귀한 것을 보장해 주던 그 시절에, 왜 그들은 그 모든 것을 사이좋게 나눠 갖길 원했던 걸까? 그들이 너무 순진했던 걸까? 아니면 만민의 평등을 바라는 것이 인간의 본능 이었던 걸까?


아테네는 1년 내내, 열흘에 한 번씩 민회가 열렸다. 아고라에 모여 정치와 국방과 경제를 논하던 시민들은 주홍 물감에 적신 밧줄을 흔들며 민회 참석을 독려하는 서기들의 고함 소리를 따라 원형 극장 '프닉스'에 모였다. 6,000명의 시민들은 그곳에서 500명의 평의원과 대면한다. 오해하지 마시라!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누가 뽑히든 현실 세계에 어떠한 변화도 가져다 주지 못한다고 좌절하게 만드는, 그래 그렇게 우리를 정치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시시한 대의 민주주의가 아니었다. 아테네 시민이라면 누구나 1년에 한 번은 500인 평의회에 들어가 봉사해야 했다. 500인 평의회는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만들어진 소수의 특권층이 아니었던 것이다. 프닉스에는 이 500인 평의회와 시민들이 모여 침략과 평화, 공공 사업과 과세에 대한 결정을 모두 '합의'하에 도출해 냈다. 단군 할아버지가 웅녀와 결혼해 고조선을 세우던 그 시절에 말이다.





나는 고대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가 기적처럼 느껴지는 것 만큼 이후 이 천년 가깝게 인류의 역사를 지배한 억압적인 통치 체계가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아테네 이후 민주주의를 실천한 국가는 단 하나도 없었다. 물론 대놓고 그리스 문화의 카피캣을 자처했던 로마의 공화정이(왕이 없는 정치 체제라는 뜻) 있긴 했다. 하지만 집정관들은 결국 황제를 자처했고 막강한 권력을 차지한 이들의 폭력은 자유와 토론을 중시하고 국가적 의사 결정에 기꺼이 참여할 힘을 지니고 있던 시민을 소수 특권층의 삶을 위해 착취 당하는 노예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아테네에서 평화를 부르짖고 전쟁에 반대하던 자유 시민들은 도대체 어디로 가버린 걸까? 인간이 드디어 거추장스러웠던 가면을 벗어 던지고 본래의 잔인성을 되찾은 걸까?


이 후의 역사는 여러분들도 잘 아시는 바다. 물론 이 기간에 민주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가진 지역이 하나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15~16세기에 걸쳐 존재했던 '그라우뷘덴'은 주변 정세를 두고 봤을 때 아주 이례적인 직접 민주주의 국가였다. 이곳의 민주주의는 권력이 부재하는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발생한 통치 체제였다. 그 누구도 권력을 차지할 자격이 없으며 이로인해 그 누구도 타인을 통치할 자격이 없다면, 시민은 자신의 앞날을 스스로 결정하고 그 실행에 직접 참여해야만 한다. 민주주의가 현실적 필요성에 의해 자발적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아테네와 그라우뷘덴의 사례를 통해 우리는 시민의 자발적 참여와 계급적 평등(=권력의 부재)이야 말로 민주주의 탄생의 중요한 조건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반대로, 우리가 그것을 실천했을 때 비로소 민주주의를 확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민주주의의 오랜 공백은 18세기 말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 한꺼번에 채워진다. 분노한 파리 시민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했으며 파리 시장 드 소비니와 그의 장인 풀롱을(가난한 자들이 배가 고프면 건초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한 인물) 참수했고 급기야 프랑스의 왕 루이 16세를 단두대 위로 끌고 간다. 왕의 머리가 떨어지는 순간 막강했던 프랑스의 전제 왕정은 막을 내리고 드디어 프랑스 공화국이 탄생한다. 이 사건은 유럽의 많은 국가들이 입헌군주국 또는 공화정으로 이양하는 신호탄이 되었다. 

그러나 이 시대의 민주주의가 오늘날의 민주주의와 같았을 거라는 생각은 오산이다. 혁명이 일어난 많은 나라가 국민의 투표를 허용하긴 했으나 선거권을 부여하는 기준은 상당히 보수적이었다. 그 기준은 대개 보유한 재산이었는데, 이는 근대 민주주의가 만민의 복지와 평등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진 자들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한 합법적 지배 체제였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물론 많은 이들의 투쟁을 통해 민주주의는 점차 올바른 길을 찾아갔으며 오래지않아 모든 성인 남성들이 선거권을 갖게 된다. 그러나 여성, 소수 민족, 노예들에 대한 선거권은 여전히 요원했으며 특히 여성 선거권의 경우 18세기, 19세기도 아닌 무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거의 모든 국가에서 그 권리가 인정된다. 그러고 보면 만인의 의한 만인의 민주주의는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갓난 아기라고 할 수 있겠다.





보통 선거권의 확립으로 국민은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특히 경제적 불평등은 민주국가가 가진 영원한 숙제였다. 이에 레닌은 선거를 '억압받는 계급이 몇 년에 한 번씩 의회에서 인민을 '대표하고 억압'할 유산계급 대표를 결정할 권리를 누리는' 착취 행위(p. 324)라고 규정하기 까지 했다. 오늘날 세상을 웬만큼 아는 사람치고 이 말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사실 민주주의에서 권력을 엿 먹일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선거다. 저 사람이 우리를 위해 일할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뽑으면 되고, 그 사람이 아니라는게 판명되는 돌아오는 선거를 통해 그를 몰아내면 된다. 민주주의는 이처럼 간편하고 합리적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국민은 이 같은 일이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막강한 돈과 언론의 힘을 엎은 정치인들은 대다수 국민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재선에 성공한다. 투표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습관화된 무력감은 결국 정치에 무관심한 국민을 양산하고 급락한 선거율이 기존 세력의 재선에 도움을 주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래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아무도 원하지 않고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황당한 일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30년 전만해도 바람직한 민주사회의 시민은 사회주의자를 때려 잡고 정부의 권위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는 것이었다. 일부 국가를 제외하곤 오늘날 민주주의를 이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나라는 없다. 민주주의는 오래된 것처럼 보이나 갓 솟아난 새싹처럼 싱싱하고 고정된 것처럼 보이나 시대에 따라 빠르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은 오늘날 우리의 민주주의가 비록 우리가 의도한 바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사실에 심각히 좌절하거나 절망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말해 준다.

 

저자는 '민주주의가 각기 다른 시기에 존재했지만 그렇다고 시간이 흐르면서 개선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p. 22) 라고 말했다. 기원전 500년 고대 아테네에서 발흥한 민주주의가 오랫동안 침체 일로를 걸어왔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근대에 이르러 민주주의는 확실히 진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대체로 점진적이지만 때때로 급발진을 시도하기도 하며 그 부작용으로 인해 잠시 주춤하기는 하지만 또 다시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보라!).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시종일관 2012년의 대한민국을 떠올렸다. 지금 우리가 빠져 있는 비탄은 명백히 민주주의가 만들어 놓은 함정이었기 때문이다. 사악하고 멍청한 지도자에게 합법적으로 권력을 이양하는 정치 체제라면, 무지와 무관심으로 인해 좀비가 된 국민들이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자를 구원자라 착각하고 표를 던지는 정치 체제라면, 그딴건 차라리 없어져 버리는게 나은거 아닐까? 이런 생각에 잠겨 우울해 질때마다 이 두꺼운 책은 나에게 이런 말을 던지는 것 같았다. 상처 받지 말라, 우리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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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왕의 고뇌
에밀 아자르 지음, 김남주 옮김 / 마음산책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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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역설은 분노, 허무, 그리고 아무리 떼어 놓으려 애를 써도 기어이 삶을 따라 잡고야 마는 죽음에 대한 무력감에서 나온다. 자신감 넘치고 강하며 선하고 올바른 자들은 역설을 비겁한 자조나 자포자기, 허약한 비아냥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오만한 소리! 역설은 허무를 온 몸으로 받아들였을 때만 얻을 수 있는 삶의 정수다. 죽음을 눈 앞에 두고도 열심히 입을 놀릴 수 있는 사람은 역설을 지닌 자들이다. 그리고 대개는 그들의 역설에서 죽음을 때려 눕힐 '웃음'이 탄생한다. 




에밀 아자르의 책은 처음이다. 제목을 보자마자 뇌세포가 쫄깃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걱정이 앞서기도 했다. 솔로몬 왕의 고뇌. 지나치게 사색적이라 떠맡지 않아도 될 고뇌를 억지로 업어 올 것만 같은 걱정. 세상의 비밀을 속속들이 알게 될 수록 고통과 비극은 멀어질거라 기대하지만, 사색의 깊이에 비례해 삶의 무게가 더해지는 것이 철학의 함정이다. 모르는게 약이지라는 말은 그냥 있는게 아니지. '심연을 오래 들여다 보면 어느새 심연도 당신을 들여다 보는 법이니까' -프리드리히 니체.


그런데 이책, 재밌다. 솔로몬 왕의 고뇌는 신나는 풍자와 역설로 부드럽게 다져져 애정어린 비웃음으로 요리된다. 우선 이 책의 화자 '장'부터 소개해야겠다. 장은 크메르 루즈의 킬링필드에서 살아남은 캄보디아인 통, 가난과 역병의 땅인 아프리카에서 온 요코와 함께 한 대의 택시를 번갈아 가며 운전하는 택시 기사다. 한 대의 택시를 세 명이! 이 가난한 청년은 어느 날 '기성복의 왕'이라 불리는 거부 솔로몬을 태우게 되는데, 장의 얼굴에서 비밀스런 추억을 느낀 솔로몬은 그 즉시 택시 임대비로 진 장의 빚 1만 5천 프랑을 갚아준다!


동화같은 이야기!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 우리는 불가한 꿈에 취해 비틀거리다 차가운 물을 뒤집어 쓰고 현실로 돌아와야하는 무기력한 독자? 그렇지 않다. 이 책은 그렇게 시시한 책이 아니야. 들어보게.


기성복의 제왕 '솔로몬'은 여든 네 살이다. 마흔 넷이 아닌 여든 넷이다. 여든 넷! 팔십 사! 죽음을 코 앞에 둔 늙은이지만 솔로몬은 그 예정된 방문자의 응시를 완전히 무시한다네. 그는 젊은 시절 기성복을 만들어 거부가 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그 친구의 방문을 받을 뻔 했지만, 샹제리제 거리의 어느 지하실에서 4년간 꼼짝않고 지낸 덕분에 그 불행을 면할 수 있었다. 그가 여든 네 살이 되어 임박한 죽음에 그토록 분개했던 이유는, 젊은 시절 그토록 드라마틱하게 죽음을 피해 살아남았건만 이제와서 고작 '자연사'라는 시시한 방법으로 그것을 맞이 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죽음을 거부한다. 그는 앞으로 5년간 쓸 수 있는 최신식 세라믹 이빨로 임플란트를 해 넣고 '트레이닝'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운동복을 입은채 격렬한 체조를 한다. 왜냐구? 인간은 언제나 내일을 대비해야 하지 않는가!


솔로몬의 또 다른 취미는 젊은 시절 벌어들인 돈으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다. 근심과 걱정이 있는자, 수고롭고 짐진 자들은 망설임 없이 솔로몬의 집으로 전화를 거시라. 그곳에는 여든 네 살의 노인과 함께하는 자원 봉사자들이 24시간 당신의 전화를 기다린다. 이른바 솔로몬의 구조회. 

'장'에게 내려진 1만 5천 프랑의 은혜는 사실 이 곳에서 심부름 꾼으로 일하는 대가로 주어진 것이었다. 그는 택시를 이끌고 전화만으로는 도움이 부족한 사람들을 찾아가 과일 바구니를 선물한다. 그들은 대개가 노인들이었다. 솔로몬은 특히 자신과 비슷한 운명에 직면한 사람들을 각별히 도왔던 것이다. 노인들에게 부족하기 쉬운 비타민을 선물하면서, 마치 그들이 30년은 더 살수 있을 것처럼.


장의 룸메이트 척은 솔로몬의 구조 활동에 대해 이런 평가를 내린 바 있다. 


'솔로몬 씨가 그런 일을 하는 것은 선한 마음에서가 아니라고 한다. 솔로몬 씨는 신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고 모범을 보이기 위해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16p)


척의 말을 수긍한다면 솔로몬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법칙, 나아가 이 세상, 나아가 이 세상을 만든 자에게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신이 정한 생사의 법칙을, 그가 인간을 위해 만든 유일한 친구의 도움을 거부한다. - 인간의 친구는 타자가 아니다. 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약탈, 살인, 전쟁을 보고 있으면 신이 타자를 만든 이유가 서로를 죽여 그 수를 조절하기 위함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고로 신이 인간을 돕기 위해 만든 유일한 친구는 '죽음' 뿐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신이라면 마땅이 해야할 기적과 은혜의 축복을 대신 행사한다. 신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고 그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서!





신은 죽음을 만들어 인간을 다스리려 하지만 여기 만만치 않은 존재가 서있다. 그는 여든 네 살의 노인이지만 그 눈은 어떤 젊은이 보다도 삶에 대한 열망으로 활활 타오른다. 그는 여든 네해를 쉼없이 보내 삐그덕 거리는 노구를 이끌고 사창가를 찾고 예순 여섯살의 옛 연인과 재회해 미래를 계획한다. 나는 이토록 천박하고 우아하면서 유쾌하고 진지한 반항아를 본 적이 없다. 


이 소설은 역설의 옷을 입고 인생의 무대에 올라 죽음을 노래한다. 그 노래가 끝나고 나면 죽음은 사그라 드는 박수 소리를 등에 업고 무대 뒤로 사라진다. 죽음이 정복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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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 2012-07-11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봤습니다.^^

한깨짱 2012-07-11 13:1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횡설수설 엉망인 리뷰라 손을 좀 볼까 하는데 어렵네요... 좋게 보셨다니 다행입니다.
 
가면의 고백 (양장)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1
미시마 유키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미시마 유키오. 본명 하라오카 기미타케. '금각사'의 저자. 극우파 민족주의자. 원자폭탄 두 방에 가까스로 제 정신을 차린 일본을 다시금 폭력의 핏물 속에 빠뜨리기 위해 안달하다 스스로 배를 갈라 새빨간 선혈로 생의 마지막을 장식한 정신병자.


난 이 사람이 싫다. 우파를 증오하니까. 그냥 우파만해도 치가 떨리는데, 극우파라니. 이런 남자가 쓰는 소설은 그 단어 하나, 문장 한 줄, 아무런 의미없는 구둣점조차 심기를 거스를게 분명하다. 세상에, 극우파의 소설이라니!





그럼 왜 나는 미시마 유키오를 펼쳐 들었나? 싫어하려면 그 만큼 더 잘 알아야 한다는 유치한 집념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왜? 미시마 유키오, 고작 31세에 문학 인생의 절정을 맞은 천재, 당대 최고의 소설가. '금각사'라는 이름은, 그래 소설을 읽기 시작한 이래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 보았지. 그러니 어쩔 수 없잖아. 정치적 견해 때문에 하나의 기념비가 될 수도 있는 문학을 놓쳐 버릴 수는 없어. 나는 그 정도로 참을성이 있는 사람은 아니지. 궁금해 미칠 지경, 도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사람들은 이 정신병자에게 그토록 환호하는가. 나는 이런 호기심에 걸려든 평범한 독자인거야. 그리하여 펼쳐든 작품이 바로 이 '가면의 고백'. 





첫 장을 읽는 순간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의외였다. 이 소설은 미시마 유키오가 자신의 젊은 시절을 자전에 가깝도록 써낸 소설이다. 그러니 이 소설에 묘사되는 소년은 미시마 유키오 자신일 것이다. 그런데 글 속에 근육질의 일본도를 든 극우 꼴통의 중년 아저씨는 없었다. 허약하고 창백한, 말라 비틀어진 소년이 하나 있었을 뿐이다. 그는 어린 시절 자가 중독으로 죽을 고비를 넘겼다. 고비를 넘겼다고는 하지만 죽음은 언제나 소년의 옆을 지키는 빚쟁이였던 것 같다. 죽음과 함께하는 사람들에게서 보이는 허무와 죽음에 대한 무의식적인 찬미를, 이 병약한 소년도 지니고 있었다.


소년은 죽음을 사랑했다. 총알이 심장을 뚫고 지나가 분수처럼 피를 쏟으며 바닥에 쓰러지는 병사를, 뜨거운 장작 위에서 갈기 갈기 태워져버리고 마는 잔다르크를, 소년은 사랑했다. 죽음에 대한 찬미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갈망과 비례한다. 무서운건 죽음이 아니다. 그것은 주머니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다. 더럽고 무례하고 혐오스러운건 고통이다. 소년은 고통이라는 더러운 오물을 뒤집어쓰고 죽음을 찾아 떠나는 탐험가다. 끝없이 고통스러울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라는 생각은 지극히 합리적인 생긱이다. 고통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사람에겐 죽음이 황홀할 수 있는 것이다.


소년은 끝내 고통의 열매를 얻지는 못했다. 삶이 지속되자 그는 남성을 욕망했다. 그것은 아마 강함에 대한 갈망이었을 것이다. 허약한 자신에 대한 증오가 커질수록 덩달아 커지는 생명력에의 갈망. 그것은 사춘기 소년에게 남성을 사랑할 기회를 안겨줬다. 또래의 친구들이 나체의 여자를 떠올리며 은밀한 습관을 문지를 때, 소년은 벌거벗은 남성의 육체를 상상하며 자위했다.


죽음과 비정상적 사랑의 근처에서 우물쭈물하다 소년은 성인이 되었다. 그 때는 전쟁이 한창이었다. '너는 20세에 죽을거야'라는 말에 당혹감보다는 우쭐한 쾌감에 젖었던 청년은 막상 그것과 마주하고 나자 공포에 몸을 떤다. 공습 경보가 울리면 누구보다도 빨리 방공호로 대피했던 것이다. 모든게 정상이 되가고 있다는 신호였을까? 청년에겐 사랑하는 '것 같은 여자'까지 생겼다. 청년은 여자와 함께 잔디밭에 앉아 키스를 나눈다. 그러자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청년에 따르면, 임시로 고용해 몸에 달고 있었던 '정상성'이 키스 후에 찾아온 무감각과 서글픔에 산산조각나고 말았던 것이다. 여자는 결혼을 원했다. 청년은 정중히 거절했다. 





자전적 소설이라고는 하나, 그 말에서도 드러나듯 이것은 엄연히 소설이다. 가면의 고백에  쏟아지는 모든 고백들이 미시마 유키오를 그대로 재현한다고 생각해선 안되는 것이다. 소설은 허구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생각한다면 소설은 허구이기에 그 속에 과감한 고백을 담을 수도 있는 것이며, 그로 인해서 대부분의 소설은 작가 자신의 내면적 고백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257p, 해설 중)


나는 이 소설을 미시마 유키오의 고해성사로 받아 들이고자한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자신도 정확히 헤아릴 수 없는 자기 본연의 모습을 진지하게 탐구하려 했던 것 같다. 작가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 그래 그 새로운 출발을 위해 미시마는 그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을 정의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정의가 단단히 뿌리 내리지 않으면 인간은 결코 자신의 세계를 구축할 수 없다. 그러니 작가라는 위대한 첫발을 내딛는 바로 그 순간 그가 행할 수 있는 일은 과감히 자기를 고백하는 것 말고 무엇이 있겠는가.


p.s - 미시마 유키오의 예술 세계는 이후의 작품을 더 탐독하고 나서야 말할 자격이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그의 문장 만큼은 아니다. 그 위력은 '가면의 고백'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눈 앞의 글자가 그대로 향기가 되어 하늘하늘 피어오르는 것처럼 황홀한 언어의 춤. 굳이 소설로 묶여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 문장 하나하나가 각각의 문학 작품이 될 수도 있을 정도다. 이 정도의 경지를 24살에 보여줬다니. 천재적 예술성이란, 어쩌면 죽음을 껴안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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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 2012-07-11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평 잘 봤습니다.^^

한깨짱 2012-07-11 13:17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